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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5, 07:26 AM   #20
casau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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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5, 카이로로 가는 머나먼 길

1990-1995: Microsoft's Yellow Road to Cairo

Thursday, December 14, 2006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PC와 DOS 판매는 마이크로소프트를 80년대에 제일 큰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시장 지배력이 증가하자, 마이크로소프트는 거대한 힘을 계속 누리라는 인식을 얻게 된다. 곧 없어질지도 모를 소프트웨어 회사에 투자하고 싶어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지도를 이용하여 마이크로소프트는 1991년, 카이로(Cairo)라는 제품 비전을 발표한다. 카이로는 향후 10년간 경쟁을 마비시켰다.

이 전략은 너무나 잘 먹혀들어가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롱혼으로 다시금 이 전략을 구사하였다. 카이로가 어떻게 먹혀들었는지,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번에는 왜 똑같은 사기술을 펼칠 수 없는지 알아보자.


"플랫폼의 역사, 그리고 그 대결"은 플랫폼을 새로 발족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플랫폼을 유지하는 일은 또 얼마나 고된지를 알려주었다. 본 글에서는 컴퓨팅 플랫폼의 역사적인 궤적(軌跡)과 함께, 누가 왜 이겼는지, 누가 왜 졌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컴퓨팅 환경이 언제나 변하기는 하지만, 기본 원칙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으며, 애플의 레퍼드나 마이크로소프트의비스타와 같은 미래 개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전 기사:

1990-1995: Microsoft’s Yellow Road to Cairo
80년대 소프트웨어 기업 빅3라면, Ashton-Tate, Lotus Development, 마이크로소프트였다. 애플은 새로이 매킨토시용 소프트웨어 개발로 여기에 끼게 된다.

그런데 Ashton-Tate는 스스로의 실책으로 사라지고, 1995년에는 IBM이 로터스를 인수하게 되면서, 데스크톱용 애플리케이션에 있어서 제일 영향력 있는 개발사는 마이크로소프트만이 남게 된다.

DOS와 오피스 애플리케이션 벤더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지위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분명 경쟁사들에 비해 유리했다. 특히 윈도우즈 95가 나타나면서 이전 버전의 DOS와 윈도우즈용 애플리케이션들이 구식이 되어버렸을 뿐 아니라, 기존의 경쟁사 애플리케이션들도 구식이 되어버렸다. 즉, DOS 표준이었던 WordPerfect나 Lotus 1-2-3가 구식이 되었다는 의미다.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크게 혼란스러운 시장을 조성하였고, 미래 제품 발표는 곧 현실에 존재하는 제품의 시장을 왜곡시켰다. 잘못된 정보가 넘치는 기술 업계의 상황을 고려해 보면,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신의 거대한 시장 지배력을 이용하여 악명높은 FUD와 허풍의 원천이 된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Innovations in Vaporware
이전의 기사에서 필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허풍이 퀵타임뉴튼, PenPoint OS에 어떤 공격을 가했는지 이미 보인 바 있다.

물론 일단 발표부터 했다가 결국 내놓지 못하는 회사들은 마이크로소프트 외에도 많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허풍 게임을 통해 혁신적인 이중 마케팅법을 보여 주었다.

일단은 다른 기업들처럼 엄포를 놓는다. 그러면서 다른 한 손에는 다른 카드를 준비했다는 양 움직인다. 그런데 눈에 안 보이는 그 카드가 훨씬 그럴 듯 해 보인다. 상대방은 주의를 흐뜨릴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카드를 치는 탁자 주변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거론하는 보이지 않는 카드에 상당히 감복을 받았다는 분석가들의 훈수가 가득하다. 그들은 입을 모아 마이크로소프트에 대결하는 짓은 어리석은 짓이 되리라 합창한다. 더 최악인 것은,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진 진짜 카드를 알아보고, 어떻게 엄포를 놓는지 뻔히 아는 분석가들도 많다는 데에 있다.

Microsoft's NT Plans Prior to Cairo
1991년은 애플이 맥 시스템 7을 선보이고, 자기 NeXT 머신을 이용하여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가 세계 최초의 웹서버와 웹브라우저를 만들 때다.

PC는 여전히 문자 기반의 DOS를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10년 전인 1981년의 DOS보다는 약간 더 빠른 버전이었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즈 3.0으로 DOS PC 사용자들에게 애플 그래픽 데스크톱을 허술하게 베낀 환경을 제공하였다.

윈도우즈 3.0의 판매량이 올라가자, 마이크로소프트는 OS/2 3.0의 개발에 있어서 IBM을 배신하기 시작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새로운 계획에는 OS/2에 대한 자신의 기여에 기반하여 완전히 새로운 운영체제가 들어 있었다. 이 새 OS는 곧 윈도우즈 NT로 불렸다.

기존의 DOS 기반 윈도우즈 3.0와는 달리, NT는 모든 면에서 완전히 새롭고 현대적인 면을 제공하였다. DOS나 기존의 x86 PC 구조와도 별개였다.

원래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텔의 새로운 64-비트 RISC 프로세서가 될 i860용으로 NT를 돌릴 참이었다. i860은 현대적인 디자인을 갖췄고, 표준 x86 기반의 PC와는 달리 하방호환성의 부담도 없었다.

i860은 이어 나오게 될 PowerPC Altivec과 펜티엄 MMX와 유사한 그래픽 가속기능을 탑재하였다. 그 결과 i860은 하이엔드급 NeXTDimension 비디오카드용으로 쓰이게 된다. 오히려 넥스트가 i860을 이용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i860에게는 불행히도, 마이크로소프트가 i860을 결국 이용하지 않았다. i860의 코드명은 N10이었고, 그 이름때문에 바로 NT가 나왔다고는 하지만, 당연하게도 마이크로소프트와 IBM은 오랜동안 OS/2 3.0을 신기술을 의미하는 "NT"로 부르고 있었다. 따라서 i860이 바로 NT라는 이름의 원천이라는 시각은 수정주의적인 시각이랄 수 있겠다.

No Operating System Experience
마이크로소프트는 IBM 없이 스스로 운영체제를 구축하려다가 드디어 복잡한 현실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 때까지 마이크로소프트는 MS-DOS의 업데이트만을 제공해 왔으며, MS-DOS도 한 작은 개발사로부터 라이센스 받은 운영체제였다. 바로 그 운영체제인 QDOS는 Digital Research CP/M의 한 클론이었다.

DOS 이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원래 1979년 AT&T로부터 라이센스 받은 유닉스의 일종인 제닉스(Xenix)를 팔아보려 했었다. 제닉스는 오늘날 SCO의 UNIX가 되었다.

냅킨 뒷면에다가 DOS를 한 손으로 써내려갔다는 빌 게이츠의 별난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에게는 운영체제를 디자인해 본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80년대 후반기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는 OS/2 개발에 있어서 IBM에게 의존하였다. 원래는 이 OS/2가 DOS의 대체가 될 터였다.

그런데 윈도우즈 3.0과 DOS 애플리케이션의 판매량을 보니, 이게 단순히 윈도우즈 환경을 위한 OS 라이센스나 아예 OS 작성팀을 별도로 꾸리는 편이 IBM에 의존하는 것보다 훨씬 돈을 많이 벌겠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의 기대보다 그 작업은 훨씬 더 큰 작업이었다. 1988년, 게이츠는 DEC로부터 개발팀을 하나 고용한다. 이 개발팀의 팀장이 바로 데이브 커틀러(Dave Cutler)로서 원래는 OS/2의 다음 버전 작업을 하고 있었다. 1990년, 마이크로소프트는 공식적으로 커틀러에게 IBM의 OS/2에다 갖다 쓸 윈도우즈용 OS 커널을 구축하도록 팀을 꾸려 준다.

이 결과 윈도우즈 NT가 나온다. 원래 계획보다 수 년 후에서야 나오게 되었고, 당시 언론은 NT가 "Not on Time"의 준말이라며 빈정거렸다.

But Wait, There’s More
NT 프로젝트가 느리게 진행되자, 마이크로소프트는 카이로라는 코드명 하에 장미빛 미래의 청사진을 만들어낸다. 첫 번째 버전의 NT 발표 계획을 내보낸 직후, 마이크로소프트는 NT 뿐만이 아니라 애플과 넥스트, IBM이 이미 제공하고 있는 그 어떤 운영체제보다도 우월하게 될 카이로가 나오리라 소리쳤다.

카이로는 이른바, 마이크로소프트 판, Pink였다. 특정 제품으로서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거론하고는 하지만, 그 거론 자체가 전체 전략의 일부였던 것이다.

기존의 맥 시스템 7 시장 현실 때문에 애플의 핑크가 제약을 받았다면,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3.0은 1990년 당시 거의 완성된 제품이 아니었으며, 윈도우즈 전용 소프트웨어도 매우 드물었다. 따라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떻게든 마음먹은대로 카이로를 윤색할 수 있었다.

Slippery Plans and Brands
전략이 바뀌어가자 마이크로소프트가 사용하는 어구와 브랜드 명칭도 다수가 바뀌어갔다. 이 때문에 좀 혼란스러웠다.

1990년 이전 윈도우즈는 새로이 OS/2에 통합될 프로그래밍/사용자 환경이었다. DOS상에서는 돌릴 수 없었다.

그 후 어느정도 기간이 지나면, 이제 OS/2를 200 달러 내고 살 경우 DOS가 공짜로 주어질 계획이었다. 즉, 이미 돌리고 있던 윈도우즈와 DOS용 소프트웨어를 네이티브 OS/2 소프트웨어와 같이 돌릴 수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OS/2용 애플리케이션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흠.

IBM도, 마이크로소프트도 이 전략이 제대로 될지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말 놀랍다. 그래도 계획상으로는 모든 것이 훨씬 분명했다. 당시 OS/2는 PC용으로 새 플랫폼을 제공하려 한 첫 번째 시도였다. 애플은 이미 Apple IIGS와 맥으로 새 플랫폼으로의 이주가 얼마나 어려운지 몸소 경험한 상태였다.

당시, 소매점에서 운영체제를 판매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역사적으로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의 업데이트를 무상으로 뿌리던 애플도 그제서야 시스템 7을 소매상품으로 바꾸려 시작중이었다. 하지만 별로 섹시하지도 않은 유틸리티 소프트웨어를 강요받지 않는 한 별 흥미를 못 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DOS 기반의 윈도우즈 판매가 성장하던 1990년 당시 윈도우즈는 페이지메이커와 같은 그래픽 애플리케이션을 PC에서 쓰기 위한 가난한 이의 매킨토시였다. 이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는 OS/2에 있어서 IBM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윈도우즈의 지속적인 개발과 새 운영체제 커널 개발로 초점을 돌린다.

그리고 DOS를 대체한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새 운영체제는 NT라 불렸다. 원래는 OS/2 3.0에 붙일 이름이었고, 윈도우즈는 NT의 최상단에서 돌아갈 사용자 환경이었다. IBM은 IBM대로 기존의 윈도우즈용 애플리케이션을 OS/2랑 나란히 돌리게 하려는 계획을 밀고 나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새로운 32-비트 버전 윈도우즈로서 NT를 시작했다. 이 환경은 Win32라 불렸고, 기존의 윈도우즈는 Win16으로 바뀌었다. 즉, 마이크로소프트는 강력하고 새로운 Win32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자원을 집중시켰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는 내부적으로 Win32용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들어갔다. 다른 개발사들은 새로 Win32 애플리케이션을 작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동등한 입장에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특히나 오피스와 같은 애플리케이션에서 쓰이는 비밀 API가 그러하다.

윈도우즈 NT가 처음 나오기 2 년 전, 마이크로소프트는 카이로가 윈도우즈 NT의 후속이라고 선전하기 시작했다. 아직 나오지도 않고 검증도 안 된 NT 커널상에서 돌아가는 간단한 그래픽 셸 Win32도 아니었다. 카이로는 핵심 OS부터 파일 시스템, 사용자 환경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새로운, 미래 지향적인 새로운 아키텍쳐였다.

Distracting Vapors of the Future
마이크로소프트에게는 일단 발표하는 것이 중요했다. 애플로부터 기존의 맥 사용자 환경, 그리고 넥스트로부터 운영체제 기술과 기존의 개발 환경은 분명 당시 마이크로소프트가 제공하던 것보다 훨씬 더 우월했다. 아니, 앞으로 나올 것보다도 더 우월할지 모를 형편이었다.

애플의 핑크처럼, 카이로는 허풍이었다. 미래에 나오리라 크게 떠벌려 놓고는 현재의 시장현실을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애플의 핑크가 이미 나와 있던 넥스트의 모든 것을 제공하리라 떠벌리던 것처럼, 마이크로소프트 카이로도 10년 내에 나오지도 못할 것을 광고하였다.

뛰기조차 못하던 마이크로소프트는 나는 모습을 그려내 보였다. 카이로의 매력적인 환상에 이끌린 언론은 웃기도록 허술한 윈도우즈 3.0과 DOS를 매킨토시나 넥스트와 비교하지 않고, 오히려 카이로가 제공하는 약속과 현재의 애플과 넥스트를 비교해댔다.

심지어 넥스트조차 카이로가 결국 나타나리라 믿었는지, Taligent, 카이로에 대해 넥스트가 어떻게 대처할 예정인지를 보이는 차트까지 만들었을 정도였다.

허풍의 다른 희생자들처럼, 넥스트 또한 현실에 존재하는 제품 판매에 어려움을 겪었다. 모두들 마이크로소프트의 향후 10년간 결코 나오지 않고 만, 장미빛 미래를 듣기 원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전혀 실현되지 못한 부분도 있다.

Unhindered by Reality
기존 애플리케이션과의 호환성 문제나 실제로 존재하는 경쟁사로부터 일부러 멀리 떨어진 마이크로소프트는 멋대로 마술과 같은 미래를 그릴 수 있었다. 게다가 모두들 그 미래가 곧 현실화되리라 믿을 준비가 되어 있기도 했다. 설사 이제까지 고유의 운영체제 기술을 내본 적이 없던 마이크로소프트였는데도 말이다.

자, 마이크로소프트가 말로 에이스 다섯 장이 있노라고 입카드를 치는데, 언론은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냐 묻기는 커녕, 오히려 마이크로소프트의 미래가 얼마나 근사한지 맞장구 쳐주기에 바뻤다. 이런 무비판적인 언론의 칭송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엄포가 먹혀들어갔다. 따라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이후에도 비현실적인 계획을 계속 발표하기에 이르른다.

시간과 자원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컴퓨터 업계라서 그랬다! 그저 프로젝트에 투입할 더 많은 엔지니어를 고용하면 시간은 단축시킬 수 있고,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이득이 될 규모의 경제라면 자원도 고려 대상이 못 됐다. 이렇게 생각하고나면, 모두 다 합리적이었다.

케이크를 오븐에 넣고, 온도를 권장하는대로 두 배로 올리면, 케이크가 절반의 시간 안에 만들어지는 식이었다. 분석가들은 그런 식으로 말하였다.

Cairo: Buzzword Compliant
카이로는 당시 관심의 초점인 새 OS와 사용자 환경이었으며, 기존 경쟁사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상당수 빌려왔었다. 뭐, 다른 회사에서들 이미 이 기술을 판매하고 있으니, 복제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없으리라는 식이었다.

특히 카이로가 약속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 OS/2가 이미 갖고 있던 데스크톱 오브젝트에 대한 직접적인 조작 등을 갖춘, 객체지향 사용자인터페이스
  • 넥스트가 이미 존재하던 환경과 비슷한 객체 지향 개발환경
  • 넥스트가 제공하던 기능과 유사한 분산컴퓨팅
  • 완전히 검색이 가능한 오브젝트 스토어를 갖춘 객치 혹은 데이터베이스 파일시스템
  • Lotus Notes와 유사하되 표준에 기반한 메세지 시스템
  • Novell의 NDS와 동일하며, 표준에 기반한 디렉토리 시스템

Failure to Launch
마이크로소프트의 카이로는 이제 출시를 한 두 해 앞둬가고 있었고, 결국 90년대 후반 이후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카이로에 대한 언급을 멈추었다.

1992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카이로가 1994년 데뷔하리라 말하였고, 이듬 해인 1993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첫 번째 버전의 윈도우즈 NT를 소개하였다. 하지만 이 NT의 버전 숫자는 3.1이었다. 즉, DOS 기반의 윈도우즈 3.0을 계승하겠다는 표명이었다.

NT 커널은 일반적으로 디자인이 잘 된 것으로 평가받았다. 너무 평가가 좋아서인지 DEC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커틀러를 고용하여 DEC의 지적재산권을 훔쳐갔다 고소하였다. 하지만 NT 퍼포먼스는 표준형 PC에서 그리 좋지 않았다. 당시 표준형 컴퓨터는 NT를 돌리기에 넉넉하지가 못 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에게는 비상이 걸렸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임시적인 계획을 급히 세워서 DOS 기반의 윈도우즈 3.0을 NT를 수정할 때까지 충분히 잘 돌아가도록 개선시키기로 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차세대 NT를 "4.0"이라 부르고 싶어했다. 따라서 DOS 기반의 윈도우즈 다음 버전은 버전 숫자가 아닌, "윈도우즈 95"로 불리게 된다.

Cairo Falls Apart
윈도우즈 95 출시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1994년 초, 짐 알친(Jim Allchin)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즈 95에 프로그래머들을 더 투입하는 중이기 때문에 카이로가 1995년 하반기까지 연기되리라 발표하였다.

1994년 말, 마이크로소프트의 부사장, 마이크 메이플즈(Mike Maples)는 카이로가 "1996년 정도"에 나오리라 말하였다.

1 년 후인 1995년 말, 마이크로소프트는 카이로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일부라면서 윈도우즈 95를 출시한다. 하지만 윈도우즈 95는 사용자 인터페이스 기술에 있어서 어떠한 새로운 점도 제공하지 않았다. 맥과 넥스트 양자로부터 베꼈을 뿐이며, 보통은 "윈도우즈95 = 맥 89"라는 말로 비판을 받았다.

윈도우즈 95가 나오자, 마이크로소프트는 카이로의 "첫 번째 버전"이 1996년 하순에 데뷔하며, 실질적인 출하는 1997년에 있으리라 발표한다. 원래의 발표 이후로 1년 반이나 지난 시기였다.

그러나 1996년이 되자, 마이크로소프트는 카이로를 실제 제품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비전인양 묘사한다. Computerworld 인터뷰에서 빌 게이츠는 이렇게 말했다. "카이로는 미래적인 시스템으로서, 우리가 작업중인 것입니다."

넥스트의 객체지향 개발툴과 여러가지 다른 제품의 합법적인 경쟁자인양 묘사를 받은지 1 년 하고도 반이 지났지만, 카이로는 완전한 사기임이 드러났다.

넥스트를 몇 년 후면 자기도 내놓는다며, 마이크로소프트가 세상을 속인 것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한 일이라고는 1990년 DOS 기반의 윈도우즈를 약간 데워서 내놓고서, 아직 준비가 덜 된 불안정한 OS 커널을 NT에 심어 놓았을 뿐이다.

Cairo's Old New Vision
1996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즈 NT 4.0을 내놓는다. NT 4.0은 Object File System for NT와 Exchange Server를 포함하여 카이로 비전의 몇 가지 요소를 포기하고, 좀 더 전통적인 파일시스템을 고수하였다.

NT 4.0은 또한 윈도우즈 95와 동일한 인터페이스를 채용하였는데, 이것이 문제를 야기하였다. NT 4.0을 더 빠르게 만들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는 4.0에서 구조적으로 변화를 많이 시켰는데, 이는 NT 디자인에 있어서 심각할 정도로 다른 요소를 제약시켰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밝히겠다.

카이로의 다른 부분들은 여전히 준비중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인덱싱과 분산형 컴퍼넌트 객체 모델 등을 NT 4에 포함시키고는 디렉토리 기능을 NT 5에 넣겠다 발표하였다. NT 5는 결국 윈도우즈 2000으로 나오게 된다.

그러나 첫 발표 이후 5년이 지나도록, "카이로 기술"에 새로운 것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1995년, 스티브 잡스는 이미 넥스트의 Distributed OLE(넥스트의 Portable Distributed Objects의 윈도우즈용 포팅이다) 를 데모하였다. 뭐라도 내놓을 계획이라는 발표를 하기 2 년도 더 전 일이다. 넥스트는 이미 1993년에 해당 기술을 넥스트용으로 내보냈었다.

Novell 또한 1993년에 NDS 디렉토리 서버를 출하하였다. 윈도우즈 2000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Active Directory를 내놓으려 하기 7년 전이다.

카이로를 약속한지 오랜 후에도, 마이크로소프트는 여전히 카이로를 준비중이었다. 다른 기업들은 카이로 기능을 실제로 내놓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제일 충격적인 사실은, 마이크로소프트가 Object File System을 내놓지 않으면서 Object File System을 미래인양 계속 끌고 나갔다는 데에 있다. 2001년, 마이크로소프트는 Object File System을 차세대 시스템 Longhorn에 넣겠다고 말했다.

Hasta la Vista
경쟁 억누르기만은 카이로가 제대로 작동하였다. 90년대 마이크로소프트가 실제로 내놓았던 제품의 품질 논란도 카이로가 없애 주었다. 이에, 마이크로소프트는 동일한 전략을 10년 후에도 재사용한다. 비교해 보자.

Cairo:
  • 윈도우즈 3.0에 새로운 것이라고는 없다는 점을 숨기기 위한 1991년의 발표
  • 1994년에 나올 것이다, 1995년 후반으로 연기했다, 1997년에 데뷔시킬 예정이다. 카이로는 하나의 비전이다
  • 핵심 기능의 포기. 기존 윈도우즈 3.0을 윈도우즈 95로 윤색하는 것으로 끝남

Longhorn:
  • 윈도우즈 XP에 새로운 것이라고는 없다는 점을 숨기기 위한 2001년의 발표
  • 2003년에 나올 것이다, 2004년에 나온다, 2005년에 나온다, 2006년 후반에 나온다, 2007년에 데뷔시킬 예정이다
  • 핵심 기능의 포기. 기존 윈도우즈 XP를 윈도우즈 비스타로 윤색하는 것으로 끝남

Fraud as a Business Plan
인터넷의 마술 덕택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얼마나 약속을 형편없게 여기는지를 지적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운영체제 간 간격을 다시는 5년씩이나 끌지 않으리라 확언하였지만, 역사가 또다시 반복되는 것은 어쩐 일일까?

돌이켜 보면, 정규적으로 제품을 내놓는 것 처럼 보일 때에도 마이크로소프트가 지난 20년간 내놓은 윈도우즈는 준비가 안 되고, 실제 약속과는 거리가 먼 미봉책 시리즈였을 따름이다.

게다가 이런 미봉책들은 경쟁사 제품들보다 심각하게 뒤떨어졌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수 년 앞서 나온 제품들보다 실질적으로 훨씬 뒤떨어졌다는 얘기다.

더해서 카이로가 계획한 장미빛 미래 계획은 이미 다른 기업들이 수 년 전부터 제품으로 제공하던 것들이다. 그런데 왜 유독 마이크로소프트가 방송을 탈까? 수 십 년동안 마이크로소프트는 사기꾼이었다.

Pink vs. Cairo
흥미롭게도, 분석가들은 1990년에서 1995년까지 핑크와 코플랜드에 관련된 애플의 문제는 다루면서, 역시 유사한 문제를 겪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카이로와 NT의 문제는 집단적으로 망각하고 있다. 게다가 다시금 5년을 허풍에 가득찬 롱혼 계획으로 보냈으면서도 똑같이 망각중이다.

현실적으로, 애플은 성공스럽지 못할 때조차 최고의 개발작들을 차례로 선보였다. 두 회사 모두 1981년에 나온 그래픽 윈도윙 시스템을 거론하고는 하지만,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보다 훨씬 진보적인 그래픽 맥을 선보였었다.

애플은 또한 고유의 유닉스인 A/UX는 물론 ProDPS와 SOS, GS/OS, 뉴튼 등 여러가지 운영체제도 내놓았다. 그저 외부에 라이센스 주어서 재판매한 제품이 아닌, 모두가 다 오리지날 제품이었다.

지난 5년간, 애플은 약속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제공하였고, 마이크로소프트는 훨씬 더 많은 실패를 거뒀을 뿐 아니라, 자신의 시장지배력을 가지고 더 나은 기술을 막거나 죽이려 들었다.

최악인 것은, 지난 5년간, 약속한 바를 전혀 실천하지 않고서, 비스타가 탄성을 자아내야 할 제품으로 인식시키려 드는 것이다.

전혀 기쁘지 않다. 새롭거나 가치가 거의 없어서이기도 하고, 2001년의 약속도 완전히 못지켜서이기도 하다.

What About BOB?
업계는 현재 어떠한 비판으로부터도 "비스타를 막기"에 분주하다. 그 중에는 Robert X Cringely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는 마크 스티븐스(Mark Stephens)도 있다. "Red Box의 미신을 벗긴다"와 "애플 대 아마존 라이벌의 미신을 벗긴다"에서 루머나 떠들고 다니던 크린즐리를 기억하시는가.

그의 최신 글이 문제가 되는 까닭은, 기술 업계 온갖 종류의 역사가로서 스티븐스가 마이크로소프트 BOB에 무슨 일이 진짜로 일어났는지를 많이 까먹고 있어서이다. 그는 BOB이 "Bob은 소위 편안한 인터페이스 운영체제인데, 아무래도 필자 이름을 따라 지은 것이 아닐까 싶다."이라 하였다.

좀 말하기 곤혹스러운데, BOB은 운영체제가 아니고, "편안함"과도 거리가 멀었으며, 스티븐스의 이름도 사실은 BOB이 아니다.

사실, 마이크로소프트 BOB은 256-컬러 PC 게임인양 보이려는 DOS용 셸이었을 따름이다. 데스크톱상의 윈도우즈가 아닌, 조그마한 만화 캐릭터로 채워진 만화방이었다. 사용자들은 한 방에서 다른 방으로 원하는 곳에 따라 움직일 수 있었는데,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방 자체를 아예 나가고 싶어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BOB의 짜증나는 캐릭터를 혁신인양 유지시켰다.

즉, BOB의 캐릭터는 어시스턴트로서 오피스의 페이퍼클립에 추가되었고, 조그마한 강아지도 XP의 검색필드에 들어갔다. 실제로 파일을 전혀 찾지 못한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일 것이다.

물론 애니메이션화 된 강아지이다. BOB 덕택이다.

BOB의 진짜 문제는 BOB이 별 이슈가 못 되었다는 데에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BOB를 희생양으로 길렀다.

BOB을 둘러싼 소음은 BOB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실수가 아니며, 그 이후로 마이크로소프트가 보여준 모든 캐릭터가 BOB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잊게 만든다. 위원회가 세운 허술한 아이디어가 유치해 보이고 사용자에게 피해를 주는 웃긴 인터페이스를 만든 것이다.

그러니 BOB은 잊자. "마이크로소프트가 실제로 비스타를 팔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누가 하겠는가? 당연히 새 PC에 번들로 나온다. 분명하다. 하지만 여러가지 상황이 비스타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레퍼드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비스타 비교 시리즈에서 조사중이다. 정말 실질적인 문제랄 수 있겠다.

진짜 의문은 또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과연 카이로-롱혼 전략을 또다시 밀고 나설 것인가? 세상이 비스타로 갈아타고, 또다른 10년을, 혹은 운이 좋아봤자, 5년 후에나 내놓을 마이크로소프트 계획을 기다리며 날린단 말인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진짜 문제는 오늘날의 비스타가 아니라, 이미 구조적으로 문제가 가득찬 폐쇄적인 운영체제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기 위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노력이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는 맥오에스텐과 리눅스라는, 전에까지 맞이해본 적이 없는 진짜 경쟁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처지다.

Why This Won't Happen Again
웹 접근 이전 시절로 돌아가 보자. 잡지 등을 통해 최신 소식을 우리는 수 개월 후에나 접하였다. 발표되자마자 신제품의 시장 점유가 어느정도나 되는지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한 제품이 거의 나오자마자 대실패로 간주할 수가 없었다. 몇 달은 기다려야 했다.

기업 입장에서 봐도, 기업들은 소비자들로부터 오늘날처럼 즉각적인 정보를 받지 못하였다. 어떠한 개인도 문제를 파헤쳐서 널리 공표할 능력이 없었다. 일단은 잡지나 다른 언론을 통해 보도를 접할 수 밖에 없던 시절이다.

이러한 일반적인 무지함과 최신 정보에 대한 속도 문제때문에 당시는 허풍의 제품이 잘 먹혀 들어가서 실제 경쟁자들을 물리치기가 쉬웠다. 허풍 전문가로서야 미래에 더 나은 제품이 나와서 현재 경쟁자들에게 쏠린 관심을 이쪽으로 돌리는 데에, 아이디어만 몇 개 흘리면 됐다.

이러한 트릭을 폭로하려는 저널리스트가 없으니, 대중은 쉽게 조작을 당하여, 전혀 진실이 아닌 것을 믿게 된다. 이러한 기술이 컴퓨터 업계용으로 개발되지는 않았으며, 역사적으로 그 유래가 깊다. 뉴스를 통제하면 인민을 통제할 수 있는 법이다. 개인을 일깨우고, 전체주의의 비밀을 깨는 정보가 나오면 혁명이 일어나는 법이다.

2007년에 마이크로소프트가 맞이하게 될 것은 비스타용 OEM의 부족이 아니다. 독점적인 지위의 박탈이 일어날 것이요, 세계를 다시금 앞으로 나온다는 기술 광고로 호도(糊塗)하려는 시도도 이제는 먹히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더 잘 알고 있다.

오, 크린즐리. 이제는 뭔가가 있다는 식의 글을 당신도 그만 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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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5: Microsoft's Yellow Road to Ca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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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aubon 님께서 2007-02-19 07:38 AM 에 수정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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