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w Microsoft Pushed QuickTime's Final Cut
Thursday, March 15, 2007
퀵타임을 죽이고야 말겠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집념은 오히려 퀵타임을 죽음의 병기로 만들고 말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신의 약점에 총을 겨누었다. 이는 실수였다. 그 때 이후로 계속, 총알이 마이크로소프트를 관통해 돌아다니고 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아보자.
Microsoft's Multimedia PC
1991년 말로 돌아가보자.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CD-ROM 플레이어와 표준형 사운드카드를 지원하기 위해, 윈도 3.0용 Multimedia Extensions를 출하하였다. 또한 Creative와 Dell, Gateway와 협력하여
Multimedia PC
라 불리우는 새로운 하드웨어 아키텍쳐 표준을 결정하였다.
MPC는 여러가지 품질의 부품을 사용하는 PC에서 멀티미디어 기능을 보다 쉽게 해 주기 위해, 최소한의 하드웨어 사양을 정하자는 의도였다. 즉, 애플 매킨토시의 지위에 도전하자는 바람도 담겨 있었다. 애플은 스스로 하드웨어를 만들기 때문에, 애플로서는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개선하기 위한 시간이 훨씬 짧게 들었다.
MPC 디자인은 또한 DOS 사용자들을 윈도로 이주시키고, 개발자들도 윈도 환경으로 이주시키려는 목표도 갖고 있었다. 사실 윈도가 제품으로 나온 것은 1985년부터였지만, 1990년, 3.0이 나오기 전까지는 누구도 사용하지 않았으며, 어느 업체도 컴퓨터에 윈도를 미리 설치해서 팔지 않았다.
The Multimedia Mac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PC에 기본 오디오 지원이 들어갔을 때, "멀티미디어"라는 어구를 사용하였다. 그런데 그 때, 애플은 오디오와 비디오 재생을 위한 새로운
QuickTime 아키텍쳐를 선보였다.
애플이 지원해야 할 하드웨어 회사는 애플 뿐이다. 애플이 이런 소프트웨어 혁신을 계속 이룬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다고 볼 수 있다.
애플 하드웨어는 더 일관성이 있을뿐만 아니라, 품질도 높았다. 맥은 주로 그래픽 디자이너의
하이엔드 소비자들에게 팔렸으며, 일반 소비자 시장에 팔려나가는 맥은 당시, 오래된 모델을 재활용한 맥 뿐이었다.
Vertical vs Horizontal
이 때문에 당시 애플의 시장은 이윤이 나긴 했어도 수직시장(vertical market)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수평시장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넘겨진 꼴이었다. 시장 다수의 필요에 따르는 충분한 대안을 싸게 공급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수평시장을 크게 확대시키게 된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넓은 시장을 확보해도, 애플은 대중 시장 경쟁자들과 자신을 차별화시켜주는 기술 발전에 매진하였다. 이 전략에 있어서 퀵타임이 핵심이었다.
애플이 윈도용으로 퀵타임을 포팅한 것만 봐도 알 만하다. 윈도용 퀵타임은 재생뿐만 아니라, PC가 소비한다고 하더라도, 맥에게
멀티미디어 콘텐트 제작에 있어서 주된 역할을 맡겼다. 인쇄와 그래픽 디자인에서처럼, 웹용 콘텐트 제작에 있어서도 맥은 PC를 앞서나아갔다.
Applied Technologies
그러나 윈도가 시장을 장악해 나아가자, 애플이 기술적인 주도를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오쏘링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대한 이유는 써드 파티개발사들과 관계가 있었다. 애플로서는 퀵타임을 최대한 활용하는 오쏘링 애플리케이션을 필요로 하였다. 그런 애플리케이션이 없는 퀵타임은
PowerTalk만큼이나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앨더스의 페이지메이커가 데스크톱 출판 시장을 만들기 위해, 어도비의 포스트스크립트 기술을 사용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퀵타임은 자신의 힘을 실제로 활용하는 개척자적인 애플리케이션을 필요로 하였다. 이른바 기본 기술의 활용이다.
프로그램이나
실행파일이 아닌, "애플리케이션"이라는 단어를 애플이 쓴 이유도 그런 이유였다.
QuickTime Applications
퀵타임을 활용한 첫 번째 애플리케이션 중 하나는, 퀵타임과 동시에 나온, 비선형 편집기인 어도비 프리미어였다.
비선형(Non-linear)은 비디오 테이프나 필름이 아닌, 디스크 상에서 영상을 편집하는 시스템을 가리킨다.

앨더스 또한 Hitchcock라 불리는 퀵타임-기반의 편집기와, 비디오와 그래픽, 효과 렌더링에 쓰이는 모션그래픽 애플리케이션, AfterEffects를 선보인다.
한편 포스트스크립트를 갖고 있던 어도비는 아크로밧을 통해 PDF 표준을 추진하고 있었다. 즉, 어도비로서는 페이지 레이아웃 프로그램이 절실했다. 이에 따라 1994년, 어도비는 앨더스를 합병하여 앨더스 페이지메이커를 기존의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아크로밧 제품군에 포함시킨다. 완전한 출력, 출판 툴 모음을 구성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 어도비/앨더스 합병으로, 중복되는 제품은 합병에
제외된다. 단 FreeHand는 매크로미디어에게 라이센스가 되어서, 일러스트레이터와의 경쟁은 유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Adobe's QuickTime Business
이 합병덕분에 어도비는 퀵타임-기반의 영상 애플리케이션도 손에 쥐게 된다. 프리미어와 애프터이펙트(AfterEffects)이다. 하지만 어도비의 이들에 대한 관심도는 출판용 프로그램에 비해 떨어졌다. 둘 다 엄청나게 거대한 출판 산업보다 훨씬 규모가 적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당시 비디오 작업은 환상적으로 비싼 하드웨어를 요구했었다.
당시 하이엔드 영상작업은 보통 Avid에서 나오는 15만 달러 어치의 웍스테이션에서 이뤄졌다. 전용 비디오캡쳐 장비와 압축, 재생 장비가 여기에 포함되었다. 퀵타임-기반 소프트웨어 툴인 프리미어의 시장은 제한적이었다.
그런데 퀵타임이 이끌어낸 멀티미디어 시장은 80년대 데스크톱 출판혁명과는 비슷하지 않았다. 기술 자체가 변변치 않았기 때문이다. 퀵타임은 여전히 인터랙티브 CD-ROM 제작에 갇혀 있었고, 영상물 재생용으로만 쓰였다. 별다른 사업이 되지 못했다는 의미다.
Adobe Targets Print, Windows
그런데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애플의 전망은 극히 어두워지고 있었다. 어도비는 인쇄 제작툴에 집중하여, 기존의 시장인 맥과, 새로이 급성장을 하고 있던 윈도용으로 애플리케이션을 동시에 내놓게 된다.
어도비의 출판용 소프트웨어는 꽤 비쌌다. 그 때문인지 맥 사용자들로부터의 수입이 절반을 넘어섰었다. 덕분에 어도비는 윈도 버전을 먼저 만들고, 맥 버전을 윈도-호환 수준으로 나중에 내놓는 방식을 채택하지 않았다.
어도비의 내부 개발 구조는 어도비 고유의 방식이었다. 어도비는 각 애플리케이션의 단일 코드기반에 집중한 다음, 맥과 윈도 양측으로 포팅시켰다. 이러한 고유 개발방식 덕분에 맥용 애플리케이션과 윈도용 애플리케이션의 기능은 동일했고, 지원도 보다 쉬워졌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는 양 플랫폼을 별도로 개발한다. 단순히 윈도용을 맥용으로 포팅시키는 이와 같은 경우, 문제점이 있었다. 가령 1993년 당시 맥 사용자들은 마이크로소프트 워드 6이 "
맥답지 않다”고 불평했었다.
No Room for Innovation
하지만 어도비식의 개발 방식에도 문제는 있었다. 맥 플랫폼을 차별화시켜주는 독특한 기능의 통합이 점점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QuickDraw GX와 QuickDraw 3D, PowerTalk, OpenDoc 등 애플이 진행한 거대 프로젝트는 개발자들의 흥미를 거의 끌지 못한 상태였다.

어도비가 애플의 완전히 새로운
Rhapsody 플랫폼을 거절한 제일 큰 이유도 그것이었다. 어도비의 내부 개발구조가 따라가기에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다른 써드파티들도 마찬가지로 크로스-플랫폼 개발에 있어서 어도비와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혁신"을 가져다 주려는 애플의 노력과 개발사의 필요가 상충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문제는, 바로 그 개발사들이야말로 애플이 맥 플랫폼의 지원에 사활을 건 장본인들이었다. 애플이 이길 수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퀵타임만은 애플의 여타
90년대 중반 실패작들과는 달랐다. 윈도용 퀵타임 포팅에 오쏘링 지원까지 추가시켜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덕분에 개발자들은 퀵타임을 애플리케이션의 기반으로 삼았다. 반면 맥을 사야 할 이유로서의 퀵타임의 매력은 사라져갔다.
The Coup d’Éat of Adobe’s Premiere
프리미어에 대한 어도비의 관심이 사라져가자, 애플은 퀵타임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줄 다른 개발사를 찾기 시작했다. 1996년, 애플은 Avid와 함께 퀵타임-기반의 소비자용 영상편집툴 작업을 개시하였다. 당시 이름은 Avid Cinema였다.

그런데 몇 달 전, 1995년, 어도비 프리미어 팀의
랜디 유빌로스(Randy Ubillos)와 다른 팀원들이 어도비를 떠나 매크로미디어로 회사를 옮긴다.
당시 매크로미디어의 핵심 사업은 멀티미디어 프리젠테이션을 제작하는 데에 쓰이는 오쏘링 툴, 디렉터였다. 그리고 디렉터는 퀵타임과 긴밀히 연관을 가졌기 때문에, 어도비 프리미어 그룹원들을 고용할 만 했다. 이는 매크로미디어의 관심을 디지탈비디오로 움직이게 만든다.
유빌로스와 그의 팀원들은 퀵타임에 기반하는 새롭고 전문적인 영상 편집툴을 원하였다. 그것도 프리미어보다 더 나은 툴로서 말이다.
이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은 KeyGrip이라 불렸고, 1996년 National Association of Broadcasters 이벤트에서 첫 선을 보였다. 후에 매크로미디어는 이름을 파이널컷(Final Cut)으로 바꾼다.
Final Cut Pushed to QuickTime by Microsoft's Vaporware
반독점 재판
조서에서 애플의 필 실러는 이렇게 증언하였다. "매크로미디어는 애플 퀵타임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액티브무비라 불리우는 기술을 맥용 비디오 편집 API와 엔진으로 삼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파이널컷의 개발 기간동안,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술로서의 액티브무비를 지워버렸습니다. 만들지를 않았죠. 그래서 파이널컷 팀은 맥용과 윈도용 오쏘링 API로서 퀵타임만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퀵타임에 대한 경쟁자를 발표하지 못하고, 액티브무비를 완전히 취소시킨 마이크로소프트는 써드파티 개발사를 동원하여 퀵타임을 없애려들었다. 시작부터 제일 큰 기업이었다. 다름 아닌 Avid다.
Microsoft Partners with Avid Against QuickTime
Avid는 창립할 때부터 애플과
파트너 관계였다. 동사 최초의 비디오 웍스테이션도 1988년 NAB에 등장한 Mac II에서 이뤄졌고, 10년 후에도 이 회사의 컴퓨터 기반은 다수가 맥이었다. 퀵타임을 죽이려는 마이크로소프트는 Avid에게 맥 지원을 포기하라 종용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1998년, Avid에 더 깊숙이 개입한다. 협정을 통해 9.1%의 지분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이 협정 자체도 스캔들과 드라마로 휩싸여 있다. 사실 그런 스캔들과 드라마는 4년 전에 시작했었다. 1994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캐나다의 특수효과 소프트웨어 회사,
Softimage를 인수하였다.

Softimage는
Silicon Graphics 웍스테이션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Softimage를 인수한 이유는 SGI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SGI 렌더팜을 운영하는 영화업계를 NT로 교체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런데 Softimage를 윈도로 포팅하고 나서는 Softimage의 가치가 떨어졌다.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는 Softimage를 Avid에 주식과 현금으로 팔았다. 그 때가 1998년이었다.
그 사이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한 작은 개발사로부터 코드를 훔쳐서, Softimage 툴에 집어 넣었다. 이 회사는 부도에 들어갔고, 코드 절도 혐의로 마이크로소프트를 고소하였다. 그리고 2001년에서야 재판에서 승소하였다. 당시 프랑스 법원
마이크로소프트가 소프트웨어를 절도하였다고 판단내렸으며, 42만 5천 달러의 벌금 지불을 명령하였다. 법원은 2003년 이 재판을 재확인하였다.

Avid의 지분까지 사들이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이제 Avid에게 맥 지원을 포기하라고까지 압박을 넣었다. 처음에 마이크로소프트는 Avid Cinema에서 퀵타임의 사용을 중단하라
요구하였다. 윈도 98의 직판 채널을 언급하면서, "이 채널망에 남고 싶으면, 제품에서 퀵타임을 빼야 한다."라고 하였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Avid를 강요, 1998년에 열린 NAB에서
Advanced Authoring Format만을 독점적으로 지원하는 데에 Avid가 참여했노라 발표하였다. 오랜 동안 애플의 협력사였던 Avid가 이제 하이엔드 비디오 편집 시장에서 퀵타임을 없애기 위한 최전선에 선 것이다.
Bad News In Threes
Avid의 퀵타임 배제뿐만이 아니었다. 어도비 또한 프리미어에서 퀵타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작업중이었다. 애플이 살아남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때문이었다. 어도비는 퀵타임이 아닌, 자사의 하드웨어 추상 지원을 개발하였다.
Premiere 5는 유빌로스와 그의 팀이 매크로미디어로 떠난 뒤에 나왔다. 쓸만한 업데이트이기는 했지만 이전 버전보다 더 느리고, 안정적이지도 못하였으며, 어도비가 새로 도입한 퀵타임-독립적인 하드웨어 기술은 비디오캡쳐의 충돌현상을 가져왔다.
그렇다면 이제 퀵타임의 마지막 희망은 매크로미디어의 파이널컷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1998년, 매크로미디어는 더 이상 비디오 편집 시장에 흥미를 갖고 있지 않았다.

2년 전, 매크로미디어는 PDA용으로 벡터기반의 프리젠테이션 툴인 Future Splash Animator를 인수했었다. 당시 매크로미디어는 이를
Flash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웹전문 기술로 마케팅하였다. Dreamweaver의 인수와 함께, 매크로미디어는 이제 웹툴 전문 기업이 되어버린다.

그 결과, 매크로미디어는 파이널컷 개발예산도 삭감하였다. 1998년 NAB에서 유빌로스와 그의 팀은 개인적으로 파이널컷 데모를 선보여야 했다. 당시 매크로미디어가 무대에서 파이널컷의 소개를 뺐기 때문이다.
파이널컷의 생존의 향방 문제였다. 역시 여기에도 마이크로소프트가 개입되어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Truevision에 투자를 하면서 약정을 달았다. 비디오캡쳐 카드의 퀵타임 드라이버를 막은 것이다.
당시 파이널컷 팀은 Truevision과 긴밀히 협력중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태는 파이널컷을 크로스-플랫폼으로 과연 출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만들어냈다. 어쩌면, 아예 나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적어도 매크로미디어 입장에서는 그러했다.
Final Cut Engineers Contemplate Herding Yaks
수 년간의 연기 끝에, 파이널컷이 나올 전망이 어두어지자, 엔지니어들은 이런 말까지 하였다.
“If we can't ship this puppy in a year then we might as well all go herd Yaks!”

야크가 들어간 농담은 파이널컷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하나의 은어였다. 실제로 파이널컷 프로 5에 들어있는 리소스파일을 보면 오늘날에도 저 문장이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외에 카페인에 취한 엔지니어들이 추가시켜 놓은 문장들이 나란히 놓여 있다.
- Many Yaks were exploited during the creation of this product.
- Where's a single Yak to go now that the Edit Bar is gone?
- You can call me Bruce the Wonder Yak.
- The Yak is a delightful creature... rather like a bovine Confucius.
The Third Time's a Charm

NAB 1998의 안 좋은 소식에도 불구하고, 그 해 퀵타임은 3.0으로 업데이트된다. 넥스트 인수 이후 첫 번째 메이저 버전이었다.
이 소식을 보도한 SMPTE/New England의
도일(Bob Doyle)은 이렇게 썼다. "애플은 윈도용 퀵타임 3도 완전한 오쏘링툴로 발표하였다. 회의론자들은 잡스가 클론을 취소한 것처럼, 윈도용 오쏘링 버전을 취소하리라 생각했었다. 퀵타임 2.5 윈도용은 재생전용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맥용 편집 애플리케이션은 퀵타임을 지원하는 윈도 하드웨어에서도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NAB에 참가한 개발사들도 퀵타임 3덕분에 기꺼이 윈도용 제품도 선보이게 될 것이다. 매크로미디어의 파이널컷, Media 100의 Finish, Post Digital의 Roto, Radius MotoDV가 여기에 포함된다.”
퀵타임을 완전한 크로스-플랫폼으로 만들면서,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가 퀵타임을 죽이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리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새로이 Advanced Authoring Format을 내세워 애플을 쓰러뜨리려는 마이크로소프트였다.
Microsoft Launches AAF
마이크로소프트는 영화 편집산업을 자사의 AAF가 쉽사리 점령하리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방송 표준위원회인
SMPTE에 AAF를 제출하였다. MPEG-4에서의 ISO 인증을 받으려고 Windows Media용 ASF 컨테이너 포맷을 제출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ASF가 아닌,
퀵타임 MOV 컨테이너를 ISO가 채택하자, 마이크로소프트는 AAF가 마이크로소프트만의 폐쇄적인 표준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보도자료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도비와 Avid, Pinnacle (현재 Avid의 일부다), Sonic Foundry, Softimage와 Truevision, Matrox를 AAF 동맹으로 올려 놓았다.
그런데 AAF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모회사가 실제 제품을 만드는 기술회사라기보다는, "이번 달의 기술 비전"을 발표만 하는 마케팅 회사라서였다.
An Industry Opinion on Microsoft
도일이 1998년에 한
언급을 보자. "그동안 NAB에 참석한 포스트-프로덕션 전문가들도 눈치를 챈 듯 하다. 윈도용 전문 비디오를 개선하고, 윈도를 지배적인 비선형 편집 플랫폼으로 만들겠다던 약속을 마이크로소프트가 결국 못 지키리라 생각한 것이다."
도일은 Video for Windows와 ActiveMovie도 언급했다. "AAF 그룹과 유사하게 구성된 컨소시엄은 부분적으로 Active Movie 2 (가끔 AVI-2로 불린다)에서 인식할 수 있는 OpenDML을 디자인하였다. 그러나 중요한 하드웨어 추상레이어가 전혀 만들어지지 않았고,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의 승인도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본래 콘텐트 제작보다는 배포에 더 관심이 많았다. 따라서 Avid, D-Vision, in:sync와 같은 회사들 스스로 하드웨어별 드라이버를 제작해야 했다. (처음에는 Truevision, 후에는 Matrox의 중요한 도움이 필요했다.) 윈도용 편집 사업에 남아 있기 위해서였다."
"그 다음 NAB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터넷으로 방향을 90도 틀어, DirectShow를 소개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DirectShow가 파일포맷 이상이며, 퀵타임과 같은 멀티미디어 아키텍쳐라 설명하였다. 당시 DirectShow는 ASF가 AVI와 WAV 파일을 대체하리라 약속하였다. 타임코드 지원이 없어서 부적절하다는 이유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다른 곳도 아닌, 비디오 전문 엔지니어들의 일을 중단시키고, 넷스케이프와의 경쟁에 이들을 투입시켰다. AAF에 대해서는, 'once burned, twice shy(한 번 데이면, 두 번 조심한다)'를 생각하면 좀 위안이 될 것이다."
An Industry Opinion on Apple
도일은
이렇게 쓰고 있다. "애플이 포위됐을 때에도, 퀵타임 팀은 그대로 남아서 하드웨어 추상레이어를 완성시켰다. 이들은 마이크로소프트와 Avid의 개발을 무시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OpenDML과 OMFI 지원(읽기-전용의 M-JPEG 미디어)도 퀵타임에 추가시켰다."
"맥오에스가 PC 디스크와 윈도용 파일을 열 수 있는 것처럼, 퀵타임 편집기도 PC에서 만들어져 윈도 네트워크로 보내온 파일을 읽을 수 있다. Video for Windows와 AVI-2도 포함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OpenDML은 끝났다'고 말하지만, 애플은 '기존 투자를 보전하기 위해 퀵타임이 OpenDML을 읽을 것이다.'고 말한다."
"향후 NAB에 대해 추측을 해 보자면, 99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AAF를 대체할 테고, 2000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AAF는 완성되지 못한다. 다만 메타데이터를 최종사용자에게 전하기 않기에, 대체될 뿐이다. [...]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그 때가 되면 애플은 유닉스 자바와 네트워크 PC, 셋톱박스, 10X DVD 플레이어, 초고속 케이블 모뎀에서 돌아갈 QuickTime 4/MPEG 4를 소개할 것이다. 재무상태가 좋아지고 퀵타임 팀만 유지시켜 준다면, 어도비 프리미어와 매크로미디어 파이널컷의 저자, 랜디 유빌로스가 제안하는 기능도 지원할 수 있다."
A Furious Pace of Development
NAB가 끝난 직후, 애플은 매크로미디어와 협상에 들어가서 파이널컷과 그 엔지니어들을 인수한다. 이리 하여, 1999년 NAB에서 파이널컷프로가 나온다. 파워맥 G3에 달린 DV와 파이어와이어를 지원하는 애플리케이션이었다.
이 새 제품은 퀵타임의 힘을 저가로 보여주었다. 게다가 고가의 Avid Studio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제공하였다.
1999년 말, 애플은 표준형, 공개형 프로토콜 지원을 추가한 퀵타임 4.0을 소개하고, 심지어 QuickTime Streaming Server를
오픈소스 프로젝트로 공개하였다.

애플은 또한 퀵타임 팀이 만든 소비자형 비디오 편집 애플리케이션을 새로 내놓는다. 맥 플랫폼용 애플리케이션을 원한다면,
스스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그 결과 여러 건의 인수와 새로운 프로젝트를 통해, iLife 애플리케이션 모음과 Pro Apps, 그 외 전문소비자용 애플리케이션들이 나오게 된다. 물론 모든 제품에서 퀵타임이 중대한 역할을 맡는다.
QuickTime, Carbonized
애플은 클래식 맥오에스용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여전히 하고 있었다. 새로운 맥오에스텐이 2001년이 되어서야 나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2002년
Jaguar가 나오기 전까지는 이렇다 할 오에스 텐용 애플리케이션도 없었다.
어도비와 마이크로소프트, 매크로미디어와 같은 대규모 써드파티 개발사들은 1997년의
랩소디 이주 계획도 거절하였다. 이 때문에 애플은 넥스트 운영체제를 다시금 손봐야 했다. 그리고 이 때에도 퀵타임은 중대한 역할을 하였다.
애플의 윈도용 퀵타임 포팅은 맥 시스템7의 라이브러리와 아주 많은 부분의 QuickDraw를 포함하였다. 따라서 퀵타임은 계속 바뀌기만 하는 윈도의 원시적인 드로잉과 사운드 소프트웨어 라이브러리와 연동하지 않고, 자신의 파운데이션을 갖고 있다.
또한 애플은 퀵타임을 Rhapsody용으로 포팅하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클래식 맥오에스의 많은 부분은 이미 포팅가능한 싸개로 안에서 캡슐화 되어 있었다. 즉, 넥스트스텝 내부의 클래식 맥 API를 깔끔하게 정리해주면, 그대로 기반을 삼을 수 있었다.
매크로미디어의 한 엔지니어가 이메일로 설명한 부분이 있다. "새 운영시스템으로 존경스러운 SimpleText를 포팅할 때, 이 기초 코드를 사용했다고 알려진 퀵타임 개발자가 하나 있습니다. (즉, TextEdit 코드의 변화는 거의 없었다는 의미죠.) 그가 이것을 상사에게 보여주었죠. 그리고는 카본이 태어났습니다."
"저는 매크로미디어 직원이었기에, 카본의 초창기 개발 참여를 초대받았어요. 그 당시 제가 했던 일은 실제로 퀵타임 팀과의 협동이었습니다. 결국 카본 엔지니어 팀이 꾸려졌죠. 나머지는 역사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랩소디용 퀵타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An Open Market Emerges
애플은 퀵타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마이크로소프트와의 경쟁을 시작하였다. 그저 기술을 넘기고 "
파트너 관계"만 만든 것이 아니었다. 애플은 직접 맥플랫폼을 위한 새 시장을 형성하였다.

Final Cut Pro은 원래, 맥을 영상 편집자들의 부가 장비로 자리매김할 목적이었다. 그러나 파이널컷 프로는 곧 Avid와의 직접적인 경쟁에 들어가게 된다. 한 때 비선형 편집의 주도자였던 Avid는 이제 가격을 크게 내릴 수 밖에 없었다.
Avid나 마이크로소프트의 그림자로 피신해 들어간 다른 기업들은 교훈을 깨달았다. 현금이 많은 회사라고 해서 꼭
자기가 뭘 해야하는지 알지 못할 수 있고, 계획을
실행할지, 혹은
실행할 수 있을지도 꼭 알라는 법이 없다.

오락 업계와 무지막지한 계약을 해 놓고서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 독점의 힘만 아니라면 윈도미디어나 AAF는 스스로의 경쟁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A High End Engine Driving a Consumer Vehicle
그동안 파이널컷 프로로 거둔 애플의 성공은 어도비와 매크로미디어에게도 용기를 주었다. 즉 출력과 웹툴 시장의 부흥이며, 이는 제작 분야에 있어서의 맥의 입지를 다져주었다.
파이널컷 프로는 맥용 어도비 프리미어 시장을 재빠르게 점령했으며, 어도비는 후에 윈도-전용 프리미어 프로를 선보이게 된다. 그러나 워낙에 너무나 많은 편집사들이 애플을 사용하기 때문에, 어도비는 프리미어 프로도 맥용으로 내놓기로 결정내린다.
파이널컷 프로와 관련된 하이엔드급 장비 판매는 이윤뿐만 아니라, 애플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혁신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애플의 진정한 성장은, 다시금 애플이 소비자에게 집중했다는 데에서 찾아야 한다. 다음 기사는 그 점을 다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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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Microsoft Pushed QuickTime's Final C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