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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19, 07:09 PM   #1
casau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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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애플 서버 20년사

Steve Jobs and 20 Years of Apple Servers

Saturday, February 17, 2007

올해 하반기 쯤 되면 애플은 레퍼드 서버를 내놓게 된다. 레퍼드 서버는 넥스트 기술에 기반하는 애플 유닉스 서버의 일곱 번 째 메이저 버전이다. 레퍼드 서버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애플 서버 20년사와 스티브 잡스의 약사를 알아보도록 한다.

그런데 사실, 아이러니한 점이 없지 않다. AppleShare는 1985년, 스티브 잡스가 떠나기 이전, 잡스가 밀어붙이던 진보적인 제품이었다가, 10년 후, 잡스가 애플에 돌아오자, 애플이 없애야 할 첫 번째 구식 기술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1984년 매킨토시가 나온 이래, 잡스는 맥을 사무용 시장으로 진출시키려는 성전을 이끌었다. 당시 맥의 강력한 경쟁상대는 거의 없었다. IBM의 OS/2는 여전히 개발중이었고,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3.0은 10년 후에나 나올 예정이었다. PC는 단순했고, 네트워킹은 복잡했으며, 설정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Jobs' 1985 Macintosh Office
잡스는 평판이 나뻤던 Lemmings Super Bowl 광고를 포함하여, 1985년, 매킨토시 오피스를 진두지휘하였다. 이 마케팅 캠페인은 맥을 최고의 사무용 툴로 자리매김시키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맥 판매량은 시작만 좋았지, 별로 오르지 않았다. 애플 이사진들도, 잡스가 판매량을 이어갈 수 없는 기술을 내세우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하였다.

애플의 수입은 여전히 애플 II에서 나오고 있었으며, 맥은 자신의 존재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분투중이었다. 이사진은 CEO인 존 스컬리를 부추겨 잡스를 포위시킨다. 회사가 중구난방으로 흘러가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킨토시 오피스 프로젝트의 첫 번째 과실은 애플톡 네트워킹을 갖춘 레이저라이터였다. 이것이 맥을 살린다. 맥을 그래픽 장난감이 아닌, 전문가의 툴로 자리매김시킨 주역은 레이저라이터였다.

매킨토시 오피스에는 애플셰어 파일서버와 빅맥 프로젝트(유닉스 기반의 개인용 맥 웍스테이션 시스템)도 포함되어 있었다. 둘 모두 연기되었고, 잡스와 스컬리 간 논쟁의 화두가 바로 애플셰어와 빅맥이었다.

잡스는 간단한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보다는 유닉스에 기반한 제품으로 맥을 탈바꿈하고 싶어하였다.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에는 웍스테이션급 제품에 필요한 현대적인 기능이 없었기 때문이다.

잡스의 방향제시 때문에, 애플은 AT&T로부터 유닉스를 라이센스 받는다. 하지만 1985년말 즈음, 잡스는 쫓겨나고, 맥을 현대적인 OS로 이주시킨다는 방향은 잠들게 된다.

Apple's Sleepy Downhill Decade: 1986-1996
잡스 축출 이후, 스컬리는 잡스 자리에 쟝-루이 가세를 앉히고, 유닉스-기반 맥을 포기한다.

  1. 매킨토시 오피스 프로젝트의 빅맥 부분을 포기한다. 가세는 빅맥을 "매킨토시 오피스"라 불렀다.
  2. 유닉스 웍스테이션 업체인 아폴로(Apollo)와의 관계를 청산한다. 당시 아폴로는 이미 애플로부터 맥 인터페이스를 라이센스 받아서, 아폴로 유닉스 상의 맥 인터페이스 작업을 애플과 함께 하던 차였다. 가세의 관계 청산은 이미 수세에 몰리고 있던 아폴로의 지위를 더 악화시킨다. 곧 HP가 아폴로를 인수하게 된다.
  3. 가세는 AT&T를 무시한다. AT&T는 자사 유닉스 시스템용 맥 환경을 라이센스받고 싶어 했었다.

현대적인 맥 계획을 거의 파괴시킨 후, 가세는 스스로의 맥 비전을 펼친다. 데스크톱 PC로서의 매킨토시 II와 애플셰어 맥 파일서버였다. 둘 다 예전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재개장시킨 것이었다.


1988년, 애플은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의 하이엔드 대안으로서, 애플 유닉스 배포본인 A/UX를 선보인다.

이와 동시에, 잡스의 넥스트는 독립적으로 훨씬 세련된 유닉스 기반의 NeXTSTEP을 선보인다. 애플은 1992년 하반기, A/UX 3.0이 나올 때까지 맥 시스템 7 환경을 A/UX용으로 포팅하지 않고 있었다.

그동안 가세는 애플을 떠나 자신만의 미래를 펼치기 위해 Be를 설립한다. Be는 다중 사용자와 같은 유닉스 기능을 여전히 갖고 있지 않았으며, 1996년 하반기까지도 베타 상태였다.

CEO Trouble
애플의 스컬리와 가세는 맥 사용자들이 PC로 떠나버릴 때까지 얼마나 더 비싼 값에 맥을 팔 수 있을까를 실험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떠난 뒤로, 새로 애플 CEO에 오른 마이클 스핀들러는 애플이 얼마나 비싼 값에 기술 기업으로서 팔려나갈 수 있을지를 실험하였다.

그 다음 CEO인 길 아멜리오는 애플이 쓰러지기 전까지, 프로젝트 수정 없이 얼마나 더 많은 직원을 자를 수 있을지를 실험하였다. 어떻게든 애플은 살아남았다.

Pre-Mac OS X Servers
그동안 애플은 두 가지 서버군을 개발하였다.


애플 A/UX는 PowerPC로 포팅되지 않았다. 잘 팔리지도 않는 하이엔드급 ANS AIX-전용 서버, 그리고 살 만 하지만 약한 시스템 7 기반의 애플셰어 사이에 끼어버린 것이다.

애플에게는 데스크톱 운영체제 뿐만 아니라, 서버도 절실했다.

애플이 MAE와 MAS 등으로 맥환경 유닉스 포팅을 좀 하기는 했지만, 이미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고, 그 노력도 보잘 것 없었다. 애플 서버 제품군에는 거의 영향력도 미미하였다.

Apple’s Return to Servers
가세는, 데스크톱 맥을 세련된 사무용 제품으로 마케팅하려는 잡스의 선구자적인 노력을 완전히 뒤흔들고 없애버렸다.

그리고 90년대 중반, 당시 삐걱거리던 맥 시스템 7상에서 애플셰어를 돌려 맥을 사무용 시장으로 진입시키려던 때늦은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기업들은 애플의 진입 노력을 하나의 농담으로 받아들여버렸다.

당시 애플은 AIX-기반의 ANS를 발표하였지만, 누구도 애플에서 서버를 구입하려하지 않았고, 맥 사용자들 또한 복잡한 유닉스의 커맨드라인을 다루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동안 잡스의 계획인 유닉스-파워 그래픽 웍스테이션과 사무용으로 쓸 만한 서버가 넥스트로부터 애플로 들어왔다. 다음 기사는 넥스트 기술에 기반하는 애플의 최근 서버 제품군과, 애플이 맥 브랜드를 서버 시장에서 어떻게 다시 자리매김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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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e Jobs and 20 Years of Apple Ser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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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aubon 님께서 2007-02-20 12:10 AM 에 수정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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