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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8, 05:51 AM   #1
casau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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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의 역사, 그리고 그 대결

Platform Death Match

Friday, August 25, 2006

경쟁이란 좋은 것이다. 더 많은 경쟁자가 들어설 수록, 경쟁은 혁신을 촉진시키고, 그 결과 더 나은 제품이 더 많은 효율성을 갖고 나온다. 하지만 경쟁이 그렇게 좋다면, 상용 운영체제 시장에서도 왜 경쟁이 더 생기지 않는 것일까?

80년대와 90년대에는 회사들마다 각자의 운영체제를 갖고 경쟁을 벌이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 경쟁이 딱히 소비자들에게 이득이 되는 것 같아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IBM의 OS/2와 애플의 맥,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그 외에 Amiga, Atari, Be, NeXT, 여러가지 DOS 회사들이 내어 놓는 대안들은 그저 소비자들에게는 혼란과 불확실성만을 심어다 주었다.

오늘날 주요 상용 데스크톱 플랫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XP와 애플 맥오에스텐이다. 왜 다른 선택들은 사라져버렸을까?

본 기사는 운영체제 플랫폼을 소개하고, 역사적인 플랫폼들간의 흥망성쇠를 다루도록 하겠다. 그 다음에는 플랫폼의 역사와 함께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어디로 향하는지, 새로운 버전을 내놓으려면 어떠한 도전을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알아보겠다.

What is a Platform?
컴퓨팅에 있어서 플랫폼이란 개발자들의 개발 기반이다. 플랫폼은 표준 PC 플랫폼과 같이 하드웨어를 묘사할 수 있다. 또한 대부분의 하드웨어상에서 돌릴 수 있는 썬의 자바 플랫폼과 같이 소프트웨어도 설명할 수 있다.

애플은 32/64-비트 PowerPC 맥과 32/64-비트 인텔맥 하드웨어를 동시에 지원하는 단일 버전의 맥오에스텐 플랫폼을 제공하기 위해 작업중에 있다. 현재의 타이거는 각각의 하드웨어별로 나와 있다. 그러나 맥오에스텐용으로 나온 소프트웨어는 어떠한 맥에서도 돌릴 수 있다. 똑같은 유니버설 바이너리 패키지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즉, 애플은 단일된, 통합된 플랫폼을 만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여러가지 하드웨어 플랫폼용으로 여러가지 버전의 윈도우즈를 유지하고 있다. 제일 일반적인 윈도우즈는 32-비트 윈도우즈 XP이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64-비트 Itanium용 버전과 또다른 64-비트 PC x64 버전(AMD64 PC용)도 출하하였다. 그리고 윈도우즈 CE와 관련된 모바일용 버전이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 Xbox 360 게임콘솔도 고유의 윈도우즈를 돌린다. PowerPC 프로세서를 사용하는 하드웨어용으로 특별히 포팅된 버전이다. 윈도우즈용 소프트웨어도 고유의 하드웨어를 목표로 해야한다.

플랫폼의 정의가 워낙에 융통성이 있기에 비교를 해 봐야 플랫폼의 정의를 이해하기 쉬워진다. "윈도우즈" 플랫폼도 그리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여러가지 종류의 윈도우즈 제품을 내놓고 있으며, 각 윈도우즈 버전이 특정 플랫폼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PC 플랫폼"도 더이상 유용하지는 못하다. 애플의 최신 맥이 이제 윈도우즈를 돌리는 PC와 동일해졌기 때문이다.

플랫폼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비교해보기 위해, 본 기사 시리즈는 플랫폼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간의 고유의 결합으로 간주하겠다.

Introducing a New Platform
비록 호환모드가 많이 나와서 다른 시스템용으로 디자인된 소프트웨어도 돌릴 수 있었지만, 80년대에 나온 거의 모든 컴퓨터는 고유의 운영체제를 운영하였고, 그에 따라 고유의 애플리케이션을 요구하였다.

당연히 모든 소프트웨어를 돌릴 시스템이 나오기를 바라는 소비자들도 생길 법하다. 하지만 이전 기사에서 필자는 왜 이 아이디어가 좋은 생각이 아닌지 설명하였다. 바로 "유토피아 시스템의 미신을 벗긴다"의 기사에서 다른 소프트웨어를 돌리는 능력이 왜 해당 플랫폼의 생존과 별 상관이 없는지, 여러가지 호환 모드와 그 사례를 들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Atari ST는 DOS와 맥 소프트웨어를 모두 다 돌릴 수 있었다.

이상적으로 컴퓨터 시스템은 특화된 운영체제와 애플리케이션이 있어야 그 하드웨어의 장점을 십분 활용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디자인되어있다.

새 플랫폼의 소개에는 엄청난 수고가 들어간다. 초기 디자인은 오히려 쉬운 부분에 속한다. 플랫폼의 창조는 써드파티 개발자들의 지원과 함께, 개발자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줄 개발의 진척을 요구한다.

운영체제 요구사양이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코드기반의 유지도 복잡해지고 어려워졌다. 플랫폼 개발자들은 자기 시스템 유지뿐만 아니라, 끊임 없는 신기술의 영입과 혁신이라는 압박을 받아야 한다.

즉, 두 가지 노력이 서로간의 목표를 채워주어야 한다. 플랫폼이 변화한다면 플랫폼의 유지는 좀더 어렵다. 하지만 플랫폼이 기술 경쟁에서 밀리는 경우에는 플랫폼 유지가 더욱 더 어려워진다.

Maintaining Platforms
첫 번째 매킨토시의 발표는 개발에만 거의 5년 정도 걸렸으며, 애플이 애플 II 매출덕분에 꾸준한 수입을 올렸기에 겨우 가능했다.

Amiga와 Atari, Be, 그리고 NeXT가 초기 제품을 팔기 위해 벌여야 했던 노력을 생각해 보시라. 제품 하나 개발에만 수 백만 달러의 개발비용이 들어갔다.

개발자들은 플랫폼 제공이야 쉬운 부분에 속함을 빠르게 알아차렸다. 문제는 플랫폼의 유지이며, 이 유지에는 훨씬 더 많은 수고가 필요하다. 5년마다 컴퓨팅의 새로운 시대가 각 플랫폼에 새로운 기능을 더하면서, 각 플랫폼의 경쟁도 이어진다.

플랫폼이 점점 더 복잡해질 수록, 벤더들도 다른 컴퓨팅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새 하드웨어와 새 소프트웨어 제공에 경쟁압박을 받는다. 기능을 못맞추어주면 판매량을 잃게 되고, 빠른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하드웨어 벤더들이 운영체제 개발을 한 벤더에 맡겨버리는 시장 형태가 나타났다.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이다. 한편 애플은 유일하게 전통을 고수하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이라는 고유의 플랫폼 조합을 유지시켰다.

지난 30년간의 역사를 보면, 왜 어떤 플랫폼은 성공하고, 어떤 플랫폼은 실패했는지, 경쟁을 못따르는 경쟁자들을 처단해버리는 혁신의 물결이 무엇이었는지의 단서를 알 수 있다. 다음 기사에서는 소비자 컴퓨팅 플랫폼의 세대별 역사에 대해 보고, 각 벤더들이 생존을 위해 어떤 선택을 했는지 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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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roughlydrafted.com/RD/Hom...EF7FAFD3A.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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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8, 06:00 AM   #2
casau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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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1985: 8-비트 플랫폼의 시대

1980-1985: 8-Bit Platforms

Monday, August 28, 2006

위 글에서는 새 플랫폼 만들기의 어려움과, 유지에 관련된 작업에 대해 논하였다. 여기서는 컴퓨터 플랫폼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고 누가 왜 이겼는지, 누가 왜 졌는지에 대해 정리해 보겠다. 컴퓨터 환경이란 언제나 변하고 있지만, 오늘날에도 기본 원칙은 그대로 지켜지고 있으며, 애플의 레퍼드와 마이크로소프트 비스타의 향후 개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플랫폼에서 성공을 이루려면 한 가지 이상의 방법으로 유지를 시켜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경쟁자들은 그시대의 플랫폼을 완전히 대신할 기회가 없음을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여러가지 다른 시스템과의 공존을 추구하여 대안을 제공하려 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데스크톱 운영체제 시장의 제한적인 경쟁의 진짜 이유는 단일화된 시장의 장점에 있다. 개발자들은 될 수 있는 한 자기 제품을 널리 퍼뜨리고 싶어하기 때문에, 시장이 큰 플랫폼을 선호하게 마련이다. 그만큼 많이 선보일 수 있으며, 그만큼 생존에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다른 소프트웨어 미들웨어 플랫폼도 마찬가지이다. 얼마나 많은 미디어 플랫폼이 있을까? 비디오 게임 콘솔은 또 얼마나 있으며, 임베디드 시스템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상호운용성과 이주 과정은 소수 플랫폼의 성공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이론도 괜히 이론이 아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1980년대 초반의 컴퓨터부터 시작해 보도록 하자.

1980-1985: 8-Bit Platforms
초기 컴퓨터는 애플리케이션을 띄우는 역할만 하였다. 컴퓨터 자체가 파일과 출력, 그래픽 그리기를 모두 다루는 애플리케이션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는 플랫폼의 채택에 있어서 킬러 애플리케이션을 낳았다.

70년대의 표준 플랫폼으로서 CP/M의 채택은 주로 유명한 텍스트 에디터, WordStar 덕분이었다. 마찬가지로 최초의 유명 스프레드쉬트인 VisiCalc는 애플 II의 성공을 가져왔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어느 플랫폼에 투자해야할지 망설였다. 다음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다른 하드웨어라면 지금 쓰고 있는 하드웨어는 구닥다리가 되는가?

현실적으로,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기술에 있어서의 중요한 개선은 어떻게서든 기존의 시스템을 구닥다리로 빠르게 만들어버리게 마련이다. 진짜 의문은, 과연 새 시스템이 기존 플랫폼의 확장인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인가이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새 혁신을 조성하려면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을 소개해야 할까?

답변은 역사가 제공해준다. 한 단어로 말할 수도 있다. 그때그때 달라요.

가령 애플 II는 확장이 쉽고 간단한 하드웨어상에 기반을 둔 고유의 플랫폼으로서 성공을 거두었다. 애플 II는 CP/M과 소프트웨어 호환성을 갖추고 있지 않지만, 추가적으로 Z80 카드를 사용하여 CP/M 프로그램을 돌릴 수는 있었다. 이런 종류의 하위호환성 보장은, 새 플랫폼을 선보이기 위한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서, 역사상 계속 되풀이된다.

따라서 플랫폼의 교훈은 다음과 같다. "과거와 연결시켜주되 끊어버릴 수도 있는 임시적인 다리를 확보하고, 이로써 기존의 사용자들을 훨씬 더 좋은 플랫폼으로 이주시킨다"이다.

Enter IBM
돈 에스트리지(Don Estridge)IBM은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을 선보인다는 애플의 성공사례를 복제한다. 애플 하드웨어 혁신은 우선 사용준비가 된 소비자 지향적인 컴퓨터 시스템이었지만, IBM 플랫폼은 대기업의 명성과 강력한 인지도에 기반하는 새 플랫폼의 도입이었다.

Don Estridge가 이끄는 IBM의 한 그룹은 작고 새로운 컴퓨터 플랫폼을 만든다. 원래 이 프로젝트는 IBM의 801 RISC 프로세서(POWER 아키텍쳐의 원조격이다)에 기반하는 강력한 시스템을 만드려 했었다. 801-기반의 PC에 IBM 고유의 진보적인 운영체제라면 기존의 어떠한 컴퓨터보다도 앞서나갔을 것이다.

그대신, 이 팀은 물건을 빨리 내놓아야 하며, IBM의 기존 회사용 머신 시장과 경쟁해서는 안된다고 판단내렸다. 따라서 프로세서는 인텔의 로우엔드 8080이 되었고, 이에 따라 1981년 IBM PC가 나온다. 이 컴퓨터는 이제 4년된 애플 II정도 밖에 안되었다.

1983년, 스티브 잡스는 애플 컴퓨터의 사장으로 에스트리지를 영입하려 노력했었다. 에스트리지는 잡스를 거절한다. 그리고는 IBM 일로 비행기를 타다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2년 뒤에 죽는다. 그가 애플 사장을 받아들였다면, 에스트리지와 애플 모두 미래를 완전히 다르게 바꾸어냈을지도 모른다.

잡스는 그 대신 펩시에 있던 존 스컬리(John Sculley)를 영입한다. 애플에 있던 10년 동안 스컬리가 이룬 업적은 다음과 같다. 잡스 쫓아내기, 광고를 위해 오리지날 매킨토시 가격을 25% 올리기, 맥의 지적재산권을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에 라이센스로 퍼주기, 엔지니어들보다는 중간급 관리자들이 회사를 쥐고 흔들게 놓아두기, 그로 인해 여러가지 이윤이 안남는 재앙을 만들기 등이다. 에스트리지와 같은 엔지니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뭐가 달라도 달랐을 것이다.

The PC market
1981년의 시장 상황에서, 기술적으로 복잡하다거나 우아하지 않은 IBM의 진입은 더 성숙해보이는 개발의 기반을 제공하였다. IBM에게는 컴퓨터 시장에 계속 눌러 있을 만한 자원과 기술력이 있었기 때문에, IBM PC 구입은 특히 회사에 있어서 괜찮은 선택이었다.

IBM의 성장도 개발자들을 새로나온 PC로 이끄는 원동력이었다. 가장 좋은 사례가 로터스1-2-3 스프레드쉬트이다. VisiCalc를 베꼈다가 나중에는 대체해버리고나는 로터스는 회계에 있어서 킬러 애플리케이션이었다. 그리고 워드프로세싱의 새 표준이 된 워드퍼펙트도 마찬가지였다. 이 두 소프트웨어 덕분에 PC는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임에도 불구하고 새 표준으로 급성장하였다. 게다가 한 번 표준이 되자, 대부분의 경쟁사들은 고유의 플랫폼을 만들 이유를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이들도 IBM PC를 베끼게 된다. IBM PC가 표준화되어가던 때였기 때문이다.

가방에 들어가는컴퓨터인 Kaypro와 Osborne과 같은 혁신적인 하드웨어를 제공하는 업체들도 비상이 걸렸다. 여전히 CP/M으로 팔려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급속도로 사라져갔고, 컴팩이 그자리를 대체하게 된다. 컴팩은 IBM PC와 같은 DOS 소프트웨어를 돌리면서, 역시 운송이 가능한 컴퓨터를 제공하였다.

하드웨어 혁신만으로는 늙어가는 플랫폼을 구할 수 없다. 특히나 경쟁사들이 더 낫거나, 적어도 더 대중성 있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사용하여 하드웨어 혁신에 대응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초기 디스크-기반의 운영체제에서 기대할 만한 일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DOS의 대안에 대해서는 경쟁의 여지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PC용 대안 DOS 시장은 실질적으로 없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애플 II용 대안 DOS 시장이 없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IBM도 스스로 DOS를 작성해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 제품을 빨리 공급하기 위해 IBM PC-DOS는 마이크로소프트 라이센스일 뿐이었다. 실질적으로야 MS-DOS는 CP/M의 복제였지만 말이다.

CP/M을 개발한 디지탈 리서치DR-DOS로 경쟁 상품 시장을 만들려 노력했었다. 하지만 IBM과 마이크로소프트와의 라이센스 계약때문에 PC 호환기종 업체들은 디지탈 리서치나 다른 잠재적인 경쟁사들을 왕따시켰다.

플랫폼 교훈이 또 한 가지 나왔다. 공짜와 경쟁하기란 어렵다. 번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는 그 자체로 경쟁자들을 피할 수 있다.

Platform Control
전체 애플 II 플랫폼을 애플이 갖고 있었지만, IBM PC는 IBM과 마이크로소프트 양사가 만든 플랫폼이었다. 이는 플랫폼 통제 유지와 관련하여 애플과 IBM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IBM이 PC 디자인을 복제업체들에게 라이센스를 내 주어서 IBM이 애플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IBM이나 애플이나 모두 하드웨어 복제 업체들을 피하기 위해 노력해 왔었다.

애플은 애플 II ROM을 복제한 Franklin에게 고소하여 승소하였었다. 하지만 PC 복제 업체들을 막기 위한 IBM의 노력은 비효율적이었고, 애플보다 더욱 더 어려웠다. 법적으로도 IBM 기술을 침해하지 않고서 가능할 정도로, PC가 너무나 복제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애플 II와 IBM PC는 양자 모두 성공적으로 복제품이 나왔었다. 하지만 PC 클론, 그중에서도 컴팩은 하드웨어 주도권을 IBM으로부터 뺏어왔다. 하지만 애플 II 복제업체인 Laser 128은 로우엔드 시장을 목표로 했으면서 더 고가인 애플 II와는 상대하지 않았었다.

IBM 플랫폼은 PC 시장의 활성화 덕분에 세워졌다. 하지만 IBM은 그와 똑같은 이유때문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IBM이 좀더 복잡하고 강력한 시스템을 설사 몇 년 후에 내놓았다면, IBM은 시장에 늦게 진입함은 물론, 훨씬 더 지배적인 위치의 애플이나 CP/M과 부딪혔어야 했을 것이다.

일어나지 않았을 법 하지만 IBM이 늦게 들어왔더라면, 더 강력한 IBM의 진입은 컴퓨터 시장을 깨끗이 정리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경쟁사들이 복제하기에도 더 어려웠을 것이다. IBM이 전체 플랫폼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복제에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진다.

PC는 범용 부품으로 만들어진 컴퓨터이다. IBM이 연구소에서처럼 진보적인 컴퓨터를 내놓았더라면 IBM은 칩에서부터 소프트웨어까지 전 플랫폼을 소유했을 것이다. 그러면 복제 업체들은 CP/M이나 애플 II 정도나 복제하는 데에 갇혔을 것이며, 아니면 아예 새로운 플랫폼을 내세우려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보자면, 마이크로소프트는 경쟁을 막기 위해 별 수고를 들이지 않았다. 컴팩이나 다른 복제 업체들이 IBM PC 하드웨어를 복제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와는 MS-DOS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하드웨서 시장 점유율을 IBM으로부터 뺏어오면서 마이크로소프트 DOS를 표준으로, PC 플랫폼의 원동력으로 가꾸어 주었다.

플랫폼 교훈이 나왔다. 복제하기 쉬운 기술을 선보이지 말고, 소유권 유지에 노력해야 한다. 배신자와는 파트너를 맺지 말아야 한다.

The non-PC Market
애플 II는 가정과 교육 시장에 계속 팔려나갔지만, 사무 시장에서는 입지를 다지지 못하였다. 사무 시장에서는 PC가 빠르게 사실상 표준이 되어갔다.

애플의 첫 번째 대실패인 애플 III는 사무용 시장에서 IBM PC와 경쟁하기 위해 만들어진 컴퓨터였으며,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이었다. 애플 III는 IBM PC가 나오기 일 년 전부터 등장하였지만, 여러가지 비극적인 실수때문에 시장으로부터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우선, 애플 III는 애플 II와 너무나 제한적인 호환성만을 갖추고서, 완전히 새 플랫폼을 제공하려 했었다. 애플 III는 애플 II의 보다 진보적인 기능 다수를 사용할 수 없었다. 애플 III는 또한 시장에 빨리 진입하려 해서 나오는 하드웨어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게다가 애플 III는 애플 II보다 그다지 개선된 점이 없었으며, 다른 CP/M 컴퓨터들보다 더 비싸기만 하였다. 따라서 IBM PC가 설사 나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애플 III는 실패했을 기종이었다.

IBM은 허술한 제품을 내놓으려 했던 애플의 호들갑까지 배워갔다. IBM PC와 클론이 막 태어나고 있던 사무용 시장을 채우는 시기에, IBM은 애플이 가진 가정과 교육시장까지 차지하려 시도했었다. 바로 IBM의 PCjr이다.

PCjr는 완전한 실패작이었다. 그 이유는 애플 III와 같았다. PCjr는 애플 II나 다른 경쟁품보다 장점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고가였고, IBM PC와의 호환성도 조잡했으며, 품질도 비판을 많이 받았다. 특히 혁신적이라는 무선 키보드가 비판의 대상이었다.

플랫폼 교훈이다. 너절하면서 호환성이 없는 플랫폼 확장은 성공하기 힘들다.

당시 다른 컴퓨터 회사들, 가령 유명했던 Commodore 64Atari, Coleco Adam은 프로세서의 종류와 기능면에 있어서 애플 II와 견줄 만했다.

C-64는 가정용 컴퓨터와 게임용 시스템으로서 개선된 그래픽과 사운드 기능, 낮은 가격표를 달고 있었다. Coleco와 Atari는 단순히 저렴한 대안만으로는 플랫폼의 생존력 개발에 충분하지 못함을 증명해 주었다.

Platform Perception vs. Reality
IBM은 사무용 PC 시장의 창립에 크게 기여하였다. 하지만 PC 플랫폼은 IBM이 아닌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끌었다. IBM은 소프트웨어 지배권을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넘겼을 뿐 아니라, 시장 점유율을 복제 업체들에게 빼앗기면서 하드웨어 주도권까지 넘기고 말았다.

플랫폼 교훈이 나온다. 플랫폼 내부에서 경쟁의 여지는 크지 않다. 한 곳만이 살아남을 뿐이다.

애플은 8-비트 플랫폼으로 다음 세대까지 살아남은 몇 안되는 회사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미 애플은 차세대 메이저 플랫폼 작업에 열심이었다. 강력하고 그래픽 컴퓨터 환경을 갖춘 매킨토시이다. 1984년에 나온 매킨토시와 그 경쟁자들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 1985-1990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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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1985: 8-bit Platfor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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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aubon 님께서 2008-01-30 06:50 AM 에 수정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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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8, 12:28 PM   #3
fireman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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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DOS(디스크로 구동되는 오퍼레이팅 시스템) 시스템을 제때 마련하지 못했던 애플의
시절부터, Z80 카드로 구동되던 CP/M,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복제해온 누더기 MS-DOS의
초창기 버전들까지, 그림처럼 머리를 스쳐갑니다.

윈도우즈가 등장하기 이전의 DOS 기반의 얼룩진 운영체제 때문에, 어떻게 보면 그때의
스카(scar) 때문에 이노무 PC 시장의 운영체제가 이 모양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면...
가끔은 세상이 늘 올바른 방향으로 진보하지는 않는가 봅니다.
(디지털리즘이 창궐하는 작금이라면, 결국 플랫폼의 기반이 되는 운영체제 역시
"세상"을 지배하는 헤게모니의 일부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성서 다음의 저작물로 여기어지는 다위니즘의 진화론을 여기에 빗대어 본다면,
운영체제 시장 역시 가장 적합한 형태의 진화와 접근이 이루어 질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형적인 형태의 발전으로 거의 30년
가까운 세월을 흘러 왔다는 점에서... 뭔가 아쉬운 부분이 남습니다.

물론 아직도 "진행형"이라서 그렇겠죠?

까소봉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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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리의 블로그 : http://macdory.blogspot.com

firemanx 님께서 2006-08-28 11:59 PM 에 수정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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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8, 01:58 PM   #4
jeong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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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DOS의 모체는 시애틀 컴퓨팅이 만든 QDOS (Quick and Dirty OS)라는 것을..
사실 QDOS를 아주 약간 손본 것이 MS-DOS 1.0입니다. 파일시스템에 디렉토리라는 것도 없는 OS였죠.
제 기억으론 CP/M이 MS-DOS보다 더 우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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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RS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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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30, 03:49 AM   #5
casau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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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1990: 16-비트 그래픽 컴퓨터의 시대

1985-1990: 16-bit Graphical Computing

Wednesday, August 30, 2006

"플랫폼의 역사, 그리고 그 대결"은 플랫폼을 새로 발족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플랫폼을 유지하는 일은 또 얼마나 고된지를 알려주었다. 본 글에서는 컴퓨팅 플랫폼의 역사적인 궤적(軌跡)과 함께, 누가 왜 이겼는지, 누가 왜 졌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컴퓨팅 환경이 언제나 변하기는 하지만, 기본 원칙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으며, 애플의 레퍼드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비스타와 같은 미래 개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난 기사는 1980년부터 1985년까지를 다루었다. 여기서는 1980년대 후반을 다루도록 한다.

1985-1990: 16-bit Graphical Computing
애플의 매킨토시는 모토로라 68000 프로세서를 기반으로 날카롭고 고품질의 그래픽 디스플레이라는 컴퓨터 기술의 새 물결을 가져다왔다.

매킨토시의 혁신적인 시스템 소프트웨어의 일부는 맥 하드웨어상에 그대로 들어가있었다. 툴박스(ToolBox)라 불린 이 시스템소프트웨어의 일부는 화면상에서의 드로잉과 출력, 디스크 관리, 사용자 상호운용을 표준화시켰다.

따라서 개발자들이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일관성있게 만들기가 쉬워졌다. 개발자들은 이제 기본적인 사용자 환경을 바닥부터 다지는 대신, 새 툴에 신경쓰면 되었다.

또한 개별 프로그램은 이제 더이상 여러가지 프린터 지원을 제공해야 할 필요가 없어지기도 하였다. 이는 소규모 개발자들이 대규모 소프트웨어 회사들과 경쟁할 수 있는 여지를 터 주었다. 매킨토시 운영 시스템은 시스템에 보다 기본적인 기능을 제공하는 데에 주력하였다.

Consistent User Interface
애플은 또한 표준 차원의 키보드 명령어와 사용자 인터페이스 가이드라인을 제정하여, 모든 애플리케이션이 비슷하게 돌아가도록 하였다. 즉, 사용자가 새 애플리케이션을 배우는 데에 있어서, 예전에 쓰던 애플리케이션과 비슷한 방식으로 더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하였다.

DOS 프로그램이 이미 키보드 단축키를 사용하였지만, DOS 프로그램들은 제각기 다른 명령어를 사용하였으며, 대부분 직관적이지 못했다. 예를 들어서, DOS 애플리케이션들은 제각기 새 문서를 여는 단축키가 달랐다.

  • 워드퍼펙트의 경우는 F7 + 3
  • 워드스타의 경우는 컨트롤 + K + O
  • 로터스 1-2-3의 경우는 / 로 메뉴를 연 다음, 웍스페이스는 W, 불러오기(retrieve)는 R
  •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는 메뉴를 열 때 Esc, 전송(transfer)할 때는 T, 읽기 할 때는 L

매킨토시의 경우에는 모든 애플리케이션이 똑같은 커맨드 + O였다.

애플은 Z 조합은 Undo, X 조합은 자르기, C는 복사, V는 붙이기, W는 창 닫기로 디자인하기도 하였다. 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존의 DOS 프로그램과 윈도우즈상에서도 애플의 직관적인 키조합을 채택한다. 물론 윈도우즈는 창 닫기에서 여전히 Alt + F4를 쓰고 있지만 말이다. PC에는 커맨드 키가 없기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커맨드의 매핑을 컨트롤 키에 정해 넣었다.

당시 DOS 사용자들은 애플이 디자인한 단순하고 직관적인 명령어 조합을 채택하려들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 윈도우즈 사용자들은 애플이 콘트롤이 아니라 커맨드 키를 사용한다면서 불평하고 있다. 오히려 애플이 기존 키 조합과 다르다는 불평이다!

플랫폼의 교훈이다. 성공적인 플랫폼은 사용자와 개발자 모두에게 시작할 기반을 마련해 주는 한편, 새로운 방향으로 이들을 성장시켜준다.

A New Market for Macs
하지만 애플의 새 플랫폼에는 모든 애플리케이션을 매킨토시 상에서 돌리게 하는 룩앤필보다는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필요했다. 초창기 맥 소프트웨어의 주요 개발사 중 하나가 마이크로소프트였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새로운 오피스 애플리케이션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표준적인 맥다운 인터페이스를 정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매킨토시용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아직 확실하지 않았기에, 애플은 그러한 킬러 애플리케이션을 필요로 하였고, 드디어는 데스크톱 출판이 나온다. 텍스트와 그래픽을 레이저프린터로 출력하는 이상적인 시스템으로서 맥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더 일찍 나왔던 애플 III와는 달리, 맥은 호환성의 문제를 비켜갈 수 있었다. 하드웨어상으로나 소프트웨어상으로나 커다란 진전이 있었던 덕분이다. 따라서 호환성을 해결해주는 다리가 없어도 매킨토시 플랫폼에 대한 흥미가 생겨났다.

게다가 맥을 채택한 최초의 시장은 완전히 새로운 시장이었다. 바로 예술가들과 디자이너들이다. 이들이 사무용 컴퓨터를 널리 사용하지는 않았기에, 이들을 위한 시장에는 기존의 시장 주도자가 없었다. 하지만 맥을 학교에 들여놓기는 훨씬 더 어려웠다. 교육 기관들은 이미 애플 II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PC가 이미 표준으로서 점령한 사무용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애플은 가정과 학교 사용자들에게 계속하여 애플 II를 판매하였고, 결국에는 맥 LC에서 애플 II 호환카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애플 II 호환카드는 사용자들을 새 플랫폼으로 이주시키면서 옛 플랫폼용 작업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해결책이었다.

플랫폼의 교훈이다. 새 플랫폼의 소개는 매우 어렵다. 기존의 시장에 반하기 때문이다. 단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찾으면, 기존의 시장을 향해서도 한 번 겨뤄볼 수 있게 해준다.

Apple IIGS
애플은 애플 II와 매킨토시를 조합한 컴퓨터를 선보여서, 새 플랫폼으로의 이주를 돕기로 한다. 바로 애플 IIGS이다. 애플 IIGS는 애플 II 를 16-비트 플랫폼으로 올려주었고, 맥에 있는 그래픽 툴박스 기능을 애플 II의 가격으로 제공해 주었다.

애플 IIGS는 그래픽과 사운드 기능이 들어갔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다. 애플 IIGS는 애플이 내놓은 최초의 컬러 그래픽 컴퓨터였으며, 당시 맥은 여전히 흑백 화면이었다. 애플 IIGS는 또한 Ensoniq 사운드 신디사이저 칩을 통하여, 당시 어떠한 가정용 컴퓨터보다도 제일 인상적인 사운드 기능을 제공하였다.

스티브 워즈니악의 작품이랄 수 있을 IIGS는 ADB도 개척하였다. ADB는 키보드와 마우스용의 데이지-체인 시리얼 버스로서 워즈니악이 디자인하였다. 10년 뒤에 나오게 될 인텔의 USB가 제공하는 수많은 기능을 이미 ADB가 제공했던 것이다. ADB는 새로나오게 될, 그리고 더 빠르다는 USB가 제공하지 못하는 키보드 상에서 하드웨어를 켜는 기능마저 제공하였다.

애플의 Mega II는 오리지날 애플 II가 가진 모든 하드웨어를 단일칩 안으로 집어넣어 주었다. 따라서 애플 IIGS는 초창기 애플 II 소프트웨어와 완벽한 호환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칩은 나중에 나온 맥 LC용 호환카드에서도 쓰인다.

만약 매킨토시가 나오지 않았더라면 애플 IIGS는 애플에게 있어서 상당히 강력한 제품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애플 IIGS는 매킨토시로부터 관심을 빼앗았고, 애플 또한 양 플랫폼의 유지에 개발력을 쏟아야 했다.

그 결과 애플 IIGS에 대한 애플의 지원은 한눈팔기식 산발적 지원이 되어버렸다. 후에 IIGS용 운영체제인 GS/OS가 나왔었다. GS/OS는 맥으로부터 부가적인 기술을 빌렸고, 애플 II 라인의 기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지만, 애플 IIGS의 남은 수명은 분명했다.

애플은 IIGS를 학교기관에 대량판매하였다. 애플 II와의 호환성과 저가격덕분에 학교에 맥을 팔기보다 IIGS 판매가 더 쉬웠던 탓이다. 또한 애플 IIGS의 사례는 호환성 유지가 왜 나쁜 전략인지를 알려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애플 IIGS 시스템의 사용처가 약간 더 빠른 8비트 애플 II용으로서의 사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개발자들은 애플 IIGS가 가진 우아한 기능과 혁신 대부분을 무시하였고, 따라서 사용자들도 그런 기능을 누리지 못하였다. 애플 IIGS 전용 애플리케이션은 그리 많이 나오지 않았다. 부분적으로는 애플이 맥을 홍보한 탓도 있긴 하였다.

플랫폼 교훈이다. 다중 플랫폼 지원은 개발여력을 크게 떨어뜨린다. 하위호환성은 앞으로의 진전을 막을 수 있다.

The PC Market
업계 표준 PC는 맥보다 훨씬 뒤쳐져 있었다. 이전 세대의 옛날 옛적 텍스트-기반 애플리케이션의 개선을 택하였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이 일반 컴퓨터용으로 시스템소프트웨어를 내주기 희망하였지만, 초창기 세대의 텍스트기반 컴퓨터들은 맥과 같은 풍부한 환경을 다룰 파워가 못되었다. 따라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스스로 나서서 윈도우즈를 제공하기로 한다. 그러나 윈도우즈 3.1이 1991년에 나오기 전까지는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었다.

"짜깁기 개발의 미신을 벗긴다"에서 묘사한대로, DOS PC상에서 맥 환경을 재창조하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노력은 점점 더 복잡해졌고, 차라리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기보다 더 성공하기가 어려워졌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오리지날 맥에서의 애플 개발비용보다 두 배를 더 들여서 윈도우즈 3.0을 개발해냈다! 이제 컴퓨터 산업의 주도자 지위가 굳건해진 마이크로소프트가 어째서 깔끔하게 새로운 세대의 컴퓨터를 선보이지 않았을까? 맥처럼 깔끔하고 우아한 하드웨어를 왜 발표하지 않았을까?

마이크로소프트는 컴퓨터 제품의 절반만을 통제하기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새 플랫폼 투자라는 위험을 자초하지 않을 PC 하드웨어 개발자에게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다. PC 플랫폼은 혁신하자는 플랫폼이 아니다. 오로지 낮은 가격을 이루자는 플랫폼이다.

그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로서는 더 허술한 하드웨어상에서 맥 환경을 구현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픽셀도 사각형이 아니었고, 그래픽카드 표준도 제멋대로였다. PC의 모든 것이 오로지 저가에 맞춰져 있었고, 그 결과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당주로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비용을 많이 들일 수 밖에 없었다.

하나의 완전한 솔루션을 내놓는 하나의 회사 대신, PC 시장은 복잡다단한 하드웨어 회사와, 단 하나의 운영체제 시스템 소프트웨어 회사로 이루어져 있다. 사용자들은 통합 솔루션 비용을 스스로 부담해야 했다. 이는 오리지날 IBM PC의 구매가보다 훨씬 높았다.

플랫폼의 교훈이다. 통합 시스템 지원이 여러가지 부품 조립 지원보다 훨씬 더 쉽다.

IBM’s Failure to Reclaim the PC
IBM은 진보적이고 폐쇄적인 하드웨어 표준 기술을 지닌 새 세대의 PC를 소개하여 이를 다시 라이센스하고, 그동안 잃어버린 PC 플랫폼의 통제권을 다시금 쥐기 희망하였다. 다름아닌 PS/2이다. PS/2는 훨씬 더 빠른 MCA 확장슬롯과 우월한 VGA 그래픽, 그리고 매킨토시가 소개한 3.5" 플로피디스크, 새로운 키보드와 마우스 표준포트를 탑재한 새로운 컴퓨터였다.

또한 PS/2는 IBM과 마이크로소프트가 파트너쉽을 맺어서 내놓은 새로운 운영시스템, OS/2를 소개하였다. IBM은 OS/2가 PS/2라는 자동차의 운전석에 올라탔다 생각하였지만, PC 업계는 이미 IBM이 이끌고가기에는 너무나 커버린 상태였다.

PS/2의 표준화된 기능을 채택한 PC 메이커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들은 MCA를 채택하여 IBM에게 라이센스 비용을 내기보다는, 별도의 PC 확장 슬롯 아키텍쳐인 EISA를 만들어냈다. 컴팩이 주도한 EISA때문에, IBM은 도리어 낙동강의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렸다.

PS/2는 실패작이 되어버렸고, IBM은 80년대 나머지 기간동안 엄청난 재무상 손실을 기록하게 된다. IBM은 컴팩에게, 그리고 나중에는 델에게 하드웨어 시장의 주도권을 잃었을뿐만 아니라, 1990년, OS/2 개발에 있어서의 마이크로소프트의 배신까지 겪는다.

즉, PC 플랫폼을 창안했다 하여, IBM이 PC 플랫폼을 지배하지는 못하였다. 기술적으로 우월한 PS/2도 IBM에게 통제권을 되돌려주지는 못했다. PC가 범용 제품 시장이 되자, PC 시장의 모든 관심은 가격경쟁에 쏠렸고, IBM이 일으킨 새 혁신은 단순복제가 되거나 무시당하였다.

플랫폼의 교훈이다. 복제가 쉬운 플랫폼은 복제되기 마련이다. 사업 모델을 한 번 포기해 버리면, 되돌리기란 쉽지 않다.

The Non-PC Market
마우스로 윈도우 창 환경에 나타난 문서를 조작한다는 기본 개념은 코모도어의 아미가Atari ST에도 전달되었다. 이 양 컴퓨터는 맥과 비슷하게, 모토로라의 68K 프로세서를 사용하였다.

아미가는 비디오와 그래픽으로 작동하는 특별한 하드웨어 프로세서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아타리는 가격면에서 애플과의 차별화를 꾀하였다.

아타리를 떠난 엔지니어들이 모여서 새로운 게임 콘솔로 만들려 했던 것이 원래의 아미가였다. 코모도어의 창립자이자, 사장인 잭 트래밀(Jack Tramiel)은 코모도어를 떠난 후, 아타리를 인수하여, 아타리의 기존 제품 대부분을 중단시켜버리고, 직원들도 대부분 해고시켰다. 그리고는 차세대 16-비트 컴퓨터를 선보일 계획을 세웠다.

아타리와 코모도어는 아미가 그룹 기술, 그리고 코모도어에서 아타리로 떠난 기술자들을 두고 다투었다. 이 싸움에서 코모도어가 승리하여 코모도어는 C-64로 생겨난 이윤을 아미가 인수에 써버렸다. 아타리는 겨우 ST를 선보일 수 있었다. ST는 디지탈리서치의 CP/M에 기반하는 그래픽 데스크톱 환경인 GEM을 포팅하여 사용하였다.

마침내 아미가와 ST는 맥과 비슷한 퍼포먼스로 애플 IIGS보다 낮은 가격에 컴퓨터를 제공하였다. 하지만 아타리와 코모도어의 회사 크기, 그리고 중요한 컴퓨터 플랫폼 개발과 유지에 대한 미천한 경륜때문에 그들 누구도 장기적인 플랫폼의 생존에 중요한 써드파티 개발자들을 충분히 끌어모을 수 없었다.

게다가 진보적인 하드웨어 디자인에 맞춰나가는 일도 어려웠다. 애플과 비슷한 기능을 탑재시키면서 완전한 운영체제를 유지시키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드웨어 이윤으로 생겨나는 거대한 이윤을 애플은 연구개발비용으로 투입시킬 수 있었다.

가령 아미가는 맥보다 좋은 독특한 기능인, 선점형 멀티태스킹을 제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사용자에게 실질적인 이득을 안겨다줄 수 있는 써드파티 개발자들을 끌어모으지는 못했고, 주목도 받지 못하였다. 아미가에 없는 중요한 한 가지는 선점형 멀티태스킹이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 애플리케이션 지원이었다.

비디오 편집이나 모션그래픽, 비디오상의 그래픽 오버레이와 같은 틈새시장에서는 아미가의 진보적인 하드웨어 기능을 누릴 수 있었다. 결국 아미가는 PC도 아니고 맥도 아닌 제품을 추가하는 데에 그치고 말았다. 이 제품은 Video Toaster로서, 비디오 시장을 이끌기는 하였지만, 결국 다른 영역에서 아미가는 경쟁사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고 PC와 맥보다 뒤쳐지게 되었다.

아타리 ST도 비슷하게 데스크톱 출판과 CADD 시장에 있어서 유럽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지만, 개발을 지속시킬 정도로 시장을 개척하지는 못하였다. 부분적으로는 모토로라 68k 프로세서 아키텍쳐가 활력을 잃었던 탓도 있다.

플랫폼 교훈이다. 완전히 새롭고 비호환 플랫폼은 시장 안에서 운신의 폭이 좁게 마련이다.

NeXT
트래밀처럼,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창립하고 초창기 맥 개발을 지휘하였지만, 애플의 경영 방향과는 다른 길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1985년 애플에서 축출된 이후, 스티브 잡스는 차세대 운영체제라는 자신의 비전을 실현시켜줄 새 회사를 창립하게 된다. 넥스트(NeXT)이다. 넥스트의 개발시스템은 애플 계획보다 훨씬 더 진보적이었다.

넥스트는 잡스가 세웠고, 여기에 애플에서 잡스를 따라온 여러 개발자들이 참여하였다. 넥스트는 자신의 계획대로 개발시스템을 돌릴 하드웨어가 없다 판단하고, 고유의 하드웨어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결정내린다. 운영체제도 제작하기로 함은 물론이다.

넥스트는 1989년부터 새 머신을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컴퓨팅의 새시대에 뛰어들었다.

Platform Perception vs. Reality
애플은 새 세대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주도적으로 이끌면서 컴퓨터 기술의 최고봉을 개척하였다. 비록 실패로 끝날 위험도 있었고, 자원도 대단히 많이 소모하였지만, 애플은 보통의 PC보다 분명히 우월한 새 플랫폼을 과감하게 내놓았고, 전세대의 8-비트 머신이 교체를 요구할 시기에 새로운 수요와 이윤을 창출하였다.

아미가와 아타리 ST, 그리고 애플 IIGS는 모두 맥보다 저렴한 대안을 제공하고 장점도 갖고 있었지만, 유망한 플랫폼으로서의 개발자지원과 시장을 모두 가지지는 못하였다.

애플의 지위를 넥스트가 빼앗으리라는 전망도 나왔지만, 넥스트도 불충분한 개발자 지원과 시장구축에 있어서 비슷한 문제를 겪게 된다. 여러모로 넥스트는 대중적으로 저변을 넓히기에 너무나 앞서 있었다.

플랫폼 교훈이다. 과감한 선택은 큰 성과를 가져다줄 수 있지만, 장담할 수는 없다.

16-비트 신세대 그래픽 컴퓨터는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복잡해졌다. 개발자들의 투자도 훨씬 더 많이 필요해졌다. 그러나 기술 발전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되었으며, 기존의 컴퓨터를 구식으로 만들어버렸다. 이에 따라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기는 매우 어려워지게 된다.

다음 시대(1990~1995)에서는 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반을 통해 기존의 플랫폼의 원기를 회복시켜주려는 시도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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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1990: 16-bit Graphical Compu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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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aubon 님께서 2008-01-30 06:52 AM 에 수정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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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6, 07:39 PM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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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5: 새 플랫폼을 향한 질주

1990-1995: The Race to Deliver The Next New Platform

Wednesday, September 6, 2006

"플랫폼의 역사, 그리고 그 대결"은 플랫폼을 새로 발족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플랫폼을 유지하는 일은 또 얼마나 고된지를 알려주었다. 본 글에서는 컴퓨팅 플랫폼의 역사적인 궤적(軌跡)과 함께, 누가 왜 이겼는지, 누가 왜 졌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컴퓨팅 환경이 언제나 변하기는 하지만, 기본 원칙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으며, 애플의 레퍼드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비스타와 같은 미래 개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난 기사는 1980년부터 1985년까지1985년부터 1990년까지를 다루었다. 이번에는 1990년대 초반의 컴퓨터 플랫폼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우선 DOS를 교체하기 위한 OS/2에 대한 IBM과 마이크로소프트 간의 파트너쉽을 보고, 그 다음에는 맥을 NeXT와 BeOS로 업데이트시키려는 애플의 노력을 알아보겠다. 또한 90년대 초반, 인텔 PC에서 맥을 돌리려던 애플의 StarTrek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보도록 한다.

그 다음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의 부상(浮上)을 보도록 한다. 맥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시키려는 애플과 IBM 간의 협력과 NeXT를 베끼려는 업계의 노력, 애플의 대실패 시리즈와 데스크톱 플랫폼에서 일어난 자유로운 대안을 보겠다.

또한 이와 함께, 레퍼드와 비스타 간의 다가올 전투, 리눅스와 윈도우즈 간의 분쟁, 마이크로소프트와 닌텐도, 소니 간의 게임 콘솔 전쟁, 애플 아이포드와 마이크로소프트의 PlayForSure와 Zune 간의 라이벌전도 알아본다.

1990-1995: The Race to Deliver the Next New Platform
1990년대로 접어들자, 하드웨어 면에서의 비약적인 향상은 운영체제 소프트웨어의 향상을 앞서나가기 시작한다. 새로이 수립된 그래픽 데스크톱은 복잡성을 추가시키기에 이른다. 다중 실행 애플리케이션, 다중 사용자, 네트워킹, 더 큰 메모리 어드레싱, 고해상도 컬러 그래픽, 다중 모니터와 더 대용량의 하드 드라이브 등, 이 모두가 좀더 복잡한 운영체제를 요구하였다.

1985년부터 1990년 사이의 소비자용 플랫폼 중 1990년대 초에 죽은 플랫폼으로는 애플IIGS와 코모도어 아미가, 아타리 ST의 세 가지가 있으며, 이 세 플랫폼 모두 새로운 하드웨어 기술 혁신을 채택하였으나, 그와 버금가도록 혁신을 이룬 소프트웨어 지원이 없어서 생명력을 잃고 말았다.

이로써 소비자용 플랫폼의 주류는 애플 매킨토시와 DOS를 돌리는 PC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두 플랫폼 모두 급속도로 나이를 먹어갔고, 직접적인 교체나 상당한 개선을 요구하게 되었다.

1990년 당시 애플과 PC 메이커들은 공히 더 빠르고 강력한 하드웨어를 만드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DOS와 맥 "시스템"은 새로운 하드웨어를 한껏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운영체제 기술의 빠른 채택을 방해하는 심각한 구조적인 문제에 봉착해 있었다.

OS/2: A Better DOS than DOS
마이크로소프트는 OS/2라 불리는 DOS 후계 시스템을 IBM과 같이 개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DR-DOS나 다른 대안 운영체제가 1980년~1985년 기간동안 크게 성장을 하지 못했던 이유와 똑같은 이유로 인하여 OS/2는 성공할 수가 없었다. 이들 모두 MS-DOS라는 마이크로소프트 뒷마당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직접 경쟁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도 PC 사용자들을 개선된 DOS로 채택시키는 데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였다. 5년간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즈 1.0과 2.0을 DOS 상에서 돌아가는 그래픽 셸 프로그램으로 판매하려 했지만,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윈도우즈는 DOS가 돌아가는 PC 하드웨어에서도 돌아갔지만, DOS와 PC 하드웨어는 이미 확립된 표준이었다. 윈도우즈가 새 플랫폼을 대표했던 이유는 윈도우즈 기능을 활용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필요로 해서였다.

PC 사용자들을 기존하드웨어 상에서 윈도우즈로 이주시키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노력은 애플 II 사용자들을 완전히 새로운 맥으로 이주시키려는 애플의 노력만큼이나 어려웠다.

플랫폼 교훈이다.: 새 플랫폼 채택에 있어서 새 하드웨어만큼이나 새 소프트웨어는 상당한 장애물이 될 수 있다.

Not Too Fast
자기 자신(MS-DOS)과의 경쟁을 벌이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는 OS/2를 새 플랫폼으로 밀어부쳤다. 여기에는 위험이 따랐다. 미래에 너무 집중된 관심은 소규모 DOS 벤더들, 가령 DR-DOS와 같은 곳에게 기존의 PC 플랫폼을 거머쥘 여지를 터주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DOS 시장 점유율을 깎아 내리던 이들 경쟁자는 OS/2가 제자리를 잡기 전에 왕좌를 차지하려 하였다. 그렇게 되면 마이크로소프트에게는 죽음뿐이었다. 기존의 매출량이 멈춰지면서 미래의 시장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악순환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위험은 1985년부터 1990년까지의 IBM 초기 PC 하드웨어 위기와 비슷했다. PS/2가 새로운 플랫폼을 미처 세우기 전에 PC 클론이 시장을 집어삼킨 것이다.

플랫폼 교훈이다.:잔챙이들의 단체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때에만, 자신을 보전(保全)할 수 있다.

Benevolent Dictator Platforms vs. Anarchy Platforms

마이크로소프트는 전체 플랫폼을 갖고 있지 않았기에 OS/2에 대한 노력을 좀더 신중하게 취했어야 했다. 만약 마이크로소프트와 IBM이 PC 플랫폼을 완전히 소유하고 있다면야, DOS의 방향을 보다 쉽게 틀면서 OS/2를 소개하면 됐을 터였다.

그대신 마이크로소프트의 초점은 DOS와 DOS/윈도우즈, 그리고 OS/2 사이에서 찢겨져 있었다. 그리고 IBM은 경쟁자들에게 찢겨 나가면서도 살아있는 상황이었다. 누구도 PC 시장을 지배하지 못하였으며, 이러한 무정부상태는 특히 소프트웨어 면에 있어서의 진보와 개발뿐만 아니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통합 면에 있어서의 진보와 개발마저 막아버렸다.

애플도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었지만, 맥 플랫폼을 완전히 틀어쥐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을 개척할 자유를 좀더 갖고 있었다. 따라서 사용자와 개발자들은 애플이 이끄는 이주를 보다 빠르게 할 수 있었다. 80년대 후반동안 애플은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의 메이저 업데이트를 다섯 번 실시하였고, 1990년에는 시스템 6가 나온다.

플랫폼 교훈이다.플랫폼을 갖고 있어야 보다 쉽게 진도를 나갈 수 있다.

그러나 DOS처럼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 또한 그 기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전체 플랫폼의 소유자로서 애플이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해결하려 했는지, 어떤 다른 문제가 있었는지는 다음 기사, "1990-1995: Hitting the Wall"를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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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5: The Race to Deliver The Next New Plat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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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aubon 님께서 2008-01-30 06:52 AM 에 수정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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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7, 10:10 AM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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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5: 벽에 부딪힌 맥

1990-1995: Hitting the Wall

Thursday, September 7, 2006

"플랫폼의 역사, 그리고 그 대결"은 플랫폼을 새로 발족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플랫폼을 유지하는 일은 또 얼마나 고된지를 알려주었다. 본 글에서는 컴퓨팅 플랫폼의 역사적인 궤적(軌跡)과 함께, 누가 왜 이겼는지, 누가 왜 졌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컴퓨팅 환경이 언제나 변하기는 하지만, 기본 원칙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으며, 애플의 레퍼드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비스타와 같은 미래 개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난 기사는 1980년부터 1985년까지1985년부터 1990년까지, 그리고 1990년부터 1995년까지, 새 플랫폼을 향한 질주를 알아보았다. 그 기사는 IBM과 마이크로소프트가 DOS와 윈도우즈 상에서 어떤 개선을 이루려 했는지, OS/2로 어떻게 바꾸려 했는지를 조사하였다. 이번 글에서는 맥을 업데이트시키기 위한 애플 자신의 노력에 대해 알아본다.

Hitting the Wall
마이크로소프트와 IBM과 같이, 애플도 똑같은 문제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하지만 애플은 맥 플랫폼 전체를 소유하고 있었기에, 신기술을 개척할 자유가 더 컸고, 그에 따라 소비자와 개발자들도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채택할 수 있었다. 80년대 후반동안 애플은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의 메이저 업데이트를 다섯 번 실시하였고, 1990년에는 시스템 6가 나온다.

하지만 빠른 개발 이후로, 맥 플랫폼은 벽에 부딪히게 된다. 맥이 간단한 컴퓨터 기기에서 좀더 복잡하고 네트워크화된 세상으로 들어설 수록, 맥은 Sun이나 SGI, Apollo와 같은 로우엔드 유닉스 웍스테이션 업체들과의 경쟁에 직면한다. 이때문에 애플은 유닉스와 비견할 만한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제공하였지만, 맥 소프트웨어 구조가 그러한 시도를 어렵게 만들었다.

맥은 원래 1980년부터 1985년까지의 전형적인 가정용 컴퓨터에서 비약적인 향상을 가져온 디자인이었다. 그러나 웍스테이션과 경쟁이 되면서, 유닉스의 유산이 갖는 장점은 보다 분명해졌다. 맥은 친숙한 가정용 컴퓨터이지만, 다른 웍스테이션들은 훨씬 거대한 다중 사용자용의 멀티태스킹 컴퓨터 시스템을 구현했기 때문이다.

가령, 맥 그래픽 드로잉 루틴은 모두 공유메모리에서 다루어졌다. 이때문에 초기 맥은 꽤 제한된 자원을 갖고서도 그래픽을 깔끔하게 그려낼 수 있었지만, 맥 플랫폼이 확장을 거듭하고, 사용자의 기대치도 올라가면서, 다중 애플리케이션을 한 번에 돌릴 때에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즉, 애플리케이션 간의 협력으로 모든 애플리케이션 그래픽을 다루는 맥과 같은 시스템에서 선점형 멀티태스킹이나, 보호메모리를 구사할 간단한 방법이 없었다.

내장된 맥툴박스의 다른 부분도 점차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 오리지날 맥의 엔지니어들은 아주 많은 우아한 기능을 하드웨어에 끼워 넣어야 했다. 완전한 그래픽 데스크톱 환경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즉, 이들은 깔려 있는 하드웨어로 직접 송수신하는 코드를 작성해야 했다.

이렇게 하드웨어에 집어 넣은 코드는 당시 하드웨어에서는 잘 돌아갔다. 하지만 내장된 코드의 융통성은 제한적이었다. 이점은 "왜 애플은 이제서야 인텔을 사용하게 되었나"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애플은 당혹해하였다. 70년대의 애플 II에서 80년대에 맥으로 이주했을 때처럼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으로 맥을 교체해야 할 시기였을까? 아니면 새롭고 진보적인 하드웨어상에서 맥 플랫폼을 개선시킬 수 있었을까? 당시 유닉스 웍스테이션에서 쓰이는 운영체제 기능을 맥에 통합시킬 수는 없었을까?

Souls of a New Mac
애플은 다중 전략으로 대처하였다.

1988년, IBM과 마이크로소프트가 OS/2 협력관계를 발표했을 때, 애플은 고유의 유닉스인 A/UX를 제공하였고, A/UX를 계속 업데이트시켜서 하이엔드 맥에 별도의 운영체제로 판매하기까지 하였다. 또한 A/UX 상에서 맥 시스템이나 맥용 소프트웨어를 돌리기 위한 호환 레이어도 제공하였다. A/UX는 유닉스 개선의 기반이 되었거나, 적어도 유사-유닉스 기능을 맥 시스템에도 구현시켰다고 볼 수 있다.

애플은 또한 기존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의 새로운 세대를 두 가지 작업하였다. 단기적인 기능으로서의 "블루" 목록은 시스템 7로 1991년에 나왔다. 장기적인 기능으로는 코드명 핑크의 계획이 있었다.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인 코드명 "재규어"가 있었다. 재규어는 모토로라 88100 RISC 프로세서에 기반하는 시스템으로서 NeXT 시스템과 유사하다는 맥언론의 조명을 받았었다.

그러나 애플 II에서 맥으로 옮기는 데에만 하더라도 애플은 막대한 노력을 펼쳐야 했으며, 애플 III와 애플 IIGS, 리사(LISA)로서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내기도 했었다. 교체용 플랫폼으로서의 맥의 소개는 분명 거대한 도전이었다.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운 재규어 수퍼맥을 디자인하기란 상대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도 쉽다. 이제 5년이 넘은 맥을 손쉽게 개선시킬 뿐 아니라, 실수를 피할 수도 있었다. 당시 최신 하드웨어는 1984년의 첫 맥이 협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여러가지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의 진짜 어려운점은 바로 시장 찾기이다.

하방호환성이 없다면, 애플은 누가 사기도 전에 개발자들을 설득시켜서 애플리케이션을 모두 포팅시켜야 한다. 하지만 누구도 갖고 있지 않다는데, 누가 그런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거나 포팅할까? 반대로, 맥과의 호방호환성이 완벽하다면, 새로운 기능을 제아무리 만들어봤자, 개발자들이 실제로 활용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마이크로소프트와 IBM도 OS/2를 새 플랫폼으로 세우기 위해 똑같은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DOS로부터 얼마나 다를 것인가? OS/2가 훨씬 강력한 기반을 제공하리라고는 하지만, 아직 OS/2를 많이 쓰지 않으니 OS/2용 개발을 하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을까?

플랫폼 교훈이다. 새 플랫폼을 위한 하방호환성 개발지원 문제는 새 플랫폼의 시장진입에 있어서 제일 커다란 장벽으로 작용한다.

Splitting Heirs

맥 교체의 문제를 겪는 곳이 애플만은 아니었다. 애플에게는 경쟁사들이 있었고, 이들 경쟁사 중 많은 곳이 전직 애플 직원들로 이뤄져 있었으며, 그들은 더 나은 맥을 만들고자 하였다.

첫 번째는 스티브 잡스의 NeXT이지만, 이곳은 80년대 후반 내내 개발만 계속하였다. 전임 애플 중역, 쟝-루이 가세가 1990년에 설립한 Be Inc.도 잇따랐다. 존 스컬리는 원래 가세를 잡스의 직접적인 후계자로 지명했었다.

그렇다면 넥스트와 비는 어떻게 애플 맥과 비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들이 새 플랫폼을 창출하는 데에 겪은 문제점은 무엇일까?

다음 기사, "1990-1995: NeXT, Be, and the Mac PC"를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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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5: Hitting the W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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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aubon 님께서 2008-01-30 06:51 AM 에 수정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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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7, 10:50 AM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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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엔, 이글 상당히 '애플' 중심적이네요.

컴팩과 코모도어가 넥스트보다는 훨씬 중요한 회사인데, 언급이 아주 적군요.
코모도어 64, 컴팩의 호환 기종 및 386 기종 등 아주 중요한 제품들이 모두 빠졌네요.
물론 플랫폼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컴팩은 호환 기종 회사일 뿐이지만
바로 그 호환 기종을 개발함으로써 후일 플랫폼 전쟁(?)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줬죠.

아미가는 엄청 혁신적인 컴퓨터인데 회사의 엄청난(!!!) 삽질로 망한 경우고,
아타리는 미디 인터페이스가 내장되어 있어서 나름대로 틈새 시장을 개척한 경우고
아주 언급할 것이 많은데 다 빠져버렸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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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맥이라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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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8, 10:19 PM   #9
casau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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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5: NeXT와 Be, 그리고 Mac PC

1990-1995: NeXT, Be, and the Mac PC

Friday, September 8, 2006

"플랫폼의 역사, 그리고 그 대결"은 플랫폼을 새로 발족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플랫폼을 유지하는 일은 또 얼마나 고된지를 알려주었다. 본 글에서는 컴퓨팅 플랫폼의 역사적인 궤적(軌跡)과 함께, 누가 왜 이겼는지, 누가 왜 졌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컴퓨팅 환경이 언제나 변하기는 하지만, 기본 원칙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으며, 애플의 레퍼드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비스타와 같은 미래 개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난 기사:1990-1995: NeXT, Be, and the Mac PC
맥 플랫폼을 새로이 하기 위해, 개선하기 위해, 혹은 교체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벌이는 한편, 애플은 컴퓨터 플랫폼의 새 세대로부터의 경쟁에 직면하게 된다. 그중 두 플랫폼은 애플에서 떨어져 나간 회사, 다름아닌 넥스트(NeXT)와 비(Be)였다.

NeXT
자신이 CEO로 임명한 존 스컬리의 명령때문에 애플에서 축출된 이후, 스티브 잡스는 자기 회사를 따로 세운다. 새로운 회사, 넥스트는 80년대 후반 내내 미래의 컴퓨터 플랫폼 시스템을 디자인하는 데에 보낸다.

애플에서 나온 뒤 자기 자신의 돈을 투자하는 한편, 억만장자인 EDS로스 페로(Ross Perot)의 상당한 자금 지원으로 잡스는 애플 매킨토시와 리사 팀으로부터 하드웨어 엔지니어들을, 카네기멜론 대학의 에이비 티베이니언(Avie Tevanian)으로부터는 소프트웨어 디자인팀을 불러모을 수 있었다.

애플이 맥 플랫폼의 유지로 들어서고 있을 때, 즉, 애플이 "새로운 컴퓨터의 마지막"을 만들고 있을 때, 넥스트는 "최초의 미래 컴퓨터"를 대표하였다. 미래를 발명한다는 넥스트의 유혹덕택에 넥스트는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들을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애플에서 나온 넥스트 엔지니어가 워낙에 많기에, 두 회사는 미래를 향한 비전이 상당히 유사했다.

애플과 넥스트는 모두 모토로라의 차세대 RISC 프로세서인 88100을 고려중이었으며, 유닉스를 현대적인 운영체제 기반으로 사용하기 위해 작업하고 있었다. 그리고 두 회사 모두 강력하고 쓰기 쉬우면서 우아한 플랫폼을 전체 패키지 솔루션으로 목표를 잡았다.

애플과 넥스트의 차이점은 애플이 기존의 고객과 개발자를 거느렸다는 데에 있다. 분명 애플에게 있어서는 장점으로 작용하였고, 단점으로도 작용하였다. 1985년부터 1990년 사이의 사건이 말해주듯, 애플로서는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을 선보이는 데에 점차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즉, 애플이 거느리고 있는 기존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기반은 애플에게 있어서 지원 부담이 되기도 하였다. 반면 넥스트는 점차 보수적으로 흐르는 애플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술을 자유로이 소개할 수 있었다.

넥스트는 맥이 8비트 플랫폼에서 건너뛴 것처럼, 자신도 맥을 건너뛰기 바랬다.

1990년 당시, 넥스트는 넥스트 컴퓨터를 최신예 68030 칩에 특화된 DSP 하드웨어프로세싱을 내장한 웍스테이션급의 머신으로 소개하였다. 넥스트 머신은 마흐 커널과 POSIX 호환 BSD 하부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는 걸작 운영체제를 탑재하였다. 게다가 고도로 객체-지향적인 애플리케이션 개발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넥스트는 웍스테이션급 유닉스 시스템의 기존 기술을 새 플랫폼에 추가시켰을 뿐만 아니라, 68k 프로세서나 SCSI, NuBus, ADB와 같은 애플이 개척한 아이디어도 포함시켜서 새 플랫폼을 구축하였다. 정말 넥스트가 제공한 새로운 기능은 많았다. 기술 면에 있어서 최고의 기술을 한데 모은 부분이 많았다.

덕택에 넥스트는 기초 기술을 재발명하는 데에 들이는 시간을 줄이는 한편, 새 기능으로 빠르게 자신을 차별화시킬 수 있었다. 가령 POSIX 기반의 추가 덕택에 넥스트는 유닉스 사용자들에게 친숙한 소프트웨어 호환 환경을 제공할 수 있었다.

또한 그덕분에 넥스트는 운영시스템 기술의 많은 부분을 무료로 구현시킬 수 있었다. 파일 퍼미션이나 다중사용자 환경과 같은 일반적인 기능을 처음부터 스스로 개발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유닉스는 이미 성숙한 해결책이었다.

넥스트의 새 플랫폼은 애플 하이엔드 맥과 직접적인 경쟁을 목표로 삼았다. 애플과 넥스트 간에 전직 애플 직원을 넥스트로 데려갔다는 법적 공방은 두 회사 간의 합의로 결론이 났는데, 그 합의로 인하여 넥스트는 로우엔드 시장에 진입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넥스트가 개척한 기술 자체가 넥스트를 너무 고가로 만들었기에 합의가 없었다 하더라도 로우엔드 시장에 들어서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넥스트의 경쟁상대는 다른 유닉스 웍스테이션이었다. 기존 POSIX 소프트웨어 호환성덕분에 넥스트는 웍스테이션 시장에 있어서 애플보다 한 수 위였다. 더해서 넥스트의 빠른 개발 프레임웍은 특정 시장용 넥스트 소프트웨어 개발 속도를 가속화시켰다. 그래도 매우 경쟁이 치열한 웍스테이션 시장에서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을 소개하는 일은 어려웠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도 당시에는 윈도우즈 플랫폼을 세우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넥스트와 썬이라도 DOS 생산자가 직접 윈도우즈로 뛰어드는 마당에 기존의 PC 시장에 진입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게다가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미 모든 PC 벤더들과 라이센스를 독점적으로 맺고 있었다. 이 사실들을 고려해 볼 때, 넥스트가 1990년부터 1995년까지 살아남았다는 것도 꽤 놀랍다.

넥스트스텝(NeXTSTEP)을 운영체제로, 나중에는 운영체제상단의 운영 환경이나 웹애플리케이션 개발환경으로 넥스트스텝을 판매하려는 노력은 다음에 논하겠다. 우선은 또다른 맥 경쟁자를 보도록 하자. 이 또한 애플을 출발점으로 하는 또다른 회사였다.

Be
80년대 중반 스티브 잡스가 나간 이후, 존 스컬리는 맥 하드웨어 개발을 이끌 잡스의 후계자로서 쟝-루이 가세를 지명하였다. 가세는 애플 환경을 다른 하드웨어에서 돌리는데 적극적으로 반대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와 AT&T 외의 회사들이 맥 라이센스에 관심을 갖고 애플에 접근하였지만, 가세는 애플 하드웨어야말로 맥 플랫폼의 통제력 유지에 핵심이라 주장하였다.

그런데 1990년, 역사는 반복됐다. 스컬리가 가세를 축출한 것이다. 가세는 잡스처럼 자신만의 차세대 맥을 구현하기 위해 비(Be)를 차린다. 5년 정도 앞서 창립된 넥스트처럼, 비도 애플 직원들을 데려다가 맥 플랫폼보다 우월한 대안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비는 원래 실험적인 AT&T의 Hobbit 프로세서 기반으로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을 개발할 계획이었다. 이는 애플과 비 간의 관련인사들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가세를 쫓아 비로 가기 전까지 애플에서 뉴튼 프로젝트를 이끌던 스티브 사코만(Steve Sarkoman)도 거론할 수 있겠다.

따라서 BeBox 하드웨어 디자인은 애플과 보조를 맞추게 되었고, 결국은 파워맥과 매우 유사한 기종이 탄생하였다.

BeOS는 애플의 시스템 7보다 훨씬 진보된 파일시스템 기술을 통합시켰으며, 현대적인 하드웨어의 더 효율적인 활용과 멀티쓰레드 디자인도 해 놓았다. 넥스트처럼 BeOS도 어느정도 POSIX 기술을 받아들였지만, BeOS의 코어 운영 시스템은 기존 코드에 기반하기보다는 비사 자체 제작이었다.

매킨토시로부터 큰 도약을 벌이는 대신, 비는 애플이 제공하려 했던 것을 보다 현대화시키는 데에 주력하였다. 비는 결국 차세대 아미가였다. 애플 맥의 개선된 대안을 구축하려던 아미가였다는 의미다. 그 결과 BeOS는 인상적인 데모를 보여주고, 특정 미디어 애플리케이션에 잘 어울렸다.

넥스트와는 달리 비는 기존의 운영체제 기술을 활용하기보다 자체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을 구축하려 하였다. 즉, 사무 환경에서 BeOS는 별 쓸모가 없었기 때문에 테스트된 시스템도 거의 없었고, 여러가지 일반적인 기능도 BeOS에서 결코 구현되지 못하였다. 가령 다중사용자 환경이 없다거나 파일퍼미션도 누락되어 있었다.

생존하려는 비의 노력은 완전히 새롭고 실험적ㅇ니 운영체제의 세상이 끝났음을 시사하였다. 운영체제를 바닥부터 새로 만드는 작업은 이제 너무나 어려워졌다.

BeOS가 POSIX와 제한적인 호환성만을 제공했고, 넥스트와 같은 빠른 개발환경이 없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맥보다 비가 우월한 부분은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BeBox 하드웨어 판매에 실패하자, 비는 BeOS를 애플 맥 하드웨어용으로 포팅한다. 하지만 이로써 비는 PC 운영체제 대안으로서의 진입장벽에 부딪히게 된다. 이미 기존의 OS가 존재하는 판에 새로운 OS를 왜 구입할까? 어째서 거의 쓰지도 않는 플랫폼용 소프트웨어를 작성할까? 비는 표준 PC용으로 BeOS를 포팅했을 때에도 똑같은 문제에 직면하였다.

Putting the Mac on a PC
1990년대 초반에 이미 완전히 새롭고 독특한 하드웨어 플랫폼을 선보이기란 너무나 어려워졌다. 넥스트와 썬, 비는 모두 개별 하드웨어 플랫폼 유지가 너무나 어려워졌다는 똑같은 현실에 직면하였다.

이들 모두 DOS에 대항하여 PC 시장에서의 경쟁을 벌이려 하였다. 그러나 새로이 떠오른 윈도우즈때문에 그 또한 어려워졌다.

심지어 애플도 내부적으로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PC에서 돌리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름하여 스타트렉(Star Trek) 프로젝트이다.

그러나 스트트렉 프로젝트가 실제로 구현되면 기존의 맥 하드웨어 플랫폼을 죽이게 된다. 그리고 애플의 수입 전체가 하드웨어 플랫폼에 있었다. 또한 완전히 새로운 "PC Mac" 플랫폼을 등장시키게 된다. 사용자들이 갑자기 그 플랫폼을 쓰게 될까, 아니면 단순히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플랫폼으로 이주하게 될까?

스타트렉의 주된 문제는 써드파티용 맥 소프트웨어를 전부다 재작성해야 한다는 데에 있었다. "왜 애플은 이제서야 인텔을 사용하게 되었나"에서 지적한대로, 애플에게는 크로스 플랫폼 개발툴을 제공할 능력이 없었다. 맥의 써드파티 소프트웨어의 너무나 많은 부분이 하드웨어와 직접 교신하는 코드에 의존적이었다.

새로운 플랫폼을 선보이기가 어려워졌다는 점을 깨달은 애플은 마음을 고쳐먹고 스타트렉을 종료시킨다. 또한 똑같은 이유로 인해 애플은 RISC 재규어 컨셉 개발을 중단시키고, 기존의 맥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유지와 개선에 나선다.

이제 애플은 맥을 교체하기보다 좀더 현대적인 하드웨어 플랫폼상에서 소프트웨어를 개선시키고, 나중에는 코어 운영시스템 기능을 개선시킬 계획을 세운다.

Running Out of Time
그러나 애플과 넥스트, 비에게는 시간이 부족했다. 여러가지 생존 전략을 세워보았지만, 세 회사 모두 점차 소수자로 전락해가고 있었고, 데스크톱의 새로운 플랫폼은 이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즈 3.0이 차지하기 시작하였다.

오랜 기간 이후, 마이크로소프트는 마침내 DOS용 그래픽 셸을 많이 팔 수 있었다. 부분적으로는 윈도우즈용 어도비 페이지메이커의 출현덕분이었다. 갑자기 윈도우즈에게는 페이지메이커라는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생기게 되었다. 더구나 원래 그 프로그램은 맥용 킬러 애플리케이션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해 강력하게 대항하는 대신, 애플은 오히려 윈도우즈에게 길을 터주는 실수를 아예 시리즈로 저지르게 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1990-1995: The Rise of Windows에서 설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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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5: NeXT, Be, and the Mac 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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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aubon 님께서 2008-01-30 06:48 AM 에 수정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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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9, 09:43 AM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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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chemmac 님이 쓰신 글
제 생각엔, 이글 상당히 '애플' 중심적이네요.

컴팩과 코모도어가 넥스트보다는 훨씬 중요한 회사인데, 언급이 아주 적군요.
코모도어 64, 컴팩의 호환 기종 및 386 기종 등 아주 중요한 제품들이 모두 빠졌네요.
물론 플랫폼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컴팩은 호환 기종 회사일 뿐이지만
바로 그 호환 기종을 개발함으로써 후일 플랫폼 전쟁(?)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줬죠.

아미가는 엄청 혁신적인 컴퓨터인데 회사의 엄청난(!!!) 삽질로 망한 경우고,
아타리는 미디 인터페이스가 내장되어 있어서 나름대로 틈새 시장을 개척한 경우고
아주 언급할 것이 많은데 다 빠져버렸군요.
'애플' 중심적인 글이긴 한데, 저는 개인적으로 코모,아미,컴팩을 빼 먹은 것이 그렇게
'플랫폼' 시장을 논하는 글에서 문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 절대 논쟁을 위한 글은 아닙니다. 오해마시고...

플랫폼이라는 의미가 단순한 하드웨어적인 성과물이 아닌, 운영체제와 하드웨어가
유기적으로 엮여 돌아가는 상황을 이야기하다보니, 단순히 하드웨어 비중이 높았거나,
큰 성과가 없던 os 시스템들은 이야기에서 제외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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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리의 블로그 : http://macdory.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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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9, 09:44 AM   #11
casau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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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5: 떠오르는 태양, 윈도우즈

1990-1995: The Rise of Windows NT & Fall of OS/2

Saturday, September 9, 2006

"플랫폼의 역사, 그리고 그 대결"은 플랫폼을 새로 발족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플랫폼을 유지하는 일은 또 얼마나 고된지를 알려주었다. 본 글에서는 컴퓨팅 플랫폼의 역사적인 궤적(軌跡)과 함께, 누가 왜 이겼는지, 누가 왜 졌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컴퓨팅 환경이 언제나 변하기는 하지만, 기본 원칙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으며, 애플의 레퍼드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비스타와 같은 미래 개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난 기사:The Rise of Windows
80년대 후반, 윈도우즈 2.0을 둘러싸고 애플은 디지탈리서치의 GEM/1과 HP의 NewWave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고소하였다.


거의 맥 데스크톱을 GEM/1로 복제하였던 디지탈리서치는 PC 버전을 바꾸기고 동의하였지만, 원래의 GEM/1은 Atari ST에서 수정이 안된 채로 쓰였다. 하지만 애플은 아타리를 경쟁자로 여기지 않았다. 애플이 PC 제품에 대해 법적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애플의 소송에서 애플이 승리한 부분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승리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승리를 잠시 멈춰줬을 뿐이었다. 현실적으로 애플의 소송은 오히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요새를 든든히 다져주는 데에 일조(一助)하였다.

마치 항생제라도 먹이는 것처럼, 애플의 법적 소송은 윈도우즈에 대한 경쟁을 억눌러버렸다. 그대신 마이크로소프트가 남아있는 유일한 경쟁자라는 인식만을 심겨주었다.

"룩앤필" 소송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독점을 막지도 못하였다. 애플 CEO, 존 스컬리가 맥의 주요 기능 대부분을 초창기때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라이센스해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마이크로소프트는 맥용 오피스 소프트웨어 개발을 멈추겠노라고 협박하기도 하였다.

스컬리가 맥 인터페이스를 포기해버리는 바람에, 애플은 맥환경을 특허화시키지도 못한 상태였다. 따라서 법정은 애플이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노라 판결내렸다. 오히려 그 소송은 두 회사간에 스스로 해결해야 할 계약서상의 분쟁일 뿐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거의 10년이 걸렸다. 잡스가 1997년, 애플에 복귀하고나서, 마이크로소프트와 담판을 지은 뒤에서야 해결이 났기 때문이다. 그동안 애플과 애플 지지자들은 자기만족만을 해야 했으며, 윈도우즈에 대해 씁쓸한 감정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는 애플 없이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직접 경쟁을 벌여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Apple Takes a Nap
스컬리가 있을 동안 애플은 엔지니어링보다는 마케팅에 주력하였다. 즉, 역동적이면서 뭔가 생산을 했던 잡스의 회사가 이제는 제록스 PARC처럼 실험적인 연구나 일삼는 느긋한 곳으로 바뀌어져버렸다. 아니, 정확히 PARC처럼 애플은 이제 이윤과 상관 없는 연구개발 씽크탱크의 대장이 되어버렸고, 다른 기업들은 모두 자유로이 아이디어를 가로채갔다.

스스로 그래픽 데스크톱의 주도에 나서는 대신, 90년대 초반 애플은 "진보적인 기술"을 갖고 노는 정도였으며,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즈에 심으려 애쓰는 기능을 이미 갖고 있다는 식으로 안주(安住)하였다. 이는 애플에게 있어서 재앙적인 태도였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생산성도 오르고 했기 때문에 그래도 되는 것처럼 보였다.

우선 애플은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인상적으로 지원해주는 유닉스 배포본인 A/UX를 선보였다. 그리고 시스템 7을 PC용으로 포팅도 하였다. 새로이 RISC 웍스테이션 플랫폼도 실험해 보았고, 퀵타임이라 불리는 미디어 아키텍쳐 작업도 시작하였다. 뉴튼 핸드헬드 컴퓨터와 디지탈 카메라, 스캐너 등 주변기기 개발도 활발했다. PowerTalk이라 불린 새로운 메세징 플랫폼도 나왔다. 이와같이 여러가지 기술이 나왔지만, 맥을 넘어서 중요한 제품을 진정으로 만들어내는 데에는 문제가 있었다.

플랫폼 교훈이다. Real artists ship!

A Rude Awakening
애플의 안일한 대응은 심각한 경쟁을 불러일으켰다. 1990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DOS용 그래픽 셸의 세 번째 버전을 발표하였고, 이 버전은 드디어 DOS PC의 광범위한 사용자들에게 그래픽 컴퓨팅에 대한 주목을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일반인들 눈에는 갑자기 그래픽이 화려한 맥과 텍스트-기반의 DOS PC 간의 간격이 좁혀져버렸다. 게다가 DOS PC로 구현한다면 훨씬 적은 값에 할 수가 있었다. 이때 높은 판매량을 뒷받침해준 애플의 고마진도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DOS용 셸로서 윈도우즈 3.0의 출하에 더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IBM과 함께 1988년부터 OS/2 NT라 알려진 OS/2 3.0의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양사간의 협력은 원래 DOS를 OS/2로 바꾸자는 목표였다. OS/2는 현대적인 운영체제로서 네이티브 소프트웨어는 물론, 윈도우즈와 DOS 애플리케이션과의 하방호환성도 갖추었다.

그러나 윈도우즈 3.0의 판매량과 채택율이 올라가자, 마이크로소프트는 IBM과의 협력을 청산하고, OS/2 개발을 결국 포기한다. 그대신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즈 3.0의 기반인 DOS를 좀더 진보적이면서 NT 커널로 교체하기 위해 "윈도우즈 NT"로 계획을 교체하였다. 완전히 새로운 NT 커널은 마이크로소프트가 갖고 있었다.

OS/2 플랫폼은 심각한 반응을 얻은 적이 없었으며, 이제는 DOS뿐만이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에게도 직접적인 경쟁을 벌여야 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계속 OS/2야말로 미래라며 OS/2가 "윈도우즈 플러스"라 칭하였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자원은 분명 NT 운영체제쪽으로 쏠리고 있었다.

The Promise of NT
NT를 완전히 새로운 운영체제로 소개시키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는 DEC에서 고용한 데이브 커틀러(Dave Cutler)가 이끄는 엔지니어 디자인팀을 구성하였다. 커틀러는 원래 DEC의 VMS를 작업했었다. VMS는 하이엔드 웍스테이션 시장에서 유닉스에 대항하는 주요 운영체제 경쟁자였다. NT 디자인은 새로운 아이디어도 많이 포함시켰지만, 여러모로 VMS를 반영하고 있다.

1993년, 윈도우즈 NT 3.1을 DOS 기반의 윈도우즈 3.1의 후계자로 소개하려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새로운 운영체제의 퍼포먼스가 당시 대부분의 PC가 가진 능력 범위를 벗어남을 발견하였다.

따라서 마이크로소프트는 NT를 서버와 웍스테이션용 제품으로 위치를 바꾸고, NT의 퍼포먼스 개선 계획을 세운다. 언젠가는 일반 PC에서도 돌릴 수 있도록 말이다.

그동안 마이크로소프트는 NT(NT3.5와 3.51, 4, 2000)와 DOS-기반의 윈도우즈(3.11, 95, 98, 98SE, Me) 양자를 유지하였다. DOS에서 NT로 급격한 변환을 시도하기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향후 10년동안 두 시스템의 통합을 위해 노력하게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NT를 플랫폼의 전부로 여겼다. 기존의 16-비트 윈도우즈 3.0용 소프트웨어는 물론, NT는 대부분의 DOS 프로그램을 돌릴 수 있도록 하부시스템을 지원하려 하였고, 그 외에 32-비트 윈도우즈용 애플리케이션과 OS/2용 애플리케이션, 심지어는 POSIX 소프트웨어도 지원할 계획이었다.

각 하부시스템은 내부 플랫폼 API 최상단에 위치하여, NT는 이론상 새 API를 올려놓기만 하면 지원이 가능했다. 또한 NT는 하드웨어 추상레이어도 지원하여 하드웨어 종류에 구애받지 않은 플랫폼이었다. 이에 따라 표준 x86 PC 외에, NT는 원래 DEC Alpha와 MIPS R4000 프로세서용으로도 돌릴 수 있었다.

The Cruel Fate of OS/2
NT가 여러가지 소프트웨어를 지원할 계획을 세우기는 하였지만, NT의 초점은 분명 더 강력한 윈도우즈 플랫폼이었으며, OS/2와 POSIX에 대해서는 립서비스만 했을 뿐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로써 광범위한 호환성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개발자들을 자신의 플랫폼으로 돌리는 데에 주력하였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즈 SDK 개발툴을 무상으로 배포하여 새 플랫폼용 개발을 독려(督勵)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가 OS/2를 포기한 이후, IBM도 똑같은 호환성을 제공하려 하였지만, 그 구사방식은 마이크로소프트와 달랐다. OS/2는 DOS와 윈도우즈 애플리케이션을 제대로 지원하려 하였다. 심지어 OS/2의 마케팅 문구는 "a better DOS than DOS, and a better Windows than Windows"였다. IBM은 윈도우즈 3.0용 애플리케이션을 OS/2 데스크톱에서 직접 제대로 지원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이 전략이 화근이었다. 윈도우즈를 제대로 지원하려는 IBM의 노력은 네이티브 OS/2 애플리케이션의 개발사기를 떨어뜨리고말았다. 게다가 OS/2는 특히 VxD 디바이스 드라이버에서 알 수 있듯, 윈도우즈용 애플리케이션을 제대로 지원하지도 못했다. 따라서 사용자들은 OS/2를 "a lessor Windows than Windows"로 인식하였다.

OS/2의 개선된 신뢰성과 다른 독특한 기능도 OS/2를 데스크톱 플랫폼으로 구축시켜주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OS/2 SDK 프로그래밍툴을 유료화시켰던 IBM의 시도도 역시 네이티브 프로그램 개발을 늦출 뿐이었다. OS/2는 결코 스스로 시장을 일궈나갈 만한 수요를 이끌어오지 못하였다.

IBM은 OS/2를 소비자용 제품으로 살려보려 노력하였지만, 시기가 너무 늦었고, 그 노력도 보잘 것이 없었다. OS/2는 결국 ATM이나 전화기 PBX, 보이스메일 시스템처럼 신뢰성이 정말 필요한 틈새시장만을 갖게 되었고, IBM 스스로도 나중에 OS/2를 포기하였다.

플랫폼 교훈이다. 하방호환성은 새 플랫폼과의 일시적인 미봉책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예전 플랫폼이나 경쟁 플랫폼의 성장을 오히려 돕는 결과를 빚어낸다. developers, developers, developers!

Flattering Apple

NT 개발에 있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그저 맥 데스크톱의 룩앤필 이상을 애플로부터 빌려쓴다. NT는 또한 사용자-중심적인 자동-설정 엔지니어링 원칙도 몇 가지 빌려서 시스템을 기존의 다른 시스템(특히 유닉스)보다 매킨토시에 좀더 가깝도록 만든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서버애플리케이션의 맥스러운 단순화도 구사하였다. 일반적인 유닉스 서버 관리자들의 방식처럼 사용자들이 텍스트 파일을 편집하면서 서버 설정을 하는 대신, 마이크로소프트는 NT의 파일과 출력 공유, 원격접속 외에 여러가지 서비스에 버튼과 아이콘을 붙이는 등, 맥스러운 단순성을 가미하였다. 이들 아이콘과 버튼은 이미 맥용으로 먼저 나왔던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애플리케이션을 반영하였다.

NT 개발 외에도, 마이크로소프트는 여러가지 다른 계획도 발표한다. 코드명 Cairo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메세지 서비스의 확장(결국 Exchange Server로 나타났다)과 디렉토리 서비스(결국 Active Directory로 나타났다), 그 외에 분명 넥스트를 의식한 객체-지향 얘기를 엄청나게 많이 거론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로서는 넥스트가 가진 진보적인 객체지향 개발프레임웍과 대등한 이미지를 보이고 싶어했던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러한 아이디어를 결코 구현하지 않았다.

Death by Vapor
마이크로소프트 사업계획에는 언제나 실제 제품 조달보다 앞선 발표가 포함되어있다. 일단은 시장의 반응을 떠보려는 목적도 있다. 하지만 이 전략은 시장이 일단 마이크로소프트가 무엇을 내놓을지 지켜보게 만들기때문에 잠재적인 경쟁자들을 없애버리는 효과도 갖고 있다.

90년대 초, 마이크로소프트가 내놓은 허풍 소프트웨어들은 기존의 경쟁제품의 즉각적인 죽음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좀더 최근에 보면 마이크로소프트는 계획을 제 때에 실현못시켰고, 그로인하여 요새 마이크로소프트의 발표는 예전만큼 다크포스를 내뿜지는 않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서버 영역에서 애플이 개척한 아이디어를 채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애플은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는 데만 하더라도 점차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 문제는 다음 글, "1990-1995: Apple vs. Microsoft in the Enterprise"에서 다루겠다.

I really like to hear from readers. What do you think? Leave a comment or email me with your ideas.

1990-1995: The Rise of Windows NT & Fall of OS/2
__________________
FAQ

casaubon 님께서 2008-01-30 06:51 AM 에 수정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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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2, 11:16 AM   #12
casau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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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5: 기업시장에서의 애플 대 마이크로소프트

1990-1995: Apple vs. Microsoft in the Enterprise

Thursday, October 12, 2006

최근의 "애플은 TV를 어떻게 변화시킬까"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현재 실패하고 있는 분야에 애플이 어떻게 성공을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 비교해 보았다. 하지만 상황은 변하게 마련이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애플은 플랫폼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에 휩싸이고 있었다. 오늘날의 마이크로소프트와 여러모로 비견된다. 애플의 드라마와 같은 추락을 보면, 어떤 회사도 무시할 수 없는 플랫폼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플랫폼의 역사, 그리고 그 대결"은 플랫폼을 새로 발족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플랫폼을 유지하는 일은 또 얼마나 고된지를 알려주었다. 본 글에서는 컴퓨팅 플랫폼의 역사적인 궤적(軌跡)과 함께, 누가 왜 이겼는지, 누가 왜 졌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컴퓨팅 환경이 언제나 변하기는 하지만, 기본 원칙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으며, 애플의 레퍼드나 마이크로소프트의비스타와 같은 미래 개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전 기사:

1990-1995: Apple vs. Microsoft in the Enterprise.
그래픽 컴퓨팅에 있어서 애플이 가진 엄청난 우위는 1990년대 초가 되지 빠르게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DOS 기반의 윈도우즈 3.0을 향상시켰고, 완전히 새로운 윈도우즈 NT 운영체제의 개발에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었다.

윈도우즈가 떠오를 동안, 애플은 완전히 실패하고만 구상만 계속 발표하여 무덤을 스스로 파고 있었다. 애플은 마케팅이 가능한 제품을 내놓거나 진전을 보이지 못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새 시장을 찾고, 특히 사무실 사용자들을 목표로 삼았을 때, 애플은 대규모 이윤 마진을 제공하던 기존의 특정 틈새 시장에만 의존하여 그것만으로 만족한 양 비쳐졌다.

Moving Targets
오늘날과 같은 상황이 되기 전까지, 그러니까 90년대 초반의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존의 플랫폼에 진정한 해결책을 제공하고, 공개(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표준에 기반하기로 약속한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을 제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Cairo라는 코드이름 하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의심스러운 기능을 거론하였고, 그 결과 카이로는 시리즈로 나왔다. 어떤 기능은 나오는 데에 10년이 걸리기도 하였고, 어떤 기능은 결코 나오지 않기도 하였다. 게다가 카이로의 목표는 기술 업계가 변화하면서 계속 바뀌었다.

그러는 동안, 애플의 단조롭고 폐쇄적인 맥 플랫폼은 벽을 치고 있었다. 애플은 맥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더 우월한 유닉스 운영체제 기술을 접목시키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또한 애플은 맥 사용자 환경을 계속 확장시켰다. 하지만 애플 마음대로 그려낸 수요에 대해 애플은 솔루션을 제공하려 노력하였고, 결국 실질 목표를 완전히 빗나가게 만들어버린 경우가 많았다.

Differ'nt Strokes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더 이상 다를 수가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향후 대기업용 제품라인 목표를 분명히 세우고, 광고도 광범위하게 실시하였다. 애플은 개념적인 기술을 서투르게 시도하였으며, 대부분의 계획을 비밀로 유지하였다.

물론 두 회사 모두 다른 제품에 다른 시장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양사의 성공담과 실패담에서 배워야할 플랫폼 교훈이 있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비슷한 문제에 봉착하여 어떻게 다른 해결책을 구사하였는지를 비교해 보자. 가령, 양사는 메세징 플랫폼에 대해 어떤 대처를 하였을까? 애플은 PowerTalk, 마이크로소프트는 Exchange Server였다.

90년대 중반, LAN의 등장은 새로운 컴퓨터 애플리케이션을 선보이게 된다. 파일공유 이후로, 메세징은 LAN을 위한 분명한 차세대 애플리케이션이었고,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양사 모두 대단히 다른 해결책을 개발하였다.

Exchange vs. PowerTalk
마이크로소프트의 익스체인지 서버와 애플 파워톡은 거의 동시에 발표가 되었다. 두 기술 모두 웍그룹 이메일 서비스의 새로운 세대를 약속하였다.

유료 인터넷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던 시기 이후로, 파워톡과 익스체인지 모두 현재 표준이 된 SMTP 이메일 시스템보다 이전의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익스체인지 서버는 X.400 메세지와 X.500 디렉토리 서비스라는 공개 표준에 기반을 두려 하였다.

애플의 파워톡은 애플톡에 기반을 둔 완전히 폐쇄적ㅇ니 시스템이었다. 텍스트 메세지 뿐만이 아니라, 파워톡은 파일과 메일, 팩스, 프린터 등 여러가지를 고르거나 보내고, 상호운용하는 일종의 클라이언트 사이드 시스템이었다. 파워톡은 클릭하면 되는 맥 데스크톱 환경의 우아하고 풍부한 엔지니어링을 반영하였으며, 차세대 맥의 위대성이 되리라 약속하였다.

Selling Hardware
애플의 사업 모델은 하드웨어 판매를 둘러싸 있기에, 애플은 메세징을 복잡하고 고 부가가치를 지닌 클라이언트 머신으로 돌릴 계획과 동기를 지녔다.

애플은 세상이 이메일을 다룰 전용 서버에 아직 준비가 안됐다고 생각하였다. 특히나 애플의 핵심 시장인 교육시장과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소규모 웍그룹에서 작업하고 있었다.

따라서, 파워톡은 전용 서버를 요구하지 않았다. 네트워크 상의 모든 맥이 온라인에서 서로를 발견할 때마다, 정해진 시간 간격으로 메세지를 교환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미 애플은 애플톡 네트워킹과 애플셰어 파일 공유를 통해 자동 인식 서비스와 자동 네트워크 설정 개념을 개척해 놓고 있었다. 이들 기능은 10여년 후, 좀 더 현대화된 IP 네트워크 기술이 되어 Bonjour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특별한 설정이나 설치 없이도, 애플톡 프린터는 맥의 선택자에서 자동적으로 나타난다. 파워톡은 이를 메세징과 보안 서비스로 확장시킬 계획이었고, 모든 것을 다른 애플 제품처럼 "그저 잘 돌아가는" 간단하고 우아한 시스템으로 만드려 하였다.


어떠한 맥 애플리케이션도 메일 보내기를 붙일 수 있었고, 첨부파일도 바로 되었다. 출력만큼 쉽게 말이다. 파워톡은 이론상 정말 대단했다.

플랫폼 교훈이다. 이론상, 이론과 실제는 같다. 실제상,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Snowballs in Hell
제품-지향적인 원칙이 없어서, 제품을 제공하는 애플의 능력은 점차 사라져갔다. 애플을 살찌우고, 잘 팔려나가서 장차 더 훌륭한 개발을 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 정말 훌륭한 제품을 만들기보다, 애플은 절대로 상품화가 안 될 여러가지 프로젝트에 매달려 있는 엔지니어들의 집단으로 변모해갔다.

애플의 중간급 관리자들은 자기 프로젝트를 지키기 위해 혈안이었으며, 시장성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기업 내 알력의 전형이랄 수 있겠다. 그들은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자기 영토화시켰고, 거부권을 내세우기 힘들도록 동 프로젝트 안에 기능을 싸잡아 넣으려 하였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무서운 재앙으로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다. 이제는 너무나 복잡해져서 완성은 커녕 과대 포장된 기능으로 바뀌어 애플의 전략도 끝없이 넓혀지기만 하였다. 이때문에 애플로서는 그런 기술을 제공하기도 불가능했지만, 죽이기도 어려웠다.

플랫폼 교훈이다. 완성시킬 수 없는 좀비 프로젝트는 죽이지 않으면, 결국 회사 두뇌를 전부 다 갉아먹게 된다.

The PowerTalk Disaster

파워톡도 그러한 재앙 중 하나였다. 파워톡은 이제 외국언어 지원과 디지탈 사인, 암호화, 중앙집중화된 주소록 시스템과 주소록, 사실상 존재하는 모든 메세징 프로토콜을 포함시키는 프로토콜 등을 포함하는 메세징 기술의 집약체, Apple Open Collaboration Environment이 되었다. 이 환경은 아예 정보 카탈로그 시스템이 되어버렸다.



그 결과 파워톡은 기존의 맥 하드웨어에게는 너무나 버거운 존재가 되었다. 특히나 애플의 또다른 재앙적 프로젝트, 퀵드로 GX도 마찬가지였다.

80년대 후반은 하드웨어 발전에 따라 소프트웨어도 보조를 맞추던 때였다. 그런데 90년대 초까지 애플은 너무나 고도의 소프트웨어를 제공하여, 당시의 하드웨어로서는 소프트웨어를 따라가기가 버거울 정도였다. 파워톡을 설치해도 될 정도로 충분한 디스크 공간과 RAM을 가진 사용자들조차 메일 하나 받기가 문제가 될 정도였다. 개별 메일 아이템이 남아있는 디스크 공간을 빠르게 잡아먹어버리기 때문이었다.

네트워크 기능도 파워톡의 골칫거리였다. 파워톡 네트워크에는 다른 네트워크 시스템을 찾는 기능이 있었는데, 이 기능은 다이얼-업 네트워크를 통한 원격 조정에 있어서 문제가 되었다. 원격 파워톡 클라이언트에 접속하기 위해 정해진 시간대마다 고가의 서킷을 다이얼하는 시스템이 되어버린 것이다.

파워톡을 사용한 곳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파워톡은 통제에서 벗어난 애플의 소프트웨어 구상 중 하나로 전락해버렸다. 당시 하드웨어가 파워톡이나 AOCE를 돌릴 수는 있었지만, 세상의 목표는 달랐고, 이메일에 대한 기대도 전혀 달랐다.

플랫폼 교훈이다. 기술만으로는 안 팔린다. 완성화가 된 제품만이 팔린다.

The Advantage of Open Standards

익스체인지 서버는 좀더 주류 클라이언트-서버 모델을 좇았다. 당시 유료 인터넷이 제공하기 시작했던 기능과 유사한 모델이었다. 익스체인지 서버를 인터넷 메일 시스템에 연결시키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가 수정해야 할 부분은 적었다. 공개표준을 따르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여타 업계와 통합하여 업계가 추구하고 있던 것과 나란히 쉽게 익스체인지 서버를 개발할 수 있었다.

본질적으로 P2P 시스템이었던 파워톡은 개념적으로 너무나 달라서, 파워톡은 인터넷 메일 서버 모델에 잘 들어맞지 않았다.

결국 애플은 파워톡을 포기한다. 시스템 전반에 작동하는 키체인이나 주소록과 같은 관련 아이디어 중에 살아남은 것이 있긴 하였다. 그러한 부분은 오늘날에도 맥오에스텐에서 쓰이고 있다.

플랫폼 교훈이다. 업계에 저항하기보다는 협력하는 편이 훨씬 더 쉽다.

A Matter of Time

돌이켜 보면 익스체인지와 파워톡을 직접적인 경쟁자인양 비교해 볼 만하다 여겨지지만, 사실상 두 제품은 완전히 다른 개념으로 존재했었다.

애플톡 시대에 애플 네트워크를 이끌던 엔지니어, 구샤란 시두(Gursharan Sidhu)는 1989년에 파워톡을 시작했었다. 파워톡은 1993년 시스템 7 프로의 일부로 등장하였고, 파워톡은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의 프리미엄 버전을 팔기위한 기능이 되었다.

하지만 맥 사용자들이 AOCE의 채택을 하지 않자, 애플은 1996년 파워톡을 포기하였고, 그들의 관심을 점차 상용 인터넷과 Cyberdog으로 돌렸다.

마이크로소프트는 1991년, 카이로의 일부로서 익스체인지를 개념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지만, 1996년까지 아무 것도 제공하지 않고 있었다. 익스체인지의 초기 버전은 완전히 쓰레기였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꾸준히 익스체인지를 개선시켰고, 익스체인지 채택자들은 90년대 후반, 계속 개선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한 관점에서 두 제품의 직접적인 비교는 무의미하다. 하지만 파워톡과 익스체인지는 매우 다른 시기에 존재하였고, 두 제품은 같은 문제에 대해 별다른 접근을 하였으며, 공히 가치있는 플랫폼 교훈을 제공한다.

1. 아직 잘 작동하지 않는 미래 제품을 팔려하지 말라. 차라리 현재의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존 제품을 팔기 위해 거론하는 정도로 그쳐라. 좋은 사례는 다음과 같다.

  • 마이크로소프트 메일은 익스체인지를 거론할 때 팔려나갔다.
  • DOS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즈를 거론할 때 팔려나갔다.
  • Windows/DOS는 마이크로소프트가 NT를 거론할 때 팔려나갔다.
  • 맥오에스 9는 애플이 맥오에스텐을 거론할 때 팔려나갔다.

2. 멋대로 시장을 상상하여 개념을 퍼뜨리려하지 말라. 차라리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완성된 제품을 만들고, 유지 가능한 시장을 조성하라. 안 좋은 사례는 다음과 같다.

  • 마이크로소프트의 오리가미는 무력한 랩톱에 거대화된 PDA로서 패키지도 너무 못생겼다.
  • 애플의 뉴튼 역시 너무 크고 너무 비쌌으며, 작고 간단하고 저렴한 Palm Pilot에 경쟁하기에 너무 복잡했다.

3. 기능적인 제품을 내놓고 계속 개선시켜라. 개선시키는 동안 쓰이게 되면 제품으로서 막대한 가치를 얻게 된다. 좋은 사례와 나쁜 사례가 모두 다 있다.

  •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공적인 윈도우즈와 오피스 제품군은 2003년 경까지 꾸준한 업데이트를 거쳤다.
  • 최근 성공을 거둔 애플의 맥오에스텐아이라이프, 전문형 애플리케이션에서도 역시 정기적이고, 개선을 시키는 업데이트가 나오고 있다.

  • Palm은 소프트웨어 개발에 있어서 업데이트를 소흘이 하여 결국 실패하였다.
  • 애플은 시스템 7을 업데이트시키기 위해 수 년동안 코플랜드에 매달려 있었다.
  • 마이크로소프트의 비스타 역시 2003년과 2004년, 2005년, 2006년에 중요 업데이트 제공을 못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쿼크, 닮았다"와 "마이크로소프트가 안되는 이유 세 가지"를 보시라.

Apple: Not Down To Business
A/UX와는 별개로, 파워톡의 실패때문에 애플에게는 기업용 제품이 사라져버리게 된다. 아니, 심각한 웍그룹 서버 전략도 없었다.

애플은 웍그룹 서버 제품을 맥 시스템 7 상에서 구축하려 시도하였지만, 다시금 하방호환성 문제에 휘말리게 된다. 맥 시스템 운영체제는 결코 전용 서버의 사양에 맞춰서 디자인된 적이 없었다.

따라서 애플은 더 나은 플랫폼을 만들어야 할 이유가 절실해졌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플랫폼이 한 번 정착되면, 그 자리를 빼앗기란 정말 어려워지게 마련이다. 애플에게는 대기업에게 제공할 제품이 없었기에, 애플은 교육시장과 개인이라는 기존의 소비자에게 집중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마이크로소프트는 회사 고객에게 공격적으로 접근하였다. 그리고는 윈도우즈와 PC의 시장을 새로이 만들어낸다. 다음 기사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넥스트의 노력을 비교해 보고, 이들의 각기 다른 동기가 제품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조사해 보겠다.

1990-1995: Why the World Went Wind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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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aubon 님께서 2006-10-13 02:44 AM 에 수정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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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3, 02:27 AM   #13
딸기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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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aubon님의 글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며 읽고 있습니다.
다음 기사도 기대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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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0, 09:10 AM   #14
casau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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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5: 세상은 왜 윈도우즈 판이 되었는가

1990-1995: Why the World Went Windows

Saturday, October 14, 2006

"1990-1995: 기업시장에서의 애플 대 마이크로소프트"는 단일한 특정 제품을 선보이려는 데에 있어서 두 회사 간의 전혀 다른 접근법을 비교하였다. 플랫폼상의 제품 콜렉션으로 통합이 될 때, 단일 제품에 대한 시장력은 대단히 커질 수 있다. 사용자에게 더 많은 가치를 안겨다 줄 뿐만이 아니다. 세상이 왜 윈도우즈판이 되었는지에 대한 해답이기도 하다. 당연히 좀 더러운 부분도 있긴 하였다.


"플랫폼의 역사, 그리고 그 대결"은 플랫폼을 새로 발족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플랫폼을 유지하는 일은 또 얼마나 고된지를 알려주었다. 본 글에서는 컴퓨팅 플랫폼의 역사적인 궤적(軌跡)과 함께, 누가 왜 이겼는지, 누가 왜 졌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컴퓨팅 환경이 언제나 변하기는 하지만, 기본 원칙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으며, 애플의 레퍼드나 마이크로소프트의비스타와 같은 미래 개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전 기사:


1990-1995:Why the World Went Windows
범용 컴퓨터에게 사냥당한 다양하고 독특한 플랫폼의 운명과는 달리, 90년대에 애플 매킨토시가 살아남은 이유는 크게 볼 때, 애플이 제공할 수 있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간의 강력한 통합성 덕분이다.

애플은 RAM 칩 뿐만이 아니라 프로세서, 운영체제도 판매하였고, 숙련된 엔지니어링 실력과 일관성 있는 경력도 지니고 있었다. 더 작은 경쟁사들이랄 수 있을 코모도어나 아타리 같은 경우에는 애플이 투자하고 있던 막대한 개발력에 미칠 수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 또한 소프트웨어 제공에 있어서의 통합 원칙에 충실하였다. 애플처럼 독립적인 컴퓨터 솔루션을 세우는 대신, 마이크로소프트는 여러가지 소프트웨어 플랫폼으로 사용자에게 가치를 네트워크화시켜서 안겨다 주었다.

Divide and Conquer
본질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는 범용 PC 하드웨어에 애플과 같은 통합적인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구축할 계획이었다. 제조나 유통에 대한 위험은 제조업체들에게 맡겨야 했기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여러가지 하드웨어 업체들과 계약을 맺었다.

그래야 한 업체가 실패할 경우, 또다른 경쟁사가 나서서 마이크로소프트 운영체제를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 마이크로소프트의 하드웨어 파트너였던 IBM은 시장이 원하는 바를 제공하는 데에 실패하였고, 그 자리는 컴팩이 차지하였다.

후에, 델과 같은 다른 경쟁사가 나서자, 각 업체들은 건전하고 다양한 PC 하드웨어 시장을 조성하는 데에 기여하였다.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소프트웨어 개발과 PC 시장을 확장시키는 전략에 집중할 수 있었다.

PC Proliferation
마이크로소프트는 메인프레임과 터미널, 웍스테이션의 대체품으로서, 윈도우즈 PC를 공격적으로 팔았다. 구 세대의 하드웨어를 교체할 새 시장에 들어가는 모든 PC에 윈도우즈를 설치시킨 것이다.

이 시장은 애플이 전혀 흥미가 없던 시장이었다. 애플은 우아하고 마진이 높은 하드웨어 솔루션을 기존의 예술계나 출판계 사용자들에게 팔려 하였다. 그와 반대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의 소프트웨어 제품을 가능한 시장이라면 어디든지 밀어붙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Windows Everywhere"라는 슬로건으로 소프트웨어 전략을 세워, 사무용 복사기와 휴대용 컴퓨터, 자동차에서 계산기, ATM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을 목표로 하였다.

물론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이 실패한 곳도 많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실로 거대한 새로운 PC 시장을 열었다. 메인프레임과 미니, 더미 터미널, 유닉스 스테이션 등 기존의 컴퓨터 시스템을 PC 시장이 교체하기 시작한 것이다.

Avoiding Direct Comparisons
윈도우즈를 범용 하드웨어에 정착시키고, 대량 판매가로 운영체제 개발비를 보조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의 맥이나 유닉스 웍스테이션 업체들이 제공하는 더 우월한 운영체제 기술과의 직접적인 비교를 피해나가면서 개발을 지속시킬 수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그 대신 애플이나 다른 업체들이 PC 파트너들과 경쟁을 벌이도록 강요하였다. 이때문에 다른 소프트웨어 플랫폼과의 경쟁에서 윈도우즈는 자신을 보전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즈용 소프트웨어를 쓸 하드웨어 업체들에게 독점적인 번들 계약을 체결하였다. 바로, 윈도우즈 가격 패러독스의 시작이다. 윈도우즈 가격 패러독스란, 마이크로소프트가 소프트웨어 값을 그렇게 높게 유지시키면서도 시장가격을 갖춘 다른 대안형 DOS들이 거의 무료로 보이는 마이크로소프트 DOS와 경쟁하였던 상황을 일컫는다.

Fraud Marketing
게다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공이 훌륭한 마케팅의 더 훌륭한 실행덕분이라든지, 경쟁사들의 미숙함때문이라든지, 행운이 계속 겹쳐진 덕분이라든지를 논의하는 것도 공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쟁력의 주요 부분이 그저 사기에 가까운 환상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FUD를 구사하였다. FUD는 한 세대 전, 상대방 업체의 판매를 부수기 위해 기존 제품에 대해 의문을 퍼뜨리는 IBM의 전략으로 유명해진 기술이다. FUD를 보통 비판과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FUD는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표현이 아니다.

FUD는 가짜 부정(否定)적 공격이다. 아무 것도 없는데도, 경고와 공포를 뿌리기 때문이다. FUD는 제품을 완성시키거나 경쟁 제품을 죽이기 전까지, 기존의 판매를 늦추기 위한 목적만을 지녔다. FUD는 사기술이다.

FUD는 보통 허풍과 짝을 이루기도 한다. 허풍이란 대단히 인상적인 새 기능(단, 절대로 실용화될 수 없을)으로 치장된 미래형 제품을 확약하는 방식이다. 허풍은 가끔 나오지도 않을 제품도 가리킨다. 또한 허풍은 미래 제품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 아니라는 것이 요점이다.

허풍은 가짜 긍정(肯定)적 공격이다. 있지도 않을 경쟁의 환상을 불러일으키되, 제품을 완성시키거나 경쟁 제품을 죽이기 전까지, 기존의 판매를 늦추기 위한 목적만을 지녔기 때문이다. 허풍 또한 사기술이다.

FUD라는 부정적 공격과 허풍이라는 긍정적 공격 모두 가짜다. 그 사이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인위적으로 시장을 통제하고, 실제 제품을 판매하려던 경쟁사들을 패배시킬 수 있었다. 가끔은 개발 노력을 전혀 하지도 않고서 말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업계 분석가들을 이용하였다. 시장을 조작하고 실질적인 경쟁을 막기 위해 사기성 짙은 정보를 뿌리기 위해서였다. 게으른 분석가들은 마냥 즐겁게 응하였다. 따라하기에 간단하고 분명한 주제이기도 했고, 실제로 중요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도, 뭔가 있어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The Means to an End
법무부의 독점 재판에서, 마이크로소프타가 PC 운영체제 시장을 조작하였다는 죄 지었음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 재판에서 수많은 공식 증거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그 증거를 고려하지 않았다. 법무부가 PC 운영체제 시장에 대해서만 고발하려 했기 때문이다.

즉, 마이크로소프트의 반-경쟁 혐의는 혐의가 아닌 행위였다. 게다가 실질적으로 그런 행위 덕택에 성공을 거뒀음 또한 사실이다. 단순히, 효율적인 전략을 세워서 성실히 노력한 결과이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가 더럽게 행동한 경우가 많다. 그렇다 하더라도, 경쟁사들의 실패가 단순히 마이크로소프트의 더러운 행동때문만은 아니라, 자기 자신의 경쟁력 부족일 때도 있었다.

다음 기사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성공적인 플랫폼을 향하여 어떻게 제품을 통합해 나아갔는지를 보이고, 애플이 현재 똑같은 전략을 어떻게 이뤄가고 있는지도 비교해보겠다.

1990-1995: Planting Platform See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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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5: Why the World Went Wind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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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aubon 님께서 2006-10-20 09:13 AM 에 수정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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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0, 10:15 AM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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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5: 당시의 마이크로소프트와 현재의 애플

1990-1995: Planting Software Seeds

Monday, October 16, 2006

1990년대 동안, 마이크로소프트는 플랫폼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에 기여한 통합 제품군을 구축하였다. 여러모로 현재 애플이 하는 바와 일치한다.

두 회사의 동기와 제품, 시장은 매우 다르지만, 두 회사 모두 공유하는 부분은 있다. 두 회사가 서로를 어떻게 관찰하는지, 실패를 피하고 성공을 거두기 위해 상대방의 행동에서 무엇을 배우려하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플랫폼의 역사, 그리고 그 대결"은 플랫폼을 새로 발족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플랫폼을 유지하는 일은 또 얼마나 고된지를 알려주었다. 본 글에서는 컴퓨팅 플랫폼의 역사적인 궤적(軌跡)과 함께, 누가 왜 이겼는지, 누가 왜 졌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컴퓨팅 환경이 언제나 변하기는 하지만, 기본 원칙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으며, 애플의 레퍼드나 마이크로소프트의비스타와 같은 미래 개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전 기사:

1990-1995: Planting Software Seeds
소프트웨어 회사로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라이센스 판매에만 흥미를 가졌다. 애플과는 달리, 마이크로소프트의 이윤이 직접적인 하드웨어 이윤 마진에서 생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은 널리 퍼져 있는 소프트웨어를 다른 회사가 만든 저렴한 범용 하드웨어에 뿌리자였다.

당연히 저렴하다는 의미는 상대적이다. 1990년 당시 전형적인 DOS PC는 2천 달러 정도 하였다. 이 컴퓨터는 386/16MHz 프로세서에 2MB RAM, 256 색상의 VGA 그래픽과 선택사양인 마우스(윈도우즈 3.0 브랜드용이었다)를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는 DOS를 필요로하는 윈도우즈 3.0을 200 달러 정도에 판매하였다. 하드웨어 값의 10% 정도이다.

그런데 더 저렴한 컴퓨터를 만들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컴퍼넌트 가격이 엄청나게 비쌌기 때문이다. 2MB의 RAM을 덧붙이면 가격은 두 배가 되었다.

1990년에 나온 IBM의 PS/2는 새로 나온 486 프로세서에 4 MB의 RAM, XGA 그래픽과 80~230MB의 하드드라이브를 갖고 나왔으며, 가격은 10000 달러에서 15000 달러였다.

1990년 이전의 PC 대부분은 텍스트-기반의 DOS용 애플리케이션만을 지원하였다. 따라서 고가의 하드웨어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의 채택을 방해하였다. 프로세서 파워와 그래픽 기능이 윈도우즈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받추어 주기가 힘들 정도로 하드웨어 값이 비싸서였다.

당시 PC 분석가들은 맥을 그래픽이 되는 장난감으로 치부하였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컴퓨터 업계가 결국은 애플의 주도대로 그래픽 컴퓨터로 따라가리라는 점을 이해하였다. 따라서 하드웨어 값이 떨어지자마자,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는 PC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세에 힘입어 광범위한 채택을 받을 수 있었다.

The Myth of Apple's Expensive Macintoshes
마이크로소프트와는 달리, 애플은 하드웨어 판매에 묶여 있었다. 1990년까지, 애플은 하드웨어와 소수의 애플리케이션만을 판매하였다. 애플이 판매한 소프트웨어로는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와, 모든 맥 사용자에게 무료로 들어갔던 하이퍼카드처럼 새로운 소프트웨어도 있었다.

맥 하드웨어는 주로 페이지 레이아웃과 그래픽 디자인을 하는 사용자들을 애플 시장으로 일구어 주었다. 여기에는 최고의 그래픽 하드웨어에 높은 가격을 필요로 하였다. 이미 2년 반 전에, "룩소 쥬니어를 넘어서"로 쓴 바 있다.

1990년 당시 애플은 초고속의 Mac IIfx를 10000 달러에서 12000 달러 사이에 판매하였고, 멋진 Mac IIci도 6700~8800 달러였다. 쓸만한 Mac IIsi는 3800 달러였으며, 싸구려로 내놓았다는 Mac LC가 2500 달러였다. LC는 기본적으로 3년묵은 맥 II보다 속도도 느렸고 확장성도 없었다. 이정도로도 우울하지 않으신가? 심지어 애플은 5년 묵은 Mac Plus를 Mac Classic이라는 이름으로 바꿔서 999~1500 달러를 받았었다.

당시 맥은 최고의 기술로 만들어졌었다. SCSI 하드드라이브에 하이엔드 그래픽, 최고로 빠른 프로세서, 특화된 ASIC에 캐시 하드웨어는 정말 웃기지도 않을 정도의 높은 가격을 형성하였다. 저정도의 기술이라면 맥이건 PC건 유닉스 웍스테이션이건 모두 고가였다.

2000 달러 범주 안에서 컴퓨터를 내놓으려면 옛날 기술을 재탕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바로 애플의 맥 클래식과 LC였으며, PC 제조업체들은 실제로 더 낮은 수준의 컴퓨터를 판매하였다. 이런 싸구려 컴퓨터는 분명 프로세서 파워나 그래픽, 그 외에 어떠한 사양도 고가의 하드웨어에 비해 떨어졌지만, 그래도 예산이 적은 사용자들에게는 잘 들어맞을 수 있었다.

1990년 당시의 2000 달러 짜리 PC와 만 달러 짜리 Mac IIfx, 11500 달러 짜리 넥스트 큐브를 잡지에서 읽고는 비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소비자형 DOS 박스보다 훨씬 고가의 하이엔드 그래픽 시스템이 맥과 넥스트라는 점을 알지 못하였다.

즉, 비교를 하려면 비슷한 사양을 가진 고가의 PC를 비교해야 했다.

1990년 당시 가정용 DOS PC는 256 색상의 VGA 그래픽용 베이직 게임도 거의 돌리지 못하였다. 오늘날의 아이포드에도 못미치는 해상도인데 말이다! 게다가 맥이라면 갖고 있는 SCSI 디스크 컨트롤러나 내장형 네트워킹, 고해상도 그래픽, 통합 오디오도 없었다.

1990년 당시 애플 시장점유율 9%는 하이엔드형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반영한다. 윈도우즈가 성장하기 시작하자, 애플은 더 저렴한 부품을 사용한 싼 맥을 제공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게된다.

애플은 실제로 가격을 낮추었다. 하지만 저마진의 PC 시장에 대량으로 판매하기보다, 하이엔드 프리미엄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더 노력했을 따름이었다. 애플은 하이엔드 시장에서 독특한 제품으로 경쟁을 벌였다. 그 시장이야말로 애플 이윤의 절대 다수를 대표했기 때문이다.

플랫폼 교훈이다. 가끔은 모두의 기억도 틀릴 때가 있는 법.

Apple Thinks Software
애플은 소프트웨어 판매에 있어서의 마이크로소프트가 거둔 성공을 주의깊게 관찰하였다. 당시 CEO, 존 스컬리는 맥 시스템 7을 소매판매하려 했었다. 점차 늘어나는 소프트웨어 개발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였다.

애플이 소프트웨어를 다양화시킬 수 있다고 여긴 영역이 OS 뿐만은 아니었다. PostScript 시장에서는 어도비와, 데스크톱 출판 시장에서는 앨더스 페이지메이커와 하드웨어 파트너 역할을 맡았던 애플은, 자기 자신의 하드웨어로 차세대 히트작을 이끌고 싶어했다.

따라서 애플은 퀵타임을 차세대 히트작으로 삼고 퀵타임에 투자하였으며, 하이퍼카드에서 나타낼 수 있는 오디오와 비디오 콘텐트를 가리키는 멀티미디어라는 단어를 고안하였다. 그리고는 새로운 CD-ROM이 제공하는 대용량의 데이터를 사용하도록 하였다.

애플은 또한 진보적인 네트워킹과 커뮤니케이션 기술에 투자하였다. 이는 파워톡과 관련이 있었다. 정보의 링크와 조직화, 표시법, 음성인식, 음성 신디사이징, 완전힌 텍스트 인덱스 검색, 데이터 시각화 등 많은 실험적 연구가 Advanced Technology Group에서 이뤄졌다. 또한 자회사인 클라리스에서는 사무용 애플리케이션도 제공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은 소프트웨어도 하는 하드웨어 회사로 남아 있었다. 소프트웨어 직접 판매 수입은 별로 크지 못했다.

그래도 애플은 당시 하드웨어 판매가 점점 더 많은 경쟁을 맞이해야 할 것이며, 고가의 개발비용을 감당하려면 소프트웨어 수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그러지 못한다면,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PC와의 차별화를 포기해야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플랫폼 교훈이다. 무료 소프트웨어 개발은 유지비용이 고가이다.

Microsoft Sets the Business World Ablaze
사무용으로서 윈도우즈 PC 플랫폼을 구축하고나자, 마이크로소프트는 정규 업그레이드 주기 때마다 소프트웨어 라이센스를 통해 돈을 벌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는 막대한 이윤과 함께, 그 자체가 퍼져나가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일정한 수에 도달하자, 윈도우즈는 자동적으로 자연 장벽이 되었다. 즉, 경쟁이 태어나기도 전에 싹부터 잘라버리는 형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미 DOS로 부분 성취를 이룬 바 있다. 이제는 DOS 사용자들을 DOS 경쟁사들이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위협하는 대안을 내놓기 전에 윈도우즈로 이주시켜야 했다.

DOS에게 있어 주요 경쟁자는 Digital Research의 DR-DOS와 IBM의 OS/2였다. PC가 유닉스를 돌릴 정도로 강력해지자, 새로운 대안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1990년, BSD가 나왔고, 리눅스개발도 시작되었다.

PC 운영체제 시장이 자유로이 성장하게 되자 여러가지 DOS 대안이 출몰하였다. 여러가지 IBM 호환기종이 서로 경쟁을 하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오늘날의 여러가지 리눅스 배포본이 나온 것과도 매한가지이다.

DOS 시장만으로 힘에 겨워지자, 마이크로소프트는 맥 플랫폼도 일부 원하였다. 사실 마이크로소프트는 맥 소프트웨어 선도 업체였기 때문에, 맥 사용자들이 프리미엄 시장을 대표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즉, 맥 사용자들이 소프트웨어도 더 많이 구입하고, 고급사양의 제품에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런 사용자들을 PC로 이끌어오고 싶었다. 그러면 운영체제와 함께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도 더 잘 팔 수 있기 때문이다.

An Ecosystem of Integrated Software
향후 10년이 넘도록 마이크로소프트는 서로가 서로를 일으켜주는 제품 시리즈를 확장시키게 된다. 윈도우즈이다.

윈도우즈는 개발 플랫폼과 운영체제 양자로 모두 나왔다. 따라서 마이크로소프트는 DOS 표준형 워드퍼펙트와 로터스 1-2-3에 대해서, 윈도우즈용 워드와 엑셀 오피스 애플리케이션을 선보일 수 있었다.

소프트웨어 측면으로만 살피면, 마이크로소프트 제품군이 최고의 애플리케이션은 아니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 프리미엄 버전일 수록 그러하다. 하지만 통합된 애플리케이션 셋트와 서버, 개발툴에 있어서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은 친숙한 기능과 함께 보완적인 네트워크의 형성으로 가치를 서로 서로 창출하였다.

다음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즈 NT에 메세지 서버를 구축시키기 위해, Exchange Server를 포함시켜서, 기업영역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 제공을 확대시켰다. 이로써 마이크로소프트는 일반 사용자는 물론 서버용 프로그램 업체로도 지위를 다지게 된다.

새로운 PC 구매자들은 자연스럽게 윈도우즈 파일 서버를 하나 갖게 되며, 역시 자연스럽게 Exchange로 이메일을 쓰게 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하나의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도 자연스럽게 개선을 거듭하는 소프트웨어 셋트를 작업하였다.

가령 서버 영역에서, NT와 Exchange는 마이크로소프트 SQL 서버 데이터베이스 제품과 보완적이었다. SQL은 마이크로소프트가 Sybase로부터 라이센스 받은 것이었고, 인터넷 ftp와 웹, 뉴스 서비스 모음인 마이크로소프트 IIS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워드, 엑셀, 그리고 Access 또한 비슷하게 상호 보완적이었다. 여기에 원래 맥용으로 먼저 만들어졌던 프리젠테이션 프로그램인 파워포인트가 가세하여 오피스가 만들어졌고, 프로젝트 관리 소프트웨어인 Project는 후에 표 작성 애플리케이션인 Visio가 되었다.

원래의 Exchange 클라이언트나 나중에 나온 아웃룩, 앙투라쥬 이메일 프로그램과 같은 다른 제품들도 Exchange Server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와 통합되었다.

이러한 통합 사례 덕택에 마이크로소프트는 거의 무적이 되었다. 이메일 서버나 워드프로세서를 더 좋게 만들 수 있을지 모르는 경쟁사가 있었을 테지만, 오피스와 서버 제품을 한 번에 통합시켜버리니 경쟁이 어려워질 수 밖에 없었다.

현재의 애플은 분명 당시의 마이크로소프트와 동일한 전략을 취하고 있다. 소비자를 위한 iWorkiLife, 전문용으로서 FinalCutStudio, Aperture, Logic, Shake가 그러하다. 다음에 묘사할 새로운 서버 웍그룹용 툴도 마찬가지다.

애플은 또한 하드웨어 제품과 소프트웨어 제품을 통합시키는 독특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기도 하다. 엑스서브와 엑스서브 RAID, Xsan에 온갖 전문가용 미디어 제작 애플리케이션, 그리고 당연히 맥도 같이 판다.

플랫폼 교훈이다. 통합 제품군은 경쟁으로부터의 공격을 막고, 사용자에게 더 많은 가치를 안겨다준다.

Apple and NeXT in the Enterprise
넥스트를 포함하여, 애플 등은 분명 당시 막 피어나고 있던 사무용 시장에 참여하고 싶어 하였지만, 윈도우즈 플랫폼 장벽때문에 상황은 복잡했다. PC의 정의 자체가 윈도우즈와 동의어가 되어갔으며, 대안형 플랫폼에 호의적인 시각을 갖는 전산 관리자도 거의 사라져버렸다.


PC로는 선택할 회사도 많고, 점차 커져가는 윈도우즈용 소프트웨어와 호환성도 갖출 수 있는데(게다가 다수는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바로 구할 수 있다), 어째서 소수의 비호환 시스템을 돌릴 수 밖에 없는 괴상한 하드웨어를 구입해야 한단 말인가?

수입에 대한 하드웨어 의존이 큰 애플로서는 맥을 PC 하드웨어로 이주시켜 보려는 노력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넥스트의 상황은 또 달랐다. 애플이 여전히 고마진의 맥을 충성스러운 소비자들, 특히 교육과 예술, 출판 영역에 상당수 판매하고 있던 반면, 넥스트의 새 하드웨어 판매량의 잠재성은 제한적이었다. 따라서 넥스트 하드웨어를 애플과 똑같은 목적으로 만들어 파는 전략은 손실이었다.

넥스트에게는 또한 애플에게 없던 또다른 뭔가가 있었다. 바로 넥스트 자체가 가진 쉬운 포팅성이었다. 애플은 시스템 7을 유닉스의 한 프로세스로서 호스팅할 방법을 찾는다거나, 모노리딕 맥 시스템 7로 신기술을 주입시킬 방법을 찾느라 고생중이었다. 하지만 넥스트의 소프트웨어 아키텍쳐는 어디에서나 돌아가는 디자인이었다.

넥스트의 포팅 모험담은 다음에 다룰 예정이지만,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이 되어 마이크로소프트의 동일한 사업 모델을 세우려 했던 넥스트의 노력은 성공하지 못하였다. 부분적으로는 윈도우즈의 가격 패러독스 때문이었다.

The "Apple Could Have Been Microsoft" Myth
애플 자신이 맥 하드웨어를 라이센스내리는 등, 동일한 단계를 거쳤더라면 또다른 "마이크로소프트"가 되었으리라는 일반적인 뒷북이 있곤 하다. 하지만 그런 억측은 너무나 과대한 단순화일 뿐이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는 대단히 다른 시장에 대단히 다른 목표를 갖고, 대단히 다른 전략을 사용하였다. 애플이 마이크로소프트 식의 전략을 갖고 마이크로소프트를 물리쳤더라면,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닌, 매우 다른 제품을 제공하는 매우 다른 회사가 되었을 것이다.

애플은 직원들이 만들던 그대로 제품을 제공했기에, 애플 제품은 아키텍쳐가 과다하지만 우아하고, 창조성이 들어갔으면서도 고전적이었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의 아키텍쳐는 과소하되, 우아하지 않고, 별 영감도 없으면서 여러가지 범용 하드웨어에서 잘 돌아갔다. 기술 면으로 보나, 시장 면으로 보나, 각기 장단점이 있다.

1995년에 접어들어, 애플은 그나마 남아 있던 의지마저 잃어가고 있었으며,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제국은 매년 무섭게 자라났다. 하지만 양 플랫폼 모두 새로운 문제가 닥치고 있었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는 공히 계획 실행에 있어서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1990-1995: Platform Crisis Meltd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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