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타래: 애플과 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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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7, 07:11 PM   #111
w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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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인텔칩으로의 이주에 관하여 2002-2005

안녕하세요 간만에 글 올리게 되는군요 :-)

인텔칩 이주 이후로 가끔 이 글타래가 올라오는데 사실 개인적으로 별로 반기지 않습니다. 애플이 인텔칩으로 이주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게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고 시기 외에도 여러가지 요인이 얽혀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결과만을 보고 맞았다 틀렸다를 논할 문제는 아닙니다. 수년간 애플 내부에서도 정답은 없었고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하여간 결론은 "결과가 좋았으니 좋은거다" 이지만 정말 아슬아슬했었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애플이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나름 보고 느낀바를 다 적으면 거의 애플 노트에 필적할만한 글을 써야 겠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고 쓸데없는 소모적인 토론을 마무리 해보고자 간단히 정리해 보렵니다.

2002년 당시 애플의 인텔칩 으로의 이주라는 주장이 오갈 때 사실 이것이 전혀 뜬금없이 떠오른 주장이 아니었습니다. 왠만한 사람은 풍문으로나마 들었고 그 당시 애플 직원들조차 식당에서 이런 주제로 작은 토론을 하는것을 종종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초짜님처럼 강하게 곧 인텔칩으로 안가면 장을 지진다고 주장하는 직원도 제 주변에서 보았습니다. 이런 사항은 보안상 식사하면서 크게 떠들 사안은 아니었는데도 제가 기억하는걸 보면 애플 내부에서도 나름 침묵적 동의가 퍼져 가는 중이었던거 같습니다.

근데 이러한 주장이 떠오르던 2002년의 애플은 지금 2008년과는 너무나도 다른 상황이었다는것을 사람들은 잊고 있습니다. 그 당시 애플은 정말로*정말로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임금 동결, 채용 중지 및 주가는 거의 더 떨어질 수가 없을 정도의 바닥을 기고 있었고 (2008년 에 비해 거의 50분의 1도 안되는 수준) 심지어 잡스조차도 미래가 불확실? 한 나머지 가지고 있는 회사 주식을 팔수 있는 주식으로 손해를 보고서 교환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로인해 나중에 애플이 회생하고 엄청난 수익과 주가 랠리를 펼칠때 수십억(아마 지금쯤은 수백 수천억)달러의 기회 이익을 놓쳤고, 월 스트리트의 약올리는 기사들이 종종 떴었습니다 - 아마 아직도 살떨리게 아쉬울 겁니다) 즉 잡스마저도 이 당시 애플의 미래에는 자신이 없었던 거죠.

그럼에도 왜 애플이 모험적인 인텔칩 이주를 고려했던가? 그당시 애플은 재정적으로 정말 힘든 상황이었고 아이팟도 지금처럼 주류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마켓 쉐어는 도무지 오를 생각을 안하고 있었죠. 맥 판매와 오에스 텐 판매에 있어서 내공, 신공, 별별 필살기 다 써봐도 안되는 정말 해볼거 못해볼거 다 해보는데 요지부동인 상황이었습니다. 큐브의 판매저조로 인해 엄청난 타격을 받고 거의 망할뻔한... 상황에서 타이타이움 파워북으로 기사 회생하고 겨우 한숨 돌릴 수 있던 때였습니다. 잡스가 핫케이크 찍어 팔듯 팔았다는 타이북이 없었다면 애플은 지금 존재하고 있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G5칩의 발열을 파워북에서 도저히 해결할수가 없어서 잘나가던 파워북 판매에 제동이 걸릴것은 불을 보듯 뻔한 실정이었습니다. 초읽기에 몰린거죠.

그당시 애플 직원들의 생각은 아마 회사 방침이 인텔칩으로 간다면 뭐 어쩌겠나 그러나 이주하는 순간 거의 애플은 죽던지 살던지 둘중 하나일거다.. (아마 거의 죽을거다...쩝)라는 생각이었던거 같습니다. 즉 결정권은 위에 있고 그렇게 될거 같지만 비관적인 쪽에 무게가 실려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애플은어떻게 인텔칩이라는 최후의, 즉 죽기전에 한번 발버둥내지는 찍소리라도 내보겠다는 생각을 할수 있었는가? 인텔칩이라는 조커를 준비하는게 만만치는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결론은 인텔칩으로의 이주는 발표를 하느냐 안하느냐의 문제이지 따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준비해야 하는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단 그당시에는 이 카드를 꺼내는 순간 즉시 횡사(?) 할수도 있었기 때문에 안 꺼냈을 뿐입니다.

아시다시피 오에스 텐은 Next 에서 넘어온 유닉스 기반입니다. 넥스트시절부터 이 nextstep및 openstep OS는 인텔프로세서용으로도 컴파일이 되었었고 피씨에서 돌아가는 것을 따로 판매도 하였습니다. 이것이 잡스의 애플 복귀이후 OS X 개발과 더불어서, 더러는 재미로, 또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맥용 오에스 텐에 상응하는 인텔칩용 오에스 텐을 계속 만들어 왔었고 여기에 관련된 사람은 정말 극소수, 그리고 이것만을 전담하는 팀이나 특정 직원이 있었던것은 아닌 그냥 의 빌드에 상응하는 인텔버젼을 유지하고 있다는 정도였습니다. 이걸 볼 기회가 있었는데 '비교적'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어플들은 애플이 기본적으로 깔아주는 어플들, 즉 아이튠즈, 계산기, 그런 것들이었고 써드 파티어플 가령 포토샾 같은것은 엄두도 못냈을뿐 아니라 테스트도 안했던걸로 기억합니다.

인텔칩 이주설이 솔솔 피어오를 무렵 처음에는 follow up수준이었던 인텔용 오에스 텐 빌드는 보안이 최고로 강화되었고 인텔용 오에스 씨디는 일일이 매니저급 허가 없이는 절대 복사나 빌려줄 수 없었으며 보안이 아주 철저했습니다. 코드네임도 일급 비밀이었고 최종단계에 임박하여 이 코드네임이 또 바뀌어서 2005년 인텔칩 이주가 발표되는 순간까지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그룹에서조차도 이 팀의 주요 관련사항을 몰랐습니다. 최종 코드네임은 Claudius였던거 같은데 아마 여지껏 어느 사이트에도 알려지지 않았을거 같네요.

그러나 거의 결정된 거 같던 인텔칩으로의 이주는 2002년에 실현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잘한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그때 결정했더라면 애플은 지금 존재하지 않았을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텔칩 이주가 발표된 2005년, 단순히 2002년의 개발 연장선 상에서 이주가 발표된 것이라고 생각될지 모르나, 실상은 전혀 달랐습니다. 2002년의 시도가 모험내지는 객기 차원이었다면 2005년은 여유내지는 개척 이었습니다. 아이팟의 역사적인 성공과 시장 지배로 인해 애플은 더이상 파워북, 파워맥 하나를 내놓고 숨죽여 결과를 지켜보는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연이어 갱신중이었고 무엇보다도 탄탄한 자금력과 안정된 cash flow를 구축한 상황이었습니다. 오에스와 맥 하드웨어의 판매가 회사 재정에 차지하는 비율은 50% 미만으로 떨어진지 오래였습니다. 즉 인텔용 오에스 가 실패해서 맥이 안팔려도 애플로서는 절대 망하지 않을 상황이었고 결국 나중에는 회사 이름마저 바꾸어 회사명에서 computer를 빼버렸죠 (Apple Computer Inc. -> Apple Inc.). 2005년 이당시는 인텔칩으로 이주해도 거의 nothing to lose였습니다. 오히려 좋은 기회였죠. 그리고 이 기회는 성공적이었습니다. 그 이후의 ipod와 iphone이야기는 또하나의 전설이 되었죠.

간략한(?) 이야기는 여기에서 줄입니다. 요지는, 단순히 결과만을 놓고 맞냐 그르냐 하는 비난하고 사과하고 소모적인 토론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순간순간 얼마나 피말리는 위기와 찬스가 오갔는지, 세상 어느누구도 예측 불가능한 순간들이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어쩌면 우리는 지금 지구상에서 사라진 회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누가 옮았건 틀렸건 그게 뭔 대수이겠습니까?

오로지 맞는 사실은 애플이 오늘날 존재하고 있고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 또 커가고 있다는 것일 겁니다. 그게 좋은 일이던 아니던 예전에 제가 언급했듯이 이런 회사가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며 여지껏 그래왔듯이 계속 혁신적인 갈길을 가고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wave



p.s. 저는 지금은 애플 직원이 아닙니다. :-) 그대신 2002년에는 상상도 못했었던 일을 하고 있네요. Think Different!.

wave 님께서 2008-07-07 08:40 PM 에 수정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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