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10-22, 11:48 PM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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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애플은 왜 실패하였나
![]() Why Apple FailedSunday, October 22, 2006최근 애플의 수익 보고서가 모두의 예측을 넘어섰다. 더 중요한 사실도 있다. 판매량 성장을 보면, 현재 애플이 맥 플랫폼에 대해 성장전략을 잘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애플의 시장점유율은 왜그리 낮았을까? 1990년대에 애플은 어째서 실패를 거듭하였을까?여기서는 애플 플랫폼이 왜 위기로 봉착했는지, 분석가들의 처방이 왜 들어맞지 않았는지 알아보자. 다음 기사에서는 애플이 자신의 운을 어떻게 되살렸는지, 앞으로 더 성장하게 될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아본다. The Market Share of Apples and Oranges 분석가들은 애플 시장점유율에 대해 고정된 시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제한적인 시장점유율이 애플의 진짜 문제가 아니다. PC 영역에서는 작동했던 다음의 전략이 애플에게는 먹히지가 않아서이다. 그때문에 시각이 고정되어버렸다. 시장 분석가들은 보통 개별 PC 제조업체의 판매량과 시장점유율, 혹은 전체 시장에서의 백분율을 갖고 분석을 벌인다. 이런 방법은 한 회사와 나머지 회사들과 함께 판매량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알아볼 때에 유용하다.시장점유율은 같은 판매물에 대해 직접적인 경쟁을 벌이는 회사를 분석할 때 의미가 있다. 즉, 델과 HP의 비교가 의미가 있고, 포드와 GM의 비교가 의미가 있다. 같은 범주의 물품을 비슷한 가격대에서 팔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시장점유율을 별다른 제품군을 파는 특화된 회사에 비교하면 별로 유용하지 못하다. 즉, 애플의 세계시장점유율과 HP, 델의 점유율을 비교하면, 애플이 매우 다른 시장에 매우 다른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는 점을 놓치게 된다. 포드나 GM에 대해 BMW의 시장점유율을 비교해본다고 가정하자. BMW는 오토바이와 고가의 자동차를 판매하며, 트럭이나 저렴한 차를 팔지 않는다. 또한 렌트카 시장에도 대량으로 팔지는 않는다. 특히 애플 분석에 있어서 전체 시장점유율이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더 큰 범위의 컴퓨터 시장에 애플이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애플은 회사에 대량으로 컴퓨터를 팔지 않으며, 할인가로 대량 처분하는 회사도 아니다. 애플은 고유의 운영체제가 담긴 프리미엄 컴퓨터를 판매한다. 이때문에 시장에서 직접적으로 비교할 만한 상대가 없다. 애플의 매우 다른 제품군은, 애플의 시장점유율이 전체의 맥락을 이야기해주지 않으며, 오히려 시장점유율 자체가 애플의 진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사실, 시장점유율로 이야기를 몰고가는 이유는 일종의 주제 일탈이다. 또한 애플의 실질적인 문제를 더 악화시킨 주범이기도 하다. Apple's Premium PCs 다른 PC 제조업체들 거의 대부분도 프리미엄 컴퓨터를 판매한다. 당연하다. 사실 이들도 프리미엄 판매분에서 이윤 대부분을 취한다. 델과 HP를 예로 들어보자. 이들 역시 프리미엄 제품군을 기쁘게 판매하지만, 그 이윤을 써대면서도 저가형 컴퓨터 시장에 잡혀있을 수 밖에 없다. 이들 업체는 보통 299 달러짜리 싸구려 PC 광고를 통해, 고급 기종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한다. 델이 500 달러가 채 못되는 컴퓨터 판매를 포기한다면, 델은 오히려 이윤을 잃게 될 것이다.그렇게 될 경우, HP나 다른 회사라면 이러한 싸구려 컴퓨터 구매자들을 서스럼 없이 맡으면서 좀 더 비싼 컴퓨터로 소비자들을 이끌 것이다. 그러면 델은 이윤이 없는 저가형 미끼 제품에서 나오는 중요한 판매분을 잃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저가형 PC 판매량은 매우 높으며, 마진은 매우 낮다. 그래도 윈도우즈 컴퓨터 시장에서는 중요한 시장이다. 판매량을 높게 유지시키면서 델과 HP는 전체적으로 제조 원가를 낮출 수 있다. 규모의 경제 덕분이다. 이들은 또한 자기들이 판매하는 데에 실패한 모든 PC를 결국 경쟁사가 차지하리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PC 수요가 워낙에 거대해서이다. The Mac Platform Problem 애플은 잠재적인 맥 구매자들로 이뤄진 제한적인 시장만을 언제나 상대해왔다. 따라서 애플의 시장은 매우 특화된 시장이다. 맥과 PC 모두 상호 교환이 가능하지 않았기에, 컴퓨터를 새로 사들이는 기업들은 애플 제품을 고려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애플의 맥을 여러가지 PC와 시장으로서 비교하는 행위는 애플과 오랜지를 비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맥은 전체 PC 시장의 일부이지도 않았다. 맥은 PC가 아니어서다. 맥은 DOS나 윈도우즈를 돌릴 수 없으며, IBM이 첫 번째 가정용 컴퓨터를 선보였을 때부터 PC의 정의가 생겨났었다. 업계 분석가들은 애플 시장점유율을 즐겨 거론하지만, 애플의 진짜 문제점은 전체 PC 시장점유율이 아니라, 오히려 애플 시장 자체의 크기였다.즉, 애플이 잘 돌아가는 맥 시장을 만들어내고 유지할 수 있다면, 전 PC 시장 점유율은 문제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전기를 사용하는 기기 시장 점유율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애플은 PC 시장점유율이 필요치 않다. 오히려 맥 시장의 확장이 필요하다. 이 두 문장은 본질적으로 같지만, 매우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여러가지 PC 업체들과는 달리, 애플이 좀 더 많은 맥을 팔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애플 플랫폼으로 새로운 사용자를 더 끌어들이기 뿐이다. "플랫폼의 역사, 그리고 그 대결"에서 언급했듯, 기존의 사용자들을 새로운 플랫폼으로 이주시키기는 매우 어렵다. HP나 델, 그 외 다른 PC 업체들은 서로간의 판매분을 훔쳐낸다. 훨씬 쉬운 일이다. 단순하게 가격을 낮추고, 퍼포먼스를 늘리면서 여러 채널을 통해 판매 목표량을 채우면 된다. 가령, 델은 효율적이고 직접적인 우편 주문으로 PC 판매 1위가 될 수 있었다. PC 영역에서도 애플이 동일한 성공술을 구사할 수 있으리라고 여긴 분석가들은 애플보고 HP나 델처럼 되라 주문하였다. 아니면 마이크로소프트라도 되라는 식이었다. 이들은 실로 옳지 않았다. 애플이 PC 메이커나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제품을 팔고 있지 않아서였다. 단순한 그들의 성공사례 베끼기는 먹히지 않았다. Being like HP: Disasters in Retail 애플은 1992년 당시, Sears를 포함한 소매 스토어 할인매장에 들어서면서, 저가형 퍼포마 라인을 내놓는 등, 맥 시장 확대를 위해 골몰하고 있었다. 이때문에 맥 판매는 HP 판매나 마찬가지가 되었고, 허술한 마케팅과 소매점 전략 미숙으로 실패하고 말았다.더해서, 저가형 컴퓨터의 낮은 이윤 마진때문에, 더 저렴한 부품을 사용하는 PC가 맥보다 오히려 더 이윤이 높았다. 애플 제품 판매에 투자하려 하는 소매점이 거의 없기도 하였다. 애플 플랫폼이 고유의 플랫폼이면서, 소매 이윤도 낮아지니, 누구도 애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애플이 더 많은 맥을 팔기 원했다면, 애플은 스스로 배워야 했다. 그리고 그런 일은 애플이 첫 번째 소매점을 연 2001년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흥미롭게도, 애플이 PC같은 맥 판매에 실패한 반면, PC가 실패한 분야에서의 맥 판매는 후에 성공을 거두게 된다. 소니와 게잇웨이 소매점은 돌아가지 않았지만, 애플의 소매 전략은 통하였다. 이유는 별 거 아니다. 애플의 맥과 PC는 매우 다른 제품이기 때문이다. Being like Microsoft: Disasters with Clones 1995년 당시 애플은 맥 클론을 실험하였다. 애플은 하드웨어 디자인과 맥 오에스 7 소프트웨어를 모토로라와 파워컴퓨팅 외 여러 하드웨어 제조업체들에게 라이센스하였다. 맥 시장을 확대시키기 위한 의도였다. 특히 당시는 소비자형 저가 PC 시장이 급속도로 자라나던 때였다. 이 전략은 마이크로소프트화 전략이었다. 하드웨어 디자인과 소프트웨어 라이센스로 이윤을 벌어들이자였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사업 모델이 베끼기 쉬우리라는 생각은 틀렸다. "마이크로소프트 무적 미신을 벗긴다"에서 언급했듯, 마이크로소프트조차 자신의 윈도우즈 성공 방식을 WinCE 핸드헬드 PC나 WMA 뮤직플레이어에 적용시키는 데에 어려움을 심하게 느꼈다. 사실,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소프트웨어 라이센스라는 원래의 전략을 포기하고, 매킨토시와 애플 모델을 복사하기 시작했다. Xbox와 Zune 모두 마이크로소프트가 직접 판매하는 통합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이뤄져 있으며, 라이센스는 없다. 마찬가지로 소니와 닌텐도에서 나오는 비디오 게임 콘솔 또한 언제나 이 모델이었으며, 특히 가전제품 시장에 있어서 기술 디자인만 라이센스해서 다른 회사가 물건을 만들고 성공하는 경우란 손에 꼽을 정도다. Being like Dell: Disasters in Direct Sales 더해서, 맥 하드웨어를 델과 같이 판매하려는 전략이 클론 사업이기도 했다. 저사양 시장에는 직접 판매 모델을 사용, 저렴한 하드웨어를 저이윤에 대량으로 판다는 내용이다. Power Computing이 CEO/사장은 원래 델 출신이었으며, 직판을 개시한 클론 업체들도 델과 비슷한 방식을 택하였다. 하지만 델 방식을 주장한 분석가들도 틀렸음이 드러났다. 클론 사업은 애플에게 먹히지 않았다. 맥 시장 자체의 제한적인 규모라는, 애플 본래의 문제때문이었다. 범용 PC 업체 방식을 단순히 따라해서는 애플에게 도움이 안 되었다. 대량 판매를 요구하는 시장을 애플이 애초에 갖지 않아서이다. 전체적인 맥 시장 자체를 늘리기보다, 클론 업체들은 오히려 애플의 판매량을 잠식하였다. 애플보다 소규모인 클론 업체들은 저가형 머신에 더 빠른 칩을 넣어 애플로부터 고사양 제품 판매분을 빼앗았다. 원래 애플 경영진이 그리던 청사진과는 완전히 반대였다. 원래의 소매점 구상처럼, 맥 클론 라이센스 사업과 PC 시장에서나 통했던 고판매 전략은 잘 돌아가지 않았다. 더 중요한 점이 있다. PC 업체 따라하기로는 진짜 문제점을 고칠 수 없었다. 맥 플랫폼으로 새 사용자들을 더 이상 끌어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더 저렴한 맥으로는 시장점유율을 늘리지 못하였다. 오히려 기존의 맥 사용자들이 더욱 저가의 머신으로 끌려갔다. 애플에게는 맥을 구매해야 할 이유를 새 고객에게 줘야 했다. 애플이 맥 시장을 확대시킬 수 있다면, 시장점유율 자체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No Reason to Buy Macs윈도우즈가 나오기 이전에는, 데스크톱 출판과 그래픽 디자인용 애플리케이션에 있어서 맥은 분명한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윈도우즈가 비슷한 제품을 내기 시작하자, 애플은 차별화시켜줄 수 있는 개발력에 있어서 뒤쳐지게 되었다. 한 때 혁신적인 퀵타임으로 멀티미디어의 선도자였던 애플은 이제 인터넷 미디어 스트리밍 시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Real의 뒤를 이은 3위로 추락한 상태다. 애플은 또한 코드명 Copland, 시스템 8을 제공하는 데에도 실패하였다. 특히 시스템 8의 실패는 써드 파티 개발 의욕마저 떨어뜨렸다. 맥은 죽어가고 있었다. 누구도 맥을 사야 할 이유가 없어서였다. 맥을 사야할 동기를 부여받지 못하는 한, 저가격이나 소매점 판매, 클론과의 이윤 공유 등 어떠한 전략도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하였다. The NeXT Plan 1996년, NeXT를 인수한 이후, 애플은 새로이 넥스트 기반 운영체제에 투자하느라 수 년을 보냈다. 하지만 맥오에스텐 자체만으로는 새로이 맥을 아주 많이 판매시킬 수는 없다. 애플에게는 맥을 사야 할 실질적인 이유가 여전히 절실했다. 10년 전의 PageMaker처럼, 킬러 애플리케이션으로 작용하는 경쟁력있는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이 필요했다. 맥오에스텐 개발 기간동안, 애플의 행운은 주로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사무용 애플리케이션과 어도비와 쿼크에서 나오는 출판/그래픽 디자인 소프트웨어, 그리고 매크로미디어에서 나오는 웹디자인툴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이들 네 회사는 애플의 넥스트 이주를 연기시켰다. 클래식 맥오에스의 지원때문이었다. 애플이 향후 10년동안에 살아남으리라는 보장 없이는, 새 맥 플랫폼에 투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기존 맥 플랫폼은 거의 위 네 개 개발사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들 없이는 맥도 또다른 Amiga나 또다른 Be가 될 판이었다. 흥미롭게도 둘 모두 주요 소프트웨어가 없는 별난 하드웨어였다. 애플은 맥 사용자들을 코드명 Rhapsody라는 이름으로 재빠르게 이주시키려는 계획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대신 애플은 완전히 새로운 잡종 운영체제와 개발 환경을 만들기로 하였다. 맥오에스텐 개발 기간동안, 애플은 기존의 클래식 맥오에스를 다듬고 코플랜드 개발로 나올 수 있던 부분을 살려냈다. 애플은 기존 맥 API를 카본(맥오에스 9와 맥오에스텐 양쪽에서 네이티브로 돌아간다)으로 현대화시켰다. 맥오에스텐이 원래 애플 운영체제의 분명한 결함을 수정시키기는 하였지만, 맥오에스텐도 애플 본래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하였다. 맥플랫폼은 이제 맥을 사야 할 이유가 없는 그저 개선된 플랫폼이었을 따름이다. 애플의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은 거의 우연한 사건으로 나타났다. Coming up next: Why Apple Bounced Back Put RoughlyDrafted Magazine on your Dashboard and be the first to see the latest articles! Also, I gain a lot of my new readership from Digg.com, an article listing service that rates submissions. If you like seeing my articles, Digg them! I also appreciate blog links, social networking postings such as deli.cio.us, and readers who share articles via emails or newsgroups. Thanks! What do you think? I really like to hear from readers. Leave a comment or email me with your ideas. Why Apple Fai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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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0-23, 09:29 PM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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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소생시키기
![]() How CPR Saved AppleMonday, October 23, 2006"과거 애플은 왜 실패하였나"는 90년대 애플이 허덕였던 이유가 전체 시장에서의 시장점유율이 낮아서라는 통념에 도전하고, PC 시장점유율이 오히려 애플 경영진들의 PC 업체(혹은 마이크로소프트)를 따라가려는 진짜 문제를 가린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그들은 실제의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였다.90년대 동안 애플이 했던 노력은 시장점유율을 늘리는 데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진짜 중요한 문제를 외면해버리고 말았다. 잠재적인 새 소비자들에게는 새 맥을 살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기존의 맥 사용자들 또한 윈도우즈로 갈아탈 이유가 충분했다. 하드웨어가 얼마나 저렴하건, 컴퓨터가 얼마나 깔리건 간에, 죽어가는 맥 플랫폼의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하였다. 잘못된 문제를 고쳐 보려는 애플의 시도 또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맥에 심장이 있어서 멈췄다면? 상황이 그러했다. 애플 경영진은 심폐기능소생법(CPR)을 택하기보다는 하임리크 구명법(Heimlich Maneuver)을 택하였다. Identifying the Real Problem 문제점들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제일 중요한 해결책이다. 고통스러운 기술 지원을 경험해 봤다면, 이 점을 잘 아실 것이다. 1995년, 애플의 기존 경영진은 맥오에스의 지지부진한 개발이 맥 플랫폼을 옭맨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비록 1994년의 인상적인 하드웨어 플랫폼의 이주가 있었지만(한계에 다다른 680x0 프로세서에서 현대적인 PowerPC로의 이주), 애플은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비슷한 진보를 거두지 못하였다. 현대적인 운영체제가 없다면, 어떤 하드웨어가 나오더라도 맥을 새로 사게 하도록 설득시키는 데에 상당한 애로사항이 따른다.이 문제는 새로 나타난 문제였다. 80년대에 걸쳐 애플은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빠르게 진보시켜 나아갔다. 하지만 1991년에 나온 시스템 7 이후로 애플은 사소한 문제해결만 해 왔었고,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의 전반적인 안전성과 품질도 상당히 떨어졌다. 91년 이후 5년 정도는 거의 셰어웨어 애플리케이션을 맥오에스로 합친 수준에 불과한 업데이트가 다수였다. 애플의 Advanced Technology Group이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제시하였지만, 애플은 이 아이디어를 맥 구매 이유로까지 끌어올리지는 못하였다. 당시 애플은 소프트웨어 기술을 잔뜩 개발만 하는 또다른 PARC가 되어가고 있었다. The Case of the Dead Platform "1990-1995: 벽에 부딪힌 맥"에서 언급했듯, 애플은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이제 10년이 된 맥에는 앞으로의 개발을 위해 완전한 개수가 필요했다. 하지만 어떤 전략이 최선일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교체? 수리? 애플에게는 여러가지 프로젝트가 있었다.
그런데 위 프로젝트 중에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할 해결책은 전혀 없었다. 그래도 위 프로젝트는, 윈도우즈 PC는 구입해도 될 만한 이유가 충분한 반면, 맥을 계속 구입해야 할 이유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맥의 진짜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한계에 다다른 운영체제와 지지부진한 사용자 환경은 맥 플랫폼의 동맥을 죄어갔고, 심장에서 멈추기도 하였다. 시장점유율도 올리지 못하였다. 진짜 문제는 애플리케이션의 부족이었다. The Lifeblood of a Living Platform 애플리케이션은 플랫폼의 피다. 초창기 맥에는 호기심이 전부였지만, 데스크톱 출판이 등장한 후, 맥 플랫폼은 역동성 있는 수 십억 달러 짜리 플랫폼이 되어갔다. 두 번째 바람이었던 멀티미디어도 옳았다. 멀티미디어 바람은 퀵타임을 등에 없고 맥 플랫폼을 90년대에도 유지시켜 주었다. 그 외에 인상적인 새 운영체제 기술이 없는 사이, 퀵타임은 애플에게 제 2의 핏줄이었다. 퀵타임이라면 맥을 살 만한 부분적인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맥 GUI와 마찬가지로 곧 마이크로소프트와 PC의 복제에 시달리게 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처음에 마이크로소프트 Video for Windows로 퀵타임을 공격하였다. 퀵타임의 멀티미디어 콘텐트 제작과 편집 아키텍쳐가 되는 대신, Video for Windows는 단순한 재생 시스템에 불과했다. 물론 애플이 퀵타임을 윈도우즈로 포팅하였지만, 퀵타임의 핵심 개발 플랫폼은 맥이었다.이때문에 멀티미디어 콘텐트 제작은 맥으로 이뤄져 있었고, 애플은 이 분야에서 상당한 기세였다. 90년대를 통틀어 마이크로소프트의 멀티미디어에 대한 기여는 거의 허풍에 의존했었다. Surround Video와, Chromeffects, 그리고 크로스플랫폼 Active Movie가 거론됐지만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애플은 실수를 저질렀다. 퀵타임을 비밀로 유지한 것이다. 실용적인 해결책으로 멀티미디어에 대한 맥의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애플의 광고는 실패하였다. 90년대들어 애플의 주도가 떨어지기는 하였지만, 퀵타임에 콘텐트 제작을 위한 좀더 복잡한 아키텍쳐를 덧붙이면서, 맥은 표준형 PC보다 오디오와 비디오 통합에 더 좋았다. 그러나 맥의 심장은 여전히 맘춰져 있었으며, 퀵타임은 역시 핵심 운영체제의 죽음때문에 같이 죽을 판이었다. 퀵타임만으로는 버티기 힘들었다. CPR for a Dying Platform 1996년 넥스트를 인수한 이후, 애플의 개발 난맥상은 소비자나 개발자들의 생각 이상으로 정말 위기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Copland는 이미 허풍으로 끝나버렸으며, 홍보만 요란했던 Newton과 PowerTalk, QuickDraw GX, QuickDraw 3D, HyperCard 3.0, QuickTime interactive에는 기약이 없었다. 모두들 기술적으로 상당히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기술적으로나 판매성으로나 무력했다. 너무 오래 끈 개발 일정도 한 몫 하였다. 즉, 이 모든 맥 기술이 근간을 서서히 무너뜨리고 있었다. 다름 아닌 맥 오에스다. 스티브 잡스는 교묘히 기존 CEO, 길 아멜리오(Gil Amelio)와 실패한 회사의 통제권을 두고 다투었다. 그리고는 새로운 경영팀과 관리자들을 이끌고 애플에 대해 대대적인 외과시술을 개시하였다. 이 수술로 유지가 불가능하거나 제공이 불가능한 기술을 포기하였다. 이것이 바로 "steved"이다. 실용적이지 않거나 무능하여 짤린 프로젝트에 대한 애플 내부의 새 유행어이다. 자신들의 애완용 프로젝트를 "steve"시키자, 불만을 품은 중간급 관리자와 쓸데 없는 프로젝트에 투입된 인원들이 무더기로 애플을 떠났다. Open Heart, Proprietary Bypass Surgery 새 애플은 지방흡입술을 거쳐, 죽어가던 기술 조직에 좀 더 유지 가능하고 개방된 대안을 마련하였다. 애플은 핵심 맥오에스를 이제 넥스트의 입증된 마흐-BSD 커널에 기반을 둔 현대적 운영체제로 교체하였다. 이 운영체제는 선점형 멀티태스킹과 보호메모리를 제공하였다. 덕분에 POSIX가 맥오에스텐의 핵심 시스템 API로 들어가, 리눅스와 BSD를 포함하여 다른 POSIX 플랫폼으로부터 쉽사리 코드포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20년 된 맥오에스 코드 코어가 이제 세계에서 제일 진보된 네트워킹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BSD로 교체된 것이다. 7년 된 퀵타임은 당시 버전 2에서 지지부진하고 있었다. 이제 퀵타임도 정리를 하여, 앞으로 퀵타임도 핵심 운영체제에 들어가게 되었다. 게다가 1998년, 3.0 이후 거의 매년마다 퀵타임 업데이트도 이뤄졌다. 오래된 QuickDraw와 QuickDraw 3D도 교체 대상이었다. QuickDraw는 완전히 새로운 PDF 모델에 기반을 둔 Quartz 2D 드로잉시스템으로, 지나치게 공들여서 독점 코드 범벅이 된 QuickDraw 3D는 훨씬 더 표준화된 OpenGL로 바뀌었다. 애플은 애플과 넥스트에서 나온 기술 자산을 정리하여 새로이 통합 개발 환경을 선보였다. 이 환경은 이미 널리 쓰이고 있던 맥 API를 포함시키면서 넥스트에서 나온 객체지향 프레임웍도 이용하였다. 거의 5년에 걸친 개발 끝에, 맥오에스텐이 마침내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애플은 맥 플랫폼을 죽이고 있던 기술적인 문제만을 상당수 해결했을 뿐이었다. 애플리케이션의 문제는 여전했다. 널리 퍼져버린 윈도우즈 대신에 맥을 고를 만한 이유가 있는가? Stumbling onto a Killer Fix 10년에 걸친 쇠퇴였다. 핵심 운영체제를 최고의 플랫폼으로 되살리는 데에만 수 년이 걸렸다. 하지만 이렇게 새로와진 현대적 시스템을 갖춰도 애플에게는 맥 판매를 늘릴 뭔가가 아직 부족했다. 애플리케이션이다. 현대화된 하드웨어상의 새로운 운영체제는 기존 맥 사용자들에게 업그레이드할 만한 이유는 제시했지만, 맥 시장의 확대화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애플이 시행한 회복 계획이 몇 가지 있었지만, 애플에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 것은 한 우연한 사건덕분이었다. Coming up next: Why Apple Bounced Back Put RoughlyDrafted Magazine on your Dashboard and be the first to see the latest articles! Also, I gain a lot of my new readership from Digg.com, an article listing service that rates submissions. If you like seeing my articles, Digg them! I also appreciate blog links, social networking postings such as deli.cio.us, and readers who share articles via emails or newsgroups. Thanks! What do you think? I really like to hear from readers. Leave a comment or email me with your ideas. How CPR Saved Ap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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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Q casaubon 님께서 2007-01-01 07:27 AM 에 수정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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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0-27, 10:50 AM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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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어째서 되살아났을까
![]() Why Apple Bounced BackWednesday, October 25, 2006"과거 애플은 왜 실패하였나"는 애플 부활의 핵심이 우연한 한 사건에 비롯되었다 밝혔다. 그동안 Slashdot 사람들이 이 사건이 무엇인지를 두고 여러가지 추측을 벌인 모양이다. 이번 글은 맥 플랫폼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애플이 어떻게 조성할 수 있었는지, 그 진짜 배경을 알아보도록 한다.Why Apple Bounced Back: Software "플랫폼의 역사, 그리고 그 대결"의 "1990-1995: 당시의 마이크로소프트와 현재의 애플"에서 지적한 대로, 애플은 어도비의 포스트스크립트 기술이 맥용 킬러 애플리케이션으로서 데스크톱 출판을 어떻게 이끌어냈는지를 주의깊게 살펴보고는, 퀵타임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멀티미디어의 새로운 파도를 일으키기를 희망하였다. ![]() 퀵타임은 맥 채택용 미끼일 뿐만 아니라, 콘텐트 제작업을 세우는 데에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맥 플랫폼을 보존한 공신이기도 하다. "과거 애플은 왜 실패하였나"는 애플이 개발사들의 자비를 어떻게 받았는지, 특히 네 곳의 개발사, 마이크로소프트와 어도비, 매크로미디어, 쿼크의 존재에 대해 지적하였다. 이 네 회사 모두 원래 맥용 그래픽 애플리케이션을 제작하였지만, 이들 모두 윈도우즈로 이주중에 있었다. 윈도우즈 그 자체는 맥용 워드와 엑셀을 DOS PC로 돌리기 위한 마이크로소프트 노력의 일환이었다. 윈도우즈가 채택을 점차 늘려가자, 마이크로소프트는 맥에서만 가능했던 그래픽 애플리케이션용으로서 대단히 거대한 잠재 시장을 조성하게 되었다. 개발사들은 당연히 새 시장까지 물건을 팔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를 따랐다. The Cross Platform Threat 어도비와 쿼크, 매크로미디어 외 다른 맥 개발사들은 스스로 크로스플랫폼 개발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다. 윈도우즈와 맥용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개발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새 유행방식은 "lowest common denominator" 크로스 플랫폼 개발을 낳았고, 이로써 소비자들은 더더욱 맥 플랫폼에 안착할 이유가 사라졌다. 애플이 나서서 새 소프트웨어 기술을 모조리 개발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러한 기능이 크로스-플랫폼 개발에 맞지 않다면, 다른 회사들이 애플을 따를리 만무했다. 이때문에 PowerTalk이나 QuickDrawGX와 같은 개발의 가치가 떨어져버렸다. 애플이 맥의 가치를 불어넣기 위해 선보인 신기술이었건만, 개발자들의 작업과는 별 상관이 없어서였던 것이다. 써드파티 개발사들이 반-맥이지는 않았다. 그저 자기 자신의 이윤을 위해서 행동한 결과였다. 마찬가지의 상황은 마이크로소프트와 다른 플랫폼 벤더들도 위협하였다. 썬의 자바와 넷스케이프의 웹 플랫폼 모두 어디에서나 돌아가는 소프트웨어를 선보였다. 이는 플랫폼으로서 윈도우즈의 가치나 차별성을 끌어내릴 일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로서는 그들을 막아야 했다. DIY Software 애플로서는 혁신적인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맥 플랫폼을 차별화시킬 필요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럴 힘은 줄어만 가고 있었다. 큰 개발사들은 애플의 독특한 기능이나 툴킷을 무시하였다. 애플이 맥 플랫폼용 애플리케이션을 원한다면, 그 애플리케이션을 어떻게 제공하느냐를 먼저 배웠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해도 위험은 컸다. 써드 파티 개발사들을 저버리지 않고서야 그런 식으로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없어서이다. 맥 이전에, 애플은 1983년, 애플이 디자인한 소프트웨어를 풀로 탑재시킨 LISA를 출하하였다. LISA가 상업적으로 실패한 이유는 부분적으로 써드 파티 개발자들에 대해 기회를 주지 않아서였다. 건전한 써드파티 개발 시스템의 중요성을 깨달은 애플은 매킨토시에서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애플이 맥을 선보였을 때, 애플은 간단한 MacWrite와 MacPaint만을 집어 넣었고, 이 두 프로그램은 일종의 출발점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소매용으로서 맥용 소프트웨어 시장이 제한적이라는 사실때문에 애플용 타이틀 제작에는 애로사항이 많았다. 이러한 개발자들을 달래기 위해, 애플은 내부적으로 맥용 소프트웨어 개발부를 1987년, 클라리스로 분사시킨다. 클라리스는 후에 파일메이커를 인수하여, 클라리스 스타일로 여러가지 소프트웨어 타이틀을 제작하였다. 결국 모든 애플리케이션을 클라리스가 다룬다는 방침이 생겨날 정도였다. 10년 후 넥스트가 애플을 재창조하기 전까지, 한 때 혁신적이었던 클라리스 소프트웨어 제품군은 거의 죽은 상태였다. 개중 기본적인 클라리스웍스와 파일메이커 프로만은 예외였다. 이에 애플은 클라리스의 이름을 아예 파일메이커 주식회사로 바꾸고, 클라리스웍스만을 제외시키고는 나머지 제품군을 중단시켰다. 클라리스웍스는 애플웍스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애플이 직접 판매에 나섰다. 사실 애플은 10년간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를 신중하게 피해왔었다. 하지만 이제는 설사 애플이 맥의 부활에 사무용 소프트웨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애플은 사무용 소프트웨어 개발에 돌아와있다. Apple Strikes Gold with KeyGrip 90년대 후반, 매크로미디어는 어도비 프리미어의 개발팀을 끌어들였다. 랜디 유빌로스(Randy Ubillos)가 이끄는 이 팀은 퀵타임을 기반으로 새로운 전문가 수준의 비디오 편집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려 하였다. 이 제품은 원래 KeyGrip이라 불리다가 Final Cut이라 불리었다. 그런데 "프리미엄 킬러" 개발을 시작한 이후, 매크로미디어는 곧 어도비와의 직접적인 경쟁을 완전히 중단시키기로 결정내린다. 그 대신 매크로미디어는 웹개발툴에 전력하고, 영상과 출력시장은 어도비에게 맡겨버린다. 매크로미디어는 끝내지 못한 이 제품을 인수시키려 하였지만, 구매자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1998년, 애플이 이 제품을 매크로미디어로부터 구매한다. 완전한 중단을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파이널컷에 대해 흥미를 가진 개발사들을 찾지 못하자, 애플은 스스로 이 프로젝트를 완결내리기로 결정한다. 이듬해에 이 제품은 파이널컷 프로로 나왔다. 순전히 우연한 사건으로 시작된 이 이야기는 이제 맥의 새로운 킬러 애플리케이션으로 변모하기에 이른다. Final Cut Pro Cleans Up 파이널컷 프로는 어도비의 프리미어를 빠르게 파괴시켜버렸다. 애플의 이 새로운 제품은 본질적으로 프리미어를 완전히 새롭게 만든 프로그램이었지만, 어도비는 프리미어를 놓아둔 채, 그래픽 디자인과 출력 제작에 집중하고 있던 터였다. 데스크톱 비디오 편집 시장은 여전히 소규모였지만, 경쟁사도 별로 없었다. 즉, 승리는 쉬웠다. 애플은 실제로 파이널컷 프로와 함께, Avid를 제치고 주도자로 올라섰다. Avid는 원래 80년대 후반, 매킨토시 II로 시작한 회사였으며, 그 때 이후로 비디오 편집 웍스테이션을 제공하는 주도적인 회사였다. 본질적으로 Avid는 파이널컷 프로를 위협으로 여기지 않고 있었다. 영화 업계는 당시 Avid 솔루션에 완전히 휩싸여 있었으며, 파이널컷 프로는 제한적인 기능만을 제공하였다. 파이널컷 프로가 실제로 제공한 것은 퀵타임의 힘, 그것도 그 힘에 대한 쉬운 접근이었다. 퀵타임만 있으면, 크건 작건 제작사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맥을 갖고 제작 편집을 할 수 있다. 값비싼 Avid 스튜디오를 대여하거나 스스로 Avid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아도 되니 가격도 훨씬 저렴하다. 애플이 방송용 그래픽과 제작 편집에 들어서니, 파이널컷 프로는 명실상부(名實相符)한 경쟁자로 자라난다. The Turnaround Discovery 파이널컷 프로는 퀵타임의 유연성을 훌륭히 시연해보여주며, 애플에게 더욱 중요한 점은, 맥 플랫폼을 돋보여준다는 데에 있다. 애플은 윈도우즈용 파이널컷 프로 개발을 중단시켜버렸고, 맥 하드웨어만으로 파이널컷 프로를 돌리도록 하였다. 즉, 맥에서만 사용 가능한, 매력적인 새 소프트웨어를 제공하여, 더 많은 맥을 팔 방법을 애플이 갑자기 발견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분명하다. 하지만 애플은 10년 동안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 시장을 신중히 피해 왔었다. 클라리스조차도 파일메이커를 윈도우즈용으로 포팅시켰었다. 소프트웨어 번들이 결국 써드파티 개발사를 질식시키리라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차별화된 소프트웨어로 승부하지 않는 한, 맥도 별 볼 것 없어진다는 사실이 더 컸다. 큰 개발사라면 맥의 존재성에 매달릴 이유가 없었으니, 이 일은 더욱 더 중요하다. Apple's Software Explosion 새로운 맥 애플리케이션으로서 파이널컷 프로가 성공을 거두자, 애플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와 개발팀 인수에 또다시 나서게 된다. 2000년 당시, 애플은 Astarte GmBH로부터 DVDirector와 DVD 기술, 그리고 그 개발팀을 인수한다. 이는 이듬해, DVD Studio Pro로 나타난다. 파이널컷 프로와 더불어, DVD 스튜디오 프로는 전문가와 프리랜서, 소규모 기업형 영화 스튜디오가 DVD를 제작할 때 쓸 만한 애플리케이션이다. 이러한 전문가형 애플리케이션에 더해, 애플은 2000년도에 아이무비를 선보인다. 간단한 소비자용 비디오 편집 애플리케이션이다. 이에 2001년에는 아이튠즈와 iDVD, 2002년에는 아이포토가 나온다. 애플은 이 모든 애플리케이션을 새 맥에 무료로 번들화시켰다. 갑자기 사용자들은 PC보다 맥을 사야할 이유가 생겨났다. 그저 잘 돌아가는 독특한 소프트웨어가 맥에 많아진 것이다. 게다가 비슷한 기능을 가진 소프트웨어를 윈도우즈용으로 구입하려면 수 백 달러는 족히 들어간다. 즉, 로우엔드 싸구려 PC의 매력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 ![]() 2002년, 애플은 NothingReal사의 인수를 통해, 하이엔드용 비디오 제작 소프트웨어, Shake를 사들였고, 그 다음에는 전문가용 음악 스튜디오 툴인 독일의 소프트웨어 개발사인 Emagic을 인수하였다. 그리고는 Shake와 Logic 둘 다 윈도우즈용 버전을 중단시킴으로써, 애플은 분석가들을 경악에 빠뜨렸다. 새 버전은 이제 맥오에스텐 전용으로만 나왔다. 2003년, 애플은 소비자용 애플리케이션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서 iLife로 내놓았으며, 이 제품을 각각 15 달러 순인 49 달러에 판매하였다. 애플은 또한 새로운 프리젠테이션 애플리케이션으로서 키노트를 선보였고, 파이널컷 프로의 새로운 전문가형소비자 버전, 파이널컷 프로 익스프레스를 출하하였다. 이듬해, 애플은 소비자용 음악 소프트웨어를 GarageBand로, 전문가형소비자 버전은 Logic Express로 선보였으며, 새로운 모션그래픽 애플리케이션으로서 Motion을 출하하였다. 2005년에 나온 Pages는 키노트와 한 데 묶였다. 이는 iWork로 불리게 된다. 애플은 iWork를 애플웍스의 "승계"로 일컫는다. 그 다음에는 나온 새로운 사진 제작 편집 툴인 Aperture가 있다. 올해 초에는 iLife 06에 포함된 iWeb도 있다. Low Profit, High Value Software 모든 소프트웨어를 애플 이름으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애플은 현재 전문가용 스튜디오 소프트웨어 그리고 전문가형소비자 버전의 툴과 두 개의 소비자형 애플리케이션의 개발사가 되었다. 애플로서는 맥 플랫폼을 되살리기 위해 스스로 소프트웨어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분명 다다른 듯 하다. 그렇다고 해서 애플이 하드웨어 기업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사로 바뀌지는 않았다. 애플은 iLife를 계속 번들시키고 있으며, iLife와 iWork의 소매가는 79 달러이다. ![]() 애플리케이션 당 15~40 달러 선이다. 즉, 애플의 소비자용 애플리케이션 가격은 셰어웨어 수준이다. 애플이 소비자용 소프트웨어 개발과 판매로 그리 대단한 수입을 올리지 못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즉, 개인용 콘텐트 제작 툴 시장에서 왜 경쟁이 거의 없는지도 알 만하다. 이윤이 거의 나지 않아서이다. 매년 업데이트를 유료화시키면서, 애플은 플랫폼 교훈을 받아들였다. 정기적으로 중요한 업데이트를 하며, 사용자들에게 진정한 가치를 안겨다 주고, 맥을 차별화시켜가고 있는 것이다. Selling Hardware with Software 애플은 또한 이러한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할 하드웨어 디자인도 새로 해 놓았다. 특히 디지탈 영상 작업을 위해 모든 맥에 파이어와이어를 붙여 놓았으며, 최신 머신에는 광디지탈 오디오 포트도 업데이트시켜 놓았다. 특히 소비자형 모델에 있어서 그런 기능을 제공하는 PC는 거의 없다. 자기 스스로 하드웨어와 운영체제,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를 구축하기에, 애플은 90년대처럼 써드파티 개발자들의 채택을 기다릴 필요 없이, 신기술을 선보인 다음, 동시에 이를 구현시킬 수 있다. 애플이 Aperture를 어도비에 맡겨 놓았다면, 맥 특유의 기술이 쓰였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어도비가 애플의 기술을 다시 제작하여 윈도우즈상에서 돌리려 했을 터이기 때문이다. 애플은 스스로 제품에 뛰어들면서, 하드웨어에 맞는 최고의 퍼포먼스와 함께, 최고의 제품을 제공할 수 있다. The Suite Deal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피스 수이트에, 이메일 서버와 서버용 소프트웨어, 다른 백-엔드 서버툴, 개발툴을 컴파일하였던 것처럼, 애플 또한 비슷한 통합 과정을 추구하고 있다. 단, 애플의 경우에는 특화된 하드웨어도 포함시킬 수 있겠다. ![]() 가령 분석가들은 애플의 엑스서브 RAID를, 기업용 시장 진입을 위한 단순한 시도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 하드웨어를 이용하는 이들은 대부분 HD 비디오 콘텐트의 거대한 용량을 다루는 파이널컷 스튜디오 사용자들이다. 마찬가지로 애플의 30인치 디스플레이는 하이엔드 게이머들을 위해 델의 30인치 디스플레이와 경쟁을 벌이려는 제품이 아니다. 오히려 Aperture와 파이널컷 스튜디오 애플리케이션용 전문가, 혹은 전문가형소비자들을 목표로 한 제품이다. 애플은 새 애플리케이션을 제작하고, 단순화를 시키는 등, 제품 라인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긴밀하게 통합시켰다. 가령 애플의 아이포드는 아이튠즈와의 밀접한 통합성 덕택에 간결함을 얻어냈다. 후에 애플은 아이튠즈에도 무선 제품을 통합시켜서 AirTunes 스트리밍을 소개하였다. 내년에 나올 iTV도 영상용으로 비슷한 일을 할 것이다. 또한 애플 웹오브젝트 온라인스토어와의 긴밀한 통합성으로, iTV는 음악과 포드캐스트, 영상클립의 중앙 카탈로그를 서빙하면서, 아이라이프 애플리케이션과의 연계와 무선 공유도 허용할 것이다. NeXT는 애플을 구해냈다. 하지만 점재적인 소비자가 맥을 사게 할 이유를 만드는 주역은 소프트웨어이다. 그런데 애플의 부활에는 또다른 주된 열쇠가 하나 더 있다. Coming up next: Why Apple Bounced Back: more secrets of Apple's success This article is being attacked by censors on Di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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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1-06, 07:56 AM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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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 시장에서 맥 마케팅하기
![]() Marketing Macs in a PC WorldMonday, November 6, 2006"애플은 어째서 되살아났을까"에 나온대로 애플의 회복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한 우연한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그것이 중요하긴 하다. 하지만 맥 플랫폼을 되살리는 데에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애플의 회복에 기여한 또 다른 요소는 애플이 제품을 어떻게 팔지 알아냈다는 데에 있다. 맥의 고유성은 그만큼 새로운 판매 전략을 필요로 하였다. PC 메이커 식의 방식은 먹히지 않았다. The Marketing of Macs in a PC World "과거 애플은 왜 실패하였나"는 새 전략이 왜 필요했는지를 설명하였다. 분석가들은 PC 시장점유율을 늘리라 주문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맥 플랫폼에게 절실했던 것은 맥 시장의 확장이었다. 애플로서는 더 광범위한 소비자들과의 만남이 절실했다. PC 시장에서 고만고만한 회사들과의 판매량 놀음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맥이 표준형 PC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원칙은 양방향으로 작용하였다. 고유함덕분에 여러가지 경우에서 맥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게다가 그 고유함덕택에 애플은 더 강력한 고객 충성도를 누리는 시장을 보다 쉽게 거느릴 수 있었다. 따라서 HP나 델이 애플로서는 접촉할 수 없는 곳에까지 시장을 넓히기는 하였지만, HP나 델로서 맥 시장을 뺏기는 서로간에 빼앗기보다 훨씬 어려웠다. 보다 최근, 애플은 독특한 소프트웨어로 차별화를 늘렸고, 덕택에 맥은 더 매력적인 제품이 됐을 뿐만 아니라, 충성도도 한 층 더 끌어올릴 수 있었다. 덕분에 라이벌들로서는 애플 시장을 빼앗기가 한 층 더 어려워졌다. 시장점유율은 HP나 델 등, 범용 컴퓨터 제조업체들에게 중요한 요소이다. 이들은 거의 동일하고 차이가 별로 없는 상품을 판매하기 때문이다. 전체 PC 시장은 오랜동안 누구라도 스크류드라이버,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 OEM만 있으면 만들어다 팔 수 있는 시장이었다. 일반 컴퓨터 업체들로서 오로지 중요한 요소는 시장점유율이다. PCs Only 애플은 윈도우즈 호환 컴퓨터 시장에 직접적으로 경쟁을 벌인 적이 없었다. 사실 애플은 PC 시장의 광범위한 부분을 일부러 우회하였다. PC 시장은 이윤이 적을 뿐만 아니라, 환경 쓰레기를 양산해버리는 활력없는 시장이다. 게다가 대기업들은 이러한 PC를 대량구입하여 그저 더미 터미널로만 써버리곤 한다. ![]() 이러한 시장에서 애플이 경쟁력을 보일 만한 구석이 거의 없다. 그저 저렴한 부품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어내는 회사만이 살아남는다. 견고한 소프트웨어 통합과 숙련된 풍부한 엔지니어링이 주는 차별화야말로 애플의 핵심인데, 가격과 최소한의 기능만을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그러한 핵심은 먹혀들질 않는다. The Mac Market 반면, 맥은 역사적으로 특화된, 특별한 시장에서 강력한 지위를 구축해왔다. 바로 교육시장과 출력시장, 웹과 그래픽 디자인 등, 새로운 시장들이다. 또한 맥은 멀티미디어 애플리케이션 시장에 불을 지폈으며, 아직 맹아(盲兒) 단계에 있던 인터넷과 웹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였다. 또한 음악과 영화 산업에서도 맥이 주로 쓰이고 있으며, 그 외의 분야에서도 맥의 통합성과 깔끔함을 돋보이고 있다. 예술적 활용에 있어서 애플의 시장 지배는 우연이 아니다. 맥은 예술가들을 위한 질 높은 수단일 뿐 아니라, 견고한 통합 컴퓨터 구매를 할 줄 아는 기술자들을 위한 툴이기도 하다. 전산실 사람들을 데려다가 지원을 하지 않더라도 "그저 돌아가는" 컴퓨터가 맥이다. Businesses Shoot Themselves in the Face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돈을 갖다가 더 허술한 기술에 퍼부은 자들은 회사 사용자들이었다. 매킨토시는 비싸다는 미신에 사로잡힌 그들은 소프트웨어 라이센스 요금과 지원비용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하드웨어 가격만을 따졌다. 전산실에 40000~60000 달러 정도의 연봉을 받는 직원 한 명을 고용하고, 수 천 달러 어치의 하드웨어 비용을 들인다고 해 보자. 윈도우즈는 소프트웨어 라이센스와 클라이언트 접근 라이센스, 그리고 과도한 지원비용을 수반한다. 프리미엄 머신을 구매하는 값보다 배가 더 들어간다. 저질의 컴퓨터를 지원하기 위해 전산실 직원을 고용하거나, 고가의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웨어 라이센스 비용을 내기보다, 더 긴 사용 수명과 더 높은 중고가에 지원비용도 훨씬 덜 들어가고, 훈련비용도 더 적게 들며, 직원들의 능률을 더 올릴 수 있는 하드웨어에 투자하는 편이 더 낫다. 기업 전산실의 월마트화는 낮은 능률의 단일성에 이용자들을 노예화시켰다. 게다가 최근 10여년간은 사무용 애플리케이션에 기술적인 발전도 거의 없었다. 기업들이 이제 보안도 안 지켜지고, 능률도 낮으면서 스파이웨어나 바이러스에 취약한 시스템, 비대해진 오피스를 쓰게 되면서, 허술한 디자인의 소프트웨어를 돌리는 저질 컴퓨터에 대한 투자는 이제 위기에 빠져들었다. 이러한 안일함은 오픈소스로 표현되는 비용 절감 혜택도 못누리게 만들어버렸다. 싸다는 환상에 따라 구입한 쓰레기때문에, 사무용 사용자들은 이제 밑빠진 독에 돈을 계속 퍼붓기만 할 수 밖에 없다. Turning Around Failure 물론 90년대 애플의 문제점은 윈도우즈로 몰려간 회사들 잘못이 아니다. 사실 애플이 당시 저마진, 유통 전략과 기술적인 실패를 겪기는 하였지만, 기업으로서 애플은 당시에도, 단지 저마진의 대량 판매만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만 여기지는 않았다. 오히려 교육시장과 예술 시장, 전문 사용자와 가정용 사용자에 초점을 맞춰어야 함을 인식하고 있었다. 위 사용자들에게 특별한 컴퓨터를 계속 판매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가 필요했다.
기술적인 위기의 해결책은 이미 "애플 소생시키기"에서 다루었다. 맥을 살 만한 새롭고 매력적인 이유는 "애플은 어째서 되살아났을까"에서 설명하였다. 이제 남은 이유는 새 맥의 판매방법이다. 좋은 제품이라 하여 그 제품이 자동적으로 팔려나가진 않는 법이다. 애플은 그동안 기존의 맥 판매 노력을 무산시켜버리는 소매시장의 장애물에 대해, 잘못된 해법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Coming up next: Apple’s Retail Challenge. Put RoughlyDrafted Magazine on your Dashboard and be the first to see the latest articles! Also, I gain a lot of my new readership from Digg.com, an article listing service that rates submissions. If you like seeing my articles, Digg them! I also appreciate blog links, social networking postings such as deli.cio.us, and readers who share articles via emails or newsgroups. Thanks! What do you think? I really like to hear from readers. Leave a comment or email me with your ideas. Marketing Macs in a PC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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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Q casaubon 님께서 2006-11-06 07:58 AM 에 수정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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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1-08, 10:54 PM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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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소매사업에 도전하다
![]() Apple's Retail ChallengeWednesday, November 8, 200690년대 초반까지 제품 판매에 있어서의 문제는 이미 분명했다. 컴퓨터 판매가 주류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었고, 이제는 컴퓨터 전용 가게가 아닌, 일반 소매점에서도 컴퓨터를 취급하기 시작했었다.80년대에 대량으로 PC를 팔던 ComputerLand와 같은 스토어는 유행에 뒤쳐져가고 있었으며, 점차 창고형 대형 마트가 컴퓨터를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창고형 대형 마트는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하면서 소비자 지원은 거의 없앴다. 컴퓨터 판매는 이제 지식이 있는, 적어도 열정이라도 있는 영업사원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복잡한 결정이 아닌, 여러가지 사양 목록만을 갖고 있는 소비자들의 독단으로 옮겨갔다. Thinking Outside the Big Box 대량으로 파는 대형마트는 컴퓨터 판매 지원을 점차 줄여갔고, 더 저렴한, 그리고 더욱 더 효율적인 편지주문 소매점이 다시 자리를 빼앗아갔다. 1990년, 당시 새로운 회사였던 델은 그 자신을 편지주문 직판회사로 자리매김하였다. 이전의 델은 특화된 컴퓨터 전문 판매점이나 기기 판매점에서 컴퓨터를 팔기위해 고생한 회사였다. 직판을 하는 델은 다른 소매점보다 효율적이었다. 소매점 중간 마진을 없애면서, 델은 이윤마진을 더 높일 수 있었고, 그 결과 90년대들어 델은 컴팩을 제치고 PC 시장 1등을 거머쥘정도로 급성장하였다. Online Retail with WebObjects 델은 NeXT의 WebObjects 기술을 사용하여 온라인 웹스토어를 구축하여, 주문 시스템을 확장시켰다. 덕택에 델은 더 효율적으로 대량 판매를 거둘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넥스트는 애플이 인수하였고, 애플은 넥스트로 맥 운영시스템을 현대화시키게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넥스트의 혁신적인 웹오브젝트 애플리케이션 서버 기술도 끼어 있었다. 이 때문에 델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문제 많은 Active Server Pages를 사용하여 온라인 주문 시스템을 교체하려 애쓰게 된다. 그러나 새로워진 애플은 재빠르게 스스로 온라인 스토어 구축에 나선다. 1996년 말, 넥스트를 인수한지 일 년이 채 못되어, 애플의 새 온라인 스토어는 1997년 11월 10일에 개장한다. Logistical Challenges 온라인 애플스토어는 새 웹사이트 그 이상이었다. 그저 새 머신을 만들고 재고 센터에 서류를 보낸다음, 채널을 통해 보내고 마침내 소매점에서 판매하게 되는 시스템이 아니라, 주문대로 시스템을 구축시킨 새로운 제조 전략의 일환이 온라인 애플스토어였다. 넥스트가 애플을 1997년에 휘어잡게 되었을 때의 애플은 매년 10억 달러의 손실을 보고 있었으며, 70일 분의 안 팔리는 재고가 쌓여 있었다. 게다가 제조 공장 사이에서의 부품 제고도 수 달치였으며, 저장만에만 수 백만 달러씩 지출중이었다. Apple Goes After Dell 1997년 여름, 가트너의 심포지움에서 마이클 델은 애플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냐는 질문을 받았다. 델의 CEO는 이렇게 답변했다. "문 닫고, 주주들에게 돈이나 돌려주겠습니다." 몇 달 후, 새로운 온라인 스토어를 발표하면서 스티브 잡스는 마이클 델 사진을 언급하면서, 애플이 델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경고하였다. "새로운 제품, 그리고 새로운 스토어와 새로운 주문형 방식. 우리가 당신을 따라잡을 것입니다. 친구." 1997년 12월, 애플은 온라인스토어를 운영한지 30일 만에, 1200만 달러 어치의 온라인 주문이 들어왔다고 발표하였다. 일 년 뒤, 애플은 미판매 재고분을 70일에서 한 달로 줄였지만, 실질적인 목표는 델을 따라잡고, 제조 효율성 면에서 새로운 리더가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잡스는 컴팩으로부터 티모시 쿠크(Timothy Cook)를 영입한다. 쿠크는 제품 공급과 부품 공급 재고를 하루 이내로 줄여버린다. 쿠크는 애플과 협력하는 제공 업체들 수를 간소하게 만들어서 애플의 제조 공장 근처에 공장을 개설시키도록 하였다. 덕분에 공급업체들은 자신이 제공하는 부품 재고를 스스로 보유하게 되었다. 더 적은 수의 업체와 일하게 되면서, 애플은 더 많은 사업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협상력도 높아졌다. 2 년 뒤, 쿠크는 애플의 재고수준을 6일, 그리고 이틀로 낮춰냈다. 2000년 당시 비지니스위크는 이렇게 애플을 칭찬하였다. “Apple. Yes, Steve, you fixed it. Congrats! Now what's Act Two?” Stores Within a Store 온라인 스토어가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자, 애플은 채널 파트너와 다른 주문형 소매상들, 독립 딜러와의 관계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특히나 CompUSA와는 "store within a store"의 컨샙으로 애플 제품을 판매하는 협정을 체결하였다. 온라인스토어의 성공을 홍보하는 언론보도문을 보면, 애플은 CompUSA와의 관계가 갖는 중요성에 대해 애써 거론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 중심가의 CompUSA 스토어에 애플점을 갖추자, 맥 판매는 15%에서 35%로 껑충 뛰어올랐다. 애플은 또한 여러 소매점에 자사 직원들을 배치시켰다. 소비자들을 돕는 동시에 맥의 전시가 잘 되어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였다. 애플의 CompUSA 투자는 매달 약 25000~75000 달러의 비용이 들어갔지만, 그래도 다른 소매점에서는 보일 수 없는 결과를 가져왔다. Retail Rivalry 직접 뛰어들지는 않았어도, 맥이 표준적인 소매점에서 PC와 나란히 팔릴 때 경쟁에서 밀린다는 사실을 애플도 알아냈다. 소매점들은 저마진 머신 대량 판매에서 더 높은 이득을 올려서였다. 소매상들은 점차 평균적인 PC보다 더 저렴한 부품을 사용한 고유의 브랜드 PC를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내부적으로 스스로 조립을 시작하면서 이윤을 올릴 뿐 아니라, 제조업체들의 이윤도 유지시키면서 더 높은 마진을 유지하였다. 즉, 소매점들로서는 맥을 팔 동기가 전혀 유발이 안 되었으며, 오히려 맥 구입을 고려하는 소비자들에게 자기네가 스스로 조립한 저렴한 PC를 권유할 강력한 이윤 동기가 생겨났다.이 새로운 싸구려 하드웨어가 윈도우즈 가격 패러독스가 생겨난다.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웨어를 자동적으로 판매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는 맥 판매를 대신하여 새로이 전자 쓰레기를 양산시켰다. Rethinking Retail Partners 1997년과 2000년 사이, 소매점 판매 맥의 수는 20000대에서 11000대로 급락하였다. 그런데 이들 중 다수는 애플 스스로가 잘라내서 떨어졌었다. 1998년, 애플의 쿠크는 애플의 기대만큼 판매를 못끌어내는 파트너들을 잘라내겠다고 발표하였다. "We're not happy with everybody." 당시 애플은 CompUSA와의 소매 협력에 집중하기 위해, Sears, Best Buy, Circuit City, Computer City, Office Max를 잘라냈다. 시어즈에 대해서만은 2001년이 되어서 되돌아오고, Circuit City와의 파트너쉽은 2001년에 종료되었다. The Challenge of Balance 맥 판매에 관심을 가진 소매점은 악세사리 판매와 직접적인 지원으로부터 경영 이윤 대다수를 뽑아내는 곳 뿐이었다. 즉, 애플의 기존 딜러 네트웍과 새로이 초점을 맞춘 곳이다. 맥 판매로 벌어들이는 소매점 이윤은 약 9% 정도 뿐이었다. 소매상들로서는 더 높은 마진율 을 가진 제품과 소프트웨어 판매, 서비스 계약으로 이어지지가 않는 한, 판매를 할 만한 이윤율이 아니다. 이 때문에 맥 소매 판매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곳에 대한 직판점 모델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들의 서비스는 정말 훌륭하기도 하고, 최저이기도 하고, 아주 불규칙했다. 자신이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면, 독립 딜러 그룹의 자비에만 의존하는 상태가 계속될 것이었다. 게다가 이들 딜러가 애플과 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