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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3, 08:29 PM   #2
casau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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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애플 소생시키기

How CPR Saved Apple

Monday, October 23, 2006

"과거 애플은 왜 실패하였나"는 90년대 애플이 허덕였던 이유가 전체 시장에서의 시장점유율이 낮아서라는 통념에 도전하고, PC 시장점유율이 오히려 애플 경영진들의 PC 업체(혹은 마이크로소프트)를 따라가려는 진짜 문제를 가린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그들은 실제의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90년대 동안 애플이 했던 노력은 시장점유율을 늘리는 데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진짜 중요한 문제를 외면해버리고 말았다. 잠재적인 새 소비자들에게는 새 맥을 살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기존의 맥 사용자들 또한 윈도우즈로 갈아탈 이유가 충분했다.

하드웨어가 얼마나 저렴하건, 컴퓨터가 얼마나 깔리건 간에, 죽어가는 맥 플랫폼의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하였다. 잘못된 문제를 고쳐 보려는 애플의 시도 또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맥에 심장이 있어서 멈췄다면? 상황이 그러했다. 애플 경영진은 심폐기능소생법(CPR)을 택하기보다는 하임리크 구명법(Heimlich Maneuver)을 택하였다.

Identifying the Real Problem
문제점들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제일 중요한 해결책이다. 고통스러운 기술 지원을 경험해 봤다면, 이 점을 잘 아실 것이다.

1995년, 애플의 기존 경영진은 맥오에스의 지지부진한 개발이 맥 플랫폼을 옭맨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비록 1994년의 인상적인 하드웨어 플랫폼의 이주가 있었지만(한계에 다다른 680x0 프로세서에서 현대적인 PowerPC로의 이주), 애플은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비슷한 진보를 거두지 못하였다.

현대적인 운영체제가 없다면, 어떤 하드웨어가 나오더라도 맥을 새로 사게 하도록 설득시키는 데에 상당한 애로사항이 따른다.

이 문제는 새로 나타난 문제였다. 80년대에 걸쳐 애플은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빠르게 진보시켜 나아갔다. 하지만 1991년에 나온 시스템 7 이후로 애플은 사소한 문제해결만 해 왔었고,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의 전반적인 안전성과 품질도 상당히 떨어졌다. 91년 이후 5년 정도는 거의 셰어웨어 애플리케이션을 맥오에스로 합친 수준에 불과한 업데이트가 다수였다.

애플의 Advanced Technology Group이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제시하였지만, 애플은 이 아이디어를 맥 구매 이유로까지 끌어올리지는 못하였다. 당시 애플은 소프트웨어 기술을 잔뜩 개발만 하는 또다른 PARC가 되어가고 있었다.

The Case of the Dead Platform
"1990-1995: 벽에 부딪힌 맥"에서 언급했듯, 애플은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이제 10년이 된 맥에는 앞으로의 개발을 위해 완전한 개수가 필요했다. 하지만 어떤 전략이 최선일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교체? 수리? 애플에게는 여러가지 프로젝트가 있었다.

  •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을 선보이는 위험을 감수한다. 코드명 Jaguar.
  • 기존의 맥 플랫폼에 상당히 새로운 업데이트를 하여, 맥 플랫폼을 완전히 개수한다. 코드명 Copland, Gershwin.
  • 기존의 맥 사용자 환경을 유닉스상으로 이주시킨다. A/UX와 MAE.
  • 맥 플랫폼용으로 IBM과 함께 완전히 새로운 개발 환경을 조성한다. 코드명 Pink와 Taligent.

그런데 위 프로젝트 중에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할 해결책은 전혀 없었다. 그래도 위 프로젝트는, 윈도우즈 PC는 구입해도 될 만한 이유가 충분한 반면, 맥을 계속 구입해야 할 이유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맥의 진짜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한계에 다다른 운영체제와 지지부진한 사용자 환경은 맥 플랫폼의 동맥을 죄어갔고, 심장에서 멈추기도 하였다. 시장점유율도 올리지 못하였다. 진짜 문제는 애플리케이션의 부족이었다.

The Lifeblood of a Living Platform
애플리케이션은 플랫폼의 피다. 초창기 맥에는 호기심이 전부였지만, 데스크톱 출판이 등장한 후, 맥 플랫폼은 역동성 있는 수 십억 달러 짜리 플랫폼이 되어갔다. 두 번째 바람이었던 멀티미디어도 옳았다. 멀티미디어 바람은 퀵타임을 등에 없고 맥 플랫폼을 90년대에도 유지시켜 주었다.

그 외에 인상적인 새 운영체제 기술이 없는 사이, 퀵타임은 애플에게 제 2의 핏줄이었다. 퀵타임이라면 맥을 살 만한 부분적인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맥 GUI와 마찬가지로 곧 마이크로소프트와 PC의 복제에 시달리게 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처음에 마이크로소프트 Video for Windows로 퀵타임을 공격하였다. 퀵타임의 멀티미디어 콘텐트 제작과 편집 아키텍쳐가 되는 대신, Video for Windows는 단순한 재생 시스템에 불과했다. 물론 애플이 퀵타임을 윈도우즈로 포팅하였지만, 퀵타임의 핵심 개발 플랫폼은 맥이었다.

이때문에 멀티미디어 콘텐트 제작은 맥으로 이뤄져 있었고, 애플은 이 분야에서 상당한 기세였다. 90년대를 통틀어 마이크로소프트의 멀티미디어에 대한 기여는 거의 허풍에 의존했었다. Surround Video와, Chromeffects, 그리고 크로스플랫폼 Active Movie가 거론됐지만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애플은 실수를 저질렀다. 퀵타임을 비밀로 유지한 것이다. 실용적인 해결책으로 멀티미디어에 대한 맥의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애플의 광고는 실패하였다. 90년대들어 애플의 주도가 떨어지기는 하였지만, 퀵타임에 콘텐트 제작을 위한 좀더 복잡한 아키텍쳐를 덧붙이면서, 맥은 표준형 PC보다 오디오와 비디오 통합에 더 좋았다.

그러나 맥의 심장은 여전히 맘춰져 있었으며, 퀵타임은 역시 핵심 운영체제의 죽음때문에 같이 죽을 판이었다. 퀵타임만으로는 버티기 힘들었다.

CPR for a Dying Platform
1996년 넥스트를 인수한 이후, 애플의 개발 난맥상은 소비자나 개발자들의 생각 이상으로 정말 위기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Copland는 이미 허풍으로 끝나버렸으며, 홍보만 요란했던 NewtonPowerTalk, QuickDraw GX, QuickDraw 3D, HyperCard 3.0, QuickTime interactive에는 기약이 없었다.

모두들 기술적으로 상당히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기술적으로나 판매성으로나 무력했다. 너무 오래 끈 개발 일정도 한 몫 하였다. 즉, 이 모든 맥 기술이 근간을 서서히 무너뜨리고 있었다. 다름 아닌 맥 오에스다.

스티브 잡스는 교묘히 기존 CEO, 길 아멜리오(Gil Amelio)와 실패한 회사의 통제권을 두고 다투었다. 그리고는 새로운 경영팀과 관리자들을 이끌고 애플에 대해 대대적인 외과시술을 개시하였다. 이 수술로 유지가 불가능하거나 제공이 불가능한 기술을 포기하였다.

이것이 바로 "steved"이다. 실용적이지 않거나 무능하여 짤린 프로젝트에 대한 애플 내부의 새 유행어이다. 자신들의 애완용 프로젝트를 "steve"시키자, 불만을 품은 중간급 관리자와 쓸데 없는 프로젝트에 투입된 인원들이 무더기로 애플을 떠났다.

Open Heart, Proprietary Bypass Surgery
새 애플은 지방흡입술을 거쳐, 죽어가던 기술 조직에 좀 더 유지 가능하고 개방된 대안을 마련하였다.

애플은 핵심 맥오에스를 이제 넥스트의 입증된 마흐-BSD 커널에 기반을 둔 현대적 운영체제로 교체하였다. 이 운영체제는 선점형 멀티태스킹과 보호메모리를 제공하였다.

덕분에 POSIX가 맥오에스텐의 핵심 시스템 API로 들어가, 리눅스와 BSD를 포함하여 다른 POSIX 플랫폼으로부터 쉽사리 코드포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20년 된 맥오에스 코드 코어가 이제 세계에서 제일 진보된 네트워킹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BSD로 교체된 것이다.

7년 된 퀵타임은 당시 버전 2에서 지지부진하고 있었다. 이제 퀵타임도 정리를 하여, 앞으로 퀵타임도 핵심 운영체제에 들어가게 되었다. 게다가 1998년, 3.0 이후 거의 매년마다 퀵타임 업데이트도 이뤄졌다.

오래된 QuickDraw와 QuickDraw 3D도 교체 대상이었다. QuickDraw는 완전히 새로운 PDF 모델에 기반을 둔 Quartz 2D 드로잉시스템으로, 지나치게 공들여서 독점 코드 범벅이 된 QuickDraw 3D는 훨씬 더 표준화된 OpenGL로 바뀌었다.

애플은 애플과 넥스트에서 나온 기술 자산을 정리하여 새로이 통합 개발 환경을 선보였다. 이 환경은 이미 널리 쓰이고 있던 맥 API를 포함시키면서 넥스트에서 나온 객체지향 프레임웍도 이용하였다.

거의 5년에 걸친 개발 끝에, 맥오에스텐이 마침내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애플은 맥 플랫폼을 죽이고 있던 기술적인 문제만을 상당수 해결했을 뿐이었다. 애플리케이션의 문제는 여전했다. 널리 퍼져버린 윈도우즈 대신에 맥을 고를 만한 이유가 있는가?

Stumbling onto a Killer Fix
10년에 걸친 쇠퇴였다. 핵심 운영체제를 최고의 플랫폼으로 되살리는 데에만 수 년이 걸렸다. 하지만 이렇게 새로와진 현대적 시스템을 갖춰도 애플에게는 맥 판매를 늘릴 뭔가가 아직 부족했다. 애플리케이션이다.

현대화된 하드웨어상의 새로운 운영체제는 기존 맥 사용자들에게 업그레이드할 만한 이유는 제시했지만, 맥 시장의 확대화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애플이 시행한 회복 계획이 몇 가지 있었지만, 애플에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 것은 한 우연한 사건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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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CPR Saved Ap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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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aubon 님께서 2007-01-01 06:27 AM 에 수정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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