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pple in the Web Browser Wars: Netscape vs Internet Explorer
Tuesday, June 19, 2007
WWDC에서 애플은 놀랍게도 윈도용 사파리 웹브라우저를 선보였다. 칼럼니스트들은 이를, 1995년에서 2003년 사이에 일어난, 넷스케이프와 마이크로소프트 간의 브라우저 전쟁의 재발로들 묘사를 많이 한다. 그렇다면 넷스케이프가 그토록 비참하게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애플이 또 다른 브라우저 전쟁을 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기술 업계는 어째서 애초에 웹 전쟁을 일으켰을까? 한 때 브라우저 시장의 80%를 점유하던 넷스케이프를 마이크로소프트가 어떻게 깨뜨렸고, 거기서 얻을 교훈이 무엇인지 알아본다.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독점한 상황에서 사파리의 등장도 분명 많은 시사점을 지닐 만하다. 애플이 어째서 윈도용 사파리를 내놓았는지, 새로운 브라우저의 등장이 가져올 결과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몇 년 전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많은 도움이 된다.
The World Wide Web Before the Browser Wars.
전 글은 정부과 기업, 연구소, 자발적인 학생들을 등장시켰다. 이들은 인터넷을 통한 정보 공유의 새롭고도 공개적인 방법을 만들어낸다.
80년대 후반, 애플의 무료 HyperCard 오쏘링 시스템은 기술적인 식견이 전혀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흥미를 돋구었다. 이들도 하이퍼카드 스택을 만들어서 정보를 공유하고 만들어낸 것이다. 오늘날의 인터랙티브 웹사이트나 위키, 위젯과 마찬가지다.
하이퍼카드 모델에 감화받은 연구자들과 전세계 학생들은 전세계적인 규모로 링크화된 문서를 공유하는 표준 시스템을 디자인하였다. 독립적이고 영토적 경계도 없는 인터넷이었다.
이 때, 주요 인터넷 서비스로서 웹 개발의 표준형, 개방형 프로토콜을 만들고 정의내리기 위해, 미국 정부가 투자를 벌였다. 누구나 호환성 있고, 상호운용성이 있는 네트워크망을 통해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표준이었다. 이 초기 투자분의 일부가 바로 비-상업적 사용인 경우 무료 사용이 가능했던 NCSA Mosaic 웹 브라우저였다.

1993년, 웹이 등장하자 인터넷도 덩달하 확대된다. 웹은 일반적인 사용자들도 쉽고 직관적으로 쓸 수 있었고, 심지어 자기 스스로 웹을 만들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번영의 시대에, 개방형 기술진보의 시대에 어째서 전쟁이 일어났을까? 이 질문은 답하기 쉽다. 언제나 그렇다. 돈이, 그것도 아주 많은 돈이 관련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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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과 웹브라우저]
The Rise of Netscape: 1993 - 1996.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을 1993년에 졸업하였고, 학생 시절, NCSA의 모자이크 브라우저 개발을 이끌었던 마크 안드레센(Marc Andreessen)은 Mosaic Communications을 설립했다가, 후에 회사 이름을 넷스케이프(Netscape)로 바꾼다. 유료 Netscape Navigator 웹브라우저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안드레센은 10년 전 Stanford University를 졸업하여 Silicon Graphics를 세운 짐 클락(Jim Clark)과 협력한다. 클락의 SGI 경험을 등에 업은 안드레센은 네비게이터 브라우저의 개발을 지속시키기 위한 사업계획도 만들어 놓는다.
모자이크를 포함하여 무료 브라우저가 있는 가운데에, 넷스케이프는 웹브라우저 클라이언트를 무료로 뿌리고, 웹서버 소프트웨어 판매로 수익을 얻기로 계획하였다.
넷스케이프의 초기, 발빠른 혁신과, 비-상업적 사용에 한해 무료인 모자이크의 규정을 받아들인 결과, 웹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넷스케이프가 새로운 표준이 되었다.

A Threat To Microsoft’s Desktop Monopoly.
출범하기도 전에 쇠퇴해버린 MSN의 현실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는 결국 AOL 모델에서 발을 빼고, 넷스케이프 모델을 복제하기로 결심한다. 게다가 인터넷 접속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AOL과 같은 폐쇄형 온라인 서비스 시장은 앞으로의 잠재성이 거의 없었다.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인 웹서버 시장도 마이크로소프트의 흥미를 끌기에는 부족하였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넷스케이프가 웹브라우저를 통제할 경우, 데스크톱 독점상황에 심각한 위협이 생기리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웹브라우저는 이제 하이퍼링크가 된 문서를 링크하는 간단한 방식에서, 이제 세련된 인터랙티브 애플리케이션을 약속하는 씬 클라이언트 애플리케이션 플랫폼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만약 넷스케이프가 이런 웹 애플리케이션을 어떤 플랫폼에서도 돌리게 만든다면, 마이크로소프트에게는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다.
넷스케이프 자신도 웹브라우저를 새로운 플랫폼으로 마케팅하였고, 자사 브라우저가 크로스 플랫폼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최적이라 묘사하였다. 윈도와 리눅스, OS/2, 매킨토시, DEC Unix, Sun Solaris, BSDI, SGI IRIX, IBM AIX, HP-UX용으로 네비게이터가 나와 있던 상황이었다.
1996년, 넷스케이프는 썬의 자바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브라우저와 함께, 자바 역시 간단한 크로스-플랫폼 개발 환경을 약속하였다. 어쩌면 윈도를 대거 교체해버릴지도 모를 후보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플랫폼은 써드파티 개발자들에게 의존적이었고, 이들 역시 윈도에 의존적이었다. 개발자들이 앞으로 웹을 사용하여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게 되면, 윈도에 안 묶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마이크로소프트의 PC 데스크톱은 이제 경쟁에 노출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을 유지시켜주는 것은 윈도-중심적인 개발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모든 웹 개발을 윈도로 묶어야 했다. 이 때문에 스스로 웹브라우저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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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리 워즈: 에피소드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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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는 익스체인지 서버!]
Microsoft Enters the Browser Market: 1995 - 2001.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는 NCSA 모자이크 프로젝트의 유료형 스핀오프(spinoff), Spyglass로부터 웹브라우저 기술을 라이센스받아,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만든다. 위협이었던 넷스케이프를 파괴시키기 위해서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IE에 상당한 자원을 투입시키고, 개발과 마케팅 양쪽 모두에 있어서 넷스케이프를 능가한다. 윈도에 IE를 번들시켰을 뿐 아니라, ISP에게 넷스케이프 대신 IE를 배급시키라 마케팅력을 동원하기도 하였다.
맥용 오피스 연기 위협을 하면서까지 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과도 협력을 맺어, 맥 데스크톱에서 넷스케이프를 떼어낸다. 1997년, 윈도용 기본 브라우저로서 시장점유율을 급신장시킨 마이크로소프트는 웹-기반 IE/윈도 개발을 여러 가지로 선보인다. 자바 개발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윈도와 IE로 묶는다. 이는 자바와 웹의 상호운용성을 죽여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넷스케이프의 위협을 물리치고나자, IE 개발은 중단된다. 특히 맥 플랫폼에 있어서 중단이 먼저 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순전히 넷스케이프의 크로스-플랫폼 접근을 물리치기 위해 들어온 것이었다.

웹 개발을 IE와 윈도에 묶자(기업 환경에서 특히 심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제 혁신을 중단시키고, IIS 웹서버의 가격을 올리기 시작한다. 웹마저도 윈도 데스크톱 플랫폼의 폐쇄형 확장판으로 만들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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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 Office, $150 Million, and the Story Nobody Cove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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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용 MS오피스 중단 위협의 미신을 벗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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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SS, 그리고 Podcasting의 간략한 역사]
Netscape Hoist With Its Own Petard: 1997-1998.
마이크로소프트가 웹브라우저 시장에 들어서자 확실히 넷스케이프는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보통 넷스케이프에게 대안이 없었다는 말을 많이들 하는데, 다음의 두 가지 점을 고려하면 그 주장을 다시 생각해 봐야한다.
첫째. 마이크로소프트가 넷스케이프의 브라우저 사업을 물리치겠노라 등장하였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다음의 경쟁자들에게 있어서 경쟁력이 없었다.
- 구글: 검색과 웹 마케팅
- 애플: 소비자 가전과 데스크톱 운영체제
- 리눅스: 서버와 임베디드
감히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해 도전한다면 가차없이 물리치리라는 무적의 마이크로소프트 미신이 있다. 하지만 사실 마이크로소프트의 커다란 경쟁자들이 마이크로소프트보다 약간 더 무능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장점유율만 올려주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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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제국의 새로운 옷, Surface]
둘째. 넷스케이프는 자신의 문제 때문에 시장에서 실패하였다. 첫 번째 문제는 전략문제요, 두 번째 문제는 제품관리와 개발 문제였다.
넷스케이프의 전략은 마이크로소프트처럼 브라우저 시장과 웹개발을 자사의 비-표준 HTML 확장에 묶으려 하였다. 자사의 웹서버 소프트웨어의 채택을 위해서다. 그 결과 마이크로소프트 IE보다 소비자들에게 더 나은 제품이 나오지를 않았다.
이런 잘못된 전략에 더해, 넷스케이프 자신의 행동도 허술했다. 1993년부터 1997년까지 네비게이터 브라우저의 버전 네 가지를 급조하다가, 넷스케이프의 개발 계획은 엉망이 되기 시작하였다.
넷스케이프 엔지니어들은 계속 문제가 커져가고 비대해진 네비게이터 4의 코드베이스를 갖고 계속 작업해야 하는지, 혹은 완전히 새로운 웹 렌더링 엔진을 다시 짜야할지를 두고 갈등을 빚었다.
What We Have Here Is a Failure to Communicator.
넷스케이프는 두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우선 네비게이터 4는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 4)라는 제품 패키지로 바뀌었다. 이메일 클라이언트와 뉴스크룹 리더, 주소록, 칼렌더, 협력용 툴, 푸시 클라이언트, HTML 에디터가 들어 있었다.
넷스케이프의 오래묵고 비대한 브라우저는 이제 아무도 원하지 않는 제품 패키지로 채워져 있었다. 커뮤니케이터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사용자의 데스크톱을 두고 경쟁하려 하였다.
크로스-플랫폼 기능을 제공하기 위해, 커뮤니케이터는 네이티브 운영체제를 우회해야 했다. 즉, 웹브라우저를 X11, Gnome, KDE처럼 꾸려야 했던 것이다. 맥 사용자나 윈도 사용자나 이런 전략을 좋아하지 않았다. 서로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돌아가서였다. 즉, 장점보다는 버그가 더 많았다.
The Great Leap Forward.
이와 동시에, 넷스케이프는 또한 완전히 새로운 브라우저 엔진을 구축하려는 계획을 동시에 구사하였다. 하지만 이 역시 수많은 세월이 필요했다.
따라서 넷스케이프는 1991년과 1995년 사이, 핑크/코플랜드의 애플과 같은 처지에 몰렸다. 오래되고 비중해진 옛 것을 털어 내고, 원대한 계획을 세웠으나, 실제로 달성하지 못한, 그런 상황이었다.

게다가 마이크로소프트는 꾸준히 기술을 개선시켜가고 있었고, 매킨토시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밀리게 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과 협정을 체결해버린 탓이다. 하지만 넷스케이프 최대의 문제는 자기 자신에게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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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pard는 Copland의 구렁텅이에 빠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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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5, 핑크와 탈리전트, 코플랜드의 비밀]
Netscape Crashes, Dies: 1998 - 2000.
커뮤니케이터 4를 완전히 재작성하려는 계획의 일부로서, 넷스케이프는 웹브라우저 코드를 모질라 오픈소스 프로젝트로 공개하였다. 넷스케이프는 개발자 커뮤니티가 표준-기반형 브라우저로 IE에 대항하는 데에 흥미를 갖기를 희망하였다.
1998년, 넷스케이프는 넷스케이프 5를 커뮤니케이터 4의 중대한 리비전으로 제공하려는 계획을 취소하고, 클래식 Mariner 엔진 개발을 멈춘 다음, 완전히 새롭게 재작성된 Gecko 엔진의 완성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1999년, AOL은 넷스케이프 인수에 42억 달러를 지불한다. 넷스케이프 브라우저를 AOL 서비스 현대화용 플랫폼으로 사용하려는 희망이었다. 폐쇄형 시스템이었던 AOL을 웹-기반으로 바꾸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Gecko-기반 브라우저의 개발이 늦어지면서 AOL의 사업계획도 복잡해졌다.
Between a Rock and a Hard Place.
새로운 오픈소스 커뮤니티 프로젝트로서, 모질라(Mozilla) Organization은 1998년 이래 Gecko 엔진을 작업해 왔었지만 진전은 느렸다. 결과에 목매달던 AOL은 넷스케이프 팀에게 압박을 주어, 모질라의 베타코드를 넷스케이프 6으로 2000년에 선보인다. 하지만 마무리가 덜된 넷스케이프는 넷스케이프 브랜드에 치명타를 입힌다.

모질라 실험에 들어간지 2년 후, 넷스케이프는 커뮤니케이터 4의 수렁에 갇히고만다. 그래서 모질라코드의 초창기 베타마저 제공하려 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 IE를 따라잡기 위해 버전 5를 건너뛰었지만 누구도 속지 않았다. 넷스케이프는 이제 죽었다.
이와 반해 마이크로소프트는 1997년과 1999년, 2001년에 계속 IE를 버전업시켰다. 혁신성에 있어서도 넷스케이프를 뛰어넘은 것이다. 넷스케이프는 느리고 오래되고 버그도 많은 커뮤니케이터 4와 미완성되고 역시 버그가 많으며 느린 넷스케이프 6을 주었을 뿐이다.
넷스케이프가 어째서 급속도로 쇠퇴했는지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AOL마저도 자사 브라우저로 IE를 제공하는 마당이었다! AOL의 모성애도 도움이 못 되었다.
넷스케이프는 이제 해가 저물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이제 윈도와 맥의 전 브라우저 시장을 거머쥐었다. 경쟁이나 혁신의 필요가 사라지자, 마이크로소프트는 맥 플랫폼용 IE를 중단시키고, 윈도용도 2006년 하반기 전까지 5년이 지나도록 메이저 버전업을 하지 않았따.
Reinventing Failure with the Mozilla Application Suite: 2000 - 2003.
AOL이 미완성된 베타코드를 우겨서 내놓는 장면을 보고 경악한 모질라 개발자들은, AOL과 넷스케이프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Mozilla Application Suite라는 이름으로 독립화되었음을 알린 것이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 IE와의 경쟁을 위해 간단하고 현대적인 표준-기반의 Gecko 웹브라우저를 내놓는 대신, 모질라는 꼴사나운 커뮤니케이터를 완전히 재작성하되,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치장도 많았다.
Mozilla Application Suite는 스스로를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모듈화된 아키텍쳐를 갖춘 인터넷 플랫폼이라 하였다.
모질라는 XUL이라 부르는 언어로 정의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갖춘 완전히 새로운 클라이언트 애플리케이션으로, 적어도 윈도-중심적인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도전하려 하였다. 웹표준으로 개발을 옮기자였다.
The Endless Platform of Platforms.
흥미롭기도 하고 혁신적이기도 했던 XUL 개발은 제한적이었고, 모질라의 XULRunner 런타임을 사용해야만 돌아갔다. 즉, 전체 컨셉이 예전 실패작들과 유사했다.
- OpenDoc: 컴퍼넌트 소프트웨어
- OpenStep: 1996년, 세상이 무시했던 프레임웍
- Java VM과 Java browser applet: 썬의 계획
그리고 이들의 약속된 미래는 실패하였다...
- 어도비의 Flex와 AIR: Flash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기반을 둔 플랫폼.
- 마이크로소프트의 Silverlight, 아니면 심지어 .Net: 마이크로소프트의 실패도 사람들은 성공으로 간주한다.
- 썬의 JavaFX: 자바에 대해 새로운, 폐쇄형 익스텐션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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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hone용 OS X과 WinCE, Palm, Symbian, 리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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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 아이폰 경쟁에 뛰어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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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DC 2007: .Net과 Cocoa]
You Can Lead a Horse to Water...
따라서 9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Mozilla Application Suite의 원대한 계획은 7년간의 기간에도 불구하고 사라지고 말았다. 이와 반하여, 성숙되고 효율적인 애플의 코코아 개발툴이 오히려 상당한 채택을 받았다.
코코아의 제일 큰 고객은 애플 그 자신이다. 애플이 코코아를 사용하여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기 때문이다. 애플은 코코아로, 마이크로소프트의 허를 찌르고, 고도의 플랫폼 프레임웍을 만들었다면 명성을 받았다.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개발 플랫폼을 선보이기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

코코아가 전통을 안지킬 경우 어떤 문제가 생길지 상상해 보시라. 마이크로소프트는 IBM PC가 생길 때, 바로 그 때, 제 자리에 있었다. 그런 마이크로소프트조차도 WinCE와 Windows Mobile, 여러 가지 DRM 미디어, DVR과 미디어센터를 둘러싼 개발 플랫폼의 성공에 극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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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CE와 Windows Mobile의 처절한 실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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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센터 vs. 애플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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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월에 선보인 애플과 MS 혁신의 비교]
새 플랫폼 구축이 워낙에 어렵기에, 새 플랫폼 구축의 장벽은 없다시피하다. 다만 그래야 할 가치가 있어야 한다. 그 때문에 애플은 아이폰을 써드파티 개발에게 개방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범용이면서 현대적인 웹표준용으로 애플리케이션을 지원하겠다는 발표만 하였다.

그 주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밝히겠다! 우선은 웹 전쟁 와중에 애플이 무엇을 했는지, 넷스케이프와 마이크로소프트 간의 전투가 맥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는지를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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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DC 2007: .Net과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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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bile Disruption: Apple's iPhone and Third Party Softw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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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iPhone SDK? Predictions for WWDC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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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llow Box의 죽음, 그리고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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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5: 떠오르는 태양, 윈도우즈]
The Mac Internet Before Safari: 1993-2003.
사파리가 나오기 10년 전, 애플은 맥 플랫폼용 인터넷 서비스와 관련하여 중대한 구상 두 가지를 소개하였다. 하나는 PowerTalk과 관련된 Apple Open Collaboration Environment였다. 1993년에 소개된 이 개념은 상용 웹보다 앞섰었다. 이메일과 LAN 문서공유에 집중하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과다한 아키텍쳐였던 이 프로젝트는 실패한다. 애플은 이를 사이버독으로 바꾸려 하였다. 사이버독(Cyberdog)은 OpenDoc 애플리케이션 컴퍼넌트로 만들어진 인터넷 툴이었다. 사이버독에는 웹브라우저와 FTP 클라이언트, 뉴스 리더와 이메일 서비스가 들어 있었다.
사이버독은 원래 OpenDoc의 잠재성을 보여주기 위한 사례였다. 그러나 OpenDoc은 전혀 존재하지도 않던 문제의 해결사였다. 누구도 컴퍼넌트 조합을 원하지 않았다. 그저 단일 애플리케이션을 원하였다.
사이버독은 또한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사이버독은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터와 같은 모노리딕 코드를 교체하려 했었다. 하지만 그 전에 지원 라이브러리를 로딩해야 했다. 따라서 장점이 없었다. 커뮤니케이터처럼 느리고 비대한 버전이 나와버렸다.

또한 사이버독은 소프트웨어 업계 안에, 기존의 장벽이 얼마나 높은지, 근본적인 사고의 변경에 얼마나 저항이 많은지도 보여주었다. 사이버독은 1997년 초, OpenDoc과 함께 나왔었다. 하지만 그 때는 브라우저 전쟁이 한창 진행되던 와중이었고, 그 한가운데에 맥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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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5: 기업시장에서의 애플 대 마이크로소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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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Serve (mini)의 용도: 전화]
Apple in the Browser Wars.
넷스케이프와 마이크로소프트 간의 전쟁터로서, 애플은 사이버독이 실패하자, 맥용 브라우저를 따로 개발할 이유가 없어졌다. 달리 해야할 일이 많았기때문에 별로 부담될 일도 아니었다.
넷스케이프는 애플을 웹플랫폼 전략의 핵심 우군으로 간주하였다. 맥이야말로 크로스-플랫폼 해결책을 여실히 드러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1996년, 맥용 인터넷 익스플로러로 답하였으며, 애플과의 긴밀한 협상을 통해, 넷스케이프 브라우저를 몰아 넣는데에 성공한다.
그러나 2001년경 브라우저 전쟁이 끝나자, 마이크로소프트로서는 맥용 브라우저 개발을 지속시킬 이유가 사라진다. 넷스케이프도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 Mozilla Application Suite 외에 맥에게 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2001년 3월, 웹브라우저 전쟁의 종말은 애플에게 문제를 가져다주었다. 앞으로 애플 고객과 교육시장에 있어서 웹이 주요 기능이 되기 때문이었다.
Two Wrongs Make a Right.
사이버독 컴퍼넌트와 모질라의 실패때문에, 애플이 마이크로소트와 전쟁을 벌일줄은 당시 생각도 못했었다.
닷컴 시대동안 부활을 해낸 애플은, 다시금 찾아든 불경기 시기 맥 판매에 어려움을 겪는다. 모질라도 이제는 자발적인 수준으로 낮춰져 있었다. 2003년, AOL은 넷스케이프와 결별하였고, 대부분 넷스케이프 사원으로 이뤄진 모질라는 비영리 재단으로 변모하였다.
개방된 웹의 미래에 누구나 암울해할 수 밖에 없는 시기였다. 그러나 2003년, 애플과 모질라 모두, 브라우저 르네상스에 불을 지피게 된다. 개방형 웹이라는 오랜 이상을 실천하는 식으로 말이다.
공개되어있고, 상호운용 가능하면서, 표준에 기반하는 브라우저가 성공하면, 이 브라우저는 웹을 급속도로 바꾸게 될 것이다. 다음 글 제목은 이러하다:
The Web Browser Renaissance: Firefox and Saf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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