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08-28, 06:51 AM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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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의 역사, 그리고 그 대결
![]() Platform Death MatchFriday, August 25, 2006경쟁이란 좋은 것이다. 더 많은 경쟁자가 들어설 수록, 경쟁은 혁신을 촉진시키고, 그 결과 더 나은 제품이 더 많은 효율성을 갖고 나온다. 하지만 경쟁이 그렇게 좋다면, 상용 운영체제 시장에서도 왜 경쟁이 더 생기지 않는 것일까?80년대와 90년대에는 회사들마다 각자의 운영체제를 갖고 경쟁을 벌이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 경쟁이 딱히 소비자들에게 이득이 되는 것 같아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IBM의 OS/2와 애플의 맥,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그 외에 Amiga, Atari, Be, NeXT, 여러가지 DOS 회사들이 내어 놓는 대안들은 그저 소비자들에게는 혼란과 불확실성만을 심어다 주었다. 오늘날 주요 상용 데스크톱 플랫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XP와 애플 맥오에스텐이다. 왜 다른 선택들은 사라져버렸을까? 본 기사는 운영체제 플랫폼을 소개하고, 역사적인 플랫폼들간의 흥망성쇠를 다루도록 하겠다. 그 다음에는 플랫폼의 역사와 함께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어디로 향하는지, 새로운 버전을 내놓으려면 어떠한 도전을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알아보겠다. What is a Platform? 컴퓨팅에 있어서 플랫폼이란 개발자들의 개발 기반이다. 플랫폼은 표준 PC 플랫폼과 같이 하드웨어를 묘사할 수 있다. 또한 대부분의 하드웨어상에서 돌릴 수 있는 썬의 자바 플랫폼과 같이 소프트웨어도 설명할 수 있다. 애플은 32/64-비트 PowerPC 맥과 32/64-비트 인텔맥 하드웨어를 동시에 지원하는 단일 버전의 맥오에스텐 플랫폼을 제공하기 위해 작업중에 있다. 현재의 타이거는 각각의 하드웨어별로 나와 있다. 그러나 맥오에스텐용으로 나온 소프트웨어는 어떠한 맥에서도 돌릴 수 있다. 똑같은 유니버설 바이너리 패키지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즉, 애플은 단일된, 통합된 플랫폼을 만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여러가지 하드웨어 플랫폼용으로 여러가지 버전의 윈도우즈를 유지하고 있다. 제일 일반적인 윈도우즈는 32-비트 윈도우즈 XP이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64-비트 Itanium용 버전과 또다른 64-비트 PC x64 버전(AMD64 PC용)도 출하하였다. 그리고 윈도우즈 CE와 관련된 모바일용 버전이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 Xbox 360 게임콘솔도 고유의 윈도우즈를 돌린다. PowerPC 프로세서를 사용하는 하드웨어용으로 특별히 포팅된 버전이다. 윈도우즈용 소프트웨어도 고유의 하드웨어를 목표로 해야한다. 플랫폼의 정의가 워낙에 융통성이 있기에 비교를 해 봐야 플랫폼의 정의를 이해하기 쉬워진다. "윈도우즈" 플랫폼도 그리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여러가지 종류의 윈도우즈 제품을 내놓고 있으며, 각 윈도우즈 버전이 특정 플랫폼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PC 플랫폼"도 더이상 유용하지는 못하다. 애플의 최신 맥이 이제 윈도우즈를 돌리는 PC와 동일해졌기 때문이다. 플랫폼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비교해보기 위해, 본 기사 시리즈는 플랫폼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간의 고유의 결합으로 간주하겠다. Introducing a New Platform 비록 호환모드가 많이 나와서 다른 시스템용으로 디자인된 소프트웨어도 돌릴 수 있었지만, 80년대에 나온 거의 모든 컴퓨터는 고유의 운영체제를 운영하였고, 그에 따라 고유의 애플리케이션을 요구하였다. 당연히 모든 소프트웨어를 돌릴 시스템이 나오기를 바라는 소비자들도 생길 법하다. 하지만 이전 기사에서 필자는 왜 이 아이디어가 좋은 생각이 아닌지 설명하였다. 바로 "유토피아 시스템의 미신을 벗긴다"의 기사에서 다른 소프트웨어를 돌리는 능력이 왜 해당 플랫폼의 생존과 별 상관이 없는지, 여러가지 호환 모드와 그 사례를 들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Atari ST는 DOS와 맥 소프트웨어를 모두 다 돌릴 수 있었다. 이상적으로 컴퓨터 시스템은 특화된 운영체제와 애플리케이션이 있어야 그 하드웨어의 장점을 십분 활용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디자인되어있다. 새 플랫폼의 소개에는 엄청난 수고가 들어간다. 초기 디자인은 오히려 쉬운 부분에 속한다. 플랫폼의 창조는 써드파티 개발자들의 지원과 함께, 개발자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줄 개발의 진척을 요구한다. 운영체제 요구사양이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코드기반의 유지도 복잡해지고 어려워졌다. 플랫폼 개발자들은 자기 시스템 유지뿐만 아니라, 끊임 없는 신기술의 영입과 혁신이라는 압박을 받아야 한다. 즉, 두 가지 노력이 서로간의 목표를 채워주어야 한다. 플랫폼이 변화한다면 플랫폼의 유지는 좀더 어렵다. 하지만 플랫폼이 기술 경쟁에서 밀리는 경우에는 플랫폼 유지가 더욱 더 어려워진다. Maintaining Platforms 첫 번째 매킨토시의 발표는 개발에만 거의 5년 정도 걸렸으며, 애플이 애플 II 매출덕분에 꾸준한 수입을 올렸기에 겨우 가능했다. Amiga와 Atari, Be, 그리고 NeXT가 초기 제품을 팔기 위해 벌여야 했던 노력을 생각해 보시라. 제품 하나 개발에만 수 백만 달러의 개발비용이 들어갔다. 개발자들은 플랫폼 제공이야 쉬운 부분에 속함을 빠르게 알아차렸다. 문제는 플랫폼의 유지이며, 이 유지에는 훨씬 더 많은 수고가 필요하다. 5년마다 컴퓨팅의 새로운 시대가 각 플랫폼에 새로운 기능을 더하면서, 각 플랫폼의 경쟁도 이어진다. 플랫폼이 점점 더 복잡해질 수록, 벤더들도 다른 컴퓨팅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새 하드웨어와 새 소프트웨어 제공에 경쟁압박을 받는다. 기능을 못맞추어주면 판매량을 잃게 되고, 빠른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하드웨어 벤더들이 운영체제 개발을 한 벤더에 맡겨버리는 시장 형태가 나타났다.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이다. 한편 애플은 유일하게 전통을 고수하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이라는 고유의 플랫폼 조합을 유지시켰다. 지난 30년간의 역사를 보면, 왜 어떤 플랫폼은 성공하고, 어떤 플랫폼은 실패했는지, 경쟁을 못따르는 경쟁자들을 처단해버리는 혁신의 물결이 무엇이었는지의 단서를 알 수 있다. 다음 기사에서는 소비자 컴퓨팅 플랫폼의 세대별 역사에 대해 보고, 각 벤더들이 생존을 위해 어떤 선택을 했는지 알아보겠다. I really like to hear from readers. What do you think? Leave a comment or email me with your ideas. http://www.roughlydrafted.com/RD/Hom...EF7FAFD3A.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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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8-28, 07:00 AM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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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1985: 8-비트 플랫폼의 시대
![]() 1980-1985: 8-Bit PlatformsMonday, August 28, 2006위 글에서는 새 플랫폼 만들기의 어려움과, 유지에 관련된 작업에 대해 논하였다. 여기서는 컴퓨터 플랫폼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고 누가 왜 이겼는지, 누가 왜 졌는지에 대해 정리해 보겠다. 컴퓨터 환경이란 언제나 변하고 있지만, 오늘날에도 기본 원칙은 그대로 지켜지고 있으며, 애플의 레퍼드와 마이크로소프트 비스타의 향후 개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플랫폼에서 성공을 이루려면 한 가지 이상의 방법으로 유지를 시켜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경쟁자들은 그시대의 플랫폼을 완전히 대신할 기회가 없음을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여러가지 다른 시스템과의 공존을 추구하여 대안을 제공하려 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데스크톱 운영체제 시장의 제한적인 경쟁의 진짜 이유는 단일화된 시장의 장점에 있다. 개발자들은 될 수 있는 한 자기 제품을 널리 퍼뜨리고 싶어하기 때문에, 시장이 큰 플랫폼을 선호하게 마련이다. 그만큼 많이 선보일 수 있으며, 그만큼 생존에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다른 소프트웨어 미들웨어 플랫폼도 마찬가지이다. 얼마나 많은 미디어 플랫폼이 있을까? 비디오 게임 콘솔은 또 얼마나 있으며, 임베디드 시스템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상호운용성과 이주 과정은 소수 플랫폼의 성공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이론도 괜히 이론이 아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1980년대 초반의 컴퓨터부터 시작해 보도록 하자. 1980-1985: 8-Bit Platforms 초기 컴퓨터는 애플리케이션을 띄우는 역할만 하였다. 컴퓨터 자체가 파일과 출력, 그래픽 그리기를 모두 다루는 애플리케이션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는 플랫폼의 채택에 있어서 킬러 애플리케이션을 낳았다. 70년대의 표준 플랫폼으로서 CP/M의 채택은 주로 유명한 텍스트 에디터, WordStar 덕분이었다. 마찬가지로 최초의 유명 스프레드쉬트인 VisiCalc는 애플 II의 성공을 가져왔다. ![]() 따라서 소비자들은 어느 플랫폼에 투자해야할지 망설였다. 다음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다른 하드웨어라면 지금 쓰고 있는 하드웨어는 구닥다리가 되는가? 현실적으로,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기술에 있어서의 중요한 개선은 어떻게서든 기존의 시스템을 구닥다리로 빠르게 만들어버리게 마련이다. 진짜 의문은, 과연 새 시스템이 기존 플랫폼의 확장인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인가이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새 혁신을 조성하려면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을 소개해야 할까? 답변은 역사가 제공해준다. 한 단어로 말할 수도 있다. 그때그때 달라요. 가령 애플 II는 확장이 쉽고 간단한 하드웨어상에 기반을 둔 고유의 플랫폼으로서 성공을 거두었다. 애플 II는 CP/M과 소프트웨어 호환성을 갖추고 있지 않지만, 추가적으로 Z80 카드를 사용하여 CP/M 프로그램을 돌릴 수는 있었다. 이런 종류의 하위호환성 보장은, 새 플랫폼을 선보이기 위한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서, 역사상 계속 되풀이된다. 따라서 플랫폼의 교훈은 다음과 같다. "과거와 연결시켜주되 끊어버릴 수도 있는 임시적인 다리를 확보하고, 이로써 기존의 사용자들을 훨씬 더 좋은 플랫폼으로 이주시킨다"이다. Enter IBM 돈 에스트리지(Don Estridge)IBM은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을 선보인다는 애플의 성공사례를 복제한다. 애플 하드웨어 혁신은 우선 사용준비가 된 소비자 지향적인 컴퓨터 시스템이었지만, IBM 플랫폼은 대기업의 명성과 강력한 인지도에 기반하는 새 플랫폼의 도입이었다. Don Estridge가 이끄는 IBM의 한 그룹은 작고 새로운 컴퓨터 플랫폼을 만든다. 원래 이 프로젝트는 IBM의 801 RISC 프로세서(POWER 아키텍쳐의 원조격이다)에 기반하는 강력한 시스템을 만드려 했었다. 801-기반의 PC에 IBM 고유의 진보적인 운영체제라면 기존의 어떠한 컴퓨터보다도 앞서나갔을 것이다. 그대신, 이 팀은 물건을 빨리 내놓아야 하며, IBM의 기존 회사용 머신 시장과 경쟁해서는 안된다고 판단내렸다. 따라서 프로세서는 인텔의 로우엔드 8080이 되었고, 이에 따라 1981년 IBM PC가 나온다. 이 컴퓨터는 이제 4년된 애플 II정도 밖에 안되었다. 1983년, 스티브 잡스는 애플 컴퓨터의 사장으로 에스트리지를 영입하려 노력했었다. 에스트리지는 잡스를 거절한다. 그리고는 IBM 일로 비행기를 타다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2년 뒤에 죽는다. 그가 애플 사장을 받아들였다면, 에스트리지와 애플 모두 미래를 완전히 다르게 바꾸어냈을지도 모른다. 잡스는 그 대신 펩시에 있던 존 스컬리(John Sculley)를 영입한다. 애플에 있던 10년 동안 스컬리가 이룬 업적은 다음과 같다. 잡스 쫓아내기, 광고를 위해 오리지날 매킨토시 가격을 25% 올리기, 맥의 지적재산권을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에 라이센스로 퍼주기, 엔지니어들보다는 중간급 관리자들이 회사를 쥐고 흔들게 놓아두기, 그로 인해 여러가지 이윤이 안남는 재앙을 만들기 등이다. 에스트리지와 같은 엔지니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뭐가 달라도 달랐을 것이다. The PC market 1981년의 시장 상황에서, 기술적으로 복잡하다거나 우아하지 않은 IBM의 진입은 더 성숙해보이는 개발의 기반을 제공하였다. IBM에게는 컴퓨터 시장에 계속 눌러 있을 만한 자원과 기술력이 있었기 때문에, IBM PC 구입은 특히 회사에 있어서 괜찮은 선택이었다. IBM의 성장도 개발자들을 새로나온 PC로 이끄는 원동력이었다. 가장 좋은 사례가 로터스1-2-3 스프레드쉬트이다. VisiCalc를 베꼈다가 나중에는 대체해버리고나는 로터스는 회계에 있어서 킬러 애플리케이션이었다. 그리고 워드프로세싱의 새 표준이 된 워드퍼펙트도 마찬가지였다. 이 두 소프트웨어 덕분에 PC는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임에도 불구하고 새 표준으로 급성장하였다. 게다가 한 번 표준이 되자, 대부분의 경쟁사들은 고유의 플랫폼을 만들 이유를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이들도 IBM PC를 베끼게 된다. IBM PC가 표준화되어가던 때였기 때문이다. 가방에 들어가는컴퓨터인 Kaypro와 Osborne과 같은 혁신적인 하드웨어를 제공하는 업체들도 비상이 걸렸다. 여전히 CP/M으로 팔려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급속도로 사라져갔고, 컴팩이 그자리를 대체하게 된다. 컴팩은 IBM PC와 같은 DOS 소프트웨어를 돌리면서, 역시 운송이 가능한 컴퓨터를 제공하였다. 하드웨어 혁신만으로는 늙어가는 플랫폼을 구할 수 없다. 특히나 경쟁사들이 더 낫거나, 적어도 더 대중성 있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사용하여 하드웨어 혁신에 대응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초기 디스크-기반의 운영체제에서 기대할 만한 일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DOS의 대안에 대해서는 경쟁의 여지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PC용 대안 DOS 시장은 실질적으로 없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애플 II용 대안 DOS 시장이 없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IBM도 스스로 DOS를 작성해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 제품을 빨리 공급하기 위해 IBM PC-DOS는 마이크로소프트 라이센스일 뿐이었다. 실질적으로야 MS-DOS는 CP/M의 복제였지만 말이다. CP/M을 개발한 디지탈 리서치는 DR-DOS로 경쟁 상품 시장을 만들려 노력했었다. 하지만 IBM과 마이크로소프트와의 라이센스 계약때문에 PC 호환기종 업체들은 디지탈 리서치나 다른 잠재적인 경쟁사들을 왕따시켰다. 플랫폼 교훈이 또 한 가지 나왔다. 공짜와 경쟁하기란 어렵다. 번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는 그 자체로 경쟁자들을 피할 수 있다. Platform Control 전체 애플 II 플랫폼을 애플이 갖고 있었지만, IBM PC는 IBM과 마이크로소프트 양사가 만든 플랫폼이었다. 이는 플랫폼 통제 유지와 관련하여 애플과 IBM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IBM이 PC 디자인을 복제업체들에게 라이센스를 내 주어서 IBM이 애플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IBM이나 애플이나 모두 하드웨어 복제 업체들을 피하기 위해 노력해 왔었다. 애플은 애플 II ROM을 복제한 Franklin에게 고소하여 승소하였었다. 하지만 PC 복제 업체들을 막기 위한 IBM의 노력은 비효율적이었고, 애플보다 더욱 더 어려웠다. 법적으로도 IBM 기술을 침해하지 않고서 가능할 정도로, PC가 너무나 복제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애플 II와 IBM PC는 양자 모두 성공적으로 복제품이 나왔었다. 하지만 PC 클론, 그중에서도 컴팩은 하드웨어 주도권을 IBM으로부터 뺏어왔다. 하지만 애플 II 복제업체인 Laser 128은 로우엔드 시장을 목표로 했으면서 더 고가인 애플 II와는 상대하지 않았었다. IBM 플랫폼은 PC 시장의 활성화 덕분에 세워졌다. 하지만 IBM은 그와 똑같은 이유때문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IBM이 좀더 복잡하고 강력한 시스템을 설사 몇 년 후에 내놓았다면, IBM은 시장에 늦게 진입함은 물론, 훨씬 더 지배적인 위치의 애플이나 CP/M과 부딪혔어야 했을 것이다. 일어나지 않았을 법 하지만 IBM이 늦게 들어왔더라면, 더 강력한 IBM의 진입은 컴퓨터 시장을 깨끗이 정리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경쟁사들이 복제하기에도 더 어려웠을 것이다. IBM이 전체 플랫폼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복제에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진다. PC는 범용 부품으로 만들어진 컴퓨터이다. IBM이 연구소에서처럼 진보적인 컴퓨터를 내놓았더라면 IBM은 칩에서부터 소프트웨어까지 전 플랫폼을 소유했을 것이다. 그러면 복제 업체들은 CP/M이나 애플 II 정도나 복제하는 데에 갇혔을 것이며, 아니면 아예 새로운 플랫폼을 내세우려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보자면, 마이크로소프트는 경쟁을 막기 위해 별 수고를 들이지 않았다. 컴팩이나 다른 복제 업체들이 IBM PC 하드웨어를 복제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와는 MS-DOS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하드웨서 시장 점유율을 IBM으로부터 뺏어오면서 마이크로소프트 DOS를 표준으로, PC 플랫폼의 원동력으로 가꾸어 주었다. 플랫폼 교훈이 나왔다. 복제하기 쉬운 기술을 선보이지 말고, 소유권 유지에 노력해야 한다. 배신자와는 파트너를 맺지 말아야 한다. The non-PC Market 애플 II는 가정과 교육 시장에 계속 팔려나갔지만, 사무 시장에서는 입지를 다지지 못하였다. 사무 시장에서는 PC가 빠르게 사실상 표준이 되어갔다. 애플의 첫 번째 대실패인 애플 III는 사무용 시장에서 IBM PC와 경쟁하기 위해 만들어진 컴퓨터였으며,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이었다. 애플 III는 IBM PC가 나오기 일 년 전부터 등장하였지만, 여러가지 비극적인 실수때문에 시장으로부터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우선, 애플 III는 애플 II와 너무나 제한적인 호환성만을 갖추고서, 완전히 새 플랫폼을 제공하려 했었다. 애플 III는 애플 II의 보다 진보적인 기능 다수를 사용할 수 없었다. 애플 III는 또한 시장에 빨리 진입하려 해서 나오는 하드웨어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게다가 애플 III는 애플 II보다 그다지 개선된 점이 없었으며, 다른 CP/M 컴퓨터들보다 더 비싸기만 하였다. 따라서 IBM PC가 설사 나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애플 III는 실패했을 기종이었다. IBM은 허술한 제품을 내놓으려 했던 애플의 호들갑까지 배워갔다. IBM PC와 클론이 막 태어나고 있던 사무용 시장을 채우는 시기에, IBM은 애플이 가진 가정과 교육시장까지 차지하려 시도했었다. 바로 IBM의 PCjr이다. PCjr는 완전한 실패작이었다. 그 이유는 애플 III와 같았다. PCjr는 애플 II나 다른 경쟁품보다 장점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고가였고, IBM PC와의 호환성도 조잡했으며, 품질도 비판을 많이 받았다. 특히 혁신적이라는 무선 키보드가 비판의 대상이었다. 플랫폼 교훈이다. 너절하면서 호환성이 없는 플랫폼 확장은 성공하기 힘들다. 당시 다른 컴퓨터 회사들, 가령 유명했던 Commodore 64나 Atari, Coleco Adam은 프로세서의 종류와 기능면에 있어서 애플 II와 견줄 만했다. C-64는 가정용 컴퓨터와 게임용 시스템으로서 개선된 그래픽과 사운드 기능, 낮은 가격표를 달고 있었다. Coleco와 Atari는 단순히 저렴한 대안만으로는 플랫폼의 생존력 개발에 충분하지 못함을 증명해 주었다. Platform Perception vs. Reality IBM은 사무용 PC 시장의 창립에 크게 기여하였다. 하지만 PC 플랫폼은 IBM이 아닌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끌었다. IBM은 소프트웨어 지배권을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넘겼을 뿐 아니라, 시장 점유율을 복제 업체들에게 빼앗기면서 하드웨어 주도권까지 넘기고 말았다. 플랫폼 교훈이 나온다. 플랫폼 내부에서 경쟁의 여지는 크지 않다. 한 곳만이 살아남을 뿐이다. 애플은 8-비트 플랫폼으로 다음 세대까지 살아남은 몇 안되는 회사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미 애플은 차세대 메이저 플랫폼 작업에 열심이었다. 강력하고 그래픽 컴퓨터 환경을 갖춘 매킨토시이다. 1984년에 나온 매킨토시와 그 경쟁자들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 1985-1990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I really like to hear from readers. What do you think? Leave a comment or email me with your ideas. 1980-1985: 8-bit Platfor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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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Q casaubon 님께서 2008-01-30 07:50 AM 에 수정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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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8-28, 01:28 PM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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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DOS(디스크로 구동되는 오퍼레이팅 시스템) 시스템을 제때 마련하지 못했던 애플의
시절부터, Z80 카드로 구동되던 CP/M,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복제해온 누더기 MS-DOS의 초창기 버전들까지, 그림처럼 머리를 스쳐갑니다. 윈도우즈가 등장하기 이전의 DOS 기반의 얼룩진 운영체제 때문에, 어떻게 보면 그때의 스카(scar) 때문에 이노무 PC 시장의 운영체제가 이 모양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면... 가끔은 세상이 늘 올바른 방향으로 진보하지는 않는가 봅니다. (디지털리즘이 창궐하는 작금이라면, 결국 플랫폼의 기반이 되는 운영체제 역시 "세상"을 지배하는 헤게모니의 일부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성서 다음의 저작물로 여기어지는 다위니즘의 진화론을 여기에 빗대어 본다면, 운영체제 시장 역시 가장 적합한 형태의 진화와 접근이 이루어 질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형적인 형태의 발전으로 거의 30년 가까운 세월을 흘러 왔다는 점에서... 뭔가 아쉬운 부분이 남습니다. 물론 아직도 "진행형"이라서 그렇겠죠? 까소봉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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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리의 블로그 : http://macdory.blogspot.com firemanx 님께서 2006-08-29 12:59 AM 에 수정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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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8-28, 02:58 PM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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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DOS의 모체는 시애틀 컴퓨팅이 만든 QDOS (Quick and Dirty OS)라는 것을..
사실 QDOS를 아주 약간 손본 것이 MS-DOS 1.0입니다. 파일시스템에 디렉토리라는 것도 없는 OS였죠. 제 기억으론 CP/M이 MS-DOS보다 더 우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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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8-30, 04:49 AM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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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1990: 16-비트 그래픽 컴퓨터의 시대
![]() 1985-1990: 16-bit Graphical ComputingWednesday, August 30, 2006"플랫폼의 역사, 그리고 그 대결"은 플랫폼을 새로 발족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플랫폼을 유지하는 일은 또 얼마나 고된지를 알려주었다. 본 글에서는 컴퓨팅 플랫폼의 역사적인 궤적(軌跡)과 함께, 누가 왜 이겼는지, 누가 왜 졌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컴퓨팅 환경이 언제나 변하기는 하지만, 기본 원칙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으며, 애플의 레퍼드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비스타와 같은 미래 개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지난 기사는 1980년부터 1985년까지를 다루었다. 여기서는 1980년대 후반을 다루도록 한다. 1985-1990: 16-bit Graphical Computing 애플의 매킨토시는 모토로라 68000 프로세서를 기반으로 날카롭고 고품질의 그래픽 디스플레이라는 컴퓨터 기술의 새 물결을 가져다왔다. 매킨토시의 혁신적인 시스템 소프트웨어의 일부는 맥 하드웨어상에 그대로 들어가있었다. 툴박스(ToolBox)라 불린 이 시스템소프트웨어의 일부는 화면상에서의 드로잉과 출력, 디스크 관리, 사용자 상호운용을 표준화시켰다. 따라서 개발자들이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일관성있게 만들기가 쉬워졌다. 개발자들은 이제 기본적인 사용자 환경을 바닥부터 다지는 대신, 새 툴에 신경쓰면 되었다. 또한 개별 프로그램은 이제 더이상 여러가지 프린터 지원을 제공해야 할 필요가 없어지기도 하였다. 이는 소규모 개발자들이 대규모 소프트웨어 회사들과 경쟁할 수 있는 여지를 터 주었다. 매킨토시 운영 시스템은 시스템에 보다 기본적인 기능을 제공하는 데에 주력하였다. Consistent User Interface 애플은 또한 표준 차원의 키보드 명령어와 사용자 인터페이스 가이드라인을 제정하여, 모든 애플리케이션이 비슷하게 돌아가도록 하였다. 즉, 사용자가 새 애플리케이션을 배우는 데에 있어서, 예전에 쓰던 애플리케이션과 비슷한 방식으로 더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하였다. DOS 프로그램이 이미 키보드 단축키를 사용하였지만, DOS 프로그램들은 제각기 다른 명령어를 사용하였으며, 대부분 직관적이지 못했다. 예를 들어서, DOS 애플리케이션들은 제각기 새 문서를 여는 단축키가 달랐다.
매킨토시의 경우에는 모든 애플리케이션이 똑같은 커맨드 + O였다. 애플은 Z 조합은 Undo, X 조합은 자르기, C는 복사, V는 붙이기, W는 창 닫기로 디자인하기도 하였다. 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존의 DOS 프로그램과 윈도우즈상에서도 애플의 직관적인 키조합을 채택한다. 물론 윈도우즈는 창 닫기에서 여전히 Alt + F4를 쓰고 있지만 말이다. PC에는 커맨드 키가 없기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커맨드의 매핑을 컨트롤 키에 정해 넣었다. 당시 DOS 사용자들은 애플이 디자인한 단순하고 직관적인 명령어 조합을 채택하려들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 윈도우즈 사용자들은 애플이 콘트롤이 아니라 커맨드 키를 사용한다면서 불평하고 있다. 오히려 애플이 기존 키 조합과 다르다는 불평이다! 플랫폼의 교훈이다. 성공적인 플랫폼은 사용자와 개발자 모두에게 시작할 기반을 마련해 주는 한편, 새로운 방향으로 이들을 성장시켜준다. A New Market for Macs 하지만 애플의 새 플랫폼에는 모든 애플리케이션을 매킨토시 상에서 돌리게 하는 룩앤필보다는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필요했다. 초창기 맥 소프트웨어의 주요 개발사 중 하나가 마이크로소프트였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새로운 오피스 애플리케이션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표준적인 맥다운 인터페이스를 정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매킨토시용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아직 확실하지 않았기에, 애플은 그러한 킬러 애플리케이션을 필요로 하였고, 드디어는 데스크톱 출판이 나온다. 텍스트와 그래픽을 레이저프린터로 출력하는 이상적인 시스템으로서 맥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더 일찍 나왔던 애플 III와는 달리, 맥은 호환성의 문제를 비켜갈 수 있었다. 하드웨어상으로나 소프트웨어상으로나 커다란 진전이 있었던 덕분이다. 따라서 호환성을 해결해주는 다리가 없어도 매킨토시 플랫폼에 대한 흥미가 생겨났다. 게다가 맥을 채택한 최초의 시장은 완전히 새로운 시장이었다. 바로 예술가들과 디자이너들이다. 이들이 사무용 컴퓨터를 널리 사용하지는 않았기에, 이들을 위한 시장에는 기존의 시장 주도자가 없었다. 하지만 맥을 학교에 들여놓기는 훨씬 더 어려웠다. 교육 기관들은 이미 애플 II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PC가 이미 표준으로서 점령한 사무용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애플은 가정과 학교 사용자들에게 계속하여 애플 II를 판매하였고, 결국에는 맥 LC에서 애플 II 호환카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애플 II 호환카드는 사용자들을 새 플랫폼으로 이주시키면서 옛 플랫폼용 작업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해결책이었다. 플랫폼의 교훈이다. 새 플랫폼의 소개는 매우 어렵다. 기존의 시장에 반하기 때문이다. 단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찾으면, 기존의 시장을 향해서도 한 번 겨뤄볼 수 있게 해준다. Apple IIGS 애플은 애플 II와 매킨토시를 조합한 컴퓨터를 선보여서, 새 플랫폼으로의 이주를 돕기로 한다. 바로 애플 IIGS이다. 애플 IIGS는 애플 II 를 16-비트 플랫폼으로 올려주었고, 맥에 있는 그래픽 툴박스 기능을 애플 II의 가격으로 제공해 주었다. 애플 IIGS는 그래픽과 사운드 기능이 들어갔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다. 애플 IIGS는 애플이 내놓은 최초의 컬러 그래픽 컴퓨터였으며, 당시 맥은 여전히 흑백 화면이었다. 애플 IIGS는 또한 Ensoniq 사운드 신디사이저 칩을 통하여, 당시 어떠한 가정용 컴퓨터보다도 제일 인상적인 사운드 기능을 제공하였다. 스티브 워즈니악의 작품이랄 수 있을 IIGS는 ADB도 개척하였다. ADB는 키보드와 마우스용의 데이지-체인 시리얼 버스로서 워즈니악이 디자인하였다. 10년 뒤에 나오게 될 인텔의 USB가 제공하는 수많은 기능을 이미 ADB가 제공했던 것이다. ADB는 새로나오게 될, 그리고 더 빠르다는 USB가 제공하지 못하는 키보드 상에서 하드웨어를 켜는 기능마저 제공하였다. 애플의 Mega II는 오리지날 애플 II가 가진 모든 하드웨어를 단일칩 안으로 집어넣어 주었다. 따라서 애플 IIGS는 초창기 애플 II 소프트웨어와 완벽한 호환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칩은 나중에 나온 맥 LC용 호환카드에서도 쓰인다. 만약 매킨토시가 나오지 않았더라면 애플 IIGS는 애플에게 있어서 상당히 강력한 제품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애플 IIGS는 매킨토시로부터 관심을 빼앗았고, 애플 또한 양 플랫폼의 유지에 개발력을 쏟아야 했다. 그 결과 애플 IIGS에 대한 애플의 지원은 한눈팔기식 산발적 지원이 되어버렸다. 후에 IIGS용 운영체제인 GS/OS가 나왔었다. GS/OS는 맥으로부터 부가적인 기술을 빌렸고, 애플 II 라인의 기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지만, 애플 IIGS의 남은 수명은 분명했다. 애플은 IIGS를 학교기관에 대량판매하였다. 애플 II와의 호환성과 저가격덕분에 학교에 맥을 팔기보다 IIGS 판매가 더 쉬웠던 탓이다. 또한 애플 IIGS의 사례는 호환성 유지가 왜 나쁜 전략인지를 알려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애플 IIGS 시스템의 사용처가 약간 더 빠른 8비트 애플 II용으로서의 사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개발자들은 애플 IIGS가 가진 우아한 기능과 혁신 대부분을 무시하였고, 따라서 사용자들도 그런 기능을 누리지 못하였다. 애플 IIGS 전용 애플리케이션은 그리 많이 나오지 않았다. 부분적으로는 애플이 맥을 홍보한 탓도 있긴 하였다. 플랫폼 교훈이다. 다중 플랫폼 지원은 개발여력을 크게 떨어뜨린다. 하위호환성은 앞으로의 진전을 막을 수 있다. The PC Market 업계 표준 PC는 맥보다 훨씬 뒤쳐져 있었다. 이전 세대의 옛날 옛적 텍스트-기반 애플리케이션의 개선을 택하였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이 일반 컴퓨터용으로 시스템소프트웨어를 내주기 희망하였지만, 초창기 세대의 텍스트기반 컴퓨터들은 맥과 같은 풍부한 환경을 다룰 파워가 못되었다. 따라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스스로 나서서 윈도우즈를 제공하기로 한다. 그러나 윈도우즈 3.1이 1991년에 나오기 전까지는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었다. "짜깁기 개발의 미신을 벗긴다"에서 묘사한대로, DOS PC상에서 맥 환경을 재창조하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노력은 점점 더 복잡해졌고, 차라리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기보다 더 성공하기가 어려워졌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오리지날 맥에서의 애플 개발비용보다 두 배를 더 들여서 윈도우즈 3.0을 개발해냈다! 이제 컴퓨터 산업의 주도자 지위가 굳건해진 마이크로소프트가 어째서 깔끔하게 새로운 세대의 컴퓨터를 선보이지 않았을까? 맥처럼 깔끔하고 우아한 하드웨어를 왜 발표하지 않았을까? 마이크로소프트는 컴퓨터 제품의 절반만을 통제하기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새 플랫폼 투자라는 위험을 자초하지 않을 PC 하드웨어 개발자에게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다. PC 플랫폼은 혁신하자는 플랫폼이 아니다. 오로지 낮은 가격을 이루자는 플랫폼이다. 그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로서는 더 허술한 하드웨어상에서 맥 환경을 구현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픽셀도 사각형이 아니었고, 그래픽카드 표준도 제멋대로였다. PC의 모든 것이 오로지 저가에 맞춰져 있었고, 그 결과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당주로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비용을 많이 들일 수 밖에 없었다. 하나의 완전한 솔루션을 내놓는 하나의 회사 대신, PC 시장은 복잡다단한 하드웨어 회사와, 단 하나의 운영체제 시스템 소프트웨어 회사로 이루어져 있다. 사용자들은 통합 솔루션 비용을 스스로 부담해야 했다. 이는 오리지날 IBM PC의 구매가보다 훨씬 높았다. 플랫폼의 교훈이다. 통합 시스템 지원이 여러가지 부품 조립 지원보다 훨씬 더 쉽다. IBM’s Failure to Reclaim the PC IBM은 진보적이고 폐쇄적인 하드웨어 표준 기술을 지닌 새 세대의 PC를 소개하여 이를 다시 라이센스하고, 그동안 잃어버린 PC 플랫폼의 통제권을 다시금 쥐기 희망하였다. 다름아닌 PS/2이다. PS/2는 훨씬 더 빠른 MCA 확장슬롯과 우월한 VGA 그래픽, 그리고 매킨토시가 소개한 3.5" 플로피디스크, 새로운 키보드와 마우스 표준포트를 탑재한 새로운 컴퓨터였다. 또한 PS/2는 IBM과 마이크로소프트가 파트너쉽을 맺어서 내놓은 새로운 운영시스템, OS/2를 소개하였다. IBM은 OS/2가 PS/2라는 자동차의 운전석에 올라탔다 생각하였지만, PC 업계는 이미 IBM이 이끌고가기에는 너무나 커버린 상태였다. PS/2의 표준화된 기능을 채택한 PC 메이커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들은 MCA를 채택하여 IBM에게 라이센스 비용을 내기보다는, 별도의 PC 확장 슬롯 아키텍쳐인 EISA를 만들어냈다. 컴팩이 주도한 EISA때문에, IBM은 도리어 낙동강의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렸다. PS/2는 실패작이 되어버렸고, IBM은 80년대 나머지 기간동안 엄청난 재무상 손실을 기록하게 된다. IBM은 컴팩에게, 그리고 나중에는 델에게 하드웨어 시장의 주도권을 잃었을뿐만 아니라, 1990년, OS/2 개발에 있어서의 마이크로소프트의 배신까지 겪는다. 즉, PC 플랫폼을 창안했다 하여, IBM이 PC 플랫폼을 지배하지는 못하였다. 기술적으로 우월한 PS/2도 IBM에게 통제권을 되돌려주지는 못했다. PC가 범용 제품 시장이 되자, PC 시장의 모든 관심은 가격경쟁에 쏠렸고, IBM이 일으킨 새 혁신은 단순복제가 되거나 무시당하였다. 플랫폼의 교훈이다. 복제가 쉬운 플랫폼은 복제되기 마련이다. 사업 모델을 한 번 포기해 버리면, 되돌리기란 쉽지 않다. The Non-PC Market 마우스로 윈도우 창 환경에 나타난 문서를 조작한다는 기본 개념은 코모도어의 아미가나 Atari ST에도 전달되었다. 이 양 컴퓨터는 맥과 비슷하게, 모토로라의 68K 프로세서를 사용하였다. 아미가는 비디오와 그래픽으로 작동하는 특별한 하드웨어 프로세서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아타리는 가격면에서 애플과의 차별화를 꾀하였다. 아타리를 떠난 엔지니어들이 모여서 새로운 게임 콘솔로 만들려 했던 것이 원래의 아미가였다. 코모도어의 창립자이자, 사장인 잭 트래밀(Jack Tramiel)은 코모도어를 떠난 후, 아타리를 인수하여, 아타리의 기존 제품 대부분을 중단시켜버리고, 직원들도 대부분 해고시켰다. 그리고는 차세대 16-비트 컴퓨터를 선보일 계획을 세웠다. 아타리와 코모도어는 아미가 그룹 기술, 그리고 코모도어에서 아타리로 떠난 기술자들을 두고 다투었다. 이 싸움에서 코모도어가 승리하여 코모도어는 C-64로 생겨난 이윤을 아미가 인수에 써버렸다. 아타리는 겨우 ST를 선보일 수 있었다. ST는 디지탈리서치의 CP/M에 기반하는 그래픽 데스크톱 환경인 GEM을 포팅하여 사용하였다. ![]() 마침내 아미가와 ST는 맥과 비슷한 퍼포먼스로 애플 IIGS보다 낮은 가격에 컴퓨터를 제공하였다. 하지만 아타리와 코모도어의 회사 크기, 그리고 중요한 컴퓨터 플랫폼 개발과 유지에 대한 미천한 경륜때문에 그들 누구도 장기적인 플랫폼의 생존에 중요한 써드파티 개발자들을 충분히 끌어모을 수 없었다. 게다가 진보적인 하드웨어 디자인에 맞춰나가는 일도 어려웠다. 애플과 비슷한 기능을 탑재시키면서 완전한 운영체제를 유지시키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드웨어 이윤으로 생겨나는 거대한 이윤을 애플은 연구개발비용으로 투입시킬 수 있었다. 가령 아미가는 맥보다 좋은 독특한 기능인, 선점형 멀티태스킹을 제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사용자에게 실질적인 이득을 안겨다줄 수 있는 써드파티 개발자들을 끌어모으지는 못했고, 주목도 받지 못하였다. 아미가에 없는 중요한 한 가지는 선점형 멀티태스킹이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 애플리케이션 지원이었다. 비디오 편집이나 모션그래픽, 비디오상의 그래픽 오버레이와 같은 틈새시장에서는 아미가의 진보적인 하드웨어 기능을 누릴 수 있었다. 결국 아미가는 PC도 아니고 맥도 아닌 제품을 추가하는 데에 그치고 말았다. 이 제품은 Video Toaster로서, 비디오 시장을 이끌기는 하였지만, 결국 다른 영역에서 아미가는 경쟁사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고 PC와 맥보다 뒤쳐지게 되었다. 아타리 ST도 비슷하게 데스크톱 출판과 CADD 시장에 있어서 유럽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지만, 개발을 지속시킬 정도로 시장을 개척하지는 못하였다. 부분적으로는 모토로라 68k 프로세서 아키텍쳐가 활력을 잃었던 탓도 있다. 플랫폼 교훈이다. 완전히 새롭고 비호환 플랫폼은 시장 안에서 운신의 폭이 좁게 마련이다. NeXT 트래밀처럼,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창립하고 초창기 맥 개발을 지휘하였지만, 애플의 경영 방향과는 다른 길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1985년 애플에서 축출된 이후, 스티브 잡스는 차세대 운영체제라는 자신의 비전을 실현시켜줄 새 회사를 창립하게 된다. 넥스트(NeXT)이다. 넥스트의 개발시스템은 애플 계획보다 훨씬 더 진보적이었다. ![]() 넥스트는 잡스가 세웠고, 여기에 애플에서 잡스를 따라온 여러 개발자들이 참여하였다. 넥스트는 자신의 계획대로 개발시스템을 돌릴 하드웨어가 없다 판단하고, 고유의 하드웨어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결정내린다. 운영체제도 제작하기로 함은 물론이다. 넥스트는 1989년부터 새 머신을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컴퓨팅의 새시대에 뛰어들었다. Platform Perception vs. Reality 애플은 새 세대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주도적으로 이끌면서 컴퓨터 기술의 최고봉을 개척하였다. 비록 실패로 끝날 위험도 있었고, 자원도 대단히 많이 소모하였지만, 애플은 보통의 PC보다 분명히 우월한 새 플랫폼을 과감하게 내놓았고, 전세대의 8-비트 머신이 교체를 요구할 시기에 새로운 수요와 이윤을 창출하였다. 아미가와 아타리 ST, 그리고 애플 IIGS는 모두 맥보다 저렴한 대안을 제공하고 장점도 갖고 있었지만, 유망한 플랫폼으로서의 개발자지원과 시장을 모두 가지지는 못하였다. 애플의 지위를 넥스트가 빼앗으리라는 전망도 나왔지만, 넥스트도 불충분한 개발자 지원과 시장구축에 있어서 비슷한 문제를 겪게 된다. 여러모로 넥스트는 대중적으로 저변을 넓히기에 너무나 앞서 있었다. 플랫폼 교훈이다. 과감한 선택은 큰 성과를 가져다줄 수 있지만, 장담할 수는 없다. 16-비트 신세대 그래픽 컴퓨터는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복잡해졌다. 개발자들의 투자도 훨씬 더 많이 필요해졌다. 그러나 기술 발전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되었으며, 기존의 컴퓨터를 구식으로 만들어버렸다. 이에 따라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기는 매우 어려워지게 된다. 다음 시대(1990~1995)에서는 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반을 통해 기존의 플랫폼의 원기를 회복시켜주려는 시도가 이어진다. I really like to hear from readers. What do you think? Leave a comment or email me with your ideas. 1985-1990: 16-bit Graphical Compu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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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Q casaubon 님께서 2008-01-30 07:52 AM 에 수정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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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5: 새 플랫폼을 향한 질주
![]() 1990-1995: The Race to Deliver The Next New PlatformWednesday, September 6, 2006"플랫폼의 역사, 그리고 그 대결"은 플랫폼을 새로 발족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플랫폼을 유지하는 일은 또 얼마나 고된지를 알려주었다. 본 글에서는 컴퓨팅 플랫폼의 역사적인 궤적(軌跡)과 함께, 누가 왜 이겼는지, 누가 왜 졌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컴퓨팅 환경이 언제나 변하기는 하지만, 기본 원칙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으며, 애플의 레퍼드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비스타와 같은 미래 개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지난 기사는 1980년부터 1985년까지와 1985년부터 1990년까지를 다루었다. 이번에는 1990년대 초반의 컴퓨터 플랫폼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우선 DOS를 교체하기 위한 OS/2에 대한 IBM과 마이크로소프트 간의 파트너쉽을 보고, 그 다음에는 맥을 NeXT와 BeOS로 업데이트시키려는 애플의 노력을 알아보겠다. 또한 90년대 초반, 인텔 PC에서 맥을 돌리려던 애플의 StarTrek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보도록 한다. 그 다음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의 부상(浮上)을 보도록 한다. 맥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시키려는 애플과 IBM 간의 협력과 NeXT를 베끼려는 업계의 노력, 애플의 대실패 시리즈와 데스크톱 플랫폼에서 일어난 자유로운 대안을 보겠다. 또한 이와 함께, 레퍼드와 비스타 간의 다가올 전투, 리눅스와 윈도우즈 간의 분쟁, 마이크로소프트와 닌텐도, 소니 간의 게임 콘솔 전쟁, 애플 아이포드와 마이크로소프트의 PlayForSure와 Zune 간의 라이벌전도 알아본다. 1990-1995: The Race to Deliver the Next New Platform 1990년대로 접어들자, 하드웨어 면에서의 비약적인 향상은 운영체제 소프트웨어의 향상을 앞서나가기 시작한다. 새로이 수립된 그래픽 데스크톱은 복잡성을 추가시키기에 이른다. 다중 실행 애플리케이션, 다중 사용자, 네트워킹, 더 큰 메모리 어드레싱, 고해상도 컬러 그래픽, 다중 모니터와 더 대용량의 하드 드라이브 등, 이 모두가 좀더 복잡한 운영체제를 요구하였다. 1985년부터 1990년 사이의 소비자용 플랫폼 중 1990년대 초에 죽은 플랫폼으로는 애플IIGS와 코모도어 아미가, 아타리 ST의 세 가지가 있으며, 이 세 플랫폼 모두 새로운 하드웨어 기술 혁신을 채택하였으나, 그와 버금가도록 혁신을 이룬 소프트웨어 지원이 없어서 생명력을 잃고 말았다. ![]() 이로써 소비자용 플랫폼의 주류는 애플 매킨토시와 DOS를 돌리는 PC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두 플랫폼 모두 급속도로 나이를 먹어갔고, 직접적인 교체나 상당한 개선을 요구하게 되었다. 1990년 당시 애플과 PC 메이커들은 공히 더 빠르고 강력한 하드웨어를 만드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DOS와 맥 "시스템"은 새로운 하드웨어를 한껏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운영체제 기술의 빠른 채택을 방해하는 심각한 구조적인 문제에 봉착해 있었다. OS/2: A Better DOS than DOS 마이크로소프트는 OS/2라 불리는 DOS 후계 시스템을 IBM과 같이 개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DR-DOS나 다른 대안 운영체제가 1980년~1985년 기간동안 크게 성장을 하지 못했던 이유와 똑같은 이유로 인하여 OS/2는 성공할 수가 없었다. 이들 모두 MS-DOS라는 마이크로소프트 뒷마당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직접 경쟁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도 PC 사용자들을 개선된 DOS로 채택시키는 데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였다. 5년간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즈 1.0과 2.0을 DOS 상에서 돌아가는 그래픽 셸 프로그램으로 판매하려 했지만,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윈도우즈는 DOS가 돌아가는 PC 하드웨어에서도 돌아갔지만, DOS와 PC 하드웨어는 이미 확립된 표준이었다. 윈도우즈가 새 플랫폼을 대표했던 이유는 윈도우즈 기능을 활용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필요로 해서였다. PC 사용자들을 기존하드웨어 상에서 윈도우즈로 이주시키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노력은 애플 II 사용자들을 완전히 새로운 맥으로 이주시키려는 애플의 노력만큼이나 어려웠다. 플랫폼 교훈이다.: 새 플랫폼 채택에 있어서 새 하드웨어만큼이나 새 소프트웨어는 상당한 장애물이 될 수 있다. Not Too Fast 자기 자신(MS-DOS)과의 경쟁을 벌이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는 OS/2를 새 플랫폼으로 밀어부쳤다. 여기에는 위험이 따랐다. 미래에 너무 집중된 관심은 소규모 DOS 벤더들, 가령 DR-DOS와 같은 곳에게 기존의 PC 플랫폼을 거머쥘 여지를 터주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DOS 시장 점유율을 깎아 내리던 이들 경쟁자는 OS/2가 제자리를 잡기 전에 왕좌를 차지하려 하였다. 그렇게 되면 마이크로소프트에게는 죽음뿐이었다. 기존의 매출량이 멈춰지면서 미래의 시장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악순환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위험은 1985년부터 1990년까지의 IBM 초기 PC 하드웨어 위기와 비슷했다. PS/2가 새로운 플랫폼을 미처 세우기 전에 PC 클론이 시장을 집어삼킨 것이다. 플랫폼 교훈이다.:잔챙이들의 단체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때에만, 자신을 보전(保全)할 수 있다. Benevolent Dictator Platforms vs. Anarchy Platforms 마이크로소프트는 전체 플랫폼을 갖고 있지 않았기에 OS/2에 대한 노력을 좀더 신중하게 취했어야 했다. 만약 마이크로소프트와 IBM이 PC 플랫폼을 완전히 소유하고 있다면야, DOS의 방향을 보다 쉽게 틀면서 OS/2를 소개하면 됐을 터였다. 그대신 마이크로소프트의 초점은 DOS와 DOS/윈도우즈, 그리고 OS/2 사이에서 찢겨져 있었다. 그리고 IBM은 경쟁자들에게 찢겨 나가면서도 살아있는 상황이었다. 누구도 PC 시장을 지배하지 못하였으며, 이러한 무정부상태는 특히 소프트웨어 면에 있어서의 진보와 개발뿐만 아니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통합 면에 있어서의 진보와 개발마저 막아버렸다. 애플도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었지만, 맥 플랫폼을 완전히 틀어쥐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을 개척할 자유를 좀더 갖고 있었다. 따라서 사용자와 개발자들은 애플이 이끄는 이주를 보다 빠르게 할 수 있었다. 80년대 후반동안 애플은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의 메이저 업데이트를 다섯 번 실시하였고, 1990년에는 시스템 6가 나온다. 플랫폼 교훈이다.플랫폼을 갖고 있어야 보다 쉽게 진도를 나갈 수 있다. 그러나 DOS처럼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 또한 그 기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전체 플랫폼의 소유자로서 애플이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해결하려 했는지, 어떤 다른 문제가 있었는지는 다음 기사, "1990-1995: Hitting the Wall"를 보시기 바란다. I really like to hear from readers. What do you think? Leave a comment or email me with your ideas. 1990-1995: The Race to Deliver The Next New Plat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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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Q casaubon 님께서 2008-01-30 07:52 AM 에 수정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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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9-07, 11:10 AM |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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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5: 벽에 부딪힌 맥
![]() 1990-1995: Hitting the WallThursday, September 7, 2006"플랫폼의 역사, 그리고 그 대결"은 플랫폼을 새로 발족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플랫폼을 유지하는 일은 또 얼마나 고된지를 알려주었다. 본 글에서는 컴퓨팅 플랫폼의 역사적인 궤적(軌跡)과 함께, 누가 왜 이겼는지, 누가 왜 졌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컴퓨팅 환경이 언제나 변하기는 하지만, 기본 원칙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으며, 애플의 레퍼드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비스타와 같은 미래 개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지난 기사는 1980년부터 1985년까지와 1985년부터 1990년까지, 그리고 1990년부터 1995년까지, 새 플랫폼을 향한 질주를 알아보았다. 그 기사는 IBM과 마이크로소프트가 DOS와 윈도우즈 상에서 어떤 개선을 이루려 했는지, OS/2로 어떻게 바꾸려 했는지를 조사하였다. 이번 글에서는 맥을 업데이트시키기 위한 애플 자신의 노력에 대해 알아본다. Hitting the Wall 마이크로소프트와 IBM과 같이, 애플도 똑같은 문제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하지만 애플은 맥 플랫폼 전체를 소유하고 있었기에, 신기술을 개척할 자유가 더 컸고, 그에 따라 소비자와 개발자들도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채택할 수 있었다. 80년대 후반동안 애플은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의 메이저 업데이트를 다섯 번 실시하였고, 1990년에는 시스템 6가 나온다. ![]() 하지만 빠른 개발 이후로, 맥 플랫폼은 벽에 부딪히게 된다. 맥이 간단한 컴퓨터 기기에서 좀더 복잡하고 네트워크화된 세상으로 들어설 수록, 맥은 Sun이나 SGI, Apollo와 같은 로우엔드 유닉스 웍스테이션 업체들과의 경쟁에 직면한다. 이때문에 애플은 유닉스와 비견할 만한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제공하였지만, 맥 소프트웨어 구조가 그러한 시도를 어렵게 만들었다. 맥은 원래 1980년부터 1985년까지의 전형적인 가정용 컴퓨터에서 비약적인 향상을 가져온 디자인이었다. 그러나 웍스테이션과 경쟁이 되면서, 유닉스의 유산이 갖는 장점은 보다 분명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