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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8, 08:06 PM   #1
casau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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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애플과 웹브라우저

Safari on Windows? Apple and the Origins of the Web

Thursday, June 14, 2007

이번 WWDC 기조연설에서 놀라웠던 점 중 하나는 맥오에스텐 타이거와 윈도 XP/비스타용 사파리 3.0 베타가 나온 소식이다. 새 버전의 사파리라 10월달에 나올 레퍼드에 포함된다는 점은 예전에도 알려져 있었지만, 타이거용으로도 베타가 나온다는 것도 알려져 있지 않았었다.

더군다나 윈도용 사파리라면 더욱 더 예상 밖이다. 그렇다면 애플은 어째서 이미 브라우저가 많은 플랫폼에 사파리를 포팅시켰을까?

  • 마이크로소프트가 견고하게 번들시켜둔 인터넷 익스플로러
  • 모질라의 파이어폭스
  • AOL이 제공했던 넷스케이프
  • Opera 등 여러가지 다른 대안

본 글은 웹브라우저 시장에 있어서의 애플 역사를 알아보고, 어째서 애플이 윈도용 무료 웹브라우저를 개발하기로 했는지에 대해 특히 초점을 맞춰본다.

Why Were Web Wars Waged?
관련은 있는데, 보통 묻지 않는 질문이 있다. 상당히 단순한 개념이랄 수 있는 웹브라우저 소프트웨어가 어째서 주요 기업들의 핵심에 서게 되었을까?

간단한 답변은 다음과 같다. 간단한 웹브라우저야말로 소비자와 기업 시장 모두에 있어서 인터넷 현상을 일으킨 중대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웹브라우저의 역사를 알아보면, 애플이 사파리를 어째서 윈도용으로 포팅시켰는지에 대한 윤곽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웹의 기원에 대한 소개를 먼저 하겠다.

Blazing The Hyperlinked Trail: 1987 - 1996.
사파리 브라우저가 나온 해는 2003년이었다. 당시까지 애플은 맥용 웹브라우저로 써드파티에 의존했었다. 그러나 사파리가 나오기 16년 전, 인터넷 서비스로서의 웹이 만들어지기 몇 년 전, 애플은 하이퍼링크 텍스트와 미디어를 사용한 첫 주류 애플리케이션을 선보였었다. 이름은 다음과 같다. 1987년에 나온 HyperCard for the Macintosh이다.

사파리처럼, 하이퍼카드는 무료였다. 애플의 빌 앳킨슨(Bill Atkinson)은 하이퍼카드 작업을 1985년부터 시작했었고, 모든 맥에 애플이 무료로 번들시킨다는 조건하에 하이퍼카드를 넘겼었다.

덕분에 하이퍼카드는 애플 중역진들보다 맥 사용자들에게 더 유명했다. 애플 중역들은 오히려 하이퍼카드의 지속적인 개발을 막아버리고, 하이퍼카드는 결국 잊혀져갔다.

하이퍼카드는 클라리스 소프트웨어 쪽으로 분리되어 나갔으며, 나중에는 퀵타임에 통합된다. 퀵타임 인터랙티브라 불리우는 인터랙티브 스크립트 레이어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나오지는 않았다.

하이퍼카드의 남은 부분도 결국은 중단된다. QTi(퀵타임 인터랙티브)와 함께 스티브 잡스는 1996년, 넥스트와 애플 합병 이후 정리작업을 거행하였다.

[Five Ways Apple Will Change TV: 네 번째, 인터랙티브 콘텐트]
[애플 소생시키기]
[애플은 어째서 되살아났을까]
[퀵타임을 죽여라]

Inspired by HyperCard.
그러나 하이퍼카드의 전통은 살아남았다. 애플은 HyperTalk 스크립팅 언어를 맥 시스템의 애플스크립트 아키텍쳐로 옮겨 놓았고, 최근에는 오토메이터로 완전한 웍플로우를 제작할 수 있게 하였으며, 맥오에스텐 엑스코드의 일부로서 애플스크립트 스튜디오로 완전한 애플리케이션도 만들 수 있도록 하였다.

하이퍼카드는 또한 시각형 애플리케이션 개발과 하이퍼링크 미디어, 스크립트 프리젠테이션 환경에 영향을 끼쳤다.

  • 1988년에 나온 넥스트의 인터페이스 빌더
  • 1991년에 나온 마이크로소프트의 비쥬얼베이직 개발 환경
  • 1995년에 나온 넷스케이프의 웹용 자바스크립트
  • 매크로미디어의 Director Lingo 스크립트와 Flash ActionScript.

하이퍼카드 자신은 웹 개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The Tangled Web We Wove: 1990 - 1992.
세계 최초의 웹브라우저는 1990년에 나온 WorldWideWeb이었다. HTTP(HyperText Transmission Protocol)로 규정된, 새로 나온 www 인터넷 서비스를 지원하는 클라이언트 소프트웨어였다. HTTP는 www 서버에서 브라우저로, URL 주소를 통해 하이퍼텍스트 문서를 링크, 전달시켰다.


웹 자체는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가 넥스트스텝과 개발툴, 프레임웍, 넥스트 컴퓨터를 갖고 개발하였다. 후에 넥스트스텝은 애플 맥오에스텐의 기반이 된다.

넥스트가 웹 개발에 중심이었던 이유는, 넥스트가 독자적으로 진보적인 빠른 개발툴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또한 넥스트가 고급교육기관을 점유했었고, 다른 소비자용 PC와는 달리 개방형 인터넷을 완전히 지원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개 표준을 적용하기 위한 진보적인 기술을 사용하자, 다른 개발자들도 웹 형성에 참여하게 되고, 결국 웹은 통일성과 세련성을 빠르게 갖춰가기 시작한다.

[애플, NeXT 서버로 무장하다]
[Yellow Box의 죽음, 그리고 Cocoa]
[NeXTSTEP Release 3 Demo - YouTube]

Add HyperCard and Voila: Viola.
팀 버너스-리와 같은 시기에, UC 버클리의 페이-유안 웨이(Pei-Yuan Wei)는 하이퍼카드 기능을 X 윈도를 사용해 유닉스 터미널로 옮기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다. 웨이는 나중에 이렇게 설명하였다. "하이퍼카드 매뉴얼을 보고는, 그 개념을 유닉스 엑스 윈도에서 실행시키려 하였을 뿐입니다."

웨이는 이 프로젝트, 바이올라(Viola)로 하이퍼미디어 문서로 이뤄진 인터넷을 사용하려 하였다. 하지만 넥스트의 버너스-리가 이미 만들어 놓은 뒤였다.

버너스-리의 HTTP 구조를 받아들인 웨이는 ViolaWWW 웹브라우저를 엑스윈도 시스템용으로 만든다. 그 때가 1992년이었다. 웹의 탄생이기도 하였다.

[Dr. Strangeweb]
[iPhone용 OS X과 WinCE, Palm, Symbian, 리눅스]

Consumer Online Systems Before the Web: 1985 - 1995.
하지만 90년대 중반까지 인터넷 접속은 주로 교육기관과 정부기관이었다. 소비자시장에서는 The Source나 CompuServe, Prodigy, GEnie, Quantum과 같은 전화접속 온라인 서비스가 더 주를 이루었다.

이들 텍스트-기반 서비스들은 게임과 포럼, 이메일메시지를 제공하였으나, 서로 상호작동이 안 되었고, 폐쇄형 기술을 사용하였다. 이 때문에 각기 다른 시스템 사용자들끼리는 통신이 불가능하였고, 콘텐트 개발과 제공도 제한적이었다. 따라서 써드파티, 특히 소규모 회사라면 이들 시스템에 기여하기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했다.

1985년, 애플은 GE와 함께 매킨토시-기반의 AppleLink 온라인 서비스를 개장한다. 원래는 딜러 통신망용으로서, 맥 파인더와 유사한 혁신적인 그래픽 클라이언트를 제공하였다. 하지만 GE 네트워크는 너무나 고가였다.

1987년부터 1989년까지 애플은 Quantum과 협력하여 보다 비용-효율적인 소비자용 서비스를 개장한다. 이름은 AppleLink, Personal Edition이었다. 이 서비스는 가정용 사용자들도 사용해 볼 만하였고, 완전힌 그래픽 온라인시스템으로서, 당시 성행하던 텍스트 기반 서비스와 경쟁하였다. 후에 애플은 협력관계를 청산하는데, Quantum은 이름을 America OnLine으로 바꾸게 된다.

1992년, 애플은 AOL과 다시 협력하여, 애플-중심적인 AOL 서비스를 만든다. 이것이 1994년 소개된 eWorld이다. 그동안 윈도 95가 나오면서, 마이크로소프트도 뒤늦게 자사식 그래픽 온라인서비스를 개장한다. 이것이 MSN이다.


Open Standards Kill the Proprietary Star: 1993 - 1995.
이 모든 폐쇄형 시스템은 스스로를 경쟁시켰지만, 소비자들은 상호작용성을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인터넷에 대한 유료 접속이 이 시기에 시작되었으며, 여러 가지 서비스 업체들이 이메일 인터넷 게잇웨이를 개방하기 시작한다. 즉, GE 네트워크 사용자가 AOL 사용자에게 인터넷을 통해 메일을 보낼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런 서비스가 한 번 시작되자, 폐쇄형 온라인 시스템은 이제 설 곳이 없어지게 되었다.

서비스 제공업체들은 스스로를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라 부르기 시작한다. 독자적인 콘텐트를 공급하는 유료, 폐쇄형 접속이 아닌, 전체 인터넷에 대한 공개 접속을 제공하는 업체이다.

이 때문에 AOL과 eWorld, MSN 외 여타 다른 폐쇄형 업체들의 희망은 사라져버린다. 때맞춰 인터넷 웹브라우저가 컴퓨터용으로 나오게 된다.

[도대체 .Mac은 무엇인가?]
[The Road to VoIP: Paved with Bad Intentions]

Al Gore Funds Development of the Open Internet: 1991 - 1993.
1991년, High Performance Computing and Communication Act를 제정하고 홍보해온 미국 상원의원, 알 고어(Al Gore)가 있다. 그의 High Performance Computing and Communication 법은 National Center for Supercomputing Applications’ High-Performance Computing and Communications Initiative의 설립에 자금을 지원하였으며, 이 센터가 모자이크(Mosaic) 웹브라우저의 개발을 맡게 된다.

NCSA의 모자이크 브라우저는 비-상업 사용용도로 무료 다운로드가 가능했기에, 맥과 윈도, 아미가 등의 소비자용 운영체제에서 빠르게 유명세를 얻었다.

ViolaWWW를 포함한 초기 브라우저의 다음 모델이었지만, 모자이크는 유명 컴퓨팅 플랫폼을 지원하였고, 웹페이지 안의 그래픽 인라인도 볼 수 있었으며, 비숙련 사용자들도 쉽게 사용이 가능했다. 덕분에 모자이크는 제일 유명한 웹브라우저가 된다.

전화접속 네트워크망으로는 정말 느리긴 했어도, 모자이크 브라우저로 보는 www 서비스는 AOL 이후 막대한 잠재성을 제공하였다.

웹은 공개되어 있으며, HTML 문서 작성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웹을 만들어서 서버에 올릴 수 있었다.

All You Need Is War.
표준에 기반하고 상호운용 가능한 기술, 그리고 인터넷 접속의 개화는 브라우저 클라이언트 소프트웨어 개발의 급속한 혁신을 불러일으켰으며, 개인과 기업이 콘텐트를 다투어 내놓으면서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였다.

이제 남은 일은 영토 분쟁이었다. 시장의 불확실성과 기술적 기근도 남아 있었다. 인간은 역시 실망스럽지가 않다! 다음 글을 기대하시라. - Netscape vs Internet Explo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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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fari on Windows? Apple and the Origins of the W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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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Q

casaubon 님께서 2007-06-18 08:08 PM 에 수정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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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8, 11:21 PM   #2
eth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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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잘 읽었습니다
역시 사파리 포팅 얘기는 브라우저 역사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지요, 다음 글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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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8, 11:46 PM   #3
pyth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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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와우 Mosaic 화면... 정말 오랜만에 보는군요.

꽤나 오랬동안 사용했던 것 같은데 NCSA에서 만들었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네요
왜 그 당시엔 관심조차 없었는지...
__________________
Never let the fear of striking out keep you from playing the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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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0, 12:30 AM   #4
casau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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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넷스케이프와 인터넷 익스플로러

Apple in the Web Browser Wars: Netscape vs Internet Explorer

Tuesday, June 19, 2007

WWDC에서 애플은 놀랍게도 윈도용 사파리 웹브라우저를 선보였다. 칼럼니스트들은 이를, 1995년에서 2003년 사이에 일어난, 넷스케이프와 마이크로소프트 간의 브라우저 전쟁의 재발로들 묘사를 많이 한다. 그렇다면 넷스케이프가 그토록 비참하게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애플이 또 다른 브라우저 전쟁을 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기술 업계는 어째서 애초에 웹 전쟁을 일으켰을까? 한 때 브라우저 시장의 80%를 점유하던 넷스케이프를 마이크로소프트가 어떻게 깨뜨렸고, 거기서 얻을 교훈이 무엇인지 알아본다.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독점한 상황에서 사파리의 등장도 분명 많은 시사점을 지닐 만하다. 애플이 어째서 윈도용 사파리를 내놓았는지, 새로운 브라우저의 등장이 가져올 결과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몇 년 전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많은 도움이 된다.

The World Wide Web Before the Browser Wars.
전 글은 정부과 기업, 연구소, 자발적인 학생들을 등장시켰다. 이들은 인터넷을 통한 정보 공유의 새롭고도 공개적인 방법을 만들어낸다.

80년대 후반, 애플의 무료 HyperCard 오쏘링 시스템은 기술적인 식견이 전혀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흥미를 돋구었다. 이들도 하이퍼카드 스택을 만들어서 정보를 공유하고 만들어낸 것이다. 오늘날의 인터랙티브 웹사이트나 위키, 위젯과 마찬가지다.

하이퍼카드 모델에 감화받은 연구자들과 전세계 학생들은 전세계적인 규모로 링크화된 문서를 공유하는 표준 시스템을 디자인하였다. 독립적이고 영토적 경계도 없는 인터넷이었다.

이 때, 주요 인터넷 서비스로서 웹 개발의 표준형, 개방형 프로토콜을 만들고 정의내리기 위해, 미국 정부가 투자를 벌였다. 누구나 호환성 있고, 상호운용성이 있는 네트워크망을 통해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표준이었다. 이 초기 투자분의 일부가 바로 비-상업적 사용인 경우 무료 사용이 가능했던 NCSA Mosaic 웹 브라우저였다.

1993년, 웹이 등장하자 인터넷도 덩달하 확대된다. 웹은 일반적인 사용자들도 쉽고 직관적으로 쓸 수 있었고, 심지어 자기 스스로 웹을 만들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번영의 시대에, 개방형 기술진보의 시대에 어째서 전쟁이 일어났을까? 이 질문은 답하기 쉽다. 언제나 그렇다. 돈이, 그것도 아주 많은 돈이 관련됐기 때문이다.

[애플과 웹브라우저]

The Rise of Netscape: 1993 - 1996.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을 1993년에 졸업하였고, 학생 시절, NCSA의 모자이크 브라우저 개발을 이끌었던 마크 안드레센(Marc Andreessen)은 Mosaic Communications을 설립했다가, 후에 회사 이름을 넷스케이프(Netscape)로 바꾼다. 유료 Netscape Navigator 웹브라우저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안드레센은 10년 전 Stanford University를 졸업하여 Silicon Graphics를 세운 짐 클락(Jim Clark)과 협력한다. 클락의 SGI 경험을 등에 업은 안드레센은 네비게이터 브라우저의 개발을 지속시키기 위한 사업계획도 만들어 놓는다.

모자이크를 포함하여 무료 브라우저가 있는 가운데에, 넷스케이프는 웹브라우저 클라이언트를 무료로 뿌리고, 웹서버 소프트웨어 판매로 수익을 얻기로 계획하였다.

넷스케이프의 초기, 발빠른 혁신과, 비-상업적 사용에 한해 무료인 모자이크의 규정을 받아들인 결과, 웹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넷스케이프가 새로운 표준이 되었다.



A Threat To Microsoft’s Desktop Monopoly.
출범하기도 전에 쇠퇴해버린 MSN의 현실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는 결국 AOL 모델에서 발을 빼고, 넷스케이프 모델을 복제하기로 결심한다. 게다가 인터넷 접속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AOL과 같은 폐쇄형 온라인 서비스 시장은 앞으로의 잠재성이 거의 없었다.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인 웹서버 시장도 마이크로소프트의 흥미를 끌기에는 부족하였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넷스케이프가 웹브라우저를 통제할 경우, 데스크톱 독점상황에 심각한 위협이 생기리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웹브라우저는 이제 하이퍼링크가 된 문서를 링크하는 간단한 방식에서, 이제 세련된 인터랙티브 애플리케이션을 약속하는 씬 클라이언트 애플리케이션 플랫폼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만약 넷스케이프가 이런 웹 애플리케이션을 어떤 플랫폼에서도 돌리게 만든다면, 마이크로소프트에게는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다.

넷스케이프 자신도 웹브라우저를 새로운 플랫폼으로 마케팅하였고, 자사 브라우저가 크로스 플랫폼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최적이라 묘사하였다. 윈도와 리눅스, OS/2, 매킨토시, DEC Unix, Sun Solaris, BSDI, SGI IRIX, IBM AIX, HP-UX용으로 네비게이터가 나와 있던 상황이었다.

1996년, 넷스케이프는 썬의 자바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브라우저와 함께, 자바 역시 간단한 크로스-플랫폼 개발 환경을 약속하였다. 어쩌면 윈도를 대거 교체해버릴지도 모를 후보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플랫폼은 써드파티 개발자들에게 의존적이었고, 이들 역시 윈도에 의존적이었다. 개발자들이 앞으로 웹을 사용하여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게 되면, 윈도에 안 묶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마이크로소프트의 PC 데스크톱은 이제 경쟁에 노출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을 유지시켜주는 것은 윈도-중심적인 개발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모든 웹 개발을 윈도로 묶어야 했다. 이 때문에 스스로 웹브라우저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사파리 워즈: 에피소드 V]
[목표는 익스체인지 서버!]

Microsoft Enters the Browser Market: 1995 - 2001.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는 NCSA 모자이크 프로젝트의 유료형 스핀오프(spinoff), Spyglass로부터 웹브라우저 기술을 라이센스받아,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만든다. 위협이었던 넷스케이프를 파괴시키기 위해서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IE에 상당한 자원을 투입시키고, 개발과 마케팅 양쪽 모두에 있어서 넷스케이프를 능가한다. 윈도에 IE를 번들시켰을 뿐 아니라, ISP에게 넷스케이프 대신 IE를 배급시키라 마케팅력을 동원하기도 하였다.

맥용 오피스 연기 위협을 하면서까지 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과도 협력을 맺어, 맥 데스크톱에서 넷스케이프를 떼어낸다. 1997년, 윈도용 기본 브라우저로서 시장점유율을 급신장시킨 마이크로소프트는 웹-기반 IE/윈도 개발을 여러 가지로 선보인다. 자바 개발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윈도와 IE로 묶는다. 이는 자바와 웹의 상호운용성을 죽여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넷스케이프의 위협을 물리치고나자, IE 개발은 중단된다. 특히 맥 플랫폼에 있어서 중단이 먼저 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순전히 넷스케이프의 크로스-플랫폼 접근을 물리치기 위해 들어온 것이었다.

웹 개발을 IE와 윈도에 묶자(기업 환경에서 특히 심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제 혁신을 중단시키고, IIS 웹서버의 가격을 올리기 시작한다. 웹마저도 윈도 데스크톱 플랫폼의 폐쇄형 확장판으로 만들 계획이었다.

[Mac Office, $150 Million, and the Story Nobody Covered]
[맥용 MS오피스 중단 위협의 미신을 벗긴다 1]
[RSS, 그리고 Podcasting의 간략한 역사]

Netscape Hoist With Its Own Petard: 1997-1998.
마이크로소프트가 웹브라우저 시장에 들어서자 확실히 넷스케이프는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보통 넷스케이프에게 대안이 없었다는 말을 많이들 하는데, 다음의 두 가지 점을 고려하면 그 주장을 다시 생각해 봐야한다.

첫째. 마이크로소프트가 넷스케이프의 브라우저 사업을 물리치겠노라 등장하였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다음의 경쟁자들에게 있어서 경쟁력이 없었다.

  • 구글: 검색과 웹 마케팅
  • 애플: 소비자 가전과 데스크톱 운영체제
  • 리눅스: 서버와 임베디드

감히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해 도전한다면 가차없이 물리치리라는 무적의 마이크로소프트 미신이 있다. 하지만 사실 마이크로소프트의 커다란 경쟁자들이 마이크로소프트보다 약간 더 무능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장점유율만 올려주었을 뿐이다.

[벌거벗은 제국의 새로운 옷, Surface]

둘째. 넷스케이프는 자신의 문제 때문에 시장에서 실패하였다. 첫 번째 문제는 전략문제요, 두 번째 문제는 제품관리와 개발 문제였다.

넷스케이프의 전략은 마이크로소프트처럼 브라우저 시장과 웹개발을 자사의 비-표준 HTML 확장에 묶으려 하였다. 자사의 웹서버 소프트웨어의 채택을 위해서다. 그 결과 마이크로소프트 IE보다 소비자들에게 더 나은 제품이 나오지를 않았다.

이런 잘못된 전략에 더해, 넷스케이프 자신의 행동도 허술했다. 1993년부터 1997년까지 네비게이터 브라우저의 버전 네 가지를 급조하다가, 넷스케이프의 개발 계획은 엉망이 되기 시작하였다.

넷스케이프 엔지니어들은 계속 문제가 커져가고 비대해진 네비게이터 4의 코드베이스를 갖고 계속 작업해야 하는지, 혹은 완전히 새로운 웹 렌더링 엔진을 다시 짜야할지를 두고 갈등을 빚었다.

What We Have Here Is a Failure to Communicator.
넷스케이프는 두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우선 네비게이터 4는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 4)라는 제품 패키지로 바뀌었다. 이메일 클라이언트와 뉴스크룹 리더, 주소록, 칼렌더, 협력용 툴, 푸시 클라이언트, HTML 에디터가 들어 있었다.

넷스케이프의 오래묵고 비대한 브라우저는 이제 아무도 원하지 않는 제품 패키지로 채워져 있었다. 커뮤니케이터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사용자의 데스크톱을 두고 경쟁하려 하였다.

크로스-플랫폼 기능을 제공하기 위해, 커뮤니케이터는 네이티브 운영체제를 우회해야 했다. 즉, 웹브라우저를 X11, Gnome, KDE처럼 꾸려야 했던 것이다. 맥 사용자나 윈도 사용자나 이런 전략을 좋아하지 않았다. 서로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돌아가서였다. 즉, 장점보다는 버그가 더 많았다.

The Great Leap Forward.
이와 동시에, 넷스케이프는 또한 완전히 새로운 브라우저 엔진을 구축하려는 계획을 동시에 구사하였다. 하지만 이 역시 수많은 세월이 필요했다.

따라서 넷스케이프는 1991년과 1995년 사이, 핑크/코플랜드의 애플과 같은 처지에 몰렸다. 오래되고 비중해진 옛 것을 털어 내고, 원대한 계획을 세웠으나, 실제로 달성하지 못한, 그런 상황이었다.

게다가 마이크로소프트는 꾸준히 기술을 개선시켜가고 있었고, 매킨토시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밀리게 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과 협정을 체결해버린 탓이다. 하지만 넷스케이프 최대의 문제는 자기 자신에게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Leopard는 Copland의 구렁텅이에 빠졌는가?]
[1990-1995, 핑크와 탈리전트, 코플랜드의 비밀]

Netscape Crashes, Dies: 1998 - 2000.
커뮤니케이터 4를 완전히 재작성하려는 계획의 일부로서, 넷스케이프는 웹브라우저 코드를 모질라 오픈소스 프로젝트로 공개하였다. 넷스케이프는 개발자 커뮤니티가 표준-기반형 브라우저로 IE에 대항하는 데에 흥미를 갖기를 희망하였다.

1998년, 넷스케이프는 넷스케이프 5를 커뮤니케이터 4의 중대한 리비전으로 제공하려는 계획을 취소하고, 클래식 Mariner 엔진 개발을 멈춘 다음, 완전히 새롭게 재작성된 Gecko 엔진의 완성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1999년, AOL은 넷스케이프 인수에 42억 달러를 지불한다. 넷스케이프 브라우저를 AOL 서비스 현대화용 플랫폼으로 사용하려는 희망이었다. 폐쇄형 시스템이었던 AOL을 웹-기반으로 바꾸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Gecko-기반 브라우저의 개발이 늦어지면서 AOL의 사업계획도 복잡해졌다.

Between a Rock and a Hard Place.
새로운 오픈소스 커뮤니티 프로젝트로서, 모질라(Mozilla) Organization은 1998년 이래 Gecko 엔진을 작업해 왔었지만 진전은 느렸다. 결과에 목매달던 AOL은 넷스케이프 팀에게 압박을 주어, 모질라의 베타코드를 넷스케이프 6으로 2000년에 선보인다. 하지만 마무리가 덜된 넷스케이프는 넷스케이프 브랜드에 치명타를 입힌다.

모질라 실험에 들어간지 2년 후, 넷스케이프는 커뮤니케이터 4의 수렁에 갇히고만다. 그래서 모질라코드의 초창기 베타마저 제공하려 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 IE를 따라잡기 위해 버전 5를 건너뛰었지만 누구도 속지 않았다. 넷스케이프는 이제 죽었다.

이와 반해 마이크로소프트는 1997년과 1999년, 2001년에 계속 IE를 버전업시켰다. 혁신성에 있어서도 넷스케이프를 뛰어넘은 것이다. 넷스케이프는 느리고 오래되고 버그도 많은 커뮤니케이터 4와 미완성되고 역시 버그가 많으며 느린 넷스케이프 6을 주었을 뿐이다.

넷스케이프가 어째서 급속도로 쇠퇴했는지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AOL마저도 자사 브라우저로 IE를 제공하는 마당이었다! AOL의 모성애도 도움이 못 되었다.

넷스케이프는 이제 해가 저물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이제 윈도와 맥의 전 브라우저 시장을 거머쥐었다. 경쟁이나 혁신의 필요가 사라지자, 마이크로소프트는 맥 플랫폼용 IE를 중단시키고, 윈도용도 2006년 하반기 전까지 5년이 지나도록 메이저 버전업을 하지 않았따.

Reinventing Failure with the Mozilla Application Suite: 2000 - 2003.
AOL이 미완성된 베타코드를 우겨서 내놓는 장면을 보고 경악한 모질라 개발자들은, AOL과 넷스케이프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Mozilla Application Suite라는 이름으로 독립화되었음을 알린 것이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 IE와의 경쟁을 위해 간단하고 현대적인 표준-기반의 Gecko 웹브라우저를 내놓는 대신, 모질라는 꼴사나운 커뮤니케이터를 완전히 재작성하되,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치장도 많았다.

Mozilla Application Suite는 스스로를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모듈화된 아키텍쳐를 갖춘 인터넷 플랫폼이라 하였다.

모질라는 XUL이라 부르는 언어로 정의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갖춘 완전히 새로운 클라이언트 애플리케이션으로, 적어도 윈도-중심적인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도전하려 하였다. 웹표준으로 개발을 옮기자였다.

The Endless Platform of Platforms.
흥미롭기도 하고 혁신적이기도 했던 XUL 개발은 제한적이었고, 모질라의 XULRunner 런타임을 사용해야만 돌아갔다. 즉, 전체 컨셉이 예전 실패작들과 유사했다.

  • OpenDoc: 컴퍼넌트 소프트웨어
  • OpenStep: 1996년, 세상이 무시했던 프레임웍
  • Java VMJava browser applet: 썬의 계획

그리고 이들의 약속된 미래는 실패하였다...

  • 어도비의 FlexAIR: Flash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기반을 둔 플랫폼.
  • 마이크로소프트의 Silverlight, 아니면 심지어 .Net: 마이크로소프트의 실패도 사람들은 성공으로 간주한다.
  • 썬의 JavaFX: 자바에 대해 새로운, 폐쇄형 익스텐션을 제공.

[iPhone용 OS X과 WinCE, Palm, Symbian, 리눅스]
[Sun, 아이폰 경쟁에 뛰어들다]
[WWDC 2007: .Net과 Cocoa]

You Can Lead a Horse to Water...
따라서 9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Mozilla Application Suite의 원대한 계획은 7년간의 기간에도 불구하고 사라지고 말았다. 이와 반하여, 성숙되고 효율적인 애플의 코코아 개발툴이 오히려 상당한 채택을 받았다.

코코아의 제일 큰 고객은 애플 그 자신이다. 애플이 코코아를 사용하여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기 때문이다. 애플은 코코아로, 마이크로소프트의 허를 찌르고, 고도의 플랫폼 프레임웍을 만들었다면 명성을 받았다.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개발 플랫폼을 선보이기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

코코아가 전통을 안지킬 경우 어떤 문제가 생길지 상상해 보시라. 마이크로소프트는 IBM PC가 생길 때, 바로 그 때, 제 자리에 있었다. 그런 마이크로소프트조차도 WinCE와 Windows Mobile, 여러 가지 DRM 미디어, DVR과 미디어센터를 둘러싼 개발 플랫폼의 성공에 극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WinCE와 Windows Mobile의 처절한 실패사]
[미디어센터 vs. 애플티비]
[매년 1월에 선보인 애플과 MS 혁신의 비교]

새 플랫폼 구축이 워낙에 어렵기에, 새 플랫폼 구축의 장벽은 없다시피하다. 다만 그래야 할 가치가 있어야 한다. 그 때문에 애플은 아이폰을 써드파티 개발에게 개방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범용이면서 현대적인 웹표준용으로 애플리케이션을 지원하겠다는 발표만 하였다.

그 주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밝히겠다! 우선은 웹 전쟁 와중에 애플이 무엇을 했는지, 넷스케이프와 마이크로소프트 간의 전투가 맥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는지를 알아본다.

[WWDC 2007: .Net과 Cocoa]
[Mobile Disruption: Apple's iPhone and Third Party Software]
[An iPhone SDK? Predictions for WWDC 2007!]
[Yellow Box의 죽음, 그리고 Cocoa]
[1990-1995: 떠오르는 태양, 윈도우즈]

The Mac Internet Before Safari: 1993-2003.
사파리가 나오기 10년 전, 애플은 맥 플랫폼용 인터넷 서비스와 관련하여 중대한 구상 두 가지를 소개하였다. 하나는 PowerTalk과 관련된 Apple Open Collaboration Environment였다. 1993년에 소개된 이 개념은 상용 웹보다 앞섰었다. 이메일과 LAN 문서공유에 집중하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과다한 아키텍쳐였던 이 프로젝트는 실패한다. 애플은 이를 사이버독으로 바꾸려 하였다. 사이버독(Cyberdog)은 OpenDoc 애플리케이션 컴퍼넌트로 만들어진 인터넷 툴이었다. 사이버독에는 웹브라우저와 FTP 클라이언트, 뉴스 리더와 이메일 서비스가 들어 있었다.

사이버독은 원래 OpenDoc의 잠재성을 보여주기 위한 사례였다. 그러나 OpenDoc은 전혀 존재하지도 않던 문제의 해결사였다. 누구도 컴퍼넌트 조합을 원하지 않았다. 그저 단일 애플리케이션을 원하였다.

사이버독은 또한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사이버독은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터와 같은 모노리딕 코드를 교체하려 했었다. 하지만 그 전에 지원 라이브러리를 로딩해야 했다. 따라서 장점이 없었다. 커뮤니케이터처럼 느리고 비대한 버전이 나와버렸다.

또한 사이버독은 소프트웨어 업계 안에, 기존의 장벽이 얼마나 높은지, 근본적인 사고의 변경에 얼마나 저항이 많은지도 보여주었다. 사이버독은 1997년 초, OpenDoc과 함께 나왔었다. 하지만 그 때는 브라우저 전쟁이 한창 진행되던 와중이었고, 그 한가운데에 맥이 놓여 있었다.

[1990-1995: 기업시장에서의 애플 대 마이크로소프트]
[xServe (mini)의 용도: 전화]

Apple in the Browser Wars.
넷스케이프와 마이크로소프트 간의 전쟁터로서, 애플은 사이버독이 실패하자, 맥용 브라우저를 따로 개발할 이유가 없어졌다. 달리 해야할 일이 많았기때문에 별로 부담될 일도 아니었다.

넷스케이프는 애플을 웹플랫폼 전략의 핵심 우군으로 간주하였다. 맥이야말로 크로스-플랫폼 해결책을 여실히 드러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1996년, 맥용 인터넷 익스플로러로 답하였으며, 애플과의 긴밀한 협상을 통해, 넷스케이프 브라우저를 몰아 넣는데에 성공한다.

그러나 2001년경 브라우저 전쟁이 끝나자, 마이크로소프트로서는 맥용 브라우저 개발을 지속시킬 이유가 사라진다. 넷스케이프도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 Mozilla Application Suite 외에 맥에게 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2001년 3월, 웹브라우저 전쟁의 종말은 애플에게 문제를 가져다주었다. 앞으로 애플 고객과 교육시장에 있어서 웹이 주요 기능이 되기 때문이었다.

Two Wrongs Make a Right.
사이버독 컴퍼넌트와 모질라의 실패때문에, 애플이 마이크로소트와 전쟁을 벌일줄은 당시 생각도 못했었다.

닷컴 시대동안 부활을 해낸 애플은, 다시금 찾아든 불경기 시기 맥 판매에 어려움을 겪는다. 모질라도 이제는 자발적인 수준으로 낮춰져 있었다. 2003년, AOL은 넷스케이프와 결별하였고, 대부분 넷스케이프 사원으로 이뤄진 모질라는 비영리 재단으로 변모하였다.

개방된 웹의 미래에 누구나 암울해할 수 밖에 없는 시기였다. 그러나 2003년, 애플과 모질라 모두, 브라우저 르네상스에 불을 지피게 된다. 개방형 웹이라는 오랜 이상을 실천하는 식으로 말이다.

공개되어있고, 상호운용 가능하면서, 표준에 기반하는 브라우저가 성공하면, 이 브라우저는 웹을 급속도로 바꾸게 될 것이다. 다음 글 제목은 이러하다: The Web Browser Renaissance: Firefox and Saf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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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in the Web Browser Wars: Netscape vs Internet Explo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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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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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2, 02:52 AM   #5
kai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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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모자익,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터, 모질라...
옛 기억들이 다시 생각나는군요..^^
dumb term에서 archie나 gopher, 혹은 lynx등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왜 X windows상에서 모자익으로 해야 할까하는 무식한(?) 고민을 했던 적도 있었는데..^^;;;
어쨌든 넷스케이프가 커뮤니케이터로 바뀌면서 왜 그모양 그꼴이 되었는지 이제야 조금 알겠습니다.
덕분에 편하게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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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2, 03:42 AM   #6
icebo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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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핫자바 이야기는 없군요.^^

HotJava -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썬에서 자바로 만든 웹브라우저라는데, 관심이 생겼을 때는 이미 사라진 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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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2, 10:13 AM   #7
Ritsu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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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넷스케이프 4를 애용했는데 6이 나왔을 때 정말로 실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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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2, 08:36 PM   #8
sp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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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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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핫자바 이야기는 없군요.^^

HotJava -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썬에서 자바로 만든 웹브라우저라는데, 관심이 생겼을 때는 이미 사라진 뒤더군요...
뜨거운 커피....잊고 있다가 글을 보고 저도 생각났습니다.
아직도 SUN에서 다운로드가 가능하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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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2, 09:49 PM   #9
keew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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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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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스케이프 4를 애용했는데 6이 나왔을 때 정말로 실망했어요.
맞습니다. 완전 자살꼴이었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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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is not the strongest of species that survives, nor the most intel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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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3, 01:16 AM   #10
rochph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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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전 5를 건너뛴거에 대해서 여러가지 루머가 있었는데... 그냥 단순히 건너뛴거였군요 ㅋ. 6은 정말 엄청 실망스럽다 했더니 저런 내막이...

아 그리고 원문 내용중에 좀 읽기 어려운 곳이 있어 수정해 봅니다.

인용:
첫째. 마이크로소프트가 넷스케이프의 브라우저 사업을 완전히 물리쳐 버린것으로 보였지만 MS는 이후 여러 라이벌들과의 경쟁에서 자신이 경쟁력이 없음을 절실히 보여주었다.

구글: 검색과 웹 마케팅
애플: 소비자 가전과 데스크톱 운영체제
리눅스: 서버와 임베디드

마이크로소프트가 감히 자신에게 도전하는 경쟁자들을 가차없이 물리치는 무적의 회사라는 낡은 미신은 사실 그간 싸움에 패하고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자사의 시장 점유율만 넘겨버린 마이크로소프트의 주 경쟁자들이 마이크로소프트보다 약간 더 무능했다는 현실에 대한 잘못된 해석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하는게 더 자연스러울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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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3, 10:18 AM   #11
alvysi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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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넷스케이프의 유료화가 직격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기사 당시에는 IT쪽 수익모델이 어떤 것이 될 지 몰라 삽질들 많이 하던 때였죠.
한국에서도 프리첼이라는 회사가 유료화로 돌아서자마자 쫄딱하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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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3, 10:32 PM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