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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8, 07:00 AM   #2
casau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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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1985: 8-비트 플랫폼의 시대

1980-1985: 8-Bit Platforms

Monday, August 28, 2006

위 글에서는 새 플랫폼 만들기의 어려움과, 유지에 관련된 작업에 대해 논하였다. 여기서는 컴퓨터 플랫폼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고 누가 왜 이겼는지, 누가 왜 졌는지에 대해 정리해 보겠다. 컴퓨터 환경이란 언제나 변하고 있지만, 오늘날에도 기본 원칙은 그대로 지켜지고 있으며, 애플의 레퍼드와 마이크로소프트 비스타의 향후 개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플랫폼에서 성공을 이루려면 한 가지 이상의 방법으로 유지를 시켜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경쟁자들은 그시대의 플랫폼을 완전히 대신할 기회가 없음을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여러가지 다른 시스템과의 공존을 추구하여 대안을 제공하려 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데스크톱 운영체제 시장의 제한적인 경쟁의 진짜 이유는 단일화된 시장의 장점에 있다. 개발자들은 될 수 있는 한 자기 제품을 널리 퍼뜨리고 싶어하기 때문에, 시장이 큰 플랫폼을 선호하게 마련이다. 그만큼 많이 선보일 수 있으며, 그만큼 생존에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다른 소프트웨어 미들웨어 플랫폼도 마찬가지이다. 얼마나 많은 미디어 플랫폼이 있을까? 비디오 게임 콘솔은 또 얼마나 있으며, 임베디드 시스템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상호운용성과 이주 과정은 소수 플랫폼의 성공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이론도 괜히 이론이 아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1980년대 초반의 컴퓨터부터 시작해 보도록 하자.

1980-1985: 8-Bit Platforms
초기 컴퓨터는 애플리케이션을 띄우는 역할만 하였다. 컴퓨터 자체가 파일과 출력, 그래픽 그리기를 모두 다루는 애플리케이션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는 플랫폼의 채택에 있어서 킬러 애플리케이션을 낳았다.

70년대의 표준 플랫폼으로서 CP/M의 채택은 주로 유명한 텍스트 에디터, WordStar 덕분이었다. 마찬가지로 최초의 유명 스프레드쉬트인 VisiCalc는 애플 II의 성공을 가져왔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어느 플랫폼에 투자해야할지 망설였다. 다음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다른 하드웨어라면 지금 쓰고 있는 하드웨어는 구닥다리가 되는가?

현실적으로,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기술에 있어서의 중요한 개선은 어떻게서든 기존의 시스템을 구닥다리로 빠르게 만들어버리게 마련이다. 진짜 의문은, 과연 새 시스템이 기존 플랫폼의 확장인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인가이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새 혁신을 조성하려면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을 소개해야 할까?

답변은 역사가 제공해준다. 한 단어로 말할 수도 있다. 그때그때 달라요.

가령 애플 II는 확장이 쉽고 간단한 하드웨어상에 기반을 둔 고유의 플랫폼으로서 성공을 거두었다. 애플 II는 CP/M과 소프트웨어 호환성을 갖추고 있지 않지만, 추가적으로 Z80 카드를 사용하여 CP/M 프로그램을 돌릴 수는 있었다. 이런 종류의 하위호환성 보장은, 새 플랫폼을 선보이기 위한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서, 역사상 계속 되풀이된다.

따라서 플랫폼의 교훈은 다음과 같다. "과거와 연결시켜주되 끊어버릴 수도 있는 임시적인 다리를 확보하고, 이로써 기존의 사용자들을 훨씬 더 좋은 플랫폼으로 이주시킨다"이다.

Enter IBM
돈 에스트리지(Don Estridge)IBM은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을 선보인다는 애플의 성공사례를 복제한다. 애플 하드웨어 혁신은 우선 사용준비가 된 소비자 지향적인 컴퓨터 시스템이었지만, IBM 플랫폼은 대기업의 명성과 강력한 인지도에 기반하는 새 플랫폼의 도입이었다.

Don Estridge가 이끄는 IBM의 한 그룹은 작고 새로운 컴퓨터 플랫폼을 만든다. 원래 이 프로젝트는 IBM의 801 RISC 프로세서(POWER 아키텍쳐의 원조격이다)에 기반하는 강력한 시스템을 만드려 했었다. 801-기반의 PC에 IBM 고유의 진보적인 운영체제라면 기존의 어떠한 컴퓨터보다도 앞서나갔을 것이다.

그대신, 이 팀은 물건을 빨리 내놓아야 하며, IBM의 기존 회사용 머신 시장과 경쟁해서는 안된다고 판단내렸다. 따라서 프로세서는 인텔의 로우엔드 8080이 되었고, 이에 따라 1981년 IBM PC가 나온다. 이 컴퓨터는 이제 4년된 애플 II정도 밖에 안되었다.

1983년, 스티브 잡스는 애플 컴퓨터의 사장으로 에스트리지를 영입하려 노력했었다. 에스트리지는 잡스를 거절한다. 그리고는 IBM 일로 비행기를 타다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2년 뒤에 죽는다. 그가 애플 사장을 받아들였다면, 에스트리지와 애플 모두 미래를 완전히 다르게 바꾸어냈을지도 모른다.

잡스는 그 대신 펩시에 있던 존 스컬리(John Sculley)를 영입한다. 애플에 있던 10년 동안 스컬리가 이룬 업적은 다음과 같다. 잡스 쫓아내기, 광고를 위해 오리지날 매킨토시 가격을 25% 올리기, 맥의 지적재산권을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에 라이센스로 퍼주기, 엔지니어들보다는 중간급 관리자들이 회사를 쥐고 흔들게 놓아두기, 그로 인해 여러가지 이윤이 안남는 재앙을 만들기 등이다. 에스트리지와 같은 엔지니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뭐가 달라도 달랐을 것이다.

The PC market
1981년의 시장 상황에서, 기술적으로 복잡하다거나 우아하지 않은 IBM의 진입은 더 성숙해보이는 개발의 기반을 제공하였다. IBM에게는 컴퓨터 시장에 계속 눌러 있을 만한 자원과 기술력이 있었기 때문에, IBM PC 구입은 특히 회사에 있어서 괜찮은 선택이었다.

IBM의 성장도 개발자들을 새로나온 PC로 이끄는 원동력이었다. 가장 좋은 사례가 로터스1-2-3 스프레드쉬트이다. VisiCalc를 베꼈다가 나중에는 대체해버리고나는 로터스는 회계에 있어서 킬러 애플리케이션이었다. 그리고 워드프로세싱의 새 표준이 된 워드퍼펙트도 마찬가지였다. 이 두 소프트웨어 덕분에 PC는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임에도 불구하고 새 표준으로 급성장하였다. 게다가 한 번 표준이 되자, 대부분의 경쟁사들은 고유의 플랫폼을 만들 이유를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이들도 IBM PC를 베끼게 된다. IBM PC가 표준화되어가던 때였기 때문이다.

가방에 들어가는컴퓨터인 Kaypro와 Osborne과 같은 혁신적인 하드웨어를 제공하는 업체들도 비상이 걸렸다. 여전히 CP/M으로 팔려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급속도로 사라져갔고, 컴팩이 그자리를 대체하게 된다. 컴팩은 IBM PC와 같은 DOS 소프트웨어를 돌리면서, 역시 운송이 가능한 컴퓨터를 제공하였다.

하드웨어 혁신만으로는 늙어가는 플랫폼을 구할 수 없다. 특히나 경쟁사들이 더 낫거나, 적어도 더 대중성 있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사용하여 하드웨어 혁신에 대응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초기 디스크-기반의 운영체제에서 기대할 만한 일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DOS의 대안에 대해서는 경쟁의 여지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PC용 대안 DOS 시장은 실질적으로 없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애플 II용 대안 DOS 시장이 없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IBM도 스스로 DOS를 작성해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 제품을 빨리 공급하기 위해 IBM PC-DOS는 마이크로소프트 라이센스일 뿐이었다. 실질적으로야 MS-DOS는 CP/M의 복제였지만 말이다.

CP/M을 개발한 디지탈 리서치DR-DOS로 경쟁 상품 시장을 만들려 노력했었다. 하지만 IBM과 마이크로소프트와의 라이센스 계약때문에 PC 호환기종 업체들은 디지탈 리서치나 다른 잠재적인 경쟁사들을 왕따시켰다.

플랫폼 교훈이 또 한 가지 나왔다. 공짜와 경쟁하기란 어렵다. 번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는 그 자체로 경쟁자들을 피할 수 있다.

Platform Control
전체 애플 II 플랫폼을 애플이 갖고 있었지만, IBM PC는 IBM과 마이크로소프트 양사가 만든 플랫폼이었다. 이는 플랫폼 통제 유지와 관련하여 애플과 IBM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IBM이 PC 디자인을 복제업체들에게 라이센스를 내 주어서 IBM이 애플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IBM이나 애플이나 모두 하드웨어 복제 업체들을 피하기 위해 노력해 왔었다.

애플은 애플 II ROM을 복제한 Franklin에게 고소하여 승소하였었다. 하지만 PC 복제 업체들을 막기 위한 IBM의 노력은 비효율적이었고, 애플보다 더욱 더 어려웠다. 법적으로도 IBM 기술을 침해하지 않고서 가능할 정도로, PC가 너무나 복제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애플 II와 IBM PC는 양자 모두 성공적으로 복제품이 나왔었다. 하지만 PC 클론, 그중에서도 컴팩은 하드웨어 주도권을 IBM으로부터 뺏어왔다. 하지만 애플 II 복제업체인 Laser 128은 로우엔드 시장을 목표로 했으면서 더 고가인 애플 II와는 상대하지 않았었다.

IBM 플랫폼은 PC 시장의 활성화 덕분에 세워졌다. 하지만 IBM은 그와 똑같은 이유때문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IBM이 좀더 복잡하고 강력한 시스템을 설사 몇 년 후에 내놓았다면, IBM은 시장에 늦게 진입함은 물론, 훨씬 더 지배적인 위치의 애플이나 CP/M과 부딪혔어야 했을 것이다.

일어나지 않았을 법 하지만 IBM이 늦게 들어왔더라면, 더 강력한 IBM의 진입은 컴퓨터 시장을 깨끗이 정리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경쟁사들이 복제하기에도 더 어려웠을 것이다. IBM이 전체 플랫폼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복제에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진다.

PC는 범용 부품으로 만들어진 컴퓨터이다. IBM이 연구소에서처럼 진보적인 컴퓨터를 내놓았더라면 IBM은 칩에서부터 소프트웨어까지 전 플랫폼을 소유했을 것이다. 그러면 복제 업체들은 CP/M이나 애플 II 정도나 복제하는 데에 갇혔을 것이며, 아니면 아예 새로운 플랫폼을 내세우려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보자면, 마이크로소프트는 경쟁을 막기 위해 별 수고를 들이지 않았다. 컴팩이나 다른 복제 업체들이 IBM PC 하드웨어를 복제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와는 MS-DOS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하드웨서 시장 점유율을 IBM으로부터 뺏어오면서 마이크로소프트 DOS를 표준으로, PC 플랫폼의 원동력으로 가꾸어 주었다.

플랫폼 교훈이 나왔다. 복제하기 쉬운 기술을 선보이지 말고, 소유권 유지에 노력해야 한다. 배신자와는 파트너를 맺지 말아야 한다.

The non-PC Market
애플 II는 가정과 교육 시장에 계속 팔려나갔지만, 사무 시장에서는 입지를 다지지 못하였다. 사무 시장에서는 PC가 빠르게 사실상 표준이 되어갔다.

애플의 첫 번째 대실패인 애플 III는 사무용 시장에서 IBM PC와 경쟁하기 위해 만들어진 컴퓨터였으며,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이었다. 애플 III는 IBM PC가 나오기 일 년 전부터 등장하였지만, 여러가지 비극적인 실수때문에 시장으로부터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우선, 애플 III는 애플 II와 너무나 제한적인 호환성만을 갖추고서, 완전히 새 플랫폼을 제공하려 했었다. 애플 III는 애플 II의 보다 진보적인 기능 다수를 사용할 수 없었다. 애플 III는 또한 시장에 빨리 진입하려 해서 나오는 하드웨어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게다가 애플 III는 애플 II보다 그다지 개선된 점이 없었으며, 다른 CP/M 컴퓨터들보다 더 비싸기만 하였다. 따라서 IBM PC가 설사 나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애플 III는 실패했을 기종이었다.

IBM은 허술한 제품을 내놓으려 했던 애플의 호들갑까지 배워갔다. IBM PC와 클론이 막 태어나고 있던 사무용 시장을 채우는 시기에, IBM은 애플이 가진 가정과 교육시장까지 차지하려 시도했었다. 바로 IBM의 PCjr이다.

PCjr는 완전한 실패작이었다. 그 이유는 애플 III와 같았다. PCjr는 애플 II나 다른 경쟁품보다 장점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고가였고, IBM PC와의 호환성도 조잡했으며, 품질도 비판을 많이 받았다. 특히 혁신적이라는 무선 키보드가 비판의 대상이었다.

플랫폼 교훈이다. 너절하면서 호환성이 없는 플랫폼 확장은 성공하기 힘들다.

당시 다른 컴퓨터 회사들, 가령 유명했던 Commodore 64Atari, Coleco Adam은 프로세서의 종류와 기능면에 있어서 애플 II와 견줄 만했다.

C-64는 가정용 컴퓨터와 게임용 시스템으로서 개선된 그래픽과 사운드 기능, 낮은 가격표를 달고 있었다. Coleco와 Atari는 단순히 저렴한 대안만으로는 플랫폼의 생존력 개발에 충분하지 못함을 증명해 주었다.

Platform Perception vs. Reality
IBM은 사무용 PC 시장의 창립에 크게 기여하였다. 하지만 PC 플랫폼은 IBM이 아닌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끌었다. IBM은 소프트웨어 지배권을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넘겼을 뿐 아니라, 시장 점유율을 복제 업체들에게 빼앗기면서 하드웨어 주도권까지 넘기고 말았다.

플랫폼 교훈이 나온다. 플랫폼 내부에서 경쟁의 여지는 크지 않다. 한 곳만이 살아남을 뿐이다.

애플은 8-비트 플랫폼으로 다음 세대까지 살아남은 몇 안되는 회사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미 애플은 차세대 메이저 플랫폼 작업에 열심이었다. 강력하고 그래픽 컴퓨터 환경을 갖춘 매킨토시이다. 1984년에 나온 매킨토시와 그 경쟁자들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 1985-1990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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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1985: 8-bit Platfor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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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Q

casaubon 님께서 2008-01-30 07:50 AM 에 수정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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