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Single Post
2006-11-30, 04:58 AM   #19
casaubon
Moderator
 
casaubon's Avatar
 
Registered: Sep 2001
My Mac: iMac 24" 3.06GHz
Posts: 2,400
오프라인
1990-1995, 게으른 공룡은 멸종한다

Platform Crisis: The Lazy Dinosaur

Wednesday, November 29, 2006

폐쇄적인 기술을 사용한 독자 개발, 그리고 오랜 기간동안 옛 기술을 지원하는 것은 플랫폼 위기를 게으른 공룡으로 만들어버렸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세계 기후 변화에 따라 자신을 어떻게 잃어갔는지 알아보자.



"플랫폼의 역사, 그리고 그 대결"은 플랫폼을 새로 발족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플랫폼을 유지하는 일은 또 얼마나 고된지를 알려주었다. 본 글에서는 컴퓨팅 플랫폼의 역사적인 궤적(軌跡)과 함께, 누가 왜 이겼는지, 누가 왜 졌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컴퓨팅 환경이 언제나 변하기는 하지만, 기본 원칙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으며, 애플의 레퍼드나 마이크로소프트의비스타와 같은 미래 개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전 기사:

1990-1995: Platform Crisis: The Lazy Dinosaur
90년대 초기를 거치면서, 애플은 신기술에 대한 확실한 방향을 잃었다. 애플에게 아이디어가 없었던 것은 분명 아니다. 그저 그 아이디어를 새로이 팔릴 만한 제품으로 바꾸는 데에 초점을 맞추지 못했을 뿐이다.

애플에게는 돈이 많았고, 유일하게 살 만한 주류 그래픽 웍스테이션으로서 매킨토시 컴퓨터의 고마진에서 나오는 수입이 풍부하였다.

1990년, 애플은 세계적으로 톱이었다. 개인용 컴퓨터 시장점유율은 9%에 달했다. 제일 수지 좋은 시장을 점유했으며, 판매량과 시장점유율도 올라가고 있었다.

애플은 데스크톱 출판과 그래픽 디자인에 있어서 급성장을 올렸고, 퀵타임 기반의 멀티미디어 개발로 다시 한 번의 도약을 준비중이었다.

시스템 7상에서의 작업을 끝내면서, 애플은 Pink에 미래를 묘사하였다. 핑크는 매킨토시 상에서 NeXTSTEP이 제공하는 모든 기능을 제공하기로 한 일종의 허풍이었다.

애플은 넥스트와 약속을 맺어서, 넥스트를 하이엔드 시장으로 몰아 넣었다. 이로써 애플은 판매망을 구축할 시간도 벌게 된다. 90년대 애플의 계획이란 윈도우즈 3.0을 돌리는 PC에 맞서서 더 저렴한 맥을 제공하는 것, 그것으로 시장점유율을 올리자였다.

더 저렴한 맥을 제공하기 위해, 애플은 과거로 다시 돌아가서 옛날 기술을 끄집어 내어 1000 달러에서 2000 달러에 이르는 맥을 판매하였다. 당시 대부분의 소비자용 PC와 비슷한 가격이다.

하이엔드 PC와 하이엔드 맥의 가격은 동일했지만, 윈도우즈가 맥보다 너무 뒤쳐진 나머지, 4년 전의 맥도 로우엔드에서는 충분히 경쟁을 벌일 만 하였다.

1994: An Unanticipated Crisis
1994년 당시 애플은 너무나 많은 제품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고작 몇 년 전에 치명적인 기술 위기에 처한 회사로서 그러한 앞서가는 생각이나 발명을 내놓으리라고는 기대를 하지 않고 있던 차였다.

사실 정말로 흥미로운 기기를 만드는 얼마 안 되는 회사 중 하나가 애플이었다. 가령 애플은 새로이 Newton 핸드헬드 컴퓨터를 선보였었다.

게다가 당시는 소프트웨어 개발사들이 시한을 으레 어기려니 하던 시기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1991년, Cairo를 발표한 이후, 매년마다 계획을 반복적으로 연기시켰다.

마이크로소프트의 Cairo는 애플 Pink에 대한 대응일 뿐이었다. 1989년의 넥스트스텝에 비견할 만한 경쟁력 있는 운영체제를 곧 제공하겠다는 미래지향적인 약속으로 가득 찬 발표였다.

1994년 5월,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의 짐 알친(Jim Allchin)은 윈도우즈 95의 완성을 위해 Cairo를 일 년 더 연기시킬 것이라 발표했었다. 그리고 동년 말, Cairo는 1996년으로 연기됐고, 윈도우즈 95의 발표 또한 95에 어울리잖게 연기되었었다.

그동안 맥 잡지들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약속에 비해 어떻게든 나올 가능성이 더 높아 보였던 애플 Copland가 약속한 기능 내용과 사진에 대한 기사를 가득 내보냈다.

Copland는 맥의 주도권을 유지하리라 약속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기능에 맞서면서, 보다 새롭고 멋진 외양으로 이뤄진 운영체제가 될 터였다.

1985년부터 1991년까지 애플이 보인 빠른 맥 개선으로 미루어 볼 때, 애플이 시스템 7의 승계자를 즉시 내놓지 못하리라는 두려움은 없었다.

게다가 고작 3년 밖에 안 지났었다. 애플은 시스템 소프트웨어의 소규모 업데이트를 정기적으로 벌이고 있었고, 퀵타임 2.0이나 PowerTalk, QuickDraw GX, QuickTime VR, QuickDraw 3D도 마찬가지였다.

Copland Backup Plans
애플은 자사 고유의 유닉스 배포본에 맥 데스크톱환경을 통합시킨 A/UX도 판매중이었다. A/UX는 주로 맥 하드웨어를 유닉스가 필요한 정부기관에 판매하기 위한 운영체제였다. 몇 년 후, 애플은 맥용 리눅스 오픈소스 배포본인 mkLinux도 선보인다. 이 mkLinux는 Taligent에서 개발용으로 사용할 IBM의 Workplace OS와 유사한 커널디자인을 갖고 있었다.

탈리전트 자신은 가능성이 엿보이는 계획이었다. 애플이 핑크를 분사시켜서, 탈리전트를 IBM과 협력시켰기 때문이다. 게다가 PowerPC에 대한 업계 전반의 지원 발표로 인해, 탈리전트가 미래형 차세대 운영체제를 애플에게 안겨다주리라는 기대가 늘어났다.

What's Wrong with System 7?
PowerPC 자신도 기존의 맥 시스템 7을 훨씬 빠르게 돌릴 것을 약속하였다. 즉, 애플로서는 당시 모토로라 68040과 인텔 486 사이에서 일어난 메가헤르츠 경쟁에 있어서 편안한 주도권을 행사할 것이었다.

PowerPC의 도움을 받은 맥 시스템 7은 못생기고 버그도 많은 윈도우즈 95에 비해 여전히 한참은 앞서 보였다. 게다가 다음 해 말까지 나올 계획도 없었다.

더군다나 애플은 맥 시스템 7 소프트웨어 시장을 확장시킬, 맥 에뮬레이션 환경도 완성시켜 놓았다. 맥용으로 나와 있는 범용 상용 데스크톱 애플리케이션을 쓸 수 있도록 유닉스 웍스테이션 사용자들을 고려한 처사였다.

MAE(Macintosh Application Environment)는 Sun과 HP Unix 웍스테이션에서 전통적인 매킨토시 애플리케이션을 돌리도록 해 주는 소프트웨어 에뮬레이션이었다. 또한 MAS(Macintosh Application Services)는 IBM AIX나 PowerOpen Unix 계열의 X Window 안에서 클래식과 PowerPC용 네이티브 맥 애플리케이션 둘 모두를 돌릴 수 있는 서비스였다.

그런데 맥 사용자들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는 1990년까지 완전히 하나의 농담거리였다. 게다가 당시 새로 나온 윈도우즈 3.0 또한 우아한 맥 데스크톱에 비해서 한참 뒤떨어졌었다.

애플은 여러가지 기술 방향을 장난칠 정도의 여유를 가진 듯 하였다. 부자 회사 애플에게는 은행에 수 십억 달러, 또한 수 십억 달러의 수입도 있었다.

Sculley’s Legacy
90년이 시작했을 때는 앞으로 그 생존력을 의심받을 정도의 상황까지 처하게 될지는 누구도 몰랐었다. 그만큼 애플은 편안한 상태였다. 1983년 이후로 애플을 이끈 존 스컬리가, 자신이 펩시 캔을 여전히 팔고 있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애플은 잘 나갔었다.

스컬리 휘하의 애플은 고가의 광고 캠페인 값을 대기 위해 오리지날 맥의 가격을 인상시켰고, 후에는 맥 브랜드를 쿼드라, 센트리스, 퍼포마 등, 여러가지 겹치는 브랜드로 나누기까지 하였다. 소비자들은 혼란스러웠다. 이는 제작 비용을 상승시키고, 이윤을 줄였다.

일반적으로 스컬리의 애플은 야망에 차있긴 하되, 비현실적인 기술 계획을 꾸준히 내놓고 있었다. 시장에서는 먹히지 않을 가격대로 터무니 없는 목표를 둔 것이었다. 팔려나가는 맥은 거의 정체되어갔고, 반면 PC 시장은 급속도로 자라나기 시작하였다.

동료 공화당원, HP의 칼리 피오리나(Carly Fiorina)의 전조를 보이는 듯, 스컬리 또한 애플 일보다는 자신의 정치적인 일 홍보에 더 연관하기 시작하였다. 스컬리는 애플을 자동조정으로 놓아두었고, 비행기가 어두운 구름대로 들어갈 때조차 승무원들과 잡담에만 열중하였다.

Scrambling For Straws
맥 판매가 저조해지고, CEO도 빌 클린턴에게 한 눈 팔던 시절, 애플 이사진은 스컬리의 축출을 결정내린다. 그 후임자는 여전히 옛날 애플의 옛날 사람인 마이클 스핀들러였다. 스핀들러는 스컬리가 해 놓았던 의문스러운 결정 여러가지의 실행에 책임이 있다. 맥의 하위 브랜드가 빚어낸 혼란도 여기에 포함된다.

스핀들러는 기술적인 선구안이 거의 없는, 전략 마케터일 따름이었다. 그는 애플에게 진짜 문제가 닥치기 이전에, 애플이 가장 잘 팔릴 만한 회사가 되기를 바랬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이미 일어나고 있던 일들을 지휘하면서, 대부분 균형을 유지하였다.

스컬리 하에서 스핀들러는 의미 있는 비용 절감을 할 수 없었다. 스컬리가 애플에서 진행중인 온갖 비현실적인 프로젝트를 방어하였기 때문이다.

1993년, 스컬리의 축출 이후에도, 스핀들러의 비용 절감 노력은 엔지니어나 관리자들로부터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였다. 그들이 이대로를 외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컬리가 승인 내린 여러가지 프로젝트 때문에 스핀들러의 애플은 붕 떠버렸다.

  • 1993년, 맥에 텔레비전 튜너를 붙인 맥, Macintosh TV
  • 1993년, Newton 핸드헬드 컴퓨터
  • 1994년, PowerPC 프로세서로의 이주
  • 1994년, iTV 셋톱박스의 실험, 테스트시장에서만 출하됨.
  • 1995년, Pippin과 그 외 맥 클론
  • PowerTalk, QuickDraw GX를 포함하는 사라져버린 여러가지 개발 노력

Failed Strategies
인상적인 기술을 통합시킨 뉴튼은 가격과 성능비 균형을 못맞춘 바람에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기능은 많되, 비용이 너무 비쌌던 까닭이다. 뉴튼 이전에도 애플은 또다른 PDA 프로젝트를 시작했었고, 이 프로젝트는 결국 General Magic으로 분사가 되었지만, 뉴튼과 제너럴매직 둘 다 서로간에 경쟁을 벌이다가 운명을 오히려 더 재촉해버렸다.

맥 라이센스 반대, 그리고 80년대 후반 때의 프리미엄 가격을 고집한 쟝 루이 가세는 윈도우즈 PC가 심각한 경쟁을 벌이기 이전 맥 시장의 성장 잠재성을 크게 제약시켜 버렸다.

가세도 축출이 되었지만, 가세가 구축한 정책을 한꺼번에 뒤바꾸기에는 상황이 더 요원했다. 특히나 윈도우즈 95가 나온 뒤로는 Pippin 하드웨어 디자인 라이센스나 다른 맥 클론 사업도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하였다.

더군다나 더 많은 시장점유율을 올리기 위해 시장에 뿌리려 노력했던 더 저렴한 맥은 오히려 애플의 재정을 압박하였다. 맥을 팔 만한 신뢰성 있는 곳이 없어서였다. 또한 왜 맥을 구입해야 할지를 설명해 주는 광고 캠페인도 부재하였다.

1995: Apple's Second Wind
애플은 공룡이 되어갔다. 급성장 이후 10년, 애플의 크기 자체가 이제 문제가 되었다. 자신의 덩지때문에 변화와 기민한 대처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크기와 더불어, 애플 제품에는 특정한 오만함이 넘쳐났다. 모두 다 비싸보였으며, 별 실용가치도 없고, 경쟁력도 없어 보였다.

통제 불가능한 Copland 프로젝트와 Taligent 재앙도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러나 진짜 문제점은 맥을 더 많이 팔 수 없다는 데에 있었다. 소비자들이 맥을 사야 할 이유가 점차 사라져가고 있던 상황이다. 윈도우즈 95와 싸우기 위한 새로운 운영체제가 절실한 것도 아니오, 그저 PC에 대항할 만한 경쟁력 있는 가격에 매력적인 제품이 있어야 했다.

PowerPC를 한 때의 알탈로 간주하는 이들도 있지만, PowerPC 덕택에 애플은 맥을 팔 만한 이유를 그나마 제시할 수 있었다. 파워맥을 새로 내놓자 판매량과 성장도 다시금 뛰어 올랐으며, 더 저렴한 IDE CD-ROM과 하드드라이브를 더 우아하지만 고가의 SCSI 드라이브 대신 장착시키는 등, 애플의 노력도 계속 이어졌다.

덕분에 1995년 맥 판매량은 450만 대로 늘어났으며, 당시 애플 수입의 절반 이상을 대표한 미국 시장에서 애플 점유율은 11.5%에 달하였다.

그런데 1995년 동안, 스핀들러는 여러 회사(IBM과 필립스, Sun도 포함된다)와 애플 인수 협상에 분주했다. 여전히 돈을 상당히 벌고 있는데도, 스핀들러는 애플을 최고가에 팔아넘김으로써 애플의 회생을 자본화시키려 하였다. IBM이 한 때 최고가를 제안하긴 하였지만, 스핀들러는 더 받을 수 있다 오판하였다.

1996: Crisis Explosion
하지만 그 이후 10년 동안 애플은 1995년 만큼의 성적도 다시금 올릴 수 없게 된다. 부분적으로는 윈도우즈 95가 야기한 새로운 경쟁때문이기도 하지만, 애플이 야심차게 벌이던 클론 사업이 맥 판매를 오히려 떨어뜨려서가 더 컸다. 이는 하이엔드의 애플 이윤을 잡아 먹었다. 또한 Sears의 선반 위에는 안 팔리는 (그리고 성능도 뒤떨어지는) 맥 퍼포마가 그득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즈 95가 그 해 말에 나왔고, 1996년 여름에는 윈도우즈 NT 4.0도 나왔다. 애플에게 상당한 시장점유율과 팔 만한 좋은 제품이 있다면야 문제될 일이 없었다. 그러나 제품 인식은 정말 문제였다. 일반인들은 애플이 이제 내세울 것이 없나보다라 여겼다.

DOS 상에서 돌아가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즈, 그 윈도우즈에 대한 대량의 광고캠페인때문에, 언론은 윈도우즈 95에 광분했고, 애플 코플랜드의 소식을 기다렸다.

그러나 애플의 코플랜드 시스템 8과 Gershwin 시스템 9는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윈도우즈 95가 일으킨 PC 판매 증가는 이제 폭발적이었다. 이 때에 애플은 대단히 현명하시게도 미래 맥용 운영체제 계획이 현재 없다고 발표해버렸다.

파워맥 2세대가 대부분의 PC보다 더 빠르고, 깔끔한 PCI 구조를 제공했건만, 그런 발표는 애플의 미래 전망에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당연히 1996년 매출은 급감한다.

새 파워맥에 거의 광고가 없던 것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게다가 클론업체들도 애플을 공격하던 때였다.

Dazed and Confused
더 심각한 문제는, 애플의 다른 소프트웨어 프로젝트가 모두 실패했다는 데에 있다. QuickDraw GX는 정지하였으며, PowerTalk도 실패로 끝났다. 향후 퀵타임 계획도 불확실했다. 업데이트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맥 개발자들은 애플의 무능과 분명한 비전 제시 부족에 대해 좌절하기 시작했다. 그 모든 프로젝트의 실패 끝에, 애플은 관심을 다른 데에 쏟고 있었다. 이 중에는 OpenDoc도 포함된다.

이듬해, 애플이 BeOS 인수 협상을 시작했을 때, 애플 내부 개발력이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재앙에 휩싸였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안정적인 플랫폼 제공은 커녕, 향후 계획도 못세우는 회사를 위해 도대체 왜 개발을 해야 하는가?

BeOS가 흥미로운 인터페이스와 훌륭한 데모를 보여주기는 하였지만, 당시 BeOS는 인쇄도 할 수 없었고, 다중 사용자 환경도 아니었으며, 소프트웨어 기반도 전혀 없었다.

애플이 개발을 시작할 기반 운영체제를 찾어야 하고, 그 상대로 BeOS를 선택했더라면, 분명 큰 문제에 휩싸였을 것이다.

게다가 썬이 애플을 인수하리라는 루머가 쏟아져 나왔다. 썬은 뉴튼의 인수에도 흥미를 나타냈다고 알려졌었다.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Larry Elision)은 애플을 인수하여 맥을 네트워크 컴퓨터로 활용하려 하였다.

그동안의 리더이자, 돈도 많던 애플이 어떻게 자기 삶을 구걸하는 처지에까지 몰리게 되었을까?

The Two Edged Sword of Lazy Dinosaurism
수 백만 달러 어치의 연구를 지휘하는 엔지니어와 관리자의 입장에서 보면, 애플의 종말조차 유쾌했다. 실험적인 연구에 수많은 돈을 날리는 셈이었다.

문제는 애플이 흥미로운 것을 전혀 만들 수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통할 만한 제품을 유지할 수 있는 기세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데에 있었다. 닷컴 시대에서 살아남았다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수 백만 달러를 순식간에 날리고 나면 뭔가 교훈을 얻는 법이다. 중요한 점은 다음과 같다. 그 돈을 쓸 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닷컴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였다.

옛날 옛적의 게으른 공룡처럼, 닷컴은 미래에 대해 별 생각 없이 뭔가 있어 보이는 환경에 그냥 뛰어들었다. 그러자 기후가 바뀌자, 생존이 불가능함을 깨달은 것이 닷컴 붕괴다. 새로운 먹이가 없으면, 그리고 변화에 재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면, 그저 죽거나 묻힐 따름이다.

심각한 개입 없이는 애플도 pets.com이나 Webvan처럼 종말을 맞이할 판이었다. 애플에게는 자신이 빠져들었던 덫에서 빠져나갈 탈출 전략이 전무하였다. 이제는 돈줄마저 말라가기 시작했다.

당연히 아직은 수 십억 달러 어치의 현금과 상당한 수입액이 있었지만, 1996년 당시 애플 투자자들은 뉴튼을 팔아치우기 위한 빈둥대는 경영 대신, 결정적인 행동을 요구하였다.

Inability to Develop New Markets
Copland 때문에 휘청거린 것이 아니었다. 애플의 진짜 문제점은 팔 만한 물건을 못만들어내는 무능력이었다. 새로운 OS에 대한 소리 높은 외침은 그저 현상을 가리는 것에 불과했다. 소프트웨어로 버는 수입이 거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애플에게는 파워맥 판매가 더 절실했으며, 시장화시킬 만한 제품을 따로 찾아내야 했다.

넥스트가 애플을 통제하게 된 이후, 똑같은 시스템 7을 탑재한 새로운 맥이 더 잘 팔려나갔으며, 2000년 당시 애플의 판매 손실을 판매 증가액이 드디어 능가하였다. 새로 나온 맥오에스 8과 9 모두 시스템 7에서 상대적으로 마이너 업데이트만 한 버전이었다.

애플의 새 운영체제인 맥오에스텐은 2002년 이후에나 실질적으로 팔리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애플은 팔 수 있는 제품을 임시적으로라도 팔아서 하향세를 상승세로 탈바꿈시켰다. 바로 1998년의 아이맥이 그러했고, 맥오에스의 소매판매본, 그리고 맥 판매를 도운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바로 그 주역이었다.

The Shadow Stalker
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의 행동은 10년 전 애플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거대한 양의 돈을 쌓아두고 있으면서 시장 통제를 통해 수입도 계속 거둬들이고 있지만, 새 시장 개척에 실패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이윤을 올리는 곳은 세 곳이다. 서버 제품군과 데스크톱용 윈도우즈 판매, 그리고 오피스의 판매이다. 1995년의 애플 상황과 대단히 유사하다. 여전히 수 십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최초로 심각한 경쟁에 직면하게 된다는 사실을 마이크로소프트는 완전히 의식 못한 채로 행동하고 있다.

독자적이고 폐쇄적인 플랫폼 개발에 대한 의존, 그리고 옛날 기술 지원으로 인해, 게으른 공룡으로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위치는 이제 기업에서 리눅스의 공격, 데스크톱용 프리미엄 PC를 향한 애플 소매 스토어의 맥 공격을 받고 있다.

Stock Buyback Starvation
최근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 주식을 스스로 구매하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이제는 투자에 있어서 선택이 없다는 표시다. 달리 말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거나 새 시장을 개척하기보다는 투자자들에게 현금이나 되돌려주겠다는 의미다.

눈더미에 갇혀서 배고파하는 공룡처럼, 마이크로소프트는 현재 배고파하고 있다. 자기의 힘으로 새 음식을 찾아 나서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자신을 먹어치우고 있다. 쉽게 얻을 수 있는 새 음식이 없다는 사실을 마이크로소프트도 알고 있다. 즉, 마이크로소프트는 죽어가고 있다.

이제 플랫폼 위기가 하나 남았다. 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는 예전의 애플이 그랬던 것처럼 노상강도(robber baron)화 되었다.

Next: Platform Crisis: Robber Baron Piracy

This Series

Tech: The Rise and Fall of Platforms 플랫폼의 역사, 그리고 그 대결

This content has been censored on Digg. Digg ranks and displays online news for tens of thousands of Internet users. The system purports to be openly run by its users, who vote for submissions in order to raise the profile of online content.

However, Digg is sponsored by Microsoft, and has signed sponsorship agreements that limit freedom of speech regarding Microsoft and its products. Microsoft also sponsors online users to post astroturf and dispute accurate information that is in any way critical of the company and its products.

Recently, a small minority of anonymous Digg users have worked to censor anything from RDM posted to Digg by any of its users, and harrass anyone on Digg supporting RDM.

Digg's official response has been to ban all RDM articles, and delete records of them on its site, along with all user comments involving Microsoft and the censorship and sponsorship of the Digg system. When asked to review its censorship of RDM, Digg responds by saying it will continue to ban all RDM articles because it does not want to receive ongoing complaints from users who do not like RDM content. You can balance the feedback Digg receives by letting it know what you think about censorship and slanted information sources pretending to be legitimate and open.

You can join over 590 readers who have petitioned Digg to stop its censorship of RDM articles and request that the site act impartially, regardless of its sponsorship. You can also petition Apple to build a content system that provides access to information that is not controlled and manipulated by a monopolist.

Put RoughlyDrafted Magazine on your
Dashboard
and be the first to see the latest articles! I appreciate blog links, social networking postings such as deli.cio.us, and readers who share articles via emails or newsgroups. Thanks!

What do you think? I really like to hear from readers. Leave a comment or email me with your ideas.

Platform Crisis: The Lazy Dinosaur
__________________

casaubon 님께서 2008-01-28 07:00 AM 에 수정하셨습니다..
  Reply With Qu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