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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8, 07:06 PM   #1
casau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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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애플과 웹브라우저

Safari on Windows? Apple and the Origins of the Web

Thursday, June 14, 2007

이번 WWDC 기조연설에서 놀라웠던 점 중 하나는 맥오에스텐 타이거와 윈도 XP/비스타용 사파리 3.0 베타가 나온 소식이다. 새 버전의 사파리라 10월달에 나올 레퍼드에 포함된다는 점은 예전에도 알려져 있었지만, 타이거용으로도 베타가 나온다는 것도 알려져 있지 않았었다.

더군다나 윈도용 사파리라면 더욱 더 예상 밖이다. 그렇다면 애플은 어째서 이미 브라우저가 많은 플랫폼에 사파리를 포팅시켰을까?

  • 마이크로소프트가 견고하게 번들시켜둔 인터넷 익스플로러
  • 모질라의 파이어폭스
  • AOL이 제공했던 넷스케이프
  • Opera 등 여러가지 다른 대안

본 글은 웹브라우저 시장에 있어서의 애플 역사를 알아보고, 어째서 애플이 윈도용 무료 웹브라우저를 개발하기로 했는지에 대해 특히 초점을 맞춰본다.

Why Were Web Wars Waged?
관련은 있는데, 보통 묻지 않는 질문이 있다. 상당히 단순한 개념이랄 수 있는 웹브라우저 소프트웨어가 어째서 주요 기업들의 핵심에 서게 되었을까?

간단한 답변은 다음과 같다. 간단한 웹브라우저야말로 소비자와 기업 시장 모두에 있어서 인터넷 현상을 일으킨 중대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웹브라우저의 역사를 알아보면, 애플이 사파리를 어째서 윈도용으로 포팅시켰는지에 대한 윤곽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웹의 기원에 대한 소개를 먼저 하겠다.

Blazing The Hyperlinked Trail: 1987 - 1996.
사파리 브라우저가 나온 해는 2003년이었다. 당시까지 애플은 맥용 웹브라우저로 써드파티에 의존했었다. 그러나 사파리가 나오기 16년 전, 인터넷 서비스로서의 웹이 만들어지기 몇 년 전, 애플은 하이퍼링크 텍스트와 미디어를 사용한 첫 주류 애플리케이션을 선보였었다. 이름은 다음과 같다. 1987년에 나온 HyperCard for the Macintosh이다.

사파리처럼, 하이퍼카드는 무료였다. 애플의 빌 앳킨슨(Bill Atkinson)은 하이퍼카드 작업을 1985년부터 시작했었고, 모든 맥에 애플이 무료로 번들시킨다는 조건하에 하이퍼카드를 넘겼었다.

덕분에 하이퍼카드는 애플 중역진들보다 맥 사용자들에게 더 유명했다. 애플 중역들은 오히려 하이퍼카드의 지속적인 개발을 막아버리고, 하이퍼카드는 결국 잊혀져갔다.

하이퍼카드는 클라리스 소프트웨어 쪽으로 분리되어 나갔으며, 나중에는 퀵타임에 통합된다. 퀵타임 인터랙티브라 불리우는 인터랙티브 스크립트 레이어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나오지는 않았다.

하이퍼카드의 남은 부분도 결국은 중단된다. QTi(퀵타임 인터랙티브)와 함께 스티브 잡스는 1996년, 넥스트와 애플 합병 이후 정리작업을 거행하였다.

[Five Ways Apple Will Change TV: 네 번째, 인터랙티브 콘텐트]
[애플 소생시키기]
[애플은 어째서 되살아났을까]
[퀵타임을 죽여라]

Inspired by HyperCard.
그러나 하이퍼카드의 전통은 살아남았다. 애플은 HyperTalk 스크립팅 언어를 맥 시스템의 애플스크립트 아키텍쳐로 옮겨 놓았고, 최근에는 오토메이터로 완전한 웍플로우를 제작할 수 있게 하였으며, 맥오에스텐 엑스코드의 일부로서 애플스크립트 스튜디오로 완전한 애플리케이션도 만들 수 있도록 하였다.

하이퍼카드는 또한 시각형 애플리케이션 개발과 하이퍼링크 미디어, 스크립트 프리젠테이션 환경에 영향을 끼쳤다.

  • 1988년에 나온 넥스트의 인터페이스 빌더
  • 1991년에 나온 마이크로소프트의 비쥬얼베이직 개발 환경
  • 1995년에 나온 넷스케이프의 웹용 자바스크립트
  • 매크로미디어의 Director Lingo 스크립트와 Flash ActionScript.

하이퍼카드 자신은 웹 개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The Tangled Web We Wove: 1990 - 1992.
세계 최초의 웹브라우저는 1990년에 나온 WorldWideWeb이었다. HTTP(HyperText Transmission Protocol)로 규정된, 새로 나온 www 인터넷 서비스를 지원하는 클라이언트 소프트웨어였다. HTTP는 www 서버에서 브라우저로, URL 주소를 통해 하이퍼텍스트 문서를 링크, 전달시켰다.


웹 자체는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가 넥스트스텝과 개발툴, 프레임웍, 넥스트 컴퓨터를 갖고 개발하였다. 후에 넥스트스텝은 애플 맥오에스텐의 기반이 된다.

넥스트가 웹 개발에 중심이었던 이유는, 넥스트가 독자적으로 진보적인 빠른 개발툴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또한 넥스트가 고급교육기관을 점유했었고, 다른 소비자용 PC와는 달리 개방형 인터넷을 완전히 지원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개 표준을 적용하기 위한 진보적인 기술을 사용하자, 다른 개발자들도 웹 형성에 참여하게 되고, 결국 웹은 통일성과 세련성을 빠르게 갖춰가기 시작한다.

[애플, NeXT 서버로 무장하다]
[Yellow Box의 죽음, 그리고 Cocoa]
[NeXTSTEP Release 3 Demo - YouTube]

Add HyperCard and Voila: Viola.
팀 버너스-리와 같은 시기에, UC 버클리의 페이-유안 웨이(Pei-Yuan Wei)는 하이퍼카드 기능을 X 윈도를 사용해 유닉스 터미널로 옮기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다. 웨이는 나중에 이렇게 설명하였다. "하이퍼카드 매뉴얼을 보고는, 그 개념을 유닉스 엑스 윈도에서 실행시키려 하였을 뿐입니다."

웨이는 이 프로젝트, 바이올라(Viola)로 하이퍼미디어 문서로 이뤄진 인터넷을 사용하려 하였다. 하지만 넥스트의 버너스-리가 이미 만들어 놓은 뒤였다.

버너스-리의 HTTP 구조를 받아들인 웨이는 ViolaWWW 웹브라우저를 엑스윈도 시스템용으로 만든다. 그 때가 1992년이었다. 웹의 탄생이기도 하였다.

[Dr. Strangeweb]
[iPhone용 OS X과 WinCE, Palm, Symbian, 리눅스]

Consumer Online Systems Before the Web: 1985 - 1995.
하지만 90년대 중반까지 인터넷 접속은 주로 교육기관과 정부기관이었다. 소비자시장에서는 The Source나 CompuServe, Prodigy, GEnie, Quantum과 같은 전화접속 온라인 서비스가 더 주를 이루었다.

이들 텍스트-기반 서비스들은 게임과 포럼, 이메일메시지를 제공하였으나, 서로 상호작동이 안 되었고, 폐쇄형 기술을 사용하였다. 이 때문에 각기 다른 시스템 사용자들끼리는 통신이 불가능하였고, 콘텐트 개발과 제공도 제한적이었다. 따라서 써드파티, 특히 소규모 회사라면 이들 시스템에 기여하기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했다.

1985년, 애플은 GE와 함께 매킨토시-기반의 AppleLink 온라인 서비스를 개장한다. 원래는 딜러 통신망용으로서, 맥 파인더와 유사한 혁신적인 그래픽 클라이언트를 제공하였다. 하지만 GE 네트워크는 너무나 고가였다.

1987년부터 1989년까지 애플은 Quantum과 협력하여 보다 비용-효율적인 소비자용 서비스를 개장한다. 이름은 AppleLink, Personal Edition이었다. 이 서비스는 가정용 사용자들도 사용해 볼 만하였고, 완전힌 그래픽 온라인시스템으로서, 당시 성행하던 텍스트 기반 서비스와 경쟁하였다. 후에 애플은 협력관계를 청산하는데, Quantum은 이름을 America OnLine으로 바꾸게 된다.

1992년, 애플은 AOL과 다시 협력하여, 애플-중심적인 AOL 서비스를 만든다. 이것이 1994년 소개된 eWorld이다. 그동안 윈도 95가 나오면서, 마이크로소프트도 뒤늦게 자사식 그래픽 온라인서비스를 개장한다. 이것이 MSN이다.


Open Standards Kill the Proprietary Star: 1993 - 1995.
이 모든 폐쇄형 시스템은 스스로를 경쟁시켰지만, 소비자들은 상호작용성을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인터넷에 대한 유료 접속이 이 시기에 시작되었으며, 여러 가지 서비스 업체들이 이메일 인터넷 게잇웨이를 개방하기 시작한다. 즉, GE 네트워크 사용자가 AOL 사용자에게 인터넷을 통해 메일을 보낼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런 서비스가 한 번 시작되자, 폐쇄형 온라인 시스템은 이제 설 곳이 없어지게 되었다.

서비스 제공업체들은 스스로를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라 부르기 시작한다. 독자적인 콘텐트를 공급하는 유료, 폐쇄형 접속이 아닌, 전체 인터넷에 대한 공개 접속을 제공하는 업체이다.

이 때문에 AOL과 eWorld, MSN 외 여타 다른 폐쇄형 업체들의 희망은 사라져버린다. 때맞춰 인터넷 웹브라우저가 컴퓨터용으로 나오게 된다.

[도대체 .Mac은 무엇인가?]
[The Road to VoIP: Paved with Bad Intentions]

Al Gore Funds Development of the Open Internet: 1991 - 1993.
1991년, High Performance Computing and Communication Act를 제정하고 홍보해온 미국 상원의원, 알 고어(Al Gore)가 있다. 그의 High Performance Computing and Communication 법은 National Center for Supercomputing Applications’ High-Performance Computing and Communications Initiative의 설립에 자금을 지원하였으며, 이 센터가 모자이크(Mosaic) 웹브라우저의 개발을 맡게 된다.

NCSA의 모자이크 브라우저는 비-상업 사용용도로 무료 다운로드가 가능했기에, 맥과 윈도, 아미가 등의 소비자용 운영체제에서 빠르게 유명세를 얻었다.

ViolaWWW를 포함한 초기 브라우저의 다음 모델이었지만, 모자이크는 유명 컴퓨팅 플랫폼을 지원하였고, 웹페이지 안의 그래픽 인라인도 볼 수 있었으며, 비숙련 사용자들도 쉽게 사용이 가능했다. 덕분에 모자이크는 제일 유명한 웹브라우저가 된다.

전화접속 네트워크망으로는 정말 느리긴 했어도, 모자이크 브라우저로 보는 www 서비스는 AOL 이후 막대한 잠재성을 제공하였다.

웹은 공개되어 있으며, HTML 문서 작성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웹을 만들어서 서버에 올릴 수 있었다.

All You Need Is War.
표준에 기반하고 상호운용 가능한 기술, 그리고 인터넷 접속의 개화는 브라우저 클라이언트 소프트웨어 개발의 급속한 혁신을 불러일으켰으며, 개인과 기업이 콘텐트를 다투어 내놓으면서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였다.

이제 남은 일은 영토 분쟁이었다. 시장의 불확실성과 기술적 기근도 남아 있었다. 인간은 역시 실망스럽지가 않다! 다음 글을 기대하시라. - Netscape vs Internet Explo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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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aubon 님께서 2007-06-18 07:08 PM 에 수정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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