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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1, 04:09 AM   #4
casau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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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OS의 역사

SCO, Linux, and Microsoft in the History of OS: 1990s

Saturday, August 18, 2007

Intel 80x86 vs Motorola 68000.
80년대는 애플과 아타리, 코모도어, 넥스트에서 나오는 그래픽 컴퓨터가 나온 시대였다. 그리고 이 모두가 모토로라 68000 시리즈 프로세서를 채용하였다. 이 새로운 하드웨어는 보다 강력한 소프트웨어를 가능하게 해 주었고, 그에 따라 완전한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도 쓸 수 있게 되었다.

IBM의 1981년, 8-bit PC는 원래 인텔의 저가형 8088을 사용했었다. 80년대 중반 PC는 16비트 80286 프로세서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 이후로도 인텔의 x86 라인 프로세서는 모토로라 68000 아키텍쳐에 비해 퍼포먼스나 세련도, 디자인 면에 있어서 열세를 면치 못하였다.

초기 PC는 맥과 아미가, ST, 넥스트의 소프트웨어에 미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규모의 경제성때문에 인텔은 결국 모토로라를 따라잡게 된다. 심지어 모토로라 680x0 패밀리의 퍼포먼스와 경쟁을 벌이기에 이르른다.

인텔 PC의 잠식은 아타리와 코모도어, 넥스트 하드웨어 사업에게 있어서 재앙이었다. 1993년 아타리는 아예 컴퓨터 사업을 접고, 다시 비디오 게임 사업으로 돌아선다. 넥스트 또한 1993년에 하드웨어 사업을 포기하였고, 코모도어는 1994년 도산하였다.

이 때문에 영국 Acorn을 제외하면, 이제 대안형 컴퓨터 플랫폼으로는 애플만이 남게 되었다. Acorn에 대해서는 기사, "iPhone은 어째서 Symbian을 선택하지 않았을까"에서 설명한 바 있다.


[iPhone은 어째서 Symbian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
[1985-1990: 16-비트 그래픽 컴퓨터의 시대]
[1990-1995: 새 플랫폼을 향한 질주]
[왜 애플은 이제서야 인텔을 사용하게 되었나]

RISC: 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ing.
인텔의 486은 90년대 초, 모토로라 68040에 대해 강력한 경쟁을 시작하였다. 애플은 차후 시스템용으로 새로운 프로세서를 찾기 시작하였고, 내부적으로 프로세서를 따로 만들기도 하면서, 모토로라와 협력하여 88000 RISC 프로세서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새 하드웨어는 더 크고 빠른 컴퓨터와 관련있을뿐만이 아니었다. 애플은 Acorn과 함께, 휴대기기용으로 새로운 RISC 프로세서 아키텍쳐를 개발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탄생한 프로세서가 ARM 아키텍쳐이며, 이 칩은 뉴튼에 들어갔고, 오늘날에는 아이포드와 아이폰, 그 외 유사 기기 대다수에 들어가게 되었다.

ARM은 강력하고 효율적인 하드웨어 사용을 위해 보다 세련된 코드 컴파일러를 사용하는, 단순화된 하드웨어 디자인이었다. 이러한 RISC 프로세서로는 이미 웍스테이션에서 쓰이는 DEC의 Alpha와 SGI의 MIPS, HP의 PA-RISC, Sun의 SPARC이 있었다.


The AIM Alliance: 1991 - 1996.
그동안 IBM은 자신이 1981년 만들어낸 인텔-기반의 데스크톱 컴퓨터 시장 통제력을 상실하였고, 1987년 PS/2 컴퓨터로의 재기도 실패하였다. 클론 업체들 때문에 밀려는 IBM은 OS/2 개발에 있어서도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배신당한다.

IBM의 오리지날 1981년 PC 디자인은 원래 IBM 자체 801 프로세서를 사용하기로 되어 있었다. 801 프로세서는 훨씬 강력한 RISC 디자인이었다. 이 801칩이 80년대를 거쳐, 1990년 POWER 아키텍쳐로 태어난다.

POWER에 기반하는 새로운 데스크톱 프로세서 아키텍쳐를 개발하기 위해, IBM은 애플과 모토로라와 함께 1991년, 연합을 결성한다. 이 AIM 연합은 애플과 모토로라가 기존에 이루어놓은 성과를 덧붙여서 PowerPC를 조달하게 된다. 이들은 당시 기세가 다해가고 있던 인텔의 x86 PC 플랫폼을 완전히 대체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운영체제도 진보적인 새로운 OS를 갖다 놓을 계획이었다.

[옛 기술 지원의 함정]

The Next Generation of Software: 1990 - 1995.
IBM은 OS/2나 AIX용으로서 깔끔하고 강력한 데스크톱과 웍스테이션에 PowerPC를 채택할 예정이었다. 애플과 넥스트도 68x00 하드웨어에서 PowerPC로의 이주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였고, 모토로라는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NT를 PowerPC용으로 포팅하였다.

넥스트는 1988년에 초기 베타로 시작된, 이미 진보적인 운영체제를 갖고 있었다. 1992년, 넥스트는 세 번째 버전의 베타를 선보였고, 이를 완전히 성숙된 운영체제로 간주하였다.

애플처럼, 넥스트로서도 더 새롭고 강력한 하드웨어로의 이주가 필요했으며, PowerPC는 분명한 해결책처럼 보였다. 하지만 애플로서는 하드웨어에 덧붙여서, 나이 들어가는 맥 시스템 7을 대체할 새 OS도 필요로 하였다.

Pink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애플의 새 OS는 IBM이 가세하여 탈리전트(Taligent)로 선회하였다. 탈리전트는 빠른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위한 객체 지향 프레임웍을 제공하기 위해, 넥스트가 이미 이루어 놓은 작업을 되풀이하도록 되어 있었다.

[Canon to buy NeXT factory, design center - NeXTWorld]
[Hardware was great while it lasted - NeXTWorld]
[1990-1995, 핑크와 탈리전트, 코플랜드의 비밀 ]

The Age of Microkernels: 1990 - 1995.
IBM이 자사의 여러 가지 하드웨어 플랫폼을 PowerPC로 이주하려 계획하면서, IBM은 Workplace OS라 불리우는 운영체제 커널과 코어 플랫폼 계획을 세운다. 이 OS는 PowerPC 하드웨어에서 기존 소프트웨어 포팅을 쉽게 하기 위해 각 제품라인에서 재사용이 가능했다.

Workplace OS는 Mach 3.0 마이크로커널상에서 만들어져 있었다. 원래는 AIX와 OS/2, 그리고 궁극적으로 탈리전트를 돌리는 PowerPC용 OS가 될 터였다. 애플 자신도 탈리전트용 커널을 마흐 3.0 마이크로커널 디자인상에서 개발하였고, 코플랜드 OS용 커널로는 NuKernel을 계속 사용하였다. 코플랜드는 맥 시스템 7을 대체할 내부 독립 프로젝트였다.

카네기멜론 대학의 마흐 프로젝트에서 출발한 마이크로커널 상에 여러 가지 시스템을 올리려는 경향이 갑자기 일어났다. 초기 버전의 마흐 마이크로커널의 아이디어는 BSD 유닉스 커널 안에 들어가 있었다. 넥스트스텝 코어 OS로서 넥스트가 접근한 방식이었다.

마흐 3.0은 상단에서 돌아가는 "OS personality"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마이크로커널을 시도하였다. IBM의 Workplace OS는 DOS와 OS/2, 유닉스, OS/400을 돌릴 계획이었으며, 마흐 3.0 상의 모든 환경을 잠재적으로 돌릴 셈이었다.

마흐 3.0으로 유사한 작업을 하는 곳은 또 있었다. GNU의 Hurd와 OSF 버전의 유닉스도 그러했다. 마이크로소프트 또한 초기에는 DOS를 마이크로커널 디자인의 NT로 교체하려 했었다.

[Mac OS X 마이크로커널의 미신을 벗긴다 1]
[GNU와 리눅스, 그리고 아이폰]


Microsoft Promises to Catch Up: 1990 - 1995.

1991년 마이크로소프트는 IBM과의 "OS/2 NT"를 단일 윈도 NT 프로젝트로 전환한다. NT는 유닉스 POSIX와 IBM OS/2는 물론, 32비트 윈도 API와의 소프트웨어 API 호환성을 약속하였다.

NT는 또한 여러 가지 하드웨어 아키텍쳐 상에서 돌아갈 예정이었다. x86 PC는 물론 PowerPC, 그 외에 MIPS와 Alpha를 포함하는 기존 웍스테이션 하드웨어에서도 목표로 삼았다.

마이크로소프트가 1991년에 약속한 바는 또 있었다. 카이로라 불리우는 객체 지향 개발 프레임웍이었다. 이는 넥스트와 탈리전트를 노리고 한 발표였으며, NT 첫 버전이 나온 후에 바로 나오리라 말했었다.

[1990-1995, 카이로로 가는 머나먼 길]

Wrong on All Counts.
PC 잡지들은 한 번도 스스로 운영체제를 개발해 본 적이 없고, 신뢰성 있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한 적도 없으며, 아무 것이라도 제 때에 출시한 적이 없는 회사인 마이크로소프트가 갑자기 성숙한 OS를, 그것도 몇 달 안에 고품질의 개발 프레임웍을 내놓으리라 확신했었다.

조금이라도 더 아는 이들은 소수였다. 이들은 애플과 IBM의 탈리전트가 조금만 있으면 넥스트가 제공한 소프트웨어에 필적하리라 예상하였다. 초기에는 넥스트를 지원하던 HP도 탈리전트 프로젝트에 합류하던 때였다.

그런데 모두가 틀렸다. IBM과 애플이 완벽한 하드웨어 상에 완벽한 커널, 그리고 완벽한 OS를 개발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 1990년, 윈도 3.0이 나온 이후, OS/2에 대한 관심은 빠르게 식었다.
  • 저가형 윈도 PC가 재빠르게, 애플 매킨토시 시장의 잠재 성장을 대체하였다.
  • 애플과 IBM 간 기업 문화 차이가 탈리전트의 진전을 가로막았다.
  • Mach 3.0과 관련된 퍼포먼스 문제가 모든 일의 진척을 막았다.

[1990-1995: 떠오르는 태양, 윈도우즈]


The Resurrection of the PC: 1990 - 1995.
OS/2와 탈리전트, PowerPC의 이상적인 디자인은 업계 전반의 호감을 샀었다. 확실히 인텔 기반의 DOS PC는 교체가 필요한 시기였다. 그러나 기존 PC가 갖는 규모의 경제성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은 경쟁 기술을 제공하겠다는 말만으로도 성공적으로 경쟁자들을 막을 수 있었다.

인텔은 막대한 투자를 들여서 x86 아키텍쳐에 기능을 덧붙이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보통은 RISC 아키텍쳐용 기술이었다. 이 엄청난 투자 끝에 PC는 적어도 90년대 초반까지 그럭저럭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대신 그 디자인은 급속도로 비효율화 되어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DEC로부터 운영체제 하나를 사들여서 OS/2에서 손을 떼었다. 데이비드 커틀러(David Cutler)가 이끄는 마이크로소프트 팀은 결국 DEC의 VMS에 상당히 가까운 디자인의 OS를 낳았다. 이 OS는 IBM Workplace OS의 마이크로커널 디자인 원칙 경향도 반영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1993년의 윈도 NT 3.1이었다. 윈도 NT는 윈도 3.0의 MS-DOS 기반을 새 운영체제 디자인으로 교체하려 했었다. 하지만 WorkplaceOS처럼 NT는 퍼포먼스가 매우 안 좋았다.

윈도 NT는 그 후에도 여러 해동안 소비자용으로 준비가 안 되었다. 하지만 NT의 등장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신의 시장력으로 기술적으로 우월한 소프트웨어 채택을 막을 수 있다는 현실을 드러내 보여 주었다. 만든다는 발표만 해 주면 그만이었다.

이 NT의 다음 버전이 카이로로 불리어졌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은 거의 모든 바를 약속하였다. 이 때문에 업계 전반에 걸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은 무적의 환상을 심어 주었다. 물론 나중에는 대실패로 끝나게 될 터이지만, PC 플랫폼은 이제 "윈텔"로 불리우게 되었다. 윈텔이라는 이름을 두 회사 모두 싫어하지 않았다.

코모도어에서 아타리까지, 경쟁사들을 도태시키면서 윈텔 PC가 시장을 단일화하자, 애플 맥만이 그나마 살아 있는 플랫폼으로 남게 된다. 이것도 애플 맥이 가진 교육시장과 크리에이티브 시장 덕택이었다. 그러나 점차 개선을 더해가는 PC는 교육시장과 크리에이티브 시장까지 침투하기에 이르렀다. 애플의 미래는 암울하게만 비쳐졌다.

[1990-1995: 세상은 왜 윈도우즈 판이 되었는가]


Competing with NeXT to Nothing: 1990 - 1995.

그동안 실제로 차세대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실제로 잘 돌아가는 운영체제에 객체지향 개발툴을 선보인 곳인 넥스트가 유일했다.

넥스트는 애플과 IBM의 탈리전트, 마이크로소프트의 카이로가 약속한 기술 마케팅과 싸워야 했다. 탈리전트와 카이로라는 두 허풍은 결코 나오지 않았다.

1993년, 넥스트는 새로운 PowerPC 개발을 갑자기 멈추고, 하드웨어 사업을 완전히 멈춘 다음, 소프트웨어 판매에 주력하기로 방침을 바꾼다.

넥스트는 NeXTSTEP을 표준 인텔 PC용으로 포팅시키고, 썬이나 HP의 고급 웍스테이션 하드웨어용으로도 포팅을 한다.

넥스트의 개척적인 기술을 업계는 칭송하였다. 하지만 한 때 넥스트 아니면 안된다던 협력사들은 계속 넥스트를 배신하였다.

  • IBM이 NeXTSTEP 라이센스 값을 지불하였으나, 한 번도 직접 판매하지는 않았다.

  • 썬은 솔라리스 포팅을 위해 OpenStep에 투자하였지만, 썬 자사의 자바 구상때문에 오픈스텝을 포기하였다.

  • HP도 OpenStep에 관여하였지만, 탈리전트로 대체해버렸다.

  • Digital은 OSF/1 상단에 OpenStep을 사용할 계획이었지만, 실제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IBM, Data General turn to NeXT]
[iPhone용 OS X과 WinCE, Palm, Symbian, 리눅스]

Unix Wars: 1988 - 1995.
저가형 PC 시장 바깥의 컴퓨터 세상은 유닉스세상이었다. 세계 대부분의 웍스테이션 업체는 HP의 HP-UX와 IBM의 AIX, SGI의 IRIX, SCO Unix for the PC, 애플의 맥용 A/UX를 라이센스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닉스의 두 번째 가지가 있었다. 70년대 후반 UC Berkeley에서 탄생한 이 유닉스는 BSD, 즉 Berkeley Standard Distribution으로서, 원래는 상용 유닉스 코드에서 나온 일부를 AT&T에서 라이센스 해야 했다. 그러나 BSD는 스스로 개선을 하였다. 그 중 제일 중요한 부분은 네트워킹 코드였다. 이러한 비-AT&T 코드는 "BSD 라이센스"라는 이름으로 자유로이 배포가 되었다.

80년대 중반, X/Open은 유닉스 표준화 작업을 시작하였다. BSD의 주도적인 배포자인 썬과 AT&T가 협력하여, 유닉스 SVR4라 불리우는 버전을 만들어낸다. 썬이 이를 채택하여 SunOS 5에 집어 넣었다. SunOS 5는 BSD의 한 종류에서 유닉스 SVR4가 되었고, 후에는 솔라리스 2.0으로 바뀐다.

웍스테이션 라이벌 그룹은 썬을 경쟁자로 보았다. DEC와 HP, IBM은 따로 그룹을 결성하여 1988년, Open Software Foundation을 설립한다. 이 OSF가 스스로의 통합 유닉스 버전을 1992년 만드니, 그 이름은 OSF/1이다.

상용 유닉스 벤더들 간의 싸움때문에, 유닉스 웍스테이션은 평범한(혹은 매우 열등한) 윈도 플랫폼 PC로 교체될 길을 트고 말았다. 서로간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훨씬 더 거대한 위협임을 깨닫자, OSF는 X/Open과 합병하여 The Open Group을 만들었고, 이 그룹에서 현재 유닉스 트레이드마크와 POSIX 호환사양을 인증하고 있다.


The Unix/BSD Lawsuit and Linux: 1991 - 1995.

자유로이 배포되는 유닉스-류의 운영체제도 유닉스를 쪼개는 데에 일조하였다. 1991년, AT&T 고유 코드의 남은 부분이 BSD에서 제거되었다. BSD가 자유로이 배포되는 유닉스가 되어서이다. AT&T의 Unix System Labs는 1992년 BSD를 상대로 재판을 걸었고, 그 결과 배포를 멈출 수 있었다.

이렇게 거의 2년간 멈춰진 가운데에, 이 재판은 합의로 끝을 맺었고, 약간의 변화가 이루어진다. 1994년, 합법적인 4.4 BSD Lite 버전이 나오게 된다.

이 기간동안 BSD를 둘러싼 합법성 여부때문에, 새로이 리눅스 커널과 Free Software Foundation의 GNU 소프트웨어 추진이 이루어진다. 둘 모두 AT&T 유닉스의 자유로운 두 번째 대안으로 작용하였다.

[GNU와 리눅스, 그리고 아이폰]


Apple’s History with Unix: 1988 - 1998.

IBM과 OSF와의 관계때문에 애플은 680x0-전용이었던 A/UX 대신 파워맥용으로 OSF/1을 포팅한다. A/UX는 1988년 클래식 맥에서부터 나왔었다. 1996년, 애플은 애플 웍그룹서버에 IBM AIX를 채용하였다.

1994년, 애플은 AIX와 PowerPC 상에서 파워맥용 애플리케이션을 호스팅하기 위해, MAS(Macintosh Application Services)라 불리는 미들웨어 소프트웨어를 발표한다. 비-PowerPC, 즉, HP나 썬 Sparc 웍스테이션 상에서 네이티브 맥 애플리케이션을 호스팅하는 MAE(Macintosh Application Environment)가 있었기 때문에 상황은 혼란스러워진다.

맥 소프트웨어 환경을 타 플랫폼으로 라이센스하기를 거부한 이후, 애플은 1998년, 실험용으로 MkLinux를 선보인다. OSF Mach 3.0 마이크로커널상단에 리눅스 커널을 돌리는 아이디어였다. 이 아이디어는 리눅스에 관심 있는 사용자들에게 맥 하드웨어를 판매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애플 서버 20년사]
[1990-1995: 벽에 부딪힌 맥]


Novell Buys Up A Defense Against Microsoft: 1991 - 1996.
윈도가 1991년, 세력을 확장시켜나가자, 노벨(Novell)은 Digital Research를 인수하고, DR-DOS를 Novell DOS로 판매하기 시작한다. 덕분에 노벨의 넷웨어(NetWare) 소비자들은 마이크로소프트 MS-DOS를 라이센스하지 않아도 되었다.

윈도와 오피스 애플리케이션에서 지닌 독점력이 자사의 네트워킹 사업을 위협하리라 우려한 노벨은 여러 인수를 통해 자기 자리를 다지기 시작한다. 당시 노벨 CEO는 레이 누어다(Ray Noorda)였다.

IBM OS/2, 마이크로소프트의 NT/Cairo 약속과 경쟁하기 위해, 노벨은 1993년, AT&T로부터 Unix System Labs를 인수한다. 노벨은 AT&T의 UnixWare에 자사의 NetWare 사업을 통합시켜서, 서버로서의 윈도와 경쟁하려 하였다.

AT&T가 BSD와 벌였던 재판을 끝낸 이도 누어다였다. 유닉스를 인수한 이후, 그는 빠르게 분쟁을 합의로 끝내고, 사업으로 되돌아섰다. 노벨은 당시 워드퍼펙트와 볼랜드의 쿼트로 프로(Quattro Pro) 스프레드쉬트를 인수하여,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와 대적하려 했다.

리눅스를 미래로 본 누어다는 노벨 내부에서 프로젝트를 하나 시작한다. 공개 소프트웨어를 사용한 마이크로소프트와의 경쟁이었다. 그러나 70세가 된 누어다는 1994년, CEO에서 물러났고, 그 직후, 노벨은 누어다가 인수한 사업부들을 즉각 매각하기 시작했다.

  • 1995년, 노벨은 당시 UnixWave라 불린, AT&T로부터 인수받은 유닉스 코드에 대한 권리 배포권을 Santa Cruise Operation에 판매하였다. 이 배포권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오래 전 제닉스(Xenix)와 함께 팔려나가기 시작했으며, 그 때 이후로 회사는 SCO Unix로 이름을 바꾸었다.

  • 1996년, 노벨은 오피스 애플리케이션을 코렐에 판매하였다.

  • 1996년, 노벨은 DR-DOS를 Caldera Systems에 판매시켰다. 노벨의 전 CEO, 누어다가 운영하는 곳이 칼데라였다.


Caldera Sues Microsoft: 1996 - 2000.

칼데라는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의 사랑하지 않는 리눅스 배포자였다. 거의 가치가 없는 DR-DOS를 인수한 칼데라는 1981년부터 1996년에 이르는 15년 간의 불법 간섭, 독점 계약, 불법 묶어두기, 시장 독점을 두고 싸우던 노벨과 마이크로소프트의 갈등마저 인수하였다. 그동안 마이크로소프트는 몸소 베꼈던 Digital Research가 자기 시장에서 쫓겨나게 만들었었다.

Digital Research와 노벨이 조합한 증거가 쌓이자, 칼데라는 DR-DOS 재판으로 마이크로소프트와 담판을 지으려 하였다. 새로이 경쟁자가 될 리눅스 개발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5년간, 칼데라는 마이크로소프트에게 계속 싸움을 걸었고, 결국 2000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칼데라에게 합의금으로 2억 7500만 달러를 준다. 단, 재판에서 나온 모든 증거를 파기한다는 조건이었다. 이는 90년대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일으킨 행위에 대해 후속 유사 재판을 막기 위해서였다.

[1996년의 협정, 그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 ]

Apple Leaves AIM, Shops for a New OS: 1996.
IBM과 애플 간의 협력관계는 1995년 크게 공개된다. IBM이 인수한 탈리전트와 PowerPC 파트너는 인텔-기반 컴퓨터와 경쟁할 범용 플랫폼 선정에 실패하였다. 결국 데스크톱 컴퓨터 중 PowerPC를 채택한 주요 회사로는 애플만 남게 되었다.

나머지 업계는 대부분 x86 PC에 섰고, 인텔은 32비트를 넘어선 아이태니엄 IA-64를 약속하였다. 그러나 아이태니엄은 MIPS와 PA-RISC, Alpha를 파괴시키면서, 거대한 재앙으로 끝난다.

PowerPC의 빠르고 깔끔한 디자인덕분에 애플은 맥오에스의 경쟁력을 유지시키면서 새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낼 시간을 벌충하게 된다. 탈리전트를 떠나면서 애플은 코플랜드 프로젝트도 포기한다. 애플로서는 PowerPC 맥의 잠재성을 이끌어 낼 OS 기술이 절실했다.

1996년,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 NT를 고려했다가 포기하고, 스티브 잡스가 떠난 뒤 80년대 후반 맥 개발을 진두지휘했던 쟝-루이 가세의 프로젝트, Be도 고려했었다.

가세의 BeBox는 훌륭한 멀티미디어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1996년 당시 BeOS는 초기 개발자 단계였으며, 다중사용자 파일 퍼미션이나 보안, 심지어 출력 기능도 없는 상태였다. BeOS는 1998년까지도 "프리뷰" 상태로 남아 있었다.

[BIOS PC를 뛰어넘은 애플 펌웨어]
[1990-1995: NeXT와 Be, 그리고 Mac PC]


NeXT Reinvents Apple: 1997 - 2000
잡스는 애플을 설득해서 넥스트를 인수시킨다. 소비자용 맥에 넥스트스텝이라는 현대적인 기술을 주입시키는 동시에, 넥스트가 지닌 대기업 사업도 애플에게 인수시킬 수 있다면서 말이다. 이 판매를 통해 넥스트 소프트웨어로의 이주가 이루어지지만, 생각보다는 훨씬 더 어려운 작업이었다. 추가적으로, 넥스트의 기업 고객들은 애플과의 협력을 반기지 않았다. 이들은 인텔 쪽으로 돌아서버린다.

넥스트 경영진들은 애플을 탈바꿈시킨다. 잔여 사업을 정리하고, 교육과 소비자 시장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잡스 치하의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소송도 종료시킨다. 10년이 넘는 소송이었다. 이로써 애플은 자신의 장점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된다.

2000년, 애플은 맥오에스텐 계획을 발표한다. 맥 플랫폼을 넥스트가 10년 전 보여 주었던 소프트웨어로 이주시키는 하나의 다리였다. 단, 이 기술은 소비자 시장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애플 소생시키기]
[애플은 어째서 되살아났을까]

Doomed to Repeat it: the 2000s.
마이크로소프트는 즉각적으로 애플 기술을 따라잡겠다는 발표를 한다. 물론 사용자 대다수는 여전히 DOS 상에서 윈도를 돌리고 있었다.

1991년, 넥스트스텝을 따라잡으려고 발표만 해 두었던 카이로는 이제 2001년, 롱혼에 대한 약속으로 바뀐다. 바로 수 년 전 맥오에스텐에 나온 기능을 롱혼에서 구현시키겠다는 약속이었다.

[1995년은 2007년에 되풀이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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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 Linux, and Microsoft in the History of OS: 199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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