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CO, Linux, and Microsoft in the History of OS: 2000s
Tuesday, August 21, 2007
Apple’s Reversal of Fortune, Outlook: 1990 vs 2000.
1990년대 초 언론은 애플의 전망이 밝다 평가해 주었지만, 실상 애플 경영진은 애플의 전망을 암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애플에게 있어서 "빛나는 시대"라는 평도 있는 90년대 초이지만, 실제의 90년대 초는 종말의 시작이었다.
맥 하드웨어 아키텍쳐와 운영체제 소프트웨어는 모두 나이먹어가고 있었으며, 교체가 필요했다. 높은 가격대의 컴퓨터라는 인식을 쌓은 마케팅도 손님을 PC로 돌리고 있었다.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를 클라리스로 분사시킨 탓에, 이제는 써드파티 개발자들의 지원이 더욱 더 절실해진 마당에, 개발자들은 애플을 지원해야 할 이유를 못찾던 상황이다.
10년 후인 2000년, 언론은 애플이 포위되어 있으며, 결국 사라지리라 평가해 주었지만, 실제로는 넥스트에서 나온 새로운 경영진과 기술을 투입받은 애플은 실질적으로 전망이 밝았다. 언론은 그러한 상황을 지금까지도 발견하지 않고 있다.

맥 하드웨어는 경쟁력이 생겼으며, 맥오에스텐 운영체제도 정식 출시에 가까워졌다. 애플 브랜드는 아이맥과 아이북 덕분에 개선되었으며, 새로운 맥-전용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들이 제공되면서, 빠른 성공을 거두었고, 이는 구매자들에게 맥을 한 번 돌아볼 기회를 안겨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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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어째서 되살아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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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워즈 (Office W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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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애플의 반격]
Apple's NeXT Problem: 1997.
애플은 1996년 말부터 거의 5년간 넥스트 기술을 전달하는 노력을 해왔다. 원래 계획은 맥같은 외양만 덮어씌운 채, 넥스트스텝을 PowerPC 맥 하드웨어용으로 단순히 포팅하여 맥오에스를 대체하자였다.
어려운 작업은 이미 이루어져 있었다. 하드웨어 사업을 접기 직전, 1993년에 넥스트가 이미 듀얼 PowerPC 프로세서용 넥스트 RISC 웍스테이션 개발 계획을 시작했었기 때문이다. 애플 또한 6개월만에 포팅작업을 끝내고, 랩소디라는 이름으로 1997년 WWDC에 첫 선을 보일 수 있었다.
그런데 랩소디는 맥용 새 운영체제로 나온 동시에, 표준 인텔 x86 PC용으로도 나왔었다. 옐로박스라 불리우는 런타임을 통해, 랩소디 애플리케이션은 윈도상에서도 돌아갈 수 있었으며, 거의 힘 안들이고서도 썬 솔라리스 또한 옐로박스 애플리케이션을 돌릴 수 있었다.
The Death of Yellow Box: 1998 - 1999.
그러나 거대 맥 개발사인 마이크로소프트와 매크로미디어, 어도비가 옐로박스용으로의 애플리케이션 제작을 거부함으로써, 이 전략은 파탄에 이르렀다. 이들은 애플에게, 새 운영체제 하에서도 자신들의 애플리케이션을 계속 돌릴 방법을 알아내라 요구하였다.
그 결과 애플은 새 맥 플랫폼으로 개발자들을 이끌기 위해, 중간단계의 아키텍쳐를 따로 마련해야 했다. 이 작업에 수 년이 소요되었다. 또한 애플은 같은 시기에 맥 시스템 7의 개선도 계속 해 주어야 했다. 그래야 기존의 맥을 팔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맥오에스 8, 그리고 맥오에스 9였다.

이 전략이 바로 맥오에스텐이다. 넥스트스텝에다가 주요 클래식 맥오에스 API를 깔끔한 것으로 추가시킨 카본, 즉, 블루박스를 추가시킨 버전이었다.
옐로박스 API 일부는 코코아가 되었지만, 이러한 확장적인 변화로 코코아와 옐로박스는 사못 다른 결과를 나타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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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llow Box의 죽음, 그리고 Cocoa]
Going Open Source For Fun and Profit: 1999 - 2002.
애플은 또한 넥스트스텝의 코어 OS를 현대화시켜야 했다. 이 부분이 1994년 이후 진척이 안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세 가지 주요 오픈소스 BSD 그룹, FreeBSD와 NetBSD, OpenBSD가 이미 상당한 개선을 이뤄준 덕분에 애플도 이를 통합시킬 수 있었다.
애플은 또한 애플 나름의 Mach/BSD 조합을 다윈 오픈소스 프로젝트로서 구현시켜 놓았다. BSD가 노벨의 AT&T Unix System Labs를 인수해서 무료가 됐기에, 애플은 유닉스 라이센스 의존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또한 어도비의 디스플레이 포스트스크립트 이미징 레이어를 포함하여, 기타 독점적 라이센스 기술도 제거되었다.

이 변화는 코드를 현대화시켰을뿐만 아니라, 보다 더 개방적인 개발로 애플을 이끌어 주었고, 가격도 대단히 낮아지게 만들었다. 사용자 한 명당 795달러 하던 넥스트스텝에 개발툴까지 합치면 2790달러였다.
맥오에스텐은 개발툴을 풀로 담아도 129달러에 불과하다. 애플은 나중에 원래 5만 달러 하던 WebObjects까지 무료로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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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OS X Server의 오픈소스]
Apple Takes on Microsoft: 2002 - 2007.
맥오에스텐은 넥스트스텝의 현대화 업데이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애플의 기존 소비자 맥 시장에 대기업이 사용하던 객체지향 개발툴도 안겨다 주었다. 애플은 또한 소매망을 구축하였으며, 퀵타임과 컬러싱크같은 고유한 기술도 여기에 포함시켰다.
이러한 신기술의 투입덕분에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를 재빠르게 추월하였다. NT의 다섯 번째 버전인 윈도2000을 선보인 후, 2001년 XP를 출시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소비자용 하드웨어와 게임 산업에도 들어선다. 그러다가 코드네임 롱혼의 NT 6.0을 만들기 위해 5년간의 실패를 거듭한 마이크로소프트는 마침내 윈도 비스타를 선보였다.
그동안 애플은 2002년 맥오에스텐 10.2 Jaguar부터 2003년에는 10.3 Panther, 2005년에는 10.4 Tiger를 선보였다. 유닉스 기반에 세워졌기에, 애플은 X11 호환성도 제공할 수 있었고, 그 결과, 고등교육기관과 과학기술 시장에서도 맥이 더 매력적으로 변모하였다.

이와 동시에 애플은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으로 크리에이티브 사업을 목표로 하기 시작하였다. 영상과 방송이라는 기존 사업을 비잔으로, 음악과 사진 사업에도 진입한 것이다.
또한 애플은 여러가지 소비자용 애플리케이션으로 맥 플랫폼의 매력을 더해줘서 파워유저들도 음악과 사진, 비디오를 다루도록 하였다. 이 iLife 애플리케이션은 이미 준비된 제품이라는 이미지로 맥을 차별화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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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hone의 OS X과 Leopard, 그리고 Vista]
Caledera’s OpenLinux: The Linux “Mac OS X” That Failed: 1996 - 2002.
마이크로소프트를 따라잡으려 노력하는 회사가 비단 애플만은 아니었다. 레이 누어다(Ray Noorda)의 계획도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와 오피스 사업을 유닉스와 워드퍼펙트로 경쟁하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노벨에서 쫓겨나면서, 그는 칼데라 시스템즈를 사용하며 두 번째 시도를 벌인다. 이미 그의 나이 70대였다.

누어다는 노벨의 마케팅 중역이었던 랜섬 러브(Ransom Love)와 협력하여 크로스플랫폼, 리눅스-기반의 데스크톱을 제작한다. 칼데라는 노벨로부터 1996년, DR-DOS와 관련된 자산을 인수하였고, 이 자산으로 1981년부터 1995년까지 이어온 대 마이크로소프트 재판에서 합의로 승리하였다.
칼데라만이 법률소송 전문기업은 아니다. 1996년부터 2002년동안 칼데라는 리눅스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는 범용 애플리케이션 플랫폼으로서 OpenLinux 작업을 해 왔었다. 문제는 기업에서 리눅스의 기존 고객 기반이 매우 협소하다는 데에 있었으며, 이 때문에 리눅스용으로 이렇다할 데스크톱 애플리케이션이 없었다. 누어다는 다음의 해결책을 고안한다.
- 코렐 워드퍼펙트와 코렐드로 애플리케이션을 리눅스용으로 포팅한다.
- 기존 상용 유닉스 고객들을 리눅스로 이주시킨다.
Users + Applications = Platform.
이 전략은 동시기 애플의 계획과 유사하다. 애플 또한 기존 클래식 맥 사용자들을 새로운 넥스트스텝 기반의 맥오에스텐으로 이주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반면 애플은 유닉스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도 강조하여, 맥오에스텐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충분한 애플리케이션과 사용자들을 확보하려 하였다.
2000년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상대적으로 작은 회사인 칼데라는 이제 훨씬 더 큰 기업, Santa Cruise Operation을 인수할 정도의 돈을 거머쥐게 된다. Santa Cruise Operation은 누어다가 노벨에 있을 때, AT&T로부터 인수하였다가 누어다가 해임되면서 잃어버린, 상용 유닉스 배포권을 갖고 있었다.
리눅스는 이미 당시 상용 유닉스와 비교해 볼 때 발군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미 깊게 침투한 유닉스 시장에서 리눅스를 팔기는 여전히 어려웠다. 리눅스 또한 90년대 유닉스처럼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었기 때문에, 유지와 개발이 좀 복잡했다. 여타 다른 곳보다 더 보수적인 상용 유닉스 사용자들에게는 특히 문제가 될 만했다.
Caldera’s Failed United Linux: 2002.
2년이 지난 2002년, 칼데라는 SuSE Linux와 Turbolinux, Conectiva와의 협력을 통해 United Linux를 형성한다. 기업을 목표로 하여, 기존
Red Hot Red Hat Linux 배포본과 경쟁을 벌이기 위한 리눅스 플랫폼 조성이었다.
이 유나이티드 리눅스 협력사들은, 리눅스 배포본 간에 차이점과 같은 불확실성을 어느 정도 해소하여, Linux Standard Base이라는 범용 플랫폼을 개발할 계획을 세운다. 결국 이들은 SuSE의 우월한 리눅스 배포판 구현으로 표준화시키기를 결정한다. 마케팅은 공동이었다.
- 북미 지역은 칼데라
- 유럽 지역은 SuSE
- 아시아 지역은 Turbolinux
- 남미 지역은 Conectiva
그런데 유닉스 고객들을 리눅스로 이주시키는 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OpenLinux에서 SuSE로의 이주도 마찬가지였다. 이와 함께, 칼데라는 Santa Cruise Operation으로부터 인수한 상용 유닉스 고객들에게 리눅스/유닉스 혼합본을 판매하려 하였다.
리눅스는 UnixWare 고객들이 바라는 친숙함과 규모성을 제공하지 못했기에, 칼데라가 나서서 그 작업을 한 것이다. 칼데라는 OpenLinux에다가 기존 UnixWare 커널을 덧붙여서, OpenUnix 8을 만든다. OpenUnix 8은 본질적으로 표준 상용 유닉스에 리눅스 호환레이어를 추가시킨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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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UNIX 8 - Unix Review]
Caldera’s War on Linux: 2002 - 2003.
2002년 중순, 맥브라이드를 CEO로 모시면서, 칼데라는 리눅스에서 한 층 더 멀어졌다. 맥브라이드는 칼데라를 The SCO Group으로 바꾸고, 칼데라의 고객 대다수가 여전히 전통적인 상용 유닉스 고객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그러한 고객들을 리눅스로 이주시키자는 누어다의 계획은 전반적으로 실패작이었다. 게다가 United Linux도 결국은 SCO의 고객들을 SuSE로 이주시키겠다는 의도였다. 그렇다면 SCO 투자자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제 80세에 가까워진 누어다는 은퇴하였고, 칼데라의 기업성격은 급속도로 변하게 된다.
맥브라이드 휘하의 SCO는 자신을 모든 상용 유닉스의 표준으로 규정지었다. 리눅스가 상용 유닉스 코드를 통합하여, 저작권을 부적절하게 침해하였다는 발표를 할 때에도 이미 의심스러운 전환이었다. 리눅스 변호인들은 리눅스의 모든 코드가 독립적으로 구현되어있다고 하였다. SCO 안에서 리눅스 개발에 관련해 있던 직원들은 모두들 누어다와 러브를 포함하여 회사를 나갈 태세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2003년 United Linux는 결국 실패로 끝난다. 노벨이 SuSE를 인수하여, 새로이 리눅스 전략을 세웠기 때문이다. 윈도와 경쟁하기 위한 새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누어다는 네 번째 기회를 잡은 셈이다.
- 1993년 노벨 유닉스
- 1996년 칼데라 오픈리눅스
- 2002년 유나이티드 리눅스
- 현재 노벨의 SuSE 리눅스
Caldera vs Microsoft and SCO vs Linux.
SCO의 리눅스 공격에 대해, 다니엘 라이언즈나 그 외 관측통들은 DR-DOS와 관련된 칼데라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싸움만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 두 사건이 꼭 같지는 않다.
리눅스에 대한 재판,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재판의 차이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재판을 할 때는 그럴 만한 동기, 그리고 모든 문서와 증거를 갖고 있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DR-DOS는 두 손이 묶여 있었고, 마이크로소프트가 대낮에 공개처형시킨 것에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SCO는 리눅스에 대해 일방적인 주장 이상을 갖고 있지 않다. 게다가 증거 제출도 거부해왔다. 리눅스가 유닉스 코드를 빌려갔다고 주장을 한지 5년째인데, 그 동안 SCO는 그 증거를 제출하기 거부해왔고, 그저 기업들에게 값비싼 법률 문제에서 피해야 할 테니 리눅스 사용을 멈추라고만 권고하였다.
DR-DOS Settlement Reverts to Fund Microsoft’s War on Linux: 2003 - 2007.
2000년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DR-DOS와 관련한 자신의 더러운 역사를 희석시키기 위해, 수 억 달러를 얼마든지 내 줄만한 위치였다. 오히려 마이크로소프트에게는 그 편이 더 나았다. 그로부터 2년 뒤, 재판은 SCO 대 리눅스로 바뀌었고, SCO는 이제 마이크로소프트의 이익에 맞게 봉사하고 있다.
리눅스와의 전쟁에 있어서 SCO에게는 더 많은 돈이 필요했으며, 이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유닉스 라이센싱"에 수 백만 달러를 SCO로 기부하였다. IBM과 노벨과 같은 마이크로소프트 경쟁사들에 대한 SCO의 재판을 돕기 위해서였다.
처음 IBM에게 재판을 걸 때 SCO는 IBM에게 10억 달러를 요구하였다. SCO 유닉스 코드를 AIX와 리눅스에 베꼈다는 명목이었다. 인텔 아이태니엄 IA-64용으로 유닉스 포팅을 의도했던 90년대 말의 옛 SCO 프로젝트, Monterey에 IBM이 참여하였다가 베꼈다는 이유였다. SCO는 또한 IBM 스스로가 AIX를 리눅스로 포팅시킬 수 없도록 해 놓았다면서, 이는 "AIX가 상용 유닉스에서 갈라져 나왔기 때문"이라 하였다. 원래부터 유닉스 플랫폼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IBM을 저작권 침해로 고소하자, 노벨은 스스로가 유닉스의 저작권을 SCO에게 판매한 적이 없다는 발표를 하여, 노벨도 이 재판에 뛰어든다. 즉, SCO 재판은 재판무효에 해당된다는 주장이었다. 노벨은 UnixWare 배포권만을 SCO에게 판매했을 뿐이라 밝혔다. 분노한 SCO 변호사들은 노벨마저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였다.
한편, 데일 킴볼(Dale Kimball) 판사가 지난 주, 노벨이 실제로 유닉스의 저작권과 UnixWare의 저작권을 갖고 있다는 판정을 하였다. 따라서 SCO의 주장은 꺾였다. 이제 저작권을 근거로 리눅스 진영에게 재판을 걸 이유가 사라져버렸다.
The Futile Fight Against the Future.
SCO는 현실에 적응하기보다 미래를 스스로 바꾸지 않고, 오히려 미래를 죽이려들었다. 한 때 IBM이 개인 컴퓨터에서 그랬던 적이 있으며, 80년대 DOS 사용자들도 그래픽 컴퓨팅을 막으려 했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현재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컴퓨팅을 막으려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래와의 싸움이다. 그 싸움을 법률 소송으로 쉽게 하려 하였다. 불법적으로 얻어낸 독점적 지위, 그것도 말썽많은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려는 마이크로소프트는 이길 수 없는 전쟁을 하고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는 법률 소송의 유혹에 빠져들고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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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의 이길 수 없는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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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 Linux, and Microsoft in the History of OS: 2000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