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pple’s PA Semi Acquisition Fits Into Its Chip History
April 28th, 2008 | History, Journal, Markets, Mobiles, Software, Tech
Daniel Eran Dilger
애플의 PA Semi 인수가 완전히 새로운 애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역사상 볼 때, 애플은 컴퓨터에 사용할 세련된 칩을 스스로 디자인하였으며, 완전한 마이크로프로세서는 공동 개발하기도 하였다. 그런 사실을 안다면, 인텔 이주는 내부적인 반도체 디자인 작업을 대부분 인텔에게 맡겨버린 것처럼 보일 것이다. 애플은 후회를 했는지, PA Semi를 인수하여, 다시금 칩 디자인 사업으로 돌아왔다. 본 기사는 애플 칩 사업의 과거에 대해 알아보고, PA Semi 인수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의 포위된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알아본다.
애플은 어째서 PA Semi를 인수하였을까
A Brief History of PC Chip Fabs in the Early 70s.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거의 동시에, 우연히 만들게 된 회사가 두 곳 있다. 인텔과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이다.
1971년 인텔은 첫 번째 상용 마이크로프로세서라 부르는 4004를 발표하였으며, 같은 해 TI는 첫 단일-칩 마이크로컴퓨터를 소개한다. 제일 분명한 첫 판매 사례는 계산기(TI의 전문분야다)와 데이터 터미널(인텔이 추구하던 사업이다)이었다.
당시 칩 디자인은 칩 공정의 일부였다. 칩 디자이너들은 제조 공장까지 직접 차렸으며, 이 때문에 커스텀 디자인 칩 사업의 진입장벽은 무척 높았다. 새 칩 디자인의 개발 비용과 더불어, 수요도 제한적이었던 시기다. 아직 유비쿼터스 컴퓨팅이나 소비자 가전제품이 생겨나기 전이었으나, 지금도 대규모 회사 몇 곳을 제외하면 별로 제조사가 많지 않다.
TI가 디자인한 계산기용 칩을 제조하기 시작한 곳은 MOS Technologies였다. MOS는 Commodore Business Machines의 주요 칩 업체가 되기도 하였다. 인텔의 8비트 8080이 1974년에 나오자, 모토로라는 고유의 대안인 6800을 선보인다. 이 칩 모두 150~300$ 선이었으며, 이 가격때문에 마이크로프로세서의 광범위한 채택은 일어나지 않았다. 훨씬 저렴한 다른 부품으로 마이크로프로세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다.
Rapid Innovation in Chip Development in the Late 70s.
모토로라의 주요 칩 개발자였던 척 페들(Chuck Peddle)은 더 채택을 늘리기 위해 6800의 저렴한 버전을 개발하고 싶어하였다. 그런데 모토로라가 그 전략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페들은 빌 멘쉬(Bill Mensch), 그 외 대 여섯 명의 칩 디자이너와 함께 모토로라를 떠난다. 하지만 제조사가 필요했기 때문에, 이들은 MOS로 가서 6501을 개발한다. 6800과 유사하지만 훨씬 저렴하고 더 빠르며, 더 작고, 제조도 더 효율적인 칩이었다.

http://www.commodore.ca/gallery/magazines/misc/mos_605x_team_eetimes_august_1975.pdf
Motorola는 MOS를 고소하였다. 그 때문에 유사하며 저렴하지만, 침해도는 덜한 6502가 나왔다. 그런데 1976년, 부품사까지 인수를 하여 "수직통합"을 이루지 않으면, TI가 계산기 사업을 차지해버릴까 두려워한 Commodore가 MOS를 인수한다. 자기 스스로 칩 디자인을 할 수 있게 되자, Commodore는 애플이나 아타리와 같은 경쟁사들보다 더 빠르고 저렴한 프로세서를 빠르게 만들어낸다. 애플과 아타리는 외부 협력사를 통해 칩을 따로 디자인해야 했다.
원래 Commodore는 6502와 같은 저렴한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포드와 같은 제조사에게 팔고싶어 하였지만, 실제 수요 고객은 개인용 컴퓨터 업체들이었다. 스티브 워즈니악도 25달러 짜리 MOS 6502 프로세서를 사용하여 애플 I을 디자인하였다. Acorn과 아타리, 코모도어, 애플 II, NES 게임콘솔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8-비트 시스템도 이 칩을 사용하였다.
Commodore가 MOS를 인수한 뒤, Commodore는 게임시장에 진입하려 하였다. 6502 디자인을 이끈 맨쉬는 회사를 나가 Western Design Center를 창립한다. MOS 6502를 라이센스한 그는 개선된 65C02를 만들고, 애플이 후에 애플 II로 이 칩과 16-비트 65C816을 채택한다(1986년의 애플 IIGS가 사용한 칩이다). 그 외에 Super Nintendo와 함께, 자동차 컨트롤러부터 맥박조정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기기가 이 칩을 택하였다. 그 수는 50억 개를 넘는다.
그동안 인텔 8080의 주요 개발자였던 페데리코 파긴(Federico Faggin)은 회사를 떠나 Zilog을 창립한다. 이곳에서 그는 바이너리 수준에서 호환성을 갖되 더 간단하고 저렴한 Z80 프로세서를 만든다. 덕분에 Z80 시스템은 원래 Digital Research의 개리 킬달(Gary Kildall)이 만든 인텔 8080용 CP/M 운영체제를 돌릴 수 있었다.
Zilog는 다른 칩 업체 디자인도 라이센스하였기에, CP/M으로의 소프트웨어 표준화를 이룩한다. 당시 6502 기반 컴퓨터용 Z80 코프로세서 카드가 유명할 정도였다.
IBM Kills Innovation with the PC.
6502와 Z80 기반 시스템 70년대 후반 당시 폭발한 가정용 컴퓨터 시장을 두고 경쟁하였다. 하지만 1981년 IBM이 마이크로컴퓨터 시장에 진입하여 시장은 완전히 바뀐다.
IBM은 IBM 801이라 불리는 진보적 RISC 디자인 작업을 하는중이었다. 801은 IBM POWER 아키텍쳐의 아버지이다. 그러나 IBM은 상대적으로 늙은 인텔 8088을 1981년 PC의 기반으로 삼았다. 하이엔드급 컴퓨터 시장 잠식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IBM은 또한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무명의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DOS를 라이센스한다. DOS는 Digital Research CP/M 코드의 승인받지 않은, 복제본이었다.인텔의 오래된 예외적인 프로세서와 복제된 소프트웨어는 IBM에게 막강한 시장 지배력을 안겨다 주었다. 그러나 IBM은 DOS PC 산업 통제력을 빠르게 잃었다. 그리고 의도치 않게 그 통제권을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컴팩(TI 직원들이 창립한 회사다)을 포함한 PC 클론 업체들에게 넘겨주었다.
IBM PC는 DOS PC 이전의 컴퓨터 표준에 가까웠던 CP/M과 Z80 컴퓨터를 빠르게 죽였다. 게다가 나머지 대안형 데스크톱 플랫폼 시장 대부분도 결국 죽여버리고 말았다. Acorn과 아타리, 코모도어는 80년대 들어 PC와 경쟁해야 했고, 1995년이 되자, x86 컴퓨터 업체로 실제로 사업을 벌이는 곳은 애플만이 남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는 애플마저도 죽어가는 것으로 보였다.
OS 역사 속에서 SCO와 리눅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
Macintosh Reintroduces Innovation.
IBM의 PC는 똑같은 것을 단순히 영속시킨 것에 불과했지만, 애플은 수 년 전부터 최고의 기술로 8-비트 텍스트 기반 시스템을 진보시키는 작업을 개시했었다. 70년대는 애플 II로 애플은 상당한 이윤을 올렸고, 완전히 다른 그래픽 데스크톱 시스템(LISA라 불렸다) 개발에 6천만 달러를 투자하였다. 이 시스템의 소비자용 버전이 매킨토시가 된다.
Xerox의 Palo Alto Research Center는 자사의 진보적 그래픽 컴퓨팅 기술을 주류화시키기 위해 애플에게 투자를 벌인다. 그런 시스템에 힘을 넣어주기 위해, 애플은 애플 II에서 쓰던 MOS 6502급이나 IBM PC가 쓰던 인텔 x86급 프로세서 이상의 진보적인 프로세서를 필요로 하였다. 애플은 새로 나온 모토로라의 68000을 선택한다. 디자인이 우아하였고, 앞날을 대비한 16/32비트 프로세서가 68000이었다.
모토로라의 680x0 프로세서는 1984년, 매킨토시의 등장과 함께 그래픽 기능에 힘을 불어 주었다. 아타리 ST와 코모도어 아미가는 물론, 미래형 하드웨어의 넥스트 컴퓨터,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나온 HP, Sun, Apollo가 모두 이 프로세서를 사용하였다. 인텔 자신도 진보적인 프로세서를 만들었지만, IBM의 간택을 받은 DOS PC 클론 시장이라는 규모성이 압도적이었다.
80년대 OS의 역사
Microsoft and x86 Slaughter Better Technologies.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 파트너라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맥의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x86 PC용으로 가져오려 한다. 1990년 윈도 3.0, 특히 윈도 95가 나오자, 마이크로소프트는 DOS 사용자들을 윈도로 밀어 넣었다. 오히려 x86 아키텍쳐가 더 심화된 꼴이었다. 모토로라의 우아한 680x0 프로세서는 인텔의 복잡하고 허술하되 널리 쓰이는 x86 라인과 80년대 내내 격심한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DOS PC 시장의 막대한 규모성때문에 기술적으로 더 나은 프로세서 아키텍쳐라 할지라도 인텔과의 경쟁은 무리였다.
약하지만 강력한 마케팅으로 인해,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웨어를 돌리는 x86 시스템은 썬의 SPARC와 SGI의 MIPS, DEC의 Alpha, IBM의 POWER, 그리고 HP의 PA-RISC 아키텍쳐 모두를 위협하였다. 이 아키텍쳐 모두 인텔의 x86 라인보다 우월하였지만, 90년대 들어 x86 PC의 엄청난 판매량 앞에 이들 대안형 시장 모두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다.
90년대 중반이 되자, 마이크로소프트는 x86 PC에 더해, Alpha와 MIPS, PowerPC용 윈도 NT를 개발하기도 하였다. 보다 세련된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를 돌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조차 NT 4.0으로는 작동할 만한 크로스 플랫폼 아키텍쳐를 제공할 수 없었고, 넥스트가 이미 수 년 전에 완벽하게 끝내 놓은 프로세서 독립성도 이룰 수가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NT 5.0(윈도 2000)은 x86 PC를 제외한 다른 하드웨어 지원을 중단시켜버린다.
이와 동시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텔과 같이, x86 아키텍쳐를 새로운 64-비트 아키텍쳐, 아이태니움(Itanium)으로 교체하려 시도한다. 원래는 HP 디자인을 사용하는 프로세서로서, 인텔과 HP, 그리고 SGI과 컴팩이 가세하여, 다섯 가지의 선도적인 프로세서 아키텍쳐 중 세 가지를 희생시키려 노력한다. 다름 아닌, x86과 PowerPC, 그리고 SPARC였지만, 아이태니움은 더 우월한 경쟁 프로세서를 제거함으로써 x86 헤게모니를 더욱 더 신장시킨 결과밖엔 안가져왔다.
90년대 OS의 역사
Apple’s Invisible Chip Business.
썬, IBM과 함께 애플만이 마이크로소프트/인텔 지배를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는 마이너급 컴퓨터 회사로 남는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모토로라 680x0의 발전이 한계를 나타내기 시작하자, 애플은 인텔과의 격심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새로운 프로세서 아키텍쳐로 넘어가기로 결정내린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업체로서, 애플은 하드에어 면에서는 컴팩, 소프트웨어 면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와 비교되는 존재였다. 그러나 애플은 PC 업체나 마이크로소프트 이상의 존재였다. 고도로 통합된 애플 고유의 기술을 내기 때문이다.
PC 업체들은 단순히 부품을 맞춰서, 마이크로소프트의 복제 DOS와 윈도에 라이센스 요금을 붙여 팔기만 한다. 반면, 애플은 완전히 다르고 고도의 퍼포먼스를 가진 기술을 개발하였고, 애플의 데스크톱 컴퓨터는 썬이나 SGI가 판매하는 웍스테이션에 보다 가까웠다. 이런 컴퓨터는 고도의 세련된 프로세서를 필요로 하였다.
이런 칩을 만들기 위해, 애플은 제록스 PARC의 더그 패어번(Doug Fairbairn)이 설립한 칩 메이커, VLSI와 협력하기 시작한다. VLSI는 애플리케이션에 특화된 통합 서킷, 즉, ASIC에 특화된 기업이었다. 애플은 여러 가지 ASIC로 부품가를 줄이고, 시장에 존재하지도 않던 부품을 개발하였다. 칩 개발이 궤도에 올라서자, 애플은 하드웨어 업체로서, 대량생산된 부품보다는 고유의 디자인을 사용하는 편이 낫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가령 아래와 같다.
- 애플 II 내부 디자인은 대부분 워즈니악이 한 것이었다. 그것도 워즈니악이 스스로 선택한 부품들로 말이다. 애플 III를 개발하면서, 웬델 샌더(Wendell Sander)는 고유의 LSI(1만 개의 트랜지스터) 칩을 만들었는데, 이 칩이 애플 II의 여러 가지 디스크 컨트롤러들을 하나의 단일 칩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 칩을 그는 "Integrated Woz Machine"로 불렀고, 이 칩은 매킨토시에서도 쓰였다.
- 프로토타입 매킨토시를 작업하던 버렐 스미스(Burrell Smith)는 "Integrated Burrell Machine"으로 부르게 될, 유사 부품을 한데 모은 디자인을 개발한다. 당시 애플 최고의 경쟁자를 빗댄 이름이었다. 그러나 실제 생산시 이 디자인은 쓰이지 않았다.
- 80년대 후반, 애플 엔지니어인 댄 힐먼(Dan Hillman)과 제일 리카드(Jay Rickard)는 애플 II 로직보드 전체를 단일한 VLSI(트랜지스터 10만 개 이상) 칩으로 통합시킨다. 그는 이 칩을 Mega II라 불렀고, 이 칩을 애플 IIGS와 매킨토시 LC에서 쓰인 애플 IIe 호환카드가 사용한다.
- 80~90년대 동안 애플은 오디오와 그래픽 칩, SCSI 컨트롤러와 그 외 여러 부품을 자체 개발한다. 80년대 후반, 애플은 심지어 기존의 직렬 SCSI 버스를 교체하기 위해, 고속의 동기식 시리얼, 파이어와이어를 개발하기도 하였다.
당시 PC는 보통 오디오나 네트워킹, SCSI, 심지어 그래픽 카드조차 내장형이 아니기 일쑤였다. 이런 시스템과 통합형인 맥 하드웨어는 대단히 달랐다. 그러나 점차 커져가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장력 덕분에 오래묵은 x86 아키텍쳐는 DOS를 사용하며, 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Folklore.org: Macintosh Stories: Joining the Mac Group
Apple Assumes RISC with ARM and POWER.
애플은 뉴튼처럼, 다른 회사들이 거의 하지 않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고유의 마이크로프로세서 개발을 알아보는 것도 당연했다. 80년대 후반, Acorn 컴퓨터와 만난 후, 애플과 Acorn, VLSI는 팀을 하나 만들어서 뉴튼과 Acorn 데스크톱에서 사용할 저전력 프로세서, ARM 아키텍쳐를 개발한다.
RISC 개발이라는 버클리의 한 프로젝트에 감화를 받은 Acorn은 학생들마저 새 칩 아키텍쳐를 디자인할 수 있으니 자신도 할 수 있다고 결정내렸다. Acorn 디자인이 뉴튼용 프로세서로 제일 적합하다 판단내린 애플도 여기에 뛰어든다. ARM은 통합형 메모리 관리 유닛처럼 추가적인 투자를 위해 애플을 필요로 하였다. 제조 협력사로서 VLSI까지 끌어들이자, 애플과 Acorn은 ARM을 독립 기업으로 분사시키고, 나중에 다른 기업들에게 ARM 프로세서 디자인 라이센스를 시킨다.
버클리의 RISC 프로세서 자신은 썬 SPARC 아키텍쳐의 기반이 된다. MIT의 MIPS 프로젝트 또한 나중에 별도로 독립하였고, 1992년, SGI가 이 회사를 인수한다. 코모도어를 방불케 하는 일이었다. SGI 역시 자사 시스템에 사용할 칩을 확보하기 위해서 인수를 벌였다. 두 프로젝트 모두 RISC 디자인에 대해 추가적인 투자를 일으켰다. IBM마저 잠들고 있던 801 프로젝트를 깨워서 POWER로 부활시켰고, HP의 PA-RISC, DEC의 Alpha 프로세서도 이 때 나타난다.
1986년, 애플은 애플제 RISC 프로세서인 Aquarius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680x0 매킨토시 아키텍쳐의 후계자였다. 모토로라가 680x0의 다음 버전을 성공적으로 출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애플은 이 프로세서 개발을 위해, 50명의 엔지니어를 고용하고, 크래이 수퍼컴퓨터도 한 대 사들이지만, 프로젝트를 완수하지는 못하였다.
Aquarius 이후, 애플은 모토로라와 함께 모토로라의 88100 RISC 프로세서를 고려한다. 코드명 재규어라는 새 맥에서 쓸 칩이었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OS/2를 배신당한 IBM은 이 때 애플에게 접근한다. 둘이 같이 차세대 운영체제 소프트웨어 프로젝트(탈리전트)를 시작하고, IBM의 POWER 서버용 프로세서 아키텍쳐를 애플 데스크톱 시스템에 같이 쓰자는 내용이었다. 애플은 이미 모토로라 88100에 투자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 모토로라도 참여하여, 601이라는 하이브리드 칩을 개발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IBM RISC 코어에 모토로라 버스 인터페이스를 합친 PowerPC의 첫 번째 패밀리였다.
애플의 ARM 파트너쉽은 세계에서 제일 많이 쓰이는 모바일용 프로세서를 낳았다. AIM이 낳은 PowerPC 파트너쉽 또한 서버와 임베디드 프로세서 중 가장 널리 쓰이는 프로세서를 낳았다. 모바일 영역에는 x86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웨어가 별로이기에 ARM은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맥으로 보자면, PowerPC는 PC 데스크톱 업체들을 찾기가 힘들었다. PowerPC용 윈도 NT나 OS/2, 넥스트스텝 등 다른 운영체제 이식도 대부분 불발됐다. x86 PC의 시장지배력 때문이었다.
IBM, Apple, RISC, and the Roots of the Power Mac
RISC Architectures - Bill Joy
iPhone은 어째서 Symbian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More Custom ASICs.
애플만은 SCSI와 시리얼 커뮤니케이션 컨트롤러를 위해 VLSI와 함께 고유 칩 개발을 계속하였다. AppleTalk 시리얼파트 네트워킹과 80년대 중반, 키보드와 마우스, 트랙볼, 타블렛 등 인텔의 USB가 나오기 10년 전에 만든 ADB를 통합시키려는 시도였다. VLSI는 스스로 제조 설비를 갖고 있었기에 애플은 VLSI와의 관계를 중요시 하였다. 90년대 중반 보도자료를 보면, 당시 VLSI의 애플제품부 부사장인 패드발(Umesh Padval)은 이런 발표도 하였다.
"단일 칩 상에 고유의 특수 기능을 통합시키면, 소비자들에게 상당한 이득이 돌아갑니다. 전력 사용과 크기, 무게, 가격은 줄이면서 퍼포먼스가 늘어나지요. 우리의 독자적인 FSB 셀덕분에 본사는 애플의 요구를 빠르게 들어줄 수 있었습니다. 이 모두가 애플의 혁신적인 파워 매킨토시 5200/75 LC에 기여하였습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극도로 몰리던 애플은 하드웨어를 단순화시키려 노력하였다. 당시 애플은 ARM 지분을 팔았으며 뉴튼을 중단시켰고, 돈을 아끼기 위해 될 수 있는 한 범용, 업계 표준 부품을 채용하였다. 그래서 ADB도 USB로 재빠르게 교체하였고, 떠오르는 표준인 DVI도 받아들여서, 애플 고유의 모니터 어댑터를 포기하였다. SCSI보다 더 저렴한 ATA 드라이브 컨트롤러도 이 때 등장한다.
하지만 고유의 실리콘 칩을 개발하기 위한 칩 디자이너만은 계속 고용하였다. 2004년 애플의 구인 공고문을 보면, 한 VLSI CAD 수석 엔지니어 모집 안내가 나와 있다. "복잡한 ASIC 디자인을 만들 때 필요한 디자인 플로의 전문지식을 갖고 있는 분으로서, 애플 IC 디자인과 인증 팀을 개선시키고, CAD 프로젝트와 인프라스트럭쳐의 기술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분"을 뽑는 내용이었다.
Apple Delegates ASIC Development to Intel.
2005년, PowerPC 프로세서의 미래는 10년 전, 모토로라의 680x0의 미래와 점차 같아졌다. AMD과의 격렬한 경쟁때문에 인텔은 x86이라는 돼지 목에서, Core 프로세서라는 진주 목걸이를 만들어낸다. 이에 애플은 고유 칩 개발력을 거의 모두 인텔에게 맡기고, 규모성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 덕분에 Nvidia와 ATI같은 그래픽 프로세서 업체들을 아웃소싱시킬 수도 있었다.
John C Randolph의 말이다. "애플의 PowerPC 마더보드용 ASC개발을 한 매우 유능한 VLSI 디자인그룹이 애플에 있습니다. 인텔로 이주하면서 애플은 마더보드 제조 책임을 인텔에 돌렸고, 다소 근시안적으로 그 인재들을 대부분 내보내버렸습니다. 하지만 아이폰을 개발하면서, 이렇게 하면 안된다고 절실히 깨닫게 되죠. 회사 내부에 칩 전문가가 없으니, 삼성과 얘기가 잘 안 된 겁니다. 이 때문에 아이폰에 있는 H1 프로세서가 애플이 원하는대로 나오지 못 하였죠. 물론 애플이 원한대로 삼성이 만든 것이긴 합니다. 즉, 이것은 애플의 실책이지, 삼성이 잘못 만들어준 것이 아니에요."
The Future of Apple’s Chip Plans.
"자, 이번 인수에 대해 제일 중요한 점을 지적해야겠습니다. PA Semi 설립자는 DEC Alpha 프로젝트를 돌리던 사람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CPU 아키텍쳐를 개발할 수도 있다는 얘기죠. 스티브 잡스가 그럴 만하다고 판단내린다면 그 결과는 정말 환상적일 겁니다. LLVM 프로젝트에서 나올 최신 컴파일러에 특히 잘 돌아갈 프로세서 디자인을 상상해 보십시오.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복제가 불가능해질 겁니다. 애플이 자꾸 의미를 폄하시키려드는데, 이번 PA Semi 인수는 그저 그런 인수가 아닙니다. 수 억 달러를 들여 인수한 곳은 넥스트 이후 처음이죠. 2억 7500만 달러입니다. 그저 아이폰 더 잘 만들려고 인수까지 했을까요. 스티브 마음 속에 뭔가 더 거대한 것이 있다고 봅니다. 물론 3년 내에 그 결과물을 보진 못할 테지만요."
여러 기업들, 특히 항공기 제작사와 방위업체들이 상당한 관심을 보이긴 했지만, 그동안 PA Semi가 개발해온 PWRficient 프로세서를 애플이 실제로 쓸 것 같진 않아 보인다. 오히려 누구에게도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칩 업체들이 많다는 사실이 다소 아이러니하다.
다음 기사는 마이크로프로세서의 경쟁자들과 함께, PC의 x86 아키텍쳐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어떤 것을 누려왔는지, 그러한 상황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를 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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