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02-19, 08:09 PM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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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서버 20년사
![]() Steve Jobs and 20 Years of Apple ServersSaturday, February 17, 2007올해 하반기 쯤 되면 애플은 레퍼드 서버를 내놓게 된다. 레퍼드 서버는 넥스트 기술에 기반하는 애플 유닉스 서버의 일곱 번 째 메이저 버전이다. 레퍼드 서버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애플 서버 20년사와 스티브 잡스의 약사를 알아보도록 한다.그런데 사실, 아이러니한 점이 없지 않다. AppleShare는 1985년, 스티브 잡스가 떠나기 이전, 잡스가 밀어붙이던 진보적인 제품이었다가, 10년 후, 잡스가 애플에 돌아오자, 애플이 없애야 할 첫 번째 구식 기술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1984년 매킨토시가 나온 이래, 잡스는 맥을 사무용 시장으로 진출시키려는 성전을 이끌었다. 당시 맥의 강력한 경쟁상대는 거의 없었다. IBM의 OS/2는 여전히 개발중이었고,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3.0은 10년 후에나 나올 예정이었다. PC는 단순했고, 네트워킹은 복잡했으며, 설정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Jobs' 1985 Macintosh Office잡스는 평판이 나뻤던 Lemmings Super Bowl 광고를 포함하여, 1985년, 매킨토시 오피스를 진두지휘하였다. 이 마케팅 캠페인은 맥을 최고의 사무용 툴로 자리매김시키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맥 판매량은 시작만 좋았지, 별로 오르지 않았다. 애플 이사진들도, 잡스가 판매량을 이어갈 수 없는 기술을 내세우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하였다. 애플의 수입은 여전히 애플 II에서 나오고 있었으며, 맥은 자신의 존재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분투중이었다. 이사진은 CEO인 존 스컬리를 부추겨 잡스를 포위시킨다. 회사가 중구난방으로 흘러가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킨토시 오피스 프로젝트의 첫 번째 과실은 애플톡 네트워킹을 갖춘 레이저라이터였다. 이것이 맥을 살린다. 맥을 그래픽 장난감이 아닌, 전문가의 툴로 자리매김시킨 주역은 레이저라이터였다. 매킨토시 오피스에는 애플셰어 파일서버와 빅맥 프로젝트(유닉스 기반의 개인용 맥 웍스테이션 시스템)도 포함되어 있었다. 둘 모두 연기되었고, 잡스와 스컬리 간 논쟁의 화두가 바로 애플셰어와 빅맥이었다. 잡스는 간단한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보다는 유닉스에 기반한 제품으로 맥을 탈바꿈하고 싶어하였다.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에는 웍스테이션급 제품에 필요한 현대적인 기능이 없었기 때문이다. 잡스의 방향제시 때문에, 애플은 AT&T로부터 유닉스를 라이센스 받는다. 하지만 1985년말 즈음, 잡스는 쫓겨나고, 맥을 현대적인 OS로 이주시킨다는 방향은 잠들게 된다. Apple's Sleepy Downhill Decade: 1986-1996 잡스 축출 이후, 스컬리는 잡스 자리에 쟝-루이 가세를 앉히고, 유닉스-기반 맥을 포기한다.
현대적인 맥 계획을 거의 파괴시킨 후, 가세는 스스로의 맥 비전을 펼친다. 데스크톱 PC로서의 매킨토시 II와 애플셰어 맥 파일서버였다. 둘 다 예전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재개장시킨 것이었다. ![]() 1988년, 애플은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의 하이엔드 대안으로서, 애플 유닉스 배포본인 A/UX를 선보인다. 이와 동시에, 잡스의 넥스트는 독립적으로 훨씬 세련된 유닉스 기반의 NeXTSTEP을 선보인다. 애플은 1992년 하반기, A/UX 3.0이 나올 때까지 맥 시스템 7 환경을 A/UX용으로 포팅하지 않고 있었다. 그동안 가세는 애플을 떠나 자신만의 미래를 펼치기 위해 Be를 설립한다. Be는 다중 사용자와 같은 유닉스 기능을 여전히 갖고 있지 않았으며, 1996년 하반기까지도 베타 상태였다. CEO Trouble 애플의 스컬리와 가세는 맥 사용자들이 PC로 떠나버릴 때까지 얼마나 더 비싼 값에 맥을 팔 수 있을까를 실험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떠난 뒤로, 새로 애플 CEO에 오른 마이클 스핀들러는 애플이 얼마나 비싼 값에 기술 기업으로서 팔려나갈 수 있을지를 실험하였다. 그 다음 CEO인 길 아멜리오는 애플이 쓰러지기 전까지, 프로젝트 수정 없이 얼마나 더 많은 직원을 자를 수 있을지를 실험하였다. 어떻게든 애플은 살아남았다. Pre-Mac OS X Servers 그동안 애플은 두 가지 서버군을 개발하였다.
애플 A/UX는 PowerPC로 포팅되지 않았다. 잘 팔리지도 않는 하이엔드급 ANS AIX-전용 서버, 그리고 살 만 하지만 약한 시스템 7 기반의 애플셰어 사이에 끼어버린 것이다. 애플에게는 데스크톱 운영체제 뿐만 아니라, 서버도 절실했다. 애플이 MAE와 MAS 등으로 맥환경 유닉스 포팅을 좀 하기는 했지만, 이미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고, 그 노력도 보잘 것 없었다. 애플 서버 제품군에는 거의 영향력도 미미하였다. Apple’s Return to Servers 가세는, 데스크톱 맥을 세련된 사무용 제품으로 마케팅하려는 잡스의 선구자적인 노력을 완전히 뒤흔들고 없애버렸다. 그리고 90년대 중반, 당시 삐걱거리던 맥 시스템 7상에서 애플셰어를 돌려 맥을 사무용 시장으로 진입시키려던 때늦은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기업들은 애플의 진입 노력을 하나의 농담으로 받아들여버렸다. 당시 애플은 AIX-기반의 ANS를 발표하였지만, 누구도 애플에서 서버를 구입하려하지 않았고, 맥 사용자들 또한 복잡한 유닉스의 커맨드라인을 다루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동안 잡스의 계획인 유닉스-파워 그래픽 웍스테이션과 사무용으로 쓸 만한 서버가 넥스트로부터 애플로 들어왔다. 다음 기사는 넥스트 기술에 기반하는 애플의 최근 서버 제품군과, 애플이 맥 브랜드를 서버 시장에서 어떻게 다시 자리매김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 What do you think? I really like to hear from readers. Leave a comment or email me with your ideas. Steve Jobs and 20 Years of Apple Ser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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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Q casaubon 님께서 2007-02-20 01:10 AM 에 수정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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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2-19, 09:13 PM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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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레퍼드 서버가 하반기에나 나오나요? 대략 난감. 레퍼드와 함께 나올 걸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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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2-20, 12:59 AM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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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빌 게이츠 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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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2-20, 01:09 AM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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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NeXT 서버로 무장하다
![]() Apple’s NeXT Server Offensive on MicrosoftSunday, February 18, 20071997년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돌아왔을 때, 그는 넥스트 기술로 무장한 새로운 애플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컴퓨터 산업 최고의 자산을 이끄는 곳."1997년 여름, 맥월드 엑스포에서 잡스의 그 발언을 듣는 중이었다면, 맥오에스와 뉴튼, 퀵타임을 포함된 애플의 제품군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잡스는 분명히 넥스트에서 개발한 기술을 언급하고 있었다. 잡스의 발언은 애플을 혁명화시키고, 나온지 거의 10년째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거의 알지 못하던 넥스트 기술을 뜻했었다. Apple’s Assets 당연히 애플에게도 독특하고 소중한 자산이 있었다. 미처 넥스트도 못가진 장점도 많았다. 한 번 꼽아보자.
NeXT’s Troubled Sales 넥스트에게는 특히 사용자 기반이나 유통망이 전무했다. 애플과 같은 방식으로 하드웨어를 팔고 시장을 개척하려 했던 넥스트는 하드웨어 사업을 포기하고 소프트웨어에 집중하던 차였다. 넥스트는 처음에 PC용 넥스트스텝을 팔려 하였다가, 나중에는 윈도 NT와 선 솔라리스, 그 외 다른 유닉스 웍스테이션 플랫폼 상에서 돌아가는 OpenStep 사용자/개발자 환경을 팔려 하였다. 넥스트의 개척자적인 기술에 대한 칭송은 자자하였으나, 협력사들은 넥스트를 지속적으로 포위하였고, 넥스트와 협력하는 척 했다가, 계속 배신하였다.
NeXT’s Asset Vault1996년, 넥스트의 기여는 거의 잊혀져버린 상태였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카이로를 약속했던 5년 전, 넥스트가 이미 훨씬 더 우월한 시스템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도 거의 없었다. 심지어 애플 중역진들마저 자기들이 뭘 인수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1997년, 맥 사용자들은 그동안 표준적인 넥스트 데모에서 보여졌던 간단한 넥스트 기술마저 경외(敬畏)하였다. 1997년 1월, 맥월드 엑스포에서, 당시 P&L Systems의 넥스트 개발자였던 린치(Paul Lynch)는 이렇게 보고하였다. "길[당시 애플 CEO인 아멜리오)이 연설 대부분을 하였는데, 넥스트스텝 데모를 위해 스티브를 단상 위로 불러들였다. 스티브는 두 가지 데모를 보여주었다. 하나는 두 개의 슬라이더와 텍스트 필드가 있는 인터페이스 빌더였다. 88년부터 하던 일이었지만, 청중은 환호를 질렀다. 그 다음, 그는 퀵타임 영상 여섯 편을 한꺼번에 돌렸다. 그러면서도 화면캡쳐를 하여 메일 메시지로 보내기도 하였다. 1993년 넥스트 엑스포에서 이미 봤던 데모였다." "매우 오래되고, 정말 간단한 기술에도 맥 청중들은 넘어갔다. 넥스트스텝 데모는 정말 직접 봐야 알 만하다. 넥스트의 세련도는 이제까지 봐왔던 것, 그 이상이다." 오늘 당장, 윈도 2000이나 맥오에스 8.6에 세상이 열광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시라. 1997년 애플이 갖게 된 넥스트의 자산은 다음과 같다.
A Server Before the Desktop 맥오에스텐 서버는 제품으로서 맥오에스텐보다 더 일찍 나왔다. 넥스트의 자산을 맥과 같은 데스크톱용 제품으로 내놓기가, 애플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버 영역에서 애플은 맥오에스에 기반을 둔 애플셰어를 포기하고, 훨씬 더 서버다운 서버인 넥스트의 유닉스 플랫폼으로 이주하는 데에 별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Seven Years of Efforts by Apple and Microsoft 지난 해 여름, 필자의 "윈도우즈는 맥오에스텐보다 비용이 다섯 배"는 수 년동안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나온 제품을 서로 비교해 보았다. 이 기사는 원래, 맥오에스텐을 업데이트시키기 위해 "750 달러 정도"가 들어간다고 주장한 폴 써롯의 기사에 대한 대응이었다. 그가 말하려 했던 바는, 2000년 이전에 맥을 산 다음, 7년 동안 매년 데스크톱 맥오에스를 소매가격으로 교체할 때의 값이었다. 7년 묵은 맥에 레퍼드를 깔기 위한 노력인 셈이다. 7년 동안 500 달러는 족히 들어간다는 의미다.하지만 그의 계산은 수 백 달러가 어긋났다. 어쩌면 펜티엄의 연산오류일지도 모르겠으나, 그의 논리는 어떻든 간에 아둔하다. 그래도 윈도 방어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롱혼에 수 년을 매달린 마이크로소프트를 변호하기 위한 무리수였을 것이다. 그 결과는 사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와 비교할 때, 2000년 이후 애플이 다섯 번의 메이저 업데이트와 15 번에 달하는 마이너 업데이트를 벌였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어떻게 비판을 할 수 있을까? 사실은 사실이고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더 불리한 점은 또 있다. 7년 전의 맥조차도 최신 버전의 맥오에스텐을 돌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비스타에서는 그렇지 않다. 1~2년 전에 나온 PC도 비스타를 돌리기에 부족할 정도다. Oh the humanity! 불쌍한 폴. What's More Expensive Than Windows XP? 물론 애플은 맥오에스텐 서버도 정기적으로 내놓았다. 이 제품이 좀 비싸긴 하지만, 그것도 윈도서버와 비교하면 당연하다. 마이크로소프트 서버 제품군은 중소기업 입장에서도 터무니 없이 비싸다. 대기업용은 더욱 그러하다. 윈도 서버의 소매가를 따지기에 앞서서, 영악한 클라이언트 라이센스 가격은 사용자가 100명이라고 할 때, 델 서버를 엑스서브 가격의 세 배까지 올려놓는다. 그 뿐만이 아니다. 비스타가 수 만여 개의 직장을 어떻게 창출할지 마이크로소프트가 운을 띄웠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진짜 의미를 알아보면, 비스타 유지에 그만큼 훨씬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Support Nightmares 윈도서버나 익스체인지를 다룬다면, 더 많은 자원과 더 많은 노력,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을 누구나 알 것이다. 윈도 상의 모든 서비스는 각자의 서버를 요구한다. 액티브 디렉토리 도메인을 위한 서버, 익스체인지 이메일을 위한 서버, 파일 공유를 위한 서버가 최소한 돌려야 할 서버다. 중소기업용(Small Business Server) 마이크로소프트 라이센스는 위 세 가지 제품을 하나의 PC Server로 패키지화 하였다. 하지만 데모용 목적이 아니라면 이 패키지는 가치가 없다. 소규모라 하더라도 전산실을 돌리려면, 새로운 PC 서버를 한 두 대 사가지고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돌려야 한다. The Staggering Costs of Being Cheap 한 번 윈도로 이주하게 되면, 마이크로소프트에게 클라이언트 액서스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미 세계 최고의 갑부들로 가득찬 회사를 더 살찌워 줘야 한다. 윈도로 회사를 꾸미는 일은 월마트 쇼핑과 비슷하다. 겉보기에는 정말 싸지만, 실제 비용은 오히려 더 비싸다. 실제로 여러모로 볼 때, 가격은 훨씬 더 비싸진다. 싸구려 중국제 PC에 복제본 윈도를 설치하면 돈 벌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 비용을 고려해 보면 그렇지가 않다. 서버 면에서 볼 때, 윈도 투자는 정말 더 안 좋다.하지만 이러한 싸구려 PC가 윈도 독점을 형성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즉, 마이크로소프트가 복제방지에 힘쓰게 되면, 스스로의 토대를 무너뜨리게 된다. 실제 경쟁력을 따져 보면 마이크로소프트는 참 허술하다. Unix Returns 리눅스가 데스크톱 PC로서 매력적인 대안이라는 주장은 확실히 이치에 맞다. 하지만 리눅스조차 윈도 시장점유율을 파고들어갈 수는 없었다. 오히려 리눅스는 대단히 비싼 윈도 서버 시장을 파고들어서 큰 영향을 끼쳤다. 마이크로소프트조차 리눅스 서버의 위협에 반격을 시도할 정도다. IBM과 노벨, 오라클과 HP가 모두 리눅스로 이주하였고, 마이크로소프트를 동정하는 회사는 없었다. 리눅스 개발의 증가는 애플 자신의 서버 개발에도 도움이 된다. 둘 다 똑같은 서버용 소프트웨어를 공유하고, 범용 유닉스 플랫폼상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애플 맥오에스텐 서버를 역사적으로 보면, 90년대 초반의 실패를 딛고, 애플이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로 어떻게 새로운 서버 사업을 펼치는지 알 수 있다. 더해서, 애플은 나름의 개방형 개발 원칙을 채택해왔다. 주요 서버 애플리케이션을 공유시킨 것이다. 다음 기사는 지난 10년간 애플의 전략이 어떻게 펼쳐졌는지를 알아본다. ![]() What do you think? I really like to hear from readers. Leave a comment or email me with your ideas. Apple’s NeXT Server Offensive on Microso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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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2-20, 02:30 AM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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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llow Box의 죽음, 그리고 Cocoa
![]() Cocoa and the Death of Yellow Box and RhapsodyMonday, February 19, 2007넥스트로부터 입수한 기술을 바탕으로, 애플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활용하여 새로운 서버 사업을 빠르게 개발한다. 하지만 넥스트 기술을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크게 변화를 시켜 주어야 했다.1996년에서 2000년 사이, OpenStep, 그리고 옐로박스(Yellow Box)에 대한 시장의 거부 때문에, 애플은 애플 자신을 위해 맥오에스텐을 재작업해야 했다. 선의 자바나 마이크로소프트의 .Net, 혹은 오픈소스 모노처럼 크로스 플랫폼으로 할 수가 없었다. 본 글은 옐로박스가 어떻게 전략적으로 죽어야 했는지를 밝힌다. Two Failures Team Up 1996년 당시 애플은 Copland의 취소와 함께, 차세대 맥오에스로 기존 운영체제 구입 의도를 발표하였다.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NT를 짧게나마 검토해 보고, 쟝-루이 가세의 BeOS 인수 협상을 시작하였다. 그 다음, 애플은 넥스트와도 협상에 들어간다. 원래 애플은 넥스트의 운영체제 커널을 라이센스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넥스트는 운영체제로서의 NeXTSTEP 판매를 멈추고, 다른 개별 개발에 집중한 상태였다.
그러나 넥스트는 오픈스텝 채택에 어려움을 겪는다. 진보적인 운영체제가 있다 하더라도 고객이 없었던 것이다. 반면, 애플에게는 고객이 있었으나, 진보적인 운영체제가 없었다. 두 회사 간의 협상은 빠른 진척을 보여, 마흐 커널 라이센스에서 이제는 넥스트 인수로, OpenStep은 개발계획으로, OPENSTEP/Mach는 새로운 운영체제로 변모해갔다. Rhapsody and the Yellow Box: 1997-1998 1997년 1월, 애플은 기존의 맥오에스 7.6에서 새로 인수한 넥스트 기반 운영체제로 재빠르게 사용자들을 이주시킬 계획이었다. 코드명, Rhapsody라 불린 새 운영체제는 기존의 OPENSTEP/Mach 4.0에 기반을 두고 있었지만, 컬러싱크나 퀵타임과 같은 애플 기술을 통합시킨 형태였다. 이 운영체제는 PowerPC 맥과 표준형 인텔 PC에서 모두 돌아갈 예정이었다. 단, 기존 맥 애플리케이션을 위한 블루박스는 파워맥 버전에만 실렸다. 랩소디의 OpenStep 환경은 옐로박스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 고도로 포팅이 손쉬운 OpenStep 프레임웍은 넥스트의 마술이다. 게다가 윈도 NT/95 사용자들에게도 팔 수 있는 개발툴이기도 했다. OpenStep/옐로박스용 애플리케이션이라면 마술처럼 크로스 플랫폼이 가능하다. 랩소디만이 아니라 윈도, 솔라리스 등, OpenStep이 포팅되는 모든 시스템에서 사용 가능하다는 의미다. OpenStep 사양의 오픈소스 버전인 GNUStep도 리눅스용으로 개발된 것이다. 애플은 맥오에스용으로도 옐로박스를 호스팅할 계획을 짧게나마 세웠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리라 보고 빠르게 취소한다. ![]() 옐로박스 계획을 보면, OpenStep을 비웃던 세상이 각성하여, 넥스트 기술로 새로워진 맥을 칭송하고, 그에 따라 모든 소프트웨어를 아무데에서나 "잘 돌아가는" 옐로박스로 작성하는 시나리오였다. ![]() Yellow Box Falls Apart 하지만 랩소디 계획이 진전될 수록, 문제점이 드러나게 된다.
Cross Platform Rhapsody Falls Apart 그렇다고 해서 애플 서버 제품이 나오지 않지는 않았다. 애플은 수정시킨 넥스트 기술 서버 두 가지를 차례로 선보인다.
초기 랩소디 개발자버전을 받은 이들은 PC와 맥 하드웨어 양측에서 랩소디를 돌릴 수 있었지만, 실제로 나왔을 때는 써드파티 라이센스나 크로스 플랫폼 지원이 완전히 사라졌었다. 그 어떤 PC 하드웨어 업체들도 맥오에스텐 서버용으로 그럴듯한 라이센스비를 지불하려 하지 않았으며, 흥미 자체가 없었다. 애플은 여전히 언론에 의해 곧 망할 회사라는 이미지를 안게 되었고, 모두의 관심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차세대 NT인 윈도 2000에 쏠려 있었다. Mac OS X Server 1.0: 19991999년, 랩소디는 맥-전용 Power PC 버전으로 나오게 된다. 원래는 OPENSTEP/Mach 5.0이고, Mac OS X Server 1.0이라 불리었다. 여전히 디스플레이 포스트스크립트를 사용했지만, 외양만은 맥오에스 8, 코플랜드와 유사했다. 클래식 맥 애플리케이션을 돌리기 위한 블루박스 환경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 환경은 풀 버전의 맥오에스 8을 호스팅하는 가상머신이었다. 블루박스가 상당한 시스템 자원을 소모하긴 하였지만, 랩소디는 맥오에스 8 네이티브 설치본보다 맥 애플리케이션 대부분을 더 잘 돌렸다. 랩소디의 개선된 OS 기초덕분이었다. 가상 메모리 아키텍쳐가 더 나아진 면도 있었다. 새로운 맥오에스텐 서버가 나오자, 클래식 맥오에스에 기반을 둔 애플셰어는 그 수명을 다하였다. 맥오에스텐 서버는 원격으로 네트워크 이미지 부팅을 지원하는 NetBoot도 선보였다. 아이맥이 나온 이후에 나온 맥은 네트워크 컴퓨터로 부팅을 할 수 있었다. Mac OS X Leaves Rhapsody Behind 2년 후, 애플은 디스플레이 포스트스크립트가 없는 맥오에스텐 10.0을 선보이게 된다. 이 맥오에스텐은 상당한 재작성이 이뤄진 상태였다. ![]() 기존 클래식 맥 API는 Carbon으로 깔끔해지고, 옐로박스는 코코아(Cocoa)로 급격히 변모하였다. 블루박스는 클래식이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기존의 맥용 애플리케이션도 카본을 사용하여 업데이트시키면 네이티브로 돌릴 수 있었다. 즉, 카본을 사용하면, 새 운영체제의 거의 모든 기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었다. 완전히 다른 윈도서버를 추가시키는 대신, 옐로박스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너무나 많아졌다. 이에 따라 OpenStep 환경 사양에 기반한 옐로박스의 크로스 플랫폼 환경은 중단된다. 기존의 OpenStep 애플리케이션도 맥오에스텐으로 돌리려면 상당한 재작성이 필요해졌고, 맥오에스텐용 애플리케이션 또한 OpenStep 호환 환경에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The Eternal Death of Yellow Box OpenStep, 그리고 옐로박스가 모두 실패하자, 애플이 크로스 플랫폼 애플리케이션 개발용으로서 옐로박스 전략을 다시 선보일지는 극히 불투명해졌다. 선의 자바 가상머신 전략도 비슷한 이유로 실패하고, 마이크로소프트 자신도 .NET을 고유의 가상머신으로 선보이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존 Win32 개발에 비해 .NET이 분명히 더 이득이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자신도 .NET의 사용에 느린 행보를 보이고 있을 정도다. 옐로박스가 왜 다시 나올 수는 없을까? 다른 사례를 보면 그 이유를 알 만하다.
![]() Apple Runs With Cocoa 시장의 냉담한 반응을 계속 받자, 애플로서도 크로스 플랫폼 애플리케이션 개발툴 제공에 흥미를 잃게 된다. 애플로서는 기회도, 동기도 부여가 안 되었다. 애플은 맥 하드웨어를 팔게 할 만한 소프트웨어 제공을 원하지, 자바나 .NET과 같은 크로스 플랫폼 개발을 갖고 싶어하지 않았다. 더구나 .NET도 나온 마당에, 10년도 더 된 옐로박스를 이미 번잡한 시장에 밀어 넣기가 매우 어려워진 상황이었다. 게다가 별 소득 없이 자바 지원을 쫓아오던 애플은 자바나 .NET 지원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모노와 같은 노력에 다시 애플이 참가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 대신 애플은 남의 기술이 아닌, 고유의 기술에 집중한다. 코코아와 웹오브젝트(웹용 코코아라 할 수 있다) 등, 넥스트에서 나온 주요 기술을 활용한 것이다.
위 사례를 보시라. 애플은 써드파티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뿐만 아니라, 써드파티의 구색을 일부러 맞춰주지도 않는다. 그 대신 자기 제품을 만들기 위해 자기 기술을 사용한다. 빠른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있어서 애플의 놀라운 성공이 이제는 무료 개발툴들 덕분이기는 하지만, 외부 개발자들의 애플 기술 채택은 느리다. 애플이 만약 써드파티에게 가서 그 기술을 채택하느라 기다렸더라면, 오래 전에 쓰러졌을 것이다. 자기 고유의 기술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 이것 덕분에 애플은 독특하고 차별화된 제품으로 앞서나갈 수 있었다. 자기 툴을 쓰면 그만큼 경쟁사보다 더 빠르게 신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 코코아가 외양의 인터페이스를 빠르게 개발시켜 주기도 하지만, 애플은 오픈소스를 활용하여 내부 엔진의 힘도 늘려왔다. 다음 기사는 코코아와 오픈소스의 결합이 어떤 서버용 제품을 빠르게 만들어줄지 알아보겠다.: Open Source in Apple’s Server Efforts ![]() What do you think? I really like to hear from readers. Leave a comment or email me with your ideas. Cocoa and the Death of Yellow Box and Rhaps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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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OS X Server의 오픈소스
![]() Open Source in Mac OS X ServerTuesday, February 20, 200790년대 중반, 서버 시장 진입에 실패한 이후, 애플은 오픈소스를 활용하여 빠르게 새 서버 사업을 개발하고 있다.애플은 원래 1999년에, 그리고 2000년에 데스크톱용 맥오에스텐을 선보이려 했었다. 하지만 랩소디와 관련된 여러가지 문제 때문에 그 때 내놓을 수 없었다.
Darwin: 2000 랩소디에서 맥오에스텐으로의 이주작업 덕분에 애플은 커널과 코어 OS를 오픈소스로 공개할 수 있었다. 애플 고유의 부분은 빼고서 말이다. 랩소디는 2000년 2월, 맥오에스텐 서버 1.2로 조용하게 마지막 버전을 보인다. 그리고 4월달에 애플은 다윈 1.0을 내놓는다. 다윈은 핵심 운영체제의 오픈 소스코드였으며, 랩소디와는 상당히 달랐다. PC 운영체제로서의 맥오에스텐이 죽은 대신, 다윈은 PowerPC 맥과 인텔 PC 양자용으로 제공됐고, 이론적으로는 다른 플랫폼 포팅도 가능했다. 그러나 다윈의 주안점은 리눅스의 라이벌화가 아니라, 맥 개발자들에게 내부 구조를 보다 잘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애플은 또한 다윈스트리밍서버라는 이름으로 퀵타임 스트리밍 서버를 오픈소스화시키기도 하였다. 첫 번째 오픈소스이자, 표준에 기반한 무료 인터넷 스트리밍 서버가 이것이다. FreeBSD와 솔라리스, 리눅스, 윈도 NT 상에서 돌아갈 수 있었다. Criticism of Darwin 다윈 공개는 간단하지 않았다. 맥오에스텐상에서 애플은 복잡하고, 공개문서화가 안 되어있는 내부 개발 시스템, XBS를 사용한다. 애플 외부 누구도 이 시스템에 접근할 수 없으며, 소스코드로부터 맥오에스텐에 필적할만한 운영체제를 만들기란 매우 어렵다. 개발 시스템을 충분히 공개하지 않는다면서 불평하는 외부 개발자들이 있지만, 사실 다윈 프로젝트에서 의미 있는 기여를 하기란 매우 어렵다. 더구나 애플은 의도적으로 상용 버전에 앞서서 코드 변화를 시키지 않는다. 기능을 비밀로 지키는 것 외에도, 출하할 때까지의 안정성을 지키기 위한 목적도 있다. 그 시간동안 애플은 다음 버전 작업을 계속하면서, 외부 개발자들과의 접촉을 순간 끊는다. 애플의 오픈소스 전략에 대한 비판은 상용 프로젝트 개방의 어려움을 역으로 증명한다. 선도 솔라리스를 OpenSolaris로, 스타오피스를 OpenOffice.org로 개방하는 데에 있어서 비슷한 문제를 겪었다. 한 번 프로젝트를 공개하면, 오픈소스 버전과 상용 버전과의 차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Darwin is not GNU 다윈의 경우, 애플은 커뮤니티를 조성하여, 개발자들에게 나름의 운영체제 제작권을 주는 대신, 내부코드에 접근권을 가진 써드파티 개발자들에게 다윈을 제공하는 데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 ![]() 1996년부터 1998년 당시 애플이 호스팅했던 오픈소스 리눅스 프로젝트, MkLinux의 경험을 보면, 애플은 "오픈소스 커뮤니티"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지 않다. GNU/리눅스, 혹은 다른 상용 오픈소스 프로젝트와 유사하지 않다고 하여 다윈을 실패작이라 단정지으면, 리눅스와 GNU가 수 만 명의 엔지니어들의 노력과 수 천만 명의 소비자들을 거느리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무시한 처사다. 애플이 오픈소스 노력을 극적으로 바꿀 유일한 방법은 다윈을 완전히 독립적인 프로젝트로 분리시키는 것이지만, 이 경우 애플도, 개발자들도 혜택을 못 얻는다. 다윈이 상용 맥오에스텐의 내부에 접근권을 부여하는 한, 마찰과 불만은 언제나 존재할 것이다. Darwin Version Numbers 2000년 5월, WWDC에서 애플은 맥오에스텐 개발자 프리뷰 4를 선보이고, 그 해 하순에 퍼블릭 베타가 나오리라고 발표한다. 그리고 2001년 1월, 정식 버전 1.0을 약속하였다. 이 2001년 버전은 후에 10.0으로 숫자가 주어진다. 기존의 맥오에스 버전을 계승하는 의미였다. 다윈은 내부적으로 나름의 버전 숫자를 지닌다. 퍼블릭 베타 때에는 1.2.1이었다가, 10.0 정식 버전 때에는 1.3.1이었다. 그리고 그 후에는 맥오에스텐이 바뀔 때마다 다윈의 버전도 바뀌었다. 맥오에스텐 10.1.1에서 다윈의 버전은 5.1로 뛰어 넘는다. 맥오에스텐으로서는 0.0.1이 올라가는 마이너 업데이트였지만, 넥스트스텝으로서는 다섯 번째 메이저 업데이트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다윈은 8.8이다. 우연히도 맥오에스텐의 10.4.8과 일치한다. 다윈이 넥스트스텝의 여덟 번째 버전이고, 맥오에스는 10번째이며, 맥오에스텐으로서는 네 번째, 마이너 리비전으로서는 여덟번 째라는 의미다. 맥오에스텐의 빌드 버전은 다윈 8.8의 메이저 버전을 반영하기도 한다. 10.4.8 빌드는 8L127 (넥스트스텝 8.8!)이다. Mac OS X Server 10.0, 10.1: 2001 애플이 내부적으로 인텔 하드웨어상으로도 맥오에스텐을 꾸준히 돌려오면서, 운영체제는 이제 OpenStep 사양을 벗어나게 된다. 맥오에스텐 10.0은 넥스트스텝의 새로운 혈통이 되었다. 맥오에스텐 10.0 서버 버전과 무상 업데이트로 된 10.1 버전은 랩소디-기반의 서버 1.0에 있던 서버용 애플리케이션 기능 대부분을 그대로 흡수하였다. 애플은 맥오에스텐 데스크톱용을 준비하는데에 집중하였다. 데스크톱이 없다면 대중시장에 다가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Quartz vs X Window 데스크톱에서 애플이 집중한 부분은 랩소디에 있던 코플랜드 맥오에스 8의 형식을 완전히 새로운 아쿠아로 바꾸는 것이었다. 아쿠아는 디스플레이 포스트스크립트를 교체한 새로운 그래픽 렌더링/컴포지팅 엔진, 쿼츠의 투명성을 선보인 그래픽 체제였다. ![]() ![]() 오픈소스 코드를 확장시켜서 사용하는 애플의 행태를 고려하면, 리눅스나 유닉스 류의 시스템이 사용하는 기존의 공개된 X 윈도 사양을 사용하지 않고, 어째서 애플 고유의 기술을 개발했는지 의문을 품을 법 하다. 답변이 있다. 애플이 오픈소스를 쓸 때는 쓰지만, 고유의 새 기술을 개발하기도 한다. 기존 소프트웨어가 언제나 최고는 아니다. Transition to a Modern OS 맥오에스텐 10.0과 10.1은 윈도 2000처럼 이주의 문제를 겪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DOS 기반의 윈도 제품군을 NT 커널로 이주시키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윈도 2000(NT 5.0)으로도 역부족이었다. 그 다음에 나온 윈도 XP(NT 5.1)이 나와서야 윈도 기반을 DOS에서 NT로 옮길 수 있었다. 맥오에스텐 10.2에서도 유사했다. 클래식 맥오에스 9는 유닉스-기반의 맥오에스텐이 제공하지 못하는 기능을 여전히 제공하고 있었다. 2002년이 되어서야 애플은 마침내 클래식 맥오에스의 장례식을 선포할 수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DOS, NT 이주와 애플 간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마이크로소프트는 보다 폐쇄적이고 닫힌 운영체제로 이주하였다. MS-DOS 역시 공개된 운영체제는 아니었지만, 내부에 대한 이해는 광범위했다. DOS는 원래 마이크로소프트가 개선을 위한 기반으로 사용했던 CP/M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반면, NT는 처음부터 다시 만들었다. 애플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완전히 비밀이었던 맥오에스에서, 유닉스 기반으로 이주하였다. 다른 유닉스 시스템과 구조적 유사성과 함께 애플리케이션 수준의 호환성도 주면서 말이다. 그 결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운영체제나 서버 기술의 외부 발전에서 완전히 격리된 채, 고립되어왔다. 반면, 애플은 NetBSD나, FreeBSD, OpenBSD, GNU, 그 외 다른 오픈소스 프로젝트로부터 상당한 참여와 혜택을 받아왔다. Mac OS X Server 10.2 Jaguar: 2002 맥오에스텐의 빠른 진전은 재규어 때부터였다. 재규어는 데스크톱 사용자를 겨냥한 최초의 주류 맥오에스텐이었다. 재규어 서버 10.2에는 다음이 포함되어 있었다.
![]() 위의 기능은 애플이 오픈소스와 공개표준의 혜택을 상당히 받는다는 점을 시사한다. 반면 애플은 새로운 코드를 개발하여 일부는 공개하기도 한다. 스트리밍 서버나 HFS의 경우가 그러하다. 애플은 재규어의 소매판매도 시작한다. 상당한 판매량을 올린 최초의 운영체제 판매였다. 이 판매 덕분ㅇ네 애플은 맥오에스텐 프레임웍의 개선에 더 큰 투자를 할 수 있게 된다. Mac OS X Panther Server 10.3: 2003 그 해, Panther는 새로이 사파리 웹브라우저와 다시 만든 파인더, 엑스포제, 빠른 사용자 스위칭을 소개한다. 서버 측면에서 보면, 애플은 더 많은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시스템 안으로 넣고 업데이트시켰다. 삼바 3를 사용하는 Panther Server는 윈도 도메인 컨트롤러처럼 작동할 수 있다. 애플은 또한 웹개발을 위한 MySQL과 PHP를 넣고, 디렉토리 서버나 메일서버와 같은 다른 서비스도 업데이트시키고 개선시켰다. Mac OS X Tiger Server 10.4: 2005 타이거 서버 또한 고유의 애플리케이션은 물론 애플이 디자인한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혼합도 소개시킨다. 어떤 기능은 윈도 기능을 보조하기도 하였다. 가령, 애플은 Access Control Lists 지원을 추가시킨다. 이 ACL 지원은 보다 복잡한 파일 퍼미션용 메커니즘을 제공하고, 윈도에서 사용하는 파일 퍼미션과의 호환성을 허용한다. 타이거는 또한 Portable Home Directories를 소개한다. 이 기능은 서버로 데스크톱 클라이언트를 접속시켜서, 사용자 프로파일을 다운로드받게 한 다음, 서버와의 싱크를 유지시킨다. 이는 윈도에서 사용하는 싱크 셰어와 프로파일 로밍과 유사하다. 데스크톱 사용자가 원래의 사용자 프로파일을 서버와 싱크시킨다는 의미는, 데스크톱 아이템이나 다른 파일, 그 외 설정 사항을 여러 대의 머신과 싱크시킨다는 뜻이다. "Xserve를 넘어서: Xserve mini"는 애플이 가정 사용자에게 제공할 뭔가의 개념을 소개하였다. 현재는 타이거 서버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애플이 개발한 다른 기술로는 Xgrid 분산 프로세싱과 64-비트 애플리케이션 지원이 있다. 애플은 또한 웹오브젝트를 타이거 서버에 통합시키기도 한다. 원래는 5만 달러 어치의 라이센스였다. 아이챗 인스턴트 메신저 서버도 공개된 Jabber XMPP를 기반으로 하여 만들었다. 이 변화는 아이챗 클라이언트에서 나타났다. 폐쇄형인 AOL IM 시스템과도 운용성을 갖추면서, 아이챗은 이제 Jabber 시스템을 이용하여 구글톡과 같은 다른 시스템과도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타이거 서버에는 Blojsom도 번들시켰다. Blojsom은 Blossom 웹서버의 자바 버전으로서, 애플이 이 서버의 스킨을 제작하여, 간단한 블로그 설정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하지만 그 서비스가 좀 허술하기는 하다. 호스팅된 블로그에 상당한 변화를 주기가 극도로 어렵기 때문이다. 올해 하반기가 되면 나올 레퍼드 서버는 타이거 서버를 개선시킨 버전이 될 터이지만, 완전히 새로운 웍그룹과 협동 서비스도 포함하게 된다. 이 중에는 이미 무료 오픈소스 프로젝트로 나와있는 iCal 서버도 포함된다. 다음 기사에서 한 번 알아보도록 하자. ![]() What do you think? I really like to hear from readers. Leave a comment or email me with your ideas. http://www.roughlydrafted.com/RD/RDM...E587D21DF.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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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라고 멋대로 해석해버리는 제대로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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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야말로 글타래 내용과 관련도 없는 것으로 괜히 언짢게 해드리는건 아닌지 살짝 걱정했드랬었는데 좋게 생각해주시니 안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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