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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6, 08:59 PM   #1
casau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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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의 역사와 iPhone

How AT&T Picked Up the iPhone: A Brief History of Mobiles

Wednesday, July 4, 2007

어떻게 해서 아이폰의 독점 공급자로 AT&T가 선택됐을까? 본 글은 AT&T가 선보인 최초의 휴대폰에서부터, 통신 독점으로 인한 그룹 해체와 재결성, 최근 아이폰에 이르기까지 보인 미국 통신 산업의 역사를 추적해본다.

Separated at Birth.
기술 루머사이트, Gizmodo는 최근, 아이폰이 AT&T와 협력한다면서 아이폰을 보이코트해야한다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공포감을 퍼뜨리기 전에, 숙제 정도는 해 놓아야 하잖았을까. 오늘날의 AT&T는 지난날의 AT&T와 유사하지 않다. 오히려 Verizon Wireless가 지난날의 AT&T와 더 비슷하다. 물론 Verizon 또한 그 뿌리는 AT&T이다.

AT&T 통신 회선이 별로 안 좋다는 말도 많다. 하지만 그런 불만이 없는 휴대폰 통신사는 없어 보인다. 앞으로의 기사는 아이폰과 AT&T 서비스 사용의 대안과 함께 관련된 기술 문제를 다룬다.

A Brief History of Mobile Networks.
전세계 휴대폰 통신망은 주요 시장 세 군데로 나뉜다. 미국과 유럽, 일본인데, 이 세 시장은 모두 대단히 다르게 돌아간다. 미국의 경우, 원래 모든 휴대폰 서비스는 AT&T의 자회사인 Advanced Mobile Phone Service가 다루었었다. 즉, 이 회사가 미국 전체 휴대폰 서비스를 독점했었다.

1G 모바일 네트워크: AT&T의 벨 연구소는 80년대 초, AMPS라 불린 아날로그 프로토콜로 휴대폰 1세대를 선보였었다. 표준형 아날로그 휴대폰을 한 번이라도 소유한 적 있다면, 그 휴대폰은 바로 AMPS를 사용한 휴대폰이었다. AMPS 이전에는 라디오폰과 워키토키, 삐삐만이 있었다.

AT&T는 1983년, 일곱 군데의 베이지 벨로 나뉜다. 연방통신위원회(FCC)는 AT&T 그룹을 해체하여 미국 전역에 걸쳐서 주파수 두 영역을 라이센스하여 휴대폰 시장에 경쟁을 일으키려 하였다. 즉, 한 영역은 원래의 AT&T가 해체된 지역 내 벨 회사, 다른 영역은 다른 독립 회사에게 나눠준 것이다. 이용자들은 이 두 회사 간 이동이 자유로웠다. 심지어 다른 통신망으로 넘나들 때에는 다른 기업이 제공하는 로밍도 사용 가능했다.

그런데 AMPS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 보안이 전혀 없었다는 문제다. 누구라도 라디오 스캐너가 있다면 감청이 가능했다. 게다가 다른 가입자의 전화기를 가로채는 것도 꽤 쉬웠다. 즉, 휴대폰을 복제하여, 희생자의 요금에 자기 통신 요금 부과가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2G 모바일 네트워크: AMPS의 디지탈 버전은 통신음질을 개선시키고, 서비스 용량을 확대시켰다. 라디오 스펙트럼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한 덕분이다. D-AMPS 시스템은 미국 디지탈 휴대폰의 2세대를 장식하였으며, 보통은 라디오 모듈기술인 TDMA로 불린다. 부가적으로 보안을 선보인 기술도 이 기술이다.

AMPS의 초기 아날로그 버전은 FDMA 라디오 기술을 사용하였다. 새로 나온 디지탈 휴대폰은 디지탈 통신 영역이 아닌 경우, 자동적으로 아날로그 AMPS를 사용할 수 있었다. 베이비 벨은 모두 AMPS 서비스를 판매하였고, 이는 90년대 초까지 미국에서 제일 널리 퍼진 휴대폰 서비스였다.

필자의 첫 번째 휴대폰은 모토로라의 "디지탈 퍼스널 커뮤니케이터"였는데, 1994년 CellularOne에서 나온 제품이었다. 수퍼 슬림 배터리와 같이 나왔다고 하는데, 도대체 이보다 슬림한 휴대폰이 어떻게 나왔는지 상상이 안간다.


휴대폰이 대중성을 확보해 나아가자, FCC는 새로운 라디오밴드를 개방하기 시작한다. 당시 이용자들은 통신사가 사용하는 밴드를 휴대폰이 지원하는지 일일이 알아봐야 했다. 사업자 간의 경쟁도 AMPS 에, 새로운 통신망을 발족시켰다.

  • 모토로라iDEN이라 불리우는 고유의 TDMA 모바일 시스템을 선보인다. iDEN은 넥스텔(Nextel)의 push-to-talk 폰에서 사용한 기술이었다. 똑같은 TDMA 라디오 기술이기는 하지만, 이 시스템은 AMPS와 호환성이 없었으며, iDEN 내에서만 호환이 가능하였다. 워키토키 기능면에 있어서 iDEN은 틈새시장을 확보하는 정도였다.
  • 퀄컴은 AMPS의 라이벌인 2G, CDMA 라디오 기술을 선보인다. 현재는 cdmaOne이라 불리우며, 스프린트는 이 기술을 Digital PCS라 부른다. 보통은 D-AMPS와 iDEN을 지원하는 휴대폰 네트워크의 TDMA와 구별하기 위해 CDMA라고도 불린다.

필자의 2000 모토로라 스타택은 Verizon Wireless용의 듀얼-밴드 서비스가 되고,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처럼 보이는 휴대폰이었다. 물론 이 휴대폰이 사용한다는 인터넷은 실제 정보를 주기보다는 실제 요금을 부과하는 데에 더 적합하였다. Palm Pilot과 함께, 스타택은 IntelliSync와 시리얼 케이블틍 통해 PC와 데이터를 싱크시켰는데, 이런 유선 유틸리티가 상당히 문제 있었다.

2004년, 필자는 스프린트에서 Palm Treo 650를 구입하였다. Palm의 CDMA 폰이었다. Palm은 더 나은 USB를 사용한다 약속하였지만 HotSync 소프트웨어는 상당히 허술했다. 자주 내보내는 대화상자를 하나 보여주겠다.


90년대 후반, 미국의 휴대폰 통신망은 서로 호환성이 없는 TDMA와 iDEN, CDMA 통신망이 모두 혼재(混在)하였다.

유럽 공동체는 이러한 비호환 휴대폰 기술의 범람을 막고, 나라들 간의 차이가 생기는 현상도 막기 위해, 고유의 TDMA 시스템을 들여와 GSM이라 이름붙인다. 비슷한 기술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미국 내 AMPS와는 호환성이 없었다.

GSM은 독립표준기구화 되어, 현재 GSMA라 불리우는 단체에서 총괄하고 있다. GSMA는 유럽의 표준이 되었으며, 나머지 세계의 표준도 되었다.

The GSM vs CDMA War.
노키아나 에릭슨 같은 유럽 휴대폰 대기업들도 GSM 표준을 지지하였는데, 퀄컴은 자사의 CDMA 기술을 미국과 아시아, 중남미에 퍼뜨렸다.

2003년, 캘리포니아 국회의원, Darrell Issa는 이라크가 CDMA를 사용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 시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퀄컴의 이해관계를 위해서였다. 중동 지역은 모두 GSM 영역이다. 이라크를 CDMA 섬으로 만들려 한 것이다.

Issa는 프리덤프라이 사태처럼, GSM을 프랑스와 연관지었다. 물론 금전적인 이해관계였다. 하지만 모토로라조차 이라크는 GSM을 유지하는 편이 최선이라 조언내릴 정도였다.

Issa는 법안 통과를 시키지 못 하였지만, 퀄컴 CDMA와 GSM 간의 경쟁은 전세계적이다.

2.5 & 3G 모바일 네트워크: 유럽이 대부분 GSM으로 통일한 90년대 들어, 미국 내 휴대폰 사업자들 중에서도 GSM을 채택한 곳이 생겨난다. 이들은 소수의 iDEN과 보다 유명한 cdmaOne과의 경쟁에 나선다.

  • 퀄컴은 cdmaOne을 업그레이드하여 CDMA2000이라 이름짓는다. 그 때 이후로 이 서비스는 3G EVDO 데이터서비스로 업그레이드되었다.
  • GSMA는 GPRS, 그리고 EDGE 데이터 서비스를 선보인다. W-CDMA 기술에 기반을 둔, 보다 빠른 3G UMTS 기술도 잇따른다. CDMA 라디오 기술을 공유하기는 하지만, W-CDMA는 퀄컴의 CDMA2000과 호환성을 갖는다거나 관련이 있지 않다. 2G TDMA 시스템과 별로 같은 점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One Parent, Seven Babies, Family Feud.
미국 휴대폰 통신사업자들은 AT&T가 분리된지 약 10년 후, 두 가지의 주요 통신 기술을 선택하기 시작한다. 1세대 휴대폰 시스템도 교체가 필요한 시기였다.

일곱 군데의 베이비 벨은 이제 다시금 인수 합병을 통해 오늘날 두 곳의 거대 통신사로 자라난다. Verizon과 "새로운" AT&T이다. Verizon은 퀄컴을, AT&T는 GSM을 선택하였다.


Sprint/Nextel과 T-Mobile은 3, 4위 업체이다. 하지만 이들도 모두 GSM과 퀄컴으로 나뉘어져 있다. 스프린트는 넥스텔을 인수한 뒤, iDEN 이용자들을 모두 이주시킬 계획을 발표하였다. 즉, 미국 내 비호환 시스템은 점차 줄어들게 된다는 의미다.

The Top Two US Qualcomm/CDMA aligned mobile providers:

  • Verizon Wireless (전에는 Bell Atlantic, NYNEX, GTE)
  • Sprint/Nextel

The Top Two US GSM aligned mobile providers:

  • AT&T Mobility (전에는 Pacific Bell, BellSouth, SBC, Cingular)
  • T-Mobile

AT&T and the iPhone.
아이폰을 선보이기 위해 애플이 AT&T Mobility(당시 이름은 싱귤라였다)와 독점 계약을 발표하였다. 당시 애플은 Verizon도 접촉했다고 알려졌으나, Verizon이 아이폰을 거절했다고 한다.

Verizon Wireless의 중역, 짐 저레이스(Jim Gerace)에 따르면, 애플은 Verizon의 월별 이용료를 아이폰이 팔릴 수 있는 가격대로 낮추고, 아이폰 이용자를 위한 소비자 서비스 통제권을 원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Verizon은 어째서 애플을 거부하고, Cingular는 어째서 허용하였을까?

미국 내 최대 GSM 제공업체로서 AT&T로서는 새로운 가입자를 끌어들일 예쁜 휴대폰이 필요했다. 2004년 싱귤라는 당시 3위인 AT&T Wireless를 인수하여, 미국 내 최대 규모의 GSM 통신사가 되었다.

AT&T의 무선사업을 얻기 위해, 싱귤라는 상당한 프리미엄을 주고 유럽의 GSM 통신사 보다폰에게 돈을 지불해야 했다. 당시 보다폰은 AT&T를 인수하여 미국 내 GSM 전진기지로 세울 참이었었다.

보다폰은 Verizon Wireless의 지분 거의 절반을 소유하고 있다. 원래 보다폰의 계획은 그 지분을 팔고, AT&T의 GSM 인프라스트럭쳐를 인수한다음 독자적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싱귤라가 모든 것을 인수해버리고만다. 미국 내 최대, 그리고 유일한 GSM 벤더가 된 것이다.

T-Mobile은 독일에서는 꽤 크지만, 미국에서는 싱귤라의 1/3 정도밖에 안 된다. 미국 내 GSM 휴대폰 시장을 갖고 보니, 싱귤라로서는 독특한 휴대폰으로 소비자들을 끌어야 했다.

Verizon과 스프린트는 인기 많은 휴대폰을 독점 판매한다. 스프린트는 첫 Treo 650을, Verizon은 LG 초콜렛폰을 제각기 독점판매하였다. 대부분의 GSM 휴대폰은 유럽 시장 대상이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잘 돌아가지 않거나, 아예 안 돌아간다. 이러니 AT&T로서는 독점 판매할 만한 휴대폰이 있어야 했다.

GSM SIMs, Activation, and Locking.
아이폰은 AT&T에 어떻게 연결되어있을까? 미래에 나올 아이폰은 다른 통신사나 국제적인 사용이 가능해질까? 통신 서비스가 아예 없는 곳에서는 어떻게 쓸 수 있을까? 다음 기사에서 다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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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AT&T Picked Up the iPhone: A Brief History of Mobi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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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6, 10:39 PM   #2
sj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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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소설의 중원의 역사를 보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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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7, 07:24 AM   #3
tel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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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의 역사는 대단히 흥미롭지요. Ma Bell 이라는 명성을 지금 완전히 회복했다고 보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새 CEO는 Ma Bell 을 어떻게 이끌어 갈지... 주간 동아에 나온 자료 올려 드립니다.

통신 공룡 AT&T 비참한 운명
자회사 격 SBC에 인수돼 ‘새끼에게 잡아먹힌 셈’ … CEO 전략 실패 500억 달러 손실이 ‘화근’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아들이 어머니를 삼키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10월31일 최종 승인한 미국 2위의 지역 통신업체 SBC 커뮤니케이션스의 AT&T 인수를 두고 하는 얘기다. SBC는 FCC의 승인에 따라 올해 말까지 인수 작업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SBC는 같은 날 MCI 합병 승인을 받은 버라이존 커뮤니케이션스와 함께 미국 통신 시장을 양분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SBC와 버라이존의 인수 비용은 각각 160억과 85억 달러였다.

SBC -AT&T는 총매출 710억 달러 규모로, 합병사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에드워드 휘태커 SBC 회장이, 사장은 데이비드 도먼 AT&T CEO가 맡을 예정이다. 올 1월 합병 발표 당시만 해도 휘태커 회장은 발표문에서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존경받는 AT&T 브랜드의 유구한 역사와 힘을 존중한다”고만 밝혀 합병 회사가 AT&T 이름을 계속 사용할 것인지 여부가 불투명했으나, 최근 합병 회사 이름을 AT&T로 하기로 확정했다.

‘AT & T’ 회사 이름을 계속 사용하기로

AT&T가 어떤 회사인가. 미국을 대표하는 통신사업자이고, 미국인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회사 가운데 하나였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통신산업의 역사 그 자체다. 1876년 전화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자신의 연구에 자금을 출자한 사람과 함께 이듬해 설립한 벨 전화회사가 AT&T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AT&T는 아직도 3000만명의 장거리 전화 가입자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 최대 장거리 전화회사다.

반면 SBC는 미 법무부의 결정에 따라 1984년 AT&T가 분할되면서 태어난 회사다. 법무부는 당시 AT&T의 독점 우려를 이유로 들어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기존 AT&T를 7개의 지역 전화회사와 장거리 전화회사인 AT&T로 분할하도록 제안했다. SBC는 AT&T가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7개의 지역 전화회사 가운데 하나로 태어났던 것.

이때부터 모기업 격인 AT&T는 ‘마 벨(Ma Bell)’, 떨어져나온 자회사들은 ‘베이비 벨(Baby Bell)’로 불렸다. SBC는 이후 다른 2개의 ‘베이비 벨’ 회사를 합병해 힘을 키워왔고, 마침내는 모회사 격인 AT&T까지 인수하게 된 것이다. SBC는 미국 중서부 및 남부 일원에 5000만명의 가입자를 갖고 있으며, 장거리 전화망에 정부 및 기업 고객을 다수 확보하고 있다.

AT&T로서 더 치욕스러운 대목은 SBC가 AT&T를 인수한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는 점. 일부 분석가들은 매출이 줄고 전망도 어두운 AT&T를 160억 달러나 주고 산 것은 너무 비싼 값을 치렀다고 지적한다.

2004년 4분기 현재 SBC의 지역 전화 시장 점유율은 버라이존(29%)에 이어 28%를 점하고 있다. 반면 장거리 전화 시장에서는 AT&T와 MCI가 각각 25%와 15%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SBC-AT&T와 버라이존-MCI 2강 체제로 재편된 미국 통신 시장에서는 다른 통신회사들의 살아남기 위한 인수 합병 작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AT&T가 인수 대상으로 전락한 이유를 언급할 때마다 등장하는 것은 바로 CEO의 역할이다. 97년 말 CEO로 취임한 암스트롱 회장의 전략적 실패가 오늘의 상황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96년 통신법 개정으로 미국과 유럽의 대형 통신업체 간 인수 합병이 이루어져 대형 경쟁사가 출현하자 AT&T는 그때까지 8년 동안 CEO를 역임했던 로버트 알렌 회장 후임으로 IBM 등의 가전 및 통신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경험했던 마이클 암스트롱 회장을 선택했다.

암스트롱 회장은 취임 이후 AT&T의 사업구조를 통신 서비스 시장에 집중시켰다. 통신 서비스 부문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업 부문을 매각하고 TCG, TCI, 미디어원 등 향후 통신 서비스 시장에서 AT&T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되는 통신방송 서비스 관련 업체들의 인수를 적극 추진한 것. 이를 위해 AT&T는 1100억 달러를 투입해 케이블TV 업체인 TCI와 미디어원 등을 인수, 미국 최대의 케이블사업자로 부상했다.

케이블 업체 인수했다 반값에 매각

암스트롱 회장의 이런 결단은 자사의 주력 분야였던 장거리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매출이 급감했기 때문이었다. 원래 84년 분리 이후 AT&T 자회사들은 지역 전화 시장을, 그리고 AT&T는 장거리 전화 시장을 사이좋게 나눠 가졌으나 96년 통신법 개정으로 AT&T와 베이비 벨이 교차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됐다.

물론 결과는 참담했다. 베이비 벨의 장거리 전화 시장 점유율이 급증한 반면, AT&T의 시장 점유율은 84년 68%에서 2004년 30%대로 하락했다. 이에 비해 AT&T의 지역 전화 시장 점유율은 전체 회선의 2% 수준으로 미미했다. AT&T 입장에서는 자사의 주력 시장인 장거리 전화 시장은 경쟁사에게 개방돼 점차 시장 지배력이 축소되고 있는 데 반해, 반대급부로 얻은 지역 전화 시장으로의 진입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 암스트롱 회장은 승부수를 던졌지만 그의 전략은 결국 참담한 실패로 결론났다. 1100억 달러를 들여 케이블 사업체를 인수했으나 실적 부진으로 재무구조가 악화돼 2002년 11월 컴캐스트에 587억 달러에 저가 매각, 50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기록했다.












이에 앞서 2000년 10월26일에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기업을 대상으로 네트워크 사업을 하는 AT&T 비즈니스(99년 당시 매출 250억 달러)를 비롯해 장거리 전화 사업의 AT&T 컨슈머(210억 달러), 이동통신 사업을 운영하는 AT&T 와이어리스(76억 달러), 케이블TV 및 고속 인터넷 서비스의 AT&T 브로드밴드(57억 달러) 등 4개 핵심 사업을 분할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AT&T는 이 가운데 AT&T 와이어리스와 AT&T 브로드밴드를 매각했다. AT&T로서는 결국 성장 동력을 잃은 셈이 됐고, 마침내 ‘베이비 벨’ SBC 품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런 결과에 대해 큰 책임이 있는 암스트롱 회장은 2002년 11월 데이비드 도먼 회장에게 AT&T 지휘권을 넘겨주고, AT&T브로드밴드를 흡수 합병한 컴캐스트 회장으로 밀려났다. 이후에도 AT&T의 어려움이 계속되자 암스트롱은 2004년 5월 이 자리에서도 퇴진할 수밖에 없었다.

“영원한 강자는 없다” 교훈 남겨

SBC의 AT&T 인수는 통신 시장에서 영원한 절대 강자가 있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준 사건이다. 국내 통신업체 관계자들도 이를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KT의 한 임원은 “약간 쇼킹한 뉴스이긴 하지만 시장에서는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SKT 관계자는 “미국 언론들도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보고 있는 탓인지 감상을 표현하지는 않고 있다”고 전했다.

KT, 변신을 꿈꾸는가
초고속 인터넷망 무기로 ‘인터넷 TV’에 힘 집중


‘통신 시장에 영원한 절대 강자가 없다’는 진리는 KT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KT 역시 AT&T 못지않은 ‘통신 공룡’이다. 지난해 매출은 11조8500억원, 영업이익 2조1200억원이었고, 임직원은 3만8000여명이다. 시장 점유율은 압도적이어서 시내전화 점유율은 93.4%나 되고, 시외전화는 84.3%, 국제전화는 64.4%, 초고속 인터넷은 50.3%나 된다. 매출 비중은 전화사업이 37.9%로 가장 높고, 초고속 인터넷 22.5%, 이동통신망 접속 15.9%, 데이터 수익 11.3%, PCS 재판매 9.5% 등이다.

KT의 고민은 주력인 전화사업이 한계에 부닥치면서 시작됐다. KT의 한 임원은 “전화사업의 비중이 최근 들어 계속 줄어들자 이를 초고속 인터넷 사업으로 메워왔지만 이마저도 ‘레드 오션’으로 변하면서 2000년대 들어 매출이 11조원대를 오락가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KT는 세계적으로 봐도 어느 회사보다 강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KT의 한 고위 임원은 “10년 전만 해도 KT 사장이 사전에 약속을 하고 현지를 방문해도 브리티시 텔레콤 회장을 만날 수 없었는데, 지금은 그들이 찾아올 정도가 된 것은 그만큼 KT의 위상이 달라진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KT가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은 세계 최고 수준인 초고속 인터넷망을 이용해 방송과 통신 융합시대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 KT가 최근 새로운 성장동력의 하나로 인터넷TV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바로 초고속 인터넷망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를 추진하는 데는 장애물도 만만찮다. 당장 케이블TV 업계의 반발을 무마해야 한다. KT의 한 임원은 “케이블TV 쪽에서는 케이블로 한 달에 1만2000원이라는 싼값에 초고속 인터넷을 연결시켜 주는 등 통신 쪽을 잠식하면서 정작 KT가 인터넷TV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는 극렬히 반대하고 있는 것은 불공정한 처사 아니냐”고 반문했다.

새로운 ‘블루 오션’을 개척해야 하는 민영 2기 사령탑 남중수 사장이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고 KT를 변신시킬지 주목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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