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5-1990: 16-bit Graphical Computing
Wednesday, August 3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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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의 역사, 그리고 그 대결"은 플랫폼을 새로 발족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플랫폼을 유지하는 일은 또 얼마나 고된지를 알려주었다. 본 글에서는 컴퓨팅 플랫폼의 역사적인 궤적(軌跡)과 함께, 누가 왜 이겼는지, 누가 왜 졌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컴퓨팅 환경이 언제나 변하기는 하지만, 기본 원칙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으며, 애플의 레퍼드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비스타와 같은 미래 개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난 기사는
1980년부터 1985년까지를 다루었다. 여기서는 1980년대 후반을 다루도록 한다.
1985-1990: 16-bit Graphical Computing
애플의
매킨토시는 모토로라 68000 프로세서를 기반으로 날카롭고 고품질의 그래픽 디스플레이라는 컴퓨터 기술의 새 물결을 가져다왔다.

매킨토시의 혁신적인 시스템 소프트웨어의 일부는 맥 하드웨어상에 그대로 들어가있었다. 툴박스(ToolBox)라 불린 이 시스템소프트웨어의 일부는 화면상에서의 드로잉과 출력, 디스크 관리, 사용자 상호운용을 표준화시켰다.
따라서 개발자들이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일관성있게 만들기가 쉬워졌다. 개발자들은 이제 기본적인 사용자 환경을 바닥부터 다지는 대신, 새 툴에 신경쓰면 되었다.
또한 개별 프로그램은 이제 더이상 여러가지 프린터 지원을 제공해야 할 필요가 없어지기도 하였다. 이는 소규모 개발자들이 대규모 소프트웨어 회사들과 경쟁할 수 있는 여지를 터 주었다. 매킨토시 운영 시스템은 시스템에 보다 기본적인 기능을 제공하는 데에 주력하였다.
Consistent User Interface

애플은 또한 표준 차원의 키보드 명령어와 사용자 인터페이스 가이드라인을 제정하여, 모든 애플리케이션이 비슷하게 돌아가도록 하였다. 즉, 사용자가 새 애플리케이션을 배우는 데에 있어서, 예전에 쓰던 애플리케이션과 비슷한 방식으로 더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하였다.
DOS 프로그램이 이미 키보드 단축키를 사용하였지만, DOS 프로그램들은 제각기 다른 명령어를 사용하였으며, 대부분 직관적이지 못했다. 예를 들어서, DOS 애플리케이션들은 제각기 새 문서를 여는 단축키가 달랐다.
- 워드퍼펙트의 경우는 F7 + 3
- 워드스타의 경우는 컨트롤 + K + O
- 로터스 1-2-3의 경우는 / 로 메뉴를 연 다음, 웍스페이스는 W, 불러오기(retrieve)는 R
-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는 메뉴를 열 때 Esc, 전송(transfer)할 때는 T, 읽기 할 때는 L
매킨토시의 경우에는 모든 애플리케이션이 똑같은 커맨드 + O였다.
애플은 Z 조합은 Undo, X 조합은 자르기, C는 복사, V는 붙이기, W는 창 닫기로 디자인하기도 하였다. 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존의 DOS 프로그램과 윈도우즈상에서도 애플의 직관적인 키조합을 채택한다. 물론 윈도우즈는 창 닫기에서 여전히 Alt + F4를 쓰고 있지만 말이다. PC에는 커맨드 키가 없기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커맨드의 매핑을 컨트롤 키에 정해 넣었다.
당시 DOS 사용자들은 애플이 디자인한 단순하고 직관적인 명령어 조합을 채택하려들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 윈도우즈 사용자들은 애플이 콘트롤이 아니라 커맨드 키를 사용한다면서 불평하고 있다. 오히려 애플이 기존 키 조합과 다르다는 불평이다!
플랫폼의 교훈이다.
성공적인 플랫폼은 사용자와 개발자 모두에게 시작할 기반을 마련해 주는 한편, 새로운 방향으로 이들을 성장시켜준다.
A New Market for Macs
하지만 애플의 새 플랫폼에는 모든 애플리케이션을 매킨토시 상에서 돌리게 하는 룩앤필보다는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필요했다. 초창기 맥 소프트웨어의 주요 개발사 중 하나가 마이크로소프트였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새로운 오피스 애플리케이션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표준적인 맥다운 인터페이스를 정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매킨토시용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아직 확실하지 않았기에, 애플은 그러한 킬러 애플리케이션을 필요로 하였고, 드디어는 데스크톱 출판이 나온다. 텍스트와 그래픽을 레이저프린터로 출력하는 이상적인 시스템으로서 맥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더 일찍 나왔던
애플 III와는 달리, 맥은 호환성의 문제를 비켜갈 수 있었다. 하드웨어상으로나 소프트웨어상으로나 커다란 진전이 있었던 덕분이다. 따라서 호환성을 해결해주는 다리가 없어도 매킨토시 플랫폼에 대한 흥미가 생겨났다.
게다가 맥을 채택한 최초의 시장은 완전히 새로운 시장이었다. 바로 예술가들과 디자이너들이다. 이들이 사무용 컴퓨터를 널리 사용하지는 않았기에, 이들을 위한 시장에는 기존의 시장 주도자가 없었다. 하지만 맥을 학교에 들여놓기는 훨씬 더 어려웠다. 교육 기관들은 이미 애플 II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PC가 이미 표준으로서 점령한 사무용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애플은 가정과 학교 사용자들에게 계속하여 애플 II를 판매하였고, 결국에는 맥 LC에서 애플 II 호환카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애플 II 호환카드는 사용자들을 새 플랫폼으로 이주시키면서 옛 플랫폼용 작업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해결책이었다.
플랫폼의 교훈이다.
새 플랫폼의 소개는 매우 어렵다. 기존의 시장에 반하기 때문이다. 단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찾으면, 기존의 시장을 향해서도 한 번 겨뤄볼 수 있게 해준다.
Apple IIGS

애플은 애플 II와 매킨토시를 조합한 컴퓨터를 선보여서, 새 플랫폼으로의 이주를 돕기로 한다. 바로
애플 IIGS이다. 애플 IIGS는 애플 II 를 16-비트 플랫폼으로 올려주었고, 맥에 있는 그래픽 툴박스 기능을 애플 II의 가격으로 제공해 주었다.
애플 IIGS는 그래픽과 사운드 기능이 들어갔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다. 애플 IIGS는 애플이 내놓은 최초의 컬러 그래픽 컴퓨터였으며, 당시 맥은 여전히 흑백 화면이었다. 애플 IIGS는 또한
Ensoniq 사운드 신디사이저 칩을 통하여, 당시 어떠한 가정용 컴퓨터보다도 제일 인상적인 사운드 기능을 제공하였다.
스티브 워즈니악의 작품이랄 수 있을 IIGS는
ADB도 개척하였다. ADB는 키보드와 마우스용의 데이지-체인 시리얼 버스로서 워즈니악이 디자인하였다. 10년 뒤에 나오게 될 인텔의 USB가 제공하는 수많은 기능을 이미 ADB가 제공했던 것이다. ADB는 새로나오게 될, 그리고 더 빠르다는 USB가 제공하지 못하는 키보드 상에서 하드웨어를 켜는 기능마저 제공하였다.

애플의
Mega II는 오리지날 애플 II가 가진 모든 하드웨어를 단일칩 안으로 집어넣어 주었다. 따라서 애플 IIGS는 초창기 애플 II 소프트웨어와 완벽한 호환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칩은 나중에 나온 맥 LC용 호환카드에서도 쓰인다.
만약 매킨토시가 나오지 않았더라면 애플 IIGS는 애플에게 있어서 상당히 강력한 제품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애플 IIGS는 매킨토시로부터 관심을 빼앗았고, 애플 또한 양 플랫폼의 유지에 개발력을 쏟아야 했다.
그 결과 애플 IIGS에 대한 애플의 지원은 한눈팔기식 산발적 지원이 되어버렸다. 후에 IIGS용 운영체제인
GS/OS가 나왔었다. GS/OS는 맥으로부터 부가적인 기술을 빌렸고, 애플 II 라인의 기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지만, 애플 IIGS의 남은 수명은 분명했다.
애플은 IIGS를 학교기관에 대량판매하였다. 애플 II와의 호환성과 저가격덕분에 학교에 맥을 팔기보다 IIGS 판매가 더 쉬웠던 탓이다. 또한 애플 IIGS의 사례는 호환성 유지가 왜 나쁜 전략인지를 알려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애플 IIGS 시스템의 사용처가 약간 더 빠른 8비트 애플 II용으로서의 사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개발자들은 애플 IIGS가 가진 우아한 기능과 혁신 대부분을 무시하였고, 따라서 사용자들도 그런 기능을 누리지 못하였다. 애플 IIGS 전용 애플리케이션은 그리 많이 나오지 않았다. 부분적으로는 애플이 맥을 홍보한 탓도 있긴 하였다.
플랫폼 교훈이다.
다중 플랫폼 지원은 개발여력을 크게 떨어뜨린다. 하위호환성은 앞으로의 진전을 막을 수 있다.
The PC Market
업계 표준 PC는 맥보다 훨씬 뒤쳐져 있었다. 이전 세대의 옛날 옛적 텍스트-기반 애플리케이션의 개선을 택하였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이 일반 컴퓨터용으로 시스템소프트웨어를 내주기 희망하였지만, 초창기 세대의 텍스트기반 컴퓨터들은 맥과 같은 풍부한 환경을 다룰 파워가 못되었다. 따라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스스로 나서서 윈도우즈를 제공하기로 한다. 그러나 윈도우즈 3.1이 1991년에 나오기 전까지는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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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깁기 개발의 미신을 벗긴다"에서 묘사한대로, DOS PC상에서 맥 환경을 재창조하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노력은 점점 더 복잡해졌고, 차라리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기보다 더 성공하기가 어려워졌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오리지날 맥에서의 애플 개발비용보다 두 배를 더 들여서 윈도우즈 3.0을 개발해냈다! 이제 컴퓨터 산업의 주도자 지위가 굳건해진 마이크로소프트가 어째서 깔끔하게 새로운 세대의 컴퓨터를 선보이지 않았을까? 맥처럼 깔끔하고 우아한 하드웨어를 왜 발표하지 않았을까?
마이크로소프트는 컴퓨터 제품의 절반만을 통제하기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새 플랫폼 투자라는 위험을 자초하지 않을 PC 하드웨어 개발자에게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다. PC 플랫폼은 혁신하자는 플랫폼이 아니다. 오로지 낮은 가격을 이루자는 플랫폼이다.
그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로서는 더 허술한 하드웨어상에서 맥 환경을 구현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픽셀도 사각형이 아니었고, 그래픽카드 표준도 제멋대로였다. PC의 모든 것이 오로지 저가에 맞춰져 있었고, 그 결과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당주로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비용을 많이 들일 수 밖에 없었다.
하나의 완전한 솔루션을 내놓는 하나의 회사 대신, PC 시장은 복잡다단한 하드웨어 회사와, 단 하나의 운영체제 시스템 소프트웨어 회사로 이루어져 있다. 사용자들은 통합 솔루션 비용을 스스로 부담해야 했다. 이는 오리지날 IBM PC의 구매가보다 훨씬 높았다.
플랫폼의 교훈이다.
통합 시스템 지원이 여러가지 부품 조립 지원보다 훨씬 더 쉽다.
IBM’s Failure to Reclaim the PC

IBM은 진보적이고 폐쇄적인 하드웨어 표준 기술을 지닌 새 세대의 PC를 소개하여 이를 다시 라이센스하고, 그동안 잃어버린 PC 플랫폼의 통제권을 다시금 쥐기 희망하였다. 다름아닌
PS/2이다. PS/2는 훨씬 더 빠른
MCA 확장슬롯과 우월한 VGA 그래픽, 그리고 매킨토시가 소개한 3.5" 플로피디스크, 새로운 키보드와 마우스 표준포트를 탑재한 새로운 컴퓨터였다.
또한 PS/2는 IBM과 마이크로소프트가 파트너쉽을 맺어서 내놓은 새로운 운영시스템,
OS/2를 소개하였다. IBM은 OS/2가 PS/2라는 자동차의 운전석에 올라탔다 생각하였지만, PC 업계는 이미 IBM이 이끌고가기에는 너무나 커버린 상태였다.
PS/2의 표준화된 기능을 채택한 PC 메이커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들은 MCA를 채택하여 IBM에게 라이센스 비용을 내기보다는, 별도의 PC 확장 슬롯 아키텍쳐인
EISA를 만들어냈다. 컴팩이 주도한 EISA때문에, IBM은 도리어 낙동강의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렸다.
PS/2는 실패작이 되어버렸고, IBM은 80년대 나머지 기간동안 엄청난 재무상 손실을 기록하게 된다. IBM은 컴팩에게, 그리고 나중에는 델에게 하드웨어 시장의 주도권을 잃었을뿐만 아니라, 1990년, OS/2 개발에 있어서의 마이크로소프트의 배신까지 겪는다.
즉, PC 플랫폼을 창안했다 하여, IBM이 PC 플랫폼을 지배하지는 못하였다. 기술적으로 우월한 PS/2도 IBM에게 통제권을 되돌려주지는 못했다. PC가 범용 제품 시장이 되자, PC 시장의 모든 관심은 가격경쟁에 쏠렸고, IBM이 일으킨 새 혁신은 단순복제가 되거나 무시당하였다.
플랫폼의 교훈이다.
복제가 쉬운 플랫폼은 복제되기 마련이다. 사업 모델을 한 번 포기해 버리면, 되돌리기란 쉽지 않다.
The Non-PC Market
마우스로 윈도우 창 환경에 나타난 문서를 조작한다는 기본 개념은 코모도어의
아미가나
Atari ST에도 전달되었다. 이 양 컴퓨터는 맥과 비슷하게, 모토로라의 68K 프로세서를 사용하였다.

아미가는 비디오와 그래픽으로 작동하는 특별한 하드웨어 프로세서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아타리는 가격면에서 애플과의 차별화를 꾀하였다.
아타리를 떠난 엔지니어들이 모여서 새로운 게임 콘솔로 만들려 했던 것이 원래의 아미가였다. 코모도어의 창립자이자, 사장인
잭 트래밀(Jack Tramiel)은 코모도어를 떠난 후, 아타리를 인수하여, 아타리의 기존 제품 대부분을 중단시켜버리고, 직원들도 대부분 해고시켰다. 그리고는 차세대 16-비트 컴퓨터를 선보일 계획을 세웠다.
아타리와 코모도어는 아미가 그룹 기술, 그리고 코모도어에서 아타리로 떠난 기술자들을 두고 다투었다. 이 싸움에서 코모도어가 승리하여 코모도어는 C-64로 생겨난 이윤을 아미가 인수에 써버렸다. 아타리는 겨우 ST를 선보일 수 있었다. ST는 디지탈리서치의 CP/M에 기반하는 그래픽 데스크톱 환경인
GEM을 포팅하여 사용하였다.
마침내 아미가와 ST는 맥과 비슷한 퍼포먼스로 애플 IIGS보다 낮은 가격에 컴퓨터를 제공하였다. 하지만 아타리와 코모도어의 회사 크기, 그리고 중요한 컴퓨터 플랫폼 개발과 유지에 대한 미천한 경륜때문에 그들 누구도 장기적인 플랫폼의 생존에 중요한 써드파티 개발자들을 충분히 끌어모을 수 없었다.
게다가 진보적인 하드웨어 디자인에 맞춰나가는 일도 어려웠다. 애플과 비슷한 기능을 탑재시키면서 완전한 운영체제를 유지시키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드웨어 이윤으로 생겨나는 거대한 이윤을 애플은 연구개발비용으로 투입시킬 수 있었다.
가령 아미가는 맥보다 좋은 독특한 기능인, 선점형 멀티태스킹을 제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사용자에게 실질적인 이득을 안겨다줄 수 있는 써드파티 개발자들을 끌어모으지는 못했고, 주목도 받지 못하였다. 아미가에 없는 중요한 한 가지는 선점형 멀티태스킹이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 애플리케이션 지원이었다.
비디오 편집이나 모션그래픽, 비디오상의 그래픽 오버레이와 같은 틈새시장에서는 아미가의 진보적인 하드웨어 기능을 누릴 수 있었다. 결국 아미가는 PC도 아니고 맥도 아닌 제품을 추가하는 데에 그치고 말았다. 이 제품은
Video Toaster로서, 비디오 시장을 이끌기는 하였지만, 결국 다른 영역에서 아미가는 경쟁사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고 PC와 맥보다 뒤쳐지게 되었다.
아타리 ST도 비슷하게 데스크톱 출판과 CADD 시장에 있어서 유럽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지만, 개발을 지속시킬 정도로 시장을 개척하지는 못하였다. 부분적으로는 모토로라 68k 프로세서 아키텍쳐가 활력을 잃었던 탓도 있다.
플랫폼 교훈이다.
완전히 새롭고 비호환 플랫폼은 시장 안에서 운신의 폭이 좁게 마련이다.
NeXT
트래밀처럼,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창립하고 초창기 맥 개발을 지휘하였지만, 애플의 경영 방향과는 다른 길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1985년 애플에서 축출된 이후, 스티브 잡스는 차세대 운영체제라는 자신의 비전을 실현시켜줄 새 회사를 창립하게 된다.
넥스트(NeXT)이다. 넥스트의 개발시스템은 애플 계획보다 훨씬 더 진보적이었다.
넥스트는 잡스가 세웠고, 여기에 애플에서 잡스를 따라온 여러 개발자들이 참여하였다. 넥스트는 자신의 계획대로 개발시스템을 돌릴 하드웨어가 없다 판단하고, 고유의 하드웨어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결정내린다. 운영체제도 제작하기로 함은 물론이다.
넥스트는 1989년부터 새 머신을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컴퓨팅의 새시대에 뛰어들었다.
Platform Perception vs. Reality
애플은 새 세대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주도적으로 이끌면서 컴퓨터 기술의 최고봉을 개척하였다. 비록 실패로 끝날 위험도 있었고, 자원도 대단히 많이 소모하였지만, 애플은 보통의 PC보다 분명히 우월한 새 플랫폼을 과감하게 내놓았고, 전세대의 8-비트 머신이 교체를 요구할 시기에 새로운 수요와 이윤을 창출하였다.
아미가와 아타리 ST, 그리고 애플 IIGS는 모두 맥보다 저렴한 대안을 제공하고 장점도 갖고 있었지만, 유망한 플랫폼으로서의 개발자지원과 시장을 모두 가지지는 못하였다.
애플의 지위를 넥스트가 빼앗으리라는 전망도 나왔지만, 넥스트도 불충분한 개발자 지원과 시장구축에 있어서 비슷한 문제를 겪게 된다. 여러모로 넥스트는 대중적으로 저변을 넓히기에 너무나 앞서 있었다.
플랫폼 교훈이다.
과감한 선택은 큰 성과를 가져다줄 수 있지만, 장담할 수는 없다.
16-비트 신세대 그래픽 컴퓨터는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복잡해졌다. 개발자들의 투자도 훨씬 더 많이 필요해졌다. 그러나 기술 발전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되었으며, 기존의 컴퓨터를 구식으로 만들어버렸다. 이에 따라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기는 매우 어려워지게 된다.
다음 시대(1990~1995)에서는 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반을 통해 기존의 플랫폼의 원기를 회복시켜주려는 시도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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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1990: 16-bit Graphical Compu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