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Single Post
2006-12-11, 11:18 PM   #3
casaubon
Moderator
 
casaubon's Avatar
 
Registered: Sep 2001
My Mac: MacBook Air
Posts: 2,110
오프라인
뉴튼의 교훈

Newton Lessons for Apple's New Platform

Monday, December 11, 2006

애플의 언론보도문을 보면 항상 이런 어구로 끝난다. "Apple ignited the personal computer revolution in the 1970s with the Apple II and reinvented the personal computer in the 1980s with the Macintosh." 오늘날 애플은 새로운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으며, 90년대로부터 배운 교훈을 적용시키고 있다.

거의 잊혀진 성공과 위기의 기간 동안, 애플은 뉴튼을 새로운 플랫폼으로 발족시키려 했다. 하지만 뉴튼은 계속 시장에서 실패를 거두었고, 애플의 언론보도문에서도 언급을 못받을 정도가 되었다.

뉴튼은 새로운 기기만이 아니었으며, 별종의 플랫폼을 노렸었다. 이전 시기의 매킨토시처럼, 뉴튼은 하나의 제품으로 시작했고, 시스템으로의 저변 확대를 목표로 하였다.

Introducing the Newton
에플은 "뉴튼"을 메시지패드 라인의 PDA는 물론, 나중에 나온 학교용 eMate 미니랩톱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디바이스용 운영체제를 가리키는 데에 사용하였다. 프로토타입의 뉴튼 기기에는 전화기와 비디오 워키토키, 타블렛같은 몸체에 Palm Pilot같은 미니 PDA 디바이스를 포함했었다.

원래의 뉴튼 프로젝트는 PDA 디자인이 아니라 기존의 맥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넘어 설 새로운 타블렛-기반의 컴퓨터 디자인이었다. 이 새로운 인터페이스는 애플의 컨셉영상인 Knowledge NavigatorFuture Shock에 나와 있다.

이 새롭고 미래 지향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역시 미래 지향적인 언어, 딜런(Dylan)의 힘을 사용하기로 되어 있었다. 딜런은 원래 LispSmalltalk이 조성한 객체지향, 다이나믹 개발 환경을 제공하였다. 딜런은 너무나 미래적이어서, 뉴튼조차 딜런에 준비가 안 될 정도였다.

Newton, Interrupted
애플은 매킨토시와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컴퓨터 플랫폼을 소개하기로 결정내렸다. 이미 시스템 7의 업그레이드와 Pink지체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애플 II 라인도 여전히 판매중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컴퓨터 시스템의 소개는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었다.

따라서 뉴튼 프로젝트는 이제 맥용 주변기기라는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된다. 단, 휴대가 간편하면서, 핸드헬드 디지탈 어시스턴트로서 표준형 컴퓨터와 데이터를 싱크시키는 기기가 된 것이다. 컴퓨터의 대체품으로서의 뉴튼이 아니었다.

Technical Innovations
뉴튼은 딜런 대신, Self 언어에 기반을 둔 신택스를 사용한, 역시 미래적인 NewtonScript를 사용하였다. 이 뉴튼스크립트도 객체지향 코딩으로 봐서는 최고였고 자동으로 메모리 관리도 하였다. 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가 managed code라 불리우는 것이 바로 뉴튼스크립트였다.

뉴튼에서 애플이 개척한 새로운 아이디어는 바로 데이터 수프(data soup)였다. 전통적인 파일 시스템 대신, 뉴튼 데이터는 수프 안에 저장되었다. 수프는 객체지향 데이터베이스였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가 1991년 Cairo에, 그리고 다시금 2001년의 Longhorn에서 약속했지만 결코 내놓지 못했던 Object File System과 유사하다.

수프는 데이터를 여러가지 애플리케이션이 가져갈 수 있는 공유 풀에 놓는다. 달력과 주소록 정보 수프를 해당 파일을 만든 애플리케이션 뿐만이 아니라, 표준형 컴퓨터에서 쓰이는 것처럼 다른 모든 애플리케이션이 사용할 수 있었다. 이 수프 아이디어는 뉴튼 디바이스에서 잘 작동하였지만, 컴퓨터 싱크는 좀 복잡했다.

뉴튼의 객체지향 시스템은 또한 플러그인을 통해 기존 애플리케이션에 놀라울 정도로 새로운 기능을 추가시켰다. 이 많은 혁신은 10년 뒤의 오늘날에나 이제 막 쓰이고 있다.

A Half Decade of Newton
뉴튼은 원래 당시 CEO인 존 스컬리의 심심풀이(pet) 프로젝트였다. 그는 Knowledge Navigator 개념을 갖고 "Personal digital assistant"라는 말을 붙인 장본인이다. 그 말은 1992년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제품쇼에서 뉴튼 프로토타입을 보이면사 나왔다.

애플은 일 년 반 후에 첫 번째 메시지패드를 선보이려 노력중이었지만, 그 해에 스컬리는 애플에서 축출당한다.

그의 축출 뒤, 첫 번째 뉴튼이 1993년 8월에 나온다. 그 후 3년간 약간 개선된 모델 네 가지가 나왔지만, 애플은 그 판매량을 탐탁스러워하지 않았다. 뉴튼의 비용은 700~900 달러 선이었다.

1997년, 애플은 상당히 개선시킨 버전인 2000과 $800 짜리 eMate 300을 선보인다. eMate는 원래 학교 판매전용이었다. 애플은 또한 뉴튼 OS를 Sharp와 Motorola에 라이센스하여 각자 PDA를 만들도록 허용한다.

점차 심각해지는 핵심 문제 때문에, 애플은 우선 뉴튼을 분사시켰다가 1998년 초, 뉴튼을 없앤다. 생존을 위해 이윤이 남는 프로젝트에만 집중한 탓이다. 뉴튼은 모두 판매량이 별로 많지 않았으며, 1998년 당시에는 훨씬 저렴한 Palm Pilot의 경쟁에 직면해 있었다.

Newton Competitors: GRiD and Palm
첫 번째 펜-기반의 핸드헬드는 1989년의 GRiDPAD이다. 이 GRiDPAD는 특화된 소프트웨어로 필기인식용 펜을 갖춘 2370 달러 짜리 DOS 랩톱이었다. Tandy가 GRiD를 인수하였고, GRiD는 산업체용으로 사라져버렸다.

GRiD의 창립자인 제프 호킨스(Jeff Hawkins)는 GRiD 아이디어로 소비자용 제품을 만들고 싶어했다. 따라서 그는 Tandy로부터 GRiD 소프트웨어를 라이센스받아 자기 회사를 설립하고, 그것이 바로 Palm Computing이다. 또한 그는 Zoomer라 불리는 소비자용 PDA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구축한다.

Palm은 뉴튼이 나온 직후, Casio와 협력하여 Zoomer를 선보였다. 700 달러 짜리 Zoomer는 문제도 많고 버그도 많았으며, 뉴튼보다 실용적이지 못했다. 결국 Zoomer는 대실패를 기록하였다. 뉴튼 판매량의 1/10인 만 대만 팔린 것이다.

Zoomer가 실패한 후, Palm은 뉴튼을 포함하여 다른 핸드헬드용 애플리케이션 제작사로 돌변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비판 많이 받던 뉴튼의 필기인식 기능의 대안 소프트웨어인 Graffiti였다.

Zoomer 2용 지원을 찾는 데에 실패하자, 호킨스는 시장이 실제로 더 작고 간단하면서 저렴한 기기를 원한다고 결심하였다. Palm은 1996년 300 달러 짜리 Pilot을 US Robotics용으로 조립하였고, 1997년, Palm Pilot은 성공을 거두게 된다. 훨씬 더 비싼 뉴튼이 성장할 여지를 Pilot이 차지한 셈이었다.

3Com이 US Robotics를 인수하자, 호킨스와 여타 다른 Palm 창립자들은 라이센스 받은 Palm 클론업체인 Handspring을 창립한다. Handspring은 Palm을 전화기로 바꾸는 데에 주력하여, Visor 전화기 애드온과 Treo를 만든다.

2003년, Handspring은 Palm의 나머지 부분과 합병하여, PDA 시장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전화기 제품을 판매하려 한다. Palm의 현재 상황을 보면, 1996년 애플 상황이 오히려 근사해 보일 정도다.

Newton Competitors: GO
Go Computing이 있다. 이곳은 핸드헬드 시스템용으로서 첫 번째 운영체제 중 하나인 PenPoint OS를 제공하였다.

PenPoint는 사용의 간편함을 목표로, tabbed notebook이라는 개념을 따르는 인터페이스를 갖추었다. Go는 GRiD를 포함한 여러 회사에 PenPoint를 라이센스하였다.

AT&T는 나타났다가 바로 사라진 EO Personal Communicator를 1993년에 소개했는데 이 기기가 바로 PenPoint OS를 돌렸다. 무선 모델이 두 개 나왔는데, 가격이 2000~4000 달러 선이었으며, 나온지 일 년여 만에 투자자금이 다 빠져버렸다.

운영체제 회사로서 Go의 실패는 펜-기반의 타블렛과 PDA용 시장 전체를 거머쥐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Windows for Pen Computing 위협 때문이었다.

Newton Competitors: Microsoft
윈도우즈 3.0에 타블렛 기능을 갖춘 Windows for Pen는 경쟁자 죽이기 외에는 아무 일도 못 함이 드러났다. Go로부터의 위협이 사라지자 마이크로소프트는 바로 Windows for Pen을 포기해 버린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미래의 펜 컴퓨팅 비전으로는 1992년에 발표한 WinPad가 있다. Go 축출 계획에 따라, 마이크로소프트는 컴팩과 모토로라, NEC와 Sharp의 지원을 받아 새로이 WinPad Handheld PC를 구축하려 하였지만, 1994년에 역시 포기하였다. 일종의 허풍이었던 셈이다.

이듬해 취소된 WinPad 대신, 마이크로소프트는 훨씬 진보적인 32-비트 핸드헬드 PC, Pegasus를 발표한다. 이것이 바로 윈도우즈 CE 1.0으로 1996년 말에 나오게 된다.

WinCE 역시 3년 전의 뉴튼 기능을 전혀 제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작은 화면을 갖춘 윈도우즈 95로 보였다.

배터리 수명도 짧고 퍼포먼스도 좋지 않으면서, WinCE는 Outlook과 같은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웨어에 묶여 있었다. 그래도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이라 그런지 세상의 분석가들은 WinCE가 경쟁을 결국 따라잡고 이내 물리치리라 전망하였다.

2000년 당시 필자는 컴팩에서 제공한 경품을 받았는데, 그 때 받은 것이 새로운 WinCE 기기였다. 하지만 이 기기는 조악한 인터페이스에 투박했고, 너무 느렸으며, 배터리 수명이 아예 없었고,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웨어에 여전히 묶여 있었다. 오히려 Palm V가 미래에서 온 외계인이 떨어뜨린 마술로 보일 정도였다.

수 백만 달러의 손실 끝에 현재 WinCE는 6.0까지 나와 있다. 특화된 미니 버전의 윈도우즈는 적자액이 거대한 사업으로 돌변했으며, 이제는 스마트폰과 WMA 플레이어, Sega DreamCast 비디오 게임콘솔 등으로도 넘어가려 하고 있다. 하지만 모두 실패중이다.

높은 개발비용과 보잘 것 없는 판매 전망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이제 WinCE용 "shared source"를 내세우고 있다. 소프트웨어 코드를 라이센스 준 다음, 라이센스 업체가 대선시킨 점에 대해서는 로열티를 면제시켜줄 수 있다는 것이다. 모두 받아적고 있습니까?

WinCE는 최근 역시 특화된 표준형 데스크톱 윈도우즈를 돌리는 새 디바이스, Origami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오리가미는 역시 실패한 Tablet PC의 최신작인데, 역시 올해 실패중이다.

사실 cnet.co.uk가 2006년, 오리가미 제품 중 하나인 삼성 Q1과 1997년에 나온 메시지패드2000을 비교하는 기사를 실었을 때, 전체적인 승자는 10년이 넘은 뉴튼이었다.

Back to The Macintosh
제품으로서 뉴튼은 상업적인 실패로 끝났지만, 애플의 초기 매킨토시가 컴퓨팅의 신세계를 열었다는 점에는 의문이 없다. 설사 애플 자신이 그 혁신의 주요 수혜자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맥의 원류를 Xerox PQRC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 원류는 마우스-기반의 컴퓨팅을 작업한 60년대, 더글라스 엥겔바트(Douglas Engelbart)까지 올라간다.

물론 이 개념은 IBM을 포함한 다른 기업에도 열려 있었다. 제록스 자신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러한 요소를 대중화시킨 공로자는 역시 애플이다.

애플은 또한 완전히 독특한 사용자 인터페이스 개발과 운영체제의 개발자이다. 애플의 연구원들은 사용자의 실제 문제를 해결하고, 완전한 재발명보다 부가기능에 개발자들을 집중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준 일관성 있는 가이드라인을 개발해냈다.

애플 II로 거둔 성공과 애플의 업계 내 위치와 크기는 온세상이 PC로 흘러가고 Atari와 Amiga같은 업체가 도산하는 가운데에서도 생존을 지속시켜주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아타리와 아미가는 기술 업계에서 일어나는 격심한 경쟁과 급속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였다.

위에 언급한 점들 덕분에 맥은 우위가 몇 가지 갖는다. 애플이 80년대 후반에 경영을 좀 다르게 했더라면,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경쟁자들이 애플의 위치를 쉽게 점유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비슷한 환경이 또다시 애플에게 미래로 향한 또다른 우위를 제공하고 있다.

A New Platform Needed
그 해결책은 20년 전의 맥과 같이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과 통합 제품군을 통한 간단하고 직관적인 솔루션을 제공하는 애플의 핵심 역량과 관련이 깊다.

오늘날의 문제는 휴대폰과 뮤직플레이어, 자동차 오디오, 텔레비전, 비디오게임, 콘텐트 제공,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에 있다. 80년대 DOS용 애플리케이션처럼, 오늘날의 기기도 각자의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나름의 컨트롤을 통해 사용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사용성 문제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여러가지 기기의 기능 확장을 위한 소프트웨어 판매에도 문제가 생긴다. 호환성이 전혀 없어서이다.

90년대 중반 썬의 자바는 모든 곳에서 돌리는 애플릿을 약속했고, 리눅스 또한 단일 코드기반으로 모든 것을 돌리리라 약속했다. 하지만 둘 다 실제로 호환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다. 역시 유사한데, 둘 다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전혀 고치지 못했고, 아마도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데에 오히려 더 보탬이 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동안 표준형 윈도우즈를 특별하게 만든 WinCE갖고 타블렛 PC에서부터 오리가미, 텔레비전셋톱박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기에 집어 넣으려 하였지만, 모두가 다 비참한 실패였다. Palm도 PDA를 확장시키고 Treo 전화기, 더 큰 타블렛 기기를 노력하였으나 역시 실패중이다.

답변은 모든 것을 돌리는 새로운 운영체제가 아니다. 사실 운영체제 자체는 더 이상 관건이 못 된다. 실질적인 문제는 유용성이다.

PC 애플리케이션과 비교해 보자. 해결책은 윈도우즈이지, 그 이면에 깔린 DOS나 NT가 아니다. 애플로 봐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시스템 7이나 유닉스가 아니라 맥 사용자 인터페이스이다.

소비자 가전 기기가 필요로 하는 새 플랫폼은 전체적인 시스템이다. 그리고 일관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그 핵심이다. 애플은 뉴튼으로 여기에 도전했다가 너무나 많은 기능을 제공하려 한 탓에 고가의 고급품을 대중 시장에 내놓고 말았다.

Why Newton Failed
실질적으로 뉴튼은 여러가지 치명적인 실수에 시달렸다. 관련된 문제는, 뉴튼이 해결하려 했던 것과 동일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애플의 새 플랫폼에도 적용할 수 있다. 뉴튼의 주된 문제는 하드웨어였다. 팔릴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했었다.

뉴튼용으로 제일 성공적인 의학 소프트웨어를 만든 시어즈(Brant Sears)는 한 이메일에서 뉴튼이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을 보여주었다. 그가 쓴 내용이다.

  1. 준비가 되기 전에 뉴튼을 미리 발표해버렸다. 존 스컬리의 제품 데모는 거의 2 년 전에 나왔는데, 이것이 치명적인 실수였다. 애플은 결국 완성시키기 전에 뉴튼을 벼락치기로 만들어야 했다.
  2. 뉴튼은 너무 느렸다. 특정 명령이 너무 시간을 오래 끌었다. 오리지날 메세지패드의 노트 스크롤이 특히 너무 느렸는데,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 대부분이 가상머신에서 돌아가는 NewtonScript로 인터프리팅을 했기 때문이다. 애플은 더 적은 용량의 플래시메모리를 결정하였는데, 이 때문에 시스템은 상당히 우아해졌지만, 초기 시스템의 가격 대비 성능이 형편 없었다.
  3. 뉴튼 자체가 물리적으로 너무 컸다.
  4. 판매량 기대치가 너무 높았다. 2 년 째에 16000 대를 판매한 애플 II도 대성공이었다. 첫 해에 맥은 6 만대가 팔렸고, 이 역시 대성공이었다. 뉴튼은 첫 해에 10만 대가 팔렸지만, "실패"로 간주됐다.
  5. 오리지날 메시지패드의 필기인식 시스템을 문자보다 전체 단어 인식용으로 디자인한 것이 실수였다. 사람들이 필기체로 쓰리라는 포커스그룹의 데이터 때문이었다. 시스템이 실수를 저지르면, 오히려 엉뚱한 단어를 선택해서 비웃음을 샀다.
    더 안 좋은 일은, PDA 시장이 Grafitti로 완전히 옮겨갔다는 데에 있다. 뉴튼 그룹도 한 때 Grafitti로의 이주를 고려했다가 취소시켰고, 뉴튼 OS 2.0에서 실제로 필기인식을 고쳤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6. 애플은 좋은 데이터 싱크 솔루션을 제공하지 않았고, 써드파티용으로도 좋은 것이 없었다. 써드파티 개발사가 이를 고치기에 애플은 너무나 많은 비밀 정보를 숨기고 있었다. 1998년, DIL 싱크 라이브러리는 여전히 알파 버전이었다. DIL을 이용한 개발은 짜증날 정도로 어려웠다. 새로운 API를 개발했다가 미리 라이브러리를 몇 개 발표하고, 갑자기 포기한 다음에, 다시금 완전히 재시작하는 등, 애플의 행보가 엇갈렸기 때문이다.
  7. 무선 이더넷카드를 이용하려 하는 써드파티에게도 온갖 전자적인 문제가 있었다. 가령, Xircom 카드는 뉴튼 2000의 보통 배터리에 비해 너무나 많은 전력을 소모했다. 애플의 충전식 배터리를 사용해야 할 정도였다. 불행히도 무선 카드로는 한 두 시간 밖에 못 썼다. 배터리 자체도 모양이 이상했고, 애플은 외부 충전기를 만들지 않았다.
    케이스가 닫혔다고 주장할지 모르겠지만, 애플이 직접 우리와 만나서, 뉴튼 2000이 "자동개폐식(make or break)"이 될 것이라 말해줬었다. 우리가 사용하려 노력하고 있던 Wayfarer 시스템은 뉴튼 2000이 출하하기 훨씬 이전부터 애플의 도움으로 만들어졌다. (우리는 메시지패드 120용으로 뭔가 출하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중이었다.) 결국 우리의 소프트웨어 회사는 하드웨어 제품을 하나 만들었다. 뉴튼 2000용 배터리를 위한 외장 배터리 충전기였다.
  8. 시리얼포트가 없는 뉴튼 2000의 Newton Interconnect Port도 문제가 있었다. 시리얼을 써야할 경우, 시리얼 아답터를 갖고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언제건 누구나 (특히 영업사원들) 뉴튼 2000을 갖고 다니면 동글키를 잊기 일쑤였다. 게다가 애플은 Newton Interconnect Port용으로 아무 일도 안 했다. 전혀, 아무 것도 안 나왔다. 이런 쓸모 없는 디자인때문에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 했다.

Death by Impracticality
시어즈의 말이다.

"물론 애플은 정말 멋지고 유용하기까지 한 뉴튼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지금과는 달리 당시 애플 제품은 훌륭하긴 했어도 저마다 한 두 가지 종류의 치명적인 실수가 있어서, 실제로 쓰기가 어려웠다.

정말 사실인 사례가 많았다. 한 가지 떠오르는 사례가 바로 퀵테이크(QuickTake) 카메라다. 퀵테이크200을 사서 잘 썼지만, 이 카메라는 리튬 AA 건전지 네 개나 요구하였다. 이 건전지는 너무나 비쌌고, 퀵테이크는 딸이 사탕을 먹듯, 전기를 먹어치웠다.

90년대 애플은 '일회성' 기술과 제품을 많이 선보였다. 발표는 해 놓고, 마케팅도 없고, 후속 제품도 안 나와서 결국 사라지는 그런 제품이었다. Newton Bookmaker와, Virtual User, Apple Dylan, Macintosh TV 등 많은 제품이 그러했다.

1996년 정도에 구입한 애플 헤드폰도 집안 어딘가엔가 있다. 아이포드가 나올 때까지 사람들에게 이 헤드폰을 보여주면 다들 어리둥절해 하였다. 도대체 왜 애플이 헤드폰을 만든단 말인가? 특히나 매우 고가이고 기능도 별로 없으면서 저음질의 헤드폰을 말이다. 5 달러 정도면 훨씬 나은 헤드폰을 어디에서건 살 수 있었지만, 애플 헤드폰은 50 달러도 더 했다. 무슨 멀티미디어 구상의 일부였음을 확신하지만, 그저 벽에 걸린 단일 제품으로 팔려나갔다. Microcenter에서 그 제품을 본 누구나 이상하게 여겼으리라 확신한다. 도대체 쿠퍼티노는 무슨 생각일까 하고 말이다."

The Critical Shift
"애플이 요새 훌륭해진 이유는 내가 보기에 다음과 같다. 훌륭한 제품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단 출하가 되기 전에, 잡스가 사용자의 시각으로 검열을 하고, 실제로 사용해 본다. 그리고 이 제품이 어째서 실제로 유용하지 못할지를 꼼꼼히 따져본다.

누군가 아이포드를 보고 '어떻게 충전하지?'라든가, '얼마나 자주 충전해야 하지?', '음악은 어떻게 받지?', '음악은 어디서 받지?', '노래는 어떻게 고르지?'라고 물어보면, 답해야 한다. 그러다가 '실제로 이 제품을 쓸 수가 있겠소? 치명적인 오류는 있소? 실제로 사용은 하겠소? 문제는 해결했소? 다른 제품보다 이게 어디가 더 낫지?'라는 질문까지 나온다."

시어즈의 말을 보면, 애플이 멋대로 제품을 내놓는 회사에서 냉혹한 테스트를 거치는 기술 디자인 회사로 변했음을 알려준다. 유용성에 대한 사려 깊은 테스트 원칙은 오늘날 아이포드에 힘을 불어 넣어주는 전체적인 플랫폼 개발에도 쓰이고 있다.

이 플랫폼은 곧 아이포드와 관련된 전 기기로 확장을 거듭할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소비자 가전제품의 기존 제품을 돌아본 뒤, 애플이 어째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알아본다.

Next Article:
Device Problems In Search of a Solution

This Series
휴대폰과 VoIP 기술


온라인음악과 미디어


애플의 iTV



Put RoughlyDrafted Magazine on your Dashboard and be the first to see the latest articles! I appreciate blog links, social networking postings such as deli.cio.us, and readers who share articles via emails or newsgroups. Thanks!

What do you think? I really like to hear from readers. Leave a comment or email me with your ideas.

Newton Lessons for Apple's New Platform
__________________
FAQ
  Reply With Qu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