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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5, 09:28 AM   #1
casau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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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OS X is on the iPhone, but not the PC: The History of OpenStep

Wednesday, January 24, 2007

어째서 애플이 일반 PC에 오에스텐 판매를 시작하지 않는지 궁금해 하는 분석가들이 있다. 게다가 애플의 아이폰 발표에 대해서도 혼란스러워 하는 이들이 있다. 아이폰은 오에스텐이라 불리는 운영체제의 특별판을 돌린다. 전문가들은 이를 WinCE와 비교하기를 즐겨 하는데, 써드파티들이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을 곧바로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들이 그토록 당혹스러워 한 이유는 애플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을 따라가지 않아서이다. 어느 회사가 감히 마이크로소프트 규칙을 지키지 않은 채로 성공할 수 있단 말인가? 모두들 아시다시피 마이크로소프트는 컴퓨터 운영체제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다. 즉, PDA나 휴대폰, 타블렛 외 다른 기기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가 곧 승리할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왜 애플은 이리도 분명한 성공의 길을 따르지 않을까? 그 답변은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넥스트와 선, HP와 ARM 등을 포함하는 30년에 걸친 기술 기업 역사 깊숙이 찾아야 한다.

The Rise of Windows
여러 칼럼에서 밝혔듯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컴퓨터 시장 점유율과 윈도는 1980년대 후반, 컴퓨터 제조업체들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점유율이다.

우선, 1983년, IBM의 마이크로소프트 DOS 라이센스가 있었다. 하지만 IBM은 이를 독점적으로 라이센스하지 않은 큰 실수를 저질렀다. 따라서 컴팩처럼 IBM-PC 하드웨어를 복제한 기업들도 MS-DOS를 라이센스받아서, 동일한 제품을 판매할 수 있었다.

IBM은 큰 패배를 당하였다. 다른 컴퓨터 업체들도 마이크로소프트에게 MS-DOS 라이센스를 받아오기 시작했다. 스스로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필요를 덜어줘서였다.

시간이 흐르자, 하드웨어 기업들은 완전히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는 하드웨어 기업들에게 점차 독립되어 나아갔다. 컴퓨터 시장에서 PC 하드웨어 업체들이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는 동안, 마이크로소프트는 번영하였다.

1990년 당시, 애플은 몇 안 되는 독립 시스템 회사였다. PC 업체들은 애플의 쉬운 시스템과 룩앤필을 마이크로소프트가 내놓기만 바라고 있었다. 맥을 복제하기 위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세 번째 노력인 윈도 3.0은 최초로 대량 판매된 윈도였으며, 새로운 컴퓨터에 번들로 정착한 사실상 최초의 윈도였다.

비록 애플이 맥을 선보이기 전부터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작업이 시작됐지만, 윈도 3.0은 애플 제품보다 한참 뒤떨어졌었다. 그러면서도 5 년 늦게 나왔다. 그래도 PC 업체들은 이 윈도를 구입해야 했다.

The History of NeXT
스티브 잡스는 1986년에 애플을 떠나, 미래 컴퓨터 시스템을 스스로 만들기로 한다. 그의 아이디어는 애플에서 맥을 만들 때보다도 완전히 달랐다.

넥스트(NeXT Inc.)의 시작이다. 원래 넥스트는 기존 여러가지 컴퓨터 플랫폼 모두에게 넥스트의 신기술을 가져다 줄 소프트웨어 시스템이 목표였다. 윈도가, 누군가 살 만한 제품이 되기 한참 전부터, 윈도보다 더 나은 윈도가 될 시스템이었다.

넥스트는 애플의 연구자와 엔지니어들, 다른 기업들의 환호를 받았다. 그 결과 넥스트는 당시 존재하던 그 어느 하드웨어도(맥과 PC) 넥스트 소프트웨어를 돌릴 역량이 없다고 판단내렸다. 따라서 넥스트는 스스로 하드웨어 제조에 나섰다. 넥스트 하드웨어는 넥스트 소프트웨어의 잠재성을 완전히 발현하도록 통합된 제품이었다. 그 결과 넥스트스텝(NeXTSTEP) 운영체제를 돌리는 넥스트 컴퓨터가 탄생한다.

그런데 애플로부터 기술자를 빼간다는 제소를 받은 넥스트는, 애플과 협약을 맺어서, 소비자 시장에서 애플과 경쟁하지 않도록 동의한다. 이 때문에, 넥스트는 고등교육기관과 기업 고객에게 웍스테이션 가격으로만 팔려나갔다.

넥스트 제품은 말 그대로 진보적이었다. 리눅스가 프로젝트로 시작하기도 전 얘기이다. 넥스트는 BSD 유닉스에서 빌린 코어 운영체제 아키텍쳐를 Mach라 불린 최고의 하이브리드 커널 상에서 돌렸다.

그 위에 넥스트는 자사의 객체지향 개발프레임웍을 얹혔고, 어도비의 포스트스크립트 언어에 기반하는 디스플레이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넥스트는 주류 시스템에 전혀 소개된 바 없는 최고의 최신예 기술을 균형 있게 통합시켰다.

넥스트의 하드웨어도 마찬가지였다. 넥스트 하드웨어는 당시 그 어느 웍스테이션보다도 우수한 특화된 디지탈 신호프로세서와 더 많은 RAM, 훌륭한 그래픽을 갖추었다. 또한 넥스트는 광자기 디스크로 플로피와 하드드라이브의 중간형태를 제공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새 시스템의 가격은 10000 달러에 육박했지만, 넥스트가 제공하는 하드웨어 기능에 걸맞는 가치이긴 하였다. 애플과 IBM이 당시 내놓는 고급기종도 넥스트보다 한참 뒤떨어지면서 가격은 일만 달러에 육박했었다.

하지만 역시 높은 가격과 괴짜일 수 밖에 없는 디스크, 그리고 전용 소프트웨어의 부족때문에 넥스트는 주류로 편입하기가 어려웠다.

학술기관이나 특수목적용 개발 환경, 여러가지 정보기관에서 분명 넥스트는 환영받았다. 실제로 넥스트는 세상을 바꿨다고 할 수 있다.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가 넥스트의 빠른 개발환경을 이용하여 월드와이드웹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델도 넥스트의 WebObjects를 사용하여 역동적인 웹스토어를 구축하였고, MCI도 넥스트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혁명적인 친구, 가족 관계 소개 캠페인을 펼칠 수 있었다. 다른 경쟁사들로서는 수 년동안 못따라올 지경이었다.

PC의 하드웨어 기능이 진보를 거듭하자, 넥스트는 하드웨어를 포기하고, 넥스트스텝을 새로 나온 인텔 486 PC에 포팅시킨다. 하지만 이 시기는 이미 윈도가 깊숙이 침투한 시기였다. PC 업체들로서도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새 컴퓨터마다 모두 윈도를 번들시키겠다는 폐쇄적인 계약을 맺은 이후였다. 이는 잠재적인 경쟁 운영체제를 무너뜨렸다.

넥스트는 또한 스스로를 웍스테이션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려 노력하였다. 운영체제를 선 SPARC와 HP-RISC 웍스테이션용으로도 포팅시킨 것이다. 교체선수로서 넥스트스텝은 기존의 네이티브 애플리케이션과 완전한 넥스트 환경 양자를 제공하였다. 사용자들은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었는데, 웍스테이션과 PC에서 이 전략은 먹히지 않았다.

The History of OpenStep
그 결과, 넥스트는 소프트웨어 제공을 더 확장시키기로 결정내린다. 하드웨어를 포기한 다음, 넥스트는 코어 운영체제 자체를 선택으로 낮추고, 개발 프레임웍과 넥스트스텝 운영환경만을 끌어와서 여러가지 운영체제상에서 돌리도록 한다.

원래 넥스트는 선과 파트너를 맺어서 넥스트의 Mach/BSD 대신 솔라리스상에서 돌아가는 운영환경을 제공하기로 했었다. 이 제품이 바로 오픈스텝(OPENSTEP)이다. 여기에 HP가 가세하여, HP-UX용 오픈스텝을 지원하기로 하였고, 넥스트 자신도 윈도 NT용 오픈스텝을 포팅하였다. 이는 윈도 자체를 대체하려는 시도가 아니었다. 제품명은 OPENSTEP for Enterprise였다.

스스로의 포팅과 더불어, 넥스트와 그 협력사들은 상호운용성을 위한 공개사양을 제공하였다. 즉, 누구도 자신의 애플리케이션을 해당 시스템용으로 돌릴 수 있도록 포팅을 허용시킨 것이다. 좀 혼란스럽긴 한데, 이 또한 오픈스텝(OpenStep)이라 불렸다.

리눅스가 무료 아이디어를 널리 퍼뜨리고 주류로 진입해 들어가자, 넥스트도 자신을 무료로 풀고, 코어를 공개시켰다. 이로써 GNU 오픈소스 개발자들이 나서서 GNU/리눅스용 사용자환경을 만든다. GNU는 리눅스 커널에 오픈스텝 윈도윙 환경을 결합시킬 계획이었고, 그 결과 GNUStep이 나오게 된다.

OpenSep이 제공한 거대한 잠재력은 윈도 가게에서부터 오픈소스 개발자들, 하이엔드 웍스테이션 회사까지 쓸 만한 진보적이고 공개된 상호운용 개발 시스템을 약속하였다. 그런데 이 오픈스텝 지지자들은 갑자기 프로젝트를 포기해버리고만다. 마치 바벨탑이 무너지는 것처럼 순간적이었다.

초기부터 협력사였던 선이 문제였다. 선은 자사의 자바 프로젝트가 주목받기를 원하였다. 넥스트를 포기하기 바로 앞서서, 선은 넥스트의 주요 개발자 중 하나를 영입하여, Lighthouse Design의 운명도 가려버렸다. 그리고는 넥스트의 독특한 소프트웨어의 많은 부분을 잠궈버린 다음, 그 열쇠를 던져버렸다.

HP는 Talligent의 실패로 넥스트를 포기한다. GNU 개발자들은 OpenStep을 잠재성은 있었으나, 결코 완성되지 못한 환경으로 간주한다.

1996년, 넥스트는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PC 업체들은 모두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95와 NT를 지지하고 있었으며, 훨씬 세련된 오픈스텝에 대한 흥미는 사라져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당시 카이로를 약속했었다. 카이로는 넥스트스텝에 경쟁하기 위한 술수였으며, 시장에 결코 나타나지 않았지만, PC 업체들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저 소비자들이 돈만 내 준다면 행복하게 DOS를 팔았기 때문이다.

넥스트는 자신의 사업을 오픈스텝 포팅에서, 웹 애플리케이션 서버툴로 돌렸다. 서버-기반의 오픈스텝 애플리케이션이라면 원격 클라이언트에게 역동적인 웹페이지를 되돌릴 수 있었다. 이 제품이 바로 웹오브젝트이다. 강력한 툴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지만, 상용 웹이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경쟁도 점차 심해지게 된다.

Apple Buys NeXT
1996년 마지막 나날에 애플은 넥스트를 인수한다. 애플의 핵심 운영체제 때문이었다. 애플 경영진은 OPENSTEP의 현대적인 기능에 매혹당하였고, 재빨리 맥 사용자들을 애플 PowerPC 하드웨어의 새 시스템으로 이주시키기 희망하였다. 애플은 또한 윈도 NT 사용자들에게 OPENSTEP for Enterprise를 계속 판매할 계획이었다. OpenStep 개발 플랫폼을 확장시키기 위해서였다. 애플은 이 때부터 OpenStep을 옐로박스(Yellow Box)라 부르기 시작한다.

애플의 OpenStep 노력은 넥스트와 마찬가지로 실패를 기록한다. PC 업계는 대안을 원하지 않았다. 그저 윈도만을 원했고, 선은 자바 판매만을 원하였다.

HP는 컴팩을 인수하였고, 컴팩은 원래 DEC를 인수했었다. 이런 빅딜은 숱한 정리해고를 일으켰고, 이중에는 HP-UX와 PA-RISC, True-64, Alpha도 포함됐다. 이들은 모두 인텔이 새로 만든다는 Itanium과 새 버전의 윈도 NT로 대체됐다. 또한, 애플이 넥스트를 인수하자, 델과 다른 기업들은 웹오브젝트를 취소시킨다. 이로써 애플은 넥스트보다도 더 적은 기업고객을 맞이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동안 맥 사용자들과 개발자들은 맥오에스 교체보다는 맥오에스 유지를 요구한다. 애플은 원래 오픈스텝을 맥오에스용으로 포팅시키기 원하였지만, 기존의 시스템 7이 그에 걸맞지 않음을 재빠르게 깨닫는다.

이러한 일을 통해 애플의 넥스트 계획은 바뀐다. 원래 오픈스텝을 단순히 포팅하려는 계획이었다가, 아예 맥처럼 NeXTSTEP을 만들자로 바뀐 것이다. 첫 번째 시도가 바로 랩소디이다. PowerPC용으로 포팅시킨 NeXTSTEP에 맥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입힌 운영체제였다. 여기에 기존 맥용 애플리케이션의 호환 환경을 제공할 계획이었다. 물론 랩소디 전용 애플리케이션이라면 훨씬 더 좋게 돌아갈 터였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와 매크로미디어, 어도비를 포함한 주요 맥 개발사들이 난색을 표한다. 자신의 애플리케이션을 호환 환경으로 밀어넣을 수 밖에 없어서였다. 이들은 새 시스템용으로 애플리케이션을 완전히 재작성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랩소디는 완전한 재작성을 요구하였고, 이들은 여기에 투자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맥 판매가 주춤거리면서, 애플 또한 추락을 거듭하고 있었다.

기존의 맥 개발사들을 유지하기 위해서, 애플은 기존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네이티브 지원을 포함시켜야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유일한 방법은 시스템의 재디자인이었다. 이를 위해 애플은 랩소디를 취소시키고, 맥오에스텐이라 불리우는 새 시스템 개발에 착수한다.

맥오에스텐은 NeXTSTEP의 모든 기능에 더해, 클래식 맥오에스의 현대화시킨 API를 통합시킨 운영체제였다. 따라서 맥 개발자들은 최소한의 작업만으로 시스템을 완전히 활용하는 네이티브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었다.

The History of Mac OS X
1996년 마지막 나날과 2000년 맥오에스텐의 첫 상용판 출시 사이 기간동안, 애플은 기존의 맥오에스 7.6의 개선에 주력하였다. 사이 기간동안 판매할 물건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애플이 아닌, 넥스트가 애플을 인수한 꼴이었다. 잡스와 함께 따라온 넥스트의 인재들은 기존 애플의 경영은 물론 마케팅과 유통, 제조 부문까지 애플을 완전히 재탄생시킨다. 애플은 덕분에 부활한다.

이질적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제품군을 포기시키고, 맥 하드웨어 라인이 간결해지자, 애플은 시스템 7의 개선판인 맥오에스9과 맥오에스9를 선보인다. 그리고는 새 아이맥과 소비자용 랩톱 라인이 등장하였다.애플 자신의 소프트웨어소매 스토어도 뒤를 이어 나타났다. 그동안 맥오에스텐은 맹렬한 기세로 나타났다.

그래도 맥오에스텐 베타 판이 나오기까지는 수 년이 걸렸다. 새 운영체제는 원래의 NeXTSTEP에 기반을 두었다. 업계가 꺼려한 OpenStep 사양이 아니었다. 이는 애플이 OpenStep을 돌릴 만한 고유 운영체제를 가지지 못해서였고, OpenStep이 어도비 외 다른 기업 라이센스 기술에 의존적이기 때문이었다. 주류 맥 시장에 저가로 NeXT 기술을 팔려면, 그러한 의존도를 없애야 했다.

오픈스텝이 나왔을 무렵, 넥스트의 Mach/BSD core OS의 성장은 지지부진하였기 때문에, 애플로서는 일단 넥스트스텝부터 업데이트시키고 봐야 했다. 다행히도, BSD 코드기반은 오픈소스 개발자들이 유지하는 코드기반과는 별도였기 때문에, 애플로서는 10여년 동안 검증된 기술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 필요 없이 그대로 업데이트시키면 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애플이 넥스트 객체지향프레임웍을 업데이트시킨 결과가 Cocoa이다. 그리고 기존 맥 라이브러리의 현대화 버전은 Carbon이라 불렸다.

더해서, 애플은 어도비의 값비싼 포스트스크립트를 안쓰기 위해 그래픽 렌더링 엔진을 다시 디자인해야 했다. 애플은 디스플레이 모델로 PDF를 선택하였고, 어도비는 PDF를 공개표준으로 내보낸 상태였다. 이 그래픽 렌더링 기술만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기에, 애플은 완전히 현대적인 그래픽 기능을 통합하였다. 하지만 덕분에 맥오에스텐은 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맥오에스의 그래픽 루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결과 2000년 당시 애플은 1984년이 아닌, 2000년에 어울리는 디자인을 가진 새 운영체제를 선보이게 된다. 이 시스템의 너무나 많은 부분이 새로웠기 때문에, 맥오에스9를 대체하기위한 최적화에는 또 다시 몇 년이 더 소요되었다. 2002년, 맥오에스텐 Jaguar는 이제 애플의 표준 운영체제가 되었다.

일단 기반을 닦고 나자, 애플은 재빠르게 개선에 돌입한다. 애플리케이션 개발 루틴을 점점 더 많이 다루게 되는 새롭고 강력한 프레임웍이라든지, 그래픽카드에게 프로세싱 작업을 한 층 더 맡기는 그래픽 기능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애플은 또한 소비자용 애플리케이션과 전문가용 애플리케이션을 선보이는 등, 고유의 애플리케이션 개발도 훌륭하게 확장시켰다. 이러한 경험은 운영체제 개발 지원을 보다 더 실질적으로 추진하도록 도와주었다.

5년 동안, 애플은 점차 윈도와 호적수를 겨루게 된다.

2005년, 애플은 놀라운 발표를 한다. 맥오에스텐 지원을 넥스트 시절처럼 다중 하드웨어 아키텍쳐로 하겠다는 발표였다. 새 사업을 목표로 삼은 재빠른 변화였다. 6개월 안에 애플은 인텔 기반의 맥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1년 안에 모든 제품 라인을 인텔로 이주시켰다.

The History of ARM
최근 애플은 아이폰을 새로 발표하면서, 운영체제로 오에스텐이 들어간다고 말하였다. 아이폰은 PowerPC도 아니요, 인텔도 아니다. 아이포드처럼(그리고 대부분의 PDA와 휴대용 게임기, 뉴튼처럼) 아이폰은 ARM 프로세서 아키텍쳐에 기반을 둔 칩을 사용한다. 이 칩은 32비트 임베디드 기기의 75%를 점유하고 있다.

애플의 ARM 개발 투자는 8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애플은 Acron과 협력했었다. 1991년 ARM 파트너쉽은 ARM6이라 불리우는 ARM의 세 번째 아키텍쳐를 만들어냈고, 이 칩이 오리지날 뉴튼 메세지패드에 들어간다. eMate는 네 번째 아키텍쳐를 사용하였고, 이는 닌텐도 게임보이 어드밴스도 마찬가지였다.

초절전용 칩을 만들기 위해 DEC는 ARM 아키텍쳐를 라이센스하고, 네 번째 아키텍쳐인 StrongARM 시리즈를 만들어낸다. 애플도 이 칩을 마지막 뉴튼에 장착시킨다. 1997년에 내놓은 메세지패드 2000 시리즈이다.

그 후 DEC의 StrongARM 사업부를 인텔이 인수하여, 이름이 XScale로 바뀐다. 이 프로세서는 그 후부터 RIM 블랙베리와 Palm Treo과 같은 PDA는 물론, 델의 Axim이나 컴팩 iPaq과 같은 PocketPC, Creative Zen과 같은 뮤직플레이어에도 탑재된다.

ARM 프로세서 디자인을 라이센스한 다른 기업으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Zune을 들 수 있다. 애플의 아이포드와 아이포드 나노도 여기에 들어가고, 소니에릭슨의 일부 모델과 닌텐도 DS 시리즈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모두가 인텔의 XScale 패밀리보다는 ARM 라이센스로 여러가지 버전의 ARM 프로세서를 사용한다. 지난 여름, 인텔은 XScale 사업부를 Marvell로 판매하였다. (제조는 인텔이 계속 담당하게된다.)

It Should Come As No Surprise
10년에 걸친 ARM과의 관계를 볼 때(아이포드에서도 ARM을 사용한다), 아이폰 또한 ARM의 경험을 갖고 만들었으리라 추측할만 하다. 사실 맥월드 엑스포의 진짜 놀라움이란 아이폰에 들어간다는 맥오에스텐이다. 현재 애플은 간단히 오에스텐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당연히 넥스트스텝의 포팅성을 고려한다면, (애플의 재빠른 인텔 이주도 마찬가지다) 맥오에스텐을 ARM으로 포팅했다 하더라도 놀라워할 일까지는 아니다. 이렇게 하면 애플은 단일 코드기반을 갖고 제품라인마다 고도로 기술을 재빠르게 포팅시킬 수 있게 된다.

반대되는 내용의 잘못된 정보가 있긴 하지만, 애플은 맥오에스텐의 어느 부분도 포팅할 수 있다. 오픈소스 다윈도 여기에 포함된다. 즉, 애플이 원하는 어떠한 아키텍쳐에도 소스 발표 없이 포팅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다윈이 GPL이 아닌, BSD 스타일의 라이센스이기 때문이다.

OS X vs WinCE
윈도비스타나 XP, 윈도2000, NT 등, 데스크톱 버전의 윈도를 휴대용기기로 줄인 WinCE와 아이폰의 비교는 자연스럽다 할 수 있다. 윈도모바일 기기가 모두 WinCE를 돌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WinCE는 ARM과 인텔 프로세서용으로 포팅되어왔지만, 그 자체가 윈도NT의 포팅은 아니다. 비록 마케팅용 이름과 많은 유사성이 있긴 하지만, WinCE 플랫폼은 데스크톱용 윈도 제품군과 완전히 다른 커널과 아키텍쳐이다.

원래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NT를 인텔과 MIPS, PowerPC, Alpha 등, 여러가지 프로세서 아키텍쳐로 제공하려 했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다중 아키텍쳐 지원이 너무 버겁고, 외부 수요도 충분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사실 윈도2000부터는 오로지 인텔프로세서만이 지원된다.

즉, 마이크로소프트로서는 두 개의 운영체제를 별도로 유지해야 하지만, 애플은 거의 동일한 오에스텐만을 지원하면 끝이다. 다음의 기사는 오에스텐이 아이폰으로 어떻게 들어갔는지, 그리고 오에스텐의 포팅성이 아이폰 소프트웨어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다룰 테지만, 일단은 일반 PC용 맥오에스텐은 왜 안나올지를 먼저 언급하겠다.

PC OS X: Nope!
애플이 맥오에스텐을 일반 컴퓨터용으로 출하한다는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만 볼 때 상당히 합리적이다. 매년 600만 대의 맥을 파느라 노력하는 대신, 소프트웨어를 수 천만 본 판매하는 편이 훨씬 이득이지 않겠는가?

문제는 분명하다. 맥오에스텐의 소매점 판매본은 그만큼 맥 하드웨어 판매량의 감소를 불러들인다. 애플은 대부분의 다른 컴퓨터 업계보다 훨씬 많은 제조 이윤을 벌어들이고 있지만, 온라인과 소매점을 통해서도 이윤을 올리고 있다.

더해서, 맥 하드웨어 판매는 소프트웨어의 판매와 악세서리의 소매점 판매, 애플케어나 .Mac과 같은 서비스 판매로 이어지고, 이러한 시스템은 단순한 소프트웨어 판매 이상의 수익을 안겨다준다. 왜 이 사업망을 전부 포기하겠는가? 애플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업계 나머지를 능가하고 있다. 게다가 애플은 다른 하드웨어 업체들과는 달리 독립적이다.

소프트웨어 회사로 바꾸자는 전략은 넥스트가 이미 시도했다가 실패했음이 증명됐다. 당시 그 전략은 먹히지 않았고, 오늘날 무료로 풀리고 있는 리눅스 데스크톱도 돈이 벌리지는 않는다. OS/2에서부터 BeOS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실패하였다. 이유는 단 하나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로 돈을 버는 이유가 따로 있어서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시장을 잠궈 놓았다. 저가(30달러)로 물량공세를 펼치는 윈도는, 그 판매가 대부분 OEM을 통해 이뤄진다.

마이크로소프트가 300 달러 정도로 윈도 소매판을 판매하였다면, 대단히 저렴한 OEM 라이센스판으로부터의 수입 80%를 올리는 현재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애플은 하드웨어 판매를 통해 더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소프트웨어 위주 전략을 논하려면, 우선 애플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통합이 가져다주는 가치에 대한 지적이 있어야 한다.

맥오에스텐을 일반 PC에서 돌린다고 해 보자. 두 손가락 클릭이나 스크롤과 같은 애플 하드웨어 고유의 기능 지원은 사라진다. 파이어와이어 타겟모드도 마찬가지다. 훨씬 더 많은 드라이버 지원에 따르는 지원 비용이 소프트웨어 판매 이윤을 금새 능가할 것이다.

원래 넥스트 하드웨어상의 넥스트스텝을 비교해도 좋다. 애플은 맥오에스텐을 결코 델이나 HP에 라이센스하지 않을 것이다. 애플 스스로 하는 편이 훨씬 오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넥스트의 실패는 스스로 소프트웨어 기업이 되려했던 잘못 때문이다. 애플에게는 교훈이 될 만하다. 애플 자신도 클론 사업 라이센스를 벌였다가, 재앙적인 결과를 맞이했던 적이 있다.

더구나 윈도 독점방식을 휴대용 기기와 뮤직플레이어, 타블ㄹㅅ에 적용시키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최근 시도는 모조리 실패하였다.

PalmOS를 소니(끌리에 PDA)에 라이센스해 주었던 Palm의 노력도 실패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로 얻은 행운은 IBM, 그리고 나중의 컴퓨터 업체들의 실수 덕분이다.

애플은 일반 컴퓨터 운영체제 경쟁에 뛰어들어봤자 성공할 가능성이 없을 뿐더러, 그럴 흥미도 없다. 독특한 운영체제덕분에 애플은 매우 복제하기 어려운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맥 뿐만이 아니다. 아이폰도 그렇고, 애플TV도 그래 보인다.

그런데 오에스 텐을 아이폰에 탑재시킨 애플의 전략은 새로운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도대체 아이폰은 어떻게 오에스텐을 돌릴 수 있을까? 맥에서 돌리는 오에스텐은 기가바이트 급의 RAM을 요구한다. 다음 기사는 바로 그 부분을 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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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OS X is on the iPhone, but not the 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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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aubon 님께서 2008-03-17 12:12 AM 에 수정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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