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1995: The Rise of Windows NT & Fall of OS/2
Saturday, September 9, 2006
"플랫폼의 역사, 그리고 그 대결"은 플랫폼을 새로 발족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플랫폼을 유지하는 일은 또 얼마나 고된지를 알려주었다. 본 글에서는 컴퓨팅 플랫폼의 역사적인 궤적(軌跡)과 함께, 누가 왜 이겼는지, 누가 왜 졌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컴퓨팅 환경이 언제나 변하기는 하지만, 기본 원칙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으며, 애플의 레퍼드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비스타와 같은 미래 개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난 기사:
- 1980년부터 1985년까지의 8비트 플랫폼: 애플II, III, CP/M, IBM PC, DOS
- 1985년부터 1990년까지의 16비트 그래픽 컴퓨팅: 맥, 애플IIGS, Commodore Amiga, Atari ST, NeXT
- 1990년부터 1995년까지, 새 플랫폼을 향한 질주: DOS를 윈도우즈로, 혹은 OS/2로 교체하려는 IBM과 마이크로소프트의 노력
- 1990년부터 1995년까지, 벽에 부딪힌 맥: 맥을 업데이트시키려는 애플의 어려움
- NeXT와 Be, 그리고 Mac PC: 맥의 왕좌를 둘러싼 도전자들
The Rise of Windows
80년대 후반, 윈도우즈 2.0을 둘러싸고 애플은 디지탈리서치의
GEM/1과 HP의
NewWave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고소하였다.

거의 맥 데스크톱을 GEM/1로 복제하였던 디지탈리서치는 PC 버전을 바꾸기고 동의하였지만, 원래의 GEM/1은
Atari ST에서 수정이 안된 채로 쓰였다. 하지만 애플은 아타리를 경쟁자로 여기지 않았다. 애플이 PC 제품에 대해 법적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애플의 소송에서 애플이 승리한 부분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승리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승리를 잠시 멈춰줬을 뿐이었다. 현실적으로 애플의 소송은 오히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요새를 든든히 다져주는 데에 일조(一助)하였다.
마치 항생제라도 먹이는 것처럼, 애플의 법적 소송은 윈도우즈에 대한 경쟁을 억눌러버렸다. 그대신 마이크로소프트가 남아있는 유일한 경쟁자라는 인식만을 심겨주었다.
"룩앤필" 소송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독점을 막지도 못하였다. 애플 CEO,
존 스컬리가 맥의 주요 기능 대부분을 초창기때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라이센스해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마이크로소프트는 맥용 오피스 소프트웨어 개발을 멈추겠노라고 협박하기도 하였다.

스컬리가 맥 인터페이스를 포기해버리는 바람에, 애플은 맥환경을 특허화시키지도 못한 상태였다. 따라서 법정은 애플이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노라 판결내렸다. 오히려 그 소송은 두 회사간에 스스로 해결해야 할 계약서상의 분쟁일 뿐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거의 10년이 걸렸다. 잡스가 1997년, 애플에 복귀하고나서, 마이크로소프트와 담판을 지은 뒤에서야 해결이 났기 때문이다. 그동안 애플과 애플 지지자들은 자기만족만을 해야 했으며, 윈도우즈에 대해 씁쓸한 감정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는 애플 없이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직접 경쟁을 벌여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Apple Takes a Nap
스컬리가 있을 동안 애플은 엔지니어링보다는 마케팅에 주력하였다. 즉, 역동적이면서 뭔가 생산을 했던 잡스의 회사가 이제는
제록스 PARC처럼 실험적인 연구나 일삼는 느긋한 곳으로 바뀌어져버렸다. 아니, 정확히 PARC처럼 애플은 이제 이윤과 상관 없는 연구개발 씽크탱크의 대장이 되어버렸고, 다른 기업들은 모두 자유로이 아이디어를 가로채갔다.

스스로 그래픽 데스크톱의 주도에 나서는 대신, 90년대 초반 애플은 "진보적인 기술"을 갖고 노는 정도였으며,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즈에 심으려 애쓰는 기능을 이미 갖고 있다는 식으로 안주(安住)하였다. 이는 애플에게 있어서 재앙적인 태도였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생산성도 오르고 했기 때문에 그래도 되는 것처럼 보였다.
우선 애플은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인상적으로 지원해주는 유닉스 배포본인 A/UX를 선보였다. 그리고 시스템 7을 PC용으로
포팅도 하였다. 새로이 RISC 웍스테이션 플랫폼도 실험해 보았고,
퀵타임이라 불리는 미디어 아키텍쳐 작업도 시작하였다. 뉴튼 핸드헬드 컴퓨터와 디지탈 카메라, 스캐너 등 주변기기 개발도 활발했다. PowerTalk이라 불린 새로운 메세징 플랫폼도 나왔다. 이와같이 여러가지 기술이 나왔지만, 맥을 넘어서 중요한 제품을 진정으로 만들어내는 데에는 문제가 있었다.
플랫폼 교훈이다.
Real artists ship!
A Rude Awakening
애플의 안일한 대응은 심각한 경쟁을 불러일으켰다. 1990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DOS용 그래픽 셸의 세 번째 버전을 발표하였고, 이 버전은 드디어 DOS PC의 광범위한 사용자들에게 그래픽 컴퓨팅에 대한 주목을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일반인들 눈에는 갑자기 그래픽이 화려한 맥과 텍스트-기반의 DOS PC 간의 간격이 좁혀져버렸다. 게다가 DOS PC로 구현한다면 훨씬 적은 값에 할 수가 있었다. 이때 높은 판매량을 뒷받침해준 애플의 고마진도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DOS용 셸로서 윈도우즈 3.0의 출하에 더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IBM과 함께 1988년부터 OS/2 NT라 알려진
OS/2 3.0의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양사간의 협력은 원래 DOS를 OS/2로 바꾸자는 목표였다. OS/2는 현대적인 운영체제로서 네이티브 소프트웨어는 물론, 윈도우즈와 DOS 애플리케이션과의 하방호환성도 갖추었다.
그러나 윈도우즈 3.0의 판매량과 채택율이 올라가자, 마이크로소프트는 IBM과의 협력을 청산하고, OS/2 개발을 결국 포기한다. 그대신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즈 3.0의 기반인 DOS를 좀더 진보적이면서 NT 커널로 교체하기 위해 "윈도우즈 NT"로 계획을 교체하였다. 완전히 새로운 NT 커널은 마이크로소프트가 갖고 있었다.
OS/2 플랫폼은 심각한 반응을 얻은 적이 없었으며, 이제는 DOS뿐만이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에게도 직접적인 경쟁을 벌여야 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계속 OS/2야말로 미래라며 OS/2가 "윈도우즈 플러스"라 칭하였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자원은 분명 NT 운영체제쪽으로 쏠리고 있었다.
The Promise of NT
NT를 완전히 새로운 운영체제로 소개시키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는
DEC에서 고용한
데이브 커틀러(Dave Cutler)가 이끄는 엔지니어 디자인팀을 구성하였다. 커틀러는 원래 DEC의
VMS를 작업했었다. VMS는 하이엔드 웍스테이션 시장에서 유닉스에 대항하는 주요 운영체제 경쟁자였다. NT 디자인은 새로운 아이디어도 많이 포함시켰지만, 여러모로 VMS를 반영하고 있다.

1993년,
윈도우즈 NT 3.1을 DOS 기반의 윈도우즈 3.1의 후계자로 소개하려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새로운 운영체제의 퍼포먼스가 당시 대부분의 PC가 가진 능력 범위를 벗어남을 발견하였다.
따라서 마이크로소프트는 NT를 서버와 웍스테이션용 제품으로 위치를 바꾸고, NT의 퍼포먼스 개선 계획을 세운다. 언젠가는 일반 PC에서도 돌릴 수 있도록 말이다.
그동안 마이크로소프트는 NT(NT3.5와 3.51, 4, 2000)와 DOS-기반의 윈도우즈(3.11, 95, 98, 98SE, Me) 양자를 유지하였다. DOS에서 NT로 급격한 변환을 시도하기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향후 10년동안 두 시스템의 통합을 위해 노력하게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NT를 플랫폼의 전부로 여겼다. 기존의 16-비트 윈도우즈 3.0용 소프트웨어는 물론, NT는 대부분의 DOS 프로그램을 돌릴 수 있도록 하부시스템을 지원하려 하였고, 그 외에 32-비트 윈도우즈용 애플리케이션과 OS/2용 애플리케이션, 심지어는
POSIX 소프트웨어도 지원할 계획이었다.
각 하부시스템은 내부 플랫폼 API 최상단에 위치하여, NT는 이론상 새 API를 올려놓기만 하면 지원이 가능했다. 또한 NT는 하드웨어 추상레이어도 지원하여 하드웨어 종류에 구애받지 않은 플랫폼이었다. 이에 따라 표준 x86 PC 외에, NT는 원래 DEC Alpha와 MIPS R4000 프로세서용으로도 돌릴 수 있었다.
The Cruel Fate of OS/2
NT가 여러가지 소프트웨어를 지원할 계획을 세우기는 하였지만, NT의 초점은 분명 더 강력한 윈도우즈 플랫폼이었으며, OS/2와 POSIX에 대해서는 립서비스만 했을 뿐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로써 광범위한 호환성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개발자들을 자신의 플랫폼으로 돌리는 데에 주력하였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즈 SDK 개발툴을 무상으로 배포하여 새 플랫폼용 개발을 독려(督勵)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가 OS/2를 포기한 이후, IBM도 똑같은 호환성을 제공하려 하였지만, 그 구사방식은 마이크로소프트와 달랐다. OS/2는 DOS와 윈도우즈 애플리케이션을 제대로 지원하려 하였다. 심지어 OS/2의 마케팅 문구는 "a better DOS than DOS, and a better Windows than Windows"였다. IBM은 윈도우즈 3.0용 애플리케이션을 OS/2 데스크톱에서 직접 제대로 지원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이 전략이
화근이었다. 윈도우즈를 제대로 지원하려는 IBM의 노력은 네이티브 OS/2 애플리케이션의 개발사기를 떨어뜨리고말았다. 게다가 OS/2는 특히
VxD 디바이스 드라이버에서 알 수 있듯, 윈도우즈용 애플리케이션을 제대로 지원하지도 못했다. 따라서 사용자들은 OS/2를 "a lessor Windows than Windows"로 인식하였다.
OS/2의 개선된 신뢰성과 다른 독특한 기능도 OS/2를 데스크톱 플랫폼으로 구축시켜주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OS/2 SDK 프로그래밍툴을 유료화시켰던 IBM의 시도도 역시 네이티브 프로그램 개발을 늦출 뿐이었다. OS/2는 결코 스스로 시장을 일궈나갈 만한 수요를 이끌어오지 못하였다.
IBM은 OS/2를
소비자용 제품으로 살려보려 노력하였지만, 시기가 너무 늦었고, 그 노력도 보잘 것이 없었다. OS/2는 결국 ATM이나 전화기 PBX, 보이스메일 시스템처럼 신뢰성이 정말 필요한 틈새시장만을 갖게 되었고, IBM 스스로도 나중에 OS/2를 포기하였다.
플랫폼 교훈이다.
하방호환성은 새 플랫폼과의 일시적인 미봉책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예전 플랫폼이나 경쟁 플랫폼의 성장을 오히려 돕는 결과를 빚어낸다. developers, developers, developers!
Flattering Apple
NT 개발에 있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그저 맥 데스크톱의 룩앤필 이상을 애플로부터 빌려쓴다. NT는 또한 사용자-중심적인 자동-설정 엔지니어링 원칙도 몇 가지 빌려서 시스템을 기존의 다른 시스템(특히 유닉스)보다 매킨토시에 좀더 가깝도록 만든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서버애플리케이션의 맥스러운 단순화도 구사하였다. 일반적인 유닉스 서버 관리자들의 방식처럼 사용자들이 텍스트 파일을 편집하면서 서버 설정을 하는 대신, 마이크로소프트는 NT의 파일과 출력 공유, 원격접속 외에 여러가지 서비스에 버튼과 아이콘을 붙이는 등, 맥스러운 단순성을 가미하였다. 이들 아이콘과 버튼은 이미 맥용으로 먼저 나왔던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애플리케이션을 반영하였다.
NT 개발 외에도, 마이크로소프트는 여러가지 다른 계획도 발표한다. 코드명
Cairo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메세지 서비스의 확장(결국
Exchange Server로 나타났다)과 디렉토리 서비스(결국
Active Directory로 나타났다), 그 외에 분명 넥스트를 의식한 객체-지향 얘기를 엄청나게 많이 거론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로서는 넥스트가 가진 진보적인 객체지향 개발프레임웍과 대등한 이미지를 보이고 싶어했던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러한 아이디어를 결코 구현하지 않았다.
Death by Vapor
마이크로소프트 사업계획에는 언제나 실제 제품 조달보다 앞선 발표가 포함되어있다. 일단은 시장의 반응을 떠보려는 목적도 있다. 하지만 이 전략은 시장이 일단 마이크로소프트가 무엇을 내놓을지 지켜보게 만들기때문에 잠재적인 경쟁자들을 없애버리는 효과도 갖고 있다.
90년대 초, 마이크로소프트가 내놓은 허풍 소프트웨어들은 기존의 경쟁제품의 즉각적인 죽음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좀더 최근에 보면 마이크로소프트는 계획을 제 때에 실현못시켰고, 그로인하여 요새 마이크로소프트의 발표는 예전만큼 다크포스를 내뿜지는 않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서버 영역에서 애플이 개척한 아이디어를 채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애플은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는 데만 하더라도 점차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 문제는 다음 글, "
1990-1995: Apple vs. Microsoft in the Enterprise"에서 다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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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5: The Rise of Windows NT & Fall of OS/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