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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9, 11:24 AM   #1
casau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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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최종병기 퀵타임


Inside iTunes : Feb 02 2004

The Secret Weapon Inside iTunes
Apple strikes back in the battle for digital media rights, production, distribution and playback.

윈도우즈용 아이튠즈가 나왔을 때 애플의 선전 문구는 'Hell froze over'였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플랫폼용 애플리케이션을 내놓는다는 일은 생각할 수 없다는 의미도 있었으리라. 사실 이보다 더 한 일이 얼마나 더 있을까?

윈도우즈용 아이튠즈의 출하는 DRM을 통한 마이크로소프트 세계 정복의 야욕에 정확히 한 방을 날렸다. 애플이 만들어낸 데스크톱 미디어 산업의 리더쉽을 되찾아오는 주역이 바로 윈도우즈용 아이튠즈다.

사실 아이튠즈를 받쳐주는 진짜 마술은 오로지 애플 최고의 기밀, 퀵타임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10년간을 오로지 퀵타임 죽이기만 해왔다. 일단 기술 우위 경쟁에서 실패하자, 마이크로소프트는 퀵타임의 존재를 없애기 위해 위협과 반칙, 사보타쥬, 마침내는 FUD(Fear, Uncertainty, Doubt)까지 동원했다.

여러 측면에서 경쟁이 있었지만, 퀵타임 미디어 레이어만큼의 오지랖이나 힘, 기능을 제공하는 기술은 없다. 퀵타임이야말로 마이크로소프트의 강철대오가 미치지 않는 디지탈 콘텐트 분야의 마지막, 그리고 최고의 희망이기 때문에 이 사실은 정말 중요하다.

The Tech behind the Tunes
아이포드와 아이튠즈 애플리케이션, 아이튠즈 뮤직스토어의 성공은 애플 최고의 기술과 핵심력의 일체감을 여실히 나타냈다. 퀵타임 미디어 레이어와 1997년 NeXT 소프트웨어사 인수로 얻게 된, 웹오브젝트 데이터베이스 애플리케이션 서버, 그리고 양질의 하드웨어와 혁신적인 인터페이스야말로 애플의 놀라운 능력이다.

애플의 아름다운 하드웨어와 직관적인 소프트웨어 조합은 더이상 왈가왈부의 대상이 아니다. 말 그대로 최고다.

웹오브젝트는 맥 오에스 텐 코코아 애플리케이션의 인터페이스로서 보통의 웹 브라우저에서, 애플 스토어, 아이튠즈와 같은 씬 클라이언트 애플리케이션을 구축할 멋진 방법을 제공해준다. "씬 클라이언트"이니 "네트워크 컴퓨팅"이니 미사여구를 만드는 건 썬과 같은 기업들이지만, 애플은 그 미사여구를 직접 행동으로 보여준다. 아마도 아이튠즈는 웹오브젝트로 만든 세계 최대, 최고의 분산 애플리케이션이자 씬 클라이언트일 것이다.

애플이 웹오브젝트에 왜 더 열정적이지 못한 지는 불확실하다. 넥스트 인수 전에, 웹오브젝트는 넥스트에서 스티브 잡스를 환호시킬만한 거의 유일한 존재였다. 델은 웹오브젝트를 사용하여 온라인 판매를 성공시켰었고, 미국 우체국 서비스도 웹오브젝트를 사용하였다. 애플 또한 웹오브젝트를 좋아하여, 전세계 딜러와 수리 센터용은 물론 support.apple.com이나 내부 시스템의 호스트용으로 사용하고있다.

지금까지 윈도우즈용 아이튠즈 최고의 비밀은 바로 퀵타임이다. 애플은 윈도우즈용 아이튠즈로 음악을 팔고, 이 음악은 아이포드 구매로 이어진다. 아이포드 1/4 가격으로 팔려나가는 경쟁 제품이나 여러가지 웹의 부트렉 뮤직 입장에서 보면, 포터블 뮤직 플레이어 시장의 70%를 호령하는 애플을 상상하기 어렵다. 물론 아이포드 자체의 거의 완벽한 디자인 탓도 있지만, 진짜 이유는 절대로 경쟁 업체들이 따라할 수 없는, 애플 퀵타임 미디어 레이어 때문이다. 왜그런지 설명해보겠다.

QuickTime Media Layer: Apple's Best Kept Secret
애플은 멀티미디어 시대가 오기 전에 멀티미디어를 정의내렸다. 1991년 5월, 첫 발표와 함께 1992년 1월 샌프란시스코 맥월드에서 정식으로 선을 보인 퀵타임은 대망의 프로젝트였다. 조악한 우표 영상으로 조롱을 받았지만, 퀵타임은 비-비디오 하드웨어에서 돌리는 최신 영상 플레이어 이상이었다. 즉, 퀵타임은 관계된 것 무엇이라도 재생시키는 아키텍쳐였다.

퀵타임은 원래 미디어용 오퍼레이팅 시스템으로 개발됐다. 오디오와 비디오, 인스트럭션, 타임코드, 그 외 여러가지 코덱 정보 등을 다룰 수 있는 퀵타임은 코덱이나 하드웨어의 차이, 데이터와 이펙트의 레이어를 모두 싱크시키는 마술을 부린다. 게다가 인터페이스 재생과 여러가지 미디어 작용을 위한 프로그래밍 환경도 제공한다.

애플은 매킨토시 이외에도 퀵타임을 제공할 계획을 세웠고, 1992년 후반기에 윈도우즈용 퀵타임을 발표한다. 애플은 우선 맥용 퀵타임 2.0을 선보인 다음, 윈도우즈용을 1994년에 선보인다. 매킨토시 시스템 7 오퍼레이팅 시스템의 통합 컴퍼넌트였기 때문에, 퀵타임 윈도우즈 버전은 베일에 가려진 매킨토시 툴박스 코드를 상당수 윈도우즈용으로 직접 포팅하여 만들어졌다. 결과적으로 퀵타임은 비디오 하드웨어에 대해 직접 접근함으로써 윈도우즈를 크게 우회한다.

자기네 마당인 PC 시장에 애플이 직접 들어기를 바라지 않던 마이크로소프트는 Video for Windows라는 경쟁 표준을 선보인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은 퀵타임의 퍼포먼스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픽 도스 애플리케이션인 윈도우즈는 미디어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듬해, 애플은 윈도우즈용 퀵타임 포팅을 위해 사용했던 개발업체, San Francisco Canyon을 고소한다. 애플의 지적재산권을 인텔에 되팔았고, 인텔이 이 재산권을 입수하여 비디오 포 윈도우즈를 만들었다는 주장이었다. 퀵타임의 퍼포먼스를 따라잡기 위해, 훔쳐낸 코드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즈를 우회하여, 퀵타임 아키텍쳐를 사용할 수 있었다. 애플은 후에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 또한 직접 고소하였고, 마이크로소프트는 결국 침해한 코드를 일부 제거해야했다.

훔쳐낸 퍼포먼스 코드를 못쓰게 되자, 비디오 포 윈도우즈는 마이크로소프트 Bob이나 WinCE 신세가 되어버렸다. 따라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름을 지우고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는 웹사이트에서 윈도우즈 1.0과 윈도우즈 2.0을 실제로 소비자들이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비디오 포 윈도우즈에 대해서는 주의깊게도 언급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1996년 당시 애플 맥 오에스는 휘청거리고 있었으며, 전폭적인 교체가 필요한 시기였다. 그래도 퀵타임은 여전했다. 애플은 가상 현실을 위한 퀵타임 VR을 발표하였고, 퀵타임 뮤직 아키텍쳐와 새로운 퀵타임 컨퍼런싱도 나왔다. 퀵타임은 그 자체로 콘텐트 제작과 유통의 확실한 선도자였다. 따라서 맥은 시장 점유율을 잃어도, 멀티미디어 CD와 멀티미디어 저작 분야에 있어서 우위를 고수할 수 있었다.

Microsoft: We hate your baby, please kill it
마이크로소프트는 퀵타임의 성공에 대해, 액티브 무비와 액티브 엑스로 맞선다. 액티브 무비와 액티브 엑스는 퀵타임이 제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계획하였다. 게다가 크로스 플랫폼이기도했다. 심지어 마이크로소프트는 새로운 서라운드 비디오 제품을 퀵타임 VR과 경쟁을 위해 발표하기도 했지만, 허풍에 지나지 않았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멀티미디어 제작 아키텍쳐로서 퀵타임을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액티브 무비와 액티브 엑스는 비디오 게임용 API와 영상 재생 시스템일 뿐이었고, 나중에는 다이렉트쇼와 다이렉트엑스로 이름을 바꾼다. 다이렉트엑스와 다이렉트쇼는 비디오와 그래픽을 다루는 윈도우즈 아키텍쳐가 되었지만, 크로스 플랫폼의 약속은 사라졌다. 그래도 마이크로소프트가 맥 시장을 무시했기때문에 애플은 퀵타임 개발을 지속할 홈베이스 역할을 계속할 수 있었다.

퀵타임은 버전 3 발표와 함께 써드 파티의 지원도 얻어낼 수 있었다. 버전 3 이후로는 웹브라우저 안에서의 재생도 단순화됐고, 다운로드 전에 재생도 제공되었다. 이 기능은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해 직접적으로 타격을 미쳤다. 인터넷의 충격을 원래 무시했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이제 데스크톱 웹 브라우저와 모든 인터넷 서버, 특히 매력적인 비디오 스트리밍 시장을 지배하는 위치에 서있다.

애플의 수석 부사장 티배이니언(Avadis Tevanian Jr.)은 마이크로소프트 반독점 재판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에게 와서 퀵타임 제공을 멈추라고 요구했다고 증언하였다. 그에 따르면, 애플 중역인 피터 호디(Peter Hoddie)가 마이크로소프트 대표, 크리스토퍼 필립스(Christopher Phillips)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들 지금 퀵타임을 죽이라는 거요? 아이를 죽이라는 거요?" 필립스의 답변이다. "그렇습니다. 아이를 죽이기 원합니다."

전력을 다해 미디어 콘텐트와 유통 시장을 장악하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애플은 퀵타임 개발을 지속한다. ISO도 MPEG-4 표준 개발 아키텍쳐로서, 마이크로소프트의 Advanced Streaming Format 대신 퀵타임을 선택함으로써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일격을 가했다.

이에 마이크로소프트는 복잡한 멀티미디어를 저-광대역 커넥셔네서도 제공하는 기술인 Chromeffects를 발표하여 대응한다. HTML과 XML, C++, VBScript, Jscript를 사용하여, 웹 브라우저를 오디오/비디오 재생이 담긴 3D 화면으로 바꿔주는 기술인데, 1998년 8월 맥월드는, Jupiter Communications의 분석가, 데이빗 카드(David Card)의 말을 인용한 기사를 출판했다. "크롬이펙트는 멋진 소프트웨어입니다. 제가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웨어를 멋지다고 할 때가 흔치 않죠. 애플은 경쟁할만한 것이 없어요."

그해 말, 마이크로소프트는 크롬이펙트를 보류시켰고, 애플은 비디오 스트리밍에 의욕적으로 뛰어든다. 1999년 스타워즈 트레일러 640만 다운로드를 기록한 이후, 애플은 표준 인터넷 프로토콜을 사용한 스트리밍 기술의 퀵타임 4를 발표하고, 퀵타임 TV라 불리는 영화 트레일러 다운로드 사이트를 위해 Akamai와 손잡는다.

후에 스트리밍 서버 시장에 뛰어든 애플은 기존 업체인 리얼플레이어와 마이크로소프트에 이어 3위를 차지한다. 자발적인 다운로드 외에는 새 PC에 설치할 방법이 없었기에, 퀵타임을 뿌릴 곳은 애플의 영화 트레일러 페이지 뿐이었다. 여러가지 디지탈 카메라에 번들시키기는 했지만, 데스크톱을 지배한 당사자는 마이크로소프트였다.

QuickTime Strikes Back
감히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도전하는 애플은 자바와 같은 다른 기술의 위협으로부터 퀵타임을 구해낸다. 당시는 마이크로소프트와 다른 기술들이 합세하여, 퀵타임을 '죽기 직전'까지 몰아버릴 뻔 했었다. 넥스트 인수 이후, 애플은 넥스트로부터 오퍼레이팅 시스템은 물론 경영팀까지 받아들였고, 콘텐트 유통계를 장악하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계획을 무너뜨릴 공격을 시작하였다.

우선 애플은 퀵타임을 방송계와 비디오 전문가들에게 강력하게 밀어붙인다. 거의 죽어가고 있던 매크로디미더의 퀵타임 기반 비선형 필름 편집 프로젝트를 애플이 인수하여 탄생한 제품이 바로 파이널 컷 프로였다. 이 프로그램은 전임 어도비 프리미어의 개발자가 이끌었다.

필름 편집자들은 파이널컷프로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퀵타임의 마술로 미디어 문서를 컨버트시키고 빠르게 영상화를 시켜주는 파이널컷 프로는 버전이 4가 넘어가자, 이제 업계 선도자인 아비드와의 경쟁에 임하게 된다. 애플은 또한 셰이크 개발자인 Nothing Real과 Logic의 개발자, Emagic을 인수하여, 하이엔드 디지탈 제작 세계를 움직일 기반을 쌓아두었다.

퀵타임은 로우엔드도 장악하였다. 여러가지 소비자용 애플리케이션의 핵심 컴퍼넌트로 퀵타임이 쓰이기 때문이다. 퀵타임은 대부분의 디지탈 카메라를 움직이며, 특히 비디오와 오디오 클립에 많이 쓰인다. 애플 파이어와이어는 모든 디지탈 캠코더에 표준 DV 콘텐트로 탑재되어있으며, 오디오-인 잭을 사용하는 것만큼이나 쉽게 DV를 만들게 해준다. 퀵타임은 '아이라이프' 수트의 성공의 비결이기도 하며, iChat/AV도 나오기에 이르렀다.

D.R.M.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
물론 퀵타임 아키텍쳐는 음악 듣기 전용이기에 너무 아깝다. 퀵타임은 다시금 DRM 영역의 핵심 기술이 되어가는 중이다. DRM은 디지탈 미디어 관리를 목적으로 저작권자가 원하는 방식으로만 해당 파일을 쓸 수 있도록 한다. 콘텐트 제작업자와 유통업자, 마케터들에게 DRM은 매우 골치아픈 분야다. 사용자들이 자기들 생각만큼 돈을 내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디오가 처음 등장할 때에도, 시청자들이 선전없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녹화하거나, 영화를 복사해서 이윤을 잃으리라는 걱정이 많았다. 디지탈 오디오 테이프가 나올 때에도 음반사들은 복자 방지 시스템을 표준으로 만들어야한다는 법석을 떠는 통에 DAT의 가격은 올라가고, 그 문제가 별 문제가 안 될 때까지 빛을 못보았다. 저장 가능한 광 디스크 기술이 나올 때에도, 음반사들은 다시금 합법적인 사용만으로 제한하는 방법을 찾기에 혈안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민첩하게 미디어 사용을 심각하게 제한시키는 아키텍쳐를 디자인하였다. 윈도우즈 미디어라는 이니셔티브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는 미디어 제작자가 잠궈놓은 특정한 파일 포맷을 사용하는 재생 디바이스 디자인을 라이센스한다. 각기 다른 수준의 보안을 입힌 윈도우즈 미디어는 제작자에게 각기 다른 수준의 편집증을 안겨다주는 한편, 사용자들도 혼란스럽게 만든다.

윈도우즈 미디어가 나오기 전에, CD 구매자들은 CD를 사면 어떤 CD 플레이어에서도 재생시킬 수 있었고, CD에서 곡을 옮겨 디지탈 mp3로 만들 수 있었다. 윈도우즈 미디어에서는 특정한 플레이어나 한 대의 컴퓨터에서만 구입한 트랙을 돌릴 수 있다. CD로의 녹음은 가능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등록비를 내지 않는 경우, 모든 콘텐트는 갑자기 멈춰버리기도한다. 부가적으로 구매한 트랙의 CD 녹음을 실패한다면, 윈도우즈 미디어는 이 작업으로 인해 '권리'가 말소되었다고 판단내린다. 다시는 못 굽는 것이다.

제작자와 유통업자들은 윈도우즈 미디어를 반색하였지만, 소비자들은 윈도우즈 미디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소비자들에게 다른 대안이 없는 한, 윈도우즈 미디어는 결국 시장을 장악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마이크로소프트의 희망대로 mp3은 사라지고 자기들이 소유한 윈도우즈 미디어 포맷이 시장을 점령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행히도, 애플이 윈도우즈용 아이튠즈를 내놓으면서 훨씬 소비자 친화적인 DRM을 선보였다. 애플의 DRM은 구입한 곡에 대해 괜찮은 정도의 제한만 가하면서도, 제작업자와 유통업자들도 보호해주는 DRM이다.

애플의 DRM 역시 퀵타임 기반이다. 아이튠즈뮤직스토어에서 구입한 트랙은 맥이건 PC건 퀵타임에서 모두 재생 가능하며, 애플의 아이포드에서도 들을 수 있다. 게다가 CD로 구워내면 어느 플레이어에서건 들을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 시스템이 윈도우즈 미디어를 지원하지 않는다면서, 아이튠즈가 소비자들이 마이크로소프트 기술을 구입할 권리를 제한시킨다고 불평하였지만, 윈도우즈 사용자들은 더더욱 아이튠즈를 다운로드받고 퀵타임을 설치하는 것으로 화답하였다.

애플은 자신을 인터넷 음악 구입의 출발지로 자리매김하였다. 보호받는 미디어로서 합리적인 표준을 제공하면서, 제일 훌륭한 뮤직 플레이어를 개발한 애플은 소비자들에게 윈도우즈 미디어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였다. 이번주 애플은 수천만 윈도우즈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최신 버전의 퀵타임 소프트웨어를 설치했노라고 발표하였다. 크로스 플랫폼 미디어 제작과 재생이 대폭 확장된 셈이다. 정말 지옥불도 얼어붙었다.

coverWatch '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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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roughlydrafted.com/insideitunes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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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Q

casaubon 님께서 2005-06-19 06:45 AM 에 수정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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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22, 04:29 AM   #2
haha1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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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소봉님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궁금해하던게 다풀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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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22, 05:22 AM   #3
맥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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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최종병기 퀵타임

인용:
casaubon 님이 쓰신 글:
그래픽 도스 애플리케이션인 윈도우즈는 미디어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픽 도스 애플리케이션인 윈도우즈" 크헉 (>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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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24, 05:29 AM   #4
li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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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나라 애기 같군요
울 나라에선 WMV가 표준 같은데
아쉽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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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24, 09:26 PM   #5
simon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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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Re: Re: 최종병기 퀵타임

인용:
맥맨이야 님이 쓰신 글:
"그래픽 도스 애플리케이션인 윈도우즈" 크헉 (>o<)b
windows 3.1까지 윈도우즈는 도스에서 'win' 이라고 '쳐서' 실행시켰었습니다.
windows 95나, 98도 'win.com'을 autoexec.bat넣은 수준에 불과 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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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3, 10:36 PM   #6
casau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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퀵타임을 죽여라

Microsoft's Plot to Kill QuickTime

Tuesday, March 13, 2007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간의 1997년 협정에 따라, 두 회사는 이제 경쟁자라기보다는 협력자가 된 듯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여러 모로, 사실이기는 하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맥 오피스 98이라는 업데이트를 단행했을 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의 자바 가상머신을 탑재한 인터넷 익스플로러 4.0의 출하에도 투자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없었더라면, 애플은 클라리스웍스 재작성과 함께, 스스로 자바 가상머신 제작에 나서야 했을 것이다. 겨우 몇 달 전에 지원을 멈춘, 오픈독에 기반하는 사이버독 웹브라우저도 일단 되살려야 했을지 모른다.

써드 파티라는 대안이 있긴 했다. 자바는 썬, 웹브라우저는 넷스케이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애플의 이미지는 상처입었을 것이다. 당시 써드파티들은 대거 맥 플랫폼에서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약은 대단히 중요해졌다.

Two Birds, One Stone
마이크로소프트도 얻은 것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조금만 수고를 더 들여서 오피스 지배구조를 유지할 수 있으면서, 수 억 달러의 이윤을 계속 벌어들이게 됐기 때문이다.

무료인 인터넷 익스플로러로는 직접적인 이득이 없었지만, 맥에서도 기본 브라우저가 됐기 때문에 넷스케이프와 선을 한 방에 날릴 수 있게 되었다.

맥 플랫폼을 활용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이제 2류급이었던 인터넷 익스플로러 3.0 브라우저의 시장점유율을 늘려서 3년 안에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를 격파한다.

사실 넷스케이프의 실패는 스스로의 잘못도 있었다. 그래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움직임이 워낙 신속했고, 분석가들도 모두 마이크로소프트 편에 서서 마이크로소프트가 무엇이든 계획대로 내놓으리라 여론을 조성하였다. 그런 기류에 반대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Veni, Vidi, Vici
역사를 보면,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력은 곧 한니발 렉터와의 저녁식사와 같다. 스스로 몸소 양념에 구른 다음 오븐으로 점프하는, 그런 식이었다.

Course 1: the Desktop OS Monopoly

  1. 마이크로소프트는 DOS로 판매를 하기 위해, CP/M 코드를 꾀어들인 다음, Digital Research의 경쟁을 막았다.
  2. 마이크로소프트는 IBM을 발판으로 삼아 훔쳐서 팔았던 MS-DOS를 표준으로 등극시킨다.
  3. Compaq이 IBM 하드웨어를 복제한 뒤, 마이크로소프트는 IBM을 PC 클론 업체로 전락시킨다.
  4.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나마 남은 호의를 갖고 IBM에 접근하여, DOS 대체품으로 OS/2를 개발한다.
  5. VMS 엔지니어들을 고용한 마이크로소프트는 VMS 기술을 활용하여 NT를 만든다. 그 다음 마이크로소프트는 IBM의 OS/2와 결별한다.
  6. NeXTSTEP과, Solaris/Intel, BeOS 모두 독점적인 OEM 계약때문에 시장에 들어갈 길을 못찾게 된다.

Course 2: the Office Suite Monopoly

  • 독점력을 활용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95 API를 사용하여 DOS와 OS/2 소프트웨어 시장을 모조리 파괴한다.
  • 마이크로소프트는 본래의 맥 오피스 애플리케이션을 윈도용으로 포팅시킨다. 이는 Lotus 1-2-3과 WordPerfect를 물리치게 된다.
  • 독점적인 파일포맷과 번들을 통해,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피스 경쟁자들에게 어떠한 시장도 넘겨주지 않는다.

Course 3: the Windows Server Monopoly

  • 마이크로소프트는 모자이크 코드를 사용하여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출하하기 위해 SpyGlass와 협력했다가 결별한다.
  • 윈도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한 데 묶은 마이크로소프트는 웹플랫폼의 위협이었던 Sun과 협력하였다가 내친다.

And for Dessert: QuickTime
마이크로소프트 협력사들은 일단 협력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가, 마이크로소프트가 조리하는 수프 재료가 되어버린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다음 목표는 애플의 QuickTime이었다.

선 자바처럼, 퀵타임 역시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독점을 위협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의존적이지 않은 코드를 개발자들이 구축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퀵타임을 잡아삼키려는 진짜 의도는 마이크로소프트 고유의 미디어 콘텐트 툴의 확보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콘텐트 오쏘링"이 가치 있는 시장이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반면 애플은 퀵타임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미디어 출판으로 자리매김했었다. 어도비의 PostScript가 데스크톱 출판혁명을 일으켰던 것과 마찬가지로, 애플은 퀵타임을 사용하여 오디오와 비디오라는 차세대 출판 혁명을 일으키려 하였다.

QuickTime: Designed to Create
퀵타임은 단순한 파일포맷이나 재생시스템이 아니라, 전 미디어 아키텍쳐이다. 퀵타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설명하려면, 인쇄형 출판과 미디어 제작을 비교해야 한다.

데스크톱 출판용 애플리케이션들은 2차원 그래픽을 그리고, 파일로 저장하며, 인쇄를 하기 위해 포스트스크립트 언어를 사용한다. 포스트스크립트가 그래픽 디자인의 조리법을 편집 가능한 상태로 갖는다.

그래픽은 JPEG처럼 재생-전용 파일로 저장되며, 더 이상 수정은 불가능해진다. 하지만 포스트스크립트 파일은 문서 편집과 재배치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갖고 있다. 반면 JPEG은 완성된 결과물의 최종 스냅샷만을 제공한다.

멀티미디어 제작 애플리케이션은 퀵타임을 사용하여, 비디오나 오디오, 효과, 자막, 프로그래밍의 타임라인을 관리하고, 이를 오디오나 비디오, 인터랙티브 비디오의 형태, 혹은 파일로 저장시킨다.

특히 ".MOV" 영상 파일포맷은 본래 미디어 컨테이너 파일로서 퀵타임용 파일포맷이다. 또한 codec이 허용하는대로 데이터 스트림을 .MOV 컨테이너 파일 안에서 다룰 수 있다.

달리 말해서, MP3 노래나 JPEG 사진 모음, MPEG 비디오트랙 모두 퀵타임에서 레이아웃을 잡을 수 있다는 의미다. .MOV 컨테이너 파일은 그러한 여러 가지 다른 내용물을 집어 넣는, 봉투의 역할을 한다.

퀵타임 컨테이너 파일은 특히 재생용 파일을 재작성할 필요 없이, 편집을 허용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 그런 면에서 퀵타임 컨테이너 파일은 독특하다.

심지어 파일은 다른 파일에 저장된 데이터로 참조할 수 있다. 이러한 융통성 덕택에 퀵타임은 완전한, 그리고 세련된 오쏘링 환경을 구축해준다. 그저 단순한 재생-전용 시스템이 아니라는 의미다.

Video for Windows: Designed to Fill Space
애플이 1991년, 퀵타임 기술을 선보이자, 마이크로소프트는 황급히 Video for Windows라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1년 뒤 선보인다. 그런데 애플은 미디어 파일을 크로스-플랫폼으로 재생시키기 위해, 퀵타임의 윈도 포팅 계획까지 발표하게 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세련된 미디어 제작을 위한 복잡한 프레임웍을 개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저 유사한 영상 재생기능만 겉으로 보여주기 원하였다. Video for Windows는 .AVI라는 컨테이너 파일 포맷을 소개한다. 이는 퀵타임의 .MOV처럼 여러가지 코덱을 사용하여 미디어를 담을 수 있는 포맷이다.

오늘날 .AVI는 주로 비디오 파일공유에 쓰인다. 보통 DivX 영상을 .AVI로, 퀵타임 컨테이너 파일을 .MOV로 착각하여, "DivX가 퀵타임보다 낫다"는 사용자들이 많다. 컨테이너 파일포맷은 비교가 가능하지 않다.

DivX 인코딩 영상도 .MOV 파일로 내놓을 수 있으며, 퀵타임 또한 .AVI 컨테이너를 간단히 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속에 들어간 오디오나 비디오 포맷을 재생시키려면 적절한 코덱이 설치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AVI는 세련된 오쏘링 지원을 전혀 제공하지 않는다. 사실 AVI는 80년대에 만들어진 IFF를 재활용한 포맷에 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세련된 코덱으로서의 AVI는 상당히 심각한 제약을 갖게 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Video for Windows는 재생용 기능, 그리고 퀵타임으로 쏠린 여론을 되돌리려는 목표마 갖고 있었다. 게다가 윈도상에서 만들어졌기에, 어쩔 수 없이 윈도가 제공하는 세련되지 못한 그래픽 하부시스템을 사용하여 제작할 수 밖에 없었고, 그 질은 안 좋았다.

QuickTime for Windows vs QuickTime for Video for Windows
이윽고 매킨토시 네이티브 드로잉 시스템 다수를 포팅시켜서 만든 애플의 윈도용 퀵타임이 나오게 되는데, 윈도용 퀵타임 퍼포먼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Video for Windows를 크게 능가하였다. 이는 애플이 GDI Windows 그래픽시스템을 우회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이 기대보다 애플이 PC용으로 훨씬 부드러운 비디오를 제공하자,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은 경악한다. 이에 따라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에게 1993년, 윈도용 퀵타임의 무료 라이센스를 요구하였지만 애플은 거절한다.

그동안 인텔은 마이크로소프트의 Video for Windows를 하드웨어로 가속시키기를 원했다. 인텔은 애플의 파트너인 Canyon과 접촉하여 퀵타임과 비슷한 퍼포먼스를 제공할 드라이버 작성을 요구하였다.

Canyon이 애플코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인텔은 Canyon에게 단독 개발을 요청하지 않고, 비현실적인 제작기간만을 부여하였다.

인텔의 기대대로, Canyon은 애플코드를 그대로 인텔로 가져왔고, 이를 마이크로소프트에게도 라이센스한다. 이리하여 1994년, Video for Windows는 갑자기 큰 개선을 보이게 된다. 애플은 조사에 들어갔고, 마이크로소프트가 퀵타임과의 경쟁을 위해 퀵타임으로부터 코드를 훔쳐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애플은 소송을 제기하였고, 결국 훔쳐낸 코드의 배포를 막아내는 데에 성공하지만, 이 재판 역시 1997년,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간의 합의로 해결을 보게 된다.

A New Round of Competition
애플은 퀵타임 개발을 지속하여, 기능을 퀵타임 VR과 뮤직 신디사이징 기능, 스프라이트 애니메이션 트랙 등으로 확대시킨다. 애플 엔지니어들은 또한 HyperCard 프로그램 트랙을 영상으로 임베딩시키는 "QuickTime interactive"도 작업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당시 애플은 제품-위주의 개발에서 멀어지고 있었고, 결국 분명한 활용이 없이 기술만 대거 양산하게 된다. 결국 이는 Copland 재앙으로 번졌고, 우수한 엔지니어들이 대거 애플을 빠져나가게 된다. 가령 퀵타임 개발을 개척해낸 브루스 릭(Bruce Leak)은 1995년, 애플을 떠나 WebTV를 설립하였다.

1997년 초, 마이크로소프트가 이 WebTV를 인수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WebTV의 이름을 Video for Windows to ActiveMovie로 변경시킨다. 그리고는 Active 브랜딩에 맞춰서 여러 가지 인터넷 노력을 펼치게 된다.

  • ActiveX: 불안한 보안 환경을 조성하여, 웹-기반의 악성 소프트웨어를 탄생시킨 OLE 스크립팅이다.
  • Active Channel: Push 구독-기반의 광고를 의도하였다. 웹을 또 다른 TV로 만드려는 목적이었다.
  • Active Desktop: 윈도 데스크톱을 인터넷 익스플로러 웹브라우저식으로 교체하였다.

퀵타임에 대한 진정한 경쟁자라는 점을 돋보이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는 맥용 액티브무비도 제공하겠노라 약속한다. 퀵타임의 대체품을 제공하겠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Surround Video라 불리우는 QTVR 복제본을 포함하여, 퀵타임의 여러 기능을 제공하겠노라 약속한다. 물론 결코 실제로 제공하지는 않았고, 맥용 액티브무비 또한 나오지 않았다. 허풍성 소프트웨어였을 따름이다.

Knife The Baby: 1997
같은 해,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는 특허와 인터넷 익스플로러, 오피스를 두고 협상을 하고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피스 독점력을 활용하여 애플을 움직이려 하였다.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와 선 자바를 물리치기 위해서일뿐만 아니라, 애플의 퀵타임을 죽이기 위해서였다.

당시 퀵타임 버전은 1994년 이후 여전히 2.x 대였다. 거의 맥용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만큼 진척이 더뎠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멀티미디어 오쏘링에 있어서 애플이 관심이 떨어졌나보다 확신하였다. 아마도 윈도용 재생 기술만 원하잖을까 단정지었다.

1997년 7월 협의 이전, 마이크로소프트의 크리스토퍼 필립스(Christopher Phillips)는 퀵타임 관리자인 피터 호디(Peter Hoddie)에게 이렇게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we want you to knife the baby."

애플은 거절했다. 그리고 퀵타임은 그 협정에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퀵타임 공격이 끝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공격이 시작되었다.

Give It Up, Or We'll Take It
마이크로소프트 반독점 재판에서 애플의 에이비 티베이니언(Avie Tevanian)과 필 실러(Phil Schiller), 팀 샤프(Tim Schaaff)는 모두 마이크로소프트가 계속 자기들에게 접촉했다 증언하였다. 미디어 시장에서 애플이 발을 빼기만 하면, 애플의 퀵타임 오쏘링을 살려주겠다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애플은 윈도용 퀵타임의 포기를 거듭 거절하였다. 만약 애플이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미디어 재생을 넘기지 않을 경우, 마이크로소프트가 직접 오쏘링 툴을 개발하여 애플을 물리치겠다는 점을, 마이크로소프트는 분명히 하였다.

조서(Deposition testimony)를 보면, 마이크로소프트 멀티미디어 기술부 관리자인 에릭 엥스트롬(Eric Engstrom)은 애플에게 이렇게 위협하였다. "필요하다면 150명의 엔지니어를 동원하여 시장에서 애플을 없애기 위해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하겠다."

당시 애플의 퀵타임 그룹 엔지니어는 모두 합쳐봤자 100여명 정도였다.

엥스트롬은 오쏘링 시장이 너무 작기 때문에 빌 게이츠도 오쏘링 프로그램에 별 관심이 없었다고 증언한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도 말하였다. "미디어 시장에서 애플을 몰아내기 위해, 오쏘링툴에 투자가 필요하다면, 필요한 모든 자원을 들여서 목표를 이루겠습니다."

"멀티미디어 재생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며, 누구도 윈도 상에서 그 시장을 차지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겁니다. 미디어 재생은 운영체제의 한 부분입니다. 따라서 애플은 윈도상에서 멀티미디어 재생 기술을 포기해야 합니다." 한 전화 인터뷰에서 엥스트롬이 한 말이 저랬다.

Apple Fights Back
애플은 맥사용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넥스트스텝을 맥으로 옮겨야 했고, 거기에도 상당한 도전이 잇따랐다. 게다가 기대보다 훨씬 어려웠다. 엔지니어의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맥 시장으로서 보더라도 큰 도박이었다.

대규모 맥 개발사들은 Rhapsody 계획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이들은 애플에게 계획을 뒤바꾸라 요구하였다. 보다 코플랜드처럼 보이는 새 운영체제를 만들라는 요구였다.

넥스트가 내부에서 애플을 재구축하기 시작하자, 애플 핵심 자산이 퀵타임임이 드러났다. 애플은 이제 퀵타임의 개편과 현대화를 착수하였다.

그리하여 3.0이 나온다. 퀵타임 3.0은 HyperCard와의 통합을 지향한 QTi를 축소시킨 반면, 영상 내에서의 인터랙션을 새로운 수준으로 개선시켰다.

또한 퀵타임 3.0은 여러가지 파일포맷 임포터와 효과, 파이어와이어 지원, 고화질 소렌슨 비디오와 QDesign 오디오코덱을 제공하였다. 넥스트의 입김이 들어간 애플의 다른 프로젝트들처럼, 퀵타임 역시 공개표준과의 통합도 지원하였다. 그런데 퀵타임의 업데이트 노력과는 별개로, 당시 퀵타임은 애플이 1991년부터 개척해온 멀티미디어시장에서 3위로 추락하고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에 재생용 소프트웨어를 번들시키면서 퀵타임 시장을 차지해 나아갔다. 애플은 이미 약해진 상태였다. 그렇다면 마이크로소프트는 왜 굳이 애플을 계속 위협해 들어갔을까?

The Real Reason Why Microsoft Wanted QuickTime's Share
당시 유행은 인터넷 스트리밍 재생이었다. 여전히 애플에 속해 있는 콘텐트 오쏘링이 아니었다.

오쏘링에는 실질적인 경쟁자가 없었다. 덕분에 퀵타임은 살아남게 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유행에 따라 일단 스트리밍으로 목표를 잡는다. RealNetworks가 오디오, 비디오 스트리밍 기술에 있어서 애플을 추월했기 때문이다.

1997년, Real은 스트리밍 시장의 85%를 점유한 시장 지배자였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는 리얼을 죽이기 위해 온갖 수단을 강구하였다.

그 방법이란 역시 윈도 독점을 활용한 마이크로소프트 미디어 스트리밍 소프트웨어 번들이었다. 애플에 대해서는 오피스 독점력도 활용했었고, 스스로 윈도 미디어의 배포자로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넷스케이프에 적용한 동일한 전술을 써서, 리얼에게도 적용시킨다. 일단 윈도에 묶인 무료 클라이언트 소프트웨어를 무상배포하고, 윈도 서버에서만 돌아가는 독점적인 서버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것이었다.

스트리밍 비디오의 경우, 마이크로소프트는 스트리밍 데이터 서버로서 Net Show를, 독점적이고 문서화되지 않은 스트리밍 프로토콜로서 Windows Media Players를 선보인다. 상호운용 가능한 경쟁은 전혀 제공하지 않을 터였다.

Advanced Streaming Format
애플이 자기 계획 실천에도 실패했을 무렵, 마이크로소프트는 퀵타임을 완전히 없애기로 마음 먹는다. 이리 하여 나온 것이 Advanced Streaming Format이었다. 이 포맷은 Video for Windows로 태어난 액티브무비에서 쓰이는 오래된 .AVI를 대체할 새로운 컨테이너 포맷이었다.

ActiveMovie 자체는 다시금 이름을 DirectShow로 바꾼다. 낮은 퍼포먼스 문제가 갖는 이미지에서 떨쳐나기 위해서였다. 또한 윈도 98에서 하드웨어와 직접 연동하는 컴퍼넌트에 있어서 다이렉트라는 브랜드를 사용하기도 한다.


  • Direct3D: 특히 게임용 3D 그래픽에 있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적인 OpenGL 대안이다.
  • DirectX: 역시 윈도에 묶여 있으며, 나머지 비디오 게임 관련 개발툴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DirectShow 프레임웍과 Windows Media Player 클라이언트, 그리고 새로운 ASF 컨테이너 포맷은 모두, 애플이 퀵타임이라 부르는 것에 경쟁하기 위한 컴퍼넌트였다.

One Ring to Bind Them All
마이크로소프트는 ASF 컨테이너 포맷을 새로운 MPEG-4 사양의 ISO 표준으로 올릴 계획이었다. 또한 서버와 플레이어 개발도 시작하였다.

ASF 컨테이너 파일은 또한 Windows Media Video와 Windows Media Audio 파일포맷의 기반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존의 모든 표준 비-DRM 포맷(DivX와 MP3 오디오를 포함한다)를 ASF로 대체할 계획이었다. WMA와 WMV 파일도 ASF 파일이다.

그러나 ASF는 Windows Media와 Janus DRM에 묶여 있었다. 또한 중앙 명령 없이는 그 어떤 것도 허용이 안 되는 PC, Palladium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세상도 마이크로소프트가 제시하는 표준으로 움직이는 듯 해 보였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모든 표준을 세우고, 채택하며, 조절하고, 지불받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마이크로소프트 계획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Apple Gets In the Way
MPEG(Moving Picture Experts Group)은 ISO와 같이, 오디오와 비디오, 그 외 다른 기술 사양에 대해 산업표준을 정하는 곳이다.

  • MPEG-1: CD-ROM과 VCD에서 쓰였다.
  • MPEG-2: DVD와 유선방송, 인공위성 텔레비전 방송에 쓰였다
  • MPEG-3: HDTV에서 쓰일 목적이었으나, 후에 MPEG-2가 더 적합하다는 사실이 발견되자 취소된다.
  • MPEG-4: 인터넷과 휴대용 기기 미디어용으로 계획중이었다.

MPEG 표준은 무료가 아니지만, 저렴한 가격에 상호운용 가능한 기술을 공유한다. 인코딩과 디코딩, 방송이나 배포용 로열티는 제품당 1달러 수준이다. 게다가 그 로열티를 특허와 표준을 세우는 20여개의 회사들이 공유하게 된다.

ASF를 MPEG-4의 기반으로 세우려는 마이크로소프트는, 이곳에서 애플의 퀵타임 컨테이너 포맷과 맞닥뜨리게 된다. 애플은 선과 IBM, Oracle, Silicon Graphics, Netscape와 같이 파일포맷을 제출하였고, 1998년 2월, 마이크로소프트의 격렬한 저항헤도 불구하고, ISO가 퀵타임을 표준으로 채택한다.

애플과 업계간의 협력 관계가 관건이었다. ASF는 업계의 주된 관심사도 아니었다. 이 점이 마이크로소프트를 화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전혀 다른 포맷과 호환성도 없으면서, 검증도 안 된 컨테이너 포맷에 누가 라이센스 요금을 내려 할까? 갑자기 윈도미디어 전체에 대한 매력마저 뚝 떨어지고 말았다.

Microsoft Sabotages QuickTime on Windows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보고 미디어 재생시장에서 빠지라며 위협을 하고 있는 동안, 티베이니언은 반독점 재판 증언대에 올라 "마이크로소프트가 퀵타임을 파괴하기 위한 여러 단계를 밟았습니다"라 말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사보타주는 다음과 같았다. "특정 종류의 멀티미디어 파일을 퀵타임이 못 다루게 하기 위해, 기술적인 우회를 마련하고, 일부러 에러 메시지를 포함시키도록 하였습니다. 이러면 퀵타임이 잘 안 돌아간다는 잘못된 인상을 주게 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변호사들은 티베이니언이 확실한 증거를 내놓을 수 없으리라 주장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물었다. "티베이니언 박사님. 퀵타임을 해치기 위해 만들어진 비호환성의 증거를 갖고 있거나, 지식을 갖고 있진 않으시겠죠?"

당시 문제는 퀵타임 설치 이후 윈도 95가 나타내는 경고 메시지였다. 이 메시지는 특정 파일 종류를 더 이상 재생시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면서 마이크로소프트 플레이어를 기본 미디어 애플리케이션으로 재설치하라는 경고였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 법률팀의 주장처럼 우연이 아니었다.

If It’s Broke, Don’t Fix It
1997년, 티베이니언은 게이츠에게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보낸다. "윈도용 IE4가 퀵타임과 퀵타임 VR을 비활성화로 만들어놓는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알기로 IE4는 퀵타임 대신 액티브무비로 .MOV 파일을 볼 수 있도록 기본 설정을 해 놓습니다. 아시다시피 .MOV 파일은 오랜동안 퀵타임 파일이었습니다. 이 점을 살펴보셔서 다시 되돌릴 수 있겠습니까?"

게이츠는 이 이메일을 마이크로소프트 내부에 회람시킨다. 그리고 다음의 메시지도 추가시켰다. "우리 브라우저와 JAVA 관계에서 빼낼 수 있는 최대한을 빼내기 바랍니다. 달리 말해서, SUN과 넷스케이프에 대항해서 나올 실질적인 이득입니다. 에이비가 누구랑 일하겠나요? 애플을 SUN과 결별시키게 할 확실한 계획이 있습니까?"

1년 뒤, 마이크로소프트는 "버그를 발견했다"면서 모든 책임을 버그에 돌렸다. 그러나 윈도와 퀵타임 간의 문제는 끊이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에게 퀵타임 플러그인의 재작성을 권유하였다. 퀵타임 플러그인을 인터넷 익스플로러하고만 연동하는 폐쇄형 액티브 엑스 컨트롤로 바꾸라는 주문이었다.

그러나 넷스케이프 브라우저와 퀵타임 간에는 문제가 없었다. 재판에서 애플은 22가지 미디어 파일 포맷의 표를 보여주었다. 모두 윈도95 상의 넷스케이프 4에서 퀵타임을 통해 돌릴 수 있는 파일이었다. 그러나 인터넷 익스플로러 3는 15개만을 보여줄 수 있었고, IE 4.0은 11개 뿐이었다. 그것도 윈도98상에서는 달랑 4개였다.


Blame Apple!
마이크로소프트는 문제해결을 발표하면서, 원래 애플과 잘 대화가 안 되었노라 말한다. 그러면서 보도자료에서는 모든 책임이 애플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다른 회사 제품 문제의 해결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책임이 아님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고객을 위해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정내렸습니다. 애플의 프로그래밍 실수와 근거없는 주장, 법정 공격에 소비자들이 비용을 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Paul Thurrott은 역시나 이 보도문을 재빠르게 내세워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퀵타임 사보타주가 애플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며, 마이크로소프트는 다만 모두가 잘 어울리기만을 원했노라 확신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렇게 마이크로소프트를 축하해 주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가 동원되면, 애플 컴퓨터는 단두대 앞에 누워있기 될 것이다."

Microsoft Threatens QuickTime Partners
윈도상의 퀵타임 앞에 장애물까지 놓으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퀵타임 협력업체들까지 위협한다. 퀵타임과 관련된 모든 라이센스나 배포, 개발을 중단하라는 위협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이크로소프트가 내놓을 제품과 경쟁할 준비나 해 놓으라면서 말이다.

Hardware: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 PC OEM으로 퀵타임 번들을 없앨 수 있다고 여겼다. 법정 증언을 보면, 마이크로소프트가 컴팩의 퀵타임 라이센스를 어떻게 없애려했는지가 나온다.

컴팩은 경쟁사 PC로부터의 차별화를 위해 퀵타임 라이센스에 열광적이었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컴팩에게 자신의 계획을 일러주자, 컴팩은 갑자기 퀵타임 번들을 포기하고, 애플과의 대화도 거부하였다.

Applications: 오랜 기간 애플의 파트너이면서, 퀵타임에 기반한 영상편집 제품을 내놓던 Avid Cinema에도 마이크로소프트가 들이닥쳤다. 당시 Avid는 소비자용 비디오 편집 프로그램의 발표를 준비중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Avid 엔지니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퀵타임을 제품에서 없애시오." 몇 달 후, Avid는 마이크로소프트 AAF 포맷을 사용하는 등,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력을 발표한다.

Drivers: 비디오 캡쳐카드 회사인 Truevision에도 압박이 가해진다. 비디오 캡쳐카드의 퀵타임용 드라이버를 개발중이라는 소식에, 마이크로소프트는 Truevision에 투자를 하게 된다. 단, 퀵타임 드라이버나 퀵타임 브랜드를 언급해서는 안됐고, 퀵타임을 이용한 마케팅도 금지였다. 특정 애플리케이션의 형태만으로 번들시켰고, 별도의 판매용 드라이버로는 제공하면 안 되었다.

Advanced Authoring Format
마이크로소프트는 퀵타임을 완전히 죽이기 위해, 자사의 AAF(Advanced Authoring Format)를 사용하여, 미디어 오쏘링 사업에 들어서겠다는 위협을 펼친다. 애플은 갖고 있되, 마이크로소프트에게는 없는 마지막 컴퍼넌트였다.

1998년 6월,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에게, 퀵타임 기술을 마이크로소프트에게 기부하고, 경쟁을 포기하며, 광범위한 기술 공유에 동의하라는 최후의 통첩을 제시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향후 모든 코덱 개발에 있어서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해야 하며, 기존의 코덱은 모두 크로스-라이센스시켜야 했다.
  • 윈도상에서는 퀵타임 대신 DirectX 런-타임 플랫폼을 채택해야 했다.
  •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적인 스트리밍 기술을 채택해야 했다.
  • 미디어 오쏘링에 있어서,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새로 소개한 독점적인 AAF 파일포맷을 채택해야 했다.

당시는 전 업계가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의 강압적인 AAF의 지배에 두려워하고 있을 때였다. 애플은 퀵타임을 계속 없애려드는 마이크로소프트에 상대하기 위해서라면, 퀵타임을 활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을 스스로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The Beginning of the End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요구를 거절하고, 퀵타임에 대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방위적 공세를 막기 위해, 공개적인 공격을 펼치게 된다.

이윽고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를 패배시킨 첫 번째 회사가 되었다.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경쟁사가 된 것이다. 법 위에서 군림하는 독점기업, 마이크로소프트의 의문을 가질 수 없는 지위에 도전하려는 회사들에게는 모범이 될 만하다.

거의 수 년동안 보이지 않았던 애플의 진전은 오락 업계에 있어서의 마이크로소프트의 위치를 뒤바꾸어버렸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식 DRM에 대한 저항을 구축하였으며, 자사 기술을 사실상의 표준으로 만드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적인 기술을 분쇄시켰다.

그런데 사실, 이는 인과응보(因果應報)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자충수였다는 의미다. 다음 기사는 그 부분을 다룬다.

무엇일지 한 번 맞춰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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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rosoft's Plot to Kill QuickTime
__________________
FAQ

casaubon 님께서 2007-03-14 07:08 AM 에 수정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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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5, 08:17 PM   #7
casau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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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압박과 파이널컷 프로의 탄생

How Microsoft Pushed QuickTime's Final Cut

Thursday, March 15, 2007

퀵타임을 죽이고야 말겠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집념은 오히려 퀵타임을 죽음의 병기로 만들고 말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신의 약점에 총을 겨누었다. 이는 실수였다. 그 때 이후로 계속, 총알이 마이크로소프트를 관통해 돌아다니고 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아보자.

Microsoft's Multimedia PC
1991년 말로 돌아가보자.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CD-ROM 플레이어와 표준형 사운드카드를 지원하기 위해, 윈도 3.0용 Multimedia Extensions를 출하하였다. 또한 Creative와 Dell, Gateway와 협력하여 Multimedia PC라 불리우는 새로운 하드웨어 아키텍쳐 표준을 결정하였다.

MPC는 여러가지 품질의 부품을 사용하는 PC에서 멀티미디어 기능을 보다 쉽게 해 주기 위해, 최소한의 하드웨어 사양을 정하자는 의도였다. 즉, 애플 매킨토시의 지위에 도전하자는 바람도 담겨 있었다. 애플은 스스로 하드웨어를 만들기 때문에, 애플로서는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개선하기 위한 시간이 훨씬 짧게 들었다.

MPC 디자인은 또한 DOS 사용자들을 윈도로 이주시키고, 개발자들도 윈도 환경으로 이주시키려는 목표도 갖고 있었다. 사실 윈도가 제품으로 나온 것은 1985년부터였지만, 1990년, 3.0이 나오기 전까지는 누구도 사용하지 않았으며, 어느 업체도 컴퓨터에 윈도를 미리 설치해서 팔지 않았다.

The Multimedia Mac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PC에 기본 오디오 지원이 들어갔을 때, "멀티미디어"라는 어구를 사용하였다. 그런데 그 때, 애플은 오디오와 비디오 재생을 위한 새로운 QuickTime 아키텍쳐를 선보였다.

애플이 지원해야 할 하드웨어 회사는 애플 뿐이다. 애플이 이런 소프트웨어 혁신을 계속 이룬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다고 볼 수 있다.

애플 하드웨어는 더 일관성이 있을뿐만 아니라, 품질도 높았다. 맥은 주로 그래픽 디자이너의 하이엔드 소비자들에게 팔렸으며, 일반 소비자 시장에 팔려나가는 맥은 당시, 오래된 모델을 재활용한 맥 뿐이었다.

Vertical vs Horizontal
이 때문에 당시 애플의 시장은 이윤이 나긴 했어도 수직시장(vertical market)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수평시장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넘겨진 꼴이었다. 시장 다수의 필요에 따르는 충분한 대안을 싸게 공급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수평시장을 크게 확대시키게 된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넓은 시장을 확보해도, 애플은 대중 시장 경쟁자들과 자신을 차별화시켜주는 기술 발전에 매진하였다. 이 전략에 있어서 퀵타임이 핵심이었다.

애플이 윈도용으로 퀵타임을 포팅한 것만 봐도 알 만하다. 윈도용 퀵타임은 재생뿐만 아니라, PC가 소비한다고 하더라도, 맥에게 멀티미디어 콘텐트 제작에 있어서 주된 역할을 맡겼다. 인쇄와 그래픽 디자인에서처럼, 웹용 콘텐트 제작에 있어서도 맥은 PC를 앞서나아갔다.

Applied Technologies
그러나 윈도가 시장을 장악해 나아가자, 애플이 기술적인 주도를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오쏘링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대한 이유는 써드 파티개발사들과 관계가 있었다. 애플로서는 퀵타임을 최대한 활용하는 오쏘링 애플리케이션을 필요로 하였다. 그런 애플리케이션이 없는 퀵타임은 PowerTalk만큼이나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앨더스의 페이지메이커가 데스크톱 출판 시장을 만들기 위해, 어도비의 포스트스크립트 기술을 사용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퀵타임은 자신의 힘을 실제로 활용하는 개척자적인 애플리케이션을 필요로 하였다. 이른바 기본 기술의 활용이다. 프로그램이나 실행파일이 아닌, "애플리케이션"이라는 단어를 애플이 쓴 이유도 그런 이유였다.

QuickTime Applications
퀵타임을 활용한 첫 번째 애플리케이션 중 하나는, 퀵타임과 동시에 나온, 비선형 편집기인 어도비 프리미어였다. 비선형(Non-linear)은 비디오 테이프나 필름이 아닌, 디스크 상에서 영상을 편집하는 시스템을 가리킨다.

앨더스 또한 Hitchcock라 불리는 퀵타임-기반의 편집기와, 비디오와 그래픽, 효과 렌더링에 쓰이는 모션그래픽 애플리케이션, AfterEffects를 선보인다.

한편 포스트스크립트를 갖고 있던 어도비는 아크로밧을 통해 PDF 표준을 추진하고 있었다. 즉, 어도비로서는 페이지 레이아웃 프로그램이 절실했다. 이에 따라 1994년, 어도비는 앨더스를 합병하여 앨더스 페이지메이커를 기존의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아크로밧 제품군에 포함시킨다. 완전한 출력, 출판 툴 모음을 구성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 어도비/앨더스 합병으로, 중복되는 제품은 합병에 제외된다. 단 FreeHand는 매크로미디어에게 라이센스가 되어서, 일러스트레이터와의 경쟁은 유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Adobe's QuickTime Business
이 합병덕분에 어도비는 퀵타임-기반의 영상 애플리케이션도 손에 쥐게 된다. 프리미어와 애프터이펙트(AfterEffects)이다. 하지만 어도비의 이들에 대한 관심도는 출판용 프로그램에 비해 떨어졌다. 둘 다 엄청나게 거대한 출판 산업보다 훨씬 규모가 적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당시 비디오 작업은 환상적으로 비싼 하드웨어를 요구했었다.

당시 하이엔드 영상작업은 보통 Avid에서 나오는 15만 달러 어치의 웍스테이션에서 이뤄졌다. 전용 비디오캡쳐 장비와 압축, 재생 장비가 여기에 포함되었다. 퀵타임-기반 소프트웨어 툴인 프리미어의 시장은 제한적이었다.

그런데 퀵타임이 이끌어낸 멀티미디어 시장은 80년대 데스크톱 출판혁명과는 비슷하지 않았다. 기술 자체가 변변치 않았기 때문이다. 퀵타임은 여전히 인터랙티브 CD-ROM 제작에 갇혀 있었고, 영상물 재생용으로만 쓰였다. 별다른 사업이 되지 못했다는 의미다.

Adobe Targets Print, Windows
그런데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애플의 전망은 극히 어두워지고 있었다. 어도비는 인쇄 제작툴에 집중하여, 기존의 시장인 맥과, 새로이 급성장을 하고 있던 윈도용으로 애플리케이션을 동시에 내놓게 된다. 
어도비의 출판용 소프트웨어는 꽤 비쌌다. 그 때문인지 맥 사용자들로부터의 수입이 절반을 넘어섰었다. 덕분에 어도비는 윈도 버전을 먼저 만들고, 맥 버전을 윈도-호환 수준으로 나중에 내놓는 방식을 채택하지 않았다.

어도비의 내부 개발 구조는 어도비 고유의 방식이었다. 어도비는 각 애플리케이션의 단일 코드기반에 집중한 다음, 맥과 윈도 양측으로 포팅시켰다. 이러한 고유 개발방식 덕분에 맥용 애플리케이션과 윈도용 애플리케이션의 기능은 동일했고, 지원도 보다 쉬워졌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는 양 플랫폼을 별도로 개발한다. 단순히 윈도용을 맥용으로 포팅시키는 이와 같은 경우, 문제점이 있었다. 가령 1993년 당시 맥 사용자들은 마이크로소프트 워드 6이 "맥답지 않다”고 불평했었다.

No Room for Innovation
하지만 어도비식의 개발 방식에도 문제는 있었다. 맥 플랫폼을 차별화시켜주는 독특한 기능의 통합이 점점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QuickDraw GX와 QuickDraw 3D, PowerTalk, OpenDoc 등 애플이 진행한 거대 프로젝트는 개발자들의 흥미를 거의 끌지 못한 상태였다.

어도비가 애플의 완전히 새로운 Rhapsody 플랫폼을 거절한 제일 큰 이유도 그것이었다. 어도비의 내부 개발구조가 따라가기에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다른 써드파티들도 마찬가지로 크로스-플랫폼 개발에 있어서 어도비와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혁신"을 가져다 주려는 애플의 노력과 개발사의 필요가 상충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문제는, 바로 그 개발사들이야말로 애플이 맥 플랫폼의 지원에 사활을 건 장본인들이었다. 애플이 이길 수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퀵타임만은 애플의 여타 90년대 중반 실패작들과는 달랐다. 윈도용 퀵타임 포팅에 오쏘링 지원까지 추가시켜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덕분에 개발자들은 퀵타임을 애플리케이션의 기반으로 삼았다. 반면 맥을 사야 할 이유로서의 퀵타임의 매력은 사라져갔다.

The Coup d’Éat of Adobe’s Premiere
프리미어에 대한 어도비의 관심이 사라져가자, 애플은 퀵타임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줄 다른 개발사를 찾기 시작했다. 1996년, 애플은 Avid와 함께 퀵타임-기반의 소비자용 영상편집툴 작업을 개시하였다. 당시 이름은 Avid Cinema였다.

그런데 몇 달 전, 1995년, 어도비 프리미어 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