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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5, 03:40 PM   #16
casau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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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플랫폼의 위기

Apple and Microsoft: Platform Crisis Meltdown

Friday, November 24, 2006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현대적인 운영체제 개발 노력에 과거의 유령이 출몰하게 된다. 10년 전, 손발을 묶고 문제를 일으켰던 행동의 패턴에는 네 가지가 있었는데, 두 회사는 그 패턴에 모두 휩싸여왔다. 본 글에서는 그 교훈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플랫폼의 역사, 그리고 그 대결"은 플랫폼을 새로 발족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플랫폼을 유지하는 일은 또 얼마나 고된지를 알려주었다. 본 글에서는 컴퓨팅 플랫폼의 역사적인 궤적(軌跡)과 함께, 누가 왜 이겼는지, 누가 왜 졌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컴퓨팅 환경이 언제나 변하기는 하지만, 기본 원칙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으며, 애플의 레퍼드나 마이크로소프트의비스타와 같은 미래 개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전 기사:

1990-1995: Platform Crisis Meltdown
90년대 초,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가 늙어가자 애플의 맥 플랫폼은 누수현상을 겪었다. 깔끔한 재디자인,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제작이 필요해졌다.

마이크로소프트 또한 DOS PC에서 맥과 같은 환경을 구축하는 데에 있어서 문제점을 발견했다. 완전히 새로운 운영체제인 윈도우즈 NT의 개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오늘날도 최신 운영체제 업데이트를 하기 위해 작업중이다. 애플은 맥오에스텐 레퍼드이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즈 비스타이다.

그런데 이 양사가 빠져들게 만드는 요인이 네 가지 있다. 특히 레퍼드 대 비스타를 보면 정말 흥미롭다.

Four Factors of Platform Crisis
"개발에 있어서의 장애"에서 밝혔던 바와 같이,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플랫폼은 벽에 부딪혀 있다. 이는 1990년대 초반, 애플 매킨토시가 겪었던 개발위기와 놀라울정도로 비슷하다. 단순한 사건의 양상이 비슷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과 정확히 동일한 이유에서 위기를 겪고 있다.

  1. 폐쇄적인 기술의 사용에 따른 독자개발의 의존
  2. 예전 기술의 장기적인 지원에 따르는 문제의 심화
  3. 신기술 제공의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평범한 것만 채택하는 게으른 공룡
  4. 돈벌려고 노력하기보다는, 통행세를 받는 악당과 같은 지위를 구축

간단한 판결이 아니다. 간단한 답변을 내기 힘든 복잡한 문제들이기도 하다. 우선은 과거에 결정을 내린 방식이 현재에 어떤 문제를 일으켰고, 앞으로는 무슨 해결책을 내릴 수 있을지를 알아보는 편이 제일 쉽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공히 이 네 가지 요인에 따라 움직였고, 또 실패하였다. 이들은 단순히 덫에 걸린 것이 아니다. 시장에서는 효율적인 전략으로 채택한 것이었다. 문제는 대부분의 엔지니어링 문제가 그러하듯, 각 요인이 일으킬 수 있는 효용성과 비효용성 간의 균형잡기이다. 우선 첫 번째 요인을 알아보도록 하자.

Isolationist, Proprietary Development
오랜동안 애플은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 스스로의 해결책을 개발해왔다. 도트매트릭스 프린터가 9핀에서 24핀으로 업그레이드를 벌일 때, 애플은 27핀 프린터를 선보였었다. 당연히 이상한 해결책이었지만, 애플로서는 합리적이었다. 그래야 9핀 프린터 에뮬레이팅이 더 간단하기 때문이었다.

업계에서 여러가지 해킹을 통해 PC를 로컬네트워크에 연결시킬 때, 애플은 AppleTalk이라는 세련된 프로토콜을 디자인하였다. 맥과 프린터를 쉽게 연결해서, 서로간에 자동적으로 발견해내는 프로토콜이 애플토크이다.

또한 애플은 될 수 있는 한 제일 우아한 해결책을 마련시킬 시장력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폐쇄적이고 독자적인 개발은 초창기 맥을 차별화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며, 최종사용자에게도 좋은 해결책이었다 할 수 있었다.

Proprietary Balance
Proprietary라는 단어를 오인할 때가 종종 있다. 이 단어의 의미는 덜 유명하다거나, 비-주류의 의미가 아니다. 그런데 CNET 분석가들은 잘못된 의미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폐쇄적인 기술은 애플토크처럼 단일 회사나 개인이 완전히 소유하고, 또 통제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폐쇄적인 기술의 반대 의미는 공개 표준으로서, 누구나 구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공유가 이뤄지는 기술이다. 애플은 공개표준을 널리 사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발명도 공개로 풀기도 하였다.

가령, 애플토크의 기반이 되는 소프트웨어기술은 Bonjour라는 표준 인터넷 프로토콜로 공개되었다. 봉주르는 이전에 Rendezvous였으며, ZeroConfig으로도 알려져 있다. 하드웨어 사례로서는 Firewire를 들 수 있겠다.

Using Open Standards
애플이 언제나 자기 기술을 개발만 하지는 않았다. 사실 애플은 쓸만 할 때 기존의 해결책을 사용하는 회사다. 공개표준의 사용이 불필요한 개발작업을 줄여줄 수 있기 때문에서다.

애플이 기존의 표준을 채택할 때에는 보통 다른 PC에서 쓰이는 싸구려 표준이 아닌, 최고의 기술 표준을 고른다. 이 때문에 품질이나 퍼포먼스가 아닌, 가격만을 고려하는 사용자들이 애플을 비난하곤 한다.

PC가 IRQ이나 ISA 슬롯이나, 괴상한 x86 메모리어드레싱, ST-506 하드드라이브와 씨름할 때, 애플은 텍사스 인스트루먼트가 개발한 자동설정의 NuBus 확장슬롯에서부터, 모토로라 68k, 후의 PowerPC 프로세서, 그리고 똑똑한 컨트롤러와 확장버스를 지닌 SCSI 하드드라이브 등의 훨씬 진보적인 기술을 사용하였다.

위 어느 것도 폐쇄적인 개발을 대표하지 않는다. 모두가 공개표준을 따랐다.

Making a Mess of Things
그러한 기능덕택에 맥은 더 멋진 하드웨어가 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대다수 PC에서 돌릴 수 있는 유사한 그래픽 데스크톱 환경을 개발하려 할 때, 하드웨어가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로서는 협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PC의 픽셀은 사각형이 된다는 보장이 없었으며, 소프트웨어마다 제각기의 표준을 따랐기 때문이다. 또한 비표준에 괴상한 하드웨어도 넘쳐났다.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가 깔끔함과 우아함을 개념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을 때, 윈도우즈는 그러한 괴상함 상황을 모두 받쳐주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애플 시스템소프트웨어도 점차 엉망진창이 되어갔다. 맥을 독특하고 유용하게 만들어준 써드파티 소프트웨어가 오히려 발전을 막고 맥 운영체제를 복잡하게 만든 것이다.

맥이 컬러와 32-비트 클린 하드웨어를 채택하자, 오래된 아키텍쳐에 의존적인 기존 소프트웨어 라이브러리에 대한 지원도 확대됐다. 이때문에, 사용자들이 기대하는 "just works"를 위해서 온갖 인위적인 해킹이 시스템에 가해졌다. 그 결과 시스템은 대단히 복잡해졌다.

애플은 새로운 방식을 추진할 수도 있었지만, 개발자들은 기존의 코드기반을 버리려하지 않았고, 이 과정은 수 년마다 되풀이되었다. 새로운 변화나 그에 대한 제안은 계속 묵살됐다. 위원회 스타일의 개발노력은 거의 진전을 보이지 못하였다.

State of the Falling Apart
훨씬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일이 또 있었다. 애플이 선보이는 모든 새 매킨토시 모델이 저마다 독특한 아키텍쳐를 지닌 것이다.

세련된 하드웨어와, 새롭고 현대적이면서 깔끔한 PowerPC로의 이주까지 단행했건만, 1995년 당시 애플은 저마다의 구조를 지녔던 여러가지 맥 모델을 지원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애플은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하였다.

  • 운영체제를 처음부터 새로이 작성하여,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의 위험을 감수한다. 코드네임은 Jaguar
  • 기존의 맥 플랫폼에 대규모의 업데이트를 단행한다. 코드네임은 Copland와 Gershwin.
  • 기존의 맥 환경을 유닉스로 이주시킨다. 실제로 나온 A/UX와 MAE
  • 맥과 IBM용으로 완전히 새로운 개발시스템을 만들어낸다. 코드네임은 Pink와 Taligent

위 해결책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문제점은, 협상 없이는 기존의 소프트웨어를 누구도 돌릴 수 없었다는 데에 있었다.

만약 애플이 너무나 새로운 기술을 제공한다면, 기존의 소프트웨어는 완전히 뒤쳐지게 된다. 그렇다고 하여 기존의 소프트웨어를 완벽히 지원하게 된다면, 여전히 예전 기술에 묶이게 되어, 문제를 근본적으로 수정하지 못한 채, 발전을 못하게 된다.

Paradise Lost
애플의 맥은 단순한 기기였지만, 그 저변에는 일을 간단하고 직관적으로 이루기 위해 엄청난 엔지니어링이 가해진 컴퓨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계속 시스템이 복잡해져만가자, 커튼 뒤에 있던 다른 주인공이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네트워킹과 파일 교환이 복잡했던 DOS와 유닉스 사용자들은 맥의 깔끔한 데스크톱,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한 엔지니어링에에 노출되어 있었다. 맥은 점차 PC처럼 되어갔다.

The Sincerest Form of Flattery
그동안 마이크로소프트는 PC를 맥처럼 만들기 위해 분주했었다. 1990년, 마이크로소프트는 Multimedia PC 사양으로 일단 시작하였다. 멀티미디어 PC는 PC 제조업체들이 판매하고 있던 여러가지 하드웨어를 한 데 묶어서 지원하기 편하도록 표준화시키려는 작업이었다.

윈도우즈는 사용자 인터페이스 컨트롤의 표준화나 키보드 단축키 등, 맥의 기능을 여러가지 도입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의 휴먼인터페이스 가이드라인을 복제하였고, 여기에 이따금씩 자기식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끼워 넣는 바람에 윈도우즈는 매우 비일관성과 비-직관적인 점도 많아졌다.

일단 마이크로소프트는 DOS의 복잡성을 그래픽 셸 안에 숨겼고, 네트워킹과 프린터, 그래픽을 표준화시켰으며, 소프트웨어 인터페이스 정상화 안에 이상한 하드웨어 지원을 숨겼다. 1995년까지 윈도우즈는 PC를 거의 비슷한 맥 정도로 탈바꿈시켰다.

Windows CaN'T
하지만 모든 일이 계획대로 풀리지는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DOS를 새로운 윈도우즈 NT 3.1 운영체제로 재빨리 이주시키려 했었지만, NT 디자인이 당시 PC로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디자인이었다.

즉 NT를 돌릴 만한 컴퓨터는 최신형에 최고사양의 PC 밖에 없었다. NT를 돌릴 수 있는 PC는 애플의 하이엔드 맥만큼이나 가격이 비슷하거나, 아니면 오히려 더 들어갔다.

따라서 NT로 이주를 단행하려던 마이크로소프트의 계획은 현실때문에 틀어지고 만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즈 3.0처럼 DOS-기반의 아키텍쳐를 지닌 윈도우즈 95를 선보일 수 밖에 없었다.

윈도우즈 95는 NT로 향하는 중간 단계 역할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즈 NT API의 최상위 레벨을 윈도우즈 95에서도 돌아가도록 작업했기 때문에, Win32용으로 작성된 대부분의 애플리케이션을 95와 NT 양쪽에서 모두 돌릴 수 있었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는 범용 드라이버 아키텍쳐를 구축하여, 개발자들이 두 운영체제에서 유사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폐쇄적인 Win32 소프트웨어 플랫폼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즈 95를 계속 대중 시장에 판매하면서도 NT 작업을 지속시킬 수 있었다.

사실 이런 방식은 당시 애플에게 절실한 해결책이었지만, 1990년~1995년 당시 애플이 추진한 Pink, Taligent, Copland로는 이렇게 할 수가 없었다. 애플 제품을 차별화시켰던 독자적이고 폐쇄적인 요인은 오히려 애플의 생존을 옮아매었다.

Next: Platform Crisis: Pink, Taligent, and Copland

Tech: The Rise and Fall of Platforms 플랫폼의 역사, 그리고 그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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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and Microsoft: Platform Crisis Meltd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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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7, 06:56 AM   #17
casau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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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5, 핑크와 탈리전트, 코플랜드의 비밀

The Secrets of Pink, Taligent and Copland

Saturday, November 25, 2006

맥 시스템 7 개발이 벽에 부딪히자, 애플에게는 미래 계획이 절실해졌다. 독자적인 폐쇄형 개발 스타일은 한 때 애플 제품을 차별화시켜주었으나, 이제는 애플의 생존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이같은 상황은 오늘날의 마이크로소프트와 동일하다.


"플랫폼의 역사, 그리고 그 대결"은 플랫폼을 새로 발족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플랫폼을 유지하는 일은 또 얼마나 고된지를 알려주었다. 본 글에서는 컴퓨팅 플랫폼의 역사적인 궤적(軌跡)과 함께, 누가 왜 이겼는지, 누가 왜 졌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컴퓨팅 환경이 언제나 변하기는 하지만, 기본 원칙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으며, 애플의 레퍼드나 마이크로소프트의비스타와 같은 미래 개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전 기사:

1990-1995: Secrets of Pink, Taligent, and Copland
애플은 핑크와 탈리전트, 코플랜드라는 세 가지 방식으로 상황을 바꿔보려 하였다. 미래에 대한 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떠들썩한 유닉스 전쟁에서 상처를 입은 다른 업계에서는 무료이고 개방된 기술로부터 수 백만 달러 어치의 가치를 맛볼 기회를 놓쳐버렸다. 그 대신 독자 개발의 사슬에 얽매인 폐쇄형 개발로 10년을 낭비하였다.

일이 어떻게 되어갔는지를 알아보자.

NeXT, Apple, and Pink
애플이 시스템 7을 선보였던 1991년 당시, 애플로서는 그래픽 데스크톱 컴퓨터에서 더 이상 최신형 컴퓨터를 대표하지 못하였다. 차세대 기술에 관심있는 직원들은 죄다 수 년 전에 스티브 잡스의 넥스트 컴퓨터사로 옮겨간 판이었다.

넥스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조합은 애플이 시스템 7 때 제공하기로 연기시킨 아이디어를 대표하였다. 이 시기 애플에서 미래는 곧, 코드네임 핑크였다.

넥스트는 미래를 향한 애플의 아이디어를 제공하였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의 과거를 제공하였다. DOS를 기본적인 데스크톱으로 숨긴 윈도우즈 3.0은 시스템 7에 비해 뒤쳐졌었다. 여기 1989년 당시 넥스트스텝과 애플의 맥 시스템 7, 그리고 90년대 초반에 나온 윈도우즈 3.0을 비교해 보자.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를 초월하여 넥스트를 따라잡으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마이크로소프트야말로 실질적인 경쟁상대인데 말이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실질적인 제품을 들고 나와 애플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기까지는 5년이 더 필요했다. (컴퓨터 업계에서 5년이면 영원한 세월이다.)

Apple Thinks Pink
넥스트의 Mach/BSD 커널 조합에 감명받은 애플은 우선 내부적으로 핑크를 애플 자신의 차세대 운영체제로 작업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우선은 실질적으로 애플에게 돈을 안겨다 주는 시스템 7의 유지와 업데이트가 즉각적으로 더 필요했으며, 그 자체로서도 이미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애플의 독자적인 개발 스타일은 시스템 7의 개발을 방해하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애플이 죄다 디자인하고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애플이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공개표준을 선택하였지만,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독특하고 폐쇄적이었다. PowerTalk을 보면 이러한 요소가 애플을 어떻게 해쳤는지를 알 수 있다.

넥스트는 훨씬 작은 회사였지만, 외부적으로 공개 소프트웨어 개발을 갖고 애플에게 도전하였다. 주된 사례가 바로 코어 OS에 대한 BSD 유닉스의 사용이었다. BSD의 사용은 애플이 맥에게 절실하게 필요로 하였던, 현대적인 네트워킹과 메모리관리, 선점형, 그리고 호환성을 제공하였다.

Pink + Big Blue = Taligent
윈도우즈 3.0이 한 번 뜨기 시작하자, 마이크로소프트는 IBM과의 OS/2 파트너쉽을 청산하였다. 그러자 IBM은 애플과 팀을 맺어서 차세대 프로젝트 세 가지를 시작하였다.

  • PowerPC 마이크로프로세서
  • 멀티미디어 개발의 코드네임, Kaleida
  • 코드네임, Taligent, 새 운영체제

탈리전트는 원래 애플의 핑크를 제공하는 데에 초점이 매겨져 있었다. 여기에 IBM은 새로운 마흐 3.0 마이크로커널(결국은 OS/2로부터 AIX, 윈도우즈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운영체제를 호스팅하였다)인 Workplace OS를 기여한다.

마이크로커널 개발은 90년대 초반, 거부할 수 없는 미래라는 풍조가 있었다. IBM에서부터 GNU, OSF, 애플 등 모두가 넥스트의 마흐/BSD 커널조합을 앞지르고, 만병통치약 운영체제를 만들기 위해 마이크로커널 계획을 세우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핑크의 막연한 아이디어는 TalOS를 점차 불확실하게 만들었다. 과연 누가 실제로 이 운영체제를 사고 싶어 할까?

IBM 고객들은 계속 윈도우즈로 이주중이었고, 애플 고객들은 이미 기존의 맥 시스템 7에 투자한 상황이었다.

탈리전트는 검증받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으로의 이주였다. 이러한 이주는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에서 이미 어렵기로 증명이 났다. PC 데스크톱을 평정한 마이크로소프트로서도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가 이미 애플의 맥과 IBM OS/2를 위협하고 있었다. 따라서 완전히 새로운 TalOS는 실제로 나오기가 더 어려웠다.

NeXT Goes Open
넥스트 또한 급속도로 윈도우즈로 쏠리고 있는 시장에서 자리를 잡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1993년, 넥스트는 Sun과 협력하여, 넥스트의 객체지향 프레임웍과 사용자환경을 썬 솔라리스 운영체제 상에서 돌리도록 넥스트스텝을 이주시킨다. 후의 OpenStep이다.

오픈스텝 애플리케이션은 넥스트 자신의 넥스트스텝 운영체제(PC상의 넥스트스텝도 포함한다)와 HP의 PA-RISC, 썬의 SPARC 웍스테이션, 오픈스텝 프레임웍을 돌리는 솔라리스, 그리고 OPENSTEP Enterprise를 사용하는 윈도우즈 NT상에서도 돌아갈 예정이었다.

다음 해에 넥스트는 오픈스텝을 하나의 공개스펙으로 하여 누구나 오픈스텝을 구현시키도록 허용한다. 이에 따라 GNU가 나서서 GNUStep이라는 오픈소스 오픈스텝 구현을 하였고, HP는 넥스트와 협력하여 HP-UX용 오픈스텝을 제공하였다.

스티브 잡스와 로스 페로(Ross Perot)가 투자한 수 백만 달러로 개발된 넥스트의 미래지향적인 기술은 이제 무료가 되었다. 폐쇄된 개발에 맞서서 누구나 이 기술을 대안으로 삼을 수 있었다.

Battle of the APIs
넥스트는 역사상 처음으로, 상호 독자적이고 폐쇄적인 개발을 하기보다, 공개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전 업계가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었다.

타이밍도 완벽했다. 애플 매킨토시는 쇠퇴일로에 있었고,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NT는 아직 준비가 안되었으며, IBM OS/2는 방향을 잃어버렸고, 탈리전트는 새로운 운영체제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포기했던 때였다. 썬과 HP는 이미 넥스트를 이용하여 오픈스텝 개발에 올라탔다.

1993년, 마이크로소프트는 드디어 윈도우즈 3.1 NT와 Win32를 선보였다. NT가 아직 주류용으로는 준비가 안 되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Win32를 오픈스텝에 대한 개발자들의 관심을 되돌리기 위해 나오게 되었다.

안정성과 보안, 빠른 개발이 중요한 시장에서, 넥스트는 이미 훨씬 앞서 있었다. CIA(중앙정보기구)와 NRO(국가정찰국), NSA(국가안보국), 그 외에 주요 은행과 투자기관이 이미 넥스트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었다.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는 넥스트를 사용하여 웹을 만들어냈고, 델 역시 넥스트를 사용하여, 델 웹스토어를 만들었으며, Quake와 Doom을 만든 id 소프트웨어사의 존 카맥(John Carmack)은 넥스트 개발툴이야말로 최고의 게이밍용 개발툴이라 말하였다.

"우리는 원래 Borland C++을 사용하여 DOS로 제품을 많이 개발하였지만, 다시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DOS상에서 우리 툴을 갖고 반복 컴파일을 다섯 회 하였는데, 넥스트스텝 툴로 한 번 한 것에 비하면 쓰레기였다. 특정한 뭔가를 지정해서 우월하다 할 수는 없겠으나, 정말 매력 있는 완전한 패키지가 넥스트스텝이다. 넥스트스텝은 내가 개발 일에 있어서 발견한 최고의 툴이다."

The Industry Scatters
썬은 넥스트에 1100만 달러를 투자하고, 솔라리스의 미래로 오픈스텝을 삼았으며, 넥스트스텝 개발사인 Lighthouse Design200만 달러에 매입하였다. 그 이후 썬은 자사의 자바 소프트웨어 플랫폼으로 진로를 바꾸었으며, 넥스트를 일단 보류시켜 놓았다. 넥스트 소프트웨어 최대의 라이브러리를 잠궈버리고 열쇠를 내던진 행위였다.

HP 또한 넥스트의 라이벌 격인 탈리전트에 합류하면서 넥스트를 저버리게 된다. IBM과 애플에 이어 탈리전트에 합류한 HP는 넥스트의 오픈스텝 전략을 따라하기로 결정내리고, 탈리전트 OS를 새로이 내놓는 대신, 기존의 여러가지 운영체제상에서 돌아갈 탈리전트의 객제지향 프로그래밍 환경을 내놓기로 한다.

탈리전트의 CommonPoint는 오픈스텝처럼 소프트웨어 플랫폼이었다. 주된 차이가 있다면, 커먼포인트가 아무도 쓰지 않을 엄청난 낭비에 불과했다는 데에 있겠다. 원래는 IBM의 AIX와 OS/2, HP의 HP-UX, 윈도우즈 NT, 그리고 당연히 애플이 갖고 있지 못하던 새 운영체제에서 돌아갈 예정이었다.

탈리전트는 애플용으로 핑크를 제공하는 대신, 넥스트가 5년 전에 이미 개발한 것을 재발명하려고만 하였다. 애플로서는 다시 시작해야 될 상황이었다.

A Grotesque Waste
더 심각한 일도 있었다. 넥스트는 검증이 된, 진보적 프레임웍 기술을 공개 사양으로 내놓았지만, 업계는 이 공개 사양도 사용하는 데에 실패하였다. 그 대신 애플과 IBM, 썬, HP는 모두 공유된 개발 노력의 혜택을 받을 기회를 차버렸다. 그 대신 각자가 독자적이고 폐쇄적인 개발에 일제히 나서게 된다.

커먼포인트는 마치 로스페로나 랄프 네이더인양 제3의 후보 역할을 하였다. 즉, 훨씬 기술적으로 열등한 마이크로소프트의 Win32 환경을 오픈스텝이 침공할 잠재성마저 커먼포인트가 집어먹어 버렸다.

커먼포인트의 구현이 오픈스텝보다 더 나으리라는 말이 나올 무렵, 커먼포인트는 여러 다른 회사들 간에 필요로 했던 이상주의적인 목표를 좀 모아놓은 것에 불과했다. 오픈스텝은 이미 검증이 되어 있었고, 5년 동안 넥스트에서 오픈스텝 기술은 잘 작동하고 있었다.

커먼포인트가 주목을 받는 데에 실패하자, 커먼포인트의 특허들은 썬의 자바로 흡수된다. 자바 역시 마이크로소프트 Win32의 강력한 라이벌이 되리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당시 썬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자바에 있어서 협력 관계를 맺었지만, 자바 역시 IBM OS/2의 경험과 동일해지고 말았다.

Apple’s Strike Three: Copland
그동안 애플의 시스템 7은 이제 5 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고, 그와 함께 위기도 심화되고 있었다. 탈리전트마저 실패하리라는 예상이 나오자, 애플은 코플랜드 개발에 다시 초점을 맞춘다.

코플랜드는 현대적인 운영체제 기능의 장점을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이 활용하는 디자인이었다. 다만 기존의 맥용 애플리케이션도 돌리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마이너 업데이트조차 할 수 없었던 회사로서는 대단히 버거운 일이었다.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당시 애플은 무엇이든 제공하려 하면, 누구도 거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Win32가 전 PC 세계에서 표준화되어가고 있을 무렵, 애플 고객들마저 맥을 살 이유를 못찾고 있었다. 미래의 고객이 사라진다면, 새로운 운영체제 역시 불필요했다.

Standardizing on Proprietary
오픈스텝을 무시하고, 커먼포인트마저 실패하면서, 컴퓨터 업계는 이제 모두가 다 Win32 뒤로 줄을 선다. 데스크톱은 역시 윈도우즈 95였고, 서버는 NT로 이동하였다.

개발자들은 애플처럼 전-그래픽 데스크톱의 제왕으로서 부를 창출한다거나, 추방당하고 만 넥스트의 오픈스텝 기술처럼 이상주의적인 접근을 하기보다, 그저 자기 애플리케이션 판매에만 흥미가 있었다. 그런 개발자들에게 있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대단히 매력적인 이점을 제공하는 시장을 조성하였다.

과거 맥의 영광은 이제 마이크로소프트의 전진을 못막은 애플의 무능력때문에 사라져갔으며, 이제는 애플이 뭘 내놓아도 그다지 관심 거리도 못 될 지경에 이르렀다.

1996년 8월, 애플은 코플랜드를 취소시키고, Be 운영체제 매입 협상을 시작하였다. 썬과의 합병 루머도 돌았다. 그로부터 석 달 후, 애플은 넥스트를 인수하였고, 넥스트스텝 프레임웍과 코어 OS를 오에스텐의 기반으로 삼았다.

썬에게 있어서 애플의 이런 움직임은 충격이었다. 썬은 넥스트가 결국 사라지리라 기대했었다. 델에게도 충격이었다. 델은 마침 웹스토어를 막 교체했었다.

We’ll Meet Again
애플이 넥스트의 미래지향적인 기술을 인수한 뒤로, 다시 회복할 수 있을지 마이크로소프트의 누군가가 알아보았을지는 불분명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을 거의 정복한 영토로 여겼다. 애플은 그 기회를 살려, 마이크로소프트와의 다가올 싸움에 대비할 무기를 개발할 기회를 갖게 된다. 다름 아닌, 퀵타임과 넥스트로부터 인수받은 오픈스텝 기술이었다.

윈도우즈 95 시장을 조성하고, DOS상에서 Win32 버전도 돌리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이제 다음 5년 동안을 넷스케이프 웹브라우저와 썬 자바로부터 야기된 위협을 물리치는 데에 낭비하게 된다. 실질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는 2001년 윈도우즈 XP가 나올 때까지 일반 시장에 "새로운" NT 기술을 선보이지 못했었다.

The Two Edged Sword of Isolationist, Proprietary Development
마이크로소프트는 Win32의 독자적이고 폐쇄적인 개발로 자사의 폐쇄형 플랫폼을 효과적으로 구축하였으며, 애플의 전략을 훔친 다음, 그것을 더 낫게 구현시켰다. 하지만 Win32는 결국 그 성공의 비밀때문에 오히려 어려움에 닥칠 운명이었다.

개방형 PC 하드웨어에서 돌아가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폐쇄형 윈도우즈 플랫폼이 맥의 폐쇄형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도전했던 것처럼,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의 PC 통제력은 오늘날 리눅스나 다른 오픈소스 대안들로부터 도전받고 있는 실정이다.

오늘날 오픈소스 프로젝트는 플랫폼과 함께, Win32에 대한 매력적인 대안 기술을 제공한다. 주로 서버 분야이기는 하지만, 데스크톱에서도 성장세에 있음은 물론이다.

2000년 이후로, 애플은 오픈소스 개발력을 통해, 데스크톱 상에서 Win32에 대하여 직접 전투를 벌여왔다. 맥오에스텐의 사용자 환경은 넥스트 기술에 기반을 갖지만, 그 핵심은 원래부터 Win32의 라이벌이었던 POSIX 상에서 구축된 것이다.

Win32가 폐쇄형인 반면, POSIX는 시스템이나 리눅스, BSD, 상용 유닉스 운영체제, 그리고 맥오에스텐이 공유하는 코드를 허용하는 모든 유닉스용 공개 표준이다.

과거, 불필요하게 마이크로소프트 Win32 뒤에 줄을 선 IBM과 노벨, 썬, HP 외 다른 대기업들도 이제는 리눅스와 오픈소스로 줄을 바꾸고 있다. 비스타로의 이주도 여의찮고, 64-비트 개발로의 이주도 여의찮은 채, 윈도우즈라는 폐쇄적인 개발 환경을 지속시키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에게는 불확실한 미래가 놓였을 뿐이다.

폐쇄적인 독자 개발은 이제 마이크로소프트에 역류하고 있다. 오픈소스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으며, 이제 세상은 공유되는 개방형 기술의 단맛을 알기 시작하였다.

게임 오버.

지난 날의, 그리고 오늘날의 플랫폼 위기를 초래한 두 번째 요인은 다름 아닌, 옛 기술에 대한 지원이다.

Next: Platform Crisis: The Tentacles of Legacy

Tech: The Rise and Fall of Platforms 플랫폼의 역사, 그리고 그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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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au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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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5, 옛 기술 지원의 함정

Platform Crisis: The Tentacles of Legacy

Monday, November 27, 2006

폐쇄적인 기술을 사용한 독자 개발에 의존한 이후로, 플랫폼 위기의 두 번째 요소는 장기적인 옛날 기술의 지원에 따른 지지부진함이었다. 옛 기술이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지,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제품 사용자들에게는 어떠한 의미일지를 알아보도록 한다.


"플랫폼의 역사, 그리고 그 대결"은 플랫폼을 새로 발족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플랫폼을 유지하는 일은 또 얼마나 고된지를 알려주었다. 본 글에서는 컴퓨팅 플랫폼의 역사적인 궤적(軌跡)과 함께, 누가 왜 이겼는지, 누가 왜 졌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컴퓨팅 환경이 언제나 변하기는 하지만, 기본 원칙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으며, 애플의 레퍼드나 마이크로소프트의비스타와 같은 미래 개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전 기사:

1990-1995: Platform Crisis: The Tentacles of Legacy
90년대 초반 내내 애플은 모든 일을 잘 못하는 것으로 비쳐진 반면, 마이크로소프트는 모든 일이 다 올바르다는 인상을 주었다. 표면상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이 메모리보호나 선점형 멀티태스킹 등, 애플이 그때까지도 제공하려 했던 기능을 벌써 제공하는 디자인으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당시 애플에게는 옛날 기술 지원의 문제에 봉착해 있었다. 맥에 대한 모든 것은 8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오리지날 디자인의 수렁에 빠져 있었다. 당시 시스템 리소스와 프로세서 파워는 훨씬 더 제한적이었다.

맥의 공유형 그래픽 모델은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메모리 보호를 푸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덕택에 써드파티 애플리케이션과 익스텐션이 우연히라도 시스템이 사용하는 메모리를 넘어서게 되면, 치명적인 시스템 오류가 나타나고, 일반적으로 불안정해졌다.

마찬가지로, 선점형 멀티태스킹을 이룰 간단한 방법도 없었다. 한 애플리케이션이 멈추거나, 회복 불가능한 오류로 넘어가게 되면, 시스템으로서는 다른 애플리케이션을 안전하게 통제할 수 있도록 동 애플리케이션을 멈출 방법이 없었다.

선점형을 우회해서 동 기능을 이룰 수도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기존 애플리케이션 사용자들에게 쓸 만한 기능이 못 되었다. 그런 기능을 활용하려면 애플리케이션 모두를 완전히 재디자인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퀵타임과 같은 주요 시스템 컴퍼넌트도 완전한 재작성이 필요했다. 이는 수 년이 족히 걸릴 대규모 작업이었다.

폐쇄적인 디자인으로 인해 하드웨어 지원 비용도 상승하면서, 맥의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통합 시스템은 이제 오래된 방법과 코드, 프로토콜에 휩싸이게 된다. 이는 시스템 불안정과 느린 퍼포먼스를 일으켰고,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애플의 노력을 제약하였다.

PowerPC Hardware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의 근간이 점점 삐걱거리게 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애플은 맥 하드웨어를 업데이트시키고, 수많은 구조적인 옛 기술을 뛰어 넘어, PowerPC로 이주할 수 있었다.

IBM, 모토로라와의 협력으로 애플은 68k 프로세서를 완전히 새로운 아키텍쳐로 옮길 수 있었다. 이 아키텍쳐는 당시 Pentium 프로세서를 사용하는 DOS PC보다 맥 퍼포먼스를 증가시켰다. 펜티엄은 더 뜨겁고 느렸으며, 비용도 더 들어갔다. 펜티엄 자신이 지닌 옛날 기술 지원 문제때문이었다.

PowerPC는 x86 PC의 대체품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모토로라와 협력하여 윈도우즈 NT 4.0을 PowerPC로 포팅시키고, IBM도 OS/2를 PowerPC용으로 포팅시켰기 때문이다. 애플도 맥 시스템7만이 아니었다. 애플은 Copland를 진정한 PowerPC 네이티브 OS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Legacy Hardware Decisions for PowerPC
PowerPC 진영의 파트너들은 새 프로세서만이 아니라, 이 칩을 사용할 새 PC 하드웨어의 참고용 플랫폼 계획까지 세웠다. 초기 버전은 PReP(PowerPC Reference Platform)이라 불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디자인은 기존 x86 PC가 갖고 있던 수많은 옛날 기술을 통합시킨 디자인이었다. 가령 1970년대의 Centronics 패러렐 프린터포트도 이 디자인에 포함되어있다. 그런데 특히 애플은 PowerPC 플랫폼이 보다 맥과 비슷해지기를 원하였다. PC 업계가 미는 오래되고, 구태의연한 표준으로 컴퓨터 디자인을 뒷걸음질치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 CHRP(Common Hardware Reference Platform)가 나온다. 이전의 PReP와는 달리, CHRP는 SPARC 웍스테이션용으로 썬이 개발하여 공개표준으로 선보인, OpenFirmware라 불리우는 새로운 펌웨어 디자인 상에서 표준화된 디자인이었다.

PowerPC와 CHRP는 PC 업계의 옛 하드웨어 문제를 해결할 심산이었지만, 그 대신 이 두 디자인은 거의 무시당하였다. 바로 그 옛 하드웨어 문제 때문이었다. 애플을 제외하고서는 어떤 업체도 새로운 것을 제공하겠다는 비전이 없었다.

Apple Slowly Ditches Legacy Hardware
당시 CEO, 존 스컬리는 1993년 애플로부터 축출당하였다. 그 때 애플은 여러가지 맥 모델을 지원해야 했다. 각 맥 모델은 고유의 하드웨어 아키텍쳐를 지녔고, Performa이니 Centris이니 Quadra이니, 온갖 마케팅용 이름으로 팔려나갔다.

스컬리는 소니 제품이나 고급 자동차처럼 들리는 이름으로 맥이 팔려나가기를 희망했었다. 하지만 그의 희망은 혼란으로 결론이 나버렸다. Quadra 630과 Performa 630 간의 차이는 무엇일까? 소비자들에게는 그 차이가 분명하지 못 하였다.

스컬리가 떠난 이후, 마케팅과 하드웨어 디자인을 단순화시키려는 노력이 있었다. 애플의 PowerPC 맥 첫 세대는 옛 맥에 새로운 프로세서를 장착시킨 것에 불과했다. 기존의 68k 기반 Quadra 610/700/800이 바로 PowerMac 6100/7100/8100으로 되었다.

1994년 애플은 Centris와 Quadra라는 이름을 버리고, 새로이 모든 기종을 파워맥으로 바꾸었다. 단, 모든 사양마다 각자의 번호를 붙인 Performa만은 남았다. 가령 파워맥 6100은 퍼포마 6110/6112/6115/6116/6117/6118CD로도 팔렸다. Sears가 이런 컴퓨터를 팔 수 없었던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A Legacy Lesson of PCI

1995년, 애플은 2 세대 째 파워맥을 출시한다. 이 파워맥은 PCI 확장슬롯을 포함하여, 최신 PC의 하드웨어를 통합시키기 시작하였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NuBus와 IBM의 MCA가 나온지 10년 후, 인텔은 PC의 ISA를 대체하기 위해 자사의 자동-설정 확장슬롯 표준, PCI를 선보인다.

ISA를 사용하는 PC는 손수 설정을 해야 하고, 특히 새 기기를 설치할 때마다, IRQ 라인과 I/O 주소, DMA 채널을 설정할 때 종종 문제를 일으켰다. 맥 사용자들은 IRQ가 무엇인지 알 필요조차 없던 때였다.

NuBus 덕분에 맥의 확장 카드는 훨씬 사용하기 우아했지만, 좀 더 간단하되 문제 많은 ISA 카드보다 더 고가이기도 하였다. 애플은 맥을 PCI로 이주를 단행하였고, 이에 따라 맥과 PC에서 둘 다 쓰이는 PCI 카드 시장이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애플은 NuBUS를 완전히 포기한다.

PC 상에서 PCI 지원은 마더보드의 ISA 슬롯 옆에 추가됐기에, 사용자들은 양측을 모두 장착시킬 수 있었다. 80년대의 IRQ 관리가 두통거리였건만, 새로운 PCI 카드로 시장이 양분된 셈이다. 그런데 모든 PC에는 ISA가 있는 반면, PCI를 장착한 PC는 최신형 뿐이었다. 그렇다면 ISA 기기를 굳이 생산 중단할 필요가 없잖겠나?

More Decisive Changes
단순함과 진보적인 기술의 혜택을 체험한 애플은 이제 예전 하드웨어를 단순화시키기 위한 다음 단계에 돌입한다. 넥스트 인수 이후, 새로워진 애플은 이제 맥용 하드웨어 디자인을 깔끔하게 다시 시작한다. 이른바 NewWorld Architecture다.

이에 따라 1998년, 아이맥이 처음 선보인다. 아이맥은 지난 날의 디자인을 포기하고, CHRP로부터 아이디어를 받아들인 새로운 디자인으로서, OpenFirmware를 완벽하게, 그리고 깔끔하게 구현시켜 놓았다. 애플은 예전의 맥 시리얼 커넥터와 ADB 키보드 포트를 없애고, 인텔의 USB를 채용한다.

1 년 후, 마이크로소프트는 하드웨어 문제에 대해 색깔만 새로 칠하는 방식을 택한다. Centronics 패러렐 포트와 시리얼포트, 아날로그 조이스틱 포트, PS/2 마우스와 키보드 포트를 색깔 별로 구분시켜서, 사용자들이 좀 덜 혼란을 느끼게 하였던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또한 PC 업체들이 ISA 슬롯 사용을 중단하고 USB 사용을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을 문서화시키기도 하였다. 10년 후, PC는 이제서야 USB로의 표준화를 시작하고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는 여전히 PS/2용 키보드를 판매하고 있다. PC는 또한 여전히 80년대 초반부터 쓰던 BIOS 펌웨어MBR 디스크 파티션맵을 사용중이다.

The Two Edged Sword of Legacy
옛 하드웨어를 포기한 애플은 이제 전격적으로 전진할 채비를 갖추게 된다. 그 전략은 어려웠던 이주 기간동안 애플을 유지시켜주었다. 또한 애플은 시장 위치선정기술, 개발, 그리고 영업과, 판매에 있어서 구태의연한 사고를 버리기도 하였다.

PowerPC는 애플에게 있어서 새로운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내놓지 못한 위기를 해쳐 지나오는 역할을 해 주었다. 좀 더 단순해진 애플은 이제 비효율적인 해결보다는 실질적인 문제해결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옛 기술 지원과의 단절이 애플을 살린 셈이다.

이와 반대로, 옛 기술의 옹호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지탱시켜 주었다. 기술 업계에서는 "legacy"를 경멸적으로 쓰긴 하지만, 호환성 측면에서 보면 "legacy"는 기존의 시장 지배력을 뜻하기도 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의 주요 전략으로 바로 이 옛 기술 옹호를 활용하여 마이크로소프트 플랫폼을 구축하였다. 새 하드웨어가 필요로 하는 엘리트적이고 비싼 해결책 대신,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존의 DOS 사용자들에게 윈도우즈를 판매시켰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존의 DOS와 16-비트 소프트웨어 지원을 위해 현재의 윈도우즈 개발을 자주 물린다. 덕분에 넓은 범위의 하드웨어는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중에는 PC 업계에서 여전히 실질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절대 다수의 옛 기종도 포함되어 있다.

애플은 개발자들을 새로운 소프트웨어 플랫폼으로, 사용자들을 새로운 PowerPC 하드웨어로 이주시키려 노력하였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DOS과 Win-16 애플리케이션을 NT와 95에서 돌리려 노력하였다. 심지어, 마이크로소프트는 옛날 PC도 Windows Terminal로 채택하기도 하였다.

Dueling Business Models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간의 차이는 철학적인 차이만이 아니다. 양사의 사업 모델를 반영하는 주된 차이는 다음과 같다.

  • 애플은 하드웨어 판매로 돈을 벌기 때문에, 애플은 언제나 최고의 하드웨어를 될 수 있는 한 많이 판매하는 데에 주력하며, 맥이 싸구려 PC보다 앞서나가도록 기능과 퍼포먼스를 차별화시키려 한다. 하드웨어 품질과 사용자 만족도는 저마진 대량 판매보다 가치가 높다. 또한 그것이 바로 애플을 풍부하게 해 준다.
  • 마이크로소프트는 소프트웨어 라이센스 판매로 돈을 벌기 때문에, 옛날 하드웨어로 돌리는 새 소프트웨어, 새 윈도우즈에서 돌리는 옛 애플리케이션, PC용으로 윈도우즈를 부르는 값에 따라 판매하기에 주력한다. 하드웨어 품질이나 사용자 만족도보다는 대량 판매가 더 낫다. 또한 그것이 바로 마이크로소프트를 풍부하게 해 준다.

오늘날, 이러한 옛 기술 지원 방식은 여전하다. 그 때문에 대부분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룩한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이 그리 올라가지 않는다. 그래도 애플로서는 선택할 수 있는 사용자에게 선사하는 최고의 제품으로, 제일 가치 높은 시장을 잡아낼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아 놓았다.

한편 마이크로소프트로서는 애플과 직접적으로 경쟁하기 애매한 위치이기도 하다. 비스타는 윈도우즈 XP로부터 먹여 살려야 할 수많은 소프트웨어와 함께, 너무나 많은 부담을 물려받았다. 즉, 애플만큼 재빠르게 이주를 단행할 능력이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없다는 의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90년대 초기 애플의 모습 그대로가 되었다. 바로 게으른 공룡의 모습이다.

Next: Platform Crisis: The Lazy Dinosaur

Tech: The Rise and Fall of Platforms 플랫폼의 역사, 그리고 그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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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aubon 님께서 2008-03-17 12:57 AM 에 수정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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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5, 게으른 공룡은 멸종한다

Platform Crisis: The Lazy Dinosaur

Wednesday, November 29, 2006

폐쇄적인 기술을 사용한 독자 개발, 그리고 오랜 기간동안 옛 기술을 지원하는 것은 플랫폼 위기를 게으른 공룡으로 만들어버렸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세계 기후 변화에 따라 자신을 어떻게 잃어갔는지 알아보자.



"플랫폼의 역사, 그리고 그 대결"은 플랫폼을 새로 발족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플랫폼을 유지하는 일은 또 얼마나 고된지를 알려주었다. 본 글에서는 컴퓨팅 플랫폼의 역사적인 궤적(軌跡)과 함께, 누가 왜 이겼는지, 누가 왜 졌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컴퓨팅 환경이 언제나 변하기는 하지만, 기본 원칙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으며, 애플의 레퍼드나 마이크로소프트의비스타와 같은 미래 개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전 기사:

1990-1995: Platform Crisis: The Lazy Dinosaur
90년대 초기를 거치면서, 애플은 신기술에 대한 확실한 방향을 잃었다. 애플에게 아이디어가 없었던 것은 분명 아니다. 그저 그 아이디어를 새로이 팔릴 만한 제품으로 바꾸는 데에 초점을 맞추지 못했을 뿐이다.

애플에게는 돈이 많았고, 유일하게 살 만한 주류 그래픽 웍스테이션으로서 매킨토시 컴퓨터의 고마진에서 나오는 수입이 풍부하였다.

1990년, 애플은 세계적으로 톱이었다. 개인용 컴퓨터 시장점유율은 9%에 달했다. 제일 수지 좋은 시장을 점유했으며, 판매량과 시장점유율도 올라가고 있었다.

애플은 데스크톱 출판과 그래픽 디자인에 있어서 급성장을 올렸고, 퀵타임 기반의 멀티미디어 개발로 다시 한 번의 도약을 준비중이었다.

시스템 7상에서의 작업을 끝내면서, 애플은 Pink에 미래를 묘사하였다. 핑크는 매킨토시 상에서 NeXTSTEP이 제공하는 모든 기능을 제공하기로 한 일종의 허풍이었다.

애플은 넥스트와 약속을 맺어서, 넥스트를 하이엔드 시장으로 몰아 넣었다. 이로써 애플은 판매망을 구축할 시간도 벌게 된다. 90년대 애플의 계획이란 윈도우즈 3.0을 돌리는 PC에 맞서서 더 저렴한 맥을 제공하는 것, 그것으로 시장점유율을 올리자였다.

더 저렴한 맥을 제공하기 위해, 애플은 과거로 다시 돌아가서 옛날 기술을 끄집어 내어 1000 달러에서 2000 달러에 이르는 맥을 판매하였다. 당시 대부분의 소비자용 PC와 비슷한 가격이다.

하이엔드 PC와 하이엔드 맥의 가격은 동일했지만, 윈도우즈가 맥보다 너무 뒤쳐진 나머지, 4년 전의 맥도 로우엔드에서는 충분히 경쟁을 벌일 만 하였다.

1994: An Unanticipated Crisis
1994년 당시 애플은 너무나 많은 제품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고작 몇 년 전에 치명적인 기술 위기에 처한 회사로서 그러한 앞서가는 생각이나 발명을 내놓으리라고는 기대를 하지 않고 있던 차였다.

사실 정말로 흥미로운 기기를 만드는 얼마 안 되는 회사 중 하나가 애플이었다. 가령 애플은 새로이 Newton 핸드헬드 컴퓨터를 선보였었다.

게다가 당시는 소프트웨어 개발사들이 시한을 으레 어기려니 하던 시기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1991년, Cairo를 발표한 이후, 매년마다 계획을 반복적으로 연기시켰다.

마이크로소프트의 Cairo는 애플 Pink에 대한 대응일 뿐이었다. 1989년의 넥스트스텝에 비견할 만한 경쟁력 있는 운영체제를 곧 제공하겠다는 미래지향적인 약속으로 가득 찬 발표였다.

1994년 5월,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의 짐 알친(Jim Allchin)은 윈도우즈 95의 완성을 위해 Cairo를 일 년 더 연기시킬 것이라 발표했었다. 그리고 동년 말, Cairo는 1996년으로 연기됐고, 윈도우즈 95의 발표 또한 95에 어울리잖게 연기되었었다.

그동안 맥 잡지들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약속에 비해 어떻게든 나올 가능성이 더 높아 보였던 애플 Copland가 약속한 기능 내용과 사진에 대한 기사를 가득 내보냈다.

Copland는 맥의 주도권을 유지하리라 약속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기능에 맞서면서, 보다 새롭고 멋진 외양으로 이뤄진 운영체제가 될 터였다.

1985년부터 1991년까지 애플이 보인 빠른 맥 개선으로 미루어 볼 때, 애플이 시스템 7의 승계자를 즉시 내놓지 못하리라는 두려움은 없었다.

게다가 고작 3년 밖에 안 지났었다. 애플은 시스템 소프트웨어의 소규모 업데이트를 정기적으로 벌이고 있었고, 퀵타임 2.0이나 PowerTalk, QuickDraw GX, QuickTime VR, QuickDraw 3D도 마찬가지였다.

Copland Backup Plans
애플은 자사 고유의 유닉스 배포본에 맥 데스크톱환경을 통합시킨 A/UX도 판매중이었다. A/UX는 주로 맥 하드웨어를 유닉스가 필요한 정부기관에 판매하기 위한 운영체제였다. 몇 년 후, 애플은 맥용 리눅스 오픈소스 배포본인 mkLinux도 선보인다. 이 mkLinux는 Taligent에서 개발용으로 사용할 IBM의 Workplace OS와 유사한 커널디자인을 갖고 있었다.

탈리전트 자신은 가능성이 엿보이는 계획이었다. 애플이 핑크를 분사시켜서, 탈리전트를 IBM과 협력시켰기 때문이다. 게다가 PowerPC에 대한 업계 전반의 지원 발표로 인해, 탈리전트가 미래형 차세대 운영체제를 애플에게 안겨다주리라는 기대가 늘어났다.

What's Wrong with System 7?
PowerPC 자신도 기존의 맥 시스템 7을 훨씬 빠르게 돌릴 것을 약속하였다. 즉, 애플로서는 당시 모토로라 68040과 인텔 486 사이에서 일어난 메가헤르츠 경쟁에 있어서 편안한 주도권을 행사할 것이었다.

PowerPC의 도움을 받은 맥 시스템 7은 못생기고 버그도 많은 윈도우즈 95에 비해 여전히 한참은 앞서 보였다. 게다가 다음 해 말까지 나올 계획도 없었다.

더군다나 애플은 맥 시스템 7 소프트웨어 시장을 확장시킬, 맥 에뮬레이션 환경도 완성시켜 놓았다. 맥용으로 나와 있는 범용 상용 데스크톱 애플리케이션을 쓸 수 있도록 유닉스 웍스테이션 사용자들을 고려한 처사였다.

MAE(Macintosh Application Environment)는 Sun과 HP Unix 웍스테이션에서 전통적인 매킨토시 애플리케이션을 돌리도록 해 주는 소프트웨어 에뮬레이션이었다. 또한 MAS(Macintosh Application Services)는 IBM AIX나 PowerOpen Unix 계열의 X Window 안에서 클래식과 PowerPC용 네이티브 맥 애플리케이션 둘 모두를 돌릴 수 있는 서비스였다.

그런데 맥 사용자들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는 1990년까지 완전히 하나의 농담거리였다. 게다가 당시 새로 나온 윈도우즈 3.0 또한 우아한 맥 데스크톱에 비해서 한참 뒤떨어졌었다.

애플은 여러가지 기술 방향을 장난칠 정도의 여유를 가진 듯 하였다. 부자 회사 애플에게는 은행에 수 십억 달러, 또한 수 십억 달러의 수입도 있었다.

Sculley’s Legacy
90년이 시작했을 때는 앞으로 그 생존력을 의심받을 정도의 상황까지 처하게 될지는 누구도 몰랐었다. 그만큼 애플은 편안한 상태였다. 1983년 이후로 애플을 이끈 존 스컬리가, 자신이 펩시 캔을 여전히 팔고 있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애플은 잘 나갔었다.

스컬리 휘하의 애플은 고가의 광고 캠페인 값을 대기 위해 오리지날 맥의 가격을 인상시켰고, 후에는 맥 브랜드를 쿼드라, 센트리스, 퍼포마 등, 여러가지 겹치는 브랜드로 나누기까지 하였다. 소비자들은 혼란스러웠다. 이는 제작 비용을 상승시키고, 이윤을 줄였다.

일반적으로 스컬리의 애플은 야망에 차있긴 하되, 비현실적인 기술 계획을 꾸준히 내놓고 있었다. 시장에서는 먹히지 않을 가격대로 터무니 없는 목표를 둔 것이었다. 팔려나가는 맥은 거의 정체되어갔고, 반면 PC 시장은 급속도로 자라나기 시작하였다.

동료 공화당원, HP의 칼리 피오리나(Carly Fiorina)의 전조를 보이는 듯, 스컬리 또한 애플 일보다는 자신의 정치적인 일 홍보에 더 연관하기 시작하였다. 스컬리는 애플을 자동조정으로 놓아두었고, 비행기가 어두운 구름대로 들어갈 때조차 승무원들과 잡담에만 열중하였다.

Scrambling For Straws
맥 판매가 저조해지고, CEO도 빌 클린턴에게 한 눈 팔던 시절, 애플 이사진은 스컬리의 축출을 결정내린다. 그 후임자는 여전히 옛날 애플의 옛날 사람인 마이클 스핀들러였다. 스핀들러는 스컬리가 해 놓았던 의문스러운 결정 여러가지의 실행에 책임이 있다. 맥의 하위 브랜드가 빚어낸 혼란도 여기에 포함된다.

스핀들러는 기술적인 선구안이 거의 없는, 전략 마케터일 따름이었다. 그는 애플에게 진짜 문제가 닥치기 이전에, 애플이 가장 잘 팔릴 만한 회사가 되기를 바랬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이미 일어나고 있던 일들을 지휘하면서, 대부분 균형을 유지하였다.

스컬리 하에서 스핀들러는 의미 있는 비용 절감을 할 수 없었다. 스컬리가 애플에서 진행중인 온갖 비현실적인 프로젝트를 방어하였기 때문이다.

1993년, 스컬리의 축출 이후에도, 스핀들러의 비용 절감 노력은 엔지니어나 관리자들로부터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였다. 그들이 이대로를 외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컬리가 승인 내린 여러가지 프로젝트 때문에 스핀들러의 애플은 붕 떠버렸다.

  • 1993년, 맥에 텔레비전 튜너를 붙인 맥, Macintosh TV
  • 1993년, Newton 핸드헬드 컴퓨터
  • 1994년, PowerPC 프로세서로의 이주
  • 1994년, iTV 셋톱박스의 실험, 테스트시장에서만 출하됨.
  • 1995년, Pippin과 그 외 맥 클론
  • PowerTalk, QuickDraw GX를 포함하는 사라져버린 여러가지 개발 노력

Failed Strategies
인상적인 기술을 통합시킨 뉴튼은 가격과 성능비 균형을 못맞춘 바람에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기능은 많되, 비용이 너무 비쌌던 까닭이다. 뉴튼 이전에도 애플은 또다른 PDA 프로젝트를 시작했었고, 이 프로젝트는 결국 General Magic으로 분사가 되었지만, 뉴튼과 제너럴매직 둘 다 서로간에 경쟁을 벌이다가 운명을 오히려 더 재촉해버렸다.

맥 라이센스 반대, 그리고 80년대 후반 때의 프리미엄 가격을 고집한 쟝 루이 가세는 윈도우즈 PC가 심각한 경쟁을 벌이기 이전 맥 시장의 성장 잠재성을 크게 제약시켜 버렸다.

가세도 축출이 되었지만, 가세가 구축한 정책을 한꺼번에 뒤바꾸기에는 상황이 더 요원했다. 특히나 윈도우즈 95가 나온 뒤로는 Pippin 하드웨어 디자인 라이센스나 다른 맥 클론 사업도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하였다.

더군다나 더 많은 시장점유율을 올리기 위해 시장에 뿌리려 노력했던 더 저렴한 맥은 오히려 애플의 재정을 압박하였다. 맥을 팔 만한 신뢰성 있는 곳이 없어서였다. 또한 왜 맥을 구입해야 할지를 설명해 주는 광고 캠페인도 부재하였다.

1995: Apple's Second Wind
애플은 공룡이 되어갔다. 급성장 이후 10년, 애플의 크기 자체가 이제 문제가 되었다. 자신의 덩지때문에 변화와 기민한 대처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크기와 더불어, 애플 제품에는 특정한 오만함이 넘쳐났다. 모두 다 비싸보였으며, 별 실용가치도 없고, 경쟁력도 없어 보였다.

통제 불가능한 Copland 프로젝트와 Taligent 재앙도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러나 진짜 문제점은 맥을 더 많이 팔 수 없다는 데에 있었다. 소비자들이 맥을 사야 할 이유가 점차 사라져가고 있던 상황이다. 윈도우즈 95와 싸우기 위한 새로운 운영체제가 절실한 것도 아니오, 그저 PC에 대항할 만한 경쟁력 있는 가격에 매력적인 제품이 있어야 했다.

PowerPC를 한 때의 알탈로 간주하는 이들도 있지만, PowerPC 덕택에 애플은 맥을 팔 만한 이유를 그나마 제시할 수 있었다. 파워맥을 새로 내놓자 판매량과 성장도 다시금 뛰어 올랐으며, 더 저렴한 IDE CD-ROM과 하드드라이브를 더 우아하지만 고가의 SCSI 드라이브 대신 장착시키는 등, 애플의 노력도 계속 이어졌다.

덕분에 1995년 맥 판매량은 450만 대로 늘어났으며, 당시 애플 수입의 절반 이상을 대표한 미국 시장에서 애플 점유율은 11.5%에 달하였다.

그런데 1995년 동안, 스핀들러는 여러 회사(IBM과 필립스, Sun도 포함된다)와 애플 인수 협상에 분주했다. 여전히 돈을 상당히 벌고 있는데도, 스핀들러는 애플을 최고가에 팔아넘김으로써 애플의 회생을 자본화시키려 하였다. IBM이 한 때 최고가를 제안하긴 하였지만, 스핀들러는 더 받을 수 있다 오판하였다.

1996: Crisis Explosion
하지만 그 이후 10년 동안 애플은 1995년 만큼의 성적도 다시금 올릴 수 없게 된다. 부분적으로는 윈도우즈 95가 야기한 새로운 경쟁때문이기도 하지만, 애플이 야심차게 벌이던 클론 사업이 맥 판매를 오히려 떨어뜨려서가 더 컸다. 이는 하이엔드의 애플 이윤을 잡아 먹었다. 또한 Sears의 선반 위에는 안 팔리는 (그리고 성능도 뒤떨어지는) 맥 퍼포마가 그득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즈 95가 그 해 말에 나왔고, 1996년 여름에는 윈도우즈 NT 4.0도 나왔다. 애플에게 상당한 시장점유율과 팔 만한 좋은 제품이 있다면야 문제될 일이 없었다. 그러나 제품 인식은 정말 문제였다. 일반인들은 애플이 이제 내세울 것이 없나보다라 여겼다.

DOS 상에서 돌아가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즈, 그 윈도우즈에 대한 대량의 광고캠페인때문에, 언론은 윈도우즈 95에 광분했고, 애플 코플랜드의 소식을 기다렸다.

그러나 애플의 코플랜드 시스템 8과 Gershwin 시스템 9는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윈도우즈 95가 일으킨 PC 판매 증가는 이제 폭발적이었다. 이 때에 애플은 대단히 현명하시게도 미래 맥용 운영체제 계획이 현재 없다고 발표해버렸다.

파워맥 2세대가 대부분의 PC보다 더 빠르고, 깔끔한 PCI 구조를 제공했건만, 그런 발표는 애플의 미래 전망에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당연히 1996년 매출은 급감한다.

새 파워맥에 거의 광고가 없던 것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게다가 클론업체들도 애플을 공격하던 때였다.

Dazed and Confused
더 심각한 문제는, 애플의 다른 소프트웨어 프로젝트가 모두 실패했다는 데에 있다. QuickDraw GX는 정지하였으며, PowerTalk도 실패로 끝났다. 향후 퀵타임 계획도 불확실했다. 업데이트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맥 개발자들은 애플의 무능과 분명한 비전 제시 부족에 대해 좌절하기 시작했다. 그 모든 프로젝트의 실패 끝에, 애플은 관심을 다른 데에 쏟고 있었다. 이 중에는 OpenDoc도 포함된다.

이듬해, 애플이 BeOS 인수 협상을 시작했을 때, 애플 내부 개발력이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재앙에 휩싸였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안정적인 플랫폼 제공은 커녕, 향후 계획도 못세우는 회사를 위해 도대체 왜 개발을 해야 하는가?

BeOS가 흥미로운 인터페이스와 훌륭한 데모를 보여주기는 하였지만, 당시 BeOS는 인쇄도 할 수 없었고, 다중 사용자 환경도 아니었으며, 소프트웨어 기반도 전혀 없었다.

애플이 개발을 시작할 기반 운영체제를 찾어야 하고, 그 상대로 BeOS를 선택했더라면, 분명 큰 문제에 휩싸였을 것이다.

게다가 썬이 애플을 인수하리라는 루머가 쏟아져 나왔다. 썬은 뉴튼의 인수에도 흥미를 나타냈다고 알려졌었다.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Larry Elision)은 애플을 인수하여 맥을 네트워크 컴퓨터로 활용하려 하였다.

그동안의 리더이자, 돈도 많던 애플이 어떻게 자기 삶을 구걸하는 처지에까지 몰리게 되었을까?

The Two Edged Sword of Lazy Dinosaurism
수 백만 달러 어치의 연구를 지휘하는 엔지니어와 관리자의 입장에서 보면, 애플의 종말조차 유쾌했다. 실험적인 연구에 수많은 돈을 날리는 셈이었다.

문제는 애플이 흥미로운 것을 전혀 만들 수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통할 만한 제품을 유지할 수 있는 기세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데에 있었다. 닷컴 시대에서 살아남았다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수 백만 달러를 순식간에 날리고 나면 뭔가 교훈을 얻는 법이다. 중요한 점은 다음과 같다. 그 돈을 쓸 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닷컴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였다.

옛날 옛적의 게으른 공룡처럼, 닷컴은 미래에 대해 별 생각 없이 뭔가 있어 보이는 환경에 그냥 뛰어들었다. 그러자 기후가 바뀌자, 생존이 불가능함을 깨달은 것이 닷컴 붕괴다. 새로운 먹이가 없으면, 그리고 변화에 재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면, 그저 죽거나 묻힐 따름이다.

심각한 개입 없이는 애플도 pets.com이나 Webvan처럼 종말을 맞이할 판이었다. 애플에게는 자신이 빠져들었던 덫에서 빠져나갈 탈출 전략이 전무하였다. 이제는 돈줄마저 말라가기 시작했다.

당연히 아직은 수 십억 달러 어치의 현금과 상당한 수입액이 있었지만, 1996년 당시 애플 투자자들은 뉴튼을 팔아치우기 위한 빈둥대는 경영 대신, 결정적인 행동을 요구하였다.

Inability to Develop New Markets
Copland 때문에 휘청거린 것이 아니었다. 애플의 진짜 문제점은 팔 만한 물건을 못만들어내는 무능력이었다. 새로운 OS에 대한 소리 높은 외침은 그저 현상을 가리는 것에 불과했다. 소프트웨어로 버는 수입이 거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애플에게는 파워맥 판매가 더 절실했으며, 시장화시킬 만한 제품을 따로 찾아내야 했다.

넥스트가 애플을 통제하게 된 이후, 똑같은 시스템 7을 탑재한 새로운 맥이 더 잘 팔려나갔으며, 2000년 당시 애플의 판매 손실을 판매 증가액이 드디어 능가하였다. 새로 나온 맥오에스 8과 9 모두 시스템 7에서 상대적으로 마이너 업데이트만 한 버전이었다.

애플의 새 운영체제인 맥오에스텐은 2002년 이후에나 실질적으로 팔리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애플은 팔 수 있는 제품을 임시적으로라도 팔아서 하향세를 상승세로 탈바꿈시켰다. 바로 1998년의 아이맥이 그러했고, 맥오에스의 소매판매본, 그리고 맥 판매를 도운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바로 그 주역이었다.

The Shadow Stalker
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의 행동은 10년 전 애플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거대한 양의 돈을 쌓아두고 있으면서 시장 통제를 통해 수입도 계속 거둬들이고 있지만, 새 시장 개척에 실패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이윤을 올리는 곳은 세 곳이다. 서버 제품군과 데스크톱용 윈도우즈 판매, 그리고 오피스의 판매이다. 1995년의 애플 상황과 대단히 유사하다. 여전히 수 십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최초로 심각한 경쟁에 직면하게 된다는 사실을 마이크로소프트는 완전히 의식 못한 채로 행동하고 있다.

독자적이고 폐쇄적인 플랫폼 개발에 대한 의존, 그리고 옛날 기술 지원으로 인해, 게으른 공룡으로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위치는 이제 기업에서 리눅스의 공격, 데스크톱용 프리미엄 PC를 향한 애플 소매 스토어의 맥 공격을 받고 있다.

Stock Buyback Starvation
최근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 주식을 스스로 구매하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이제는 투자에 있어서 선택이 없다는 표시다. 달리 말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거나 새 시장을 개척하기보다는 투자자들에게 현금이나 되돌려주겠다는 의미다.

눈더미에 갇혀서 배고파하는 공룡처럼, 마이크로소프트는 현재 배고파하고 있다. 자기의 힘으로 새 음식을 찾아 나서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자신을 먹어치우고 있다. 쉽게 얻을 수 있는 새 음식이 없다는 사실을 마이크로소프트도 알고 있다. 즉, 마이크로소프트는 죽어가고 있다.

이제 플랫폼 위기가 하나 남았다. 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는 예전의 애플이 그랬던 것처럼 노상강도(robber baron)화 되었다.

Next: Platform Crisis: Robber Baron Pir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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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The Rise and Fall of Platforms 플랫폼의 역사, 그리고 그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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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tform Crisis: The Lazy Dinosa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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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aubon 님께서 2008-01-28 07:00 AM 에 수정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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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5, 07:26 AM   #20
casau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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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5, 카이로로 가는 머나먼 길

1990-1995: Microsoft's Yellow Road to Cairo

Thursday, December 14, 2006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PC와 DOS 판매는 마이크로소프트를 80년대에 제일 큰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시장 지배력이 증가하자, 마이크로소프트는 거대한 힘을 계속 누리라는 인식을 얻게 된다. 곧 없어질지도 모를 소프트웨어 회사에 투자하고 싶어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지도를 이용하여 마이크로소프트는 1991년, 카이로(Cairo)라는 제품 비전을 발표한다. 카이로는 향후 10년간 경쟁을 마비시켰다.

이 전략은 너무나 잘 먹혀들어가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롱혼으로 다시금 이 전략을 구사하였다. 카이로가 어떻게 먹혀들었는지,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번에는 왜 똑같은 사기술을 펼칠 수 없는지 알아보자.


"플랫폼의 역사, 그리고 그 대결"은 플랫폼을 새로 발족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플랫폼을 유지하는 일은 또 얼마나 고된지를 알려주었다. 본 글에서는 컴퓨팅 플랫폼의 역사적인 궤적(軌跡)과 함께, 누가 왜 이겼는지, 누가 왜 졌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컴퓨팅 환경이 언제나 변하기는 하지만, 기본 원칙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으며, 애플의 레퍼드나 마이크로소프트의비스타와 같은 미래 개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전 기사:

1990-1995: Microsoft’s Yellow Road to Cairo
80년대 소프트웨어 기업 빅3라면, Ashton-Tate, Lotus Development, 마이크로소프트였다. 애플은 새로이 매킨토시용 소프트웨어 개발로 여기에 끼게 된다.

그런데 Ashton-Tate는 스스로의 실책으로 사라지고, 1995년에는 IBM이 로터스를 인수하게 되면서, 데스크톱용 애플리케이션에 있어서 제일 영향력 있는 개발사는 마이크로소프트만이 남게 된다.

DOS와 오피스 애플리케이션 벤더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지위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분명 경쟁사들에 비해 유리했다. 특히 윈도우즈 95가 나타나면서 이전 버전의 DOS와 윈도우즈용 애플리케이션들이 구식이 되어버렸을 뿐 아니라, 기존의 경쟁사 애플리케이션들도 구식이 되어버렸다. 즉, DOS 표준이었던 WordPerfect나 Lotus 1-2-3가 구식이 되었다는 의미다.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크게 혼란스러운 시장을 조성하였고, 미래 제품 발표는 곧 현실에 존재하는 제품의 시장을 왜곡시켰다. 잘못된 정보가 넘치는 기술 업계의 상황을 고려해 보면,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신의 거대한 시장 지배력을 이용하여 악명높은 FUD와 허풍의 원천이 된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Innovations in Vaporware
이전의 기사에서 필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허풍이 퀵타임뉴튼, PenPoint OS에 어떤 공격을 가했는지 이미 보인 바 있다.

물론 일단 발표부터 했다가 결국 내놓지 못하는 회사들은 마이크로소프트 외에도 많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허풍 게임을 통해 혁신적인 이중 마케팅법을 보여 주었다.

일단은 다른 기업들처럼 엄포를 놓는다. 그러면서 다른 한 손에는 다른 카드를 준비했다는 양 움직인다. 그런데 눈에 안 보이는 그 카드가 훨씬 그럴 듯 해 보인다. 상대방은 주의를 흐뜨릴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카드를 치는 탁자 주변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거론하는 보이지 않는 카드에 상당히 감복을 받았다는 분석가들의 훈수가 가득하다. 그들은 입을 모아 마이크로소프트에 대결하는 짓은 어리석은 짓이 되리라 합창한다. 더 최악인 것은,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진 진짜 카드를 알아보고, 어떻게 엄포를 놓는지 뻔히 아는 분석가들도 많다는 데에 있다.

Microsoft's NT Plans Prior to Cairo
1991년은 애플이 맥 시스템 7을 선보이고, 자기 NeXT 머신을 이용하여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가 세계 최초의 웹서버와 웹브라우저를 만들 때다.

PC는 여전히 문자 기반의 DOS를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10년 전인 1981년의 DOS보다는 약간 더 빠른 버전이었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즈 3.0으로 DOS PC 사용자들에게 애플 그래픽 데스크톱을 허술하게 베낀 환경을 제공하였다.

윈도우즈 3.0의 판매량이 올라가자, 마이크로소프트는 OS/2 3.0의 개발에 있어서 IBM을 배신하기 시작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새로운 계획에는 OS/2에 대한 자신의 기여에 기반하여 완전히 새로운 운영체제가 들어 있었다. 이 새 OS는 곧 윈도우즈 NT로 불렸다.

기존의 DOS 기반 윈도우즈 3.0와는 달리, NT는 모든 면에서 완전히 새롭고 현대적인 면을 제공하였다. DOS나 기존의 x86 PC 구조와도 별개였다.

원래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텔의 새로운 64-비트 RISC 프로세서가 될 i860용으로 NT를 돌릴 참이었다. i860은 현대적인 디자인을 갖췄고, 표준 x86 기반의 PC와는 달리 하방호환성의 부담도 없었다.

i860은 이어 나오게 될 PowerPC Altivec과 펜티엄 MMX와 유사한 그래픽 가속기능을 탑재하였다. 그 결과 i860은 하이엔드급 NeXTDimension 비디오카드용으로 쓰이게 된다. 오히려 넥스트가 i860을 이용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i860에게는 불행히도, 마이크로소프트가 i860을 결국 이용하지 않았다. i860의 코드명은 N10이었고, 그 이름때문에 바로 NT가 나왔다고는 하지만, 당연하게도 마이크로소프트와 IBM은 오랜동안 OS/2 3.0을 신기술을 의미하는 "NT"로 부르고 있었다. 따라서 i860이 바로 NT라는 이름의 원천이라는 시각은 수정주의적인 시각이랄 수 있겠다.

No Operating System Experience
마이크로소프트는 IBM 없이 스스로 운영체제를 구축하려다가 드디어 복잡한 현실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 때까지 마이크로소프트는 MS-DOS의 업데이트만을 제공해 왔으며, MS-DOS도 한 작은 개발사로부터 라이센스 받은 운영체제였다. 바로 그 운영체제인 QDOS는 Digital Research CP/M의 한 클론이었다.

DOS 이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원래 1979년 AT&T로부터 라이센스 받은 유닉스의 일종인 제닉스(Xenix)를 팔아보려 했었다. 제닉스는 오늘날 SCO의 UNIX가 되었다.

냅킨 뒷면에다가 DOS를 한 손으로 써내려갔다는 빌 게이츠의 별난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에게는 운영체제를 디자인해 본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80년대 후반기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는 OS/2 개발에 있어서 IBM에게 의존하였다. 원래는 이 OS/2가 DOS의 대체가 될 터였다.

그런데 윈도우즈 3.0과 DOS 애플리케이션의 판매량을 보니, 이게 단순히 윈도우즈 환경을 위한 OS 라이센스나 아예 OS 작성팀을 별도로 꾸리는 편이 IBM에 의존하는 것보다 훨씬 돈을 많이 벌겠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의 기대보다 그 작업은 훨씬 더 큰 작업이었다. 1988년, 게이츠는 DEC로부터 개발팀을 하나 고용한다. 이 개발팀의 팀장이 바로 데이브 커틀러(Dave Cutler)로서 원래는 OS/2의 다음 버전 작업을 하고 있었다. 1990년, 마이크로소프트는 공식적으로 커틀러에게 IBM의 OS/2에다 갖다 쓸 윈도우즈용 OS 커널을 구축하도록 팀을 꾸려 준다.

이 결과 윈도우즈 NT가 나온다. 원래 계획보다 수 년 후에서야 나오게 되었고, 당시 언론은 NT가 "Not on Time"의 준말이라며 빈정거렸다.

But Wait, There’s More
NT 프로젝트가 느리게 진행되자, 마이크로소프트는 카이로라는 코드명 하에 장미빛 미래의 청사진을 만들어낸다. 첫 번째 버전의 NT 발표 계획을 내보낸 직후, 마이크로소프트는 NT 뿐만이 아니라 애플과 넥스트, IBM이 이미 제공하고 있는 그 어떤 운영체제보다도 우월하게 될 카이로가 나오리라 소리쳤다.

카이로는 이른바, 마이크로소프트 판, Pink였다. 특정 제품으로서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거론하고는 하지만, 그 거론 자체가 전체 전략의 일부였던 것이다.

기존의 맥 시스템 7 시장 현실 때문에 애플의 핑크가 제약을 받았다면,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3.0은 1990년 당시 거의 완성된 제품이 아니었으며, 윈도우즈 전용 소프트웨어도 매우 드물었다. 따라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떻게든 마음먹은대로 카이로를 윤색할 수 있었다.

Slippery Plans and Brands
전략이 바뀌어가자 마이크로소프트가 사용하는 어구와 브랜드 명칭도 다수가 바뀌어갔다. 이 때문에 좀 혼란스러웠다.

1990년 이전 윈도우즈는 새로이 OS/2에 통합될 프로그래밍/사용자 환경이었다. DOS상에서는 돌릴 수 없었다.

그 후 어느정도 기간이 지나면, 이제 OS/2를 200 달러 내고 살 경우 DOS가 공짜로 주어질 계획이었다. 즉, 이미 돌리고 있던 윈도우즈와 DOS용 소프트웨어를 네이티브 OS/2 소프트웨어와 같이 돌릴 수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OS/2용 애플리케이션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흠.

IBM도, 마이크로소프트도 이 전략이 제대로 될지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말 놀랍다. 그래도 계획상으로는 모든 것이 훨씬 분명했다. 당시 OS/2는 PC용으로 새 플랫폼을 제공하려 한 첫 번째 시도였다. 애플은 이미 Apple IIGS와 맥으로 새 플랫폼으로의 이주가 얼마나 어려운지 몸소 경험한 상태였다.

당시, 소매점에서 운영체제를 판매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역사적으로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의 업데이트를 무상으로 뿌리던 애플도 그제서야 시스템 7을 소매상품으로 바꾸려 시작중이었다. 하지만 별로 섹시하지도 않은 유틸리티 소프트웨어를 강요받지 않는 한 별 흥미를 못 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DOS 기반의 윈도우즈 판매가 성장하던 1990년 당시 윈도우즈는 페이지메이커와 같은 그래픽 애플리케이션을 PC에서 쓰기 위한 가난한 이의 매킨토시였다. 이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는 OS/2에 있어서 IBM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윈도우즈의 지속적인 개발과 새 운영체제 커널 개발로 초점을 돌린다.

그리고 DOS를 대체한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새 운영체제는 NT라 불렸다. 원래는 OS/2 3.0에 붙일 이름이었고, 윈도우즈는 NT의 최상단에서 돌아갈 사용자 환경이었다. IBM은 IBM대로 기존의 윈도우즈용 애플리케이션을 OS/2랑 나란히 돌리게 하려는 계획을 밀고 나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새로운 32-비트 버전 윈도우즈로서 NT를 시작했다. 이 환경은 Win32라 불렸고, 기존의 윈도우즈는 Win16으로 바뀌었다. 즉, 마이크로소프트는 강력하고 새로운 Win32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자원을 집중시켰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는 내부적으로 Win32용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들어갔다. 다른 개발사들은 새로 Win32 애플리케이션을 작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동등한 입장에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특히나 오피스와 같은 애플리케이션에서 쓰이는 비밀 API가 그러하다.

윈도우즈 NT가 처음 나오기 2 년 전, 마이크로소프트는 카이로가 윈도우즈 NT의 후속이라고 선전하기 시작했다. 아직 나오지도 않고 검증도 안 된 NT 커널상에서 돌아가는 간단한 그래픽 셸 Win32도 아니었다. 카이로는 핵심 OS부터 파일 시스템, 사용자 환경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새로운, 미래 지향적인 새로운 아키텍쳐였다.

Distracting Vapors of the Future
마이크로소프트에게는 일단 발표하는 것이 중요했다. 애플로부터 기존의 맥 사용자 환경, 그리고 넥스트로부터 운영체제 기술과 기존의 개발 환경은 분명 당시 마이크로소프트가 제공하던 것보다 훨씬 더 우월했다. 아니, 앞으로 나올 것보다도 더 우월할지 모를 형편이었다.

애플의 핑크처럼, 카이로는 허풍이었다. 미래에 나오리라 크게 떠벌려 놓고는 현재의 시장현실을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애플의 핑크가 이미 나와 있던 넥스트의 모든 것을 제공하리라 떠벌리던 것처럼, 마이크로소프트 카이로도 10년 내에 나오지도 못할 것을 광고하였다.

뛰기조차 못하던 마이크로소프트는 나는 모습을 그려내 보였다. 카이로의 매력적인 환상에 이끌린 언론은 웃기도록 허술한 윈도우즈 3.0과 DOS를 매킨토시나 넥스트와 비교하지 않고, 오히려 카이로가 제공하는 약속과 현재의 애플과 넥스트를 비교해댔다.

심지어 넥스트조차 카이로가 결국 나타나리라 믿었는지, Taligent, 카이로에 대해 넥스트가 어떻게 대처할 예정인지를 보이는 차트까지 만들었을 정도였다.

허풍의 다른 희생자들처럼, 넥스트 또한 현실에 존재하는 제품 판매에 어려움을 겪었다. 모두들 마이크로소프트의 향후 10년간 결코 나오지 않고 만, 장미빛 미래를 듣기 원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전혀 실현되지 못한 부분도 있다.

Unhindered by Reality
기존 애플리케이션과의 호환성 문제나 실제로 존재하는 경쟁사로부터 일부러 멀리 떨어진 마이크로소프트는 멋대로 마술과 같은 미래를 그릴 수 있었다. 게다가 모두들 그 미래가 곧 현실화되리라 믿을 준비가 되어 있기도 했다. 설사 이제까지 고유의 운영체제 기술을 내본 적이 없던 마이크로소프트였는데도 말이다.

자, 마이크로소프트가 말로 에이스 다섯 장이 있노라고 입카드를 치는데, 언론은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냐 묻기는 커녕, 오히려 마이크로소프트의 미래가 얼마나 근사한지 맞장구 쳐주기에 바뻤다. 이런 무비판적인 언론의 칭송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엄포가 먹혀들어갔다. 따라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이후에도 비현실적인 계획을 계속 발표하기에 이르른다.

시간과 자원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컴퓨터 업계라서 그랬다! 그저 프로젝트에 투입할 더 많은 엔지니어를 고용하면 시간은 단축시킬 수 있고,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이득이 될 규모의 경제라면 자원도 고려 대상이 못 됐다. 이렇게 생각하고나면, 모두 다 합리적이었다.

케이크를 오븐에 넣고, 온도를 권장하는대로 두 배로 올리면, 케이크가 절반의 시간 안에 만들어지는 식이었다. 분석가들은 그런 식으로 말하였다.

Cairo: Buzzword Compliant
카이로는 당시 관심의 초점인 새 OS와 사용자 환경이었으며, 기존 경쟁사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상당수 빌려왔었다. 뭐, 다른 회사에서들 이미 이 기술을 판매하고 있으니, 복제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없으리라는 식이었다.

특히 카이로가 약속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 OS/2가 이미 갖고 있던 데스크톱 오브젝트에 대한 직접적인 조작 등을 갖춘, 객체지향 사용자인터페이스
  • 넥스트가 이미 존재하던 환경과 비슷한 객체 지향 개발환경
  • 넥스트가 제공하던 기능과 유사한 분산컴퓨팅
  • 완전히 검색이 가능한 오브젝트 스토어를 갖춘 객치 혹은 데이터베이스 파일시스템
  • Lotus Notes와 유사하되 표준에 기반한 메세지 시스템
  • Novell의 NDS와 동일하며, 표준에 기반한 디렉토리 시스템

Failure to Launch
마이크로소프트의 카이로는 이제 출시를 한 두 해 앞둬가고 있었고, 결국 90년대 후반 이후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카이로에 대한 언급을 멈추었다.

1992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카이로가 1994년 데뷔하리라 말하였고, 이듬 해인 1993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첫 번째 버전의 윈도우즈 NT를 소개하였다. 하지만 이 NT의 버전 숫자는 3.1이었다. 즉, DOS 기반의 윈도우즈 3.0을 계승하겠다는 표명이었다.

NT 커널은 일반적으로 디자인이 잘 된 것으로 평가받았다. 너무 평가가 좋아서인지 DEC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커틀러를 고용하여 DEC의 지적재산권을 훔쳐갔다 고소하였다. 하지만 NT 퍼포먼스는 표준형 PC에서 그리 좋지 않았다. 당시 표준형 컴퓨터는 NT를 돌리기에 넉넉하지가 못 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에게는 비상이 걸렸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임시적인 계획을 급히 세워서 DOS 기반의 윈도우즈 3.0을 NT를 수정할 때까지 충분히 잘 돌아가도록 개선시키기로 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차세대 NT를 "4.0"이라 부르고 싶어했다. 따라서 DOS 기반의 윈도우즈 다음 버전은 버전 숫자가 아닌, "윈도우즈 95"로 불리게 된다.

Cairo Falls Apart
윈도우즈 95 출시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1994년 초, 짐 알친(Jim Allchin)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즈 95에 프로그래머들을 더 투입하는 중이기 때문에 카이로가 1995년 하반기까지 연기되리라 발표하였다.

1994년 말, 마이크로소프트의 부사장, 마이크 메이플즈(Mike Maples)는 카이로가 "1996년 정도"에 나오리라 말하였다.

1 년 후인 1995년 말, 마이크로소프트는 카이로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일부라면서 윈도우즈 95를 출시한다. 하지만 윈도우즈 95는 사용자 인터페이스 기술에 있어서 어떠한 새로운 점도 제공하지 않았다. 맥과 넥스트 양자로부터 베꼈을 뿐이며, 보통은 "윈도우즈95 = 맥 89"라는 말로 비판을 받았다.

윈도우즈 95가 나오자, 마이크로소프트는 카이로의 "첫 번째 버전"이 1996년 하순에 데뷔하며, 실질적인 출하는 1997년에 있으리라 발표한다. 원래의 발표 이후로 1년 반이나 지난 시기였다.

그러나 1996년이 되자, 마이크로소프트는 카이로를 실제 제품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비전인양 묘사한다. Computerworld 인터뷰에서 빌 게이츠는 이렇게 말했다. "카이로는 미래적인 시스템으로서, 우리가 작업중인 것입니다."

넥스트의 객체지향 개발툴과 여러가지 다른 제품의 합법적인 경쟁자인양 묘사를 받은지 1 년 하고도 반이 지났지만, 카이로는 완전한 사기임이 드러났다.

넥스트를 몇 년 후면 자기도 내놓는다며, 마이크로소프트가 세상을 속인 것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한 일이라고는 1990년 DOS 기반의 윈도우즈를 약간 데워서 내놓고서, 아직 준비가 덜 된 불안정한 OS 커널을 NT에 심어 놓았을 뿐이다.

Cairo's Old New Vision
1996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즈 NT 4.0을 내놓는다. NT 4.0은 Object File System for NT와 Exchange Server를 포함하여 카이로 비전의 몇 가지 요소를 포기하고, 좀 더 전통적인 파일시스템을 고수하였다.

NT 4.0은 또한 윈도우즈 95와 동일한 인터페이스를 채용하였는데, 이것이 문제를 야기하였다. NT 4.0을 더 빠르게 만들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는 4.0에서 구조적으로 변화를 많이 시켰는데, 이는 NT 디자인에 있어서 심각할 정도로 다른 요소를 제약시켰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밝히겠다.

카이로의 다른 부분들은 여전히 준비중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인덱싱과 분산형 컴퍼넌트 객체 모델 등을 NT 4에 포함시키고는 디렉토리 기능을 NT 5에 넣겠다 발표하였다. NT 5는 결국 윈도우즈 2000으로 나오게 된다.

그러나 첫 발표 이후 5년이 지나도록, "카이로 기술"에 새로운 것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1995년, 스티브 잡스는 이미 넥스트의 Distributed OLE(넥스트의 Portable Distributed Objects의 윈도우즈용 포팅이다) 를 데모하였다. 뭐라도 내놓을 계획이라는 발표를 하기 2 년도 더 전 일이다. 넥스트는 이미 1993년에 해당 기술을 넥스트용으로 내보냈었다.

Novell 또한 1993년에 NDS 디렉토리 서버를 출하하였다. 윈도우즈 2000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Active Directory를 내놓으려 하기 7년 전이다.

카이로를 약속한지 오랜 후에도, 마이크로소프트는 여전히 카이로를 준비중이었다. 다른 기업들은 카이로 기능을 실제로 내놓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제일 충격적인 사실은, 마이크로소프트가 Object File System을 내놓지 않으면서 Object File System을 미래인양 계속 끌고 나갔다는 데에 있다. 2001년, 마이크로소프트는 Object File System을 차세대 시스템 Longhorn에 넣겠다고 말했다.

Hasta la Vista
경쟁 억누르기만은 카이로가 제대로 작동하였다. 90년대 마이크로소프트가 실제로 내놓았던 제품의 품질 논란도 카이로가 없애 주었다. 이에, 마이크로소프트는 동일한 전략을 10년 후에도 재사용한다. 비교해 보자.

Cairo:
  • 윈도우즈 3.0에 새로운 것이라고는 없다는 점을 숨기기 위한 1991년의 발표
  • 1994년에 나올 것이다, 1995년 후반으로 연기했다, 1997년에 데뷔시킬 예정이다. 카이로는 하나의 비전이다
  • 핵심 기능의 포기. 기존 윈도우즈 3.0을 윈도우즈 95로 윤색하는 것으로 끝남

Longhorn:
  • 윈도우즈 XP에 새로운 것이라고는 없다는 점을 숨기기 위한 2001년의 발표
  • 2003년에 나올 것이다, 2004년에 나온다, 2005년에 나온다, 2006년 후반에 나온다, 2007년에 데뷔시킬 예정이다
  • 핵심 기능의 포기. 기존 윈도우즈 XP를 윈도우즈 비스타로 윤색하는 것으로 끝남

Fraud as a Business Plan
인터넷의 마술 덕택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얼마나 약속을 형편없게 여기는지를 지적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운영체제 간 간격을 다시는 5년씩이나 끌지 않으리라 확언하였지만, 역사가 또다시 반복되는 것은 어쩐 일일까?

돌이켜 보면, 정규적으로 제품을 내놓는 것 처럼 보일 때에도 마이크로소프트가 지난 20년간 내놓은 윈도우즈는 준비가 안 되고, 실제 약속과는 거리가 먼 미봉책 시리즈였을 따름이다.

게다가 이런 미봉책들은 경쟁사 제품들보다 심각하게 뒤떨어졌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수 년 앞서 나온 제품들보다 실질적으로 훨씬 뒤떨어졌다는 얘기다.

더해서 카이로가 계획한 장미빛 미래 계획은 이미 다른 기업들이 수 년 전부터 제품으로 제공하던 것들이다. 그런데 왜 유독 마이크로소프트가 방송을 탈까? 수 십 년동안 마이크로소프트는 사기꾼이었다.

Pink vs. Cairo
흥미롭게도, 분석가들은 1990년에서 1995년까지 핑크와 코플랜드에 관련된 애플의 문제는 다루면서, 역시 유사한 문제를 겪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카이로와 NT의 문제는 집단적으로 망각하고 있다. 게다가 다시금 5년을 허풍에 가득찬 롱혼 계획으로 보냈으면서도 똑같이 망각중이다.

현실적으로, 애플은 성공스럽지 못할 때조차 최고의 개발작들을 차례로 선보였다. 두 회사 모두 1981년에 나온 그래픽 윈도윙 시스템을 거론하고는 하지만,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보다 훨씬 진보적인 그래픽 맥을 선보였었다.

애플은 또한 고유의 유닉스인 A/UX는 물론 ProDPS와 SOS, GS/OS, 뉴튼 등 여러가지 운영체제도 내놓았다. 그저 외부에 라이센스 주어서 재판매한 제품이 아닌, 모두가 다 오리지날 제품이었다.

지난 5년간, 애플은 약속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제공하였고, 마이크로소프트는 훨씬 더 많은 실패를 거뒀을 뿐 아니라, 자신의 시장지배력을 가지고 더 나은 기술을 막거나 죽이려 들었다.

최악인 것은, 지난 5년간, 약속한 바를 전혀 실천하지 않고서, 비스타가 탄성을 자아내야 할 제품으로 인식시키려 드는 것이다.

전혀 기쁘지 않다. 새롭거나 가치가 거의 없어서이기도 하고, 2001년의 약속도 완전히 못지켜서이기도 하다.

What About BOB?
업계는 현재 어떠한 비판으로부터도 "비스타를 막기"에 분주하다. 그 중에는 Robert X Cringely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는 마크 스티븐스(Mark Stephens)도 있다. "Red Box의 미신을 벗긴다"와 "애플 대 아마존 라이벌의 미신을 벗긴다"에서 루머나 떠들고 다니던 크린즐리를 기억하시는가.

그의 최신 글이 문제가 되는 까닭은, 기술 업계 온갖 종류의 역사가로서 스티븐스가 마이크로소프트 BOB에 무슨 일이 진짜로 일어났는지를 많이 까먹고 있어서이다. 그는 BOB이 "Bob은 소위 편안한 인터페이스 운영체제인데, 아무래도 필자 이름을 따라 지은 것이 아닐까 싶다."이라 하였다.

좀 말하기 곤혹스러운데, BOB은 운영체제가 아니고, "편안함"과도 거리가 멀었으며, 스티븐스의 이름도 사실은 BOB이 아니다.

사실, 마이크로소프트 BOB은 256-컬러 PC 게임인양 보이려는 DOS용 셸이었을 따름이다. 데스크톱상의 윈도우즈가 아닌, 조그마한 만화 캐릭터로 채워진 만화방이었다. 사용자들은 한 방에서 다른 방으로 원하는 곳에 따라 움직일 수 있었는데,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방 자체를 아예 나가고 싶어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BOB의 짜증나는 캐릭터를 혁신인양 유지시켰다.

즉, BOB의 캐릭터는 어시스턴트로서 오피스의 페이퍼클립에 추가되었고, 조그마한 강아지도 XP의 검색필드에 들어갔다. 실제로 파일을 전혀 찾지 못한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일 것이다.

물론 애니메이션화 된 강아지이다. BOB 덕택이다.

BOB의 진짜 문제는 BOB이 별 이슈가 못 되었다는 데에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BOB를 희생양으로 길렀다.

BOB을 둘러싼 소음은 BOB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실수가 아니며, 그 이후로 마이크로소프트가 보여준 모든 캐릭터가 BOB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잊게 만든다. 위원회가 세운 허술한 아이디어가 유치해 보이고 사용자에게 피해를 주는 웃긴 인터페이스를 만든 것이다.

그러니 BOB은 잊자. "마이크로소프트가 실제로 비스타를 팔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누가 하겠는가? 당연히 새 PC에 번들로 나온다. 분명하다. 하지만 여러가지 상황이 비스타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레퍼드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비스타 비교 시리즈에서 조사중이다. 정말 실질적인 문제랄 수 있겠다.

진짜 의문은 또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과연 카이로-롱혼 전략을 또다시 밀고 나설 것인가? 세상이 비스타로 갈아타고, 또다른 10년을, 혹은 운이 좋아봤자, 5년 후에나 내놓을 마이크로소프트 계획을 기다리며 날린단 말인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진짜 문제는 오늘날의 비스타가 아니라, 이미 구조적으로 문제가 가득찬 폐쇄적인 운영체제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기 위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노력이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는 맥오에스텐과 리눅스라는, 전에까지 맞이해본 적이 없는 진짜 경쟁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처지다.

Why This Won't Happen Again
웹 접근 이전 시절로 돌아가 보자. 잡지 등을 통해 최신 소식을 우리는 수 개월 후에나 접하였다. 발표되자마자 신제품의 시장 점유가 어느정도나 되는지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한 제품이 거의 나오자마자 대실패로 간주할 수가 없었다. 몇 달은 기다려야 했다.

기업 입장에서 봐도, 기업들은 소비자들로부터 오늘날처럼 즉각적인 정보를 받지 못하였다. 어떠한 개인도 문제를 파헤쳐서 널리 공표할 능력이 없었다. 일단은 잡지나 다른 언론을 통해 보도를 접할 수 밖에 없던 시절이다.

이러한 일반적인 무지함과 최신 정보에 대한 속도 문제때문에 당시는 허풍의 제품이 잘 먹혀 들어가서 실제 경쟁자들을 물리치기가 쉬웠다. 허풍 전문가로서야 미래에 더 나은 제품이 나와서 현재 경쟁자들에게 쏠린 관심을 이쪽으로 돌리는 데에, 아이디어만 몇 개 흘리면 됐다.

이러한 트릭을 폭로하려는 저널리스트가 없으니, 대중은 쉽게 조작을 당하여, 전혀 진실이 아닌 것을 믿게 된다. 이러한 기술이 컴퓨터 업계용으로 개발되지는 않았으며, 역사적으로 그 유래가 깊다. 뉴스를 통제하면 인민을 통제할 수 있는 법이다. 개인을 일깨우고, 전체주의의 비밀을 깨는 정보가 나오면 혁명이 일어나는 법이다.

2007년에 마이크로소프트가 맞이하게 될 것은 비스타용 OEM의 부족이 아니다. 독점적인 지위의 박탈이 일어날 것이요, 세계를 다시금 앞으로 나온다는 기술 광고로 호도(糊塗)하려는 시도도 이제는 먹히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더 잘 알고 있다.

오, 크린즐리. 이제는 뭔가가 있다는 식의 글을 당신도 그만 쓸 수 있을 것이다.


Next: Platform Crisis: Robber Baron Pir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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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The Rise and Fall of Platforms 플랫폼의 역사, 그리고 그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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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5: Microsoft's Yellow Road to Ca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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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aubon 님께서 2007-02-19 07:38 AM 에 수정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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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8, 03:53 AM   #21
sansopak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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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마이크로소프트는 맥오에스텐과 리눅스라는, 전에까지 맞이해본 적이 없는 진짜 경쟁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이 부분이 정말 와 닿는 부분같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빌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와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타이밍이 엇갈린 탓에 진짜 제대로 된 경쟁을 해 본 적이 없다는.

비스타와 레오파드의 경쟁이 기대 되는 이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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