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CO, Linux, and Microsoft in the History of OS: 1970s
Monday, August 13, 2007
최근 SCO와 유닉스, 리눅스의 저작권 문제를 둘러싼 소식을 보면, 역사적인 맥락 없이, 흩어져 있는 사실들을 한데 모으기 어렵다. 윈도와 리눅스, 맥의 오늘날 시장 상황을 이해하려면, 예전의 시장 상황이 어땠는지도 되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미래가 어떨지 윤곽을 잡을 수도 있다.
기술 산업 분석가들의 과거 발언을 보아도, 왜 이들이 이렇게 혼란스러워 하는지, 업계 참여자들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왜이리 흩뿌리는지에 대한 설명도 가능하다. 벌 돈이 많아서이다.
The Odd Couple of SCO.
Forbes의 다니엘 라이언즈(Daniel Lyons)는 로브 엔더를(Rob Enderle)과 함께, 오랜 동안 SCO Group을 지지해왔다. 이들은 리눅스 자체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썼을뿐만 아니라, 리눅스 지지자들이 얼마나 환상을 품고있는지도 써왔다. 리눅스에 대한 이들의 십자군 전쟁은 서로 간의 주장 인용에까지 이르렀다.

포브스 기사 중, "Revenge of Nerds"가 있다. 라이언즈는 이 기사에서 리눅스 지지자들이 인터넷 게시판을 어지럽힌다며, 리눅스에 관심이 있다면, 그자는 곧 정상이 아니라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인용을 하였다. "SCO의 주장이 합법적이라 주장하는 분석가인 로브 엔더를은 위협까지 받았다고 말한다. '기술-미치광이'들이 테러를 일으키고있다는 말이다."

얼마 안있어, 엔더를도 화답하였다. 언제나처럼 리눅스를 비난하는 글 속에서 그는 라이언즈의 기사를 인용한다. "그는 리눅스 지지자들 중 많은 수가 실제로 리눅스 사용자도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사실 라이언즈는 기사에서 그런 내용을 쓴 적이 없었다.
엔더를과 라이언즈는 리눅스와 SCO에 있어서 서로 간의 기사를 서로 인용하였다. 엔더를은 반-리눅스, 친-윈도 기사에 특화시켰고, 라이언즈는 리눅스 사용자들이 독립적인 미치광이들이라 명찰을 붙였다. 반-SCO 선전은 아무래도, IBM이 비밀리에 조직적으로 지원하지 않겠느냐는 주장과 함께 말이다.
[
Revenge Of The Nerds - Forbes.com]
Attacking and Marginalizing Dissenting Opinion.
리눅스 커뮤니티에 대한 라이언즈의 냉소적인 관점은 포브스에 나온 기사로 증명이 된다. 심지어 스티브 잡스를 행세한 자신의 블로그에도 나와 있다. 어째서 리눅스 때리기가 그토록 중요할까?
리눅스 사용자들은 맥 사용자들처럼 자신의 플랫폼을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룩한 독점적인 지위에 대항하는 플랫폼으로 인식한다. 잘못된 사실이나 정보가 상당히 부정적인 투로 다루어지면, 열정적으로 사실을 옹호하게 된다. 라이언즈나 엔더를 류의 필자들은 이러한 방어적인 행동을, 신실함을 무시하는 광적인 행동으로 파악한다.
자기 스스로 만들어낸 이야기로부터 질무을 이끄는 데에 라이언즈는 탁월하다. 블로거들을 "거짓말이나 일삼고 비난과 독설로 자유를 남용하는 온라인 무리들"이라 매도하면서, 자기의 포브스 칼럼 역시 동일한 내용을 반복한다. 물론 간단하게 그 수위를 약화시켰다.
[
Attack of the Blogs - Forbes.com]
I’m a Lover Not a Hater.
라이언즈는 자신이 "리눅스 증오자"라고 들었다면서, 그런 주장이 불공정하다고 말한다. 자신은 수 년동안 리눅스를 써 왔으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면 리눅스를 칭송하는 기사를 썼다고 한다. 그는 또한 SCO가 재판에 승리하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다고 말하였다. 오히려 리눅스 업체들이 SCO 재판에 대해 별다른 우려를 하지 않는 현상에 더 놀랍다고 밝혔다.
"필자는 리눅스 벤더들이 SCO에 별다른 우려를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 때(지금도 마찬가지다) SCO 주장이 근거가 없다고 결론내렸더라도, FUD는 여전히 피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케팅으로 뭔가 반응을 해 줘야 했다."
그러나 라이언즈의 리눅스와 오픈소스 기사는 일반적으로 복잡한 주제를 일반화시키는 기자들의 관점을 반영한다. 분명히 리눅스와 오픈소스에 부정적인 엔더를 같은 전문가들의 말들을 인용하면서, 인용글로 기사를 채우는 것이다.
Why Support SCO?
라이언즈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것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가 왜 틀렸는지를 알아보는 편이 더 중요하고 흥미롭다. 데스크톱 운영체제의 역사에서 배울 알찬 교훈이 있기 때문이다.
라이언즈는 SCO를 포함하여, 운영체제의 역사를 이렇게 평하였다. "1996년, SCO의 전신(全身)인 Caldera는 DOS 운영체제의 옛 버전 권리를 사들였고, 이를 사용하여 마이크로소프트를 고소하였다. 결국 양사는 합의를 이룬다."
칼데라가 나중에 입수가 되어 SCO가 된 이후로, 라이언즈는 똑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리라 결정내렸다. 다만 이번의 패자는 리눅스였다. 2002년, SCO가 새 CEO로서 법률 전문가, 달 맥브라이드(Darl McBride)를 모셔온 이후 더 분명해졌다.

라이언즈는 칼데라가 이미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커다란 돈을 얻어냈으니, 전문 법률꾼을 모셔온 SCO 역시 리눅스를 지원하는 회사들로부터 돈을 끌어모으기에 전혀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하였다. IBM이 그 시작이었다.
[
가짜 잡스와 SCO, 그리고 리눅스]
Why Lyons Was Wrong: the Origins of Microsoft.
문제는 라이언이 알고 있는 역사가 너무나 과다하게 단순화된 역사였다는 점이다. 칼데라는 단순히 DOS의 옛 버전을 사들여서 이를 마이크로소프트 고소에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DOS의 옛 버전"이라 불린 존재는 Digital Research가 개발한 DR-DOS였다. 이는 마이크로컴퓨터 운영체제의 70년대 이야기인 CP/M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시장은 매우 소규모였고, CP/M을 라이센스한 가장 큰 회사는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이라는 두 명의 소년이 운영하는 회사, Trarf-0-Data였다.
개인용 컴퓨터의 개념이 떠오르자, 게이츠와 알렌은 BASIC 언어 소프트웨어 주문을 받는다. 아타리와 애플 II를 포함하는 새로운 하드웨어 상에서 돌릴 언어였다. 그리고 그제서야 새로운 이름, 마이크로소프트가 등장한다.
Hardware vs Software: 1976 - 1981.
기업용 컴퓨터에서 소프트웨어는 컴퓨터 시스템에서 거대한 가치를 차지한다. 고유한 시스템이랄 수 있는 IBM과 AT&T의 유닉스, DEC의 VAX 시스템과 VMS이 그러하다.
이와 동시에 어디에서건 돌아가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려는 노력도 시도가 이루어진다. UC 버클리의 프로젝트였던 BSD는 AT&T 유닉스를 개선하는 프로젝트였다. BSD는 70년대 후반에 개발이 이뤄져 여러 가지 하드웨어를 지원하게 되었다. 80년대 초, 리차드 스톨만(Richard Stallman)은 누구나 기여를 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 도서관 책처럼, 자유 소프트웨어의 비전을 정의내리게 된다.

그러나 개인용 컴퓨터에서의 가치는 하드웨어에 있었다. 70년대 등장했던 컴퓨터들은 다음과 같다.
- Commodore: PET2001이라는 올-인-원 컴퓨터를 처음 등장시켰다.
- 애플: 컬러 그래픽이 가능한 개인용 컴퓨터를 최초로 내놓았다.
- Atari: 비디오 게임 사업을 개인용 컴퓨터 사업으로 확장시켰다.
- Tandy: TRS-80 라인을 판 RadioShack의 소유주였다.
이들 회사는 제각각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작성하였다. 80년대 초, 개인용 컴퓨터 사업이 대확장을 하게 되자, CP/M 라이센스 업체가 늘기 시작한다. 그러면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따로 작성하지 않아도 되고, WordStar처럼 이미 유명한 CP/M 프로그램을 돌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이었다.

애플도 심지어 애플 II 시스템에서 쓸 수 있는 Z80 프로세서 카드를 판매할 때가 있었다. Z80 기반의 TRS-80용으로 나오는 CP/M 소프트웨어를 돌리기 위해서였다.
[
1980-1985: 8-비트 플랫폼의 시대]
IBM Fights the Future: 1981.
IBM의 주요 사업은 원래 메인프레임과 미니컴퓨터였다. 1981년, PC 사업에 진입할 때, IBM은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관계를 맺어서 재빠르게 로우엔드 시스템을 제공하려 하였다. PC로의 진출이 그 만큼 절실했다.
IBM은 기업용 컴퓨터에서 거의 독점에 가까운 지위였으며, 데스크톱 컴퓨터 업계에서 새로 떠오르는 신생 업체들과 경쟁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IBM PC는 애플을 포함하여, 사무용 시장에 진입하려는 모든 경쟁사들을 무찌르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IBM은 기존 CP/M 시스템과 호환성을 유지시킬 필요가 없었다. 기존 기업 시장에서의 독점력으로 PC를 판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PC를 최대한 저렴하게 공급하기 위해, IBM은 기존 기술을 재사용하게 된다. 그래서 재판매용으로 CP/M을 라이센스한다.

[
Donkey Folklore.org]
Microsoft Copies CP/M: 1981.
마이크로소프트의 첫 번째 재판매용 소프트웨어 라이센스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였다. 1979년, 마이크로소프트는 AT&T의 V7 유닉스를 라이센스하였고, 여기에 BSD 코드를 입힌 다음 Xenix라는 이름으로 팔았다. 이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후, 게이츠와 알렌은 Digital Research로부터 CP/M을 라이센스하는 대신, 그대로 CP/M을 복제해서 팔기로 결정내린다.
1981년, 마이크로소프트는 QDOS의 권리를 사들인다. QDOS는 Seattle Software Works가 CP/M을 불법적으로 복제한 OS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권리를 IBM에게 다시 판매하였다. 그래서 PC-DOS가 IBM PC용 OS로 등장한다. 한편 마이크로소프트는 라이센스 권리를 유지하였고, 다른 하드웨어 업체들에게 MS-DOS라는 이름으로 라이센스를 내린다.
마이크로소프트의 DOS는 분명 CP/M에서 수많은 부분을 그대로 옮겨왔다. 하지만 당시 소프트웨어 특허에 대한 인식도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소프트웨어 저작권이라는 아이디어의 정의조차 상당히 느슨했다.
기업과는 달리, 데스크톱 사용자들은 소프트웨어에 별다른 가치를 주지 않았으며, 복제에도 벼ㅕㄹ다른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이츠는 그러한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 그 자신이 판매하고 있던 DOS 소프트웨어가 불법 복제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료 소프트웨어 아이디어에 대항하였다.
IBM PC로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하자, 마이크로소프트는 CP/M을 만든 Digital Research가 문을 닫게 만드는 데에 주력하였다. Digital Research는 IBM PC용 CP/M-86을 팔아보려 노력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DOS를 대폭 할인하여 Digital Research를 무찌른다. 복제할 때부터 거의 비용을 들이지 않았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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