| 2007-08-07, 11:07 PM | #1 |
|
Moderator
![]() ![]() ![]() ![]() Registered: Sep 2001
My Mac: MacBook Air
Posts: 2,140
오프라인
|
가짜 잡스와 SCO, 그리고 리눅스
![]() Daniel Lyons: Fake Steve Jobs and the SCO Shill Who Hated LinuxMonday, August 6, 2007애플 CEO, 스티브 잡스를 거리낌 없는 잡스인양 블로그를 해 온 사람이 있다. 포브스 매거진의 라이언즈(Daniel Lyons)이다. 스티브 잡스인양 글을 써 온 그를, 최근 뉴욕타임스의 브래드 스톤(Brad Stone)이 밝혀냈다. 그런데 스톤이 밝히지 않은 사실이 있다. 라이언즈의 스캔들 많은 과거이다. 라이언즈는 리눅스와 오픈소스를 공공연하게 공격했으며, SCO Group에게 양식을 제공해 온 이력을 갖고 있다. [‘Fake Steve’ Blogger Comes Clean - New York Times]The Secrets We Tell. 사실 Engadget의 라이언 블록(Ryan Block)이 라이언즈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었다. 블로거들이 가짜 잡스에 대해 몰려든 것은 물론이다. 블록은 이름을 밝히지 않는 편이 더 나으며, "신비감이 풀리면" 실망스러우리라 말했었다. 물론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밝히는 편이 더 나았다) 5월달, 아이폰과 레퍼드의 연기설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블록이 내는 바람에, 40억 달러 어치의 애플 주식 시가가 날라가 버렸기 때문이다. 블록은 애플이나 다른 기업에 대한 "비밀 중의 비밀"의 힌트를 자기가 내보냈다고 자랑스러워한다. 그런 그가, 다른 이의 비밀이 드러났다 하여 슬퍼하는 광경은 좀 의아스럽다. 그가 비밀로 지키기로 한 사실이라서 그러할까? 어느 비밀은 드러내고, 어느 비밀은 감추는지 누가 결정내리는가? [ More on Scott Moritz and Jim Cramer Street Misinformation Engine]Don't Want To Know? We Don't Want To Tell You! 가짜 스티브 잡스가 누구인가에 대해 쓴 블로그가 또 있다. U.A.의 마이크 슈람(Mike Schramm)이다. 그런데 거기서도 가짜 잡스가 누구인지 알고싶지 않다는 독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남들도 모르기를 바랬다. 슈람의 말이다. "마음을 바꿨습니다. 가짜 잡스가 가짜 잡스로 남기를 바라는 분들을 따르기로요. 독자분들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스탭들과 얘기를 나누고, 가짜 잡스는 가짜 잡스로 남아 있는 편이 더 재밌다고 결론내렸죠. 잡스인양 글을 쓰는 한 필자로서보다는 그 편이 재밌습니다. 그래서 바라건데, 여러분들도 추측들 하시지 말기 바랍니다. 당신들이 옳아요. 익명으로 남겨두는 편이, 그에게나, 저희로서나 더 재밌습니다." 루머 사이트들도 같은 의견이었다. 가짜 잡스의 비밀을,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빌리지"에 나오는 "감히 입에 올릴 수 없는 괴물(Fake Creatures of Which We Do Not Speak)"로 놓아둔 것이다. 비밀 엄수 조항이 있는 것마저 거리낌 없이 밝히는 사이트들이다. 그들이 흘리는 악어의 눈물은 분명 물보다 더 두터웠다. The Decency of Civilized Humans. 실체가 드러나기 전, 가짜 잡스는 자기가 실제로 누군지 알아내려는 시도에 대해, 사생활 침해라며 불평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성숙한 문명인으로서 적절한 행동의 범위를 분명 벗어나는 행위이다." "내가 누군지 알아내려는 시도로 무슨 짓을 저지르건, 난 이렇게 말하겠다. 어느 정도까지는 재밌지만, 그 선을 벗어나면 멈추시라." 가짜 잡스가 누군지 밝혀내는 기사는 특종감이다. Valleyweg의 닉 덴튼(Nick Denton)도 갑자기 그만 둔 특종감을, 결국 뉴욕타임스의 성숙한 문명인이 밝혀냈다. 그 와중에도 덴튼이 여전히 자기를 찾는다던 가짜 잡스였다. 발견됐음을 통탄해하던 것과는 다르게, 가짜 잡스는 독자들이 계속 글을 즐기도록 하였다. 그리 재밌지도 않은 글을 그렇게 하기란 참 어렵다. 그래서인지 라이언즈는 애완견에게나 쓰는 이름을 갖고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가령 리눅스 사용자들을 공짜돌이(freetards)라 부른다든지, 구글 CEO, 에릭 슈미트를 다람쥐소년(Squirrel Boy)라 부르는 식이었다. [The Secret Diary of Steve Jobs] A Truth and a Fiction, Each Stranger than Each Other. 가짜 잡스는 본지의 기사도 몇 편인가 인용하였다. 최근 포스팅에서, "Roughly Drafted가 애플에 대한 우익 음모론을 설명하였다." 이 포스팅은 “Troy Wolverton, Neil Cavuto, and Apple Stock Scandal”에 링크되어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아직은 숨겨져 있던 가짜 잡스는 필자 기사를 우회적으로 참고삼았다. 그가 한 말이다. "정말 최고다. 우리가 이 필자에게 돈을 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공정한 Daniel Eran Dilger, 당신의 천재성에 탄복한다." 감동먹었다. 가짜 잡스여. 거의 모든 캐리커쳐가 그러하듯, 가짜 잡스는 실제 스티브 잡스의 정확한 복제라기보다는, 창작 캐릭터에 가깝다. 불행히도 진짜 잡스는 필자 글에 관심이 없긴 하지만 말이다. 사실 이제까지 남아있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라이언즈는 분명 업적을 거두었다. [Fake Steve Jobs lashes out against 'invasions of privacy' - CNET] [Troy Wolverton, Neil Cavuto, and the Apple Stock Scandal] The Dark Side of Daniel Lyons. 가짜 잡스가 포브스 지의 한 편집자라는 사실을 드러내면서, 스톤은 라이언즈가 "신랄한 글들을 올렸다" 평하였다. 하지만 최고의 채식주의자 CEO인양 행세하기에 앞서서, 라이언즈의 이력을 보자. 대단히 경솔한 그가 나온다. 라이언즈는 해명을 해야 한다. 그는 수 년동안 리눅스를 비난하고, 오랜동안 잊혀져 있었던 SCO 그룹의 달 맥브라이드(Darl McBride)를 지원하기에 바빴다. SCO는 예전에 유닉스를 팔았다가, 이제는 법정 소송만으로 돈을 벌려는 회사가 되었다. 그것도 공포와 불확실성, 의심을 흩뿌리면서 정말 뻔뻔하게 돈을 긁어 모았다. 2003년 중순, SCO 그룹은 IBM에게 10억 달러 어치의 소송을 건다. 그러면서 리눅스를 사용하다가는 법적인 문제에 휘말리리라고 큰 기업들에게 1500여 통의 편지를 전달하였다. 당시 포브스의 라이언즈는 SCO가 재판에서 승소할 것이며, 리눅스 사용자들은 모두 현혹되어 있으며, 무지하기도 하다는 글을 썼었다. 그의 글이다. "종교적 광신론자들이 으레 그러하듯, 오픈소스 운동에 참여하는 리눅스 광팬들은 1) 자신들의 올바름을 확신하고 있으며, 2) 전세계, 그리고 판사들도 자신들에게 동의하리라 단정짓는다." [What SCO Wants, SCO Gets - Forbes.com]The Anti-Blog Blogger. 라이언즈는 로브 엔더를(Rob Enderle)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친-SCO 기조를 유지하였을뿐만 아니라, Groklaw의 영웅, 파멜라 존스(Pamela Jones)와 SCO 대 그녀의 싸움을 가차없이 공격하기도 하였다. 라이언즈의 친-SCO 블로그는 드디어 SCO 대 IBM 재판에서 SCO의 증거자료에까지 올라서게 된다. 더 심각한 일도 있다. 라이언즈는 파멜라 존스의 주소와 개인정보를 누출시킨 Mauren O'Gara를 옹호하기도 하였다. 존스는 SCO의 사기꾼들로부터 살해 위협까지 받아서 몸을 숨기기도 하였다. 라이언즈는 또한... 일반적인 블로그에 대항하는 블로그를 뿌렸다. 특히 그는 익명의 필자들을 욕하였다. 스스로는 가짜 잡스 행세를 하면서 말이다. 2005년 11월 14일, 포브스지에 오른 그의 기사, "Attack of the Blogs"를 보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블로거들은 브랜드와 생명을 파괴시킨다. 이들과 싸울 방법은 과연 있을까?" 그 주제는 나중에 더 자세히 다루겠다. 다만 그 날카로운 라이언즈는 어째서 SCO의 편에 서서 리눅스에 대해 가차 없는 공격을 펼쳤을까? [Forbes' Attack on the Blogs - Strategic Public Relations] Past Performance Not a Guarantee of Future Results. 라이언즈 자신이 SCO에 운을 건 이유가 있다. 일찌기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돈을 빼내려 애쓰던 회사가 곧 SCO의 전신, 칼데라(Caldera)였다. What SCO Wants라는 기사에서 라이언즈가 쓴 글이다. "1996년, SCO의 전신인 칼데라는 오래된 DOS 권리를 사들여서, 이것을 빌미삼아 마이크로소프트를 고소하여, 결국 마이크로소프트와 합의를 이끌어낸다." 칼데라가 SCO로 변모한 이후, 라이언즈는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리라 생각하였다. 다만 이번의 패자는 리눅스였다. 2002년 당시로 보면 정말 그럴듯 해 보였다. 당시 SCO는 맥브라이드라는 새 CEO 밑에서 재판을 걸기 시작하였다. 맥브라이드는 우선, 수 천만 달러를 벌기 위해, 전 고용주들을 법적으로 공격하였다. 라이언즈 생각은 이랬을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도 거액을 챙겼으니, 완벽한 사기꾼 변호사 CEO가 이끄는 SCO라면, 리눅스를 지원하는 현금 두둑한 회사들로부터 당연히 한 몫 챙길 수 있을 것이다. 그 시작이 IBM이었다. 그러나 라이언즈는 틀렸다. 그는 심지어 컴퓨터의 역사에도 무지하였고, 그가 안다고 생각했던 사실은 현실을 크게 단순화시킨 것이었을 뿐이다. 그러한 실수덕분에 SCO는 수 년동안 떠오르는 스타로서 그의 블로그에 올라섰고, 리눅스는 광신도 취급을 받게 되었다. 다시 말해, 그는 틀렸다. 그의 집요한 오픈소스 공격은 다 기록에 남아 있다. 재치있는 블로그라는 명성도 그 기록때문에 빛이 바래질 것이다. Like reading RoughlyDrafted? Share articles with your friends, link from your blog, and subscribe to my podcast! Submit to Reddit or Slashdot, or consider making a small donation supporting this site. Thanks! Did I miss any details? Thanks to reader Bruce Hoult for the link. Daniel Lyons: Fake Steve Jobs and the SCO Shill Who Hated Linux
__________________
FAQ casaubon 님께서 2007-08-09 11:18 PM 에 수정하셨습니다.. |
|
| 2007-08-20, 05:51 AM | #2 |
|
Moderator
![]() ![]() ![]() ![]() Registered: Sep 2001
My Mac: MacBook Air
Posts: 2,140
오프라인
|
OS 역사 속에서 SCO와 리눅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
![]() SCO, Linux, and Microsoft in the History of OS: 1970sMonday, August 13, 2007최근 SCO와 유닉스, 리눅스의 저작권 문제를 둘러싼 소식을 보면, 역사적인 맥락 없이, 흩어져 있는 사실들을 한데 모으기 어렵다. 윈도와 리눅스, 맥의 오늘날 시장 상황을 이해하려면, 예전의 시장 상황이 어땠는지도 되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미래가 어떨지 윤곽을 잡을 수도 있다.기술 산업 분석가들의 과거 발언을 보아도, 왜 이들이 이렇게 혼란스러워 하는지, 업계 참여자들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왜이리 흩뿌리는지에 대한 설명도 가능하다. 벌 돈이 많아서이다. The Odd Couple of SCO. Forbes의 다니엘 라이언즈(Daniel Lyons)는 로브 엔더를(Rob Enderle)과 함께, 오랜 동안 SCO Group을 지지해왔다. 이들은 리눅스 자체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썼을뿐만 아니라, 리눅스 지지자들이 얼마나 환상을 품고있는지도 써왔다. 리눅스에 대한 이들의 십자군 전쟁은 서로 간의 주장 인용에까지 이르렀다. 포브스 기사 중, "Revenge of Nerds"가 있다. 라이언즈는 이 기사에서 리눅스 지지자들이 인터넷 게시판을 어지럽힌다며, 리눅스에 관심이 있다면, 그자는 곧 정상이 아니라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인용을 하였다. "SCO의 주장이 합법적이라 주장하는 분석가인 로브 엔더를은 위협까지 받았다고 말한다. '기술-미치광이'들이 테러를 일으키고있다는 말이다." 얼마 안있어, 엔더를도 화답하였다. 언제나처럼 리눅스를 비난하는 글 속에서 그는 라이언즈의 기사를 인용한다. "그는 리눅스 지지자들 중 많은 수가 실제로 리눅스 사용자도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사실 라이언즈는 기사에서 그런 내용을 쓴 적이 없었다. 엔더를과 라이언즈는 리눅스와 SCO에 있어서 서로 간의 기사를 서로 인용하였다. 엔더를은 반-리눅스, 친-윈도 기사에 특화시켰고, 라이언즈는 리눅스 사용자들이 독립적인 미치광이들이라 명찰을 붙였다. 반-SCO 선전은 아무래도, IBM이 비밀리에 조직적으로 지원하지 않겠느냐는 주장과 함께 말이다. [Revenge Of The Nerds - Forbes.com] Attacking and Marginalizing Dissenting Opinion. 리눅스 커뮤니티에 대한 라이언즈의 냉소적인 관점은 포브스에 나온 기사로 증명이 된다. 심지어 스티브 잡스를 행세한 자신의 블로그에도 나와 있다. 어째서 리눅스 때리기가 그토록 중요할까? 리눅스 사용자들은 맥 사용자들처럼 자신의 플랫폼을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룩한 독점적인 지위에 대항하는 플랫폼으로 인식한다. 잘못된 사실이나 정보가 상당히 부정적인 투로 다루어지면, 열정적으로 사실을 옹호하게 된다. 라이언즈나 엔더를 류의 필자들은 이러한 방어적인 행동을, 신실함을 무시하는 광적인 행동으로 파악한다. 자기 스스로 만들어낸 이야기로부터 질무을 이끄는 데에 라이언즈는 탁월하다. 블로거들을 "거짓말이나 일삼고 비난과 독설로 자유를 남용하는 온라인 무리들"이라 매도하면서, 자기의 포브스 칼럼 역시 동일한 내용을 반복한다. 물론 간단하게 그 수위를 약화시켰다. [Attack of the Blogs - Forbes.com] I’m a Lover Not a Hater. 라이언즈는 자신이 "리눅스 증오자"라고 들었다면서, 그런 주장이 불공정하다고 말한다. 자신은 수 년동안 리눅스를 써 왔으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면 리눅스를 칭송하는 기사를 썼다고 한다. 그는 또한 SCO가 재판에 승리하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다고 말하였다. 오히려 리눅스 업체들이 SCO 재판에 대해 별다른 우려를 하지 않는 현상에 더 놀랍다고 밝혔다. "필자는 리눅스 벤더들이 SCO에 별다른 우려를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 때(지금도 마찬가지다) SCO 주장이 근거가 없다고 결론내렸더라도, FUD는 여전히 피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케팅으로 뭔가 반응을 해 줘야 했다." 그러나 라이언즈의 리눅스와 오픈소스 기사는 일반적으로 복잡한 주제를 일반화시키는 기자들의 관점을 반영한다. 분명히 리눅스와 오픈소스에 부정적인 엔더를 같은 전문가들의 말들을 인용하면서, 인용글로 기사를 채우는 것이다. Why Support SCO? 라이언즈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것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가 왜 틀렸는지를 알아보는 편이 더 중요하고 흥미롭다. 데스크톱 운영체제의 역사에서 배울 알찬 교훈이 있기 때문이다. 라이언즈는 SCO를 포함하여, 운영체제의 역사를 이렇게 평하였다. "1996년, SCO의 전신(全身)인 Caldera는 DOS 운영체제의 옛 버전 권리를 사들였고, 이를 사용하여 마이크로소프트를 고소하였다. 결국 양사는 합의를 이룬다." 칼데라가 나중에 입수가 되어 SCO가 된 이후로, 라이언즈는 똑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리라 결정내렸다. 다만 이번의 패자는 리눅스였다. 2002년, SCO가 새 CEO로서 법률 전문가, 달 맥브라이드(Darl McBride)를 모셔온 이후 더 분명해졌다. ![]() 라이언즈는 칼데라가 이미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커다란 돈을 얻어냈으니, 전문 법률꾼을 모셔온 SCO 역시 리눅스를 지원하는 회사들로부터 돈을 끌어모으기에 전혀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하였다. IBM이 그 시작이었다. [가짜 잡스와 SCO, 그리고 리눅스] Why Lyons Was Wrong: the Origins of Microsoft. 문제는 라이언이 알고 있는 역사가 너무나 과다하게 단순화된 역사였다는 점이다. 칼데라는 단순히 DOS의 옛 버전을 사들여서 이를 마이크로소프트 고소에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DOS의 옛 버전"이라 불린 존재는 Digital Research가 개발한 DR-DOS였다. 이는 마이크로컴퓨터 운영체제의 70년대 이야기인 CP/M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시장은 매우 소규모였고, CP/M을 라이센스한 가장 큰 회사는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이라는 두 명의 소년이 운영하는 회사, Trarf-0-Data였다. 개인용 컴퓨터의 개념이 떠오르자, 게이츠와 알렌은 BASIC 언어 소프트웨어 주문을 받는다. 아타리와 애플 II를 포함하는 새로운 하드웨어 상에서 돌릴 언어였다. 그리고 그제서야 새로운 이름, 마이크로소프트가 등장한다. Hardware vs Software: 1976 - 1981. 기업용 컴퓨터에서 소프트웨어는 컴퓨터 시스템에서 거대한 가치를 차지한다. 고유한 시스템이랄 수 있는 IBM과 AT&T의 유닉스, DEC의 VAX 시스템과 VMS이 그러하다. 이와 동시에 어디에서건 돌아가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려는 노력도 시도가 이루어진다. UC 버클리의 프로젝트였던 BSD는 AT&T 유닉스를 개선하는 프로젝트였다. BSD는 70년대 후반에 개발이 이뤄져 여러 가지 하드웨어를 지원하게 되었다. 80년대 초, 리차드 스톨만(Richard Stallman)은 누구나 기여를 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 도서관 책처럼, 자유 소프트웨어의 비전을 정의내리게 된다. ![]() 그러나 개인용 컴퓨터에서의 가치는 하드웨어에 있었다. 70년대 등장했던 컴퓨터들은 다음과 같다.
이들 회사는 제각각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작성하였다. 80년대 초, 개인용 컴퓨터 사업이 대확장을 하게 되자, CP/M 라이센스 업체가 늘기 시작한다. 그러면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따로 작성하지 않아도 되고, WordStar처럼 이미 유명한 CP/M 프로그램을 돌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이었다. ![]() 애플도 심지어 애플 II 시스템에서 쓸 수 있는 Z80 프로세서 카드를 판매할 때가 있었다. Z80 기반의 TRS-80용으로 나오는 CP/M 소프트웨어를 돌리기 위해서였다. [1980-1985: 8-비트 플랫폼의 시대] IBM Fights the Future: 1981. IBM의 주요 사업은 원래 메인프레임과 미니컴퓨터였다. 1981년, PC 사업에 진입할 때, IBM은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관계를 맺어서 재빠르게 로우엔드 시스템을 제공하려 하였다. PC로의 진출이 그 만큼 절실했다. IBM은 기업용 컴퓨터에서 거의 독점에 가까운 지위였으며, 데스크톱 컴퓨터 업계에서 새로 떠오르는 신생 업체들과 경쟁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IBM PC는 애플을 포함하여, 사무용 시장에 진입하려는 모든 경쟁사들을 무찌르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IBM은 기존 CP/M 시스템과 호환성을 유지시킬 필요가 없었다. 기존 기업 시장에서의 독점력으로 PC를 판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PC를 최대한 저렴하게 공급하기 위해, IBM은 기존 기술을 재사용하게 된다. 그래서 재판매용으로 CP/M을 라이센스한다. ![]() [Donkey Folklore.org] Microsoft Copies CP/M: 1981.마이크로소프트의 첫 번째 재판매용 소프트웨어 라이센스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였다. 1979년, 마이크로소프트는 AT&T의 V7 유닉스를 라이센스하였고, 여기에 BSD 코드를 입힌 다음 Xenix라는 이름으로 팔았다. 이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후, 게이츠와 알렌은 Digital Research로부터 CP/M을 라이센스하는 대신, 그대로 CP/M을 복제해서 팔기로 결정내린다. 1981년, 마이크로소프트는 QDOS의 권리를 사들인다. QDOS는 Seattle Software Works가 CP/M을 불법적으로 복제한 OS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권리를 IBM에게 다시 판매하였다. 그래서 PC-DOS가 IBM PC용 OS로 등장한다. 한편 마이크로소프트는 라이센스 권리를 유지하였고, 다른 하드웨어 업체들에게 MS-DOS라는 이름으로 라이센스를 내린다. 마이크로소프트의 DOS는 분명 CP/M에서 수많은 부분을 그대로 옮겨왔다. 하지만 당시 소프트웨어 특허에 대한 인식도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소프트웨어 저작권이라는 아이디어의 정의조차 상당히 느슨했다. 기업과는 달리, 데스크톱 사용자들은 소프트웨어에 별다른 가치를 주지 않았으며, 복제에도 벼ㅕㄹ다른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이츠는 그러한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 그 자신이 판매하고 있던 DOS 소프트웨어가 불법 복제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료 소프트웨어 아이디어에 대항하였다. IBM PC로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하자, 마이크로소프트는 CP/M을 만든 Digital Research가 문을 닫게 만드는 데에 주력하였다. Digital Research는 IBM PC용 CP/M-86을 팔아보려 노력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DOS를 대폭 할인하여 Digital Research를 무찌른다. 복제할 때부터 거의 비용을 들이지 않았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What do you think? I really like to hear from readers. Comment in the Forum or email me with your ideas. Like reading RoughlyDrafted? Share articles with your friends, link from your blog, and subscribe to my podcast! Submit to Reddit or Slashdot, or consider making a small donation supporting this site. Thanks! SCO, Linux, and Microsoft in the History of OS: 1970s
__________________
FAQ |
|
| 2007-08-20, 07:41 AM | #3 |
|
Moderator
![]() ![]() ![]() ![]() Registered: Sep 2001
My Mac: MacBook Air
Posts: 2,140
오프라인
|
80년대 OS의 역사
![]() SCO, Linux, and Microsoft in the History of OS: 1980sTuesday, August 14, 2007Xerox PARC and Apple New Macintosh: 1980 - 1984.Digital Research CP/M이라는 70년대 기술을 80년대에 MS-DOS로 베껴낸 마이크로소프트와는 달리, 애플은 70년대에 하드웨어로 거둔 이윤을 가지고, 80년대에서도 새 하드웨어를 판매하기 위해 훨씬 더 강력한 소프트웨어 개발비에 투입한다. 원래는 제록스 PARC에서 만들어진 아이디어인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기반으로 애플이 만든 새로운 세대의 컴퓨터로서 리사와 매킨토시가 있다. 애플은 주식 계약을 통해, 기술값을 제록스에게 지불하였지만, 애플 제품이 제록스 코드에 기반하지는 않았으며, 애플 자신이 제록스 코드에 접근할 권리도 없었다. 애플이 디자인한 소프트웨어는 제록스 연구자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진전되어 있었다. 가령, 제록스는 마우스와 비트-맵 디스플레이, 윈도 영역에 대한 아이디어를 처음 제시하였지만, 애플은 독자적으로 이 아이디어를 움직일 수 있는 윈도, 겹칠 수 있는 윈도로 만들어냈다. 그러면서 배경을 자동적으로 다시 그려냈다. 윈도가 창에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애플은 또한 완전히 다른 시스템 아키텍쳐를 개발해냈다. 당시 제록스가 제시한 엔트리 패키지는 10만 달러였고, 파일과 프린트 서버가 있는 경우 16만 달러였다. 그러나 애플이 만들어낸 맥 시스템은 2500달러에 불과했다. ![]() [On Xerox, Apple and Progress - Folklore.org] Microsoft Copies Apple's Mac: 1982 - 1987. 애플 매킨토시가 첫 선을 보이기 이전부터, 마이크로소프트는 매킨토시용 첫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참여했었다. 즉, 맥 그래픽 시스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프로토타입 때부터 마이크로소프트는 내부 접근이 가능했다. 실제로 돈을 벌리는 곳이 소프트웨어이지 컴퓨터 판매가 아니었던 마이크로소프트는 맥의 그래픽 운영체제가 다른 하드웨어에서도 돌아가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애플은 자사 시스템을 다른 회사 시스템에 라이센스할 계획이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MS-DOS와 CP/M 간의 경쟁을 끝내버릴 최고의 방법은 애플 맥처럼 돌아가는 그래픽 프론트엔드이리라 결정내린다. 하지만 그것은 보통의 PC에서도 돌아가야 했으며, MS-DOS도 돌아가야 했다. 그래야 DOS 시장이 고착화되고, 경쟁사가 넘어들어오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즉, PC 시장의 독점을 지속화시킬 수 있었다.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와 툴박스의 내부적인 지식을 습득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를 제공하기 시작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맥 애플리케이션을 포팅한 프로그램을 PC 사용자들이 돌릴 수 있도록 해 놓은 모방용 환경이었다. 그러나 80년대 PC 사용자들은 윈도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1990년, 윈도 3.0이 나올 때까지 컴퓨터에 미리 윈도를 설치한 PC 업체도 없었다. ![]() [A Rich Neighbor Named Xerox - Folklore.org] Graphical Desktops From Commodore and Atari: 1985 - 1990. 하지만 미래의 운을, 제록스가 개척하고 애플이 주류로 가져다온 그래픽 운영체제에 건 회사가 마이크로소프트만도 아니었다. 제이 마이너(Jay Miner)가 이끄는 16비트 비디오 게임 시스템 개발부가 아타리에 있었다. 마이너는 아타리를 나와 80년대 초, 아미가를 창립한다. 원래는 아타리와 계약을 맺어서 특화된 비디오 게임용 칩셋을 판매하기로 되어 있었던 아미가를 인수한 곳은 Commodore였다. 코모도어는 아미가 기술을 이용하여 진보적인 오디오, 비디오 기능을 갖춘 새 데스크톱 컴퓨터를 개발한다. 코모도어는 C-64로 8-비트 계의 강자였으나 점차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으며, 아미가 덕분에 코모도어는 애플 매킨토시와 같은 저가격 그래픽 운영체제 시장에 뛰어들게 된다. 아미가를 인수하기 전에 코모도어 사장이었던 잭 트라밀(Jack Tramiel)은 애플 맥이 8-비트 시장을 부숴버리리라 우려하며 코모도어를 떠났었다. 그가 생각한 16-비트 그래픽 시스템은 아타리 인수와 관련하여 갈등을 빚었다. 그는 8-비트 시장을 완전히 떠나서, 강력하고 새로운 그래픽 데스크톱 시장의 저가 주도자가 되기를 원했었다. 트라밀은 1984년부터 1987년까지 아미가 기술을 갖고 코모도어와 아미가 간에 법정 소송을 걸었다. 두 회사 모두 법정 소송에 지쳐버릴 지경이었다. 그 동안 아타리는 Atari ST라는 고유 시스템ㅁ을 개발한다. 부분적으로는 Digital Research의 그래픽 운영체제인 GEM과 함께 CP/M 코드 일부를 사용하고, 기본적으로는 제록스 PARC의 리 제이 로렌즌(Lee Jay Lorenzen)의 작업에 기반을 두었다. 코모도어와 아미가가 저가공세를 펼치자, 애플은 16-비트 애플 IIGS를 1986년에 내놓는다. 맥 소프트웨어 기술을 애플 IIe와 호환시켜서 내놓은 소비자용 기기였다. 애플 IIGS덕분에 애플은 교육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맥 라인을 계속 프리미엄 가격으로 유지시킬 수 있었다. 맥 라인은 애플에게 거대한 이윤 마진을 안겨다 주었다. ![]() [1985-1990: 16-비트 그래픽 컴퓨터의 시대] Steve Jobs’ NeXT Computer: 1986 - 1990. 맥의 고마진 덕택에 애플은 차세대 소프트웨어 개발에 돈을 투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애플 창립자 스티브 잡스는 존 스컬리가 맥의 다음에 대해서 잘못된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생각하고, 애플을 1986년 떠난다. 잡스는 넥스트를 창립한다. 다른 업체의 하드웨어에서도 돌아갈 진보적인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개발이 원래 목적이었다. 하지만 넥스트 기술을 떠받쳐줄 하드웨어가 없음이 드러나자, 넥스트는 스스로 하드웨어 플랫폼 제작에 나선다. 새로운 넥스트 컴퓨터는 애플 맥 II 라인과 수많은 유사성을 지니지만, 특수한 DSP 칩을 내장하고, 실험적인 광자기 디스크 기술로 플로피를 대체하는 등, 여러 면에서 기존 컴퓨터와 달랐다. 또한 진보적인 운영체제인 넥스트스텝은 최고의 운영체제기술과 애플리케이션 개발기술을 조합시킨 시스템이었다. ![]() [1990-1995: NeXT와 Be, 그리고 Mac PC] Windows In Search of an Operating System: 1987 - 1990. 애플과 아타리, 코모도어, 넥스트가 진보적인 그래픽 시스템을 쏟아내자, 마이크로소프트는 CP/M을 베낀 DOS만으로는 가망이 없음을 깨닫는다. 이와 동시에 Digital Research 자신을 포함하여, 대안형 DOS 어버체들로부터의 경쟁도 있었다. 기존 PC 시장에 있어서 CP/M-86은 직접적인 경쟁상대였으며, GEM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계획과 대치하고 있었다. 따라서 마이크로소프트는 DOS 시장을 완전히 떠나버리기로 계획한다. 이에, 마이크로소프트는 1987년, IBM과 협정을 맺어서 대체할 운영체제, OS/2 개발 작업에 착수한다. DOS 경쟁을 없애버림으로써, 마이크로소프트는 MS-DOS 사용자들을 IBM의 OS/2로 이주시킬 요량이었다. 또한 맥 오피스 애플리케이션을 OS/2 최상단의 그래픽 셸(윈도)용으로 포팅시키는 작업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전까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운영체제 개발 경험은 없었다. 따라서 OS/2로써 IBM을 끌어들인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있어서 참 행운이었다. 유닉스 재판매에 대한 흥미를 잃은 마이크로소프트는 제닉스를 1987년, Santa Cruz Operation에 인수시킨다. ![]() IBM's Personal System/2: 1987 - 1990 IBM은 OS/2 상단에서 돌아가는 맥 애플리케이션 환경 제작을 마이크로소프트가 도와주기 희망하였다. 애플처럼 IBM도 하드웨어를 판매하는 회사였다. PC-DOS를 내장시키기로 마이크로소프트와 협정을 맺었기 때문에 IBM은 PC 시장의 통제력을 상실해버렸다. 여러 업체들이 IBM PC 디자인을 베꼈기 때문이다. IBM은 OS/2로 PS/2라 불리우는 새로운 컴퓨터가 시장을 통제하기 원하였다. 그리고 이 하드웨어 디자인을 다른 업체들에게 라이센스하여 이윤을 받기 바랬다. 하지만 IBM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PC 업체들은 단순히 더 저렴한 PC 클론 디자인을 개발해서 기존 MS-DOS 라이센스만 계속하였다. IBM PS/2 하드웨어와 OS/2 소프트웨어의 몰락은 마이크로소프트에게도 좋지만은 않았다. 이미 MS-DOS 4.0이 DOS의 마지막이며, 앞으로는 OS/2가 공식적인 후계자이노라 발표해 놓았기 때문이다. [ 1990-1995: 새 플랫폼을 향한 질주] Microsoft Scrambles Back to DOS: 1990. DOS를 떠나려하지 않는 상황이, Digital Research에게는 좋았다. 당장 CP/M을 업그레이드하여 DR-DOS를 1988년에 만들고 계속 업그레이드를 시킨다. 새로이 1990년 5.0으로 나온 DR-DOS는 MS-DOS의 최종버전을 상당히 앞서나갔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새로이 MS-DOS 5.0을 선보일 것이며, InfoWorld아 PC Week 등 여러 잡지에 직접 발표를 하였다. 그러면서 MS-DOS 5.0이 이미 존재하는 양, 신기능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였다. 실제 제품은 1년 뒤에나 나왔으나, 이러한 선제 발표는 DR-DOS를 죽여버리는 결과를 빚어낸다. 이 전략이 워낙 잘 통했기에, 마이크로소프트는 다시금 1991년, 아직 나오지도 않은 MS-DOS 6.0을 갖고 DR-DOS 6을 물리칠 수 있었다. Microsoft Leverages its Monopoly and Benefits from Litigation: 1985 - 1990. 마이크로소프트는 맥과 아미가, ST와 Digital Research의 GEM 환경으로 대표되는 그래픽 컴퓨터에 5년 뒤쳐져 있었다. 80년대 내내,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제품은 하나의 농담거리였으며, IBM과 OS/2를 통해 DOS를 보다 개선시키겠다는 계획도 실패하고만다. 마이크로소프트로서는 계속 허풍만 떨 수 밖에 없었다. 부분적으로는 허풍성 소프트웨어를 언론에 퍼뜨리자는 목적도 있었지만, 소송을 통해 경쟁을 없애려는 의도도 있었다.
[특허와 애플]GEM을 둘러싼 애플과의 소송으로 이미 타격을 입은 Digital Research는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와 MS-DOS 간의 인위적인 결합에 결정타를 맞는다. 윈도 95는 그 경향을 더욱 거대하게 만들어버렸다. 윈도와 DOS는 단일 제품화 된 것이다. 그 동안 마이크로소프트의 PC 업체들 간의 라이센스 협정도 DR-DOS와 IBM의 OS/2를 몰아내는 내용을 갖고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피스 애플리케이션을 갖고 윈도와 PC를 맥의 대안으로 내세웠다. 맥용 오피스 출시를 늦추면서 말이다. 원래 이크로소프트를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시장에 소개시켜준 플랫폼은 맥이었다. Microsoft Bluffs a Losing Hand: 1990. 온갖 기술 기업들이 싸워대는 통에, 신기술을 내세울 역량을 전혀 증명하지 못한, 경쟁력 부족한 DOS 기업만이 자신의 마케팅 기술을 갖고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1990년, 윈도 3.0을 선보이자, 마이크로소프트는 DOS PC 업체들에게 윈도 레이어 라이센스를 통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면 IBM과의 관계도 끊어버릴 수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또한 윈도를 DR-DOS와 그 외 DOS 경쟁자를 부수는 무기로서도 활용하였다. DR-DOS와 완전히 호환 가능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 3.1에서 사용자에게 경고를 내렸다. MS-DOS를 사용하지 않으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문이었다. ![]() 마이크로소프트 DOS는 IBM의 OS/2에도 기술적으로 못미쳤다. 애플이 매킨토시로 이룩한 그래픽 시스템 시장과 대부분의 웍스테이션이 채택한 상용 유닉스 시장, Digital Research의 DOS 시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넥스트보다는 거의 10년은 뒤떨어진 마이크로소프트였다. 그러한 기술적인 격차를, 훌륭한 마케팅으로 극복해낸 곳이 또한 마이크로소프트였다. [1990-1995: 떠오르는 태양, 윈도우즈] Microsoft’s Cairo Vaporware: 1991. 관심을 돌리기 위해, 1991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카이로" 계획을 발표한다. 놀라운 신기술에 매혹당한 언론은 카이로를 칭송하였고, 이미 존재하는 제품들에게는 의혹 섞인 불확신감을 표출하였다.
[1990-1995, 카이로로 가는 머나먼 길]카이로 운영체제를 발표한 후, 마이크로소프트는 DOS PC 시장을 독점하기 위한 일환으로서, 기존 윈도를 계속 유지시킨다. 그동안 애플과 IBM, 리눅스, 그리고 노벨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적인 지위와 경쟁하기 위해 새로운 노력을 시작하고 있었다. What do you think? I really like to hear from readers. Comment in the Forum or email me with your ideas. Like reading RoughlyDrafted? Share articles with your friends, link from your blog, and subscribe to my podcast! Submit to Reddit or Slashdot, or consider making a small donation supporting this site. Thanks! SCO, Linux, and Microsoft in the History of OS: 1980s
__________________
FAQ |
|
| 2007-08-21, 05:09 AM | #4 |
|
Moderator
![]() ![]() ![]() ![]() Registered: Sep 2001
My Mac: MacBook Air
Posts: 2,140
오프라인
|
90년대 OS의 역사
![]() SCO, Linux, and Microsoft in the History of OS: 1990sSaturday, August 18, 2007Intel 80x86 vs Motorola 68000.80년대는 애플과 아타리, 코모도어, 넥스트에서 나오는 그래픽 컴퓨터가 나온 시대였다. 그리고 이 모두가 모토로라 68000 시리즈 프로세서를 채용하였다. 이 새로운 하드웨어는 보다 강력한 소프트웨어를 가능하게 해 주었고, 그에 따라 완전한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도 쓸 수 있게 되었다. IBM의 1981년, 8-bit PC는 원래 인텔의 저가형 8088을 사용했었다. 80년대 중반 PC는 16비트 80286 프로세서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 이후로도 인텔의 x86 라인 프로세서는 모토로라 68000 아키텍쳐에 비해 퍼포먼스나 세련도, 디자인 면에 있어서 열세를 면치 못하였다. 초기 PC는 맥과 아미가, ST, 넥스트의 소프트웨어에 미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규모의 경제성때문에 인텔은 결국 모토로라를 따라잡게 된다. 심지어 모토로라 680x0 패밀리의 퍼포먼스와 경쟁을 벌이기에 이르른다. 인텔 PC의 잠식은 아타리와 코모도어, 넥스트 하드웨어 사업에게 있어서 재앙이었다. 1993년 아타리는 아예 컴퓨터 사업을 접고, 다시 비디오 게임 사업으로 돌아선다. 넥스트 또한 1993년에 하드웨어 사업을 포기하였고, 코모도어는 1994년 도산하였다. 이 때문에 영국 Acorn을 제외하면, 이제 대안형 컴퓨터 플랫폼으로는 애플만이 남게 되었다. Acorn에 대해서는 기사, "iPhone은 어째서 Symbian을 선택하지 않았을까"에서 설명한 바 있다. ![]() [1985-1990: 16-비트 그래픽 컴퓨터의 시대] [1990-1995: 새 플랫폼을 향한 질주] [왜 애플은 이제서야 인텔을 사용하게 되었나] RISC: 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ing. 인텔의 486은 90년대 초, 모토로라 68040에 대해 강력한 경쟁을 시작하였다. 애플은 차후 시스템용으로 새로운 프로세서를 찾기 시작하였고, 내부적으로 프로세서를 따로 만들기도 하면서, 모토로라와 협력하여 88000 RISC 프로세서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새 하드웨어는 더 크고 빠른 컴퓨터와 관련있을뿐만이 아니었다. 애플은 Acorn과 함께, 휴대기기용으로 새로운 RISC 프로세서 아키텍쳐를 개발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탄생한 프로세서가 ARM 아키텍쳐이며, 이 칩은 뉴튼에 들어갔고, 오늘날에는 아이포드와 아이폰, 그 외 유사 기기 대다수에 들어가게 되었다. ARM은 강력하고 효율적인 하드웨어 사용을 위해 보다 세련된 코드 컴파일러를 사용하는, 단순화된 하드웨어 디자인이었다. 이러한 RISC 프로세서로는 이미 웍스테이션에서 쓰이는 DEC의 Alpha와 SGI의 MIPS, HP의 PA-RISC, Sun의 SPARC이 있었다. ![]() The AIM Alliance: 1991 - 1996. 그동안 IBM은 자신이 1981년 만들어낸 인텔-기반의 데스크톱 컴퓨터 시장 통제력을 상실하였고, 1987년 PS/2 컴퓨터로의 재기도 실패하였다. 클론 업체들 때문에 밀려는 IBM은 OS/2 개발에 있어서도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배신당한다. IBM의 오리지날 1981년 PC 디자인은 원래 IBM 자체 801 프로세서를 사용하기로 되어 있었다. 801 프로세서는 훨씬 강력한 RISC 디자인이었다. 이 801칩이 80년대를 거쳐, 1990년 POWER 아키텍쳐로 태어난다. POWER에 기반하는 새로운 데스크톱 프로세서 아키텍쳐를 개발하기 위해, IBM은 애플과 모토로라와 함께 1991년, 연합을 결성한다. 이 AIM 연합은 애플과 모토로라가 기존에 이루어놓은 성과를 덧붙여서 PowerPC를 조달하게 된다. 이들은 당시 기세가 다해가고 있던 인텔의 x86 PC 플랫폼을 완전히 대체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운영체제도 진보적인 새로운 OS를 갖다 놓을 계획이었다. [옛 기술 지원의 함정] The Next Generation of Software: 1990 - 1995.IBM은 OS/2나 AIX용으로서 깔끔하고 강력한 데스크톱과 웍스테이션에 PowerPC를 채택할 예정이었다. 애플과 넥스트도 68x00 하드웨어에서 PowerPC로의 이주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였고, 모토로라는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NT를 PowerPC용으로 포팅하였다. 넥스트는 1988년에 초기 베타로 시작된, 이미 진보적인 운영체제를 갖고 있었다. 1992년, 넥스트는 세 번째 버전의 베타를 선보였고, 이를 완전히 성숙된 운영체제로 간주하였다. 애플처럼, 넥스트로서도 더 새롭고 강력한 하드웨어로의 이주가 필요했으며, PowerPC는 분명한 해결책처럼 보였다. 하지만 애플로서는 하드웨어에 덧붙여서, 나이 들어가는 맥 시스템 7을 대체할 새 OS도 필요로 하였다. Pink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애플의 새 OS는 IBM이 가세하여 탈리전트(Taligent)로 선회하였다. 탈리전트는 빠른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위한 객체 지향 프레임웍을 제공하기 위해, 넥스트가 이미 이루어 놓은 작업을 되풀이하도록 되어 있었다. [Canon to buy NeXT factory, design center - NeXTWorld] [Hardware was great while it lasted - NeXTWorld] [1990-1995, 핑크와 탈리전트, 코플랜드의 비밀 ] The Age of Microkernels: 1990 - 1995. IBM이 자사의 여러 가지 하드웨어 플랫폼을 PowerPC로 이주하려 계획하면서, IBM은 Workplace OS라 불리우는 운영체제 커널과 코어 플랫폼 계획을 세운다. 이 OS는 PowerPC 하드웨어에서 기존 소프트웨어 포팅을 쉽게 하기 위해 각 제품라인에서 재사용이 가능했다. Workplace OS는 Mach 3.0 마이크로커널상에서 만들어져 있었다. 원래는 AIX와 OS/2, 그리고 궁극적으로 탈리전트를 돌리는 PowerPC용 OS가 될 터였다. 애플 자신도 탈리전트용 커널을 마흐 3.0 마이크로커널 디자인상에서 개발하였고, 코플랜드 OS용 커널로는 NuKernel을 계속 사용하였다. 코플랜드는 맥 시스템 7을 대체할 내부 독립 프로젝트였다. 카네기멜론 대학의 마흐 프로젝트에서 출발한 마이크로커널 상에 여러 가지 시스템을 올리려는 경향이 갑자기 일어났다. 초기 버전의 마흐 마이크로커널의 아이디어는 BSD 유닉스 커널 안에 들어가 있었다. 넥스트스텝 코어 OS로서 넥스트가 접근한 방식이었다. 마흐 3.0은 상단에서 돌아가는 "OS personality"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마이크로커널을 시도하였다. IBM의 Workplace OS는 DOS와 OS/2, 유닉스, OS/400을 돌릴 계획이었으며, 마흐 3.0 상의 모든 환경을 잠재적으로 돌릴 셈이었다. 마흐 3.0으로 유사한 작업을 하는 곳은 또 있었다. GNU의 Hurd와 OSF 버전의 유닉스도 그러했다. 마이크로소프트 또한 초기에는 DOS를 마이크로커널 디자인의 NT로 교체하려 했었다. [Mac OS X 마이크로커널의 미신을 벗긴다 1] [GNU와 리눅스, 그리고 아이폰] ![]() Microsoft Promises to Catch Up: 1990 - 1995. 1991년 마이크로소프트는 IBM과의 "OS/2 NT"를 단일 윈도 NT 프로젝트로 전환한다. NT는 유닉스 POSIX와 IBM OS/2는 물론, 32비트 윈도 API와의 소프트웨어 API 호환성을 약속하였다. NT는 또한 여러 가지 하드웨어 아키텍쳐 상에서 돌아갈 예정이었다. x86 PC는 물론 PowerPC, 그 외에 MIPS와 Alpha를 포함하는 기존 웍스테이션 하드웨어에서도 목표로 삼았다. 마이크로소프트가 1991년에 약속한 바는 또 있었다. 카이로라 불리우는 객체 지향 개발 프레임웍이었다. 이는 넥스트와 탈리전트를 노리고 한 발표였으며, NT 첫 버전이 나온 후에 바로 나오리라 말했었다. [1990-1995, 카이로로 가는 머나먼 길] Wrong on All Counts. PC 잡지들은 한 번도 스스로 운영체제를 개발해 본 적이 없고, 신뢰성 있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한 적도 없으며, 아무 것이라도 제 때에 출시한 적이 없는 회사인 마이크로소프트가 갑자기 성숙한 OS를, 그것도 몇 달 안에 고품질의 개발 프레임웍을 내놓으리라 확신했었다. 조금이라도 더 아는 이들은 소수였다. 이들은 애플과 IBM의 탈리전트가 조금만 있으면 넥스트가 제공한 소프트웨어에 필적하리라 예상하였다. 초기에는 넥스트를 지원하던 HP도 탈리전트 프로젝트에 합류하던 때였다. 그런데 모두가 틀렸다. IBM과 애플이 완벽한 하드웨어 상에 완벽한 커널, 그리고 완벽한 OS를 개발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1990-1995: 떠오르는 태양, 윈도우즈] ![]() The Resurrection of the PC: 1990 - 1995. OS/2와 탈리전트, PowerPC의 이상적인 디자인은 업계 전반의 호감을 샀었다. 확실히 인텔 기반의 DOS PC는 교체가 필요한 시기였다. 그러나 기존 PC가 갖는 규모의 경제성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은 경쟁 기술을 제공하겠다는 말만으로도 성공적으로 경쟁자들을 막을 수 있었다. 인텔은 막대한 투자를 들여서 x86 아키텍쳐에 기능을 덧붙이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보통은 RISC 아키텍쳐용 기술이었다. 이 엄청난 투자 끝에 PC는 적어도 90년대 초반까지 그럭저럭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대신 그 디자인은 급속도로 비효율화 되어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DEC로부터 운영체제 하나를 사들여서 OS/2에서 손을 떼었다. 데이비드 커틀러(David Cutler)가 이끄는 마이크로소프트 팀은 결국 DEC의 VMS에 상당히 가까운 디자인의 OS를 낳았다. 이 OS는 IBM Workplace OS의 마이크로커널 디자인 원칙 경향도 반영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1993년의 윈도 NT 3.1이었다. 윈도 NT는 윈도 3.0의 MS-DOS 기반을 새 운영체제 디자인으로 교체하려 했었다. 하지만 WorkplaceOS처럼 NT는 퍼포먼스가 매우 안 좋았다. 윈도 NT는 그 후에도 여러 해동안 소비자용으로 준비가 안 되었다. 하지만 NT의 등장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신의 시장력으로 기술적으로 우월한 소프트웨어 채택을 막을 수 있다는 현실을 드러내 보여 주었다. 만든다는 발표만 해 주면 그만이었다. 이 NT의 다음 버전이 카이로로 불리어졌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은 거의 모든 바를 약속하였다. 이 때문에 업계 전반에 걸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은 무적의 환상을 심어 주었다. 물론 나중에는 대실패로 끝나게 될 터이지만, PC 플랫폼은 이제 "윈텔"로 불리우게 되었다. 윈텔이라는 이름을 두 회사 모두 싫어하지 않았다. 코모도어에서 아타리까지, 경쟁사들을 도태시키면서 윈텔 PC가 시장을 단일화하자, 애플 맥만이 그나마 살아 있는 플랫폼으로 남게 된다. 이것도 애플 맥이 가진 교육시장과 크리에이티브 시장 덕택이었다. 그러나 점차 개선을 더해가는 PC는 교육시장과 크리에이티브 시장까지 침투하기에 이르렀다. 애플의 미래는 암울하게만 비쳐졌다. [1990-1995: 세상은 왜 윈도우즈 판이 되었는가] ![]() Competing with NeXT to Nothing: 1990 - 1995. 그동안 실제로 차세대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실제로 잘 돌아가는 운영체제에 객체지향 개발툴을 선보인 곳인 넥스트가 유일했다. 넥스트는 애플과 IBM의 탈리전트, 마이크로소프트의 카이로가 약속한 기술 마케팅과 싸워야 했다. 탈리전트와 카이로라는 두 허풍은 결코 나오지 않았다. 1993년, 넥스트는 새로운 PowerPC 개발을 갑자기 멈추고, 하드웨어 사업을 완전히 멈춘 다음, 소프트웨어 판매에 주력하기로 방침을 바꾼다. 넥스트는 NeXTSTEP을 표준 인텔 PC용으로 포팅시키고, 썬이나 HP의 고급 웍스테이션 하드웨어용으로도 포팅을 한다. 넥스트의 개척적인 기술을 업계는 칭송하였다. 하지만 한 때 넥스트 아니면 안된다던 협력사들은 계속 넥스트를 배신하였다.
![]() [IBM, Data General turn to NeXT] [iPhone용 OS X과 WinCE, Palm, Symbian, 리눅스] Unix Wars: 1988 - 1995. 저가형 PC 시장 바깥의 컴퓨터 세상은 유닉스세상이었다. 세계 대부분의 웍스테이션 업체는 HP의 HP-UX와 IBM의 AIX, SGI의 IRIX, SCO Unix for the PC, 애플의 맥용 A/UX를 라이센스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닉스의 두 번째 가지가 있었다. 70년대 후반 UC Berkeley에서 탄생한 이 유닉스는 BSD, 즉 Berkeley Standard Distribution으로서, 원래는 상용 유닉스 코드에서 나온 일부를 AT&T에서 라이센스 해야 했다. 그러나 BSD는 스스로 개선을 하였다. 그 중 제일 중요한 부분은 네트워킹 코드였다. 이러한 비-AT&T 코드는 "BSD 라이센스"라는 이름으로 자유로이 배포가 되었다. 80년대 중반, X/Open은 유닉스 표준화 작업을 시작하였다. BSD의 주도적인 배포자인 썬과 AT&T가 협력하여, 유닉스 SVR4라 불리우는 버전을 만들어낸다. 썬이 이를 채택하여 SunOS 5에 집어 넣었다. SunOS 5는 BSD의 한 종류에서 유닉스 SVR4가 되었고, 후에는 솔라리스 2.0으로 바뀐다. 웍스테이션 라이벌 그룹은 썬을 경쟁자로 보았다. DEC와 HP, IBM은 따로 그룹을 결성하여 1988년, Open Software Foundation을 설립한다. 이 OSF가 스스로의 통합 유닉스 버전을 1992년 만드니, 그 이름은 OSF/1이다. 상용 유닉스 벤더들 간의 싸움때문에, 유닉스 웍스테이션은 평범한(혹은 매우 열등한) 윈도 플랫폼 PC로 교체될 길을 트고 말았다. 서로간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훨씬 더 거대한 위협임을 깨닫자, OSF는 X/Open과 합병하여 The Open Group을 만들었고, 이 그룹에서 현재 유닉스 트레이드마크와 POSIX 호환사양을 인증하고 있다. ![]() The Unix/BSD Lawsuit and Linux: 1991 - 1995. 자유로이 배포되는 유닉스-류의 운영체제도 유닉스를 쪼개는 데에 일조하였다. 1991년, AT&T 고유 코드의 남은 부분이 BSD에서 제거되었다. BSD가 자유로이 배포되는 유닉스가 되어서이다. AT&T의 Unix System Labs는 1992년 BSD를 상대로 재판을 걸었고, 그 결과 배포를 멈출 수 있었다. 이렇게 거의 2년간 멈춰진 가운데에, 이 재판은 합의로 끝을 맺었고, 약간의 변화가 이루어진다. 1994년, 합법적인 4.4 BSD Lite 버전이 나오게 된다. 이 기간동안 BSD를 둘러싼 합법성 여부때문에, 새로이 리눅스 커널과 Free Software Foundation의 GNU 소프트웨어 추진이 이루어진다. 둘 모두 AT&T 유닉스의 자유로운 두 번째 대안으로 작용하였다. [GNU와 리눅스, 그리고 아이폰] ![]() Apple’s History with Unix: 1988 - 1998. IBM과 OSF와의 관계때문에 애플은 680x0-전용이었던 A/UX 대신 파워맥용으로 OSF/1을 포팅한다. A/UX는 1988년 클래식 맥에서부터 나왔었다. 1996년, 애플은 애플 웍그룹서버에 IBM AIX를 채용하였다. 1994년, 애플은 AIX와 PowerPC 상에서 파워맥용 애플리케이션을 호스팅하기 위해, MAS(Macintosh Application Services)라 불리는 미들웨어 소프트웨어를 발표한다. 비-PowerPC, 즉, HP나 썬 Sparc 웍스테이션 상에서 네이티브 맥 애플리케이션을 호스팅하는 MAE(Macintosh Application Environment)가 있었기 때문에 상황은 혼란스러워진다. 맥 소프트웨어 환경을 타 플랫폼으로 라이센스하기를 거부한 이후, 애플은 1998년, 실험용으로 MkLinux를 선보인다. OSF Mach 3.0 마이크로커널상단에 리눅스 커널을 돌리는 아이디어였다. 이 아이디어는 리눅스에 관심 있는 사용자들에게 맥 하드웨어를 판매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애플 서버 20년사] [1990-1995: 벽에 부딪힌 맥] ![]() Novell Buys Up A Defense Against Microsoft: 1991 - 1996. 윈도가 1991년, 세력을 확장시켜나가자, 노벨(Novell)은 Digital Research를 인수하고, DR-DOS를 Novell DOS로 판매하기 시작한다. 덕분에 노벨의 넷웨어(NetWare) 소비자들은 마이크로소프트 MS-DOS를 라이센스하지 않아도 되었다. 윈도와 오피스 애플리케이션에서 지닌 독점력이 자사의 네트워킹 사업을 위협하리라 우려한 노벨은 여러 인수를 통해 자기 자리를 다지기 시작한다. 당시 노벨 CEO는 레이 누어다(Ray Noorda)였다. IBM OS/2, 마이크로소프트의 NT/Cairo 약속과 경쟁하기 위해, 노벨은 1993년, AT&T로부터 Unix System Labs를 인수한다. 노벨은 AT&T의 UnixWare에 자사의 NetWare 사업을 통합시켜서, 서버로서의 윈도와 경쟁하려 하였다. AT&T가 BSD와 벌였던 재판을 끝낸 이도 누어다였다. 유닉스를 인수한 이후, 그는 빠르게 분쟁을 합의로 끝내고, 사업으로 되돌아섰다. 노벨은 당시 워드퍼펙트와 볼랜드의 쿼트로 프로(Quattro Pro) 스프레드쉬트를 인수하여,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와 대적하려 했다. 리눅스를 미래로 본 누어다는 노벨 내부에서 프로젝트를 하나 시작한다. 공개 소프트웨어를 사용한 마이크로소프트와의 경쟁이었다. 그러나 70세가 된 누어다는 1994년, CEO에서 물러났고, 그 직후, 노벨은 누어다가 인수한 사업부들을 즉각 매각하기 시작했다.
![]() Caldera Sues Microsoft: 1996 - 2000. 칼데라는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의 사랑하지 않는 리눅스 배포자였다. 거의 가치가 없는 DR-DOS를 인수한 칼데라는 1981년부터 1996년에 이르는 15년 간의 불법 간섭, 독점 계약, 불법 묶어두기, 시장 독점을 두고 싸우던 노벨과 마이크로소프트의 갈등마저 인수하였다. 그동안 마이크로소프트는 몸소 베꼈던 Digital Research가 자기 시장에서 쫓겨나게 만들었었다. Digital Research와 노벨이 조합한 증거가 쌓이자, 칼데라는 DR-DOS 재판으로 마이크로소프트와 담판을 지으려 하였다. 새로이 경쟁자가 될 리눅스 개발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5년간, 칼데라는 마이크로소프트에게 계속 싸움을 걸었고, 결국 2000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칼데라에게 합의금으로 2억 7500만 달러를 준다. 단, 재판에서 나온 모든 증거를 파기한다는 조건이었다. 이는 90년대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일으킨 행위에 대해 후속 유사 재판을 막기 위해서였다. [1996년의 협정, 그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 ] Apple Leaves AIM, Shops for a New OS: 1996. IBM과 애플 간의 협력관계는 1995년 크게 공개된다. IBM이 인수한 탈리전트와 PowerPC 파트너는 인텔-기반 컴퓨터와 경쟁할 범용 플랫폼 선정에 실패하였다. 결국 데스크톱 컴퓨터 중 PowerPC를 채택한 주요 회사로는 애플만 남게 되었다. 나머지 업계는 대부분 x86 PC에 섰고, 인텔은 32비트를 넘어선 아이태니엄 IA-64를 약속하였다. 그러나 아이태니엄은 MIPS와 PA-RISC, Alpha를 파괴시키면서, 거대한 재앙으로 끝난다. PowerPC의 빠르고 깔끔한 디자인덕분에 애플은 맥오에스의 경쟁력을 유지시키면서 새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낼 시간을 벌충하게 된다. 탈리전트를 떠나면서 애플은 코플랜드 프로젝트도 포기한다. 애플로서는 PowerPC 맥의 잠재성을 이끌어 낼 OS 기술이 절실했다. 1996년,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 NT를 고려했다가 포기하고, 스티브 잡스가 떠난 뒤 80년대 후반 맥 개발을 진두지휘했던 쟝-루이 가세의 프로젝트, Be도 고려했었다. 가세의 BeBox는 훌륭한 멀티미디어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1996년 당시 BeOS는 초기 개발자 단계였으며, 다중사용자 파일 퍼미션이나 보안, 심지어 출력 기능도 없는 상태였다. BeOS는 1998년까지도 "프리뷰" 상태로 남아 있었다. [BIOS PC를 뛰어넘은 애플 펌웨어] [1990-1995: NeXT와 Be, 그리고 Mac PC] ![]() NeXT Reinvents Apple: 1997 - 2000 잡스는 애플을 설득해서 넥스트를 인수시킨다. 소비자용 맥에 넥스트스텝이라는 현대적인 기술을 주입시키는 동시에, 넥스트가 지닌 대기업 사업도 애플에게 인수시킬 수 있다면서 말이다. 이 판매를 통해 넥스트 소프트웨어로의 이주가 이루어지지만, 생각보다는 훨씬 더 어려운 작업이었다. 추가적으로, 넥스트의 기업 고객들은 애플과의 협력을 반기지 않았다. 이들은 인텔 쪽으로 돌아서버린다. 넥스트 경영진들은 애플을 탈바꿈시킨다. 잔여 사업을 정리하고, 교육과 소비자 시장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잡스 치하의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소송도 종료시킨다. 10년이 넘는 소송이었다. 이로써 애플은 자신의 장점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된다. 2000년, 애플은 맥오에스텐 계획을 발표한다. 맥 플랫폼을 넥스트가 10년 전 보여 주었던 소프트웨어로 이주시키는 하나의 다리였다. 단, 이 기술은 소비자 시장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애플 소생시키기] [애플은 어째서 되살아났을까] Doomed to Repeat it: the 2000s. 마이크로소프트는 즉각적으로 애플 기술을 따라잡겠다는 발표를 한다. 물론 사용자 대다수는 여전히 DOS 상에서 윈도를 돌리고 있었다. 1991년, 넥스트스텝을 따라잡으려고 발표만 해 두었던 카이로는 이제 2001년, 롱혼에 대한 약속으로 바뀐다. 바로 수 년 전 맥오에스텐에 나온 기능을 롱혼에서 구현시키겠다는 약속이었다. [1995년은 2007년에 되풀이될 수 없다] What do you think? I really like to hear from readers. Comment in the Forum or email me with your ideas. Like reading RoughlyDrafted? Share articles with your friends, link from your blog, and subscribe to my podcast! Submit to Reddit or Slashdot, or consider making a small donation supporting this site. Thanks! SCO, Linux, and Microsoft in the History of OS: 1990s
__________________
FAQ |
|
| 2007-08-24, 01:55 AM | #5 |
|
Moderator
![]() ![]() ![]() ![]() Registered: Sep 2001
My Mac: MacBook Air
Posts: 2,140
오프라인
|
2000년대의 운영체제, 그리고 SCO와 리눅스
![]() SCO, Linux, and Microsoft in the History of OS: 2000sTuesday, August 21, 2007Apple’s Reversal of Fortune, Outlook: 1990 vs 2000.1990년대 초 언론은 애플의 전망이 밝다 평가해 주었지만, 실상 애플 경영진은 애플의 전망을 암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애플에게 있어서 "빛나는 시대"라는 평도 있는 90년대 초이지만, 실제의 90년대 초는 종말의 시작이었다. 맥 하드웨어 아키텍쳐와 운영체제 소프트웨어는 모두 나이먹어가고 있었으며, 교체가 필요했다. 높은 가격대의 컴퓨터라는 인식을 쌓은 마케팅도 손님을 PC로 돌리고 있었다.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를 클라리스로 분사시킨 탓에, 이제는 써드파티 개발자들의 지원이 더욱 더 절실해진 마당에, 개발자들은 애플을 지원해야 할 이유를 못찾던 상황이다. 10년 후인 2000년, 언론은 애플이 포위되어 있으며, 결국 사라지리라 평가해 주었지만, 실제로는 넥스트에서 나온 새로운 경영진과 기술을 투입받은 애플은 실질적으로 전망이 밝았다. 언론은 그러한 상황을 지금까지도 발견하지 않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