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RED MAGAZINE: 16.10









Inside Chrome: The Secret Project to Crush IE and Remake the Web
By Steven Levy Email 09.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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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롬 개발팀, 왼쪽부터 Mark Larson, Brian Rakowski, Darin Fisher, Ben Goodger Photo: Joe Pugliese |
라코스키(Brian Rakowski)는 칠판앞으로 다가섰다. 구글의 Mountain View 캠퍼스의 41번 빌딩 안에 있는 조그마한 회의실에 선 라코스키는 호리호리한 20대 청년이지만, 2년도 넘게 비밀 프로젝트로 있던 제품의 관리자였다. 이번주 월요일마다 관리자 조회(아니, 계층을 안나누는 구글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선도자(lead) 조회)는 이 제품이 나오기 직전, 마지막 조회가 될 것이다. 라코스키는 칠판에 12개의 아이템을 적어내려갔다. 첫 번째는 "출하 상황"이었다. 이 때는 8월 하순, 구글의 첫 웹브라우저 크롬이 안건으로 올라간 상태였다. 웹브라우저는 검색이나 열람, 구매, 은행, 페이스북, 채팅, 영상, 음악, 포르노에 이르기까지 모든 웹 활동의 기반이다. 제아무리 구글이라 해도 브라우저는 정말 큰 일이었다. 크롬은 데스크톱에서 웹으로 컴퓨팅을 이주시키는 시도로서, 웹은 구글의 앞마당이다. 게다가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라는 만고의 브라우저를 오래 전에 물리친 경쟁자, 마이크로소프트 앞에 운명적으로 구글을 마주하게 할 것이기도 하였다.
그동안 구글 브라우저에 대한 루머는 꽤 있어왔다. 너무나 오래되어서 이제는 거론을 안 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 회의실 참가자들은 알고 있었다. 딱 16일 후면, 크롬이 웹을 강타할 것이라는 점을.
출하 상황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Release Build Minus One(퍼블릭 베타 직전 버전이기를 바래서 이름을 붙인 버전이다)은 라코스키 팀이 고칠 수 있다고 여긴 버그가 다섯 개 뿐이었다. 선도자 중 하나인 라슨(Mark Larson)은 괜찮아 보인다고도 말했다. 그런데 구글 제품관리부 부사장인 피차이(Sundar Pichai)가 나섰다. "없는 게 뭐지? 오늘 밤에는 뭘 할 건가?"
첫 번째 프로토타입을 같이 만들어낸 엔지니어, 피셔(Darin Fisher)는 크롬이 아니라고 답했다. 모두가 웃는다. 피셔에게 집에 10주된 아이가 하나 있다는 사실을 다 알아서다. 라코스키는 빨강 펜을 들어서, 출하상황 옆에 X자를 적었다. 이제 구글 브라우저가 드디어 현실화된 것이다.
구글은 어째서 브라우저를 만들었을까? 아니,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왜 이제서야 브라우저를 만들었을까? 피차이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회사 사업은 전적으로, 웹하고 우리 회사 사이트 들어오는 사람들 대상입니다."
CEO인 에릭 슈미트도 브라우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당연히 알 것이다. 1990년대 브라우저 대전쟁 기간동안,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CTO는 다름아닌 에릭 슈미트였다. 구글의 공동 창립자인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도 잘 알고 있다. 슈미트의 말이다. "2001년 구글에 들어갔을 때, 레리와 세르게이가 우리도 브라우저 하나 만들어야 한다 말하더군요. 전 안돼라고 말했죠."
그 때는 시기가 아니었다. 슈미트도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브라우저 하나 새로 만들 정도로 구글이 강력하질 않았죠. 일단은 숨죽이고 기다리는 편이 나았습니다." 하지만 브라우저 자체가 죽어버리지는 않았다. 이 아이디어는 끈질기게 루머로 남았다. 2004년 뉴욕타임스는 기사까지 내보냈다. "구글 사업 핵심 관계자"를 인용하면서, 브라우저를 작업중이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슈미트는 부인하였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슈미트와 구글 창립자들은 계속 브라우저를 논의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종의 합의가 이루어졌다. 팀을 하나 꾸려서 오픈소스 브라우저인 파이어폭스의 개선작업을 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이 팀을 이끈 이가 피셔, 그리고 굿저(Ben Goodger)였다. 그들은 둘 다 비영리재단인 모질라와 같이 작업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새로이 37세의 엔지니어, 웁손(Linus Upson)이 들어왔다. NeXT 출신으로서, 엔지니어링 관리자로 들어온 것이었다. 슈미트의 말이다. "레리와 세르게이 입장에서 보면 참 좋았죠. 파이어폭스 익스텐션을 만들던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훌륭한 브라우저도 만들 만하죠."
당연한 말씀이다. 2006년 봄, 파이어폭스 그룹은 새로운 애플리케이션 디자인에 대해 거론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물론 파이어폭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지만, 당시 브라우저는 모두 문제점이 있다고 여기는 중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어와 파이어폭스 코드기반은 원래 복잡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메일이나 스프레드쉬트, 데이터베이스 관리같은 데스크톱 일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기능이 복잡해졌다. 앞으로의 웹 또한 그저 콘텐트의 전달자 역할에 머무르지는 않을 것이다. 웹 스스로가 하나의 플랫폼이 된다. 그런데 지금의 브라우저가지고는 문제가 있었다. 툴바나 RSS 리더 등, 익스텐션만 잔뜩 늘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급진적인 업그레이드가 필요했다. 피셔의 말이다. "파이어폭스 개발자라면 혁신을 좋아해야죠. 하지만 섯부르게 버전 늘렸다가 익스텐션이 깨지면 어쩌가 걱정만 하게 됩니다. 실제상황이거든요." 결론은 분명했다. 웹시대에 맞춰서 구글 스스로가 브라우저를 만들자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넷스케이프가 한 달이 멀다하고 엎치락 뒤치락하던, 그런 혁신의 시대를 다시 이끌어나가자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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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ome: Here's What Shines
구글은 웹 컴퓨팅에 최적화된, 단순하고 빠른 브라우저를 원하였다. 주요 기능은 다음과 같다.
Speed
진보된 웹 애플리케이션에게 문을 열 초고속 자바스크립트 엔진
Navigation
검색과 주소창을 합쳤으며, 제일 빈번하게 방문한 곳의 축소판을 띄어준다.
Availability
40가지 언어가 넘게 나왔지만(게다가 오픈소스다), 윈도 전용이다. 맥과 리눅스 버전도 작업중.
Reliability
탭은 탭 별로 하나씩 돌아간다. 따라서 한 탭이 충돌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다른 탭에 영향은 없다. 게다가 탭을 드래그해서 따로 창을 띄을 수도 있다.
Privacy
방문기록 브라우징도 이제 검색과 편집이 가능하다. private 서핑 모드(incognite mode)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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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롬에서 구글이 염두에 둔 부분은 멀티프로세스 아키텍쳐이다. 애플리케이션이 충돌을 일으키거나 얼더라도, 돕는 구조이다. 이 아이디어를 브라우저에 도입하지 못할 것 없기 때문이다. 탭에서 뭔가 충돌을 일으키면 다른 탭도 살려둘 수 있잖겠는가? 이와는 별도로, 아예 탭을 드래그해서 끌어내면 새 창이 못 생길 것도 없다. 처음부터 다시 만들면 이것 외에도 좋은 점이 많다. 더 깔끔하게, 더 빠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깔끔함과 빠름은 구글의 종교다.
2006년 6월경, 굿져와 피셔, 모질라에서 건너온 또 다른 인물인 라이너(Brian Ryner)가 프토토타입을 만든다. 첫 번째 큰 결정은 웹페이지를 화면상에 뿌리는 렌더링 엔진의 선택이었다. 오픈소스 선택으로는 두 가지가 있었다. 파이어폭스가 사용하는 겍코(Gecko), 애플 사파리 브라우저가 사용하는 웹킷(WebKit)이다. 웹킷(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그룹이 이미 선택한 엔진이었다)이 훨씬 빠르다(겍코의 세 배)는 말이 들려왔다.
수 주일 후, 윈도용 웹킷을 이용하여 간단한 브라우저를 만들었지만, 이 브라우저는 계속 충돌을 일으켰다. "프로토타입은 불행한 작은 탭의 사진을 갖고 있었어요. 탭이 죽으면 보이는 사진이었죠. 생동감있는 것을 처음 집어 넣은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브린과 페이지가 은밀하게 브라우저 개발 상황을 확인하러 왔다. 엔지니어인 그린(Pam Greene)의 말이다. "책상에 앉아 있었어요. 그 땐 뱀을 한 마리 기르고 있었는데요. 세르게이가 와서는 운동용 공에 올라 탔습니다. 피셔의 시연을 보면서 뱀한테 먹이를 줬죠."
브라우저 프로젝트가 공식적으로 언제 나올지는 누구도 정확히 예단할 수 없었다. 피차이는 슈미트가 더 이상 반대하지 않게 되었을 때를 기억한다.슈미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구글이 마음먹고 만들기로 했다면, 익스플로러와 파이어폭스하고는 정말 달라야 한다고 말이다. 게다가 빠르고 오픈소스이어야 했다. 당연히 팀도 이미 그런 마음을 먹고 있었다.
아무튼 2006년 가을은 비공식적인 개념과 공식적인 프로젝트가 겹쳤던 때였다. 엔지니어인 윌슨(Brett Wilson)의 말이다. "금요일이었을 겁니다. 갑자기 한 시간 뒤에 회의가 있다더군요. 모였더니 하는 말이, 위에서 브라우저 작업을 고려중이다, 어떻게 생각하냐였습니다. 모두들 흥분과 우려가 교차하더군요." 경쟁력 있는 브라우저 만들기가 얼마나 큰 일인지 아는 이들은 우려를 표하였다. 파이어폭스 관련자들도 많았기에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도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 독점에 대항하는 오픈소스 개발의 상징이 파이어폭스였기 때문이다. 2006년 10월에 팀에 합류한 케이(Erik Kay)의 말이다. "파이어폭스의 등을 찌르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일단은 100% 오픈소스로 달래야 했다. 구글의 혁신은 잠재적으로 모질라 코드기반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 웁손의 말이다. "파이어폭스는 물론 다른 오픈소스 브라우저도 다 성공시키고 싶습니다."
파이어폭스에 대해, 피차이는 계속 모질라의 수장인 미첼 베이커(Mitchell Baker)와 만나왔다. 그리고 시기가 되자, 그녀에게 구글 프로젝트에 대해 말해 주었다. 베이커는 구글 브라우저를 복잡한 심경으로 본다. 그녀는 크롬을 브라우저의 선택권이 중요하다는 모질라의 신념으로 옹호한다. "구글한테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사용자들 모두에게 좋습니다. 경쟁이 최고를 가려내니까요." 물론 그녀는 수많은 사용자들이 구글 브라우저를 다운로드하리라는 점 또한 이해하고 있다. "한 번 시도해보고 다시 돌아오리라 기대합니다. 독립이 중요합니다. 그것 때문에 모질라가 존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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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Illustrated History: 구글은 저명한 아티스트, Scott McCloud에게 32-페이지짜리 만화(온라인에 있다)를 의뢰하였다. 크롬의 기능과 크롬개발팀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
사실 문제는 작명이었다. 코드명은 좀 웃겼다. (웁손은 이름이 어찌나 끔찍했던지, 정말 구글스럽지 않게 경영진들이 직접 거부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이 프로젝트는 원래 프레임, 툴바, 메뉴 등, 브라우저를 구성하는 이름을 따왔다. 크롬이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자바스크립트 머신이었다. 웹 애플리케이션 최적화가 목적인 브라우저가 크롬이다. 그래서 웹애플리케이션 코드를 돌리는 "가상 머신", 즉 자바스크립트 엔진이 핵심이다. 이걸 잘 다룰 인재가 하나 있었으니, 덴마크 출신 컴퓨터 과학자, 라스 박(Lars Bak)이었다. 2006년 9월, 가상 머신 디자인에만 20년을, 그것도 한 번도 안쉬고 일해온 박은 드디어 오르후스(Århus) 외곽에 있는 자기 농장에서 휴가를 즐길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 때 구글이 그를 불렀다.
박은 자기 농장에서 같이 일했던 팀을 다시 만들어서, 동네 대학의 사무실로 이주하였다. 자신의 임무가 그 어느 엔진보다도 빠른 자바스크립트 엔진이라는 점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프로젝트의 자기 몫을 "V8"이라 불렀다. 그의 말이다. "자바스크립트 속도를 10배 더 늘리기로 했습니다. 넉 달만에 말이죠." 덴마크 팀이야 그런 일은 일상이었다. 7~8시에 일을 시작하여, 저녁 6~7시까지 프로그래밍만 한다. 유일하게 쉬는 시간은 점심시간이었다. 하지만 밥은 5분만에 먹어 치우고, 20분은 게임에 매달렸다. "Wii 테니스를 우리가 정말 잘 합니다."
박의 팀은 자바스크립트 엔진을 정말 잘 만들었다. 첫 선을 보이기 몇 주일 전, 박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 벤치마크를 좀 돌려 봤는데요. 정말로 V8이 파이어폭스나 사파리보다 자바스크립트를 10배 더 빠르게 돌리더군요." 시장 선도자인 마이크로소프트 인터넷 익스플로러 7은 어떨까? 56배가 더 빨랐다. 박의 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던 겁니다."
크롬의 제일 중요한 장점은 속도다. 뭔가 굉장히 좋아졌다면 그저 개선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는 뜻이 아닐까. 박의 말이다. "개발자들이 속도가 빠르다는 점을 알아차리면서부터, 정말 놀라운 웹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더 창의성을 갖게 되었죠." 웹-기반 애플리케이션의 새로운 세대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곳이 구글이다. 그것은 마이크로소프트 최악의 악몽이 될 것이다. 브라우저가 곧 운영체제가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구글은 또한 열려 있는 개별 탭이 단일한 프로그램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멀티프로세서 구조를 구현시키는 데에 역점을 두었다. 2007년 5월, 구글은 IE와 파이어폭스를 가상 세션, 혹은 "샌드박스(sandbox)로 나누는 소프트웨어 보안회사인 GreenBorder Technologies를 인수하였다. 이 회사는 컴퓨터 상의 활동이나 데이터를 악성 소프트웨어가 뒤섞지 않도록 하는 기술을 만드는 곳이었다. 인수를 발표했을 때, 당시 전문가들은 구글이 이 회사가지고 도대체 뭘 하려는지 궁금해했다. 구글이 바이러스 퇴치사업이라도 하려는가 하는 의문이 생겨났다. GreenBorder의 엔지니어들도 샌드박스가 곧 브라우저 탭이라는 사실을 인수 후에야 깨달았다. 당시 엔지니어중 하나인 피자노(Carlos Pizano)의 말이다. "혼란스러웠죠. 샌드박스로 뭘할지 구글이 말을 안하려 했으니까요."
팀은 점차 커졌지만, 전진은 더뎠다. 커진만큼 관료제가 더해져서다. 프로젝트 초창기 시절, 크롬 팀원들은 구글 까페에서 모두 한데 둘러 앉아 점심 회식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점차 대형 탁자로도 팀을 다 앉힐 수 없게 되었다. 오픈소스의 정신으로 일하는 바람에 모든 엔지니어들이 모든 코드를 제각기 손봐서 개선시키기도 하였다. 라코스키의 일은 언제나 프로젝트를 가볍게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최고의 버그잡이꾼에게 크롬제 깡통을 상으로 주기도 하였다.
제품이 제자리를 잡아가자, 이제는 사용자 인터페이스로 초점이 옮겨갔다. 시작 때부터 크롬 팀은 사람들이 브라우저를 사용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게 시각화하기를 희망하였다. 그래서 "크롬이 아닌 콘텐트"가 거의 팀훈이었다. 브라우저 이름만 갖고 따지면 좀 이상한 느낌이 드는 팀훈이다. 라슨에 따르면 "아이러니에 적응해서 살기"를 배울 정도라 하였다. 웹 애플리케이션을 갖고 있는 탭(가령 Gmail)을 하나 드래그하면, 별도의 창이 뜨고, "앱(app) 가상본"처럼 놓을 수 있다. 탭과 버튼, 주소창이 다 떨어져 나가면, 이 웹 앱은 거의 데스크톱 프로그램처럼 보인다. 새로운 웹세계로 오신 것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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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롬의 탭을 꺼내서 새 창으로 만들 수 있다. |
어떤 버튼을, 어느 기능을 집어 넣을지 정할 때, 크롬 팀은 모든 것을 지워나가는 마음가짐을 배우기 시작했다. 일단 모두 지운 다음에 무엇을 살리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뒤로" 버튼? 당연하다. "앞으로" 버튼? 그것은 좀.이지만 살아남았다. 브라우저 상태표시줄의 팬이시라고? 몇 퍼센트나 페이지를 읽었는지 필요한 미터는 크롬에 없다.
그리고 나서 북마크 바가 문제됐다. 처음에 엔지니어들은 북마크를 없앨 수 있으리라 여겼다. 크롬은 네비게이션을 새로이 하였다. 타이핑 없이 다음에 가고 싶은 곳을 브라우저가 알아서 가주는 식이었다. 단, 뭔가 타이핑을 하면, 주소창과 검색을 같이 하는 "옴니박스"를 사용하게 된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말해주기만 하면 웹 주소와 검색 결과, 유명한 곳을 알아서 찾아준다. 박스 밑으로 후보가 다 뜨는 방식이다. "I'm Feeling Lucky"를 웹브라우저로 만든 것이나 다름 없다. 하지만 사용자 테스트를 보면, 북마크 바를 클릭하면서 네비게이션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협상이 이루어졌다. 사용자가 IE나 파이어폭스에서 북마크를 바로 옮기는 등의 설정을 해 놓았다면, 크롬은 그 설정을 그대로 옮겨온다. 그렇지 않으면, 특별히 고르지 않는 한 북마크는 없다.
구글 브라우저가 2년 동안 비밀리에 존재해왔다는 사실은 사못 놀랍다. 프로젝트에 착수한지 약 1년이 지난 2007년 중반까지는, 다른 직원이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끝없이 커져만 가던 팀원을 보충하기 위한 방식으로 이벤트가 때때로 Tech Talks로 등장하였는데,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구글 직원들은 탭을 새 윈도로 만든다거나 하는 여러 가지 기능이 나올 때 열화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점차 커져가는 크롬팀을 이제 많은 이들이 알게 되자, 역시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다. 한 두 곳의 블로그에 크롬에 대한 언급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크게 이슈화되지 않았다. 웁손의 말이다. "구글 브라우저 루머가 나온지 꽤 되잖았겠습니까? 설인이 나타났다거나, 외계인을 봤다 정도밖에 못됐겠죠."
크롬이 나오기 전날 밤, 피차이는 크롬에 대한 야망을 말하였다. 얼마나 많이 크롬을 사용할까? "수 백만 명? 어머니도, 아버지도 썼으면 좋겠어요." 구글 자신은 성공을 확신하지 않았지만, 피차이는 크롬의 시장점유율이 크지 않더라도, 크롬이 이룬 혁신은 웹브라우저 시장을 개선시키리라 확신하였다. "웹이 더 좋아지면, 그 덕을 보는 것도 우리죠."
크롬 발표가 나오자, 크롬팀은 요새 새로 리노베이션한 빌딩으로 이주하였다. 모두가 모일 정도의 회의실도 있는 곳이다. 서서 모여야 하지만 말이다. 우유와 과자도 나온다. 발표 이후 라코스키는 굿저에게 발언권을 넘겼다. 헝클어진 차림새의 엔지니어들은 크롬의 오픈소스화에 대해 논하였다. 코드를 공개한 뒤, 커뮤니티가 브라우저의 개선을 이끄는 방식이다. 굿져의 말이다. "테스트 규모를 넓힐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것이 나오겠죠. 우리가 악랄하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믿음도 생겨날 테고요."
발표회가 끝나자,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었다. 사탕이 잔뜩 있어서가 아니다. 크롬 팀은 구글이 내놓을 운명이었던 제품을 내놓았다. 물론 버그 다섯 개는 고쳐야 할 테다.
Senior writer Steven Levy (steven_levy@wired.com) also writes about Jay Walker's in the October issue of Wired.
Inside Chrome: The Secret Project to Crush IE and Remake the We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