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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5, 09:28 AM   #1
casau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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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OS X is on the iPhone, but not the PC: The History of OpenStep

Wednesday, January 24, 2007

어째서 애플이 일반 PC에 오에스텐 판매를 시작하지 않는지 궁금해 하는 분석가들이 있다. 게다가 애플의 아이폰 발표에 대해서도 혼란스러워 하는 이들이 있다. 아이폰은 오에스텐이라 불리는 운영체제의 특별판을 돌린다. 전문가들은 이를 WinCE와 비교하기를 즐겨 하는데, 써드파티들이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을 곧바로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들이 그토록 당혹스러워 한 이유는 애플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을 따라가지 않아서이다. 어느 회사가 감히 마이크로소프트 규칙을 지키지 않은 채로 성공할 수 있단 말인가? 모두들 아시다시피 마이크로소프트는 컴퓨터 운영체제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다. 즉, PDA나 휴대폰, 타블렛 외 다른 기기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가 곧 승리할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왜 애플은 이리도 분명한 성공의 길을 따르지 않을까? 그 답변은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넥스트와 선, HP와 ARM 등을 포함하는 30년에 걸친 기술 기업 역사 깊숙이 찾아야 한다.

The Rise of Windows
여러 칼럼에서 밝혔듯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컴퓨터 시장 점유율과 윈도는 1980년대 후반, 컴퓨터 제조업체들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점유율이다.

우선, 1983년, IBM의 마이크로소프트 DOS 라이센스가 있었다. 하지만 IBM은 이를 독점적으로 라이센스하지 않은 큰 실수를 저질렀다. 따라서 컴팩처럼 IBM-PC 하드웨어를 복제한 기업들도 MS-DOS를 라이센스받아서, 동일한 제품을 판매할 수 있었다.

IBM은 큰 패배를 당하였다. 다른 컴퓨터 업체들도 마이크로소프트에게 MS-DOS 라이센스를 받아오기 시작했다. 스스로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필요를 덜어줘서였다.

시간이 흐르자, 하드웨어 기업들은 완전히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는 하드웨어 기업들에게 점차 독립되어 나아갔다. 컴퓨터 시장에서 PC 하드웨어 업체들이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는 동안, 마이크로소프트는 번영하였다.

1990년 당시, 애플은 몇 안 되는 독립 시스템 회사였다. PC 업체들은 애플의 쉬운 시스템과 룩앤필을 마이크로소프트가 내놓기만 바라고 있었다. 맥을 복제하기 위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세 번째 노력인 윈도 3.0은 최초로 대량 판매된 윈도였으며, 새로운 컴퓨터에 번들로 정착한 사실상 최초의 윈도였다.

비록 애플이 맥을 선보이기 전부터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작업이 시작됐지만, 윈도 3.0은 애플 제품보다 한참 뒤떨어졌었다. 그러면서도 5 년 늦게 나왔다. 그래도 PC 업체들은 이 윈도를 구입해야 했다.

The History of NeXT
스티브 잡스는 1986년에 애플을 떠나, 미래 컴퓨터 시스템을 스스로 만들기로 한다. 그의 아이디어는 애플에서 맥을 만들 때보다도 완전히 달랐다.

넥스트(NeXT Inc.)의 시작이다. 원래 넥스트는 기존 여러가지 컴퓨터 플랫폼 모두에게 넥스트의 신기술을 가져다 줄 소프트웨어 시스템이 목표였다. 윈도가, 누군가 살 만한 제품이 되기 한참 전부터, 윈도보다 더 나은 윈도가 될 시스템이었다.

넥스트는 애플의 연구자와 엔지니어들, 다른 기업들의 환호를 받았다. 그 결과 넥스트는 당시 존재하던 그 어느 하드웨어도(맥과 PC) 넥스트 소프트웨어를 돌릴 역량이 없다고 판단내렸다. 따라서 넥스트는 스스로 하드웨어 제조에 나섰다. 넥스트 하드웨어는 넥스트 소프트웨어의 잠재성을 완전히 발현하도록 통합된 제품이었다. 그 결과 넥스트스텝(NeXTSTEP) 운영체제를 돌리는 넥스트 컴퓨터가 탄생한다.

그런데 애플로부터 기술자를 빼간다는 제소를 받은 넥스트는, 애플과 협약을 맺어서, 소비자 시장에서 애플과 경쟁하지 않도록 동의한다. 이 때문에, 넥스트는 고등교육기관과 기업 고객에게 웍스테이션 가격으로만 팔려나갔다.

넥스트 제품은 말 그대로 진보적이었다. 리눅스가 프로젝트로 시작하기도 전 얘기이다. 넥스트는 BSD 유닉스에서 빌린 코어 운영체제 아키텍쳐를 Mach라 불린 최고의 하이브리드 커널 상에서 돌렸다.

그 위에 넥스트는 자사의 객체지향 개발프레임웍을 얹혔고, 어도비의 포스트스크립트 언어에 기반하는 디스플레이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넥스트는 주류 시스템에 전혀 소개된 바 없는 최고의 최신예 기술을 균형 있게 통합시켰다.

넥스트의 하드웨어도 마찬가지였다. 넥스트 하드웨어는 당시 그 어느 웍스테이션보다도 우수한 특화된 디지탈 신호프로세서와 더 많은 RAM, 훌륭한 그래픽을 갖추었다. 또한 넥스트는 광자기 디스크로 플로피와 하드드라이브의 중간형태를 제공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새 시스템의 가격은 10000 달러에 육박했지만, 넥스트가 제공하는 하드웨어 기능에 걸맞는 가치이긴 하였다. 애플과 IBM이 당시 내놓는 고급기종도 넥스트보다 한참 뒤떨어지면서 가격은 일만 달러에 육박했었다.

하지만 역시 높은 가격과 괴짜일 수 밖에 없는 디스크, 그리고 전용 소프트웨어의 부족때문에 넥스트는 주류로 편입하기가 어려웠다.

학술기관이나 특수목적용 개발 환경, 여러가지 정보기관에서 분명 넥스트는 환영받았다. 실제로 넥스트는 세상을 바꿨다고 할 수 있다.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가 넥스트의 빠른 개발환경을 이용하여 월드와이드웹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델도 넥스트의 WebObjects를 사용하여 역동적인 웹스토어를 구축하였고, MCI도 넥스트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혁명적인 친구, 가족 관계 소개 캠페인을 펼칠 수 있었다. 다른 경쟁사들로서는 수 년동안 못따라올 지경이었다.

PC의 하드웨어 기능이 진보를 거듭하자, 넥스트는 하드웨어를 포기하고, 넥스트스텝을 새로 나온 인텔 486 PC에 포팅시킨다. 하지만 이 시기는 이미 윈도가 깊숙이 침투한 시기였다. PC 업체들로서도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새 컴퓨터마다 모두 윈도를 번들시키겠다는 폐쇄적인 계약을 맺은 이후였다. 이는 잠재적인 경쟁 운영체제를 무너뜨렸다.

넥스트는 또한 스스로를 웍스테이션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려 노력하였다. 운영체제를 선 SPARC와 HP-RISC 웍스테이션용으로도 포팅시킨 것이다. 교체선수로서 넥스트스텝은 기존의 네이티브 애플리케이션과 완전한 넥스트 환경 양자를 제공하였다. 사용자들은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었는데, 웍스테이션과 PC에서 이 전략은 먹히지 않았다.

The History of OpenStep
그 결과, 넥스트는 소프트웨어 제공을 더 확장시키기로 결정내린다. 하드웨어를 포기한 다음, 넥스트는 코어 운영체제 자체를 선택으로 낮추고, 개발 프레임웍과 넥스트스텝 운영환경만을 끌어와서 여러가지 운영체제상에서 돌리도록 한다.

원래 넥스트는 선과 파트너를 맺어서 넥스트의 Mach/BSD 대신 솔라리스상에서 돌아가는 운영환경을 제공하기로 했었다. 이 제품이 바로 오픈스텝(OPENSTEP)이다. 여기에 HP가 가세하여, HP-UX용 오픈스텝을 지원하기로 하였고, 넥스트 자신도 윈도 NT용 오픈스텝을 포팅하였다. 이는 윈도 자체를 대체하려는 시도가 아니었다. 제품명은 OPENSTEP for Enterprise였다.

스스로의 포팅과 더불어, 넥스트와 그 협력사들은 상호운용성을 위한 공개사양을 제공하였다. 즉, 누구도 자신의 애플리케이션을 해당 시스템용으로 돌릴 수 있도록 포팅을 허용시킨 것이다. 좀 혼란스럽긴 한데, 이 또한 오픈스텝(OpenStep)이라 불렸다.

리눅스가 무료 아이디어를 널리 퍼뜨리고 주류로 진입해 들어가자, 넥스트도 자신을 무료로 풀고, 코어를 공개시켰다. 이로써 GNU 오픈소스 개발자들이 나서서 GNU/리눅스용 사용자환경을 만든다. GNU는 리눅스 커널에 오픈스텝 윈도윙 환경을 결합시킬 계획이었고, 그 결과 GNUStep이 나오게 된다.

OpenSep이 제공한 거대한 잠재력은 윈도 가게에서부터 오픈소스 개발자들, 하이엔드 웍스테이션 회사까지 쓸 만한 진보적이고 공개된 상호운용 개발 시스템을 약속하였다. 그런데 이 오픈스텝 지지자들은 갑자기 프로젝트를 포기해버리고만다. 마치 바벨탑이 무너지는 것처럼 순간적이었다.

초기부터 협력사였던 선이 문제였다. 선은 자사의 자바 프로젝트가 주목받기를 원하였다. 넥스트를 포기하기 바로 앞서서, 선은 넥스트의 주요 개발자 중 하나를 영입하여, Lighthouse Design의 운명도 가려버렸다. 그리고는 넥스트의 독특한 소프트웨어의 많은 부분을 잠궈버린 다음, 그 열쇠를 던져버렸다.

HP는 Talligent의 실패로 넥스트를 포기한다. GNU 개발자들은 OpenStep을 잠재성은 있었으나, 결코 완성되지 못한 환경으로 간주한다.

1996년, 넥스트는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PC 업체들은 모두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95와 NT를 지지하고 있었으며, 훨씬 세련된 오픈스텝에 대한 흥미는 사라져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당시 카이로를 약속했었다. 카이로는 넥스트스텝에 경쟁하기 위한 술수였으며, 시장에 결코 나타나지 않았지만, PC 업체들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저 소비자들이 돈만 내 준다면 행복하게 DOS를 팔았기 때문이다.

넥스트는 자신의 사업을 오픈스텝 포팅에서, 웹 애플리케이션 서버툴로 돌렸다. 서버-기반의 오픈스텝 애플리케이션이라면 원격 클라이언트에게 역동적인 웹페이지를 되돌릴 수 있었다. 이 제품이 바로 웹오브젝트이다. 강력한 툴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지만, 상용 웹이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경쟁도 점차 심해지게 된다.

Apple Buys NeXT
1996년 마지막 나날에 애플은 넥스트를 인수한다. 애플의 핵심 운영체제 때문이었다. 애플 경영진은 OPENSTEP의 현대적인 기능에 매혹당하였고, 재빨리 맥 사용자들을 애플 PowerPC 하드웨어의 새 시스템으로 이주시키기 희망하였다. 애플은 또한 윈도 NT 사용자들에게 OPENSTEP for Enterprise를 계속 판매할 계획이었다. OpenStep 개발 플랫폼을 확장시키기 위해서였다. 애플은 이 때부터 OpenStep을 옐로박스(Yellow Box)라 부르기 시작한다.

애플의 OpenStep 노력은 넥스트와 마찬가지로 실패를 기록한다. PC 업계는 대안을 원하지 않았다. 그저 윈도만을 원했고, 선은 자바 판매만을 원하였다.

HP는 컴팩을 인수하였고, 컴팩은 원래 DEC를 인수했었다. 이런 빅딜은 숱한 정리해고를 일으켰고, 이중에는 HP-UX와 PA-RISC, True-64, Alpha도 포함됐다. 이들은 모두 인텔이 새로 만든다는 Itanium과 새 버전의 윈도 NT로 대체됐다. 또한, 애플이 넥스트를 인수하자, 델과 다른 기업들은 웹오브젝트를 취소시킨다. 이로써 애플은 넥스트보다도 더 적은 기업고객을 맞이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동안 맥 사용자들과 개발자들은 맥오에스 교체보다는 맥오에스 유지를 요구한다. 애플은 원래 오픈스텝을 맥오에스용으로 포팅시키기 원하였지만, 기존의 시스템 7이 그에 걸맞지 않음을 재빠르게 깨닫는다.

이러한 일을 통해 애플의 넥스트 계획은 바뀐다. 원래 오픈스텝을 단순히 포팅하려는 계획이었다가, 아예 맥처럼 NeXTSTEP을 만들자로 바뀐 것이다. 첫 번째 시도가 바로 랩소디이다. PowerPC용으로 포팅시킨 NeXTSTEP에 맥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입힌 운영체제였다. 여기에 기존 맥용 애플리케이션의 호환 환경을 제공할 계획이었다. 물론 랩소디 전용 애플리케이션이라면 훨씬 더 좋게 돌아갈 터였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와 매크로미디어, 어도비를 포함한 주요 맥 개발사들이 난색을 표한다. 자신의 애플리케이션을 호환 환경으로 밀어넣을 수 밖에 없어서였다. 이들은 새 시스템용으로 애플리케이션을 완전히 재작성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랩소디는 완전한 재작성을 요구하였고, 이들은 여기에 투자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맥 판매가 주춤거리면서, 애플 또한 추락을 거듭하고 있었다.

기존의 맥 개발사들을 유지하기 위해서, 애플은 기존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네이티브 지원을 포함시켜야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유일한 방법은 시스템의 재디자인이었다. 이를 위해 애플은 랩소디를 취소시키고, 맥오에스텐이라 불리우는 새 시스템 개발에 착수한다.

맥오에스텐은 NeXTSTEP의 모든 기능에 더해, 클래식 맥오에스의 현대화시킨 API를 통합시킨 운영체제였다. 따라서 맥 개발자들은 최소한의 작업만으로 시스템을 완전히 활용하는 네이티브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었다.

The History of Mac OS X
1996년 마지막 나날과 2000년 맥오에스텐의 첫 상용판 출시 사이 기간동안, 애플은 기존의 맥오에스 7.6의 개선에 주력하였다. 사이 기간동안 판매할 물건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애플이 아닌, 넥스트가 애플을 인수한 꼴이었다. 잡스와 함께 따라온 넥스트의 인재들은 기존 애플의 경영은 물론 마케팅과 유통, 제조 부문까지 애플을 완전히 재탄생시킨다. 애플은 덕분에 부활한다.

이질적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제품군을 포기시키고, 맥 하드웨어 라인이 간결해지자, 애플은 시스템 7의 개선판인 맥오에스9과 맥오에스9를 선보인다. 그리고는 새 아이맥과 소비자용 랩톱 라인이 등장하였다.애플 자신의 소프트웨어소매 스토어도 뒤를 이어 나타났다. 그동안 맥오에스텐은 맹렬한 기세로 나타났다.

그래도 맥오에스텐 베타 판이 나오기까지는 수 년이 걸렸다. 새 운영체제는 원래의 NeXTSTEP에 기반을 두었다. 업계가 꺼려한 OpenStep 사양이 아니었다. 이는 애플이 OpenStep을 돌릴 만한 고유 운영체제를 가지지 못해서였고, OpenStep이 어도비 외 다른 기업 라이센스 기술에 의존적이기 때문이었다. 주류 맥 시장에 저가로 NeXT 기술을 팔려면, 그러한 의존도를 없애야 했다.

오픈스텝이 나왔을 무렵, 넥스트의 Mach/BSD core OS의 성장은 지지부진하였기 때문에, 애플로서는 일단 넥스트스텝부터 업데이트시키고 봐야 했다. 다행히도, BSD 코드기반은 오픈소스 개발자들이 유지하는 코드기반과는 별도였기 때문에, 애플로서는 10여년 동안 검증된 기술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 필요 없이 그대로 업데이트시키면 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애플이 넥스트 객체지향프레임웍을 업데이트시킨 결과가 Cocoa이다. 그리고 기존 맥 라이브러리의 현대화 버전은 Carbon이라 불렸다.

더해서, 애플은 어도비의 값비싼 포스트스크립트를 안쓰기 위해 그래픽 렌더링 엔진을 다시 디자인해야 했다. 애플은 디스플레이 모델로 PDF를 선택하였고, 어도비는 PDF를 공개표준으로 내보낸 상태였다. 이 그래픽 렌더링 기술만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기에, 애플은 완전히 현대적인 그래픽 기능을 통합하였다. 하지만 덕분에 맥오에스텐은 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맥오에스의 그래픽 루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결과 2000년 당시 애플은 1984년이 아닌, 2000년에 어울리는 디자인을 가진 새 운영체제를 선보이게 된다. 이 시스템의 너무나 많은 부분이 새로웠기 때문에, 맥오에스9를 대체하기위한 최적화에는 또 다시 몇 년이 더 소요되었다. 2002년, 맥오에스텐 Jaguar는 이제 애플의 표준 운영체제가 되었다.

일단 기반을 닦고 나자, 애플은 재빠르게 개선에 돌입한다. 애플리케이션 개발 루틴을 점점 더 많이 다루게 되는 새롭고 강력한 프레임웍이라든지, 그래픽카드에게 프로세싱 작업을 한 층 더 맡기는 그래픽 기능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애플은 또한 소비자용 애플리케이션과 전문가용 애플리케이션을 선보이는 등, 고유의 애플리케이션 개발도 훌륭하게 확장시켰다. 이러한 경험은 운영체제 개발 지원을 보다 더 실질적으로 추진하도록 도와주었다.

5년 동안, 애플은 점차 윈도와 호적수를 겨루게 된다.

2005년, 애플은 놀라운 발표를 한다. 맥오에스텐 지원을 넥스트 시절처럼 다중 하드웨어 아키텍쳐로 하겠다는 발표였다. 새 사업을 목표로 삼은 재빠른 변화였다. 6개월 안에 애플은 인텔 기반의 맥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1년 안에 모든 제품 라인을 인텔로 이주시켰다.

The History of ARM
최근 애플은 아이폰을 새로 발표하면서, 운영체제로 오에스텐이 들어간다고 말하였다. 아이폰은 PowerPC도 아니요, 인텔도 아니다. 아이포드처럼(그리고 대부분의 PDA와 휴대용 게임기, 뉴튼처럼) 아이폰은 ARM 프로세서 아키텍쳐에 기반을 둔 칩을 사용한다. 이 칩은 32비트 임베디드 기기의 75%를 점유하고 있다.

애플의 ARM 개발 투자는 8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애플은 Acron과 협력했었다. 1991년 ARM 파트너쉽은 ARM6이라 불리우는 ARM의 세 번째 아키텍쳐를 만들어냈고, 이 칩이 오리지날 뉴튼 메세지패드에 들어간다. eMate는 네 번째 아키텍쳐를 사용하였고, 이는 닌텐도 게임보이 어드밴스도 마찬가지였다.

초절전용 칩을 만들기 위해 DEC는 ARM 아키텍쳐를 라이센스하고, 네 번째 아키텍쳐인 StrongARM 시리즈를 만들어낸다. 애플도 이 칩을 마지막 뉴튼에 장착시킨다. 1997년에 내놓은 메세지패드 2000 시리즈이다.

그 후 DEC의 StrongARM 사업부를 인텔이 인수하여, 이름이 XScale로 바뀐다. 이 프로세서는 그 후부터 RIM 블랙베리와 Palm Treo과 같은 PDA는 물론, 델의 Axim이나 컴팩 iPaq과 같은 PocketPC, Creative Zen과 같은 뮤직플레이어에도 탑재된다.

ARM 프로세서 디자인을 라이센스한 다른 기업으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Zune을 들 수 있다. 애플의 아이포드와 아이포드 나노도 여기에 들어가고, 소니에릭슨의 일부 모델과 닌텐도 DS 시리즈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모두가 인텔의 XScale 패밀리보다는 ARM 라이센스로 여러가지 버전의 ARM 프로세서를 사용한다. 지난 여름, 인텔은 XScale 사업부를 Marvell로 판매하였다. (제조는 인텔이 계속 담당하게된다.)

It Should Come As No Surprise
10년에 걸친 ARM과의 관계를 볼 때(아이포드에서도 ARM을 사용한다), 아이폰 또한 ARM의 경험을 갖고 만들었으리라 추측할만 하다. 사실 맥월드 엑스포의 진짜 놀라움이란 아이폰에 들어간다는 맥오에스텐이다. 현재 애플은 간단히 오에스텐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당연히 넥스트스텝의 포팅성을 고려한다면, (애플의 재빠른 인텔 이주도 마찬가지다) 맥오에스텐을 ARM으로 포팅했다 하더라도 놀라워할 일까지는 아니다. 이렇게 하면 애플은 단일 코드기반을 갖고 제품라인마다 고도로 기술을 재빠르게 포팅시킬 수 있게 된다.

반대되는 내용의 잘못된 정보가 있긴 하지만, 애플은 맥오에스텐의 어느 부분도 포팅할 수 있다. 오픈소스 다윈도 여기에 포함된다. 즉, 애플이 원하는 어떠한 아키텍쳐에도 소스 발표 없이 포팅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다윈이 GPL이 아닌, BSD 스타일의 라이센스이기 때문이다.

OS X vs WinCE
윈도비스타나 XP, 윈도2000, NT 등, 데스크톱 버전의 윈도를 휴대용기기로 줄인 WinCE와 아이폰의 비교는 자연스럽다 할 수 있다. 윈도모바일 기기가 모두 WinCE를 돌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WinCE는 ARM과 인텔 프로세서용으로 포팅되어왔지만, 그 자체가 윈도NT의 포팅은 아니다. 비록 마케팅용 이름과 많은 유사성이 있긴 하지만, WinCE 플랫폼은 데스크톱용 윈도 제품군과 완전히 다른 커널과 아키텍쳐이다.

원래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NT를 인텔과 MIPS, PowerPC, Alpha 등, 여러가지 프로세서 아키텍쳐로 제공하려 했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다중 아키텍쳐 지원이 너무 버겁고, 외부 수요도 충분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사실 윈도2000부터는 오로지 인텔프로세서만이 지원된다.

즉, 마이크로소프트로서는 두 개의 운영체제를 별도로 유지해야 하지만, 애플은 거의 동일한 오에스텐만을 지원하면 끝이다. 다음의 기사는 오에스텐이 아이폰으로 어떻게 들어갔는지, 그리고 오에스텐의 포팅성이 아이폰 소프트웨어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다룰 테지만, 일단은 일반 PC용 맥오에스텐은 왜 안나올지를 먼저 언급하겠다.

PC OS X: Nope!
애플이 맥오에스텐을 일반 컴퓨터용으로 출하한다는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만 볼 때 상당히 합리적이다. 매년 600만 대의 맥을 파느라 노력하는 대신, 소프트웨어를 수 천만 본 판매하는 편이 훨씬 이득이지 않겠는가?

문제는 분명하다. 맥오에스텐의 소매점 판매본은 그만큼 맥 하드웨어 판매량의 감소를 불러들인다. 애플은 대부분의 다른 컴퓨터 업계보다 훨씬 많은 제조 이윤을 벌어들이고 있지만, 온라인과 소매점을 통해서도 이윤을 올리고 있다.

더해서, 맥 하드웨어 판매는 소프트웨어의 판매와 악세서리의 소매점 판매, 애플케어나 .Mac과 같은 서비스 판매로 이어지고, 이러한 시스템은 단순한 소프트웨어 판매 이상의 수익을 안겨다준다. 왜 이 사업망을 전부 포기하겠는가? 애플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업계 나머지를 능가하고 있다. 게다가 애플은 다른 하드웨어 업체들과는 달리 독립적이다.

소프트웨어 회사로 바꾸자는 전략은 넥스트가 이미 시도했다가 실패했음이 증명됐다. 당시 그 전략은 먹히지 않았고, 오늘날 무료로 풀리고 있는 리눅스 데스크톱도 돈이 벌리지는 않는다. OS/2에서부터 BeOS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실패하였다. 이유는 단 하나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로 돈을 버는 이유가 따로 있어서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시장을 잠궈 놓았다. 저가(30달러)로 물량공세를 펼치는 윈도는, 그 판매가 대부분 OEM을 통해 이뤄진다.

마이크로소프트가 300 달러 정도로 윈도 소매판을 판매하였다면, 대단히 저렴한 OEM 라이센스판으로부터의 수입 80%를 올리는 현재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애플은 하드웨어 판매를 통해 더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소프트웨어 위주 전략을 논하려면, 우선 애플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통합이 가져다주는 가치에 대한 지적이 있어야 한다.

맥오에스텐을 일반 PC에서 돌린다고 해 보자. 두 손가락 클릭이나 스크롤과 같은 애플 하드웨어 고유의 기능 지원은 사라진다. 파이어와이어 타겟모드도 마찬가지다. 훨씬 더 많은 드라이버 지원에 따르는 지원 비용이 소프트웨어 판매 이윤을 금새 능가할 것이다.

원래 넥스트 하드웨어상의 넥스트스텝을 비교해도 좋다. 애플은 맥오에스텐을 결코 델이나 HP에 라이센스하지 않을 것이다. 애플 스스로 하는 편이 훨씬 오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넥스트의 실패는 스스로 소프트웨어 기업이 되려했던 잘못 때문이다. 애플에게는 교훈이 될 만하다. 애플 자신도 클론 사업 라이센스를 벌였다가, 재앙적인 결과를 맞이했던 적이 있다.

더구나 윈도 독점방식을 휴대용 기기와 뮤직플레이어, 타블ㄹㅅ에 적용시키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최근 시도는 모조리 실패하였다.

PalmOS를 소니(끌리에 PDA)에 라이센스해 주었던 Palm의 노력도 실패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로 얻은 행운은 IBM, 그리고 나중의 컴퓨터 업체들의 실수 덕분이다.

애플은 일반 컴퓨터 운영체제 경쟁에 뛰어들어봤자 성공할 가능성이 없을 뿐더러, 그럴 흥미도 없다. 독특한 운영체제덕분에 애플은 매우 복제하기 어려운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맥 뿐만이 아니다. 아이폰도 그렇고, 애플TV도 그래 보인다.

그런데 오에스 텐을 아이폰에 탑재시킨 애플의 전략은 새로운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도대체 아이폰은 어떻게 오에스텐을 돌릴 수 있을까? 맥에서 돌리는 오에스텐은 기가바이트 급의 RAM을 요구한다. 다음 기사는 바로 그 부분을 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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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OS X is on the iPhone, but not the 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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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aubon 님께서 2008-03-17 12:12 AM 에 수정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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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6, 07:45 PM   #2
casau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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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 X은 어떻게 iPhone에 들어갔을까?

Apple's OS X: How Does it Fit on the iPhone?

Thursday, January 25, 2007

애플은 도대체 어떻게 아이폰에 오에스텐을 집어 넣을 수 있었을까? 맥에서는 아무리 최소 설치를 해 보았자 10GB가 필요하다. 게다가 오에스텐은 RAM도 보는대로 잡아 먹는다. 아이폰에는 하드드라이브 자체가 없다.

본 글에서는 아이폰의 시스템이 어떻게 구성될지, 이런 제한적인 환경에서 오에스텐이 어떻게 돌아갈지를 알아본다.

Where Stuff is in Mac OS X
맥오에스텐의 컴퍼넌트는 세 가지 도메인으로 나뉜다.

  • 시스템. /System에 속한다. 파인더와 백그라운드 서비스, 카본과 코코아 라이브러리 등, 운영체제의 핵심 소프트웨어가 여기에 들어있다.
  • 사용자. /Users에 속한다. 특정 사용자 계정을 위한 소프트웨어 설정이 들어간다.
  • 로컬. 나머지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애플리케이션과 함께 써드파티 툴, 프레임웍, 설정, 지원 파일 등이 속한다.

네트워크망을 사용한다면, 네트워크 도메인도 사용할 것이다. 여기에는 원격서버상의 공유 파일과 애플리케이션이 들어간다. 추가해서 BSD 유닉스 유저랜드마흐 커널도 있다. 이들은 보통 파인더에서 볼 수 없는 형태이다.

How Big is Mac OS X?
보통 맥 상에서 사용자 도메인의 파일, 즉, 영상이나 노래, 사진 라이브러리, 문서 등은 디스크 공간 대부분을 차지한다. 아이포드도 마찬가지이다. 기가바이트 급의 디스크 대부분은 사용자 파일의 몫이다. 아이포드를 돌리는 작은 애플리케이션과 운영체제의 몫이 아니다.

그 다음으로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것은 애플리케이션이다. 보통의 맥 사용자라면, 애플리케이션 폴더만 25GB가 넘어갈 것이다. 각 애플리케이션 자체도 크다. 가령, Pages와 Keynote는 둘 다 1기가씩 차지한다! 물론 그 자체가 1기가라기에는 무리가 좀 있다. 사실 이 iWork 안에 들어가는 애플리케이션 용량 90%는 프로그램의 코드가 아닌, 그래픽과 각 외국어판 파일, 도움말, 그 외 다른 리소스가 차지한다.

Diet Code
맥오에스텐의 전체 시스템 디렉토리는 iWork보다도 적은 용량을 차지하지만, 시스템 소프트웨어조차도 그래픽과 다른 리소스가 많다. 물론 다수는 아이폰에 꼭 필요하진 않은 코드이다.

가령, 0.5 기가바이트 정도 차지하는 맥오에스텐의 프레임웍을 들 수 있다. 그 중 1/4은 선 자바 가상머신 지원 파일이다. 아이폰에서 제일 밑바닥까지 훑고 들어간다면 간편한 전화기능이 나오겠지만, 아이폰에 들어갈 프레임웍은 대부분 애플 자신의 코코아 프레임웍 복제판일 것이다.

Macworld: Scorecard and Secrets of the iPhone에서 필자는 아이폰에 불필요한 코드의 사례를 제시해 보았다. 그런데 필자가 예로 든 사례가 좀 형편 없었다.

그 글은 음운 결합(합자: ligature)과 같은 사치스러운 서체기술이 아이폰에 쓸모 없다고 주장했었다. 그런데 영어에서야 합자가 장식에만 쓰이지만, 여러 외국어에서 없어서는 안 될 기능이라고 지적한 독자들이 많았다. 즉, 오에스텐에 들어가 있는 세련된 글자처리가 아이폰을 외국 시장에서도 돋보이게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가령, 필자는 Flash Lite에서 한국어 문자를 어떻게 칠지 상상이 안 간다.

필자는 또한 윈도우 겹치기나 출력 지원도 불필요하리라 말했었다. 물론 아이폰과 같은 형태에서 그런 특정 기능이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맥오에스텐에서 동 기능을 실제로 맡은 이는 Quartz 드로잉 엔진이다. Core Animation과 함께, 대시보드 비슷한 창은 물론 아이폰의 모든 그래픽을 다 맡아서 처리한다. 즉, 필요하다는 얘기다.

실제 코드 크기에 대해 생각을 좀 해보니, 필자는 필자 자신이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는 결론을 내렸다. Apple Type Services와 Quartz 드로잉 프레임웍은 분명 100MB 이내 밖에 차지 안 한다. 전체 크기를 말함이다.

아이폰이 맥오에스텐 코드의 많은 부분을 털어낼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데스크톱용 환경에서 쓰이는 팻 리소스 라이브러리를 사용할 필요 또한 없을 것이다.

Cutting the Fat
맥오에스텐을 설치하면 보통 프린터 지원 파일만 2000MB 정도 된다. 개러지밴드 또한 3000MB의 악기와 루프를 설치하고, iDVD는 거의 2000MB의 탬플릿 파일을 설치한다. 서체 또한 수 백 메가바이트를 소모하며,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나 어도비 제품들 또한 자신들의 서체를 따로 설치한다.

비교해 보자. 마흐 커널 자체는 4.6 메가바이트이다. 나머지, 안 보이는 유닉스 유저랜드와 해당 파일 전체를 합쳐도 1GB 안쪽이다. 여기에는 완전한 아파치서버와 윈도 파일공유를 위한 SAMBA 지원, 완전한 X 윈도 그래픽 환경, 개발툴, 수많은 로그파일과 그 전에 설치했던 수많은 쓰레기 파일들까지 모두 합친 양이 그 정도다.

아이폰에는 웹 애플리케이션 서버가 필요 없다. 불필요한 서비스나 그래픽을 좀 없애고 나면, 맥오에스텐을 어떻게 줄여서 아이폰에 넣을 수 있을지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Memories...
맥오에스텐을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 불행히도, 애플은 아이폰의 정확한 사양을 모두 공개하지 않았다. 그저 4GB, 아니면 8GB의 메모리가 있다는 것 뿐이다. 하지만 이 메모리 자체가 플래시 용량을 정확이 가리키는지도 아직은 모른다. 어느정도는 그럴 것이다. 아이폰은 운용을 위해 별도의 RAM이나 ROM을 필요로할지도 모른다.

  • System RAM PC의 RAM처럼, 애플리케이션이 돌아갈 초고속의 메모리이다. 전력이 꺼지면 정보도 잃는다. DRAM, 혹은 SRAM으로 알려져 있다.
  • Flash RAM 좀 느린 RAM이다. 이 RAM에서 돌아가는 애플리케이션은 매우 느리다. 저장용으로 쓰이긴 하지만 이 때에는 매우 빠른 하드디스크처럼 작동한다. NVRAM이라고도 불리며, 전력이 꺼져도 정보가 남는다.
  • ROM 펌웨어 메모리이다. 주로 부트용으로 쓰이며, 전력을 필요로하지는 않지만, 보통은 재작성이 불가능하다. 현재 ROM 이미지는 보통 Flash RAM에 들어간다.

80GB의 아이포드는 1MB의 ROM과 64MB의 RAM을 지니지만, 애플은 기술 사양 페이지에 이점을 밝히지 않고 있다. 사실 이 수치가 사용자에게는 별 상관이 없기도 하다. 아이포드 내장 메모리는 전용 OS 부팅과 음악 재생용 캐시로만 쓰이기 때문이다. (이 캐시가 있어야 항상 하드드라이브에 접근시키지 않아도 된다.) 아이포드에 RAM이 더 많이 들어간다고 해서, 아이포드가 "더 나아지지"는 않는다.

비교해 보자. 최근 스마트폰들은 돌리게 될 애플리케이션이 더 많아지는데도 불구하고, 128 MB나 64 MB의 Flash RAM만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아이폰은 기존의 4나 8 GB Flash RAM 말고도, 추가적으로 256 MB의 RAM을 가질 것이다. 오에스텐이나 관련 애플리케이션은 Flash RAM에 들어갈 텐데, 아마도 500 MB는 소요하게 된다. 그렇다면 아이폰이 기본 사양일 때, 음악과 이메일, 그 외 다른 용도로 3.5 GB가 남는다. 그래도 보통의 PocketPC나 Treo보다 28 배 더 많은 용량의 Flash RAM이다. 애플은 분명 아이폰을 소비자들이 실제로 활용하기 바랄 것이다.

리뷰는 보통 전체 RAM 수치만을 갖고 직접 비교에 들어가지만, 그렇게 할 경우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특히, 다른 아키텍쳐와 다른 종류의 메모리를 비교할 때 그러하다. 제한적인 내부 시스템 RAM을 SD 메모리카드로 쓸 수 있다는 주장을 봐도 그러하다. 그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Flash RAM 카드 삽입(Compact Flash, SD, 메모리스틱 등)은 시스템 RAM이 아닌, 파일 저장용 RAM을 올릴 따름이다. Flash RAM이 더 많다고 해서 데스크톱 컴퓨터처럼 더 큰 하드디스크와 동일한 의미가 아니다. 애플리케이션을 돌리기 위한 메모리 용량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저 사진과 데이터 파일 저장 공간이 늘어났을 뿐이다.

Palm OS와 WinCE를 비교해 보자. 이들은 RAM을 어떻게 쓸까?

Palm RAM use
Palm 기기는 원래 최소한의 RAM으로 돌아가는 디자인이었다. 오리지날 뉴튼의 시대에 나온 Palm Pilot은(10년 전이다) 0.5, 혹은 1 MB의 RAM만을 탑재했었다. Newton MessagePad 2000은 8 MB의 RAM과 8 MB의 ROM을 갖고 있었다.

Palm에서는 모든 것을 메모리에서 직접 읽어들였다. 실제로는 전혀 꺼지지가 않았고, 사실상 슬립만이 가동하였다.

2003년에 나온 Palm Treo 600은 32 MB의 RAM으로 성장하였지만, 사용자가 실제로 쓸 수 있는 용량은 24 MB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Palm OS용이었다. 도큐멘트나 고 오피스와 같은 애플리케이션 설치가 또 5 MB 정도를 차지하니, 이런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한다면 19 MB만 남게 된다. 하지만 이런 용량이 큰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한 번에 애플리케이션 하나만을 돌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Treo 650은 RAM 작동방식이 바뀐다. Flash RAM 32 MB와 시스템 RAM 32 MB로 바뀐 것이다. Flash RAM은 저장용으로서 하드드라이브 개념과 동일하다. 여기에 Palm OS용으로 9 MB의 ROM이 장착되고, 사용자가 쓸 수 있는 공간은 23 MB였다. 그런데 이렇게 될 경우 Treo 600보다 사용자가 쓸 수 있는 공간이 오히려 줄어든 셈이 된다. 똑같은 파일이 예전보다 더 큰 용량을 차지하는 문제도 있었다.

실질적으로 운영체제와 애플리케이션을 돌리는 32 MB의 시스템 RAM은 실제 컴퓨터의 RAM과 동일하다. 시작을 하게 되면 Palm OS는 Flash ROM에서 풀려나와 시스템 RAM의 15 MB 정도를 사용한다. 나머지 애플맄이션과 캐시, 카메라 캡쳐 등이 18 MB를 사용한다. 최신 Palm 700p는 128 MB의 Flash RAM을 갖췄는데, 사용자 몫은 60 MB이다. 나머지 64는 시스템 RAM이다.

제아무리 SD 카드를 넣는다고 하여 Palm Treo가 고속의 멀티태스킹 머신이 되지는 못한다. 메모리 용량은 인위적으로 제한을 받고 있으며, 이 때문에 요새 Palm은 윈도모바일에게 밀리고 있다.

Windows Mobile RAM Use
윈도모바일, WinCE는 모든 것을 커다란 RAM 디스크처럼 시스템 메모리에 저장한다. 단, 전력을 끄면 컴퓨터처럼 모든 정보가 사라진다.

윈도모바일 5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Palm과 같은 방식을 소개한다. Flash RAM에 파일을 모두 저장시키되, 일부를 시동중 시스템 RAM으로 돌리는 방식이다. 단, 기기를 끄게 될 경우에도 Flash RAM에 복사된 정보는 그대로 남는다.

윈도모바일 2003용 기기는 보통 아예 Flash RAM이 없거나, 있어도 매우 적은 용량 뿐이었다. 이 때문에 2003용 기기는 윈도모바일 5로의 업그레이드가 힘들다. 어느 정도 Flash RAM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Palm의 윈도모바일 버전 Treo 700은 128 MB의 Flash RAM을 갖는다. (PalmOS용 버전은 64 MB이다.) 윈도모바일 5용 기기는 60 MB 정도의 Flash RAM을 사용자 몫으로 남겨 놓는다.

HTC TyTN이나, 모토로라 Q, 삼성 Blackjack 등 윈도모바일 5 스마트폰과 PocketPC는 모두 64 MB의 RAM, 혹은 128 MB의 Flash RAM을 갖는다. 아이폰의 4096 MB나 8192 MB보다는 상당히 적은 양이다. 다시 말해서, 애플은 아이폰을 소비자들이 실제로 활용하기 바란다.

WinCE = OSXCE?
아이폰의 거대한 디스크 용량은 과연 오에스텐과 WinCE 간에 어떤 차이를 낳을까? 다음 기사에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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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6, 10:37 PM   #3
casau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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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모바일과 아이폰은 어떻게 다를까

OS X vs. WinCE: How iPhone Differs from Windows Mobile

Friday, January 26, 2007

아이폰이 오에스텐으로 돌아간다는 애플의 맥월드 발표는 정말 놀라웠다. 작년 중순쯤, 필자는 애플이 휴대용으로 오에스텐을 개발하기보다는 Symbian을 쓰리라 주장했었다.

그러다가 맥월드 바로 전에 필자는 새로운 맥이나 아이포드 기기가 "맥오에스텐 CE"를 돌릴 가능성은 없다고 예언했었다.

CE isN'T Windows
마이크로소프트의 데스크톱 윈도 제품군은 NT 운영체제 기반이다. 최초의 윈도 NT 3.1 이후, NT 이름으로는 4.0 까지 나오고, NT 5.0은 윈도 2000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5.1 버전은 윈도 XP로, 6.0은 윈도 비스타가 되었다. 엑스박스360도 특별한 NT에 기반한다.

NT에 기반하는 데스크톱용 윈도와는 반대로 WinCE는 윈도라는 이름과 시작 버튼과 같은 몇 가지 사용자 인터페이스 말고는 완전히 별개의 운영체제이다. 명칭의 유사성과 제조회사(마이크로소프트 하나이다) 때문에 비슷하다 여길 수 있겠지만, WincE는 단순히 윈도NT를 줄여서 만든 것이 아니다.

Mac OS X vs OS X
마이크로소프트의 NT와 WinCE와는 달리, 아이폰(아마도 새로 나온 애플 티비도 마찬가지일 듯 하다)이 사용하는 오에스텐은 마흐/BSD 커널이라든지, 코코아 프레임웍이라든지, 데스크톱용 오에스텐과 보다 공통된 부분을 갖는다.

한 달 전, 필자는 아이포드와 아이폰, iTV가 모두 애플에게 있어서 새로운 플랫폼이라고 말했었다. 모두가 같은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갖고, 아이튠스와 통합이 되며, 비일관성의 문제를 피한 일관성을 갖게 된다는 의미였다.

이를 위해서 맥오에스텐 포팅까지 필요하지는 않다. 아이포드는 이미 고유의 운영체제를 돌려서 문제를 해결한 바 있다. 하지만 될 수 있는 한 많은 부분에서 기존 기술을 재사용하면, 애플로서는 아이폰 기능을 "무료"로 얻을 뿐 아니라, 맥과 새 하드웨어 간의 새기술을 빠르게 공유할 수 있게 된다.

Mobile OS Battle Royale
새 소프트웨어, 그것도 완전히 새로운 운영체제 개발은 큰 위험이 따른다.

뉴튼 운영체제는 최종 출하까지 7년에 걸쳐 개발되었다. 넥스트스텝에서 기존의 검증된 기술에 기반한 맥오에스텐도 주류로 떠오를 때까지는 약 7년이 걸렸다.

Jaguar가 히트를 치자, 애플은 그제서야 맥오에스텐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 맥오에스텐 덕분에 애플은 5년 안에 인텔 이주를 단행할 수 있었고, 이제는 ARM-기반의 휴대용 기기로 확장시킬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되어갈지 대단히 흥미롭다. 2007년의 휴대폰 시장은 1984년 당시의 컴퓨터와 상당히 유사하다.

  • Palm OS CP/M의 역할이다. Palm OS는 지난 10년간 군림해왔다.
  • Windows Mobile DOS 역할이다. 지난 날의 표준을 갖고 클론 사업을 통해 정복을 하려 하고 있다.
  • Apple의 OS X 의 역할이다. 개념의 전환이다.
  • Linux Amiga 역할이다. 드라이버를 찾을 때까지는 아무 데도 못갈 땜장이 판타지이다.
  • Symbian 유닉스 역할이다. 현재 휴대폰 대다수를 받쳐주고 있는 상용 표준이다.

올해의 휴대폰 경쟁이 의미할 역사적인 맥락을 알아볼 방법이 또 한 가지 있다. 지난 10년간 이루어진 엔지니어링 결정을 돌아보고, 이들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다음 기사를 기다리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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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8, 12:57 AM   #4
stormfr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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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눅스가 돌아가는 모바일 기기가 널리고 널렸는데 뭐 저런 복잡한 분석을 하고 있나요?

Windows보다는 리눅스의 경우를 예로든다면 훨씬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신빙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OSX용 애플리케이션이 설치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보아 궁금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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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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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8, 04:15 AM   #5
sujun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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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stormfront 님이 쓰신 글 글 보기
리눅스가 돌아가는 모바일 기기가 널리고 널렸는데 뭐 저런 복잡한 분석을 하고 있나요?

Windows보다는 리눅스의 경우를 예로든다면 훨씬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신빙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OSX용 애플리케이션이 설치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보아 궁금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만....
뭐 그렇긴 하지만 시장을 단지 스마트폰시장에만 한정해 둔다면 위의 기사가 나름 이해가 될려고 하는데 말이죠...
현재 스마트폰 중에 리눅스를 돌리는 기기가 있나요?
제가 아는건 윈도모바일, Palm, Symbian정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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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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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8, 05:11 AM   #6
casau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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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CE와 Windows Mobile의 처절한 실패사

The Spectacular Failure of WinCE and Windows Mobile

Saturday, January 27, 2007

현재 스마트폰을 움직이는 것은 Windows Mobile과, Palm OS, Linux와 Symbian이다. 이들은 아이폰의 오에스텐에 대해 어떻게 경쟁할까? 일단은 마이크로소프트부터 시작해서 이들이 어떤 장점을 제시할지 알아보도록 하자.

마이크로소프트 윈도모바일 플랫폼 뒤에 있는 WinCE는 운영체제이며, 90년대 후반에 나타났었다. 이 때는 애플이 뉴튼을 슬슬 포기할 때였고, 당시 PalmOS 기기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었다.

WinCE는 PDA나 펜컴퓨팅 기기에 진입하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첫 시도가 아니었다. 일단 내놓고 본 다음, 마케팅 측면에서 이름을 계속 바꿔나가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려움을 탈출해 보려 하였다.

  • Windows for Pen 원래는 1991년, DOS-기반의 윈도3.1용 타블렛을 의도했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당시 윈도에 대한 잠재적 라이벌이었던 Go의 PenPoint OS만을 파괴시켰다.

    펜 컴퓨팅은 90년대 초반 한 때 유행이었다. 당시 언론은 빌 게이츠의 펜/슬레이트(slate) 컴퓨팅의 미래 발표를 보도하느라 열심이었다.

    하지만 필기인식 펜 입력은 키보드에 비해 실용적이지가 못하였다. 1995년, 펜 컴퓨팅 아이디어는 사라졌다. 남게 된 슬레이트 제품인 IBM 씽크패드는 보다 전통적인 노트북으로 변모하였다. 그래야 팔리기 때문이었다.

  • WinPad Handheld PC 1992년과 1994년 사이, 컴팩과 모토로라, NEC, 샤프를 끌어들여서 뉴튼 클론 기능을 가진 기기를 만들겠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허풍이었다. 애플이나 다른 업체에서 세련된 PDA 제품을 이미 만들고 있던 데에 반해, 마이크로소프트는 하드웨어 기술이 제한적이라면서 PDA를 비난했었다.

  • Pulsar 무선 삐삐 기기를 제공하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노력이었다. 게이츠 개인 프로젝트 중 하나랄 수 있지만, 역시 실제 제품으로는 나오지 못하였다.

    1995년 초, 마이크로소프트는 위의 실패한 제품팀원을 모두 차출하여 Pegasus라 불리우는 새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뉴튼에 들이대는 또 하나의 칼이었다. 페가수스는 원래 마이크로소프트의 WinPad 파트너인 Pulsar용 커널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2 년 후, 페가수스는 Windows CE로 이름이 바뀐다.

  • Handheld PC 1996년 11월, 첫 번째 WinCE 기기로 나타난다. 원래 WinCE 1.0 PC Companions라 불리우는 고성능의 진보적인 32-비트 기기를 약속했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원래 PDA라는 단어 자체를 기피했었다. 1993년에 이미 세련되게 기능적이었던 PDA가 뉴튼이었기 때문이다.



  • Palm PC WinCE 2.0이 나올 때인 1998년 1월에 나타난다. 이름 때문에 Palm의 고소가 이어지자,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름을 Palm-Sized PC로 바꾸었다. 그동안 Handheld PC는 배터리 부족과 기능 부족 때문에 수요처를 거의 못찾고 있었다.



  • Pocket PC 2000년 4월, WinCE 3.0이 나오자 Palm-Sized PC의 이름을 바꾼 것이 PocketPC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Palm Pilot과는 달리 PocketPC가 컬러라고 홍보했었다. 그러나 Palm에게는 다행히도, PocketPC는 배터리 수명이 형편 없었으며, 그 때문에 Palm의 기본 기능이 정말 놀라워 보일 지경이었다. 더해서 마이크로소프트 친화적인 IT 관련사들조차 컬러 화면의 Handheld PC에는 시큰둥하였다. 2001년, WinCE의 원래 컨셉이었던 Handheld PC는 사라질 지경이었다.


한 WinCE 팬 사이트는 이렇게 보았다. "불행히도 Handheld PC와 WinCE 4는 서류상으로 좋아보였지, 실제상으로는 플랫폼으로서의 생존을 하지 못하였다. ... 이 기기를 인식해주기를 바라는 희망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사상 최고의 여정이었던 WinCE는 7년에 걸쳐 계속 나왔지만 결국 거의 받아들여지지 못하였다."

"지금 이대로라면 H/PC는 사라진다. 인내심과 시간을 갖자. 그간의 경험을 보건데, 개발자들이 일어나 방향이 올바른지를 먼저 물을 것이다. Handheld PC를 위해 캠페인을 기꺼이 벌일 열혈 사용자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 수가 과연 충분하진 않았던 듯 하다! Handheld PC의 죽음 뒤, 마이크로소프트는 WinCE를 여러가지 방향으로 또 돌린다.

  • Stinger 스마트폰용 WinCE의 코드명이다. 원래는 2000년에 발표됐었다.

    2001년 존 모리스(John Morris)와 조히 테일러(Josh Taylor)는 ZDNet에 이렇게 적었다. "마침내! 마이크로소프트 스팅거가 휴대폰/PDA 콤보를 이루어내다." Handspring과 쿄세라에서 나온, 기존의 Palm 기반 휴대폰과 마이크로소프트의 프로토타입 계획을 비교한 기사였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스팅거는 우리가 지금까지 본 이래 제일 훌륭한 스마트폰이다. 또한 곧 히트를 기록하게 될 것이다." 2002년에 스마트폰으로 나오긴 하였다. 히트는 못쳤다. 여전히 못치고 있다.

  • Windows Powered CES 2001에서 발표된, 일종의 WinCE 엄호용 단어구이다. "인터넷 라디오와 웹패드, 입는 인터넷 기기"를 표방하였다. 이어서 실패한 Ultimate TV 셋톱박스와 오토모티브 캡쳐용 WinCE 이름 중 하나인 Car.NET과 같이 나왔다.

  • Mira CES 2002에서 발표된다. Windows Powered Smart Displays의 일환이었다.

    Mira는 컴퓨터용 원격 터미널로서, 휴대용 무선 디스플레이를 돌리는 WinCE였다. 집 내부에서만 작동하는 고가의 LCD 패널/저사양 타블렛을 사고싶어할 가정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였다.

    스티브 발머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Mira는 무선 전화기처럼, 무선 모니터와 같습니다." 그런데 무선 전화기가 50 달러 정도인 데에 반해, 이 Mira는 500~800 달러 하였다.

  • Media2Go WinCE로 아이포드 대항마를 맡을 WinCE였다. 비디오를 재생시켰다.

    CES 2003에 소개가 되었지만, 2004년 중순까지 연기되었으며, 이 때, Janus DRMPlaysForSure 로고로 바뀌었다.

  • Gametrac WinCE를 사용하는 휴대용 게임 플랫폼이다. CES 2004에서 티거(TIGR: Tiger Telematics)가 발표하였다.

    나중에 이름이 Gizmondo로 바뀌었으며, 400 달러, 푸시광고가 있을 경우 229 달러에 제공됐다. 이 기기를 판매한 회사는 흥청망청 돈을 써대면서, 사기와 기묘한 범죄를 저질렀고, 후에 부도 상태가 되었다.

    WinCE: Hasta la Vista
    WinCE는 마이크로소프트 제품답게 마이크로소프트병에 시달렸다. WinCE 5는 2003년 초에 발표됐으며, 2004년 후반, 롱혼[비스타]과 함께 나올 예정이었다. WinCE 5는 "새로운 수준의 보안과 견괌"을 보여줄 예정이었다. 그런 말 안 한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이 없다.

    이름이 윈도모바일 5로 바뀐 후, 2005년 5월에서야 출시가 된 이 제품은 출시 기일을 몇 달 연기시켰을 뿐 아니라, 비스타보다 일 년 반 정도 앞서 나왔다. 윈도모바일 5는 세 가지 종류의 기기를 지원한다.

    • Windows Mobile 5 Smartphones 터치스크린이 없으며 WinCE의 하부 기능을 지원한다. 윈도모바일 5용 애플리케이션을 모두 돌리지 못한다.

      하지만 그 작은 화면에서 엑셀 문서를 편집하는 듯 한 모양새를 취할 수 있다. 80년대 DOS PC 시절의 해상도 1/4 수준에서 말이다.

    • Windows Mobile 5 Pocket PC 터치스크린에 휴대용 애플리케이션을 몇 가지 번들한다. PocketPC는 모든 윈도모바일 5용 애플리케이션을 돌릴 수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 Windows Mobile 5 Portable Media Center Media2Go의 이름이 바뀐 것이다. Creative와 iRiver, 삼성, 도시바의 Janus/PlaysForSure 플레이어는 물론, 여기에 호환성이 없는 마이크로소프트 자신의 Zune 기기도 지원한다. 다른 윈도모바일용 소프트웨어를 전혀 돌릴 수 없다.

    • Windows Mobile 6 2007년 중순에 나올 계획이다. 주로 윈도비스타와 윈도비스타의 글로시, 투명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관련 있다. 여전히 WinCE 5 기반이지만, 다소 녹색을 띄게 된다.



    CE n'est pas bon
    10년에 걸친 노력에도 불구하고, WinCE는 기술을 실제로 진전시키지 못하였으며, 마이크로소프트 자신도 배불리지 못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의 모바일/임베디드 기기 분야에서 지난 4년간 수 억 달러 어치의 손실을 보았다. 여기에는 WinCE아 임베디드 윈도가 모두 포함된다.


    2006년 이 분야에서 2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지만, 이는 손실 일부를 MSN 그룹으로 넘겨서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자신도 전혀 기뻐하지 않고 있으며, 2007년에는 WinCE기기를 엔터테인먼트 그룹으로 이동시키겠다고 한다. 이제는 위에서처럼 분리되어 있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엔터테인먼트 그룹은 엑스박스Zune이라는 두 문제아를 떠안게 된다. 이 두 제품은 2005년에 6억 700만 달러의 손실을 안겼고, 2006년에는 13억 3700만 달러의 손실을 안겼다. 게다가 기타 항목에 포함된 "영업손실" 50~59억 달러는 계산에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기타에는 다음의 항목이 들어간다. "광범위한 판매와 마케팅, 제품 지원 서비스, 인건비, 법정 소송비, 재무비, 정보기술비, 조달비, 연구개발 외 기타 비용" IBM과 게잇웨이, 노벨, Real의 소송비, 그리고 유럽연합 위원회의 반독점 재판 벌금도 여기에 포함된다.

    엑스박스와 Zune까지 갈 것 없이, WinCE의 이러한 손실은 광고홍보 캠페인이라든가 기술 개발의 결과가 아니다. 누구도 WinCE 기기를 사고싶어하지 않아서일 뿐이다. 출혈판매를 하더라도 손실이 저정도이니, 이 얼마나 놀라운가!

    Sharks with Fricken’ Laser Beams vs A Rusty Shotgun
    WinCE가 나타나기 3년 전, 애플 뉴튼은 초기의 경탄과 함께, 웃음거리도 되었다. 뉴튼의 필기인식 기능이 인간의 속마음을 읽는다기보다, 자기 멋대로 시를 지어내서였다.

    필기인식 소프트웨어를 애플이 개선시킨 이후에도, 뉴튼은 "대대로 신뢰성 없는 필기 입력 시스템을 갖고있다"는 마이크로소프트 팬들의 비웃음을 들었다.

    이와 반대로, WinCE는 마이크로소프트 제품답게 전형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긴 했지만, 필기인식 기능은 전혀 제공하려하지 않았다. WinCE는 그저 작게 만든 PC였을 따름이다.

    그리고 누구도 WinCE를 비웃지 않았다.

    1988년 마이크로소프트의 보도자료문을 보면, 골드만삭스의 자산부 부사장인 존 휴이트(John Hewitt)의 말을 마이크로소프트가 인용한 부분이 나온다. 이렇게 되어있다. "Windows CE [2.1]으로 일할 수록, 미래 휴대용 운영체제에 대해 더 안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기술팀은 Windows CE 시스템의 풍부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당시 CE가 제공했던 것은 윈도95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조그마한 화면에 짜깁기해서 집어 넣은 쓸모 없는 플랫폼에 불과했다. 잘 돌아가지도 않았고, 배터리 수명도 적었으며, 특히 아웃룩과 같은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웨어에 얽매여 있었다.

    그러나 어찌 됐든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이었기 때문에, 세상은 마이크로소프트가 결국은 모든 경쟁자들을 제압하리라 확신하였다. 주요 분석가들부터 그렇게 선동했다. 결국은, 이라면서.

    Not Good At Anything
    그들은 틀렸다. 10년 후, WinCE는 경쟁이 없던 곳에 오히려 경쟁을 과도하게 부추겼다. 실제 자금이 휴대폰 시장으로 흐르자, 별도의 PDA 시장은 사라지기 시작한다.

    휴대폰에는 특히 WinCE가 잘 맞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가 WinCE를 노트북 컴퓨터에 맞게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현재 휴대폰 시장을 지배하는 자는 Symbian이고 그 다음이 리눅스이다. WinCE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5% 남짓한 점유율을 보일 뿐이다. 이를 휴대폰 시장 전체로 보면 상당히 적은 시장 점유율이다.

    휴대폰을 제쳐두고서라도 WinCE에 적합한 시장은 거의 없다. 이는 경쟁품들도 마찬가지다. 리눅스와 BSD가 그러한 특정 목적에 맞춤형으로 솔루션을 제공한다. 가령 QNX에는 리눅스나 BSD가 더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게다가 이 둘은 무료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WinCE라는 블랙홀에 왜그리 많은 돈을 잃는지 알아보면 놀랍지도 않다. 일반적인 목적의 솔루션을 갖고, "도마보다 작은 크기"에서 모든 것을 한탕에 해결하려고 우기는 탓이다.

    WinCE vs OS X
    "윈도모바일과 아이폰은 어떻게 다를까"는 애플의 오에스텐 접근이 마이크로소프트 WinCE와 어떻게 다를까를 알아보았다.

    각자 "임베디드 기기에 쓰기 위한, 슬림형 커널"로 가리킨다면 닮아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주된 차이는 이렇다. 애플에게는 하나의 유니버설 코드 기반이 있으며, 포팅도 자유롭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두 개의 완전히 다른 소프트웨어 아키텍쳐를 유지해야 한다.

    새로운 코드로의 포팅은 복잡한 일이다. 가령 .Net (Cocoa에 제일 근접한 상대이다)을 WinCE로 포팅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는 처음부터 작성을 해야 했다. 써드파티 개발사와 사용자들에게는 별 일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서로 다른 여러가지 코드풀은 문제를 일으키기 쉽다.

    그 결과 출하기일 연기(WinCE 5는 계획보다 거의 일 년 후에 나왔다)는 당연해진다. 안정성과 보안 문제(마이크로소프트는 고쳐야 할 커널과 라이브러리가 두 개 있고, 그 두 개는 완전히 다르다)도 마이크로소프트가 한 번에 제공할 수 있는 기술을 크게 제약시킨다.

    WinCE는 문제점 많은 또 하나의 윈도이다. 장소가 좀 다를 뿐이다. 10년간의 역사를 보면, 이제서야 사용가능성에 대한 접근을 하는 듯 하다. 반면 그와 동시에 전적으로 바로 구식이 되어버리고 있다.

    오에스텐은 이와 반대로, 포팅을 빠르게 해 준다. 아이폰도 덕분에 환상의 세계에서 나와, 애플이 레퍼드용으로 준비해 놓은 프레임웍에 벌써 통합되었다.

    한탕 전략이 아니다. 라이센스 위주의 전략도 아니다. 애플 고유의 특정 목적을 위한 통합 솔루션이다.

    이러한 우위덕분에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를 능가할 수 있다. 동시에, 애플은 제 시간에 코드를 제공할 수 있고, 계획한대로 기능을 제공할 수 있으며, 부분적으로는 보안성과 안정성 문제도 비켜갈 수 있다.

    Inedible Dog Food
    마이크로소프트는 WinCE를 Sega Dreamcast에 집어 넣어 보았다가, 이번에는 엑스박스로도 스스로 나서보고, 울트라 모바일 리퍼런스 PC 디자인이라는 Origami에도 뛰어들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WinCE를 포기했다. WinCE야말로 오리가미를 위한 디자인이라 주장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WinCE에서 벗어나 NT를 쓰려 한다.

    WinCE는 그 자체로 좋은 PDA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존재했을까? PalmOS를 따라잡기 위해서였다. Palm이 너무나 무능해서이기도 하였다. 얼마나 무능하였을까?

    다음 기사는 바로 그 주제를 알아보겠다.: The Egregious Incompetence of Palm

    What do you think? I really like to hear from readers. Leave a comment or email me with your ideas.

    The Spectacular Failure of WinCE and Windows Mobile
  • __________________

    casaubon 님께서 2007-02-04 07:30 PM 에 수정하셨습니다..
      Reply With Quote
    2007-02-01, 07:59 AM   #7
    serap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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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jun79 님이 쓰신 글 글 보기
    뭐 그렇긴 하지만 시장을 단지 스마트폰시장에만 한정해 둔다면 위의 기사가 나름 이해가 될려고 하는데 말이죠...
    현재 스마트폰 중에 리눅스를 돌리는 기기가 있나요?
    제가 아는건 윈도모바일, Palm, Symbian정도라....
    생각보다 리눅스 커널상위에서 돌아가는 모바일 기기가 많습니다.
    The Linux Mobile Phones Showcase
    위 사이트를 참고해 보시면 될듯합니다.

    xgl등이 좀더 발전해서 이런 모바일기기에 들어가면 더 멋진 ui를 보여줄텐데 말이죠..
    __________________
    공부하거나 공부하는척 하거나, 때려치고 어딘가에 숨어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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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2-01, 08:56 AM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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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처구니 없는 Palm의 실수연발

    The Egregious Incompetence of Palm

    Wednesday, January 31, 2007

    윈도모바일과 Palm OS, Linux, Symbian이 현재 스마트폰을 움직이는 운영체제다. 아이폰에 쓰이는 오에스텐과 이들을 비교하면 어떨까? 본 글은 Palm을 한 번 돌아보기로 한다.

    Palm의 초기 제품은 애플의 오리지날 매킨토시와 놀라울정도로 같은 전략을 취하였다. Palm에서의 방향 선택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면, 이 회사가 이 방향, 혹은 저 방향으로 나아갔을 때 운명이 어떻게 변했을지 흥미로운 생각을 할 수 있다.

    Palm 제국의 운명이 Palm의 결정으로 어떻게 변하였는지, Palm은 어찌하여 닷컴 시대의 촉망받는 기업에서, 현대 시대의 CP/M이 되어버렸는지를 알아보자. 현재 Palm은 그 시대를 다 떠나 보냈다.

    Palm의 정체성과 운영체제는 지난 10년간 여러 주인을 거치면서 급속도로 변하였다. Palm은 이 회사 저 회사로 인수 합병을 거듭하였고, Palm OS는 여러 독립 업체에게 라이센스 되어왔다.

    이와 반대로 WinCE는 안정적인 역사를 유지해온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지난 10년간 시종일관 동일한 방식을 취해왔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WinCE와 Windows Mobile의 처절한 실패사"에서 이미 다루었다.

    Palm's Unfulfilled Potential
    Palm은 결코 제공하지 못할 잠재성을 대단히 많이 선전하였다. 최신 Treo에 있는 전화 기능 통합도 너무나 엉성한 상황이다.

    Palm OS에 대한 Palm의 무능한 통제력과 하드웨어의 제약, 운 좋은 날만 잘 되는 싱크문제를 그나마 완화시켜주는 논리가 하나 있다. Palm용으로 나오는 써드파티 애플리케이션의 잠재성이다.

    이러한 오류는 서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내장된 Flash"와 시스템, 애플리케이션용 RAM의 부족함도 마찬가지다. 메모리 제한폭이 한 번 차면, Palm 기기는 싱크를 거부한다. 그러면 사용자가 손수 암호화된 애플리케이션과 데이터베이스를 지워 주어야 한다. 안정성은 또 다른 문제이다. OS 개발 문제와 하드웨어 제한이 모두 관련 있다.

    여러 모로 Palm OS는 90년대 초반, 애플의 시스템 7과 유사한 운명을 겪어왔다. Palm OS의 문제점은 결국 90년대 후반의 시스템 문제인데, 이는 10년 전에 만들어진 시스템의 문제를 90년대에 겪은 애플과 마찬가지다. 클래식 맥의 황금기는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이었다. Palm의 황금기는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이었다.

    The Golden Age of Palm: 1996-2002
    Palm Pilot 개발의 선구자, 제프 호킨스(Jeff Hawkins)는 초기에 GRiD에서 펜(pen) 컴퓨팅을 개척했었다. 소비자용 PDA 디자인을 시도한 그는 처음에 Casio Zoomer를 만들지만, 이 기기는 대실패를 기록하였다. 뉴튼의 1/10 정도만 팔려나갔다.

    Zoomer에 실망한 호킨스는 Palm Computing을 설립하여, 다른 업체의 휴대기기용 써드 파티 소프트웨어를 제작한다. 이 중에는 뉴튼용 글자입력 시스템인 Graffiti도 있었다.

    호킨스는 또한 새 PDA 플랫폼 작업도 시작하였다. 저가 시장을 목표로 하여, 소비자에게 실제로 필요한 기능만을 단순하게 집어 넣은 기기였다. Palm Pilot이다.

    호킨스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갖고 애플의 극도로 세련된 뉴튼에 대항할 회사를 찾아다녔다. 이 때, 모뎀 업체인 US Robotics사에서 Palm을 사겠다고 제의하였다. 액수는 4400만 달러였다.

    Palm Pilot은 뉴튼과 마이크로소프트 WinCE 기기 모두를 능가할 정도로 팔려나갔다. 게다가 Palm이 떠오를 때, 애플은 뉴튼을 단종시켰다. 특히 WinCE는 훨씬 간단하고 실용적인 2002년 당시의 Palm OS 기기에 비해 훨씬 경쟁에서 뒤떨어졌다.

    다만 Palm Pilot은 최고의 하드웨어와 개발 개념을 시도하지 않고, 저가 하드웨어에 간단한 작업만을 위해 디자인되었다.

    결과는 좋았다. 90년대 후반에 특히 그러하였다. 덕분에 Palm에게는 첫 Palm PDA 모델에 있어서 경쟁자가 존재하지 않을 정도였다.

    Palm에게는 행운이었다. 이 시기는 기술 제품을 대량으로 사들이는 거품 시기였다. Palm에게는 수익과 명성을 올리는 시기였다.

    Soul of a New Palm: 1995-1997
    새 Pilot PDA를 만들기 위해, Palm Computing은 DragonBall 칩을 선택한다. 원래 오리지날 매킨토시와 아미가, Atari ST, Sega Genesis에 들어간 모토로라의 68k 프로세서 임베디드 버전이었다.

    Palm의 단순한 OS는 Kadak에서 라이센스받은 멀티태스킹 커널상에서 돌아갔지만, Palm의 라이센스에는 멀티태스킹 기능 구현이 막혀 있었다.

    Palm Pilot과 애플 오리지날 매킨토시 디자인이 괜히 닮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몇 가지 유사성을 조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 68k 프로세서에 기반한 고도의 통합된 고유의 하드웨어 디자인
    • 컬러를 허술하게 재현하기보다는 실용적이고 간단한 흑백 디스플레이
    • 화려한 운영체제보다는, 유용성을 향한 집중
    • 쓸 모 없는 잠재성보다는 실용적인 툴을 지향한 디자인

    US Robotics는 1 세대 Palm Pilot 10005000을 1996년 3월, 각각 300 달러와 400 달러에 선보였으며, 1 년 뒤, 성능을 개선시킨 Palm Pilot Personal Professional 버전을 선보였다.

    두 달 뒤인 1997년 6월, 3Com이 US Robotics를 인수한다. Palm의 창립자들은 Palm 플랫폼이 새 시장으로 진출하기를 희망하였다. 그러나 3Com은 3세대 Palm인 Palm III(1998년 선보일 예정이었다)에 대해 보다 보수적인 진로를 택하였다.

    1년이 못 되어서, 호킨스와 도나 듀빈스키(Donna Dubinsky), 에드 콜리간(Ed Colligan) 등이 Palm에서 나와 Handspring을 창립한다. 미래형 Palm을 스스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Newton Supernova: 1997-1998
    1997년 이전의 애플 뉴튼 메시지패드는 1993년 이후로 이렇다 할 만한 업데이트가 없었다. 하지만 1997년 3월, 애플은 메시지패드 2000eMate 300(교육용인 작은 뉴튼OS 랩톱이었다)을 선보인다. 예전에 비해 훨씬 빠르고 크게 개선된 모델이었다.

    이러한 움직임 때문인지, 애플은 휴대용 기기 시장에 갑자기 민감해졌다. 그동안 한 3년 동안은 뉴튼의 앞날이 불확실했었다.

    이 새 모델은 애플이 NeXT를 인수한지 석 달 뒤에 발표되었다. 두 달 뒤, CEO인 길 아멜리오(Gil Amelio)는 뉴튼을 Newton, Inc.라는 독립회사로 분리시킬 것이라 발표하였다.

    이로써 1997년 7월 2일에 Newton, Inc.이 태어난다. 하지만 1 주일 뒤, 이사진의 쿠데타로 아멜리오가 쫓겨나고, 애플의 임시 CEO 자리에 스티브 잡스가 오른다. 그리고 9월 19일, 잡스는 뉴튼을 다시 애플과 합병시킨다.

    회사 움직임을 다룬 개인 메일에서 잡스는 이렇게 썼다고 얼려져 있다. "Emate의 미래는 밝습니다. 메시지패드도 잘 팔리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뉴튼 그룹을 다시 애플로 불러들여서, 판매와 마케팅 투자를 한 층 강화시킬 겁니다. 주는 것도 없이 분사시켜서 제품 판매를 떨어뜨려선 안 됩니다."

    다음 달, 애플은 뉴튼 메시지패드 2100과 함께, G3 파워북과 파워맥으로 매킨토시 라인업을 단순화시킨다. 그리고 온라인 웹스토어가 나타난다.

    비록 넥스트 인수 지출비용이 6억 6700만 달러가 포함된 수치였지만, 애플은 1997년 회계년도에 10억 달러의 총손실을 발표한다. 1 년 전, 아멜리오 시절에 입은 손실이 8억 1600만 달러였다.

    저렴한 뉴튼인 eMate는 800 달러였고, 메시지패드는 1000 달러가 좀 넘어갔다. 반면, Palm Pilot은 300~400 달러 선이었다. 이런 엄청난 가격 차이, 그리고 Palm의 훨씬 작고 실용적인 주머니 크기 덕분에, Palm은 유명해졌고, 뉴튼이 대중화되리라는 기대감이 무너졌다.

    IDC는 1996년에 6만 대의 메시지패드만을 판매했다고 보도한다. 첫 해의 10만 대에 비해 내려간 수치였다. 반면, Palm은 1년 반 만에 100만 대의 PDA를 판매한다. 확실히 Palm은 뜨고 있었다.

    한편, 인텔은 DEC의 프로세서 사업부를 인수하였는데, 여기에 메시지패드에서 쓰이는 StrongARM 프로세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인텔은 StrongARM 개발에 별 흥미를 나타내지 않았고, 애플이 1998년 2월, 뉴튼 개발을 중지시키자, 뉴튼만을 위해 가동되던 제품 라인업을 단순화시켜버린다.

    Hawkins' NeXT - Handspring: 1998-1999
    뉴튼의 공식적인 사망일로부터 몇 달 뒤, 3Com을 떠난 Palm 창립자들이 바이저(Visor)라 불리는 새 Palm PDA 작업을 시작한다.

    Handspring은 3Com으로부터 Palm OS를 라이센스받아, 기존의 Palm 소프트웨어에 호환성을 갖되 차이점이 있는 기기를 개발한다.

    Handspring은 1999년 9월에 새 Visor를 선보인다. 애플이 아이맥을 선보인지 1 년 뒤였다. 아이맥의 성공세를 타기 위해, Handspring은 바이저에 USB 지원과 맥오에스 지원을 포함시켰다. 사실, 초기 Palm Pilot을 맥에 쓰려면, 별도의 USB 연결킷이 필요했다.

    바이저는 또한 Springboard 확장 포트를 가졌다. 덕분에 바이저는 카메라나 뮤직플레이어, 심지어 휴대폰도 될 수 있었다.

    Palm Cuts Wires, Strings: 1998-1999
    Handspring의 기기들이 소비자 시장을 지향하였지만, 3Com의 Palm 개발 목표는 기업시장이었다. Palm을 휴대폰으로 돌리기보다는 전문 사용자들을 위한 인터넷 기기가 그 계획이었다.

    무선 Palm VII은 Mobitex를 사용하였다. 첫 번째 블랙베리와 양방향 삐삐가 사용한 무선 데이터네트웍의 1세대가 Mobitex이다. Palm VII은 웹클리핑이라 불리우는 단순화시킨 웹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가격은 너무 비싸진 반면, 속도는 매우 느려진다.

    Palm VII과는 별도로, 3Com의 다른 제품은 기본적인 오거나이저로 남아 있었다. 기본 PDA는 1999년 10월에 소개한 Palm V 라인이었고, V 라인은 초박형 본체에, 정말 뛰어난 배터리 수명을 지녔다. 이상하게도 II나 IV, VI같은 짝수형 모델은 나오지 않았다.

    IBM도 워크패드(Workpad)라는 브랜드로 여러가지 Palm 모델을 판매하였고, 3Com은 Palm OS를 Symbol Technologies같은 곳에도 판매하였다. Symbol Technologies는 휴대용 바코드 검사기에 Palm OS를 사용하였다. Qualcomm Wireless는 pdQ라 불리우는 휴대폰 통합형 Palm PDA를 선보인다.

    Qualcomm은 후에 전화기 하드웨어 사업을 쿄세라와 소니, 노키아, 모토로라에 판매한다. 또한 그들도 Palm OS를 쓸 수 있도록 허용하는 라이센스도 맺는다. 미니어쳐 Palm OS 시계인 Fossil이 그 예이다.

    Palm Supernova: 2000
    뉴튼 사망 2 년 뒤, Palm의 흥분은 걷잡을 수 없도록 커진다. Palm의 판매량은 폭발하고, Palm OS도 휴대용 기기판 윈도처럼 비쳐졌다.

    닷컴 거품 시절의 자유로웠던 기술 제품 구입은 이런 기술 장난감에 대한 수요를 걷잡을 수 없게 키워 놓았다. 말인즉슨, 당시 엄청난 수의 초짜 기업들과는 달리, Palm은 실제로 이윤을 올렸다는 이야기이다.

    1999년 후반, 3Com은 Palm을 독립 회사로 분리시키리라 하였다. 3Com이 실제로 원한 것은 PDA 시장의 거품이 터지기 전에 시장에서 빠져나가자였다. 3Com 내부자들은 Palm OS가 오래되었고, 그것도 그 기세를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오거나이저 기능을 가진 휴대폰이 결국은 PDA 시장을 함락시킬 터였다.

    Palm의 기업공개(IPO) 발표 이후, 3Com의 주가는 400% 상승한다. Palm 기기가 판매 제품의 1/10에 불과한 시기였다. 아래 차트에도 나와있는데, 1999년 2/4 분기 때, 3Com의 Palm 부는 4억 3500만 달러 매출에 2300만 달러의 이윤만을 올렸다. 3Com의 이윤은 그 10 배에 다다르는 30억 달러 매출에 3억 달러였다. 비교해 보면, 당시 애플은 42억 달러 매출에 3억 5300만 달러의 이윤을 올렸다.

    시장 상황도 Palm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Palm과 유사한 기기가 우후죽순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3Com은 Palm 지분을 5% 제공할 계획이었다. 이는 주당 15 달러에 3억 3천만 달러 어치였지만, 당시 주가는 훨씬 높은 가격인 38 달러에 형성되어 있었다. 시장은 꽁무니를 빼고 있었다.

    Palm 주식은 140 달러까지 치솟았다가 95 달러 선에서 정리되었다. Palm의 기업공개(IPO)로 Palm이 얻은 실제 수익은 8억 7400만 달러였다.

    95 달러의 주가로 평가한 Palm의 시가는 540억 달러였다. 훨씬 이윤이 거대한 3Com의 시가가 286억 달러였고, 당시 애플의 시가는 200억 달러였다.

    한 달 뒤, Palm의 주가는 IPO 때로 곤두박질친다. 전체 시장도 격변하고 있었으며, PDA 판매량이 특히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The Death of the PDA: 2001-2002
    Palm의 유행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WinCE가 돌아가는 휴대용 PC를 만드려고, 10년간 뉴튼을 베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1998년, 돌연한 애플의 PDA 시장 철수 때문에 갈 길을 잃은 상태였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Palm의 성공을 베껴서 Palm PC 리퍼런스 디자인을 제작할 정도에 이른다. 하지만 이 제품은 너무나 엉터리여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름을 WinCE PDA로, 2000년에는 PocketPC로 바꾸게 된다.

    쉽게 번 돈은 2001년에 그 바닥을 보였다. PDA 시장도 이제는 실용성을 요구하였고, PDA는 그 피해를 바로 받았다. Palm 판매량은 2001년, 500만 대를 기록하였다. 2000년의 550만 대에 비해 10% 하락하였다.

    Handspring은 300 달러 짜리 VisorPhone 확장 카트리지를 발매하였다. 여전히 앞서나가는 상황이었다. 이 확장 카트리지는 바이저를 GSM 휴대폰으로 탈바꿈시켜 주었다. Treo의 선구자라 할 수 있겠다.

    Handspring 판매량은 오히려 동기간 동안에 20% 늘어난 160만 대를 기록하였다. 2000년의 판매량은 130만 대였다.

    2000년, Palm OS의 PDA 시장 점유율은 86%였다. 그런데 그 후, WinCE에 기반한 Pocket PC 기기가 서서히 시장 점유율을 늘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PDA 시장 자체는 거의 성장하지 않았다.

    위 표의 노란색 선이 가트너가 측정한 전세계 PDA 판매량이다. 여기에는 Treo가 빠져 있다. Palm은 2003년, Handspring과 합병하면서 Treo 라인을 받아들이게 된다. 공정하게 하기 위해, 필자가 Treo 라인의 판매량을 파란색 선에 추가시켰다. 하지만 별로 나아보이지는 않는다.

    WinCE는 더 많은 범위의 하드웨어 지원을 약속하고, Palm OS보다 더 강력한 프로세싱 파워와 더 많은 메모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Palm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마이크로소프트는 그 약속을 뒤로도 한참 못지켰다. 하지만 Palm에게는 불행히도, 마이크로소프트의 무능함을 Palm이 활용하지 못하였다. 스스로가 실수를 워낙에 많이 저지른 탓이다.

    Palm Copies Apple: 2002-2003
    Palm은 자신이 90년대 초기의 애플과 상당히 닮았다는 점을 발견한다. 한 때 자신의 영광스러운 제국이 슬슬 마이크로소프트 라이센스로 넘어가고 있던 것이다. Palm이 펼쳤던 노력조차 애플과 상당히 유사하다.

    Copland: Palm은 Palm OS를 현대적인 기능을 갖춘 새 기반으로 갑자기 바꾸기보다, 1991년과 1997년 사이에 구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갖고 씨름했던 애플과 동일한 전략을 취하였다.

    그러나 2001년과 2007년 사이, 완전히 현대화된 Palm OS를 선보이려는 계획은 완성하지 못하였다.

    Move to RISC: 그대신, Palm은 2002년, Palm OS를 DragonBall 프로세서에서, 보다 현대적인 ARM Architecture로 이주시킨다. 68k에서 PowerPC로 이주한 애플을 생각나게 한다.

    우연히도 ARM의 투자자로서 애플은 1998년 지분을 매각할 때까지 ARM으로도 이윤을 쌓아오고 있었다. 그렇게 번 돈이 적어도 7억 9200만 달러는 되며, 이 돈이 뉴튼에 쓰여졌다.

    그런데 Palm은 더 빠른 새 프로세서에 오래된 운영체제만 가진 꼴이 되었다. 1994년 PowerPC로의 이주를 단행한 애플과는 달리 Palm 개발자들은 실제로 ARM 기반의 Palm을 완전히 사용할 수가 없었다. 본질적으로 Palm의 하드웨어 이주는 사용자에게 별다른 실질적인 혜택이 없었다.

    더 심각하게도, Palm의 이주는 애플의 PowerPC 이주보다 순탄하지도 못 하였다. 새로 나온 Palm OS 5는 더 빠른 프로세서상에서 돌아가고 더 많은 메모리를 허용하였지만, 옛 애플리케이션 다수가 새 운영체제와 호환성을 갖추지 못하였다. 하지만 새 Palm에게 절실한 것이 바로 옛 Palm과의 호환성이었다.

    Product Simplification: Palm은 여러가지 판매 모델을 단순화시키기도 하였다. 각종 숫자로 이뤄진 각 모델은 이제 소비자용 브랜드인 Zire와 전문 사용자용 브랜드인 Tungsten으로 나뉘었다.

    DIY Hardware Focus: 제일 성공한 클론 업체인 Power Computing을 애플이 결국 인수하여 하드웨어에 다시 집중했던 것처럼, Palm 또한 2003년, Treo 휴대폰의 이익을 얻기 위해 Handspring을 인수한다.

    Bring Back a Founder: Palm의 Handspring 인수는 애플의 넥스트 인수를 방불케 한다. 영혼을 잃고 혁신 죽이기를 일삼던 기존 경영진에게, 새 제품의 열정적인 비전을 갖춘 창립자를 다시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애플과 Palm의 닮은 부분은 여기서도 확인된다. 애플은 완전히 새로운 운영체제를 넥스트로부터 얻고, 넥스트의 기술로 맥오에스텐의 새로운 기반을 닦은 반면, Palm은 연속적으로 효과 없는 시도만을 계속 하였다.

    Palm이 계속 애플 전략을 뒤따라가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Psion의 EPOC를 라이센스하여 소프트웨어 기술을 쇄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EPOC가 나중에 Symbian OS로 나타난다.


    Palm Follows Pundit's Advice for Apple: 2003-2007
    저마다 애플을 고치겠다고 나선 전문가들이 언제 그랬는지 기억 나시는가? 애플은 그들 주장 대부분을 묵살하였다. 현재의 맥 사용자에게는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Palm은 전문가들의 충고를 모조리 다 따랐다. 이 때문에 만약 Palm이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류의 시나리오가 많이 나오게 되었다. 만약 존 드보락(John Dvorak)이나 폴 써롯(Paul Thurrott), 로브 엔더를(Rob Enderle), 그 외 다른 칼럼니스트들이 애플을 경영했더라면 애플이 어떻게 됐을까? 이들의 서로 상충되는 조언은 한결같았다.

    이들은 애플이 다음과 같은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한다.

    • 다른 하드웨어 업체들에게 핵심 OS를 라이센스한다.
    •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전략을 뒤따른다.
    • IT 시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직접 경쟁한다.
    •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부를 서로 별개의 회사로 나눈다.
    • Be, Inc.를 인수하여 BeOS를 받아들인다.
    • 리눅스 커널을 채택한다.
    •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윈도를 라이센스한다.

    애플은 위의 모든 공짜 조언을 무시하였다. 그런데 Palm은 위 조언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따랐다. 그 결과, Palm은 6 개월이면 구식이 되어버리는 시시한 기기나 만드는 회사가 되었다.

    License the OS to other hardware makers. Palm은 초창기 때부터 다른 업체에게 운영체제 라이센스를 하려 했었다. 그런데 Palm 자신에게 어떤 이득이 돌아갔는지는 논란이 있다. 애플처럼 Palm도 하드웨어 판매로 실제 수익을 거둬들였기 때문이다. Palm OS에 기반한 소니의 끌리에도 4년 밖에 지속하지 못하였다. 소니는 2004년에 시장에서 철수한다.

    다른 업체들의 Palm PDA 제조 능력은 수수한 정도였다. Handspring 외의 휴대폰 업체들도 충격을 주지는 못 하였다. Palm이 여전히 살아있는 이유는 오로지 Handspring을 인수하여, 팔 만한 제품, Treo를 손에 쥐었기 때문이다.

    Copying Microsoft's Windows Strategies 반복할 때마다 근사하게 들린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전략 복제의 문제점은, 이미 마이크로소프트의 지위에 있는 회사가 아니라면 절대로 이 전략으로 승리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심각한 경쟁이 있는 한, 가게 하나에서 통합시킨 제품들을 한 군데에 진열하는 식인 마이크로소프트식 전략을 쓸 수는 없다.

    애플은 자신의 힘으로 성공을 이루었다. 게다가 음악영화 다운로드, 뮤직플레이어, 애플리케이션과 통합 하드웨어로 강력한 위치에 올랐다.

    애플은 비-마이크로소프트 전략을 구사하여 일종의 마이크로소프트가 되었다. 그 결과 현재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식의 통합을 구사할 만한 위치가 되었다. 하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애플이 지배하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즉, 마이크로소프트식 전략 따라가기는 불가능했다.

    2004년 당시, Palm은 PDA 시장에서 WinCE와 시장점유율 측면에서 호적수였다. 성공 기반을 공짜로 제공해 줄 IBM도 없었고, 베낄 성공도 없었다. PDA 자체를 아무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Compete directly against Microsoft in IT markets. 대 기업 시장 PDA 판매는 Palm에게 잘 먹히지 않았다. PDA의 진정한 성장은 Handspring의 소비자 시장과 휴대폰에서 나왔다. 마이크로소프트의 WinCE도 기업시장에서 차가운 대접을 받았다. 90년대 초반 PC처럼 PDA에게 어서옵쇼하는 곳이 없었다.

    Split into hardware and software companies. 전문가들은 애플이 하드웨어부를 분리시켜서 맥과 윈도 PC를 동시에 판매하고, 운영체제회사를 따로 두어서 애플 맥과 다른 업체의 PC용으로 라이센스 사업을 덜이라는 말을 즐겨 한다. 훌륭한 아이디어같다. 하지만 역시 Palm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2002년, Palm은 Palm OS 개발부를 따로 만들어서 PalmSource로 분리시킨다. 하드웨어는 이듬해 Handspring과 Palm의 합병으로 palmOne이 되었다. Palm 사용자들에게는 혼란스러웠다. palmOne 기기에 PalmSource에서 나오는 운영체제를 받아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PalmSource는 Palm 5 Garnet (맥오에스 7의 PowerPC 버전을 생각하시라)의 후계 운영체제를 선보일 예정이었다. 그것이 Palm 6 Cobalt (PowerPC-네이티브 코플랜드를 생각하시라)였다. 그런데 하드웨어 라이센스 업체들이 코발트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코발트는 차후 Palm 기기에서 쓰이게 될 ARM 프로세서 네이티브 지원을 약속하고 있었다. 심지어 palmOne도 PalmSource의 Cobalt OS를 쓰지 않겠다 하였다.

    Buy Be, Inc. for its BeOS. 2001년, 제공할 것이 없다는 점을 Be가 증명한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Palm은 1996년 애플이 한 때 고려했던 BeOS 구입비로 1100만 달러를 치렀다. 당시 Be에게 있던 유일한 가치는 사업을 무너뜨린다는 명목으로 마이크로소프트를 고소할 수 있다는 것 뿐이었다. 결국은 협상 끝에 2300만 달러로 값이 올라갔다.

    Palm은 누구도 원치 않던 코발트 운영체제 개발을 위해 Be로부터 얻은 개발 자원을 쏟아 부었다. 스티브 사코만(Steve Sakoman)과 도미닉 쟘파올로(Dominic Giampaolo)와 같은 Be의 인재들은 애플로 가버렸다. 사코만 자신은 원래 애플에서 뉴튼 팀을 시작했던 인물이었다. 쟘파올로는 Be의 풍부한 메타데이터 검색을 제작한 장본인이었지만, 후에 맥오에스텐의 스폿트라이트 기술 설계자로 변모한다.

    Adopt the Linux kernel. Be의 남은 부분을 조금씩 낭비하면서, PalmSource는 2004년, China Mobilesoft를 인수하고, Palm OS의 미래 버전을 리눅스 커널상에서 돌리겠노라고 발표한다. Garnet과 코발트에서 쓰인 기존의 Palm 전용 커널도 지속시키면서 말이다.

    이듬해, PalmSource는 다시금 계획을 변경한다. Garnet과 코발트 개발은 이제 끝났으며, 모든 개발력을 리눅스로 이주하겠다는 발표였다. 그 후, 일본의 임베디드 개발사인 ACCESS에서 PalmSource를 인수한다.

    남게 된 palmOne이 ACCESS로부터 Garnet의 나머지를 라이센스하였고, 다시금 이름을 Palm, Inc.로 바꾸었다.

    그동안 ACCESS는 Palm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Palm OS 5를 단순히 가넷(Garnet)이라고만 불렀다. 이 "가넷"은 리눅스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현재 ACCESS 리눅스 플랫폼으로 불린다. 실질적으로 Palm과의 관련은 없다.

    License Windows from Microsoft. 그동안 다시 Palm으로 바뀐 하드웨어부는 Treo에서 쓰기 위해 윈도모바일을 라이센스하기로 결정내린다.

    윈도모바일을 지원하기 위해, Palm은 Treo의 화면 해상도를 320X320에서 240X240으로 줄여야 했다.

    WinCE 버전은 멀티태스킹 지원도 하였기 때문에, 애플리케이션 사이를 스위치할 수 있었다. 물론 백그라운드상의 다른 애플리케이션이 프로세서 사이클을 계속 잡아 먹으면서 말이다. 이 때문에 윈도모바일은 똑같은 Palm 버전의 Treo보다 훨씬 느리다는 느낌을 주었다.

    Palm의 윈도모바일 라이센스는 Palm OS의 앞날에 의심만을 남겨두었다. 게다가 개발권이 가넷으로 옮겨가기도 하였고, 스스로가 마이크로소프트에 의존적인 회사가 되어버렸다. 그로고 기기도 다른 윈도모바일 라이센스 업체와 별 차이가 없어져버렸다.

    Inedible Dog Food
    Palm OS 소화도 못한 Palm의 무능은 안 좋은 신호였다. 게다가 윈도모바일 지원도 더더욱 안 좋은 신호였다. 심지어 마이크로소프트조차 제품에 WinCE 사용을 피할 지경이다.

    소니와 다른 라이센스 업체들도 Palm OS를 포기하였다. 소니는 4년 동안 끌리에 PDA에서 Palm OS를 라이센스해왔지만, 바로 그 때 소니는 에릭슨과의 협력으로 현재 휴대폰 대다수를 점유한 Symbian OS로도 작업중이었다. Symbian은 애플의 오에스텐과 비교할 때 어떠할까?

    다음 기사에서 알아보도록 하자.


    What do you think? I really like to hear from readers. Leave a comment or email me with your ideas.

    http://www.roughlydrafted.com/RD/RDM...1512E423F.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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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2-01, 07:02 PM   #9
    casau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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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Phone은 어째서 Symbian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Origins: Why the iPhone is ARM, and isn't Symbian

    Thursday, February 1, 2007

    윈도모바일과 Palm OS, Linux, Symbian이 현재 스마트폰을 움직이는 운영체제다. 아이폰에 쓰이는 오에스텐과 이들을 비교하면 어떨까? 본 글은 Symbian을 한 번 돌아보기로 한다.

    Palm OS와 마이크로소프트 WinCE처럼, Symbian도 PDA용 소프트웨어 디자인으로 출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1998년 이후부터 Symbian은 휴대폰 전용으로 개발되어왔다. 휴대폰형 Palm OS와 WinCE는 2002년까지도 별 진척이 없었다. 게다가 Palm OS와 WinCE의 가치 자체도 의심받는 실정이었다.


    Symbian은 영국의 PDA 메이커, Psion과 노키아, 에릭슨과 같은 세계적인 휴대폰 업체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Psion에 그 근원을 둔 Symbian의 소프트웨어를 봐야, 왜 Symbian이 안정적이고 세련됐는지를 알 수 있다.

    Pre-Symbian Origins at Psion: 1980-1991
    Psion은 80년대 초, Sinclair Research가 만든 미니 홈 컴퓨터용 소프트웨어 작성으로 출발했었다. 미국에서는 Timex Sinclair in the US로 팔렸다. 이 시스템은 100 달러가 안 되는 가정용 컴퓨터의 개념을 제시했기 때문에, 초저가 시스템으로 매우 잘 팔렸다.

    1982년, 첫 6 개월만에 50만 대의 Timex Sinclair 1000가 미국에서 팔렸다. 애플과 Tandy, Commodore를 능가할 정도였다.

    Psion은 80년대 중반, Organiser와 Organiser II를 팔면서 하드웨어 사업에 들어선다. 이 오거나이저는 다중의 문자열을 표시하는 프로그램 가능한 계산기였다. 3 세대 째 오거나이저가 나오면서, Psion은 완전히 새롭고 세련된 16 비트 플랫폼, SIBO(SIxteen Bit Organizer) 작업을 시작한다.

    SIBO는 완전한 키보드, 그리고 윈도윙 환경과 아이콘을 사용한 그래픽 디스플레이를 사용하였다. 업데이트시킨 Timex Sinclair mini PC와 닮은 SIBO는 첫 번째 실질적인 PDA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Psion 3가 1991년에 나타난다. 애플 뉴튼이 나오기 좀 전이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첫 번째 WinCE Handheld PC가 나타난 1996년보다는 5 년 앞서 있었다.

    Psion 3 오거나이저는 Acorn Computer사에서 Acorn Pocket Book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하였다.

    Acorn's RISC Machine: 1983-1997
    Acorn은 애플의 영국판이랄 수 있다. 70년대 후반, Acorn은 애플과 유사하게 6502 기반의 컴퓨터를 판매하기 시작하였고, BBC가 후원하는 컴퓨터 교육 계약을 하게 되었다. 애플 II에 필적하는 1981 BBC Micro가 이 때 나왔다. 덕분에 Acorn은 영국 가정/교육 시장에서 강력한 지위를 구축할 수 있었다.

    Acorn Business Computer로 기업시장에 발을 들여놓으려 했던 점도, 애플의 불운한 애플 III와 비슷했다. Acorn은 Tube라는 다중 프로세서 아키텍쳐도 개발하였다. BBC Micro 디자인의 속도를 늘리기 위해서였다. 이 시스템은 두 번째 프로세서를 사용하여 6502와 호환성을 지키면서 성능을 확장시켰다.

    • 한 모델은 CP/M을 돌리는 Z80을 사용하였다.
    • 한 모델은 DOS를 돌리는 인텔 286을 사용하였다.
    • 한 모델은 유닉스를 돌리는 Nat Semi 32016을 사용하였다.

    차세대 그래픽 시스템용 프로세서를 찾는 중에, Acorn은 맥의 모토로라 68000과 65C816 (6502의 16비트 버전으로서 Apple IIGS에서 사용하였다)을 모두 거절하였다. 둘 다 BBC Micro를 위한 Tube 아키텍쳐를 지원할 수 없어서였다.

    Berkeley RISC 프로젝트의 영향을 받은 Acorn은 1983년, ARM(Acorn RISC Machine)이라 불리우는 프로세서 개발에 나선다. Acorn은 VLSI Technology사와 협력하여 새로운 32-비트 RISC 프로세서를 만들기로 한다. 이 프로세서는 6502 디자인 일부를 빌려온 고도로 단순한 디자인이었다.

    1987년 중반, Acorn은 ARM 프로세서에 기반한 첫 번째 컴퓨터, Archimedes를 선보인다. 80년대 후반까지 BBC는 영국과 아일랜드, 호주의 각급 학교에 이 아르키메데스 컴퓨터를 설치하였다.

    비록 모토로라 68000보다 훨씬 현대적이고, 더 빠르긴 했지만, Archimedes는 매킨토시와 Amiga, Atari ST와의 유사성이 더 많았다.

    아르키메데스는 애플의 시스템 7처럼 Acorn의 RISC OS를 돌렸다. 그래픽 환경에 싱글유저, 싱글-쓰레디드 시스템으로서 협력형 멀티태스킹과 소소한 메모리 보호 기능을 갖추었다.

    ARM Gets Attention: 1990-1997
    1987년, 애플은 AT&T와 함께 실험적인 호빗(Hobbit) 프로세서 작업에 들어간다. 원래는 스티브 사코만(Steve Sakoman)의 뉴튼 프로젝트에서 사용할 예정이었다. 그 시점에서 뉴튼은 맥의 타블렛 버전 개념이었다.

    1990년, 사코만이 쟝-루이 가세와 함께 애플을 떠나 Be를 창립하자, 뉴튼 프로젝트는 재평가를 받는다. 사코만의 뉴튼 디자인은 호빗 프로세서 세 개로 필기인식을 구현하였지만, 너무나 값이 비싸게 먹혔다.

    따라서 애플은 Acorn의 ARM 프로세서를 검토하기 시작한다. ARM 프로세서는 68000보다 더 빠른 속도와 더 작은 크기, 훨씬 에너지 효율적인 패키지였다. 1990년, 애플은 Acorn, VLSI와 협력하고, 프로세서 회사를 따로 세운다. 바로 Advanced RISC Machines이다.

    이 새 파트너쉽은 3 세대 째의 ARM, ARM6를 탄생시킨다. 바로 이 칩이 애플의 1994년 뉴튼과 Acorn의 1994 RISC PC에 들어간다.

    ARM에 대해 애플과 협력하면서, Acorn은 Psion과도 협력하고 있었다. 오거나이저 시장을 확대시키던 Psion은 1997년, Series 5에서 ARM 프로세서를 채택한다.

    Palm처럼, Psion은 "4"라는 숫자를 피한다. 오거나이저 시장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중국과 일본, 한국에서 "4"가 죽음을 의미해서였다.

    Psion's EPOC: 1997-1998
    Series 5는 640x200의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에, 완전한 키보드를 주머니 크기로 집어 넣었다. 뉴튼이나 Palm Pilot보다는 WinCE Handheld PC에 가까운 개념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Series 5는 마이크로소프트 WinCE보다 수 년은 앞서 있었다. 1998년에 애플로부터 분리된 Magic Cap의 남은 부분을 라이센스할 때까지 WinCE는 방향을 알 수 없었다.

    Psion은 Series 5의 32-비트 ARM 프로세서, EPOC32용 운영체제를 완전히 새로 개발한다. 이 운영체제는 선점형 멀티태스킹과 메모리 보호를 갖추었고, 써드파티 라이센스를 허용하는 디자인이었다. 즉, 핵심 GUI 클래스에 기반하는 개별 그래픽 인터페이스 개발이 쉬웠다.

    1998년 중순, Psion은 소프트웨어부를 따로 독립시킨다. 에릭슨과 노키아, 파나소닉과 모토로라가 같이 투자한 Symbian 파트너쉽으로의 분리였다. EPOC32는 이제 Symbian OS로 알려지게 된다.

    Psion Pulls a Palm: 1998-2004
    Palm처럼, Psion도 소프트웨어부와 하드웨어 부로 나눠서 라이센스를 내리라는 충고를 받아들였다. 전문가들이 애플에게 하는 충고이다. 이 전략은 마이크로소프트의 WinCE 전략이었고, 심지어 애플도 뉴튼 OS와 하드웨어 디자인을 라이센스하려고 시도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Symbian 파트너쉽을 통한 OS 라이센스를 하면서, Psion은 맥 클론 시절의 애플과 유사한 위기를 겪는다. Psion 자신의 하드웨어 판매가 다른 Symbian 협력업체 제품, 특히 노키아 때문에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Psion은 또한 Odin이라는 무선 통신기기를 개발하기 위해 역시 Symbian 협력업체인 모토로라와 공동투자를 대량으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1년, 모토로라가 발을 뺐고, 2003년에는 아예 Symbian 파트너쉽에서 모토로라가 철수한다.

    이 때문에 그나마 남아 있던 Psion의 하드웨어부 사업이 마비된다. 앞서 선보인 제품의 서비스만이 남게 되었다. Psion은 WinCE 그룹 중 하나인 Teklogix와 협력을 맺고, 2004년 Symbian의 지분을 노키아와 파나소닉, 지멘스와 소니 에릭슨에 매각한다.

    A Glorious Phoenix from the Ashes: 1998-2007
    부모인 Acorn과 Psion이 사라졌지만, ARM과 Symbian은 임베디드, 휴대용 기기 시장에서 급성장을 거듭한다. 전세계 32-비트 임베디드 기기의 75%가 ARM 프로세서를 사용하며, 스마트폰 시장의 절대다수가 Symbian을 돌린다.

    1998년 뉴튼을 포기한 애플은 2001년, 아이포드와 함께 ARM 프로세서를 다시 사용하게 된다. 대부분의 아이포드는 두 개의 ARM 프로세서를 갖는다. 둘 다 상대적으로 느린 90 MHz 속도로 배터리 수명에 이바지한다. 그래도 오리지날 뉴튼 메시지패드에 장착된 20 MHz보다는 훨씬 빠르지만 말이다.

    현대적인 PDA와 MP3 기기(Palm Tungsten과 Treo, 더 새로운 BlackBerry, 마이크로소프트의 Zune, PlaysForSure 플레이어, Pocket PC PDA를 포함한다) 모두가 훨씬 빠른 버전의 ARM 프로세서를 사용한다. 그래야 할 이유가 있다. 제각기 비효율적인 소프트웨어를 쓰기 때문이다.

    Palm이나 마이크로소프트에 의존적인 업체들과는 달리, 스마트폰 업체 대부분은 Symbian 아니면 리눅스를 사용한다. 리눅스는 보다 복잡한 인터넷 기기를 돌리는 데에 장점이 있지만, 세계적인 휴대폰 업체들은 Symbian 개발에 깊숙이 투자한 상태다. 게다가 Symbian의 안정성과 인터페이스 제작의 용이성덕분에, 휴대폰 개발에 있어서 Symbian은 빠르고 쉬운 선택이 되었다.

    Symbian은 최근 Symbian OS를 장착한 스마트폰이 1억 대가 팔렸다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애플은 ARM 기반의 아이폰에 왜 Symbian을 장착시키지 않았을까?

    지난 해, "iPhone의 미신과 휴대폰 4"에서 필자는 애플이 Symbian을 채택하지 않을까 했었다. 게다가 애플이 만드는 스마트폰이라면, 완전한 컴퓨터도 아니고, 비디오 아이포드 미디어 기기도 아닌, 다소 단순한 전화기이지 않을까 추측했었다.

    Inedible Dog Food
    아이폰과 비슷한 기기를 만드는 다른 회사들도 모두 Symbian을 사용할 것 같지는 않다. 심지어 세계 최대의 휴대폰 업체이자, Symbian의 제 1주주인 노키아도 인터넷 타블렛 제품인 자사의 770N800을 GNU/Linux 기반으로 만들었다. Symbian OS가 스마트폰용으로는 좋은 기반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컴퓨팅 기기용으로서는 적합하지가 않아서이다.

    더구나 장기적으로 개발력을 코드 기반에 집중시키고 싶어하는 회사라면, 외부 개발자들이 관리하는 상용 제품에 묶이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Symbian이 WinCE보다 매력있다고 하기는 힘들다.

    Lessons from Sony
    업체 취향에 맞게 전화 제품을 내보내고 싶어하는 라이센스 업체들은 이미 Symbian으로 단물을 마셨다.

    한편 에릭슨과 협력한 소니도 Symbian OS를 들여오는데, 부분적으로만 들여온다. 에릭슨이 Symbian에 대규모로 투자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소니 자신이 다른 업체의 소프트웨어를 갖고 소니 제품을 경쟁시켰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니는 끌리에용으로 Palm OS를 라이센스하고, VAIO PC용으로 윈도XP도 라이센스하였다. 어느 제품도 좋지는 않다. 소니의 하드웨어 실력을 알아주기는 하지만, 소프트웨어가 포함된 경우는 하드웨어와의 통합을 엉성하게 시킨다.

    소니에릭슨의 Symbian 휴대폰도 같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하드웨어 좋고, 소프트웨어도 좋다. 하지만 이 둘을 합쳤을 경우, 별로 좋지 않은 제품이 나온다.

    An Open and Closed Case For Symbian
    비록 계속 Symbian 휴대폰을 만들고 있긴 하지만, 모토로라는 Symbian 파트너쉽에서 발을 빼 놓은 상태다. 또한 모토로라는 WinCE 휴대폰도 손대고 있긴 하다. 그래도 모토로라의 진짜 초점은 리눅스에 있다. 특히 중국은 Symbian이나 마이크로소프트 WinCE와 같은 서양의 폐쇄적 기술보다는 오픈소스가 각광받는 곳이다.

    이런 관점에서 애플이 Symbian을 택하지 않은 이유를 알 만 하다. 초창기 아이포드와는 달리, 아이폰은 Symbian이 제공하지 못하는 애플리케이션을 지원하는 완전한 소프트웨어 플랫폼이다. 더구나 애플로서도 계획한대로 통합도를 올려서 통제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휴대용 컴퓨터에 모바일과 미디어 애플리케이션을 갖고 있다고 본다면 아이폰은 스마트폰이 아니다. 애플은 이미 완전한 컴퓨터 환경에 어울리는 플랫폼을 갖고 있다. 그런데 리눅스도 모두들 쓰고 있다. 세련된 휴대용 기기에서 애플의 오에스 텐은 리눅스와 어떻게 다를까?

    다음 기사는 그 주제에 대해 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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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rigins: Why the iPhone is ARM, and isn't Symb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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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saubon 님께서 2007-12-27 05:57 PM 에 수정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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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2-01, 11:10 PM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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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NU와 리눅스, 그리고 아이폰

    Mac OS X vs Linux on the iPhone and Mobile Devices

    Friday, February 2, 2007

    윈도모바일Palm OS, Linux, Symbian이 현재 스마트폰을 움직이는 운영체제다. 아이폰에 쓰이는 오에스텐과 이들을 비교하면 어떨까? 본 글은 리눅스를 한 번 돌아보기로 한다.

    휴대 기기용 리눅스의 사용은, 아이폰에 데스크톱 맥오에스텐의 한 버전을 사용하려는 애플식 접근과 유사하다. Palm OS에서 마이크로소프트 WinCE, Symbian 등 다른 휴대기기용 운영체제도 그 시작부터 PDA는 아니었다. 나중에 휴대폰용으로 채택이 된 것이다.


    오에스텐도, 리눅스도 휴대기기용으로 태어나지는 않았다. 둘 다 일반적인 목적의 컴퓨터 환경용 디자인으로 태어났다.

    즉, 간단한 전화기용으로는 최선의 선택이 아닐지라도, 둘 모두 인터넷 기기와 미디어 플레이어로 전화기를 활용할 때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본 글에서는 역사적인 의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Pre-Linux GNU: 1983-1990
    사실 사용자 대부분이 리눅스를 다룰 때 맞닥뜨리는 부분은 전혀 리눅스가 아니다. GNU 유저랜드(userland)일 뿐이다. 1983년, 리차드 스톨만(Richard Stallman)이 만든 것이 GNU 프로젝트이다. 그는 상용 유닉스와 호환성을 갖되, AT&T의 비싼 라이센스 비용을 내지 않는 완전한 자유 컴퓨팅 환경을 일구고자 했었다.

    80년대 GNU는 유닉스-스타일의 유저랜드 패키지와 프로그램을 제공하였다.

    • GCC: GNU Compiler Collection
    • GNU C library
    • GNU Binaries Utilities
    • GNU Core Utilites
    • bash command line shell
    • GNU Emacs: 텍스트에디터

    GNU HURD and Microkernels: 1990-1996
    1990년의 GNU 유저랜드는 거의 완성이 되어 있었으며, 그 때의 관심사항은 커널 구축이었다. 기존의 "모노리딕" 운영체제 커널을 마이크로커널 디자인으로 교체하려는 시도는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상당한 유행세를 탔었다.

    GNU는 마이크로커널과 외부 서버를 한데 모아 GNU HURD를 만들 계획이었다. 이 GNU HURD는 기존의 전통적인 유닉스 커널을 진보적인 기술로 바꾸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개념은 간단했다. 로우레벨에 모든 것을 관장하는 하나의 거대한 코드가 아닌, 작고 매우 안전한 마이크로커널을 디자인하자가 그 목표였다. 이 마이크로커널은 저변의 하드웨어하고만 상호작용하면서, 그 위에 있는 외부 서버와의 메시지 교환으로 돌아가는 방식이었다.

    마이크로커널 시스템은 프로세서 포팅이 더 간단하고 간편하며, 퍼포먼스 최적화도 더 쉽고, 한 번에 다중 운영체제를 모두 지원할 수 있는 잠재성도 갖고 있었다.

    그동안 마흐에 관심을 지대하게 갖고 있던 곳은 CMU(카네기멜론대학)였다. 전통적인 BSD 유닉스 커널에 마이크로커널을 입힌 실험이 바로 마흐(Mach)다. 마흐는 두 번째 버전에서도 아직 진정한 마이크로커널이 아니라, 멀티쓰레딩 커널 개념을 통합한 다소 잡종 디자인이었다. 게다가 외부 서버 컴퍼넌트로 모든 BSD 코드를 내몰지도 못하였다. 그 기능은 버전 3에 계획되어 있었다.

    NeXT(넥스트)는 마흐 2.5로 독자적인 운영체제 작업을 시작하였고, 여기에 OSF와 애플, IBM, GNU가 가세하였다. 넥스트와는 별개로 이 회사들은 마흐 3을 완전한 마이크로커널로 제작하려 하였다. 하지만 문제점이 많았다. 마이크로커널 디자인은 일반적인 목적의 컴퓨팅에는 잘 어울리지 못하였다.

    그리고 90년대 중반, 윈도NT를 갖고 마이크로소프트도 마이크로커널 유행에 동참한다. 하지만 다른 회사들은 모두 마이크로커널 디자인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NT 3.x에서 유사한 문제를 발견하였고, 컴퍼넌트를 커널 안쪽으로 밀어 넣어서 퍼포먼스를 개선시키는 등, NT 3.x를 상당히 변화시켰다. 이 모두가 안정성과 안전성을 담보로 한 것이었다. 다름 아닌, NT 4.0이다.

    The Linux Kernel: 1991-1996
    1991년, 리누스 토발즈(Linus Torvalds)는 BSDi에 대한 AT&T가 일어나기 직전에, 완전히 새로운 커널을 목표로 Linux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어진 AT&T 소송 때문에, 완전하면서 무료인 유닉스 대안은 이제 BSD 밖에 안 남게 되었다. 하지만 미래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당시 소송은 해결이 되었지만, 이러한 상황 때문에 리눅스가 AT&T와 BSD에 이은 제 3의 대안으로 떠오르게 된다.

    리눅스 커널은 기존의 모노리딕 커널 디자인을 따랐다. 사실 BSD를 다시 만들었다 할 수 있지만, 자발적인 재능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냈다고 할 만 하다.

    GNU의 HURD 마이크로커널이 실패로 끝난 이후, GNU 프로젝트가 완성시킨 유저랜드 소프트웨어와 리눅스 커널의 조합은, 완전하되 무료 유닉스 대안을 제공하였다. 따라서 GNU/리눅스라는 용어가 나오게 되지만, 일반적으로는 그저 리눅스라 불린다.

    리눅스는 동일한 GPL 라이센스인 GNU 소프트웨어 라이센스로 제공된다. 즉, 리눅스의 어느 부분도 자유로이 최적화시킬 수 있다. 리눅스는 또한 소스코드와 개선점을 모두 공개하는 한, 배포가 자유롭다.

    수많은 기업이 자사판 리눅스를 만들어냈으며, 필요에 따라 특수하게 만든 곳도 있고, 이미 무료로 입수가능한 제품을 다시 재판매하여 수익을 거두는 곳도 있다.

    애플은 1996년, OSF와 함께 리눅스 배포판인 mkLinux를 만든다. 이 리눅스는 마흐 3.0 마이크로커널상에서 돌아가며, 맥 하드웨어에서 리눅스를 쓰려는 리눅스 사용자들을 겨냥하였다.

    그 해 말, 넥스트를 인수한 후, 마흐 3.0이나 리눅스에 대한 애플의 관심은 줄어든다. 넥스트의 마흐/BSD 잡종 커널상에서 새 운영체제를 개발해야 했기 때문이다. 맥오에스텐의 코어를 차지하는 이 커널은 다윈 오픈소스 프로젝트로 나타난다.

    Linux vs. Darwin at Apple: 1997-2007
    1997년의 세상은 1992년의 마흐 유행때처럼, 리눅스에 열광하였다. 마흐 3.0 개발이 실망을 가져온 이후, 마흐에 대한 열광은 사그라들고 없던 때였다.

    용어도 제대로 소화 못하는 컬럼니스트와 분석가들도 나선다. 애플의 엔지니어링 해결책으로 마흐를 몰아내고, 다른 모두처럼 리눅스를 쓰라는 조언을 하기 시작한 때도 이 때이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애플의 엔지니어들은 리눅스와 넥스트의 마흐/BSD 커널에 모두 친숙했다. 그리고 둘 모두가 동시에 개발되고 있었다. 게다가 애플은 A/UX와 IBM의 AIX, Copland나 다른 실험 프로젝트에 관련된 커널 개발 등, 오래된 유닉스 개발 경험을 축적하고 있었다.

    애플 엔지니어들이 맥오에스텐의 기반으로 리눅스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우선, BSD 자체가 리눅스보다 여러가지 면에서 더 낫다. "Mac OS X 리눅스 커널 미신을 벗긴다 1-11"에서 인용한다.

    "리눅스는 일처리만 해주면 될 정도로 디자인되었다. 리누스 토발즈(Linus Torvalds)도 리눅스가 완벽한 아키텍쳐라고 주장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최고의 디자인에 대한 비교를 피했다. 리눅스 코드 품질은 이제까지 의심을 받은 적이 없다.

    더구나 리눅스와 같은 개방된 코드기반은 여러가지 수정이 가능하다. 즉, 라우터나 DVR을 만드는 회사라면 리눅스가 커다란 장점을 안겨다준다. 그러나 애플은 스스로 코드를 개발하는 편이 더 어울린다. 그래야 필요하다고 판단한 부분에서 중대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필요때문에 애플이 나서서 커널 디자인을 해야 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애플은 맥 오에스 텐에 어울리는 이상적인 아키텍쳐 구축을 이상주의자들의 계획에 맡길 수 있다. 덕분에 애플은 끌끔하고 현대적인 아이디어로 시작하고 옛날의 거추장스러운 아이디어는 물릴 수 있게 되었다. 그 분명한 사례가 launchd이다."

    애플은 리눅스를 판매하는 회사들 대부분보다 훨씬 고유한 커널을 개발한다. 또한 리눅스 커널에 대한 수정은 위원회의 결정에 의거한다. 따라서 리눅스에 기반을 두면서 큰 변화를 일으키려면, 애플도 허락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리눅스로 만들어 봤자 이득이 없는 것이다.

    "애플은 API로 어떤 변화를 시켜야 할지 주의깊게 통제해야 한다. 그래야 외부 개발자들이 API 상에서 일관성있고 안정적으로 작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플이 하부 부분의 통제를 하지 못할 경우 이 일은 극히 어려워진다. 즉, 이런 이유만으로도 애플은 리눅스를 채택할 수 없다."

    더 자세히 알아볼 수록, 애플이 리눅스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더욱 분명해진다. 2000년 이후로, 애플은 맥오에스텐의 새 버전을 빠르게 개발해왔고, PowerPC에서 인텔 프로세서로의 이주도 단행하였다. 그리고 유닉스가 들어간 맥을 2600만 대 이상 판매하였다.

    외부 단체가 관리하는 코드로 작업을 했더라면, 애플은 위의 개발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태클을 당했을 것이다.

    Shared Software between Linux and OS X
    애플리케이션 레이어 하에서, 리눅스와 오에스텐의 실질적인 차이점은 각자의 핵심 커널 디자인에 따른다.

    애플의 커널은 넥스트에서 빌려왔다. Mach/BSD 하이브리드 디자인은 애플이 계속 업데이트시켜왔다. 관련된 현대적 기능을 계속 통합시키면서 말이다.

    맥오에스텐의 유저랜드는 모든 곳에서 나온다. GCC 컴파일러를 포함하여 GNU 소프트웨어에서도 상당한 부분을 빌려 쓰고 있다. 타이거에서 애플은 이제까지 기본 셸로 쓰던 tsch 대신, 전형적인 리눅스 배시 커맨드라인셸을 채택하기도 하였다.

    리눅스 사용자들은 맥오에스텐으로 작업할 때, 파일 위치와 같은 사소한 차이 말고는 새로 배워야 할 부분이 없을 정도다. 리눅스 서버 소프트웨어도 보통은 맥오에스텐으로의 포팅에 별 어려움이 없다. 게다가 애플 스스로와 수많은 써드파티들이 오픈소스코드로부터 혜택을 많이 보고 있다.

    휴대기기에 있어서 리눅스와 오에스텐의 제일 큰 차이는 애플만 오에스텐을 사용한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오픈소스 지지자들 생각으로는 이런 방식이 자유의 통제를 의미한다. 코드 접근성과 써드파티 개발 가능성의 문제도 야기할 수 있겠다.

    다음 기사는 그 주제에 대해 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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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2-03, 10:30 PM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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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c OS X 대 리눅스, 써드파티 소프트웨어와 보안

    Mac OS X vs Linux: Third Party Software and Security

    Saturday, February 3, 2007

    어제의 "GNU와 리눅스, 그리고 아이폰"은 리눅스와 애플 맥오에스텐 간의 공통된 조상과 유사성에 대해 논하였다.

    휴대기기에 있어서 리눅스와 오에스텐의 제일 큰 차이는 애플만 오에스텐을 사용한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오픈소스 지지자들 생각으로는 이런 방식이 자유의 통제를 의미한다. 코드 접근성과 써드파티 개발 가능성의 문제도 야기할 수 있겠다. 게다가 두 플랫폼의 적들은 두 운영체제 모두 보안에 대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오에스텐을 돌리는 오에스텐은 기존의 개방형 써드파티 지원을 갖춘 휴대폰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모든 공포는 일단 제쳐두고, 동 주제에 대한 잘못된 인식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써드파티 소프트웨어를 둘러싼 억측"은 특히 Palm OS와 웃음거리 밖에 안 되는 WinCE / Windows Mobile의 소위 써드파티 소프트웨어가 어떤 상황인지를 알아본 바 있다. 리눅스는 어떨까?

    The Standard Soup Prepared by Linux Mobile’s Many Chefs
    리눅스로 작업하는 여러 휴대폰 업체들은 표준형 휴대폰 플랫폼을 세우려 노력해 왔다. 2006년 6월, 모토로라는 NEC, Panasonic, 삼성과 함께 표준화된 리눅스 모바일 개발 플랫폼 파트너쉽을 발표한 바 있다.

    모토로라의 크리스티 와이아트(Christy Wyatt)의 설명을 보자. "리눅스 자체는 개방형 커널이지만, 휴대폰 업체들마다 리눅스 플랫폼은 다릅니다. 공급업체와 개발자들의 생태계 구축을 보면, 개별 리눅스를 따로따로 지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양한 회사들로부터 자원을 모아서 범용 플랫폼을 만들면, 리눅스의 매력이 한 층 더 해질 겁니다."

    바로 지난 달, 새로운 리눅스 모바일 그룹, 리모(LiMo) 재단 설립 발표가 나왔다. 일본의 NTT DoCoMo와 Vodafone의 합작 재단이다. 리모는 리눅스 기반의 단일 휴대폰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지향한다. 리모의 코드는 GPL에 따른 공개형이 아니지만 말이다.

    리눅스 쪽이 으레 그렇듯, 선택할 표준이 우후죽순 난립해 있다. Open Source Development Labs는 고유의 모바일 리눅스 이니셔티브를 2005년 발족하였다. 여기에는 MontaVista와 Wind River, PalmSource가 포함된다.

    MontaVista는 모토로라가 자사 휴대폰에 사용해오던 Mobilinux를 개발한다. PalmSource는 자사의 ACCESS 리눅스 플랫폼을 유지한다.

    다음 달이면, MontaVista와 PalmSource가 리눅스 폰 스탠다드를 뜻하는 LiPS를 발족시킨다. "리눅스 인터페이스의 표준화를 통해, 각기 다른 휴대폰의 오픈-소스 운영체제마다 수정을 할 필요가 없도록"한다는 목표를 갖는다.

    2006년 8월, Trollitech는 그린폰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2004년 5월에 나온 자사의 Qtopia 폰 플랫폼에 기반하는 리눅스 애플리케이션의 상호운용을 위한 프로젝트이다. 모토로라가 이 Qt 플랫폼을 리눅스 휴대폰에 사용하고 있지만, Qtopia는 아니다.

    리눅스상의 이 모든 표준이 제각각이다.

    리눅스 커널 개발을 여전히 관리하고 있는 리누스 토발즈마저도 휴대폰의 리눅스 사용에 대해 MontaVista와 의견을 달리한다. 특히 그는 리눅스 커널 안에서 휴대폰 지원을 어떻게 변경시켜야 하는지에 대해 MontaVista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경쟁 모바일 리눅스 소프트웨어는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의 상용 유닉스와 훨씬 비슷해지기 시작했다. AT&T와 선의 유닉스시스템 V R4, 그리고 OSF 뒤에 선 기업들 간의 전쟁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새로운 윈도 NT를 선보이면서 유닉스를 갈라버리는 꼴이 되었다.

    리눅스의 하부-플랫폼은 써드파티 소프트웨어와 어떤 관계에 있을까? 지금까지 그 어떠한 오픈 커뮤니티 개발이나 써드파티 개발도 사람들 기대만큼 자유롭다거나 개방적이지 못하고 있다.

    Third Party Software Panic, Linux Style
    세계 제 2위의 휴대폰 업체인 모토로라는 제일 큰 휴대폰용 리눅스 개발사로 나타나고 이다. 2003년, 모토로라는 Symbian 파트너쉽을 떠나면서 리눅스 기반의 스마트폰에 치중할 계획을 발표하였다.

    그런데 2006년 중반, 모토로라는 500만 대의 리눅스-기반 휴대폰을 팔았다고 보도하였지만, 리눅스 휴대폰 대부분은 중국 시장용이었다. 게다가 모토로라의 리눅스폰은 커뮤니티 개발에 개방되지도 않았고, 써드파티 개발도 자유롭지 않으며, 제한이 걸려 있다.

    모토로라의 리눅스 전략은 애플의 오에스텐 전략과 유사하다. 모토로라에게 리눅스는 단순히 이미 자유롭게 널려 있으면서 사용하기 쉬운 코드일 뿐이다. 모토로라는 리눅스를 가지고 그룹 개발에 뛰어들려 하고 있지 않다.

    리눅스 사용자들 또한 모토로라로부터 GPL 소스코드를 받응 데에 어려움을 표하고 있다. 모토로라 자신도 외부 개발자들이 기여하는 소프트웨어 변경을 통합시키는 데에 주저한다. 리눅스 사용자들은 모토로라가 네이티브 리눅스 애플리케이션을 휴대폰에 적용시킬 계획이 없다는 데에 실망하기도 한다.

    모토로라가 최근 돕겠다고 나선 리모 재단은 리눅스 커널을 사용하되, GPL 스타일이 아님을 드러냈다. 리모 측의 설명에 따르면, 리모 측의 독점 계약에 따라 기여자들이 코드를 포함시킬 수 있으며, 비차별 적인 조항에 따라 저작권과 특허를 라이센스 해 주어야 한다.

    더해서 리모의 지적재산권 전략을 보면, "개발자와의 계약과 적절한 보안 메커니즘, 과정을 증명해내는 회원들만이 라이센스된 소스코드에 접근할 수 있으며, [상용] 라이센스 하에 배포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LinuxDevices지와의 회견에서, 모토로라의 모바일 기기 수석 설계자인 마크 반덴브링크(Mark VandenBrink)는 모토로라 리눅스 휴대폰상의 써드 파티 개발은 휴대폰의 자바 VM 환경에 따라 제한을 받는다고 말했다. 통신망의 건전성과 보안, 상호운용성을 고려해야 하는 통신사측의 우려 때문이다.

    "제한받지 않는 소프트웨어가 통신망에 접속한다"는 통신사 측의 우려는 아이폰에 대한 애플의 써드파티 관리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네트워크 시스템에 무제한 접속을 허용해버리면 보안 문제가 생겨난다는 의미이다. 누가 이런 추측을 할까?

    Apple iPhone Security Panic
    애플이 써드파티 개발에 개방적이지 않고 제한도 심하다면서, 그러는 와중에 또 아이폰의 보안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기업들의 불확실성을 해소시켜 주어야 한다는 상반된 주장을 펼치는, 그리고 커피잔을 던지기 일쑤인 분석가들은 분명 아니다. 도대체 누구일까?

    분석가들은 직원이나 애플 광신도들이 아이폰으로 파일을 복사한 다음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면서 경고음을 울려댄다. 심지어 WiFi나 전화선을 통해 그런 코드를 뿌려댈 수 있다고도 한다.

    친-마이크로소프트의 앞을 다투는 자는 로브 엔더를(Rob Enderle)이다. 그의 Dark Reading 칼럼에서 그는 아이폰이 저주받았노라는 주장을 되풀이한다. 지금은 애플에 미치는 광신도들 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반-그리스도적인 초자연적 악마의 위협이 횡행한 때라는 것이다. 책이나 불태워야 할까보다.

    보안 문제는 애플이 만든 제품에만 해당되는 마술적인 기술을 갖추고 있을까?

    WinCE 기기로도 파일 복사에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도 언론에 경고때린 바 없다. Hotmail은 또 어떤가? 최고로 기밀이 갖추어진 곳일지라도 인트라웹은 있기 마련이다. 여기서 최고 기밀 사항을 이메일에 첨부하여 마이크로소프트 서버를 통해 적들에게 전달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WinCE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금지해야 하나? 어린애 수준의 생각이다.

    아마도 엔더를처럼 전문가를 자칭하는 무리들은 자기들이 띄우고 싶은 부분으로만 연기를 띄울 뿐일 것이다.

    Code Signing
    리눅스처럼 커뮤니티 개발 시스템이 일종의 블럭을 무료로 만들어서 남들도 쓸 수 있게 한다는 점은 사실이다. 다만, 이러한 커뮤니티형 개발은 한 번 작동에 들어가면 누구나 시스템을 통제하고 바꿔버릴 수 있기 때문에 보안 시스템을 형성시키지 못한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

    자사의 리눅스 휴대폰에서 써드파티 애플리케이션을 규제하는 모토로라의 방식은 유별나지 않다. 2005년 이래, Symbian OS도 비슷한 플랫폼 보안 모듈을 제공해왔다. 규제가 들어간 코드 사이닝을 지원하는 모듈이다.

    아이포드 게임과 엑스박스 게임에서 채택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방식도 동일하다. 본질적으로, 승인된 사인을 통해 소프트웨어 인증을 하고, 그 다음에서야 시스템이 돌아가는 방식이다.

    엑스박스의 경우, 코드 사인은 리눅스, 그리고 손실만 안겨다주는 마이크로소프트 하드웨어에서 돌아가는 다른 애플리케이션 시장을 죽이기 위한 디자인이다. Symbian과 아이폰이 사용하는 코드 사인은 광고나 보안 위협을 전달할 수 있는 네트워크 클라이어언트와 소프트웨어의 보안 강화와 관련이 있다.

    연구자들이 맥오에스텐의 오류를 지금이라도 발견한다면 그들이 얼마나 환호할지 상상해 보시라. 아이폰의 오류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Symbian도 이미 얼마 안 되는 외부 악성 소프트웨어로 고생한 바 있다. Cabir와 같은 트로이 바이러스는 Symbian의 블루투스를 사용하여 자기 자신을 다른 Symbian 휴대폰으로 전달시킨다.

    Fitness for a Particular Purpose
    Palm OS와, WinCE, Symbian, 리눅스 기반의 휴대폰과 아이폰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이전의 기사들은 기존의 휴대폰을 알아보았다. 앞으로의 기사들은 더 많은 내용을 알아볼 것이다. 특정 전화기와의 비교 경험이 있다면 필자에게 메일을 보내시라. 비교해 볼 만한 휴대폰 제안도 괜찮다. 보내시라!

    iPhone 인사이드iPhone용 OS X과 WinCE, Palm, Symbian, 리눅스iPhone과 그의 경쟁상대들This Series
    애플과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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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roughlydrafted.com/RD/RDM...895EF646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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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ymbian과 OS X, 독자들이 답하다

    Readers Write About Symbian, OS X and the iPhone

    Sunday, February 4, 2007

    "iPhone은 어째서 Symbian을 선택하지 않았을까"에 대해 스웨덴과 핀란드의 독자들이 Symbian 개발에 대한 정보와 이 OS를 노키아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아이폰 개발에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보내주었다.

    한 개발자는 이렇게 썼다. "Symbian이 가진 현대적이고 견고하며, 안정적이고 진보적인 스마트폰 운영체제라는 측면은 대부분 부당합니다. 분명 Symbian은 잘 작동합니다. 기능도 매우 많죠. 아마도 지금 살 수 있는 최고의 스마트폰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Symbian이 앞서나가는 이유는 경쟁사들이 지리멸렬하기 때문인 측면이 큽니다."

    "저는 Symbian 프로젝트여 여러번 참여하였으며, Symbian의 하부 구조에 대해 잘 압니다. 그리고 전 Symbian을 싫어합니다. 프로그래머의 관점에서 볼 때 Symbian은 매우 나쁜 운영체제입니다."

    Nokia’s POS/OS
    노키아와 가깝다는 어떤 독자는 노키아에서, 심지어 고위 중역들까지도 내부적으로 Symbian을 "똥같은 평화(Rauhaa ja Rakkautta)"로 칭한다고 전하였다. "핀란드인들은 이 표현을 심한 욕설로 말합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다른 Symbian 개발자도 이런 말을 하였다. "노키아는 Symbian에 다소 갇혀 있습니다. 새로 운영체제를 만들 시간도 없고, 경쟁력도 없어서이죠. 실질적으로 노키아에게 남겨진 유일한 대안은 리눅스입니다. 물론 실험중이긴 하죠. 하지만 리눅스로 간다 하더라도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The Three Symbians
    "노키아가 S560 미들웨어를 Symbian 기반으로 너무나 투자를 많이 해 놓았기 때문에 S60은 현재 엄청나게 거대하고 복잡해졌습니다. 전 S60도 아예 Symbian을 커널로 지닌, 하나의 운영체제라고 보죠. 덕분에 노키아는 한 층 더 통제력을 갖고 스스로 변화를 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Symbian 소유자이자 라이센스 업체인 소니 에릭슨은 지난해 11월, UIQ를 인수했어요. UIQ의 Symbian 소프트웨어를 차지하기 위해서였죠. UIQ는 노키아 S60과 유사합니다. 이 역시 Symbian을 커널로 지닌 운영체제랄 수 있죠.

    어떻게 보면, 사실 세상에 'Symbian' 전화기라는 것은 없습니다. 서로간에 호환성도 없는 별다른 운영체제일 따름이죠. 아시아 시장에서 팔리는 NTT DoCoMo의 Symbian인 MOAP, 노키아의 S60, 소니에릭슨의 UIQ 모두 심비안이되, 심비안이지 않습니다.

    써드파티 개발자의 관점에서 볼 때 더 안 좋은 점이 있습니다. 노키아와 Symbian이 새로운 S60 버전3 바이너리를 만들었는데, 이 바이너리가 이전의 S60과 호환성이 없습니다. 따라서 예전의 Symbian 애플리케이션을 새 휴대폰에 단순히 집어 넣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실제로 구입하셨다면 해당되겠죠. :-) )

    당연히 UIQ는 S60과 호환성을 갖는 바이너리나 소스코드가 없습니다. 하지만 분석가들이나 언론은 "심비안"이라는 단일하고 안정적인 운영체제가 존재하는 양 말하지요."

    Symbian Signed
    "S60 버전3에서 노키아는 새로운 보안 모델을 제시하였습니다. 모든 애플리케이션을 VeriSign 인증을 거치게 만드는 모델이죠. 인증만 하더라도 매년 수 천 달러는 족히 들어갈 겁니다. 셰어웨어와 취미 개발자들은 앞으로 절대로 프로그램 작성을 함부로 하지 못하겠죠.

    ‘Symbian Signed’ 인증서를 갖지 않은 애플리케이션을 모조리 막아버리자는 통신사들도 있습니다. 즉, 인증비를 받아내야겠다는 심산이죠. 어디에서 인증을 받는지, 애플리케이션을 왜 개발했는지, 어째서 휴대폰의 특정 기능 사용을 원하는지, 사용자 데이터는 왜 읽는지, 전화기 API는 왜 사용하는지, WiFi는 어째서 이용하는지 등등 모두 알아내겠다는 겁니다.

    모두가 보안이라는 미영 하에 일어나죠. 하지만 통신사의 주목을 끌지 않고 애플리케이션을 독자적으로 개발하기란 당연히 어렵습니다. 통신사의 입김이 못 들어가는 VoIP같은 기능 말이죠.

    따라서 독립적인 써드파티 소프트웨어 개발 상당수는 앞으로 아이폰에서 사용하는 '폐쇄형' 모델로 가게 됩니다. 실질적으로 그 차이는 별로 크지 않아요. 당연히 애플은 가까운 협력사들에게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허용하겠죠. 현재의 아이포드 게임 개발과 마찬가지입니다."

    Symbian Design Issues
    "Symbian이 현대적이고 견고하다는 미신에 대해 전 반대합니다. Symbian은 90년대 초반에 이뤄진 결정에 상당히 심하게 얽매여 있어요. 디자인 결정이 당시 관점에서야 괜찮았을지 모릅니다. 그 때에는 Psion의 EPOC과 EPOC32-기반의 Series 3, 5가 대상이었으니까요. 오늘날의 기기와 비교해 보면 메모리도 상당히 적고 리소스도 제한적입니다.

    저라면 Symbian이 가진 문제점에 대해 매우 기나긴 목록도 작성할 수 있지만, 우선은 주요 영역으로 요약을 해 보겠습니다.

    • Crippled C++ support Symbian은 C++ 기반입니다.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그러하죠. EPOC32 디자인을 할 때는 (1993년~1994년 당시로 기억합니다), 익셉션(exception)과 같은 C++의 최신 기능을 완전히 지원하는 좋은 C++ 컴파일러가 거의 없었어요. 익셉션은 C++의 주요 기능으로서 올바르고 효율적인 에러 관리를 해 주죠. 대안이라면, 다른 운영체제 대부분이 사용하는 CAPI가 있었습니다.

      Symbian은 그 두 개중, 어느 것도 사용하지 않았어요. 스스로 익셉션에 해당하는 리브(Leaves)를 만들죠. C++의 익셉션이 생기면, 분배된 객체 안에 있는 메모리나 다른 리소스를 자동적으로 올바르게 정렬시킵니다. (각 오브젝트의 디스트럭터라 부르는 재정렬이지요.) 작은 프로젝트이건, 큰 프로젝트이건, C++ 프로그램을 올바르게 작성할 때, 이렇게 하면 (상대적으로) 쉬워집니다.

      Symbian에서 에러가 리브 신호를 보내면(익셉션이지요), 어떠한 객체도 붙여놓지 않습니다. 각 객체의 정렬상태를 일일이 기록해주지 않으면, 그저 누출시키죠. 이 과정은 정말 짜증납니다. 에러도 많고 피곤한 일이죠. Symbian에서 프로그램을 수정할 때 소비되는 시간이 매우 많습니다. 아예 불가능한 경우도 여러 번 있었죠.

      C++은 훌륭한 언어입니다. 자동 보정을 다루는 익셉션(Resource Allocation Is Initialization을 뜻하는 RAII)과 같은 진보적ㅇ니 기능 덕분이죠. 표준 C++ 라이브러리는 (예전에는 STL 라이브러리라 불렸습니다) 리스트와 맵, 트리 스트럭쳐, 스트링, 알고리즘, 탬플릿 코드와 같은 컨테이너 안에 데이터 관리를 위한 코드 지원을 엄청나게 갖고 있습니다. 숙련된 모든 C++ 프로그래머들이 사용하는 모든 표준 패턴과 이디엄이 모두 들어가 있죠.

      표준 C++ 개발의 기반을 제거하면, 모두 어떻게 되겠습니까? 디자인 결정은 곧 디자인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아키텍쳐를 고안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보통 방식, 즉 보통의 C++을 더 이상 적용시키지 않는다는 뜻이 되니까요. 숙련된 프로그래머가 거의 툴로 둘러싸인 초보 프로그래머가 되는 순간입니다. 프로그래머나 개발 관리자에게나 악몽의 시작이죠.

    • Confusing and limited string handling 적절한 스트링 관리를 위한 진짜 지원이 전혀 없습니다. Symbian 상에서 스트링을 사용하려면, '디스크립터(descriptor)'라는 희안한 시스템을 사용해야 합니다. Symbian 프로그래머를 시작한다면, 누구나 첫 일 주일은 이 시스템이 어떻게, 그리고 어째서 움직이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디스크립터를 쓰는 이유야 수 바이트를 각 스트링마다 절약할 수 있어서이죠. 하지만 당연히 오늘날에는 수 바이트가 별 문제가 안 됩니다. 좀 사소하달 수는 있겠지만, Symbian을 쓰기 힘들게 만드는 것 중 하나입니다. 이해하기도 어려워지고, 포팅도 어려워지죠.

    • Limited support for multi-threading 다른 플랫폼에서는 중요한 기술이지만, Symbian에서는 쓰이지 않는 기술입니다. 쓰레드에 대한 지원은 제한적이지요. 오히려 '자원을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쓰지 말라고 권유합니다. 1993년도에는 상당히 수긍이 갈 만한 결정이겠지만, 이 때문에 Symbian은 거의 모든 애플리케이션에서 쓰레드를 사용하지 않고 '액티브 오브젝트'를 사용합니다.

      액비트 오브젝트란 협력형 멀티태스킹의 복잡한 형태입니다. 정말 복잡해요. 각 오브젝트를 순차별로 돌리면서(작은 하부 태스크로 이상하게 나눕니다), 서로를 선점시키지 않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코드도 상당히 많이 들어갑니다. 하지만 시스템의 반응성은 떨어져버리고말죠. 프로그래밍도 어려워지고, 포팅도 어려워집니다. 이 모두가 1993년 당시 CPU 주기를 조금이나마 절약하기 위했던 방법입니다.

    • Bad development environment S60의 SDK와 개발환경은 매우 이상하기도 하고,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SDK를 설치하는 데만 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게 며칠이 걸리지요. 수 년 전 했던 제 첫 번째 설치는 설정에 거의 일 주일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매우 문제가 많았죠. 노키아 포럼에서도 설정을 어떻게 올바르게 하느냐가 주된 주제입니다. 한 단계라도 잘못된 순서로 하면 거의 다 틀어져버립니다. 게다가 최신 버전의 비쥬얼스튜디오도 쓸 수 없죠. 비쥬얼스튜디오 2003을 설치해야 합니다. 하지만 윈도 프로그래밍을 한다면 누구나 VS 2005를 설치했겠죠. 노키아도 여러가지 상용 제품을 내놓았는데요. Eclipse에 기반하는 'Carbide'도 있긴 합니다만, 다른 플랫폼이나 엑스코드/아이폰에 비하면 정말 안 좋은 상황입니다.

    Analysts Wrong on Symbian
    "위의 제 글이 좀 기술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현실입니다. 느리고, 에러가 많은 휴대폰이 나오지요. 말 그대로, Symbian용 프로그램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도 언론의 분석가들의 아이폰에 대한 전망을 믿지 않습니다. 완전히 다르게 돌아가는 식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코코아 프레임웍으로 오늘날 대부분의 데스크톱용으로 나오지도 않은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기도 하죠.

    개발 속도(즉, 시장 진입 시간), 사용자 만족도를 높이는 데에 유용한 애플리케이션(가령 코어애니메이션이나 레퍼드의 다른 프레임웍이 있겠습니다), 코드 품질과 유지 가능성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점을 깨닫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것도 현대적인 고수준의 언어와 프레임웍의 완전한 지원을 받죠."

    Existing Mobile Platforms vs OS X
    "당연히 임베디드 프로그래밍 프로젝트는 대부분 엇비슷합니다. 셋톱박스와 휴대폰, 오디오 장비, 산업장비이지요. 하지만 휴대폰에 있어서는 이것을 작은 데스크톱 컴퓨터로 생각해야 합니다. 휴대폰 안에서 실질적인 애플리케이션을 돌리기 때문이죠.

    Symbian(WinCE나 Palm OS도 마찬가지입니다. 리눅스도 똑같다고 봐요. 메모리 제한때문에 리눅스 프레임웍이 상당히 제한적이리라 보지만요)에서는 언론의 마케팅 치사나 기대감만 드높습니다. 휴대폰 서비스가 곤두박질치는 이유가 다 이런 데에 있습니다. 오늘날의 문제에 시장의 기대감을 맞추기가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이죠. "

    Five Years Ahead
    "오에스텐과 아이폰은 이런 제한이 없습니다. 스티브 잡스를 제가 믿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아이폰이 경쟁보다 5 년은 앞서있어서에요. 물론 이 말 자체도 마케팅 치사이고, 언론과 분석가들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죠. 고품질에 진보적인 애플리케이션, 그리고 우월한 사용자 만족도가 오에스텐에서는 빠르고 쉽게 돌아갑니다. 다른 플랫폼과 비교해 보면, 포뮬라 레이스 원에서 조그마한 피아트하고 페라리와 경주하는 꼴이죠.

    오에스텐은 아마도 C++ 대신 오브젝티브 C로 프로그램할 수 있는 유일한 운영체제일 겁니다. 코코아 프레임웍을 사용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오브젝티브 C는 프로그램하기 쉬운 것으로 유명합니다. 자유로이 오브젝티브 C와 C++을 같은 프로그램에 혼합시킬 수도 있죠. 레퍼드에서 애플은 오브젝티브 C 2.0을 선보이게 됩니다. 가비지 콜렉션이나 다른 새로운 기능이 들어있는데, 어떻게 보면 C++보다도 더 나은 기능이에요. 그리고 코코아 프레임웍은 세계적인 데스크톱 컴퓨터상에서 돌아갑니다. 넥스트스텝 시절에도 유명했죠.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을 합하면, 애플은 정말 최고의 무기를 갖고서 더 허술한 경쟁자들과 싸우게 될 겁니다. 미래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과 무선 서비스를 두고 말이죠. 언론과 분석가 대부분은 기술을 잘 모르죠. 이러한 사정을 깨달을 만한 식견도 없는 모양입니다."

    iPhone 인사이드iPhone용 OS X과 WinCE, Palm, Symbian, 리눅스iPhone과 그의 경쟁상대들This Series
    애플과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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